멜 브룩스 박스세트 (3disc, 고소공포증, 무성영화, 사느냐 죽느냐) - 할인행사
20세기폭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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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이든지 직접 겪고 나서야 공감하기 쉽다. 커피를 즐겨 마셔도 속 쓰리지 않고, 불면에 시달리지 않던 호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언니는 커피를 마실 때면 지나치게 신중했다. 하루에 두 잔 정도 마셨다면 아무리 입맛에 당겨도 더 이상 마시질 않았다. 면도날로 오려내듯 속이 따끔거리는 데다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젊은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마셔도 속이 쓰리기는커녕 잠만 잘 잤다. 언니가 별나다고 치부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요즘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커피를 마시면 속이 콕콕 쑤시고 불면의 밤도 각오해야 한다. 이 오묘하고 불쾌한 경험이 잦아진 뒤에야 언니가 헛말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당사자가 겪어 보기 전에는 완전하게 공감하기 힘든 것이다.

 

 

  병적인 징후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고소공포증을 느끼는 부류이다. ‘바이킹’이란 놀이기구가 처음 나왔을 때 주제도 모르고 올라탔다가 혼비백산을 한 적이 있다. 얼마 전 대둔산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몇 십 미터 이상 가파르게 뻗은 철제 사다리를 오기 하나로 도전했다가 눈물바다가 됐다. 되돌아설 수도 없는 그 까마득한 계단을 오르는 심정은 끝없는 지옥 밑바닥을 헤매는 것과 같았다. 허벅지는 후들거리고, 심장은 옥죄어왔다. 공포심의 절대 풍경이 있다면 그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고소 공포 체질이 아닌 사람들은 이해를 잘 하지 못한다. 그것쯤이야 한다. 자신에게는 해당 사항 없으니 공감하기 쉽지 않아서 그렇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세상엔 하찮은 것도 사소한 것도 없다. 아픔은 아픔이고, 공포는 공포일뿐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덜 아프고, 내가 느끼지 않았다고 덜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섣불리 사물이나 대상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사소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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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작가를 위한 창작 노트 아동청소년문학도서관 5
손연자 외 지음, 신형건 엮음 / 푸른책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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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한 편의 제목이 이슈가 되고 있다. 현재 방영중인 KBS 수목드라마의 원 제목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이다. 한데 방송사는 보도 자료를 통해 다음 회부터는 ‘차칸남자’에서 바른 표기법인 ‘착한남자’로 타이틀을 바꿔 올린단다. 시청자들의 정서를 고려하고 올바른 국어사용에 대한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란다.

 

  제목을 바꾼 진짜 이유는 한글 관련 단체들의 압력 때문이다. 그들은 ‘차칸남자’가 우리말을 파괴한다며 항의 공문을 방송사에 전달했다. 국립국어원 역시 개선을 요구하는 권고문을 보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방송사의 올바른(?) 제목 바꾸기가 맘에 들지 않는다. 참으로 융통성 없고, 경직된 사회를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만 하다.

 

  나는 한 때 한글전용 학생운동을 한 전력이 있을 만큼 우리글을 아끼고 사랑한다. 하지만 한글을 사랑하는 것과 예술적 표현의 자유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표기법에 맞는 글자를 고집하면서까지 작가의 창작 의도를 방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차칸남자’와 ‘착한남자’ 사이는 ‘무릎팍도사’와 ‘무르팍도사’ 만큼의 거리가 있다. 더 비유하자면, 피카소더러 불분명하고 이해할 수 없는 추상화 대신 분명하고 이해 가능한 구상화를 그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맞춤법을 따지며 시비를 걸기 전에,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는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인다. 살짝 비트는 표기법조차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다지 건강한 사회는 못 된다. 바른 국어사용만이 국민 정서 함양을 담보하는 건 아니다. 경직된 사고를 벗어나 소통이 되는 사회를 꾸리는 게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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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감독 김기덕 - 김기덕 바이오그래피 1996-2009
마르타 쿠를랏 지음, 조영학 옮김 / 가쎄(GASSE)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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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온도

 

  불편해야 진실에 가깝다. 따뜻하고, 다감하고, 온화한 거리엔 희망이 넘쳐나긴 한다. 하지만 그 희망은 대책 없기 일쑤고 진실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좋은 생각 가득한 월간 잡지를 읽는다고 세상이 좋은 것으로 넘실대는 게 아닌 것과 같다.

 

  삶의 실체는 언제나 도덕적, 미적 판단을 유보한 뒷골목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낭만성이나 연민의 눈길을 앞세우지 않은 채 그곳에 발 디뎌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쉽게 생의 뒷골목을 들여다 보려하지 않는다. 구차하고 불편부당한 현실에 현미경을 들이대면서까지 제 영혼을 구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파랑새를 찾는 틸틸과 미틸처럼 희망이란 아득한 꿈을 찾아 나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게 더 나은 삶이라고 은연중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피에타」에서도 여전히 세상은 희망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고 말한다. 너저분하고 적나라한 화면은 트라우마 깊은 감독 내면의 분신처럼 다가왔다. 관람자는 불쾌하고 불편한 화면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평범한 눈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삶의 넌더리를 날 것으로 훑어대는 불친절한 카메라의 눈. 어쩌자고 감독은 저 비루하고 음산하고 가학적인 구원의 세계로 우리를 잡아끄는가.

 

 

  불편하다고 외면할 수는 없다. 지난한 세월, 감독에게 뱄을 상처와 아픔의 철학이 세상을 향해 공명 되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나온 그가 말했다. ‘음침하다’는 세간의 그의 영화 선입견에 대해 ‘영화는 제가 바라본 세계이고, 제가 본 세상의 온도를 표현한 것’이라고.

 

 

  세상은 살아내는 자마다 다 다르고, 그 삶을 바라보는 온도 또한 각자 다르다. 평범하고 미온적인 온도보다 싸늘하고 냉정한 온도가 더 진실에 가깝다는 건 언제나 김기덕이 말하는 방식이다. 불편해도 내가 김기덕 영화를 신뢰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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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암각화의 제의성
이하우 지음 / 학연문화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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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기록의 동물이다. 욕망하고 기원하는 것을 마음에만 새기면 누가 알아 줄 것인가? 맘과 맘으로만 신을 만날 수 있었다면, 인류사를 통틀어 그토록 많은 신을 위한 제단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간절한 약자로서 신 앞에 드러나기를 바라는 존재였다.

 

 

  신에게 보낼 그 소망의 말들을 새기는 게 선사시대 사람들의 최대 고충 중 하나였다. 문자 없던 그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 흔적 남기기가 바위에 뭔가를 새기거나 그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영원에 호소하고 싶었던 그들은 그렇게 암각화를 우리 곁에 남겼다.

 

 

  볕 좋은 날이었다. 지인들의 안내로 포항 칠포리 곤륜산 기슭 암각화를 보러 갔다. 바위에 새긴 마음의 소리를 대하는 첫 느낌은 ‘너무 먼 당신’이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고래, 거북, 사람 등 실체가 확실한 그림만 상상하다가 추상적이고 모호하기만 한 그림을 만나는 순간 당황했다. 잠시나마 이 바위그림이 청동기시대 이후 까마득한 시간 여행 중이라는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봤을 땐 의자 같아 보였으나 가까이서 보니 방패나 실패 또는 칼자루 모양 같았다. 무슨 그림인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기야 조상들이 내던져준 추상의 의미 앞에서 구상적 실체를 의문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그림의 숨은 의미 찾기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지모신일 거라고 해석하는 학자들의 말씀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그 옛날부터 사람은 생각하고, 기록하기를 욕망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 좋고 산 밝은 그 터전에, 하염없이 소원하고 기원하는 실체적 진실로서 우리 조상이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숙연해지는 것이다.

 

 

 

**칠포리 바위 그림을 처음 발견한 이하우 선생이 쓴 책이 <한국 암각화의 제의성>이다.

**예정에 없던 번개팅이라 사진은 찍지 못했다. 자료 팸플릿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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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워칭 - 보디 랭귀지 연구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동광 옮김 / 까치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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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썰미가 없어서 곤란할 때가 많다. 한 마디로 오해 받기 쉽고, 그 때문에 자책하기 일쑤다. 우선 주부로서 보자면, 냉장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겨자 소스나 케첩이 든 칸을 찾아내지 못하고, 캔맥주가 남아 있는지 없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매번 나는 헤매고 금세 다른 식구들은 잘도 알아낸다. 딱 보면 아는데 왜 모르는지 이해가 안 간단다.

 

 

  사람 보는 눈썰미라고 예외일 리 없다.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않는 한, 몇 번 본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수십 번 봤더라도 환경이 달라지면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주 본 동네 병원 의사도 가운을 벗으면 알아보지 못한다.

 

 

  오늘도 그랬다. 독서클럽 한 회원이 오래 전에도 나와 같이 독서 모임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상대방이 더 당황했다. 내 눈썰미 없음이 또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잘 기억해주는 것도 인간관계에 대한 예의가 될 수 있을 터인데, 같은 상황에서 한쪽은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다른 쪽은 눈치조차 못 챈다면 그보다 민망하고 미안할 데가 있을까.

 

 

  이러니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긴장부터 하게 된다. 다음에 저 사람을 못 알아보면 어쩌지 하는 강박 관념이 생기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면서, 왜 기억하면 좋은 것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 걸까? 지우고 싶은 것은 지우고 떠올리고 싶은 것만 남기는 마법의 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본다. 사람이 완벽하면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질질 흘리고, 풀썩 주저앉고, 쩔쩔 매봐야 진정 산다는 것의 숭고함을 알게 된다. 완벽한 일상만 꾸린다면 세상이 제 위주로 움직인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명민한 눈치 때문에 피곤해지는 것보다 차라리 어설픈 눈썰미가 가져다주는 자책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위안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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