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해보니 작년 2월 12일에 '켈로이드와 스테로이드'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 전 해 가을에 무릎을 크게 다쳤는데, 상처는 아물었건만, 흉터가 크게 부풀어올라 여러모로 불편함을 겪었고,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절로 낫겠지 하는 마음에 병원은 가지 않고, 몇 달을 버티다가 결국 불편함을 못 참고 병원에 갔다가 '켈로이드'라는 처음 듣는 증상에 대해 알았던 날에 대해 쓴 글이다. 치료방법은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게 무척 날카로운 통증을 줬고, 한 달 혹은 반 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고, 상황에 따라 아주 오랫동안 맞아야 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오래 맞아도 잘 낫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다.
내 몸에는 흉터가 참 많은데, 이 나이가 되어 처음으로 켈로이드란 증상을 겪었다. 그런데 다들 켈로이드는 유전적인 영향이 크고, 체질의 문제라고 한다. 작년 봄 나는 갑자기 비염 증상이 계속되어 병원을 찾았다. 알러지성 비염이라는 처방을 받았는데, 좀 황당했다. 물론 평소 코가 좀 약한 편이라고 해야할까? 감기가 걸리면 코감기부터 걸리는 편이긴 했지만, 비염은 아니었다. 그런데 작년 봄 이후 지금껏 몸 컨디션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염이 없어지지 않는다. 한 며칠 증상이 없다가도, 어느 날엔 또 심해졌다. 최근 1~2년 사이에 내 몸에 큰 변화가 생긴걸까? 체질이 변할 걸까?
최근 5~6년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충분히 몸이 망가질만 하다고 느낀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야근도 잦았고, 주말에도 늘 뭔가 일정이 있었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에 대해서는 잘 지켜왔는데, 최근 그 시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할만큼 바빠졌다. 현재 내 결론은 지난 내 생활이 지금 내 몸을 변화시킨게 아닌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 여름 그러니까 약 5개월 전, 한밤중에 어느 술 취한 녀석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쳐서 나갔다가 녀석이 잡아 끌어서 넘어졌던 날, 그날 다친 무릎 상처가 또 제법 크고 깊었다. 재작년 다친 자리에서 약 손가락 마디 두 개 아래를 다쳤다. 이번에도 상처는 생각보다 빨리 아물었건만, 지난 번처럼 흉터가 부풀어 올라있었다. 불안했다. 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러 다녀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이 상처는 이전 상처보다 크기는 컸지만, 높이는 많이 부풀어오르지 않았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흉칙한 보라색 흉터가 작아진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가을무렵 밀양 송전탑 싸움을 했던 마을에 농활을 갔을 때, 무언가에 부딪혀 이 흉터가 찢어졌다. 다시 상처가 생긴 것이다. 신기하게 다시 생긴 상처가 아물고 나니 흉터는 확연히 줄어있었다. 크기는 많이 작아지지 않고, 여전히 넓었지만, 높이는 확실히 더 낮아졌고, 전체가 다 높게 부푼 것이 아니라, 일부만 부풀고, 일부는 쪼글아들어서 낮은 상태였다.
조금 희망을 가졌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흉터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이었다. 겨울이 되자, 이 흉터가 계속 간지럽고, 가끔은 옷에 쓸려 쓰라렸고, 실수로 기둥이나 난간, 책상 다리 등에 부딪히면 정말 아팠다. 겨울이 되면서부터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바빴다. 병원 갈 시간을 내지 못했다.
어제 밤 늦게 집에 들어왔더니, 큰 아이가 아파서 열도 살짝 나고, 갑자기 토하기도 했다. 오늘 아침 일찍 중요한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서는데, 아내도 아프다는 걸 알았다. 큰 아이도 학교를 빠져야 할만큼 아프고, 아내도 아프니, 결국 작은 아이는 내가 챙겨야 했는데, 오늘 따라 약속이 이른 시간이라 그럴 수 없었다. 미안하다고 되도록 일찍 돌아오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급한 일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러 조금 일을 하다가 일할 꺼리들을 잔뜩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아픈 큰 아이와 아내는 자고 있었고, 작은 아이는 혼자 깨서 심심해하고 있었다. 두 녀석 모두 학교와 어린이집을 못 갔다. 놀아 달라는 작은 아이와 조금 놀다가 컴퓨터를 켜고 일을 했다. 마음은 아픈 식구들을 돌보고, 작은 아이와도 놀아주고 싶었지만, 머리 속엔 기한 안에 일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제일 급한 일을 하나 마무리할 때 즈음 아내가 큰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 김에 나도 진료 요청을 했다. 아이는 장염이 심한데다 몸살 기운까지 있었다. 요즘 장염이 유행이라고 마을 주치의가 말했다. 아이의 약을 다 처방한 후, 주치의는 웃으며 내 볼일을 물었다. 좀 민망했다. 켈로이드가 다 나은지 1년 반 만에 또 같은 건으로 찾아오다니! 바지자락을 걷어올려 같은 무릎에 있는 상태가 완전히 다른 두 흉터를 보여줬다. 완치된 흉터는 이제 완전 납작해져, 여기 흉터가 있다는 것만 알수 있을 뿐, 이게 그렇게 크게 부풀어올랐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색깔도 피부색(아! 이거 습관적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단어를 썼다가 고쳤다.)이고, 만지거나 부딪쳐도 전혀 통증이 없다. 하지만 올 여름 다친 흉터는 이전 흉터의 상태에 비해서는 훨 양호하지만, 색갈도 푸르죽죽한 보라색에 부풀어 오른 부분이 계속 간지럽거나 따끔거렸고, 어쩌다 스치기만해도 엄청 아팠다.
주치의는 이제 간결하게 설명하고 바로 주사를 놓았다. 큰 아이는 목이 마르다기에 물 마시라고 진료실에서 내보냈다. 다행이다. 아무래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통증을 못 참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주치의가 주사 바늘을 손가락으로 튕길때, 대략 1년 10개월 전 처음으로 주사를 맞았던 날의 고통이 떠올랐다. 드디어 주사 바늘을 찌르는 순간 왼손은 자연스럽게 왼 허벅지 위에 두고 있었지만, 오른 손은 허리 뒤로 돌려 주먹을 꽉 쥐었다.(주치의가 주먹쥔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바늘이 처음 들어가는 순간에는 걱정한만큼 아프지는 않았는데, 이후 스테로이드를 살짝 주입하고 뺐다가 방향을 틀어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날카롭게 아픈 감각이 신경을 후벼팠다. 주사를 맞는 그 짧은 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마지막즈음엔 오른손 주먹이 얼얼할 정도였다. 다 끝나고 주치의가 "아프셨죠?" 하고 묻는데, 그저 헛 웃음만 허허 웃었다.
장염이라 밥을 먹지 못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죽을 포장해 집으로 돌아오면서 무릎을 제대로 굽히지 못해 절뚝거리며 걸었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참 길게 느껴지더라.
※ 세월호 청문회 소식을 조금 보다가 너무 화가나고 또 슬퍼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제 정신을 갖고 살 수 있을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곧 세월호를 잊고, 백남기 농민을 잊고, 아무렇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걸까? 설마 그런걸까? 하긴 우린 벌써 많은 열사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이승만과 수많은 친일파들과 박정희와 수많은 군부 독재 세력들과 전두환, 노태우와 수많은 하나회 출신들 그리고 광주 학살을 저지른 군인들을 잊고 살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와중에도 수많은 노동탄압과 비상식적인 사태들이 있었다.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강 다리가 무너지고, 어린 아이들이 불에 타죽고, 여중생들이 탱크에 깔려 죽기도 했다. 농민들이 경찰 곤봉과 방패에 맞아 죽기도 했다. 누군가는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는 바람에 인질로 잡혀 죽었다. 이명박은 강을 파헤치고, 수많은 혈세를 빼돌렸다.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을 더 강하게 밀어붙였고, 심지어 거짓으로 속여 외국에 팔아먹기도 했다. 똑같은 짓을 박근혜가 반복하고 있다. 바보같이 자기가 뭔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파리 기후변화 협약에 가서는 국제 망신을 당하고 왔다. 그리고 세월호는 아직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 있다. 한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다.
우린 일상을 살면서 이 모든 부조리한 일들을 다 기억하면서 살 수 없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하고, 기록이 중요하다고 본다. 바쁜 와중에도 해경에서 나온 증인들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는 내용은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 뭐? 애들이 철이 없어서 탈출을 안 했다던가 하는 헛소리를 지껄인 작자도 있었다는데, 저게 진짜 사람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