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 이브토로 돌아가다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사람의집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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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납하며 도서관 배경으로.



그가 무엇을 *어떻게* 쓰고 싶어했는지를 알고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진다. 실제로 어떻게를 구현했다는 걸 읽을 수 있게되면 그냥 읽을 수가 없어진다. 나는 이해한다. 어떤 이에게는 쓴다는 것 자체가 내부의 이민이며 계급의 탈주라는 걸. 


“(43) 무엇을 쓰고 싶은지 아는 것, 좋아요, 그 문제의 경우 제가 처음은 아니죠. 하지만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가는 엄청난 질문입니다. (중략) 제가, 이를테면 내부로부터의 이민자인 제가,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저는 한쪽에 자리한 문학적 언어, 배우고 사랑했던 그 언어, 그리고 다른 한쪽에 자리한 출신 언어, 집에서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 피지배자들의 언어, 그 뒤 제가 부끄럽게 여기지만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을 언어, 이 두 언어 사이의 긴장 속에, 심지어 찢김 속에 잡혀 있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이거죠. 글을 쓰면서 어떻게 나의 출신 세계를 배반하지 않을 것 인가?


사회 계층이 어느 정도는 굳어진 프랑스의 계급 탈주자들은 어떤 수치감을 명확히 보는 것 같다. 한국은? 자수성가한 자들일수록 수치를 모르고 자신의 출신 세계를 혐오한다. 올라오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려고 다음 성과에 몰두한다. 


도통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 힘든 자아들은 기꺼이 성공 주문에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고, 너를 그곳에서 꺼내는 건 오로지 너야. 성공을 팔아 성공하는 마케팅에서 성공한 이들은 세계와 글쓰기에 대해 성공을 자격삼아 말을 하고 책을 쓰고 감히 잘 사는 팁을 알려주겠노라. 좋아요. 구독.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다니.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으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깊은 자기 이해에 가닿지 못한채로 세계를 통찰한다? 어불성설이다.


이런 시절에 삶의 균열을 경험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균열을 봉합하지 않고 드러내는 용기있는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는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감히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다 믿는 오만하고 강박적인 세계관에 대한 복수이며 투쟁이다. (라고 내 멋대로 의미를 부여해본다.)


탈출하고 싶다. 탈주하고 싶다. 달아나고 싶다.

이것이 나 임을 인정할 수 없다. 현실에 그대로 만족되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내가 가진 것은 (여느 비평가들의 말대로) 신자유주의적 욕망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어딘가에서는 붙잡혀지고 흐느껴진다. 

성공했어도, 성공하지 않았어도, 돌아갈 곳이 없어도, 가혹하게 버리고 떠나 왔다 하더라도. 


나는 조금 단호하다. 자신을 산다는 것은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단절과 비약은 있으되, 우연과 무의미의 카오스가 정말로 진실이라도. 그것을 엮어쓰는 것은 나. 의미의 실에 매듭을 짓는 것은 나. 엉켜있는 대로의 미감을 똑똑히 보는 나. 는 그것들을 그것들대로 인정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벼락같은 화해를 안다. 내가 안다.


그 인정이란 투항이 아니라 투쟁의 시작이라는 것도.


그리하여,

나는 끝내 지지 않았으니,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준비. 아니 에르노. 


<책 117페이지 질의 응답>


질문 언제부터 출신 환경, 부모의 환경과 화해했다고 느꼈는지 알고 싶습니다.

A. 에르노 그저 글을 쓰면서였어요.

질문 글을 쓰면서라면, 초기부터요?

A. 에르노 1970년대 초반에 집필을 마치고 나서 <빈 옷장>이라고 제목을 붙이게 될 책을 기획하면서부터 그 랬습니다. 몇몇독자들은 그 책을 읽으면서 제 부모가 헐뜯기고 부정적 시각으로 비춰진다고 분개했어요. 그들은 소설의 주인공 드니즈 르쉬르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떠올릴 뿐만 아니라 해석하는 대로의 모습으로 그 시기들이 다뤄진다는 것을 보지 못했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취학하기 전 몇 년간의 어린 시절은 그저 천국으로 그려지죠. 사탕도, 커피까지도 있는 식료품점이라는 천국으로. 그러다가 학교, 책을 접하면서 드니즈는 그 세계가 <훌륭하지않다>는 것을 차츰차츰 깨닫고, 학교와 지배하는 자들의 시선이 <훌륭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에 자신의 부모가 부합하지 않는다고 부모를 원망합니다. 이 모든 것을 성찰해 보지 않고서, 우리 가 비난할 수 있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위계에 따라 분리된 사회와 그 사회를 작동시키고 서민 계층 출신의 아이에게서 부모에 대한 수치를 촉발하는 가치와 코드라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그런 모든 이야기를 쓸 수 없음은 명백합니다. 그 첫 작품의 기원에는 -훗날 제가 <자리>에서 말했듯이- 엄청난 죄책감과 부모에 대한 <별개의 사랑>이 존재합니다. 아마도 어조가 격렬해, 심층에서는 그럭저럭 나와 부모의 분리 과정의 인지 및 규명이 어우러져 일어나는데, 이 측면이 가려졌던 모양입니다.


아니 에르노의 첫 소설 <빈 옷장>을 다 읽고 이 회고록을 읽었는 데, 질문자는 놀라지만 나는 <빈 옷장>이 화해 직후 혹은 화해하는 중에 쓴 글임을 알아보았다. (독후감 나중에 쓸 예정… 대체 언제…?ㅋㅋ)


자신의 수치를 돌보지 못한 채 다음의 성공에 대한 약속만이 가능성으로 제시되는 닫혀버린 세계에서. 공부하지 않고 쓰는 글은 나쁘다. 안 쓰는 게 낫다. (그것들을 결단코 이길 수 없다는 점에서. 결국에는 닫힌 나르시시즘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도.)


2023-09-11

무엇을 쓰고 싶은지 아는 것, 좋아요, 그 문제의 경우 제가 처음은 아니죠. 하지만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가는 엄청난 질문입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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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14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의 계급 의식에 요즘 빙의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니 에르노에 더 진정으로 빙의하려면 섹스도 그녀처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밥은 먹고 다니냐 쟝?
손목이 더 얇아졌네.

공쟝쟝 2023-10-14 14:13   좋아요 2 | URL
하... 나의 섹슈얼리티의 억압 역사를 쓰기 위해서 섹슈얼리티 해방시켜야 합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진정한 해방은 추구한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지 않을 자유. 언제든지 그만둘 자유입니다. 진정한 욕망은 언제나 그만 둘 수 있는 힘 입니다.
!!!!!!!!!!!!!!!!!!!!!!!
아니 에르노여!!

- 이제 잘 챙겨먹어서 알라딘 돌아왔어요!!

단발머리 2023-10-14 14:49   좋아요 0 | URL
밥은 먹었는데....
손목은 내가 더 얇아요. 잠자냥님? 듣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10-14 15:05   좋아요 3 | URL
단발머리님 잘 챙겨먹고 손목도 굵어지고 건강하기로 해요!

단발머리 2023-10-14 14:58   좋아요 2 | URL
역시 내 생각 해주는 건 건수하님 뿐이에요! 아니구나……
다들…. 이구나 😳😳😳😳😳

건수하 2023-10-14 15:05   좋아요 0 | URL
다시 보실까요? ㅋㅋ

단발머리 2023-10-14 15:08   좋아요 1 | URL
역시 내 생각 해주는 건 건수하님 뿐이에요!! 😘😍🥰

공쟝쟝 2023-10-14 15:10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손목이 굵어지시기를 저도 바랍니다! 수하님 마음과 함께 🤪

책읽는나무 2023-10-15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책보다 쟝님 손목부터 봤어요.
손이 왜 저번보다 못해진 걸까? 하면서..ㅋㅋ
진짜 밥 잘 먹고 다니는 거 맞죠?^^
책은 일단 담아갑니다.

공쟝쟝 2023-10-16 20:05   좋아요 1 | URL
정말 잘 먹고 다닙니다!!! ㅋㅋㅋㅋ 걱정마세요 나무님 찡긋 😫😫😝
 

친구는 나에게 매번 왤케 착하냐고 하지만 나는 착하지 않다. 착한 척을 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내 안의 신랄한 공격성을 나는 알고, 어쩌면 나만 알지. 집-일-도서관(혹은 카페)이 일상이고 전부인 내가, 유일한 낙이었던 습관성 알콜마저 책 읽으려고 줄여버린 내가, 겉으로 보기에는 도덕주의자(?)처럼 느껴질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난 딱히 바른 생활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규율이나 규칙을 지키고 예의를 차리는 쪽에 가깝다. 음. 🤔 확실히 자신과의 약속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체면 차리는 사람이다, 난. 그러기 싫은 데도 이미 내면화 되어있음. 덧붙여 나를 주장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느끼는 소심함도 있다. (소심하지만 발작 버튼 눌리면 어려웠던 것까지 포함해서 더 심각하게 쏟아냄 -> 그런 모습의 내가 싫어서 점점 더 주장이 어려워짐 -> 차라리 글을 씀) 


이런 내가 사회의 정상성/규범을 문제시하며 한계경험(동성애, 마약, bdsm…?)이라는 것을 좇는 푸코를 좋아하는 까닭은 뭘까 나 자신도 궁금했다. 특별히 어떤 금지의 위반을 통해 쾌락을 느끼는 사람이어서는 아니다. 조금 고상하게 말하면 지적 모험에서 용감해지고자 하는 것이 내(완고한 불복종의?) 성향이라면 성향일 텐데… 


나의 그런 부분(착하지 않아서 공부하는)을 알려준 문장들을 읽었기에, 잊지 않으려고 끄적끄적 해본다. 



<푸꼬의 수난 2>를 읽다가 이런 단어를 발견했다. 푸코 아니고 푸코가 사랑한 니체에 대한 설명들인데.


“(23) 철학자만이 갖는 고유한 잔인성” 

“(24) 니체의 앎의 의지에는 ‘살인과 같은 것, 인간의 행복과 모순되는 무언가’가 있다.”

(내게 있는 잔인함은 내가 공부하게 하는 동력이다.)


니체는 문명화된 사회에서 인간 본연의 동물성(잔인함, 잔학함, 포악함)이 탄핵되면서, 어쩔 수 없이 그 표출되지 못한 동물성(충동/권력—니체曰: 잔인함을 실행하는 것은 최고의 권력감을 맛보는 것이다, 아무런 금지 없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잔인해지는 것이 된다—)을 자신 내부에서 전개시키게 되었으며, 그걸 ‘영혼’을 개발했다!라고 설명하는 데. (이것은 내가 이해한 바에 대한 거친 정리이며, 인간의 영혼이 곧 인간의 동물성은 아니다. 니체 잘 알 님 덜, 만약 심각한 오독이라면 지적 바랍니다~ 아니면 냅둬주시구랴 클클)


여기서 영혼 어쩌고 할 것은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나는 인간이 유기체이기에 갖는 어떤 동물성, 포악함, 잔인함을 긍정/부정도 하지 않고 그것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지점에서 니체에 동의한다. 그것을 잘 처리해야~한다~라는 당위로 설명할 생각이 거의 없다.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음.) 잔인함. 폭력성. 혹은 권력 의지. 그건 나에게도 있다. 나는 내가 죽이고 싶은 인간을 죽이고 싶지도 않다. 죽는 건 편한 일이니까. 그가 처절하게 스스로를 인식하면서 괴로움에 몸부림쳤으면 좋겠다. 온 땀구멍에서 수치감을 흘렸으면 좋겠고, 그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랜덤으로 노출시키는 영원한 형벌을 내리고 싶다. 사회 속에서 사회적으로 고통받으라! 나는 착하지 않다. 나에게도 나 스스로가 제어하기 힘든 어떤 충동들이 있다. 악랄한 저주, 깊숙한 우울, 무엇보다 분노. 가끔 방향을 못 찾아 나를 공격하기도 하는 분노가 있다.


자, 그렇다면. 예술이나 범죄, 악플 달기나 몰래 하는 일탈이 아니라 어떻게 철학함(혹은 공부함/사회가 인정해 주는 일반적인 공부는 아니고 그냥 내가 좋아서 하고 있는 내 수준에서 해내는 이런저런 읽고 쓰기들…)이 잔인함(혹은 내 경우 어떤 동물성의 표출) 일 수 있단 말이지?


난 여기서 니체의 천재성에 탄복하고 마는데. 


철학자가 앎의 의지를 추구해 가면서 그것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직면해 나가다 보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은 “(23) 진리라는 관념이 그 자체 허구의 일종”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정직성은 허무주의로 끝날 위험이 있다”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 내에서 가정에서와 같은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규칙들, 전제들, 확신들을 파괴시키는 철학자들의 앎의 의지는 ‘일종의 숭고한 사악함’이다”



네, 저는 앎의 의지 주체 못하고 페미니즘 읽다가 심연을 봐버렸습니다. 결혼제도 및 가족제도와 재생산과 관습적 이성애와… 뭐 여타의 모든 것을 포기. 꼭 그렇게 살아야 해?라고 물으신다면. 이제 포기가 되었기에 원하지 않게 되었을 뿐입니다. 꼭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은 아님. 제도로서의 그것들을 추구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인데. 또 심오해지는데요, 나의 권력 의지를 포함한 감정과 실존을 제도가 주는 편안함에 의탁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나는 나를 살겠다. 나에게 끝까지 물어보겠다는 결단에 가깝죠. 제도를 거스르겠다 거부한다는 아님. 나, 히피 아님.  


사실 포기하기 싫기도 했고, 적막한 혼자가 될까봐 두렵고, 괴로웠는 데. 쭉— 나의 의존성을 직면하고 헤아리면서 포기시키고 나니 다른 의미로 홀가분해지고 원하는 만큼까지 명랑해졌다. 


하. 참으로 괴로운 시간들이었구려. 마침내, 붕괴, 되었던. 내가 믿어온 모든 것들을 다 허물어야 하는. 앞으로도 기약은 없지만 이제 정말 상관없다. 


비비언 고닉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58) 예지력 있는 페미니스트들이 200년 동안 갖고 있던 통찰이 내게 찾아왔다. 내 삶을 지배하는 힘은 오직 나 자신의 생각을 꾸준히 다스리는 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통찰이었다. 말로 하기는 쉽지만 해내려면 평생이 걸리는 일이었다. 나는 마치 처음인 것처럼 책상 앞에 앉아 생각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자 했다. 생각을 통제하고, 확장하고, 내게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법을. 그러나 실패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또 실패했다. 

(60) 내게 있어 페미니즘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로맨스가 아니라 힘겨운 진실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힘겨운 진실을 추구한다. 

(61)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을까? 끊임없는 투쟁 속에 있다.

나는 세 차례나 구원 같았던 로맨스의 상실을 견뎌냈다. 사랑이라는 환상, 공동체라는 환상, 일이라는 환상의 상실이 그것이었다.  …

(62) 나는 여전히 사랑 때문에 고심한다. 내 단단한 마음을, 그리고 또 다른 인간 존재를 동시에 사랑해 보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한다. 매일의 노력은 여전히 몹시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노력하는 한, 나는 로맨스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로맨스에 저항할 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힘겨운 진실을 꾸준히 바라볼 때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 가까워진다. 페미니즘은 내 안에 살아있다”


비비언 고닉,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가부장제라는 진실을 정말로 알고자 하면서 인류가 만들어온 모든 제도와 규칙들에 환멸을 느끼는 나를, 그걸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로맨스라는 환상을 부여잡고 내 실존을 타인에게 의탁하고 싶어라 하는 나를,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의 폭력적인 신랄함, 예사롭지 않은 가학성(m이 분명해ㅋㅋ) 니체 말대로 일종의 동물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 


내가 싫어하는 그들이 아닌 바로 내 안에. 그렇게까지 강렬한 분노와 포장된 자기애, 폐허 같은 허무주의, 타자혐오 약자혐오, 한남못지 않은 열패감이 있을 거라고는. 그 책들을 읽기 전에. 나는 알지 못했다. 아이러니하지만 규율 권력을 내면화한 정도가 강해서 (성실하고 열심이었기에)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으며.


어쨌든 어떤 독서란 확실히 “인간의 행복과는 모순되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재밌기만 해서 책을 읽지는 않는다. (그런 쾌락은 넷플릭스가 훨씬 유효하다.) 이러한 모순의 읽고 쓰기에서 어떤 압력—을 견디고 나니, 또 이상하리만치 나 자신이 견딜만한 존재로 변했음을 느낀다. 물론 그건 한 번 딱하고 끝나는 종류의 것은 아니지만. 난 이젠 정말로 내가 좋다. 


내 안의 동물성을 동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충분히 보존하면서 적당량 꺼내서 쓸 수 있어질 때까지. 그것에 익숙해질 때 까지. 내가 해야 하는 것. 매일의 책상 앞에서 생각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할 때까지 패배하기. 나는 나의 사악함을 숭고하게 써보고자 합니다. 하하. 


음. 또 쓰다 보니 길어졌네. 두 줄로 요약하면 이것이다.


자니 난~ 여자라~~~ 나를 요카 쥐는 마~~~😫

내 안의 니체적 잔인함 = 내 공부(읽고 쓰기)의 동력


“(24) 잔인성으로 특징짓는 동물적 본성에 입각해서 해석하는 이들은 

고통을 가하고 고통을 부여하는 데서 원초적 즐거움을 발견한다”  - 미셸 푸꼬의 수난2

2023-08-22 

잔인성으로 특징짓는 동물적 본성에 입각해서 해석하는 이들은 고통을 가하고 고통을 부여하는 데서 원초적 즐거움을 발견한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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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14 1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동물성애자를 좋아하더라니.

공쟝쟝 2023-10-14 14:15   좋아요 0 | URL
동물성애를 하는 것이랑 동물성애자를 읽는 것은 다르다 말입니다. 잠자냥은 버섯 구하기 중단하시고요 ㅋㅋ -니체녀-

은오 2023-10-14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하지 않다고 하신다면....
일단 쟝님은 귀여운건 확실 ㅋㅋㅋㅋ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 자기증명과 인정욕구로부터 벗어나는 10가지 심리학 기술
마이클 투히그.클라리사 옹 지음, 이진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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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기’ 혹은 ‘덜 하기’와 같은 표현들은 ‘시체가 가만히 누워있기’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내 올해 목표 : 책 사지 않기. 책 안사기… 덜 사기… 어쩐지 불안한 완벽주의자의 완벽히 실패한 목표였다. 그런가하면 3권 사기.(구체적이고 수치화된 목표) 독서괭은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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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10-11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나는 이 백자평을 쓰기 위해.......(헥헥 지침) 암튼..... 이걸 쓰려고....ㅋㅋ

책에서 가르쳐 준 것 중에 ˝과거의 일에 발목잡혀 있으면 새로운 일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다˝고...
이 스마트하지 못한 불안한 완벽주의자는.. 밀린 독후감 쓰기는 이제 *포기*하고 백자평으로 퉁칩니다... ㅋㅋ 내 안의 완벽주의 해!결!

바람돌이 2023-10-11 23:14   좋아요 1 | URL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했네요. 쟝쟝님 읽은 책 터는 날? ㅎㅎ
근데 이거 괜찮은거 같은데 저도 해볼까요? 요즘은 리뷰 쓸 시간은 커녕 책 읽을 시간도 안나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데 말이죠. ㅎㅎ

공쟝쟝 2023-10-11 23:21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읽은 책 터는 날 입니다!! ㅋㅋㅋㅋ 적합한 용어사용🥹
써야지 좀 남기는 하는 데, 이젠 쓰고 나면 지치더라고요ㅋㅋ 그래도 아쉬워서 백자평으로 읽은 것들을 떠나보내려합니다… 새로운 사랑을…🥲

독서괭 2023-10-1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 천재예요? ㅋㅋㅋㅋ 저 3권 사기 한 적 없는데? ㅋㅋㅋ
읽은 책 털기 와르르~~

공쟝쟝 2023-10-14 10:37   좋아요 0 | URL
아! 읽은 책 털기!!! 제 기억에 3권 산다 이렇게 정확히 수치화된 목표셨던 걸로 기억ㅋㅋㅋ
어쨌든 독서괭님은 저에게 <책을 안사고도> 이토록 훌륭한 알라디너라는 새로운 갈길을 열어주셨으니.... 본받고 싶지만.... 난 책을 사고 싶다... ㅜㅜ
 
작가의 루틴 : 소설 쓰는 하루 작가의 루틴
김중혁 외 지음 / &(앤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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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들은 읽고 쓰는 것을 루틴에 넣지 않는다.. 그건 그냥 숨쉬는 것처럼 하고 있는 것..? 개인적으론 음악 들으면서 뮤직 비디오 만든다는 천선란 작가 너무 신기했다.... 이야기...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영혼을 가진 사람들.... 나는 문학을 잘 못읽지만 문학하는 사람들은 궁금한 영혼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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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를 찾아가는 라캉의 정신분석
가타오카 이치타케 지음, 임창석 옮김 / 이학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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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도식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의 젊은 일본 연구자의 라캉 입문서. 정신분석 먼저 짚고 개념을 다룬다. 심리상담 경험이 있는 나는 철학자들이 쓴 책보다 이해가 수월했다. 저마다의 ‘사는 방식’을 발명하는데, 별로 없는 선택지로 한국에 ‘정신 분석’도입이 시급함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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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10-11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라캉은 진짜 일본의 특유한 그 도식적인 글쓰기랑 진짜 안 맞을듯한데요???? ^^

공쟝쟝 2023-10-11 23:23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께 강추입니다! 제가 라캉 안읽어서 모르지만 만약 라캉 읽기에 어려움이 있었더라면 ㅋㅋㅋ 이 책의 정신분석과정(의미의 절단)이 메타적으로 라캉을 이해해보는 데 힌트가 되실지도…

바람돌이 2023-10-12 06:01   좋아요 0 | URL
그럼 일단 보관함에....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