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5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와 열대야로 전국민이 신음하는 요즘, 체온을 떨어트려줄 수 있는 무언가가 간절하다. 필요하면 얻게 된다고 마침 출간된 <이프>가 꽤 무섭고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들려 무더운 밤에 펼쳐보았다. 약 50쪽을 읽고, 바로 덮어버렸다. 밤에 읽기 무서웠기 때문이다(사실 본인이 겁이 좀 많다).

 

영화화된 <분신사바>로 유명한 작가 이종호 님은 몇 편의 공포소설을 꾸준히 발표해, 척박한 한국 공포소설계의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로 활약하고 있다. 오랜만에 발표한 신작 <이프>는 어떤 작품일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상당히 괜찮아 만족했다. 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호러의 본고장, 일본에 내놓아도 부족한 점이 없을 듯하다.

 

원인불명의 연쇄자살사건을 조사하는 기자 도엽의 시점으로 주로 전개되고 있는데, 뭐에 홀린 듯이 원치 않는 자살을 감행하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도 병행되어 지루할 틈이 별로 없다. 쓸데없이 길기만 하지도 않아, 압축적이고 효과적으로 독자를 공포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도 칭찬할 만하다. 불필요한 잔가지는 일체 배제하고, 불길한 분위기, 기묘한 사건, 사건의 조사 과정에만 집중해 만족스런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전 세계를 떨게 만든 전설의 공포소설 <링>에서는 비디오를 본 사람들이 죽음을 맞았다. <링>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형편없었던 다른 일본 공포소설 <베이비메일>에서는 핸드폰으로 전송되는 사진이었다. 그렇다면 <이프>는? 이메일이다. ‘스벵가리의 선물’이라는 이메일을 본 사람은 모두 자살하게 된다. 도대체 이메일의 정체는 무엇이길래, 하는 독자의 호기심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겨우 풀린다. 

 

공포소설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무언가인데, 이를테면 귀신이나 좀비, 흡혈귀 등의 실제 존재하지 않는 무엇 말이다. 그렇지만 <이프>에서는 나름대로 이 기묘한 사건의 비밀을 현실적으로 말이 되게끔 해명하려 노력한다. 그런 점에서 공포 코드를 사용한 일종의 미스터리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 혹은 미스터리 기법을 차용한 공포소설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현대사회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고, 첨단화되다 보니 공포작가들에겐 일종의 시련이 온 셈이다. 이제 우리를 떨게 만들었던 예전의 괴담들은 그 시효를 다한 듯 하다. 산 속 공동묘지에서 머리 푼 귀신? 온 사방이 불빛으로 휘황찬란하고, 개발로 인해 묘지터는 점점 사라져가는데 귀신이 발 붙일 곳이 어딨나. 필연적으로 공포소설가들은 우리가 늘 손에서 놓지 않는 첨단기기들을 이용해 공포소설을 전개해나갈 수밖에 없다. 비디오, 핸드폰, 이메일 등으로 말이다. 더구나 이것들의 확산 속도는 그야말로 ‘공포’스러울 정도다. 이런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발빠른 작가라고 할 수 없겠다. 위에서 <링>과 <이프>의 소재 상의 유사점에 대해 말했는데, 사실 요즘 나오는 웬만한 공포소설을 두고 <링>의 영향을 빼고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워낙 공포소설 장르의 마스터피스였기 때문이다. <대부> 이후에 나온 모든 갱스터영화가 <대부>에 빚을 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스벵가리의 선물’을 조사하던 기자 도엽이 너무 느닷없이 사건의 본질을 깨닫는다는 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외 거의 부족한 것이 없는 한국 공포소설의 수작이다. 

 

 

- 읽은 분만

 

p.s1/ 어제 술을 많이 마시고, 내려야 하는 지하철 역에서 못 내리고 종점에서 내렸다. 낯선 동네에서 당황하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중국집 '신기루'. 좀 오싹했다. ^^

 

p.s2/ 자신이 공포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다는 환상에 빠졌던 선우. 이 사람, 최면에 제대로 걸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척박한 한국 공포소설 시장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니. 하고보니 이건 좀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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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08-09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함 읽어봐야겠는걸요. 요즘 날이 너무 더워서요 -_-;;

jedai2000 2006-08-1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나마 무더위를 싹 잊으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