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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 세상을 충전하는 젊은 에너지, 딴따라 박진영의 맨처음 고백
박진영 지음 / 김영사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미안해>(박진영 지음/김영사/1판 2쇄 1999.12.25)를 읽다.

난 박진영을 좋아한다.
특히 박진영의 노래 <너의 뒤에서>를 참 좋아한다.
99년에 이 책이 나왔을 때, 읽어보려 했는데 잊고 지나갔다.

두달 전,
박진영이 미국 음반 시장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 시장 진출하려고 1년에 300개가 넘는 음반회사를 찾아가서 퇴짜를 맞고 때론 그냥 쫓겨나기도 했다는 기사를 읽고,
지나쳤던 박진영의 에세이집이 다시 생각났다.

인터넷 서점에서 사려했더니 "절판".
아쉬웠다.
집요한 수선, 헌책방에서 <미안해>를 샀다.

이 책을 강화도 여행가는 길에 읽었으니까,
벌써 한달 전이다.
책을 읽으면서 박진영의 솔직함과 페미니스트에 상당히 근접한 태도에 호감을 느꼈다.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이 책을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신학을 공부하는 친구와 얘기하면서 박진영의 에세이 한 꼭지가 생각났다.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건, 박진영이 자신의 종교관을 피력한 "진영교"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다.

박진영의 고백을 직접 옮겨 보자.

"나는 원래는 기독교인이었다(지금도 아버지는 장로님이시고,어머니는 권사님이시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찾았던 교회에서 나는 열심히 기도했고,찬송했으며,성경공부도 빠지지 않았다.어렸던 나에게 성경은 당연히 신화가 아니라 역사였고,하나님은 신이 아니라 실존인물이었다.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워 보였다.그만큼 기독교는 나의 몸 속에 깊숙이 배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본 장면 하나가 나를 이단아로 만들었다.
큰 불상 앞에서 한 부부와 어린 자녀들이 너무나 진지하게 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그 순간 나는 '내가 저 집에서 태어났다면'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랬다면 나는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었을 것이 아닌가?하지만 그렇지 않고 우리 집에서 태어났기에 나는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이다.인생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잡는 종교 문제가 우연에 의해 결정되다니."
(p127)

그 때 부터 찾아온 회의와 고민 끝에,
박진영은 어렸을 때 부터 믿어온 기독교를 버렸다.

<미안해>를 읽을 땐,
사실 종교를 버리게 된 박진영의 고민 보다,
박진영의 이런 대담하기까지한 솔직함에 놀랐다.
이런 얘기를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평생 배 고프지 않게 욕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이런 박진영의 말에 공감을 느낀다.

나는 할머니가 향을 피우고 염주를 돌리며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며,
"부처님 오신 날"에는 항상 부모님 손에 이끌려 절에 갔다.

일요일 마다 충실하게 주일성경학교에 가는 친구들 처럼
종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내 정서의 기반에는 향냄새가, 목탁 소리가, 온화한 관세음보살의 미소가 흐르고 있다.

얼마 전,
친구 하나가 종교 문제로 결혼을 무기한 연기했다.
남자친구의 부모님께서 개종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에게는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결혼을 할 것인가, 종교를 버릴 것인가....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참 뭐라고 해 줄 말도 없고 안타깝기만 했다.

이 친구 말고도,
종교 문제로 결혼이 깨지는 커플들을 수도 없이 봤다.
결혼을 하고서도 갈등을 겪는 부부들도 봤다.
정말 안타깝다.
양쪽 집안의 대립, 종교 문제, 정치적인 이유 등
원하지 않으면서도 헤어지는 사랑하는 사람들....

며칠 전 함께 술을 마신 신학을 공부하는 친구.
그 맑은 눈,
주위 사람을 배려하는 세심함과 따뜻함,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태도,
깨어있는 영성.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친구다.

그런데....
그 친구를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성경도 한번 제대로 안 읽어본 내가,
신학을 공부하는 그 친구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나는 가벼운 농담처럼 툭하고 질문을 던졌다.

" 만약 니가 우리집에서 태어났더라도 넌 신학을 공부했을까?"

그 친구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솔직하다.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존중하는 겸손함이 있다면,

어떤 종교를 가졌건
두 사람의 영혼의 교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종교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들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종교, 출신 지역, 직업에 대한 배타적인 선입견을 갖고
사람을 미리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얘기를
솔직하게 쓴 박진영의 용기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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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4-11-0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박진영, 멋진 리뷰.

프레이야 2004-11-20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결혼하고 기독교를 만나게 되었지만 푹 빠지질 못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도 할아버지처럼 종교를 강요하지도 못해요. 아이들이 자유의사로 선택할 수 있을때까지 기다릴거에요. 시아버님은 그런 제가 못마땅하시겠죠.

kleinsusun 2004-11-2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처럼 아이들을 존중해 주는 민주적인 엄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멋진 엄마! 짝짝짝!
 
편집자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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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신간 소개에서 <편집자 분투기> 기사를 읽었을 때,
꼭 한번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 모습.
나의 정체성을 한 줄로 쓰라고 하면 어떻게 써야 할까?

" 책을 사랑하는,글쓰기의 미련을 못 떨치는 회사원."

뭐 대략 이 정도 되지 않을까?

난 사람들이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그대로 밟아왔다.
아니....지금은 삐걱거리고 있다.
조건 좋은 남자랑 27~28세에 결혼하는걸 빠뜨려 버렸으니까...
어느새 30대가 되었고,
부모님의 걱정은 나날이 커지지만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도 없는 상태다.

대학 4학년때, 인턴사원으로 대기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줄곧 해외영업 부서에서 일했다.
줄곧 해외영업 부서에서 "외화벌이"를 해왔지만, 한 회사에서 일한 건 아니다.

입사 후 2년,
처참하도록 빡센 조직생활에 한계를 느끼며
유학을 핑계로 회사를 나왔다.

몇달 놀다가 다른 대기업의 해외영업 부서에 들어가서 다시 빡센 조직 생활을 했다. 3년간.

3년 후, 이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자 하며 겁 없이 또 회사를 그만뒀다.
몇달을 신나게 놀다가,
글도 써본다고 설치다가,
또다시 다른 대기업의 해외영업팀에서 "외화벌이 일꾼"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불경기에 참 운이 좋은 경우고,
어떻게 보면 아직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서 떠도는
불쌍한 경우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일에 자신의 모든 시간과 사랑을 바치며
두리번 거리지 않고 그 하나의 길을 열정적으로 걸어온 사람들을 존경한다.

<편집자 분투기>의 정은숙도 내 존경의 대상이다.
책을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20년간 편집자를 해 온,
한 베테랑 편집자의 자기 고백이다.

<편집자 분투기>의 타겟 독자는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편집자,출판 기획자인 것 같다.
정은숙은 자신의 20년을 뒤돌아 보며,
자신의 시행착오를 고백하고
좋은 편집자가 되기 위한 충고와 고언을 후배들에게 하고 있다.

실제로 자신이 기획/편집한 책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에 더욱 재미있다.

성공한 경우로 <예술가로 산다는 것>,<벼랑에서 살다>를 말하고,
실패한 경우로 <우리 집은 어디인가>를 예로 들었다.

난 <편집자 분투기>를 읽고,
출판사 마음산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벼랑에서 살다> 두권의 책을 샀다.
(<편집자 분투기>를 읽다 보면, 이 두권의 책을 빨리 읽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또한 아주 훌륭한 마케팅 기법이다.)

정은숙은 출판사 "마음산책"의 대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자 분투기>는 "바다출판사"에서 나왔다.

왜일까?
자기 원고를 자기 출판사에서 편집하고 펴내고 홍보하기가 쑥스러워서?
아님 바다 출판사의 유능한 편집자가
"출판계의 후배들은 좋은 편집자가 되기 위한 지침서, 메뉴얼이 꼭 필요합니다. 이 일은 선배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출판계의 발전을 위한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막 쫓아 다녔을까?
궁금하다.

<편집자 분투기>를 읽으며 이런 상상을 했다.
정은숙 같은 베테랑 편집자가 나를 막 쫓아 다니며
책을 써 달라고 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벼랑에서 살다>를 펴내기 위해 시인 조은을 쫓아 다녔듯이 말이다.

이런 행복한 상상을 하며 덧붙이는 고백.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하는 <출판기획> 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정은숙도 강사 중 한명이었던 것 같은데,
결석을 해서 그 강의는 듣지 못했다.(출장을 워낙 자주 다녀서 결석한 날이 더 많았다.)

왜 <출판기획> 강좌를 들었냐구?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나의 열망 때문이었다.
작가가 될 자신은 없었고,
출판사를 하면 맨날 책을 만지고 책을 보며 살 수 있을 꺼라는 소박한 생각 때문이었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현직 출판사의 직원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번듯한 대기업을 다니는 내가 왜 출판을 하고 싶어하는지 무척 궁금해 했다.
알고 보니 그들의 연봉은 내 반도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출판 환경이 워낙 열악하며,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못주는 출판사,
기획이고 뭐고 고민할 틈도 없이 일단 어음을 막기위해
새로운 책을 덜커덕 내는 출판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동료들은 내게 영업사원이 왜 골프는 안 배우고, 맨날 엉뚱한 것만 배우고 다니냐고 한마디씩 하지만, 출판 강좌에서 난 참으로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이런 우리나라의 출판계에서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그 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열정 하나로 20년간 편집자로 살아왔다는 것.

그 자체로 <편집자 분투기>의 저자 정은숙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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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24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만간 읽을 책입니다.
조은 시인의 벼랑에서 살다는 정말 마음에 쏙 든 책이었어요.
사진이랑 글이랑 아주 잘 어울려 심금을 울렸죠.
 
마님되는 법
진산 지음 / 부키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마님 되는 법>(진산 지음/부키)을 읽다.

지난 주, 회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메일에 깔려 헉헉 거렸고,
잠시도 쉬지 않고 울려대는 전화에 경기를 일으켰으며,
05년 경영계획과 예산을 짜는데 기력을 탕진했다.
계속되는 야근 속에 짜증이 늘어만 갔다.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올라오다가 서점에 들렸다.
웃긴 책을 하나 사서 실컷 웃으며 퇴근길에 스트레스를 날려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두리번 두리번 화끈하게 웃긴 책이 없을까 둘러 보았다.
진산의 <마님 되는 법>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알라딘에서 "웃겨서 기절할 것 같은 책" 리스트에서 이 책 제목을 본 생각이 났다. 얇은 책이라 부담도 없었고, 몇장 넘겨보니 문장도 엽기적이고 신선한 것이 아주 발랄했다.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선택(사실 바빠서 더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사무실로 올라갔다.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는 기분은,
가짜 외출증을 만들어서 떡볶이 먹고 아이스크림 먹고 실컷 놀다가 야간자율학습을 하러 다시 학교에 들어가는 고딩의 애처로운 심정과 같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야자가 없단다.쫌만 늦게 태어날껄...쩝)

일을 꾸역꾸역 마치고(정확히 말하면 다음날로 미루고)
퇴근하면서 이책을 읽었다.
이 책.....진짜 웃긴다.
피곤해서 택시를 탔는데, 내가 하도 낄낄거려서 아저씨가 백밀러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마님 되는 법>은 말 그대로 어떻게하면 결혼생활에서 삼월이가 되지 않고 마님이 되어,
떵떵 거리며 행복하게 사느냐 하는 법을 설파하고 있다.

"마님"이라는 호칭 때문에 거북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고,
남편을 "삼돌이"라고 부르는 호칭 때문에 어찌 하늘 같은 남편을 "삼돌이"라 칭하냐며 노발대발하는 어르신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번 통쾌하게 웃기려다 보니 표현들이 가벼운건 사실이지만,
<마님 되는 법>은 웃기기만 할 뿐 속빈 강정 같은 내용 없는 책이 절대 아니다. 낄낄거리다가도 놓치기 아까운 충고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남편감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110% 동의한다.

첫째,각진 남자
누구에게나 잘 해 주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잘 못해 주는 사람이다

- 정말 맞는 말이다.불고의 진리다.
난 아무 여자한테나 잘해주고, 툭하면 오해 살 일을 하면서 자기가 뭐 잘못했는지 조차 모르고, 맺고 끊고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를 심심하다고 만나는 그런 흐리멍텅한 남자가 젤로 싫다.
진산의 첫번째 기준, 정말 110% 아니 120% 동의한다.박수!!!

둘째,거짓말 안하는 남자
이건 정말 만고의 진리다.
툭하면 거짓말 하는 남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잘났어도,아무리 집안이 뜨리뜨리해도 다 필요없다. 부부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동지적 결합이다. 툭하면 거짓말을 일삼는 남자는 만날 가치가 없다.

거짓말을 일삼는 남자.
재고할 필요가 없다. 짤라라, 단칼에!

셋째, 자존심 있는 남자.
자신의 일에 자존심과 책임감을 느끼는 남자

- 자존심 있는 사람이 상대방의 자존심도 존중할 줄 안다.
인간이 자존심을 상실할 때, 그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자존심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긴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려고 노력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사귀는 여자한테 돈 빌려 달라고 하는 넘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다 짤라라!
그런 넘들은 둘 중 하나다.
궁지에 몰려서 자존심을 이미 다 팔아버린 넘이거나,
아니면 여자를 이용하는 파렴치한이거나...

진산이 제시한 세가지 기준을 너무 열렬하게 지지하는거 아니냐구?
천만에 만만에 말씀.
각진 남자, 정직한 남자, 자존심 있는 남자.
이 세가지는 내가 항상 생각해 오던, 좀더 거창하게 말하면 나의 가치관과도 일치한다.

진산은 무협작가다.
( 난 무협지를 읽어본 적이 정말 한번도 없다.그래서 인기작가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연재했던 내용들을 모아서 펴낸 책이라는데, 문장이 경쾌하고 가볍다 보니 내용도 같이 가볍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낄낄거리면서 챙기는 교훈이 쏠쏠한 책이다.

진산의 남편도 무협작가다.
마님(진산)은 삼돌이(남편)의 섬김을 받으며 재미있게 산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마님을 부러워 하며,
마님이 되는 법을 전수해 달라고 졸랐단다.
그래서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산은 "마님"이 되기에 최적의 조건에서 살고 있다.
정말로 모든 여자들이 부러워 하는 "완벽한 조건"이다.


마님은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경기도 한적한 곳에 집을 짓고,
일층에는 부모님이, 이층에는 마님과 삼돌이가 산다.
물론 마님의 아들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넘치는 사랑으로 돌보아 주신다. 정말 더이상 완벽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이런 마님의 완벽한 생활환경을 읽으면서 강유원을 생각했다.

강유원이 자신의 서평집 <책>에서 조혜정을 신랄하게 비난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화>에 실린 조혜정의 글들을 읽고 강유원은 조혜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혜정은 시집살이를 하지도 않고 "일하는 아줌마"까지 있는 교수이기에, 주부의 주체적인 삶 운운하는 주장은 세상의 대다수 직장 가진 여성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서평전문가 강유원의 글을 직접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고작 '옆에서 지켜보니 안됐군.나는 이렇게 하고 있는데,한번 해보면 어떨까.물론 형편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하는 식의 입바른 이야기일 뿐이다.만에 하나 조혜정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여 그걸 실천에 옮기려는 사람은 살림을 맡아 하고 아이를 돌보아 줄 '아주머니' 부터 구해야 할 것이다. 강유원의 <책> p73 인용

만약 강유원이 <마님 되는 법>을 읽고 서평을 썼다면,
조혜정에 대한 비판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진산은 자신의 책을 읽는 불특정 다수의 수많은 여자들에게 호소한다. 마님이 되라고!
하지만 친정부모와 함께 살고있는, 아이의 양육을 친정 부모가 책임져 주는 그의 아주 특수한 조건을 고려할 때, 진산의 주장은 공허할 뿐이다.
대한민국에 친정 부모랑 같이 살고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것도 딸,사위에게 일절 간섭하지 않으며,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않고 손주를 키우는 의무에만 충실한 쿨한 친정 부모와 말이다.
그러니 진산이 전하는 "마님 되는 법"은 "난 이렇게 살아.부럽지?"하는 자랑일 뿐이다.


그런데....이런 "패러디"는 웃기긴 하지만 쓸데 없는 상상인 것 같다.
두꺼운 인문사회과학 서적 읽고 "논거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할 강유원이 이런 가벼운 에세이류를 읽지는 않을 테니까...

진산의 <마님 되는 법>은 표면상의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가르침"을 선사하는 책이다.
어떤 기준으로 평생을 함께할 동지를 선택하고,
또 어떻게 그 동지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지...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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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
김지룡 지음 / 명진출판사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김지룡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김지룡이 쓴 다른 책들도 다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할 만큼, 재미있었고 또 유익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김지룡에 대한 아주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 선입견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덕에 일본 성문화 어쩌고 저쩌고 썰풀며 "문화평론가"라는 이상한 타이틀까지 만들어 대접을 받는다는 거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시시껄껄한 야한 얘기로 끝났을 얘기를,
서울대에 게이오 석박사까지 한 덕에 "문화평론"으로 둔갑하는거 아닌가 하는 불신. 그렇다. 나는 김지룡에게, 또 학벌을 마케팅으로 내세우는 세태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었다.

학벌을 마케팅 포인트로 사용하는 경우는 흔하다.
금나나가 과기고 출신에 의대생인 덕분에 좀 빠지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미스코리아 진이 된거나, 한성주가 승마특기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정치외교학를 다니는 "재원(?)"이러고 떠들며 미스코리아 진이 된거나,서경석이 서울대 재학생이라는 이유로 개그 콘서트에서 하이라이트를 받은거나 다 같은 맥락이다.
김태희 같은 미모의 탈렌트가 서울대까지 다니면 뜰 수 밖에 없다.

나도 대학 2학년 때,
개그를 해보지 않겠냐는 KBS PD의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과후배랑 허접한 대학생 장기자랑 프로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가 한 개그를 눈여겨 본 PD가 한번 제대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우리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가 PD의 제안을 받은것은 우리가 특별히 웃겨서도 아니었고,
끼가 넘쳐 흘러서도 아니었고, 아이디어가 신선해서도 아니었다.

PD가 말했다.
개그맨의 고학력 시대가 온다고...
학교덕에 뜨기가 쉽겠다고....

우린 그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지만,
그 다음해에 서경석이 뜨기 시작하면서 PD의 말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김지룡이 학벌 팔아먹고 사는 떠벌이라고 지레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성문화 얘기로 떴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안 읽었으면 억울했을 정도로, 나의 선입견은 쓸데없고도 근거없는 거였다.

책을 다 읽고난 지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김지룡은 "문화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명함에 넣을만 하다고...

김지룡의 에세이는 단순한 신변잡기적 고백이 아니라
다른 사회와 확연히 구별되는 일본 성문화를 거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또한 솔직하게(아내가 상당히 기분 나쁠 정도로) 자신의 체험을 얘기하므로서 읽는 이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경영학 박사까지 수료한 김지룡은 저자의 입장에서 책이 팔릴 수 있는 미끼를 충분히 제공했다.

김지룡 보고 지저분하다, 이런 사생활을 고백하는게 부끄럽지도 않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다. 또는 이것도 책이냐? 등등....
김지룡도 충분히 교양있고 어렵게 책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김지룡의 책을 읽어보면 일본성문화에 대한 그의 지식이 결코 녹녹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김지룡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방대한 자료들을 조사했다는 것을, 결코 자신의 체험에만 의존하여 근거없는 썰을 푸는게 아니라는걸 알 수 있다.

누가 일본에서 겪은 자신의 무용담을 말하며
나 온갖 업소에 다 가봤고, 원조교제도 해봤다 하며 잘난 척을 한다면 그건 시시껄껄한 얘기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 왜 이런 차별화된 성문화가 형성되었을까를 고찰하고
그것을 비판한다면 그건 "문화비평"이다.
책을 솔직하고 가볍게 썼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별것도 아닌 얘기를 참고문헌 잔뜩 붙여서 어렵게 쓰는 것 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이 책을 읽으면서 "섹스산업"과 "풍속산업"의 차이를 처음으로 알았다.
"섹스산업"은 여성의 섹스를 팔고,"풍속산업"은 남자의 "사정"을 보조하는 산업이란다. 즉,일본은 "삽입에 이르는 과정"을 파는 풍속산업이 "삽입"을 파는 "섹스산업"보다 훨씬 호황을 누리는 유일한 국가라는 것이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본의 풍속산업은 더욱더 발전했는데,
혁신적인 변화라면 "사정조차 원하지 않는 남자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풍속업소를 찾아오는 남자의 10퍼센트는 사정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피곤에 지친 이들이 원하는건 단지 "대화"라고 한다.

그들은 위로를 원한다.따뜻한 말 한마디를 원한다.그렇다고 '남자라는 알랑한 자존심'이 있는데 부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죽어도 싫다.그래서 풍속업소의 여자를 찾는다.그러면서 풍속산업은 힐링(치유) 산업,극단적으로 말하면 정신과 병동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애인 플레이"다.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
정말로 애인이 된 기분으로 대화를 나누며 일상적인 행동을 한다."자기 오늘 회사에서 뭐했어?","나 보고 싶었어?","자기 나 얼마만큼 사랑해?" 등등.애인들이 나누는 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다......... 그렇지만 대화 이외의 서비스는 일절 제공하지 않는다.남자들은 15만원 이상을 주고 60분 플레이를 신청하고는 서비스 걸과 잡담을 나누다 돌아간다.
(p176)

이 부분을 읽다가 울뻔했다.
얼마나 외로우면 그럴까?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면....
오죽 얘기할 사람이 없으면.....
왜 그렇게 강한 척 센 척해야 할까?
왜 가족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서비스 걸한테 비싼 돈 주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걸까?

이들이 대화를 하려고 서비스 걸들을 찾는 심리는,
카운셀러를 찾은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부장제의 폐단을 절실하게 느꼈다.
가부장제의 피해자는 여자, 남자 모두이다.
가족 앞에서 힘들다고 말도 못하는 남자들,
남자는 "강해야 한다", "울면 병신이다" 라고 어렸을 때 부터 교육 받은 불쌍한 남자들....
가부장제의 교육이 이들을 서비스걸들에게 보낸다.
모르고 만만한 여자에게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고나서 집에서는 위엄을 갖추고 부인이 한 밥을 먹는다.
" 애들은 자나?" 목소리를 깔고 말하면서....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가부장을 하고 있는 남자도 결국 가부장제의 희생자인 것이다.

곧 김지룡의 <나는 일본문화가 재미있다>를 읽을 예정이다.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김지룡, 상당히 쿨한 남자다.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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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2004-10-0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문화 평론가로 알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를 다시금 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눈물의 편지
이진경 / 넥서스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눈물의 편지>(글쓴이 고인을 기리는 사람들,그린이 이진경,넥서스 출판)을 읽다.

이 책을 읽고 정말 펑펑 울었다.
새 책이 눈물 범벅이 되었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훌쩍이는 바람에 사람들이 쳐다 보기도 했다.
(마스카라 번지고 반짝이가 눈물을 타고 흐르고 난리났다.)

이 책 정말 정말 슬프다.
읽으면서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또한 울면서 마음이 순화되는 것을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사람들의 간절한 그리움을 활자로 느끼며...

용미리와 벽제에 있는 '추모의 집'(납골시설)에 비치된 '고인에게 쓰는 편지'라는 비망록에 유족들이 남긴 편지들을 발췌해서 한권의 책이 되었다. 정말 제목 그대로 <눈물의 편지>다.
글들이 하나하나 너무도 진실하고 절절하다.울지 않고 읽을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유족들의 한결 같은 말,
"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게 끝끝내 후회된다"는 말이 떨림으로 다가온다. 너무 가까이 있기에, 공기 처럼 그냥 항상 곁에 있을 거 같기에, 사랑한다고 말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던, 못했던 유족들의 절절한 후회와 안타까움.

이 책을 읽으면서 절절히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한순간 한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그 시간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흐느끼며 읽었던 편지를 하나 소개한다.
먼저간 아내를 기억하며, 남편이 쓴 편지 중 일부다.

정미야!영원히 널 사랑할거야.생전에 내가 너에게 못해준 게 너무 많아.지금도 좋은 것 다 해주고 싶어.좋은 곳 너에게 보여주고 싶고.
정말 미안해.하지만 이건 기억해줘.내 죽어도 널 만너러 갈거고 영원히 널 사랑할거야.영원히.
미안해.나 혼자 이렇게 살아 있어서...


정말 이 페이지는 쭈글쭈글 하다. 너무 눈물 방울을 흘려 버려서...

손녀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를 하나 더 소개한다.이 편지 읽으면서 지하철에서 실연당한 여자 처럼 엉엉 울었다.

우리 할머닌 글을 못 읽어요.그러니 글 읽을 수 있는 다른 어르신이 대신 좀 읽어주세요.
그리고 할머니를 많이 사랑하고 있는 군혜라고 해주세요.
우리 할머니 이 글 읽고 울면 울지 말라고도 해주세요.
사랑해,할머니.보고 싶어.그리고 너무 많이 감사해.또 올께요.할머니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답장 받을 수 없는 편지를 쓰면서,
글씨 못읽는 할머니에게 대신 읽어 달라고 부탁하는,
할머니가 편지를 읽고 울까봐 걱정하는 어린 손녀의 맘.

이 글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서
정말이지 엉엉 울어 버렸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이 책을 읽으니,
내 가족들이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존재인지
얼마나 내게 절대적인 가치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바쁜 일상중에 잊고 살아가는,
너무도 큰 진실을 직면하게 된다.

우리 모두 '유한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한번이라도 더 안고 싶고,
한번이라도 더 손내밀고 싶고,
한번이라도 더 웃고 싶고,
한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내가 잘못했을 땐 그 때 그 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매일 말하고 싶다.
고맙다고....

순간의 소중함을 절절히 전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사소한 일로 가족들과 신경전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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