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자란 아이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뭔가 찾아볼 것이 있어서 몇 해째 쓰지 않는 예전 블로그를 검색했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닫으려다가 궁금증에 옛 글을 몇 개 읽었다. 읽다가 이런 일이 있었구나 싶은 글 몇 개를 발견했다.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건, 이렇게 나중에 찾아 읽을 수 있는 기억을 저장해두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해당 블로그가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았을 경우에 얘기다. 알라딘 서재를 제외하면 블로그는 총 3번 운영했는데, 첫번째와 두번째로 썼던 블로그는 모두 해당 업체가 그 서비스를 닫아버렸다. 이번에 검색해본 것이 세번째 블로그였다. 만약 블로그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자라서 아빠의 글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해본다. 예전 블로그에는 큰 아이와 작은 아이 어릴때 자잘한 이야기들을 써놓았는데, 나중에 아이들이 이런 글을 찾아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아기는 벌써 잠이 깨서 혼자 놀고 있던 참이었나 보다. 손가락을 빨아보려고 용을 쓰지만, 생각처럼 잘 안되는지,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손을 입가로 가져오려 애썼다. '에', '앙' 등 글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짧은 소리를 주기적으로 내면서 발을 열심히 동동 굴리고 있다. 잠시 내려다보니 녀석이 나를 알아본다. 눈동자가 나를 향하더니 동공이 열리는 듯,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 속에 내 얼굴이 어렴풋이 비쳐보인다.
- 2010년 8월 예전 블로그 글 '아기의 함박웃음' 중에서
이 글은 '아기의 함박웃음'이란 제목으로 태어난지 백일이 조금 지난 작은 아이에 대해 썼다. 말미에 나름 반전이 있는 글이다. 읽어보고 조금 놀랐다. 내가 이런 표현을 썼구나. 내가 이렇게 글을 구성했구나. 왠지 지금보다 훨씬 더 글을 잘 썼던 것 같다.
언제부터 이렇게 눈물이 많아졌던가? 요즘 자주 울컥 솟구치는 여러 감정들 때문에 눈물이 맺히는 일이 잦다. 두 달 전부터 유난히 오래 이어지던 콧물과 기침이, 이번 달 초에 아예 고열과 몸살로 이어졌던 때, 꼼짝도 못하고 누워만 지낸지 사흘째 되던 날, 작은 아이가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더니, "아빠, 눈 크게 떠봐." 라고 말했다. 난 사흘 내내 거의 굶다시피 했던 터라, 목소리를 낼 기운조차 없어서 작은 목소리로 "왜?" 라고 물었다. 아이는 한번 더 "눈 크게 떠봐. 아빠~" 라고 재촉했고, 나는 억지로 눈을 치켜떴다. 작고 까만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본다. 곧이어 "아빠 눈에 나 있어. 아빠, 내 눈에는 누가 있어? 아빠 있어?" 라고 물었다. 왜 그랬는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 감정이 북받쳐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는데, 아이는 원하는 답을 들어서인지 곧이어 몸을 돌려 장난감에 집중했다. 나는 눈물이 맺혀 흐린 시야로 아이를 보면서 내가 왜 우는지 궁금해했다.
- 2014년 4월 이 서재 글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인 현실' 중에서
이건 작년 4월 세월호와 관련해 이 서재에 적은 글인데, 작은 아이의 말로 글을 시작했다. 예전 블로그에선 아이와 관련한 글들을 별도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모아두었는데, 여기 서재에선 그런 구분 없이 그냥 일상이야기와 책 이야기를 섞어서 쓰고 있다. 아직 백일 정도 밖에 안된 아기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장면과 다섯살 아이가 내 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옮겨 봤다.
아이는 잠시 안 씻겠다고 버텼지만, 갑자기 '응가'를 외치더니 제 변기통을 찾아가서 앉았다. 한참 힘을 주더니 구수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엉덩이도 닦여야 하고, 머리도 감겨야 하니 아예 목욕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아이를 욕식에 데리고 들어갔다.
머리를 감기려고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뭐라뭐라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건성으로 그래그래 대답했다. 따뜻한 물에 머리칼을 적시고, 천연비누를 골고루 묻혀서 충분히 거품을 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조용해졌다. 눈도 감고 있었다. 숨소리도 규칙적으로 고르게 내고 있었다. 잠든 것이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씻다가 잠들었을까 싶었다. 따뜻한 물에 머리를 헹궈주면서 깨지않도록 조심조심 손을 놀렸다.
머리를 다 헹구고 엉덩이만 깨끗이 닦았다. 목욕은 내일 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조심조심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이제 제법 무거워진 아이를 한 손으로만 안고, 다른 한 손으로 닦아주는 게 쉽지 않았다. 머리 감기 전에 먼저 이를 닦도록 시켰던 것이 무척 다행이었다.
- 2008년 10월 예전 블로그 글 '머리 감기는 중 잠든 아이' 중에서
부천에 살았던 시절에는 근처에 공원이 여럿 있었다. 당시에는 자주 아이와 공원에서 놀곤 했다. 이 날은 하루종일 공원에서 뛰어다니고 놀아서 무척 피곤한 날이었다. 당시 나도 무척 피곤했었는데, 아이는 머리 감겨주는 중에 잠이 들었을 정도로 잘 놀았던 날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기억이 났는데, 당시에는 아이를 안고 머리를 감겼다. 쪼그려 앉은 내 무릎 위에 아이를 뉘여놓고, 왼 손으로 아이 머리를 받치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감겼다. 나중에 작은 아이는 이렇게 감기지 않았다. 아이을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에 앉혀놓고, 머리를 뒤로 제치게 한 다음 샤워기로 물을 뿌리고 감긴다.
이제 훌쩍 커버려 혼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는 큰 아이와 아직은 씻겨줘야 하는 작은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이 글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때 아빠가 이렇게 나를 씼겨줬지 라는 걸 기억이나 할까?
내 경우를 떠올려본다면 엄마가 나를 씼겨준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아빠와 목욕탕에 간 건 몇 건이 기억나는데, 숨도 못 쉬도록 물을 부어가며 머리를 감겼던 거나, 때를 쎄게 밀어서 아팠던 기억은 있다.
흠 시간 날때 사소하고 자잘한 기억을 남긴 글들을 어딘가 모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 블로그가 언제 닫을지 알 수 없고, 알라딘이 언제 서재를 중단할 지 알 수 없다. 웹에 있는 정보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보관해두려면 하드디스크에 문서로 남겨둬야 할까? 아예 인쇄해서 파일에 모아두어야 할까? 그런데 이 바쁜 삶에서 언제 그 많은 글들을 다 따로 저장해서 인쇄할까? 종이도 잉크도 무척 아까울 것 같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까지
2016년의 첫 날이 지나갔다. 2015년의 마지막은 늘 그렇듯이 술을 마시며 보냈다. 왁자지껄 여러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를 부르다가 12시가 되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옆 사람과 포옹했다. 외국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처럼 자정에 포옹을 하게 되다니. 난 그냥 쓴 소주를 한 잔 털어넣고 해가 바뀌었구나 생각만 하려 했는데, 옆 자리의 여성이 먼저 자신의 왼쪽에 앉은 여성을 껴안고는, 방향을 바꿔 나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음, 이거 껴안자는 제스쳐로구나. 거부하면 기분나빠하겠지. 뭐 이런 순간에 한번 껴안는게 무슨 문제가 되겠어 라고 생각하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는데, 그 분이 무척 쎄게 껴안아서 좀 놀랐다.
그 분은 1월 1일이 양력 생일이다. 보통 그 나이대 분들은 대체로 음력 생일을 지내시는데, 그 분은 양력 생일을 지낸다고 한다. 아들이 결혼해서 분가한 후로 생일날 늘 혼자였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는 12월 31일에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챙겨줘서 무척 고맙다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랬구나. 1월 1일이 생일이라면, 그 생일을 혼자 보내야 한다면 조금 쓸쓸할 것 같긴 하다.
몇 달 전 손자를 보고, 할머니가 된 그 분의 생일 케잌을 열심히 먹으며, 자리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새해 소망이나 각오를 나눴다. 난 속으로는 운동과 관련한 목표를 떠올렸다. 스내치, 데드리프트, 스퀏 무게를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 그러나 막상 내 차례가 되어서는 올해는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너무 정신없이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제발 2016년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운동도 열심히 할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