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잡문집
강유원 지음 / 여름언덕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소설가인 나의 知己 P언니는 습작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필사"라고 했다.

신인작가상을 탄 소설가들의 인터뷰를 봐도 습작 시절의 "필사" 얘기를 많이 한다. 선배 작가들의 좋은 소설을 여러 번 베껴 썼다고.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에서 이승우도
"베껴 쓰기"를 "느리게 읽기"의 한 방법으로서 추천하고 있다.

작년 9월 암스테르담 출장 때,
시간을 쪼개 "Van Gogh Museum"에 갔었다.

Van Gogh의 초기 습작들을 보면서 난 큰 충격을 받았다.
왜냐?
밀레의 작품들을 "필사"한 것이 몇 점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밀레의 드로잉을 베낀 다음에(똑 같이!)
페인트 연습을 한 작품이 몇 개나 있었다.

난 그 앞에서 오랫 동안 입을 딱 벌리고 서 있었다.
"아.....고흐 같은 천재도 필사를 했구나!"

고흐의 밀레 필사는 내게 정말.....큰 충격이자 깨달음(?)이었다.
뭐든 혼자 뚝딱 만들어지는 건 없구나!
천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구나!

왜 자꾸 필사 얘기를 하냐면,
좋은 문장이나 그림을 베끼고 또 반복하는 건
공부에 있어서도 기본이기 때문이다.


쩍 팔리지만 내 사례를 들자면....
고등학교 때 성문종합영어 20번 봤다.
그 덕에 "토종"임에도 불구하고
넘쳐나는 교포와 유학파들 사이에서 잘(?) 버티고 있다.

강유원도 이 책 <몸으로 하는 공부>에서
"베끼기"를 "공부하는 방법"으로 강추하고 있다.

"철학 공부도 마찬가지다. 철학 공부에서 베끼는 것은 철학사를 여러 차례 읽는 것이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이문출판사)가 너무 두껍다면 얇은 것이라도 골라서 열심히 되풀이해서 읽는 것이다.
베끼기를 할 때는 베낄 책을 잘 골라야 한다. 일테면 서양 근대철학사를 공부하려면 최소한 코플스턴의 철학사를 잡아야 한다....
(중략)......
하여튼 철학사를 50번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죽 읽으면 철학의 기본적인 문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왔는지를 알게 되어 맥락이 잡히는데 이 쯤에서 그걸 가지고 뭘 해보겠다고 나서면 안된다. 아직 베끼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철학의 제문제>(벽호)처럼 주제별로 다룬 책을 읽는 것이다. 이 책은 철학의 근본 문제들을 정확한 문맥 속에서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주제에 관련된 철학자들의 원전을 부분적으로 정확하게 번역하여 덧붙여 주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책도 50번은 되풀이해서 읽어야 한다. 철학사를 읽든 철학의 제문제를 읽든 주의할 점은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서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어야 한다. .....(중략)......
베끼기는 초심자 시절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해야 한다.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사람들은 더 이상 철학사를 읽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공부에 있어서 균형을 무너뜨리게 된다. ...(중략).....
베끼기는 독학이 가져다주는 폐해도 막아준다. 독학하는 사람은 어떤 분야의 책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기 마련이다. 역사적인 연관이나 주제의 관련성에 유의하지 않고 읽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그 결과 아는 게 많아져서 장광설을 쏟아놓는다. 게다가 그들은 최근의 것에 대한 관심도 지대해서 항상 시대에 맞춰 살아가는 듯하다. 그러나 그 분야에 대해 체계적으로 글을 써보라고 하면, 장광설은 사라지고 말을 더듬게 되며, 그 점을 지적하면 원래 제대로 된 공부는 체계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우격다짐을 하곤 한다. .............(중략).....
베끼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책을 제대로 읽는 법을 체득하는 이점이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면 대개는 참고문헌 목록을 작성하고 이 책 저 책 들춰보면서 노트에 정리한 뒤 끝내는 것이 가장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그 어떤 책도 기억에 남지 않고 문장 몇 개만 막연한 추억처럼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차라리 가장 표준적인 책을 한 권 정해서 모든 말과 문장을 따져가며 끝까지 읽는 게 낫다."
(p181~184)

이 책을 읽으며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를 50번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쭉~ 읽어보겠다고 결심했다. 불끈!

아쉬운 건 <철학의 제문제>도 읽어보려고 결심했는데,
절판되었다는 거다.
인터넷 헌책방을 몇군데 검색해 봤는데도 없고,
동네 도서관에도 없다.
이런....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에 찬물을 끼얹다니!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는 사실 그닥 기대하지 않고 읽은 책인데,
일단 강유원의 시니컬한 글쓰기 스타일 자체가 재미있었고,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 유용한 tip을 많이 얻었다.

새해를 맞아 공부 한번 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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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1-14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베껴쓰기...이것 좀 피해가는 법 없나요? 몇번을 시도했다 실패한게 베껴쓰기죠. 베껴쓰기는 고사하고 거듭해서 읽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근데 수선님 대단하셔요. 성문종합영어 20번!^^

kleinsusun 2007-01-14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님, 정석하고 담을 쌓았기 때문에 성문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ㅋㅋ

사마천 2007-01-15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말이 있잖아요. 우리는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탄 난장이다. 루소가 그랬던가...
삼빡한 박사논문 하나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남의 주장들을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99.99%는 밖에서 온 것이죠. 필사와 유사한.
그리고 고흐는 그림을 워낙 늦게 시작해서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좀 독창적이고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했죠.

이게다예요 2007-01-1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문 종합 20번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그때부터 열정적이셨네요.^^
많은 작가들이 베껴쓰길 하더라고요. 욕심이 나서 흉내내 봤는데 전 힘들어서 못하겠던데요. 그래서 독자는 독자고, 작가는 작가인가 봐요. ^^

외로운 발바닥 2007-01-15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성문종합 20번...대단하시네요. 철학공부에 대한 막연한 아쉬움과 동경 같은 것이 있었는데 수선님 글 읽고 다시 한번 의욕을 가져봅니다. 이글도 감히 쑥 퍼갑니다...;;;

moonnight 2007-01-1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문종합 20번! (난 몇 번 봤더라. 곰곰;) 저도 수선님의 정열을 본받고 싶어요! ^^

2007-01-16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18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18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20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23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29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석현 2010-08-0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보고 갑니다. 중요한 정보를 얻었어요.
 
공부의 즐거움 - 우리시대 공부달인 30인이 공부의 즐거움을 말하다
김열규.김태길.윤구병.장영희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1월 2일 Frankfurt로 날아 가는 대한항공에서
캔 맥주를 홀짝이며 이 책을 읽었다.
그러니까...올해 읽은 첫번째 책이다.

이 책을 읽은 특별한 이유?
그냥 너무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리 만족을 위해서.

"공부달인"이라는 말이 억지스럽긴 하지만
(난 "달인"이란 말이 참...싫다.
무슨 초밥의 달인, 수제 짜장의 달인....이런 것도 모잘라서 이제 "공부의 달인"까지!
공부는 죽어라...하고 죽을 때 까지 하는거지 "달인"이 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 않을까?)
이 책은 나름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다.

무엇 보다...공부를 하고 싶은 욕망, 열망, 의지가 후~끈 달아 오른다.

※ 장정일 또는 랜덤하우스 편집자가 이 책을 읽었다면
요란하고 법석스러운 제목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는
단촐한 <장정일의 독서일기 7>로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까?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을 떠올리기엔 좀 심하지만
한 평생 공부를 해 온 사람은 조용하다. 겸허하다.

이 책에서 정진홍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 물론 학교에서 일생을 보냈습니다. 이런저런 글도 썼고 책도 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학교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니 공부하는 일 빼놓고는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뿐 달리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드러낼 아무것도 없습니다." (p245)

평생을 한 분야에 매달려 공부를 해 온 사람들.
돈 안되는 전공,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분야에서
묵묵히 한 길을 판 사람들. 아름답다!

천병희 교수의 학창시절 얘기는
뭘 하건 "현실적 유용성"을 먼저 생각하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 2학년 겨울방학 때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학교 도서관에만 틀어박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그리스어로 읽기 시작했다. 첫날에는 하루 종일 50줄밖에 읽지 못했다.....(중략)....내게는 자나깨나 호메로스뿐이었다. 호메로스 읽기는 방학 때는 물론이고 학기 중에도 강의 시간과 시험 때를 빼고는 계속되었다. 마침내 3학년 겨울방학 때 <일리아스>를 끝내고, 이번에는 <오디세이아>를 읽기 시작했다. 어느새 호메로스적 표현에 익숙해져 <오디세이아>를 읽기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p222)

"이슬람 교류사"를 전공으로 선택한 "동기"를 너.무.도 솔직하게 고백한
이희수 교수의 얘기도 재미있었다.

"나는 뒤처진 인생을 따라잡기 위해 취직과 고시, 그리고 유학의 꿈을 오가며 혼란스런 앞날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데 넘을 수 없는 걸림돌이 나의 숨통을 조여왔다. 취직을 하든 고시공부를 하든 동기생들 뒤꽁무뉘만 평생 쫓아다녀야 하는 이류인생이 무엇보다 싫었다. '그래, 생각을 바꾸자.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다른 길을 가야해. 다른 모든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분야를 건드려보는 거야.'" (p127)

아....이 솔직한 고백!
다른 사람 같았으면 맹목적,미국적으로 이슬람을 보는 부정적 시각에
공부를 해야 겠다!는 의무, 결연한 의지를 느꼈다고 했을 꺼다.

30편의 에세이 중 고미숙 편은 너무도 비장해서
읽기가 다소...불편했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아....이 결연하다 못해 비장한 제목이란!

"공부는 원초적 본능이자 삶의 모든 과정"이라고
고미숙은 힘주어 말한다.

오호통재라!
고미숙 표현대로라면
이 세상에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식욕과 성욕뿐이지 알고 살아가는
무지몽매하고 불쌍한 인간들이 너무도 많구나!
(왜 이상하게...삐딱선을 타고 싶을까? ㅠㅠ)

나는 회사를 때려치고 대학원을 간다거나 유학을 갈 생각이 전혀 없다.

싸우디 왕자랑 결혼을 하더라도 자기 밥벌이는 자기야 해야 한다!는게 나의 가치관(?)이고,
난 공부를 해서 밥벌이를 할 자신이 없다.

또한 나라는 인간의 역량으로 봤을 때,
전업으로 공부를 해서 인문학에 기여하는 학자가 될 가능성도 전혀 없다.
지금처럼 힘들더라도 투덜투덜하면서 외화벌이를 하는 게
조국의 경제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일 터!

하지만....공부를 하고 싶다.
"현실적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전혀 도움이 안될지라도,
골프 연습장에 나가는 게 훨씬 더 커리어에 도움이 될지라도,
꾸준히, 죽을 때 까지, 공부를 하고 싶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좋은 책들을 "사서" 읽어서 학자들의 경제적 안녕에 기여하는 일.

<공부의 즐거움>을 읽은 나의 쌩뚱 맞은 독후감.
올해도 좋은 책들을 많이 "사서"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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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13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kleinsusun 2007-01-13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방가방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07-01-13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선님 한동안 글이 안올라오길래 흐음 또 출장을 가신건가,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멋진 독후감으로 컴백하셨네요.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여쁜 수선님 :)

(님의 미모에 반해버렸다지요. 후훗)

kleinsusun 2007-01-13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새해 복 많이 받고 계시죠?^^
저의 미모에....반하셨다구요? 음하하. 다락방님이 남자가 아닌 게...넘...아쉬워요!!!푸하하.

마태우스 2007-01-13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사우디 왕자랑 결혼하시면 너무 바쁘셔서 밥벌이할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미의 사절로 여러 곳을 다녀야 하는데... 글구 고미숙님은 늘 비장하죠^^ 앗 제가 오늘 리뷰 쓴 한국인의자서전 저자가 김열규님인데...

kleinsusun 2007-01-1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오랜만이예요. 새해 복 많이 받고 계시죠?^^
근데...사우디 왕자랑 결혼하면요, 얼굴 가리고 다녀야 하니까...미의 사절은 못하지 않을까요? ㅋㅋ

마늘빵 2007-01-13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왔어요. 방가방가.

kleinsusun 2007-01-13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방가방가. 새해 복 많이 받고 있죠?^^

글샘 2007-01-14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방가방가... (뭐, 이래얄 분위기 같아서리... -,.-;;;v)
수유 공간 강의 같은 거 재미있겠어요. 공부를 참 좋아하시는 거 같습니다.
이현주 님께서 쓰신, 노자이야기, 장자산책, 대학중용읽기, 예수에게 도를 묻다... 이런 거 한번 읽어보심 어떨까 하는데요... 공부 함 해 보시죠. 새해엔...

kleinsusun 2007-01-14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번에 수유 공간 첨 가봤는데요, 공부에 열의를 가진, 눈이 반짝거리는 사람들이 무척 많더라구요. 또...생각 보다 엄청 커서 놀랐어요.^^

이현주 목사님 말씀하시는거죠? 필명 이아무개.^^ 아빠한테 몇권 선물을 하긴 했는데, 막상 저는 한권도 안 읽어봤네요.ㅋㅋ 글샘 선생님의 추천인데 꼬~옥 읽어보도록 할께요. 감사합니다.^^

moonnight 2007-01-15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리만족하고 싶어요. 아직 보관함에 들어있는데 꼭 읽어봐야겠네요. ^^; 저도 현실에서 필요유무를 떠나 죽을때까지 공부하고 배우고 싶어요. (이러면서도 별 노력은 하지 않지만-_-;) 수선님처럼 훌륭한 작가분들의 경제적 안녕에 쬐끔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

2007-01-15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7-01-1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 책은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 지 고민이네요. 이 책 읽으면 독서나 공부에 대한 의욕만 더 왕성해져서 의욕을 따라가지 못하는 몸에 대한 원망이 늘어날 것 같아서요...-0-;;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강석경 외 지음 / 열화당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2002년 3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 71명의 글을 엮은 책이다.

가나다 순으로 '강석경'부터 '황석영'까지 71명의 작가들이 쓴 4페이지씩의 산문이 촘촘히 담겨있다.
71명의 작가들이 똑같은 질문에 대해서 똑같은 분량으로 쓴 글이라... 쓰면서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71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한 신문사의 원고청탁에 응하다니...
한국일보 참 대단하다!
또는 작가들 참 말 잘 듣는다! 라는 생각도 든다.

71명의 작가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글은
안정효 선생의 <글을 써야 하는 이유>라는 글이다.

문학작품이란 쓰는 사람에게나 읽는 사람에게나 다 같이 하나의 배설작용이다. 영화 또는 연극을 보거나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프로이트의 설명을 따르면 작중인물과 동일시를 통해 가슴에 맺힌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 버리는 작용이 되겠다.
하지만 배설작용은 일차적으로 쓰는 사람의 몫이요 특혜라고 믿는다. 글쓰기는 어차피 일종의 고백행위요, 궁극적으로는 자아 표현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쓰지 않으면 벌써 자살했을 것"이라고 했던 솔 벨로의 말처럼 작가의 응어리를 풀어 주는 기능이 먼저이고, 읽는 사람은 공감을 통해 모방 배설을 하는 셈이다.
생리적으로 인간은 배설을 못 하면 죽게 되고 정신적으로도 그런 현상은 비슷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끊임없이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을 정리하고, 정화하고, 그래서 삶을 계속하게 된다.


"응어리를 풀어 주는 기능".

끄적끄적 허접한 잡문을 쓰는 주제에
"응어리를 풀어 주는 기능"이라는 문학의 기능에 공감한다고 하면
참으로 건방진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접한 잡문이건 일기건 뭐건 글을 쓸때면(보고서, 품의서 빼고!)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것 까진 아니지만 후련해 지는 그런 느낌,
카타르시스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정화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기를 쓰는, 써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느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쓰린 속을 부여 잡고 후회한다.
왜 그렇게 마셨을까?
그런 쓸데 없는 말은 왜 했을까?
술김에 털어 놓은 치기 어린 고백들이 옮겨지지는 않을까?

글쓰기는 이런 역효과 없이 자기고백을 할 수 있는,
마음 속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가장 가깝고도 고마운 친구였다.
빡세고 드라이한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상당 부분 글쓰기를 통한 "배설"에 의존한 것 같다.

서른세 살에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전경린의
<작가에 대한 일곱 가지 기대에 관한 추억>이라는 글도 마음에 와 닿았다.

그때 작가에 대한 나의 기대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첫째, 몇 시간이든, 몇 날이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나의 방, 나의 집에 틀어박힐 명분을 가질 수 있다.
.......
넷째, 현실을 벗어나 버린 듯한,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듯한 사색의 시간과 책 읽을
시간에 대한 직업적인 권리를 확보하고 싶다.
.......
여섯째, 모든 성가신 의무를 글쓰기로 대신하고, 그로써 삶에 대한 면죄부를 얻을 수 있다.


제목 그대로 작가가 되기 전에 작가에 대해 품었던 "기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가끔 상상하는 작가에 대한 기대와 너무 비슷해 읽으면서 혼자 껄껄 웃었다.
사람들은 항상 남의 직업을 훔쳐볼 때, 좋은 점만 쏙쏙 골라 본다.

배수아 또한 <엄격에 사로잡힌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것이 혼자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조직에 속해 있을 이유가 전혀 없으며 단어 그대로,
원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상대해야 할 일도 없다."
는 말로 작가가 된 이유를 말했다.

나 또한 "혼자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강한 로망을 갖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은 없다.

71편의 글을 다 읽지는 않았다.
잠들기 전 한편씩 읽어보려 한다.
왜 그들은 글쟁이가 되었는지
한명 한명의 사연들을 읽으면서 당분간 잠들어야 겠다.

사족 1) 이 책의 편집은 정말....엉망이다.
표지 디자인도 정말....성의 없다.

별도로 기획한 책도 아니고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묶어서 펴 내면서 어쩜 이렇게 성의 없을 수가 있을까?

열화당의 "무임승차"를 의심하게 된다.

사족 2) 심상대의 <문학이 나를 탐낸다>는 읽다가 짜증나서 그만 뒀다.
4페이지 밖에 안되는 분량이라 왠만하면 참고 읽으려 했으나...

진짜...양아(양아치)스럽다. 어찌 그리 겉멋 들고 껄렁껄렁한지...
만나본 적은 없지만 징~하게 끈적거리는 남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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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7-17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로서 배설합니다. 머리 속의 생각, 현재의 감정, 뱉어내고픈 응어리, 발산하고픈 욕망 등등. 제 글은 뭐 문학작품은 아니지만, 일단 글이란건 그런거 같아요.

마태우스 2006-07-18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경린이 서른셋에 작가되기를 결심했군요. 굉장히 늦네요 생각보다.

kleinsusun 2006-07-18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아....님도 글로서 배설을 하시는군요. 맞아요...쓰다보면 풀어지는...그런게 있어요. 전 오늘 출근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한 난폭한 버스가 튀긴 물벼락을 맞아 아침부터 우울했답니다.ㅠㅠ 뭔가...구차한 느낌 같은게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up 시켜야 겠죠?^^ 아프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마태님, 네...마태님은 20대에 첫 책을 내셨죠?^^ 오늘 좀 우울해서 내일 하루 휴가를 냈어요. 마태님의 방학은 어떠세요?

잉크냄새 2006-07-18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글을 쓴다는 표현은 너무 거창하고 서재에 몇자 남기는 것은 다시 못올 시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뒤돌아볼 한때로 남기 바라는 마음으로요.

kleinsusun 2006-07-1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못올 시절.... 맞아요, 한 순간 한 순간이 다시 못올 순간이죠.
아...잉크님의 말을 들으니 우울했던 오늘 아침도 다시 못올 순간이란 생각이 드네요.^^
 
雜多: [잡다] - 비평가 땡빵씨, 문화의 숲을 거닐다
김동식 지음 / 이마고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어제, 오랜만에 광화문 교보에 갔다.
비가 많이 왔는데도 교보는 북적북적했다. 소란스럽기도 하고.

고객용 도서검색 PC로 김동식의 <잡다>를 찾았다.
이 책의 위치는 "12 번 정치/법률/사회 419-2 1번째 대중문화".

이 책은 문화비평서들 사이에 얌전히 꽂혀 있었다.
음....문학비평가가 쓴 문화비평이라....
웬지 '드라이'하거나 '아카데믹'할 것 같은 '필'이 왔다.
( 아... 이 영어 남용이란! 근데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 보니 상당히 '소프트' 했다.
쉽게 읽어지고, 가끔 미소도 지어졌다.

내가 교보 담당자라면 이 책을 문화비평서로 분류하지 않고,
비소설 에세이에 포함시켰을 지도 모르겠다.
왜냐? 이 책은 문화비평서라기 보다는 김동식이라는 개인의 '체험'을 쓴 에세이에 가깝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다양한 문화현상 - 애니매이션,추리소설,프로 레슬링, 인터넷 소설, 일본 음악, 드라마/영화/개그 콘서트, 월드컵 응원전 등 - 들은 모두 저자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다. 즉, 저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전문용어로 무장한 비평가의 입장이 아니라, 독자로서, 청취자로서, 참가자로서 자신의 체험을 평이한 문체로 썼다.
관찰이 아닌 체험!

" 일상과 매개된 문화에 대한 생각, 그리고 여기에 모은 글들을 쓰면서 가졌던 생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문화가 우리의 몸을 관통하며 무의식을 구성하는 운동성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는 취향의 무의식이 발현되는 독특한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문화를 향유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며, 문화에 대한 글쓰기는 무의식을 드러내는 일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 머리말 中 -

그렇다.
문화에 대한 글쓰기는,
수많은 개인들이 쓰는 소소한 독자서평, 영화평들은
모두 무의식을 드러낸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김동식 같은 '비평가'의 입장에서는
'이론'에 의거한 비평을 쓰는 게 훨씬 쉬운 일이 아니었을까?
비평가의 입장에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 실린 50꼭지의 글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글은
<메타 개그의 새 장을 연 '우격다짐'>

"메타 개그"가 뭔가 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본문을 읽으면서 껄껄 웃었다.
이정수의 개그 보다 김동식의 해설이 더 웃겼다.

이정수의 '우격다짐'은 이런 식이었다.

- 내 개그는 17 대 1이지. (관객 : 왜요~?)
17명 중에 1명만 웃어.

- 내 개그는 양파야. (관객 : 왜요~?) 까도 까도 똑같지. 웃기지? 웃기지?



저자가 이정수의 개그를 '메타개그'(metagag)라고 칭한 이유는,
소설 쓰는 과정을 작품 속에 담아낸 '메타소설'(metafiction)처럼
이정수가 스스로의 개그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사실 '메타픽션'이란 용어 자체가 문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말이다.
문학평론가인 저자에겐 '메타픽션'이 일상용어(?)라 그런지
한줄로 쓱 설명하고 넘아가는데, 이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메타픽션'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도대체 '메타개그'가 뭔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메타픽션'의 예를 들자면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김영하의 <아랑은 왜>.

'메타픽션'에서는 소설가가 스토리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작품 속으로 불쑥 뛰어 들어와
'결말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등장 인물을 죽일까 살릴까?'
고민을 하거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하고,
결말을 여러 개로 내기도 한다.

"자신이 펼치고 있는 개그에 대한 반성적인 자의식을 다시 개그 속에 편입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정수의 개그를 메타개그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거 같다."(p170)

음....똑 같은 개그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대단한걸!!!

"단순한 개그가 아니라 수사학 연구의 텍스트라는 생각까지도 가지게 된다. 언젠가는 이정수 개그를 대상으로 수사학을 강의하고 말리라 굳게 다짐하며, 일요일 저녁마다 텔레비전 앞에서 수사법의 달인인 이정수를 기다린다."(p171)

흥미롭다.
하지만....개그맨 이정수가 기획 단계에서 '메타개그'나
'반성적인 자의식' 반영을 '의도'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그렇게 생각이 많으면 못 웃긴다.)

'수사법의 달인' 이라는 칭찬을 들으면,
어쩌면 이정수는 "네? 저...그게 무슨 말이죠?" 할지도 모른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일상과 맞물려 있는 우리사회의 문화현상에 대한 김동식의 에세이 50꼭지는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같이 술 마시며 얘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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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12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목차를 자세히 살펴보니 잡다한 것이 제 구미에 맞군요. 껄껄~
그나저나 이정수는 요즘 왜 안 나올까요?^^

kleinsusun 2006-06-13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전 지금 울산에 있어요. 일주일간 교육이 있어서요.
지금...교육 시간에 딴 짓하고 있답니다.ㅎㅎㅎ
 
안녕 뉴욕 - 영화와 함께한 뉴욕에서의 408일
백은하 글.사진 / 씨네21북스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영화잡지 <씨네21>.
<씨네21> 기자 채용 경쟁률을 보고 기절할 뻔 한 적이 있다.
글쎄 4명 뽑는데 1,600명이 몰렸단다.
웬만한 대기업이랑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빠진, 영화 없으면 못 사는 사람
- 해변의 모래알처럼 넘쳐 난다.
영화 보고 글 쓰기를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
- 공기처럼 널려 있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 영화로 유학 가는 사람
- MBA 가듯 많이 가서 놀랐다.

평론가로, 프리랜서 평론가로 먹고 살기는 정말 힘들다.
원래 집이 부자거나, 배우자의 직업이 빵빵하거나, 영화과 겸임교수가 아니라면 더더욱.
기자도 만만치 않다.대한민국에 영화잡지 몇 개 있지도 않다.
이러니 <씨네21> 기자 채용 경쟁률이 그렇게 천문학적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은하는 그런 대단한 <씨네21>의 기자였다.
2001년 9월 11일, 그 잘난 뉴욕에서 무역센터가 어이 없이 무너졌을 때,
백은하는 생각했다. '나도 내일 저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 있겠구나.'
그래서 들고 있던 적금을 깨고, 생명보험을 중도 해지하고 뉴욕으로 떠난다.
용감한 또는 무모한 그녀. 뉴욕에서 408일 동안 네일 가게에서 일해 생계를 유지하며, 하루하루 영화에 미쳐 산다. 영화 속 배경들을 하나하나 답사하듯이 찾아가 보고, 온갖 멀티플렉스,허름한 극장,영화제들을 찾아다니며 영화를 본다.굶은 듯이.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질투'를 느꼈다.
30대 싱글 여자가 직장을 때려 치고 1년이나 떠나 있을 수 있다니!
그 배짱과 용기가 마구마구 부러웠다.

그런데...지난주 <씨네21>을 보니 백은하는 다시 <씨네21> 기자가 되어 있었다.
마치 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것처럼.
' 음....믿는 구석이 있었구만. 그럼 그렇지.' 하며 자기합리화(?)를 했다.

내가 적금을 깨고, 종신보험을 해약하고
" 내 꿈에 다가가고 싶어요.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며
뉴욕이건 카트만두건 내 꿈의 도시 방콕이건 어디로건 떠난다면
다들 "미쳤다!"고 하겠지.

무엇보다도 회사가 1년 후 나를 다시 받아 줄리 만무하다.미션 임파서블!
그럼 30대 여자가, 가진 국가자격증이라고는 운전면허(그것도 2종) 뿐인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느 회사에 면접을 갔다고 치자.
면접관 : 1년간 공백이 있네요. OO에서 뭘 하신거죠?
수선 : 네...네일숍에서 일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음하하하, 웃음 밖에 안 나온다.

김형경처럼 아파트를 팔아 세계 여행을 떠난다. - 대단하다.존경!
백은하처럼 회사를 때려 치고 적금을 깨고 뉴욕으로 떠난다. - 멋져, 너무 멋져!

김형경은 세계여행을 다녀와서 그걸 소재로 글을 썼고,
※ <사람풍경>을 보라, 다 여행 얘기다.
백은하는 뉴욕 통신원을 거쳐 더더욱 인기있는 기자가 되었다. 이렇게 책도 한 권 나왔다.

하지만 나는....30대 중반의 백조가 될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불쑥 떠날 용기가 없다.
떠난다 해도 '한국 가면 뭐하지?'하는 불안에 밤잠을 못 이룰 것 같다.

그러니...용기 있는 그녀들의 책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할 수 밖에.
영화를 소재로 풀어 나간 백은하의 발랄한 에세이는 촉촉하고 상큼했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크게 웃었고,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덧붙이며)
<안녕 뉴욕>은 내가 사랑하는 인터넷 친구가 선물해준 책이다.

" 백은하의 <안녕 뉴욕> 읽다가 수선님 생각났어요. 수선님 글 향기처럼 도시적이고 깊은 통찰도 있고."

아....정말 감동했다.
내가 백은하처럼 잘 쓰는 것도 아니고
깊은 통찰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책을 읽으면서 나를 떠올려 줬다는 것만으로 가슴 뻐근한 감동.

한번도 만난 적 없지만 항상 힘이 되는 친구,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해준 그녀에게 감사를!

사족)
백은하. 다 좋은데 문장에 영어 정말 많이 섞어 쓴다.
외래어 차원이 아니라 그냥 영어 단어다.

예를 들어,

- '에비뉴 Q'는 온갖 이민자들의 터전이자 루저들의 집결지이다.
- 그런 주인공에게 'PURPOSE', 즉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찾으라는 명령이 부과된다.
- 게다가 이 케이스는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나도 참 영어 많이 섞어 쓴다.
난 글이 업은 아니쟎아...라고 합리화해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반성해야 겠다.
남의 글에서 보니 툭툭 불거져 보이는데, 내가 쓸 때는 몰랐다.

왜 항상 남의 실수, 잘못은 잘 보이면서,
내 실수, 내 잘못은 흐리멍텅하게 보이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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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6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05-16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ㅆㅆ 수선님은 어디 한 1년 갔다 와도 또 다른데 취업할 수 있을거에요.물론 탈세하는 국민기업 s 그룹은 아니겠지만....개인적 능력은 있잖아요.단 대기업 제공하는 안락함(?)-그 정도 월급에 그 정도 사회적 인정에 그정도 심리적 안정감-을 포기하기 어려우니까 그런거겠지요.... 가진게 많은면 움직이기 더 힘든게 인지상정....
제가 아는 프리랜스 친구(가볍겠지요..)는 한 1-2년 일하고 회사에서 그만 두라면 모아놓은 돈으로 여행다녀요.지난번에는 인도,네팔에서 한 6개월 살더니...이번에도 또 짤렸는데...몇 달 후에 유라시아 열차를 타고 대륙횡단을 한다네요....그 친구도 걱정은 많아요..그래서.."멍하니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가는 것보단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마늘빵 2006-05-1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도 어디 가서 실컷 놀이체험담 써서 내면 성공할거에요. 근데 우리말 놔두고 쓸데 없이 영어 섞어 글쓰는건 별로 보기 좋진 않아요. 음. 위에 저 예들은 좀 심했네요. 펄포우즈를 걍 영어로 저렇게 써버리다니.

nada 2006-05-16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외래어에 관한 한 고종석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므로 할 말은 없지만..(저도 영어 쓸데없이 좋아하기 땀시..하하^^;;) 근데 PURPOSE를 대문자에 따옴표까지 한 걸 보면 영화 제목을 암시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저런 제목의 영화가 있거든요. 암턴 능력 있는 사람은 1년 놀다 와도 돌아갈 자리가 있군요. (이 부분에서 어쩐지 실망감이 드는 건 왜인지..) 심히 부러울 따름입니다.

icaru 2006-05-1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그렇게 사는 여자들 보면서..대리만족은 충분히 하겠는데...
뭔가 말이죠... 석연치가 않은 것은... 뭘까요~
나는 타인의 즐거운 욕망과 삶에 대한 설렘을 이유 없이 질투하며 살고 있었설까요~

하이드 2006-05-16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왜 적금 깨면 많이 손해인데, 그냥 다 채우고 계획해서 떠나지. 하는생각이 먼저 들죠? ^^; '그만두면 뭐해' 하는 생각에 지겨워죽겠는데 다니던 날이 있었어요. 친구 하나는 '그만두면 앞으로 뭐할까 생각할꺼야.' 하더군요. 그때 이후로, 여기서 저기로 호핑하는거 말구, 그만두면 앞으로 뭐할지 생각해야지. 하고 있어요.

그리고 외국어 섞어쓰는건, 그 언어만이 지닌 뉘앙스가 있잖아요. 너무 개념없이 섞어쓰는건 우스워보이겠지만, 그 뉘앙스를 나타낼 수 있는 말이라면, 영어건, 불어건, 독어건, 일어건 능력되는대로 마구 섞어 쓸꺼야요. 물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과 소통할때요. (혹은, 상대방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을때, 혹은 나 자신과 소통할때)

kleinsusun 2006-05-16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질문이 있어요. 그 친구는 남자인가요? 그 친구는 어떤 일을 하나요?물론...싱글이니까 그렇게 자유롭겠죠? ㅎㅎ
왜 물어 보냐구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여자들의 재취업은 정말 580배는 더 어렵거든요.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여자가 나이 많으면 쥐약이예요. 그게....현실이거든요.쩝. 그 친구 멋있네요.유라시아 열차타고 대륙횡단이라.....바람처럼 사네요.캬~아!

kleinsusun 2006-05-16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제가 1년간 태국 여행을 하고 <캅쿤카 타일랜드> 이런 걸 써도 팔릴까요? 예전에 그런 상상을 하며, 기획안까지 쓴 적이 있답니다.ㅎㅎㅎㅎㅎ

꽃양배추님, 그죠, 부럽죠? ㅎㅎㅎ
저도 사실...영어를 많이 쓰는 편이라....우리말로 똑같은 느낌을 끄집어 낼 수 없는 그런 단어들이 많쟎아요. 그래도....좀 절제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kleinsusun 2006-05-16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u님,맞아요.빙고!!!
대리만족은 할 수 있는데 뭔가 석연치가 않아요. 사실...누가 집 팔아서 여행 간다고 하면 "촌스럽다"는 생각도 한 적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좀 "naive"한거 거든요.ㅎㅎㅎ (어머! 저 영어 썼네요.백은하 영어 많이 쓴다고 뭐라 하고...ㅎㅎㅎ)

kleinsusun 2006-05-1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오랜만이예요.
맞아요, 적금 깨는 것도 아깝지만, 생명보험 중도 해지하는 건 정말 쥐약이죠.원금은 커녕 반도 못 받쟎아.ㅎㅎㅎ
여기저기로 호핑하는 건(저도 해봐서 알지만) 정말 소모적인 일이예요. 뭐할까 생각하는 하이드님, 멋져요!^^

다락방 2006-05-1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요. 수선님의 글이랑, 여러분들이 그 글에 달아 놓은 꼬릿말들을 보면 말예요. :)

드팀전 2006-05-1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 친구는 (사실 친구는 아니지만)...여자입니다.올해로 30살이 되었다고 징징거렸으니...나이는 30이네요.돈을 약간 더 모아서 간다고 하더군요.

kleinsusun 2006-05-1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재미있어요? 호홋....기분 좋아라~^^

드팀전님, 아하! 여자예요? 오....멋진 girl! 그 집 부모님도 걱정이 많으시겠군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moonnight 2006-05-2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수선님 리뷰를 놓치다닛! ^^; 저도 이 책 무척 재밌게 봤어요. 부럽기도 했지만.. 나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란 생각이 마이마이 들더군요. ;;

2006-05-31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06-2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수선님 서재에서 놀라와서 본 리뷰. 그런데 상상하는 대목에서 (이런 케케묵은 표현 쓰긴 싫지만 제가 어디 갑니까..) 무릎을 탁, 치며, 그래, 그거지,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엔트로피가 꼭 무너지라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전 그런 순간들이 더 많은 거 같죠? 음..그런데 루저 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옮기기도 참 힘든 것 같아요. 실패자, 라는 묵직한 느낌도 아니고, 가벼운 느낌이건만 `인생 최대의 밥버러지' 정도의 절망적인 늬앙스. 굳이 BECK의 I'M ` A LOOSER, SO WHY DON'T YOU KILL ME? 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 이전에 차라리 제리 맥과이어 에서 제리의 여자친구가 `난 네가 루저라고 하더라도 널 사랑할거야'라고 말할 때 탐 크루즈가 눈썹을(맨날 작은 일에 눈썹 치켜세우고, 큰 일엔 머리를 쥐어뜯는 게 아쉽게도 한계입니다만..참고로 전 이러고도 탐 크루즈 팬입니다 흐흐..) 확 치켜뜨며 `모시기?'라고 말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더 분명해져요.
가볍지만 제가 딱 느낀 바를 써주셨습니다. 지금 막 책을 다 읽고 님의 리뷰를 본 것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