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1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여학생 무리가 정류장을 꽉 채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류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뒤로 돌아가려는데, 나를 본 한 여학생의 눈빛이 갑자기 변했다. 저건 반가운 표정인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가 웃음기를 머금고 쳐다본다. 설마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건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저 나이의 여성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비록 내가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린 처지라 자신하기 어렵지만, 아는 사람 중에 고등학생인 여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짧은 시간 이런 생각들을 하며 버스정류장 뒤로 돌아서면서 혹시 하는 마음에 내 뒤를 돌아봤다. 한 여성이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안고 오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내가 아니라 내 뒤에 있는 강아지를 보고 반가워했던 것이다. 


#2

길을 걷다가 맞은 편에서 오던 여성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눈이 잠시 커졌다가 웃으면서 작아졌다. 혹시 나를 보고 웃는 건가? 뒤를 돌아봐야하나, 혹시 나를 보고 웃는 거라면 내가 뒤를 보는 행동에 불쾌해 할텐데,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불치병 때문에 난감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일단 더 가까워지기 전에 머리 속에서 저 사람의 얼굴과 내가 아는 사람들 얼굴을 빠른 속도로 대조하기 시작했다.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게 아는 사람인 것 같긴 한데, 얼른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자주 만났던 사람은 분명 아닐거라고 보고, 가끔 만나는 사람 혹은 한 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 목록을 대조했다.


그러는 사이 그 사람과 나의 거리는 점점 좁혀져, 금방 눈 앞에 다가왔다. 그가 먼저 반가운 표정과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역시 나를 아는 사람이 맞았다. 혹시라도 뒤돌아봤다면 얼마나 난감했을까? 속으로 안심하면서 나도 최대한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젠장! 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곧바로 그가 물었다. "아, 저 못 알아보시나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아니면 거짓말을 해야할까? 사실을 말하는 순간 그는 서운해할 것이고, 난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해야할텐데, 난 지금 바쁘고 그런 변명을 할 여유는 없었다. 아니라고, 지금 바삐 어딜 가느라 그렇다고 말하고 꾸벅 인사를 한 뒤 바쁘게 그를 지나치려 했다. 그가 몸을 돌려 "여기서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수고하세요!" 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웃었다. 나도 "네! 저도 정말 반갑습니다! 또 뵐게요." 라고 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한참 지난 후 그가 누구인지 기억났다. 최근 토요일마다 교육을 받고 있는데, 함께 교육 받는 분이었다. 심지어 그 분은 팀장을 맡았고, 난 부멘토를 맡아서 다른 분들보다 더 자주 소통했던 분이었다. 그렇게 토요일마다 만났지만 정작 우리 동네에서 꽤 먼 곳에 살기 때문에 여기서 만난 건 무척 뜻밖에었을 것이다.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 본인 입장에선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 무척 반가워 인사를 건넸건만,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걸 보고, 못 알아본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헤어지며 '여기서 만나서' 반갑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토요일 교육에서 그를 만났다. 난 그날 일이 생각나서 괜히 눈치가 보였는데, 그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혹시라도 다음에 또 마주치면 꼭 알아보도록 노력할게요.


녹색 투표 용지에는 녹색당


언제부터인가 일터 일이 무척 벅차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번 그렇게 느끼기 시작하니 계속 힘들었다. 일이 힘드니 일에 매달리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야근이 늘어났고, 주말에도 일정이 자꾸 생겼다. 토요일마다 교육을 받아야 했고, 일요일에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자주 생겼다. 평일엔 일하고, 야근하고, 가끔은 저녁에 아이들과 지내며 지냈고, 그 와중에 동네 시민신문 편집위원으로 회의도 나가고, 글도 써야 했다. 그리고 녹색당 지역 활동을 해야했고, 최근에는 선거운동도 뛰어야 했다.


너무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어서 다른 당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선거운동원은 맡지 않고, 여유가 될 때마다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는 말에 결국 선거운동원으로 등록을 해야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세번 아침 일찍 지하철 역에서 피케팅을 하고, 출근했다. 낮엔 일하고, 저녁에 시간이 나면 선거운동에 결합해야 하지만,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다. 대신 주말에는 이틀을 하루종일 선거운동에 매진했다. 평소에도 야근이 잦아 밤에 아이들 잠든 모습을 보고 이마에 입 맞추고 자고, 아침에 아이들이 아직 깨기 전에 또 이마에 입 맞추고 출근하곤 했는데, 주말에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니 좀 안타까웠다. 선거운동을 하는 와중에 아이들이 보이면 우리 아이들이 생각나서 괜히 서러웠다.


사실 선거가 다가올 즈음부터 서재에 녹색당 이야기를 여러번 써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무지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가끔 밤에 써야지 하고 컴퓨터를 켰다가도,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글이 써지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예전 선거때 녹색당 이야기를 썼던 글에 누군가(비회원이) 좋아요를 눌렀다는 알람이 몇 차례 떴다. 하나는 2012년 녹색당이 창당하자마자 뛰었던 선거운동 이야기였고, 또 하나는 2014년 실직하고 곧바로 뛰었던 지방선거 이야기였다. 두 옛 글에 모두 좋아요를 누른 건 다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날짜와 시간이 제각각 달랐다. 어쨌건 기존 알라디너는 아니고, 누군가 녹색당 당원이 검색으로 들어와서 읽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 이번 선거 이야기도 꼭 글로 써야지 생각은 계속 했으나, 늘 몸은 피곤했고, 마음은 글 쓸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선거를 하루 앞둔 날, 선거운동을 나가야 할 아침 시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하루 몇 명이나 이 글을 읽을지 알 수 없지만, 읽는 분들 모두 녹색당에 표를 던져 주신다면, 조금쯤 늦게 나가는 것도 괜찮으리라 여기며 글을 쓴다. 기억해주시라! 녹색 투표 용지에는 녹색당을 찍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즐겁고 행복한 선거운동


녹색당은 작년 여름부터 매주 목요일 아침 탈핵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고, 올해는 주말마다 정당연설회를 해왔다. 난 아침 캠페인이 참 힘들었는데, 그래도 의무감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정당연설회 역시 대부분 참여했고, 어떻게 하면 길을 가는 시민들에게 효과적으로 녹색당을 알릴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본 선거기간에 들어와서는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하고, 앞서 말했듯 평일 두세번 아침 캠페인에 참여하고, 주말마다 선거운동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참여한 서대문 선본이 참 재밌다. 이런 선거운동은 처음이다!


물론 내 선거운동 경험은 별로 없다. 4년 전에는 서울에 지역구 후보가 없었기 때문에 비례대표 선거운동은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투표 독려 문구를 녹색당 명의로 찍어서 지하철역에서 피케팅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말로 홍보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선거법이 이따위인지 참 황당하기만 했다. 그리고 비공식 사무장으로 선거를 뛰었던 지방선거를 통해 선거법과 선거 운동의 과정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첫 선거는 사실 뭐 한 것도 없었고, 녹색당이 창당하자마자 정당득표 3% 미달로 등록취소가 되어 이름을 잃어버렸다.(나중에 헌법소원을 제기해 이름을 되찾고, 득표가 적다고 등록을 취소하는 악법을 고쳤다!) 두번째 선거는 참 어렵고 힘들었다. 아마도 비공식이긴 하지만 사무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그래도 우리 후보가 정말 열심히 선거에 임했고, 제법 괜찮은 수준의 득표를 했기에 뿌듯하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





이번 선거는 무조건 비례대표 3% 득표를 바라고 선거운동을 하는데, 그만큼 지역구 후보와 선본은 부담이 적은 것 같다. 게다가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도 그랬지만, 녹색당 당원들은 늘 유쾌하고, 즐겁고, 기발한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한다.


이번 서대문 선본은 서대문, 마포, 은평 당원의 연합 선본이다. 당원이 가장 많은 서북권역에서 반드시 1명의 후보를 내고자 하는 마음에 연합 선본을 꾸렸다. 후보는 얼마전 SBS와 JTBC 방송에 소개된 이색 후보다. 신학대학원 출신에 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인디밴드이고, 주거권 활동을 해온 시민활동가이다. 매일 신촌에서 녹색당의 정책을 바탕으로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르며 정책콘서트를 이어가고 있다.




선거운동은 얼마나 기발하고 재미있는지 모른다. 분명 주말에 쉬지 못해 몸은 피곤하고 힘들지만, 막상 함께하면 즐겁고 행복하다. 길에서 주운 커다란 팬더곰 인형을 세워놓고 '낡은 정치 팬다'라는 이름을 걸어두고, 자전거에 앰프를 싣고 다니며 거리 곳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후보가 직접 만든 '녹색당을 국회로'라는 곡에 율동을 만들어 신촌 한복판에서 단체로 춤을 추기도 한다.




홍제천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노랗게 핀 개나리를 즐기고, 신촌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벚꽃을 즐겼다. 피켓을 들고 있으면서, 미세먼지로 아픈 목이지만, 열심히 녹색당의 정책을 떠들었다. 몸치라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춰 본적이 거의 없는데, 특히 단체 율동에는 단 한 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는데, 녹색당이기 때문에 즐겁게, 자신있게, 함께 춤을 췄다.




지금껏 말한건 우리 서대문 선본의 특징이다. 다른 선본은 또 다 제각각의 매력과 재미가 있다. 종로의 하승수 선본과, 동작갑의 이유진 선본 모두 개성이 넘치는 활동을 펼치고 있고, 비례후보 다섯 명도 전국 각지를 돌면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홍제천에서 시민들에게 했던 말을 옮기고 선거운동하러 나가야겠다.


"정치에 실망하신 시민 여러분, 포기하지 마세요! 녹색당이 희망이 되겠습니다. 녹색당은 여러분과 같은 평범한 시민들의 정당입니다. 권력자나 기득권의 입장이 아닌 평범한 시민의 눈높이로 사회를 바라보고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바람을 국회에서 실현시키겠습니다. 녹색당에 힘을 실어주신다면 반드시 다른 정치, 새로운 정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반드시 기억해주십시오. 여러분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은 녹색당입니다!"


내일 투표하러 가시면, 녹색 투표 용지에는 꼭! 녹색당을 선택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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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4-12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녹색당 파이팅입니다^*^

감은빛 2016-04-12 13:3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덕분에 힘이 납니다!

다락방 2016-04-12 0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행동하며 지내시네요, 감은빛님.
늘 숙연해집니다. 빚진 느낌도 들고요.
제가 달리 해드릴 수 있는 건 없고, 어쨌든 저는 녹색당을 지지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정당투표는 녹색당에 해달라고 주변에 얘기해서 몇 개의 표를 얻어 놓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번에는 국회진입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힛.

감은빛 2016-04-12 13:33   좋아요 0 | URL
역시 다락방님 멋지세요! 고맙습니다! 오늘 자정까지 한 표라도 더 모으기 위해 거리에서 목이 터지도록 소리 지르는 중입니다. 매연과 미세먼지 때문에 힘드네요.

무해한모리군 2016-04-12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례 순번을 앞당기기 위한 이름을 내내 생각했습니다...
가자 블라당보다 앞서려면 선택지가 많지 않더군요...

가난한 녹색당 ㅠ.ㅠ
가로본능 녹색당 --;;

비천한 상상력을 탓하며
원내 진입으로 빨라집시다.
원조 녹색 녹색당 화이팅!

감은빛 2016-04-12 13:34   좋아요 0 | URL
녹색당이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지향하긴 하지만, 가난한 녹색당이란 당명은 좀 어색한걸요. ^^
모리님, 응원 고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6-04-12 15:03   좋아요 0 | URL
제 제일 가까운 벗이 이반인데 다 필요없고 녹색당 원내진입이 소원이라더군요. 녹색당이라는 이름으로 원내진입이 된다면 이번 총선에 어떤 것보다 의미있으리라 봅니다 ^^

`가자` 보다 빠른 꾸미는 말이 생각이 안나요 ㅋㄷㅋㄷㅋㄷ

자, 문익환 목사님 식으로 합시다.
녹색당 원내진입은 됐어!

아무개 2016-04-12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일이 선거일이네요.
한것도 없는데 왠지 떨리고 긴장되네요.

녹색당 힘냅시다 으라차차차!!!!!!!!!!!!!!!!!!!

감은빛 2016-04-12 13:36   좋아요 0 | URL
마지막 한 표라도 모으기 위해 일터에 월차내고 아침부터 거리에 나섰습니다. 결과가 어떨지 저도 긴장되네요. 고맙습니다!

cyrus 2016-04-12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에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감은빛 2016-04-12 13:36   좋아요 0 | URL
네 늘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chika 2016-04-12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 뉴스에,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밝히는 것도 불법이라고 하더군요 ㅡ,.ㅡ

선거일은 비 예보가 있어서 어머니 모시고 사전투표했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를 하신다고 해서 녹색당을 얘기했는데, 돋보기 없이 투표용지를 보다가 잘못찍을뻔했습니다. 안보인다길래 급히 선관위에서 준비한 글자용 돋보기를 받았는데 여전히 안보인다고 하다가 `찾았다!`하면서 손가락으로 짚으셨는데 그 위를 잘못짚으셨....
나는 투표하기 전이라 정말 놀래서 은근슬쩍 돋보기없어도 되냐며 손가락으로 다시 잘 가리켰는데, 그 위에 어머니가 찍으려고 했던 건 노동당이더군요 ㅎㅎ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자꾸만 내게 정의당이냐 노동당이냐 하시더니 어머니는 노동당이었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

암튼. 희망을 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힘을 보태드리겠습니다 ^^

감은빛 2016-04-12 14:11   좋아요 0 | URL
언론에선 출구 조사도 하는데, 왜 난린가요? 참내!

치카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여의도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겠네요! ^^

마녀고양이 2016-04-12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네요.
열심히 하시는 모습, 많이 좋습니다.

감은빛 2016-04-12 14:30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도 녹색당을 국회로 보내기 위해 힘을 보태주실거죠? ^^

감은빛 2016-04-12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색당을 지지합니다.˝
락뮤지션 한대수, 문정현 신부, 채현국 할배, 밀양어르신들, 김진숙 지도위원, 임순례 감독 등 문화예술인, 영화인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녹색당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아는 얼굴, 아는 이름을 찾아보세요!

* 문화예술인 지지선언: www.kgreens.org/?p=9267
* 영화인 지지선언: www.kgreens.org/?p=9222
* 동물단체 지지선언: www.kgreens.org/?p=9115
* 밀양주민 입당 기자회견: www.kgreens.org/?p=9298

하이드 2016-04-1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전투표 제 표와 `녹색당`이 뭐야 하는 어머니 표까지 잘 찍고 왔습니다.

카스피 2016-04-13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하신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 바랍니당^^
 


어제 밤 12시 기준 88시간 동안 8시간 잠을 잤다. 몇 차례 회의를 참석하고, 여기저기 이동했으며, 사무실에서 문서를 만들거나, 전화를 돌리기도 했고, 워크숍에 참석했고, 교육을 받기도 했으며, 술을 마시기도 했다. 잠을 잔 시간이 대략 8시간 이니, 약 80시간 동안 깨어 있었다. 그리고 난 대략 3시간 가량 술을 더 마시다 잠들었다.


단체로 어디 놀러가면 늘 밤에 잠을 자지 않는 편이었다. 1박2일짜리 엠티나 워크숍 등은 늘 그랬고, 2박3일이나 3박4일이라도 연속으로 계속 밤새 술을 마시거나 토론을 하거나 밤 산책을 하곤 했다. 언젠가 전국을 돌며 10일 가량 교육을 받았을 때는 10일 내내 밤새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땐 이동하는 버스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엊그제는 워크숍을 가서 대략 새벽 2시까지 몇 가지 주제에 대한 논의를 했고,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대부분 3시쯤 잠을 잤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이 4시 반쯤 자러 들어갔다. 난 남아있는 술을 다 마시고 5시쯤 잠이 들었고, 3시간쯤 자고 일어나 교육을 받으러 갔다. 8시간 동안 열심히 교육을 받고 저녁 7시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워크숍 끝나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술을 마셨던 선배가 이 술자리에 참여해, 이틀 연속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나에게 "괜찮냐?"고 "교육은 잘 받았냐?"고 물은게 대략 11시 쯤이었던가 싶다. 그래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괜찮다고 했다. 오전 교육은 좀 지루했지만, 그리 졸립지 않았고, 점심을 먹은 후 조금 졸리기 시작했는데, 그땐 조별 논의 후 발표 수업이었는데, 내가 맡은 역할(조장) 때문에 조별 논의를 이끌고, 발표를 4번 가량 해야 했다. 당연히 졸릴 틈이 없었다.


교육이 끝날 무렵인 5시쯤부터 무척 피곤했는데, 다 끝나고 이동해서 7시쯤 술을 마시기 시작했더니 또 거짓말처럼 컨디션이 괜찮아졌다. 처음엔 피곤하니 많이 마시지 말아야지 생각했고, 가볍게 맥주로 시작했는데, 도중에 소주를 섞어 쏘맥을 마셨고, 나중엔 소주를 마셨는데, 점점 컨디션이 좋아져 소주도 제법 많이 마셨다. 아마 엄청 피곤했을텐데 술은 평소보다 훨씬 잘 들어갔고, 평소라면 이미 취했을 주량을 마셨는데, 의식은 또렸했다. 오히려 아주 심각한 주제에 대해 토론을 했는데, 평소보다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오늘 5시 전까지 원고 하나를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오늘 저녁에 인쇄소에 넘겨야해서 반드시 시간을 맞춰야 했다. 계속 바빠서 원고에 대해 고민하지 못했고, 어제 그 술자리가 없었다면 집에서 원고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며칠 연속인지 기억도 안 날만큼 계속 마신 술을 또 새벽까지 마셨고,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인 오늘 아이들이 장난치는 소리에 깼다. 평소 평일엔 모자란 잠을 일요일 낮까지 늦잠을 자며 보충하는 편이라 더 잘 생각이었는데, 아내는 일이 있어 나가고, 아이들이 배고파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를 뒤져봐도 딱히 뭔가 만들 재료가 없었다. 그리고 뭔가를 만들 의욕도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간단하게 아이들 밥을 먹였다. 이제 자야지 싶었는데, 원고가 떠올랐다. 잠시 고민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글의 얼개를 만들어냈다. 쓰는 건 한 두시간 두드리면 되리라 여기고 빨리 끝내고 좀 더 자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두드리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마감 시간 보다는 그래도 좀 일찍 보냈지만, 내가 예상했던 시간 보다는 한참 더 늦게 글을 보내고, 알라딘 잠시 살펴보고 이젠 자야지 생각했는데, 알라딘을 또 몇 시간 동안 들여다봤다. 


음 점심도 거르고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결국 낮잠은 못 잤다. 오늘 밤에 푹 자고, 내일은 좋은 컨디션으로 출근해야겠지. 언젠가부터 일요일 오후가 되면 출근하기 싫어서 막 기분이 나빠지고 술이 땡기곤 했는데, 오늘은 어떨지 모르겠다.
















책을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다른 책들은 조금씩 손을 댔다가 말다가 하면서 최근에는 완독한 책이 별로 없다. 이반 일리치 책들은 발췌독이 아닌 완독을 하고 싶은데, 그럴 여유가 없어서 안타깝다. 주말에 일정이 없어야 진득하게 앉아 책을 좀 볼텐데, 자꾸 일정이 생긴다. 게다가 4월까지는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8시간씩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책을 조금씩 야금야금 읽고 있는데, 읽는 동안 자꾸 담배가 생각나서 미치겠다. 책 읽다 담배 피우러 나갔다 돌아오면 흐름이 끊겨 집중이 잘 안된다. 그래서 속도가 느린 책이다. 지궐련이라고 하는 지금의 담배가 나온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역사가 오랜 담뱃대나 엽궐련이라고 하는 시가를 꼭 피워보고 싶다. 오래 전에 김형경의 단편소설 [담배 피우는 여자]를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필사도 했었는데, 그때마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그때 처음 어기고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있다. 앞으로 몇 개비의 담배를 피워야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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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31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술을 좋아해서 그런가요? 글을 읽는데 술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입니다. ㅎㅎㅎ

저는 술을 많이 마시면 평소보다 잠이 잘 오는 체질입니다. 이렇다고 해서 제가 술에 완전히 취해 길바닥에 퍼지는 정도는 아닙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을 자요.

감은빛 2016-02-01 12:39   좋아요 0 | URL
제 서재는 항상 술, 담배 이야기가 많아서요.
제가 그 두가지를 늘 입에 달고 살아서요.

저는 술을 적당히 먹으면 잠을 못 자는 편이예요.
그리고 술 마시며 대화하는 걸 좋아해서 늦게까지 마시는 편이구요.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데, 한번 마시면 늦게까지 마시니까 잠이 늘 부족해요.

아무개 2016-02-0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제 화두가 술. 잠. 담배라고 할정도로
위의 세가지 때문에 여라가지 일들이 많습니다.
줄여야지... 하는 생각만하고 있네요.

감은빛 2016-02-03 11:36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화두라고 하시니 뭔가 심각한 느낌이 듭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저는 잠은 체력이 허락하는 한 상황에 따라 잘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규칙적인 생활은 어울리지도 않고, 잘 되지 않더라구요.
어떤 날은 밤을 새고, 어떤 날은 일찍 자고, 어떤 날은 늦잠을 자면서
체력을 맞춰가야 할 것 같아요.

술과 담배는 뭐 과하지 않은 선에서 원하는대로 할 생각입니다.
 

북플 글쓰기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작년에 폰을 바꾸면서 화면이 제법 커졌지만, 서재에는 글을 쓰면 늘 할 말이 많고, 글을 쓸때는 손글씨보다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익숙하디 때문에 폰으로 두드리는 글은 아무래도 느낌이 살지 않는다. 과연 이렇게 어색한 기분으로 두드려도 글맛이 살아있을까? 나중에 컴 화면으로 열어보면 죄다 오타에, 비문 투성이 글이 보이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지금 급하게 폰으로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SNS에서 반가운 책을 만났기 때문이고, 이 반가운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글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원고를 연재했던 `미디어스`라는 온라인 매체로, 초기부터 즐겨찾기 해두고 종종 가는 곳이었고, 거기서 책의 두 저자 중 한 명인 이근형 트레이너의 글을 만났을 때 무척 반갑고 또 기뻤다. 제법 오래동안 각종 영상과 글을 찾아보며 크로스핏 위주로 운동을 했지만, 누구 하나 조언을 해줄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할 때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접할 수 있는, 또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는 그런 소중한 글이었다.

미안하지만 또 한 명의 저자인 김민하 기자의 연재글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의 글은 주로 정치 기사를 접했고, 종종 서핑하는 몇몇 매체 중에서 가장 믿고 읽을 수 있는 정치 기사를 쓰는 기자이므로, 그의 글에 대해서는 읽지 못했다고 우려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겨울이라 요즘 주위에서 운동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새해 각오 및 소망으로 살을 빼겠다는 사람들도 여럿 봤다. 주위에 늘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별로 먹지도 않았는데 살이 이만큼이나 쪘다고, 운동을 해도 살은 빠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은 대개 헬쓰클럽에서 다람쥐 챗바퀴 돌듯 트레드밀 위를 달리고, 엉터리 트레이너가 시키는대로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맞지도 않는 각종 머신운동으로 시간을 보낸다. 자신의 힘에 맞는 무게에 도전하기 보다는 익숙한 무게를 많이 반복하다가 재미없다며 지쳐 운동을 포기한다.

난 그들에게 하루에 5분~10분만 운동하더라도 머신 운동이 아닌, 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맞는 프리웨이트를 하길 권하며, 트레드밀 위를 쳇바퀴 돌지말고 직접 땅위를 박차고 달리길 권하고, 익숙한 무게에 안주하기 보다는 안정적인 자세를 익힌 다음 과감하게 새 목표에 도전하길 권한다.

하지만 번번히 그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듣더라. 애초에 무슨 말인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굳이 헬쓰클럽에 가서 운동할 필요도 없다. 한동안 스내치라는 역도 운동에 빠져있던 나는 요즘 다시 맨손 운동의 매력에 빠졌다. 늘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멈춰 크게 부하를 느끼지 못했던 맨몸 운동에서 요즘 큰 부하를 느끼며, 육체의 한계를 깨닫고 있다. 힘들기로 따지면 타바타 인터벌 버피 만한 운동이 없더라. 진짜 죽을만큼 힘들더라. 최근 새삼 깨달았던 것인데,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이 사실을 그간 모르는 척 외면해왔던 듯하다.

사실 다른 어려운 운동, 복잡한 머신은 별로 필요없다. 팔굽혀펴기 하나만으로도 자세를 제대로 갖추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주면 전신운동이 된다. 하나만 하는 건 지루하니까 에어스퀏과 버피와 팔굽혀펴기 그리고 가능하다면 턱걸이를 하루에 한 가지씩 순서대로 짧은 시간동안 한계 체력까지 해보자. 아마 단 하루만 해봐도 느껴질 것이다. 내 몸이 얼마나 한심한 상태인가 깨닫는 것과 동시에 내 몸이 얼마나 경이로운가를 동시에 깨달을 수 있다.

시간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타바타 8라운드는 4분 밖에 안 걸리지만 체감상으로 1시간 운동한 것보다 더 힘들다. 운동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짜임새 있게 그 시간을 쓰느냐가 중요하다.

오늘 아침 두꺼운 겨울 바지를 새로 꺼내 입었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 귀찮아서 허리띠를 안 매고 다니는데, 그래서 허리에 꼭 맞는 바지를 사입는 편이다. 결혼 후 내 몸을 방치한 세월동안 허리둘레는 서서히 늘었고, 덕분에 5~7년 전에 산 바지는 허리가 작다 싶을만큼 꽉 끼고, 5년 이내에 산 몇 안되는 바지는 거의 딱 맞다. 오랜만에 입은 이 바지는 약 3년 전에 누군가가 자신에겐 작다고 건넨 것으로 당시 내게 딱 맞았다. 허리띠를 맬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난 아무 생각없이 집을 나서다가 평소와 달리 허리가 허전함을 느낀다. 줄줄 흘러내릴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괜히 헐렁하고 불안한 느낌. 아니나다를까 내리막길을 뛰어내려가다가 멈춰 허리춤을 추슬러본다. 어제까지 입었던 옷은 약 7년 전에 딱 맞았던 옷이고, 지금 평소에는 살짝 타이트한 느낌이지만, 밥을 먹고 나면 꽉 끼는 느낌이었다.

거울을 보면서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몸의 변화를 운동할 때와 일상에서의 움직임에서 서서히 깨닫는다. 아주 느리지만 꾸준히 젊은 시절 몸의 느낌을 되찾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아직 결혼 전 몸으로 돌아가려면 멀었겠지만, 급할 것 없다. 체중 따윈 신경쓰지 않는다. 허리둘레 따위에도 관심없다. 난 그저 타바타 8라운드 안에 버피를 한 번이라도 더 하거나, 한계 무게로 스내치를 한 번이라도 더 하는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익숙치않은 폰 자판으로 꽤 긴 글을 두드린 것 같은데, 북플에선 분량이 알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제 그만 두드리고 타바타 버피나 하러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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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1-05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피는 너무 힘들어요 ㅜㅜ

감은빛 2016-01-05 21:46   좋아요 0 | URL
힘들죠! ㅠㅠ 제대로 온 힘을 다하면 더 힘들더라구요. 재밌는 건 죽을것처럼 힘든 건 똑 같지만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세가 좋아지고, 내 몸이 즐기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더라구요. ^^

몬스터 2016-01-05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피는 3 sets 만해도 숨 고르기가 ㅎㅎㅎ

감은빛 2016-01-15 18:03   좋아요 0 | URL
몬스터님, 안녕하세요.
답이 많이 늦었네요.
그렇죠! 버피는 3라운드만 뛰어도 숨이 차서 힘들어요.
(저는 세트로 운동하지 않고, 타바타 인터벌로 라운드로 운동해요.)
4~6라운드는 헉헉 대면서 간신히 몸을 움직이고,
7라운드까지 가면 완전 지쳐서 억지로 몸을 움직여요.
8라운드는 마지막이니 최대한 힘을 짜내 움직입니다.
4분 8라운드가 끝나면 정말 죽을만큼 힘든데,
잠시 드러누워 몸을 쉬고나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어요. ^^

나와같다면 2016-01-0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은 정직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감은빛 2016-01-15 18: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나와같다면님. 반갑습니다.
답이 좀 늦었네요.
정직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표현하시니,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예전과 달리 자연스러운 몸의 움직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transient-guest 2016-01-06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저 꾸준히 free weight와 머신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섞어서 매일 운동부위와 운동에 변화를 주고, cardio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짜 운동은 맨손운동 몇 가지와 철봉, 줄넘기, 달리기만 해도 되긴 하지요.ㅎㅎ TRX를 해보고 싶은데 보여줄 사람이 없어서 제대로 하기 어렵네요. 어쨌든 일주일에 4-5일은 gym에 갑니다.ㅎㅎ

감은빛 2016-01-15 18:21   좋아요 0 | URL
일주일에 4~5일이라~ 멋지세요!
저번에도 썼는데, 전 주위 핏니스센터가 죄다 머신 위주라서
이젠 돈 아까워 거기 안 가고,
집이나 근처 공원에서 운동해요.

집에선 할 수 있는 운동이 제한적이어서,
밖에서 이것저것 해보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직장인 입장에서 시간이 잘 안 맞구요.
또 혹시 보는 눈이 있으면 잘 안 되더라구요.

마당이나 옥상에 조그만 운동공간 만드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봅니다.
마당은 없고, 옥상은 공용공간이라 맘대로 못하는 상황이 아쉽네요.

TRX 저도 배워보고 싶어요.
미국에선 인기라고 하던데, 이 동네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느낌이예요.
 

다 자란 아이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뭔가 찾아볼 것이 있어서 몇 해째 쓰지 않는 예전 블로그를 검색했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닫으려다가 궁금증에 옛 글을 몇 개 읽었다. 읽다가 이런 일이 있었구나 싶은 글 몇 개를 발견했다.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건, 이렇게 나중에 찾아 읽을 수 있는 기억을 저장해두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해당 블로그가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았을 경우에 얘기다. 알라딘 서재를 제외하면 블로그는 총 3번 운영했는데, 첫번째와 두번째로 썼던 블로그는 모두 해당 업체가 그 서비스를 닫아버렸다. 이번에 검색해본 것이 세번째 블로그였다. 만약 블로그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자라서 아빠의 글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해본다. 예전 블로그에는 큰 아이와 작은 아이 어릴때 자잘한 이야기들을 써놓았는데, 나중에 아이들이 이런 글을 찾아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아기는 벌써 잠이 깨서 혼자 놀고 있던 참이었나 보다. 손가락을 빨아보려고 용을 쓰지만, 생각처럼 잘 안되는지,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손을 입가로 가져오려 애썼다. '에', '앙' 등 글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짧은 소리를 주기적으로 내면서 발을 열심히 동동 굴리고 있다. 잠시 내려다보니 녀석이 나를 알아본다. 눈동자가 나를 향하더니 동공이 열리는 듯,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 속에 내 얼굴이 어렴풋이 비쳐보인다. 


- 2010년 8월 예전 블로그 글 '아기의 함박웃음' 중에서


이 글은 '아기의 함박웃음'이란 제목으로 태어난지 백일이 조금 지난 작은 아이에 대해 썼다. 말미에 나름 반전이 있는 글이다. 읽어보고 조금 놀랐다. 내가 이런 표현을 썼구나. 내가 이렇게 글을 구성했구나. 왠지 지금보다 훨씬 더 글을 잘 썼던 것 같다. 


언제부터 이렇게 눈물이 많아졌던가? 요즘 자주 울컥 솟구치는 여러 감정들 때문에 눈물이 맺히는 일이 잦다. 두 달 전부터 유난히 오래 이어지던 콧물과 기침이, 이번 달 초에 아예 고열과 몸살로 이어졌던 때, 꼼짝도 못하고 누워만 지낸지 사흘째 되던 날, 작은 아이가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더니, "아빠, 눈 크게 떠봐." 라고 말했다. 난 사흘 내내 거의 굶다시피 했던 터라, 목소리를 낼 기운조차 없어서 작은 목소리로 "왜?" 라고 물었다. 아이는 한번 더 "눈 크게 떠봐. 아빠~" 라고 재촉했고, 나는 억지로 눈을 치켜떴다. 작고 까만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본다. 곧이어 "아빠 눈에 나 있어. 아빠, 내 눈에는 누가 있어? 아빠 있어?" 라고 물었다. 왜 그랬는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 감정이 북받쳐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는데, 아이는 원하는 답을 들어서인지 곧이어 몸을 돌려 장난감에 집중했다. 나는 눈물이 맺혀 흐린 시야로 아이를 보면서 내가 왜 우는지 궁금해했다.


- 2014년 4월 이 서재 글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인 현실' 중에서


이건 작년 4월 세월호와 관련해 이 서재에 적은 글인데, 작은 아이의 말로 글을 시작했다. 예전 블로그에선 아이와 관련한 글들을 별도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모아두었는데, 여기 서재에선 그런 구분 없이 그냥 일상이야기와 책 이야기를 섞어서 쓰고 있다. 아직 백일 정도 밖에 안된 아기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장면과 다섯살 아이가 내 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옮겨 봤다.


아이는 잠시 안 씻겠다고 버텼지만, 갑자기 '응가'를 외치더니 제 변기통을 찾아가서 앉았다. 한참 힘을 주더니 구수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엉덩이도 닦여야 하고, 머리도 감겨야 하니 아예 목욕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아이를 욕식에 데리고 들어갔다.


머리를 감기려고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뭐라뭐라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건성으로 그래그래 대답했다. 따뜻한 물에 머리칼을 적시고, 천연비누를 골고루 묻혀서 충분히 거품을 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조용해졌다. 눈도 감고 있었다. 숨소리도 규칙적으로 고르게 내고 있었다. 잠든 것이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씻다가 잠들었을까 싶었다. 따뜻한 물에 머리를 헹궈주면서 깨지않도록 조심조심 손을 놀렸다.


머리를 다 헹구고 엉덩이만 깨끗이 닦았다. 목욕은 내일 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조심조심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이제 제법 무거워진 아이를 한 손으로만 안고, 다른 한 손으로 닦아주는 게 쉽지 않았다. 머리 감기 전에 먼저 이를 닦도록 시켰던 것이 무척 다행이었다.


- 2008년 10월 예전 블로그 글 '머리 감기는 중 잠든 아이' 중에서


부천에 살았던 시절에는 근처에 공원이 여럿 있었다. 당시에는 자주 아이와 공원에서 놀곤 했다. 이 날은 하루종일 공원에서 뛰어다니고 놀아서 무척 피곤한 날이었다. 당시 나도 무척 피곤했었는데, 아이는 머리 감겨주는 중에 잠이 들었을 정도로 잘 놀았던 날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기억이 났는데, 당시에는 아이를 안고 머리를 감겼다. 쪼그려 앉은 내 무릎 위에 아이를 뉘여놓고, 왼 손으로 아이 머리를 받치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감겼다. 나중에 작은 아이는 이렇게 감기지 않았다. 아이을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에 앉혀놓고, 머리를 뒤로 제치게 한 다음 샤워기로 물을 뿌리고 감긴다.


이제 훌쩍 커버려 혼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는 큰 아이와 아직은 씻겨줘야 하는 작은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이 글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때 아빠가 이렇게 나를 씼겨줬지 라는 걸 기억이나 할까?


내 경우를 떠올려본다면 엄마가 나를 씼겨준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아빠와 목욕탕에 간 건 몇 건이 기억나는데, 숨도 못 쉬도록 물을 부어가며 머리를 감겼던 거나, 때를 쎄게 밀어서 아팠던 기억은 있다.


흠 시간 날때 사소하고 자잘한 기억을 남긴 글들을 어딘가 모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 블로그가 언제 닫을지 알 수 없고, 알라딘이 언제 서재를 중단할 지 알 수 없다. 웹에 있는 정보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보관해두려면 하드디스크에 문서로 남겨둬야 할까? 아예 인쇄해서 파일에 모아두어야 할까? 그런데 이 바쁜 삶에서 언제 그 많은 글들을 다 따로 저장해서 인쇄할까? 종이도 잉크도 무척 아까울 것 같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까지


2016년의 첫 날이 지나갔다. 2015년의 마지막은 늘 그렇듯이 술을 마시며 보냈다. 왁자지껄 여러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를 부르다가 12시가 되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옆 사람과 포옹했다. 외국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처럼 자정에 포옹을 하게 되다니. 난 그냥 쓴 소주를 한 잔 털어넣고 해가 바뀌었구나 생각만 하려 했는데, 옆 자리의 여성이 먼저 자신의 왼쪽에 앉은 여성을 껴안고는, 방향을 바꿔 나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음, 이거 껴안자는 제스쳐로구나. 거부하면 기분나빠하겠지. 뭐 이런 순간에 한번 껴안는게 무슨 문제가 되겠어 라고 생각하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는데, 그 분이 무척 쎄게 껴안아서 좀 놀랐다.


그 분은 1월 1일이 양력 생일이다. 보통 그 나이대 분들은 대체로 음력 생일을 지내시는데, 그 분은 양력 생일을 지낸다고 한다. 아들이 결혼해서 분가한 후로 생일날 늘 혼자였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는 12월 31일에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챙겨줘서 무척 고맙다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랬구나. 1월 1일이 생일이라면, 그 생일을 혼자 보내야 한다면 조금 쓸쓸할 것 같긴 하다.


몇 달 전 손자를 보고, 할머니가 된 그 분의 생일 케잌을 열심히 먹으며, 자리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새해 소망이나 각오를 나눴다. 난 속으로는 운동과 관련한 목표를 떠올렸다. 스내치, 데드리프트, 스퀏 무게를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 그러나 막상 내 차례가 되어서는 올해는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너무 정신없이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제발 2016년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운동도 열심히 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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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0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새해에는 더 좋은 일들과 기쁘고 좋은 시간 함께 하시기를 기원할게요.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감은빛 2016-01-15 17:5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답이 많이 늦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cyrus 2016-01-0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블로그에 남긴 모든 글들을 알라딘 계정이 없는 친구나 가족에게 공개한 적이 없어서 이 블로그를 앞으로도 그냥 저만 아는 개인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알라딘 계정이 없는 사람에게 알라딘 블로그를 설명하면 민망할 것 같아요. 제 주변에 저만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잘 없거든요. ㅎㅎㅎ 감은빛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감은빛 2016-01-15 17:59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답이 늦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저는 한동안 출판계에 있었기 때문에
저를 아는 사람들 중 몇명이 이 블로그의 존재를 알아요.
간혹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대한 얘길 직접 만나서 듣게 되면,
말씀하신것처럼 꽤 민망하더라구요.

사실 그래서 예전에는 일상 이야기는 거의 안 쓰고 책 이야기만 썼는데,
출판계를 떠난 이후로는 그들이 제 블로그를 들어올 일이 없어져서,
그 이후로는 일상 이야기를 위주로 쓰고 있네요.
사실 책 읽을 여유가 없어졌다는 핑계로,
독서를 많이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책 이야기를 쓰고 싶어도 못 쓰기도 하구요.

제가 이 글 쓸 당시에 생각했던 건,
나중에 다 자란 아이들이 우연히 무언가를 검색하다가
아빠의 블로그를 발견해,
거기서 자기 어릴때 이야기를 찾아 읽는 상황이예요.
혹은 제가 그때까지 블로그를 계속 하고 있다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블로그의 존재를 알고,
찾아 읽을 수도 있을 테구요.

암튼 저는 언젠가 아이들이 제 글을 통해
자기 어릴때 이야기를 꺼내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
 

검색해보니 작년 2월 12일에 '켈로이드와 스테로이드'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 전 해 가을에 무릎을 크게 다쳤는데, 상처는 아물었건만, 흉터가 크게 부풀어올라 여러모로 불편함을 겪었고,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절로 낫겠지 하는 마음에 병원은 가지 않고, 몇 달을 버티다가 결국 불편함을 못 참고 병원에 갔다가 '켈로이드'라는 처음 듣는 증상에 대해 알았던 날에 대해 쓴 글이다. 치료방법은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게 무척 날카로운 통증을 줬고, 한 달 혹은 반 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고, 상황에 따라 아주 오랫동안 맞아야 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오래 맞아도 잘 낫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다.


내 몸에는 흉터가 참 많은데, 이 나이가 되어 처음으로 켈로이드란 증상을 겪었다. 그런데 다들 켈로이드는 유전적인 영향이 크고, 체질의 문제라고 한다. 작년 봄 나는 갑자기 비염 증상이 계속되어 병원을 찾았다. 알러지성 비염이라는 처방을 받았는데, 좀 황당했다. 물론 평소 코가 좀 약한 편이라고 해야할까? 감기가 걸리면 코감기부터 걸리는 편이긴 했지만, 비염은 아니었다. 그런데 작년 봄 이후 지금껏 몸 컨디션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염이 없어지지 않는다. 한 며칠 증상이 없다가도, 어느 날엔 또 심해졌다. 최근 1~2년 사이에 내 몸에 큰 변화가 생긴걸까? 체질이 변할 걸까?


최근 5~6년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충분히 몸이 망가질만 하다고 느낀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야근도 잦았고, 주말에도 늘 뭔가 일정이 있었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에 대해서는 잘 지켜왔는데, 최근 그 시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할만큼 바빠졌다. 현재 내 결론은 지난 내 생활이 지금 내 몸을 변화시킨게 아닌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 여름 그러니까 약 5개월 전, 한밤중에 어느 술 취한 녀석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쳐서 나갔다가 녀석이 잡아 끌어서 넘어졌던 날, 그날 다친 무릎 상처가 또 제법 크고 깊었다. 재작년 다친 자리에서 약 손가락 마디 두 개 아래를 다쳤다. 이번에도 상처는 생각보다 빨리 아물었건만, 지난 번처럼 흉터가 부풀어 올라있었다. 불안했다. 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러 다녀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이 상처는 이전 상처보다 크기는 컸지만, 높이는 많이 부풀어오르지 않았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흉칙한 보라색 흉터가 작아진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가을무렵 밀양 송전탑 싸움을 했던 마을에 농활을 갔을 때, 무언가에 부딪혀 이 흉터가 찢어졌다. 다시 상처가 생긴 것이다. 신기하게 다시 생긴 상처가 아물고 나니 흉터는 확연히 줄어있었다. 크기는 많이 작아지지 않고, 여전히 넓었지만, 높이는 확실히 더 낮아졌고, 전체가 다 높게 부푼 것이 아니라, 일부만 부풀고, 일부는 쪼글아들어서 낮은 상태였다.



조금 희망을 가졌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흉터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이었다. 겨울이 되자, 이 흉터가 계속 간지럽고, 가끔은 옷에 쓸려 쓰라렸고, 실수로 기둥이나 난간, 책상 다리 등에 부딪히면 정말 아팠다. 겨울이 되면서부터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바빴다. 병원 갈 시간을 내지 못했다.


어제 밤 늦게 집에 들어왔더니, 큰 아이가 아파서 열도 살짝 나고, 갑자기 토하기도 했다. 오늘 아침 일찍 중요한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서는데, 아내도 아프다는 걸 알았다. 큰 아이도 학교를 빠져야 할만큼 아프고, 아내도 아프니, 결국 작은 아이는 내가 챙겨야 했는데, 오늘 따라 약속이 이른 시간이라 그럴 수 없었다. 미안하다고 되도록 일찍 돌아오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급한 일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러 조금 일을 하다가 일할 꺼리들을 잔뜩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아픈 큰 아이와 아내는 자고 있었고, 작은 아이는 혼자 깨서 심심해하고 있었다. 두 녀석 모두 학교와 어린이집을 못 갔다. 놀아 달라는 작은 아이와 조금 놀다가 컴퓨터를 켜고 일을 했다. 마음은 아픈 식구들을 돌보고, 작은 아이와도 놀아주고 싶었지만, 머리 속엔 기한 안에 일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제일 급한 일을 하나 마무리할 때 즈음 아내가 큰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 김에 나도 진료 요청을 했다. 아이는 장염이 심한데다 몸살 기운까지 있었다. 요즘 장염이 유행이라고 마을 주치의가 말했다. 아이의 약을 다 처방한 후, 주치의는 웃으며 내 볼일을 물었다. 좀 민망했다. 켈로이드가 다 나은지 1년 반 만에 또 같은 건으로 찾아오다니! 바지자락을 걷어올려 같은 무릎에 있는 상태가 완전히 다른 두 흉터를 보여줬다. 완치된 흉터는 이제 완전 납작해져, 여기 흉터가 있다는 것만 알수 있을 뿐, 이게 그렇게 크게 부풀어올랐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색깔도 피부색(아! 이거 습관적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단어를 썼다가 고쳤다.)이고, 만지거나 부딪쳐도 전혀 통증이 없다. 하지만 올 여름 다친 흉터는 이전 흉터의 상태에 비해서는 훨 양호하지만, 색갈도 푸르죽죽한 보라색에 부풀어 오른 부분이 계속 간지럽거나 따끔거렸고, 어쩌다 스치기만해도 엄청 아팠다.


주치의는 이제 간결하게 설명하고 바로 주사를 놓았다. 큰 아이는 목이 마르다기에 물 마시라고 진료실에서 내보냈다. 다행이다. 아무래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통증을 못 참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주치의가 주사 바늘을 손가락으로 튕길때, 대략 1년 10개월 전 처음으로 주사를 맞았던 날의 고통이 떠올랐다. 드디어 주사 바늘을 찌르는 순간 왼손은 자연스럽게 왼 허벅지 위에 두고 있었지만, 오른 손은 허리 뒤로 돌려 주먹을 꽉 쥐었다.(주치의가 주먹쥔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바늘이 처음 들어가는 순간에는 걱정한만큼 아프지는 않았는데, 이후 스테로이드를 살짝 주입하고 뺐다가 방향을 틀어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날카롭게 아픈 감각이 신경을 후벼팠다. 주사를 맞는 그 짧은 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마지막즈음엔 오른손 주먹이 얼얼할 정도였다. 다 끝나고 주치의가 "아프셨죠?" 하고 묻는데, 그저 헛 웃음만 허허 웃었다.


장염이라 밥을 먹지 못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죽을 포장해 집으로 돌아오면서 무릎을 제대로 굽히지 못해 절뚝거리며 걸었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참 길게 느껴지더라.



※ 세월호 청문회 소식을 조금 보다가 너무 화가나고 또 슬퍼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제 정신을 갖고 살 수 있을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곧 세월호를 잊고, 백남기 농민을 잊고, 아무렇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걸까? 설마 그런걸까? 하긴 우린 벌써 많은 열사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이승만과 수많은 친일파들과 박정희와 수많은 군부 독재 세력들과 전두환, 노태우와 수많은 하나회 출신들 그리고 광주 학살을 저지른 군인들을 잊고 살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와중에도 수많은 노동탄압과 비상식적인 사태들이 있었다.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강 다리가 무너지고, 어린 아이들이 불에 타죽고, 여중생들이 탱크에 깔려 죽기도 했다. 농민들이 경찰 곤봉과 방패에 맞아 죽기도 했다. 누군가는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는 바람에 인질로 잡혀 죽었다. 이명박은 강을 파헤치고, 수많은 혈세를 빼돌렸다.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을 더 강하게 밀어붙였고, 심지어 거짓으로 속여 외국에 팔아먹기도 했다. 똑같은 짓을 박근혜가 반복하고 있다. 바보같이 자기가 뭔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파리 기후변화 협약에 가서는 국제 망신을 당하고 왔다. 그리고 세월호는 아직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 있다. 한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다. 


우린 일상을 살면서 이 모든 부조리한 일들을 다 기억하면서 살 수 없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하고, 기록이 중요하다고 본다. 바쁜 와중에도 해경에서 나온 증인들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는 내용은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 뭐? 애들이 철이 없어서 탈출을 안 했다던가 하는 헛소리를 지껄인 작자도 있었다는데, 저게 진짜 사람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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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2-16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블로그 프로필 사진에 두개의 노란색 표식이 있습니다.하나는 앙크.부활이라는 의미의 이집트 상형문자와 노란리본표시.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그들이 언젠가 부활할때 우리들에게 던질 질문이 뭘까...싶더군요.잘봤습니다.아푸지 마시길....

감은빛 2016-01-02 01:28   좋아요 1 | URL
해가 바뀌어 답을 드리네요. 죄송합니다!
앙크와 노란리본을 달고 계시군요.
부활이라는 의미의 상형문자로군요.
고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5-12-16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먹지않던 술을 요즘 다시 많이 먹게됩니다. 왜 자꾸 비관하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낙관해야 하는데 믿어야하는데, 마음까지 넘겨줄수는 없는데.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거 같아요 저자신도.

감은빛 2016-01-02 01:30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술을 많이 마셔요.
(라고 쓰고 보니 요즘만 많이 마시는 것 처럼 읽히는군요. ㅠㅠ
늘 많이 마셨으면서요.)
낙관하려면 뭔가가 보여야 하는데,
그 뭔가를 찾지 못할 정도로 암울한 상황이죠.
모리님, 그래도 힘을 내 봅시다!

살리미 2015-12-16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청문회를 보며 너무 화가납니다. 당신 자식이라도 그랬겠어? 라고 외치는 유족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은데 답변하러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책임하더군요. 정말 애들이 철이 없다던 발언을 하는 사람은 제정신인가 싶었어요 ㅠㅠ
팩트티비가 없었다면 그나마도 못 볼 뻔 했습니다. 주류 언론이 기록을 하지 않는 세상이에요 ㅠㅠ
감은빛님, 부디 건강 챙기십시요!

감은빛 2016-01-02 01:32   좋아요 0 | URL
오로라님, 답이 많이 늦었네요.
언론은 이미 그 기능을 잃은지 오래되었습니다.
더이상 기대하지 않은지 꽤 되었습니다.

누구 말처럼 혼이 비정상인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그 말을 한 본인부터가 비정상일텐데요.
안타까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네요.

고맙습니다!

cyrus 2015-12-1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염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정말 고생합니다. 저도 비염 증상이 있는데, 잘 때마다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집니다. 수면 중에 코로 호흡하는 것이 힘들어져요. 안 그래도 비강이 작은 편이라서 콧물이 생기면 코를 푸는 횟수가 많아져요. 추운 날에 코 관리도 잘 해야 됩니다. 몸이 차가우면 코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감은빛 2016-01-02 01:34   좋아요 0 | URL
저는 다행히 밤에는 증상이 거의 없어요.
가끔 비염이 심해지는 날에는 꼭 오전에 제일 심해요.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면 점점 좋아졌다가,
저녁때쯤 되면 완전히 증상이 사라지곤 합니다.

알러지성 비염인데, 무엇에 대한 알러지인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이 되니 비염이 한결 좋아졌어요.
제 경우엔 봄과 가을에 제일 심했던 것 같습니다.
여름에도 특정한 날에는 무척 심했구요.
오히려 요즘 비염 증상이 거의 없어졌어요.

시루스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