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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이런 말을 싫어하는 편인데, 가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도 한때는 말술이었어.", "나도 젊을 때는 체력이 엄청 좋았지.", "한때는 나도 인기 많았다구." 모두 과거 어느 시점을 지목하며 그땐 잘나갔다 뭐 이런 얘기다. 이런 꼰대같은 태도라니! 하지만 이 글의 시작도 이런 말로 해야겠다. 아무리 꼰대같아도 이건 사실이니까. 예전에는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 이게 뭐 자랑은 아니겠지만, 3일 연속 밤새워 술을 마시면서도 꼬박꼬박 출근했고, 일에 큰 지장을 주지도 않았다. 밤을 새웠다지만 새벽엔 술을 마시다 잠시 졸기도 했고, 출퇴근길, 외근길에 졸기도 했으니 아예 잠을 안 잤던 것은 아니다. 암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술마시면서 하루쯤 밤새는 건 뭐 큰일도 아니었으며, 이삼일씩 연속으로 밤새 술을 퍼마시기도 했다는 얘기. 술마실 때만 체력이 좋았던 건 아니다. 밤새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몇 편 연속으로 보거나 하는 날도 자주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피곤하긴 했다. 하지만 잠깐 졸고나면 나아지거나, 일상에 큰 영향이 없을 정도였다. 늦게까지 일을 해도 한두시간만 자고 일어나면 괜찮았다.

 

요즘 새삼 늙어간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밤새 술을 마시면 다음날 하루종일 정신을 못 차리고, 청탁 받은 글을 쓰거나, 밀린 일을 하면서 새벽까지 버텨도, 예전처럼 능률도 안 오르고, 얼마 못가서 막 졸리고, 한 두시간 자고 일어나려면 억지로 몸은 일으키는데, 도무지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임에도 밀린 일이 엄청나서 대략 두 달 가량 일주일에 5일 이상은 새벽까지 뭔가를 해야만 했다. 입안이 헐었다가 며칠만에 낫기도 했고, 코 속에 뭐가 나서 코가 붓기도 했고, 며칠 연속 가볍게 코피가 나기도 했고 도무지 몸이 못 버틴다는 신호가 계속 왔다. 그럼에도 나는 밤에 맘 편히 쉴 수 없었다. 밀린 일의 압박이 너무 심했다. 지난 주부터는 아예 저녁 아홉시쯤 애들을 씻기고, 재우면서 나도 함께 잠들었다가, 새벽 한두시쯤 일어나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밤을 새고 바로 출근하는 날이 많았고, 정 피곤한 날엔 한 시간만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다.

 

암튼 작년 연말에 이유없이 코 안이 헐어서 아직 낫질 않고 있는데, 해를 넘겨 붙들고 있는 일을 이번주 중에 꼭 끝내고 낫도록 해야겠다.

 

졸음운전 => 곡예운전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외근은 나가야 한다. 외근 일정이 잡힌 전날엔 가급적 평소보다는 많이 자려고 애쓰지만, 늘 지켜지지는 않는다. 피곤이 덜 풀린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날이 제법 많다. 오늘도 그랬다. 눈이 피곤해서 자꾸만 눈으로 손이 갔다. 시야가 평소보다 좁아졌고, 자주 흐려졌다. 춥다고 켜놓은 히터 때문에 더 졸음이 오는 듯했다. 올 겨울엔 정말 히터 켜놓고 달리다가 졸음 때문에 고생한 날이 제법 많다. 우리 집 차는 낡고 오래되어서 히터를 오래 켜놓아도 따뜻해지지 않기에 몰랐는데, 작년 초에 뽑은 회사 차는 히터가 굉장히 빵빵하다. 히터를 켜놓으면 졸리다는 사실을 이번 겨울에 처음 깨달았는데, 그 뒤로 여러번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고 히터를 끄면 손, 발이 시려워서 또 괴롭다. 껌이 있으면 좀 나은데, 뭔가 씹을 거리가 마땅치 않으면 슬슬 겁이 나기도 한다. 이러다 사고 나는거 아닌가 싶다. 빠른 음악을 크게 켜놓아도 별 소용이 없다.

 

이럴때 최후의 수단은 차라리 속도를 높이고 차들 사이로 곡예 운전을 하는거다. 속도를 높이면 나도 모르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인지, 심장 박동도 빨라지고, 자꾸만 감기고 흐려지던 눈도 번쩍 뜨인다. 눈을 부릅뜨고 차들 사이의 간격을 잘 살피고, 머리로는 끝없이 내 차의 속도와 앞, 뒤, 옆 차들의 속도를 계산하면서 차들을 제치고 나갈 길을 계산한다. 저절로 허리가 반듯하게 펴지고,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엑셀을 밟은 발에도 힘이 들어간다.

 

이 속도로 달리면서 자칫 실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즉,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긴장감에 절로 잠이 깬다. 이 방법의 최대 단점은 정체 지역과 구간속도단속 지역에서는 쓸 수가 없다는 점이고, 우리 집 차처럼 낡고 오래되어서 차의 성능이 따라주지 않으면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점이다. 회사 차처럼 성능이 좋은 차로 그닥 막힐 일이 없는 도로를 달리면 졸음 따위 금방 쫓아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간이 커야한다. 아니 배짱이 좋아야 한다고 표현해야하나?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속도를 팍 줄이거나, 각도를 틀어 스치듯 피해갈 수 있을 정도로 반사신경이 좋고, 운전 실력도 좋아야 한다. 오늘도 이렇게 졸음을 쫓았고, 덕분에 거래처와의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관심 신간

 

요새는 통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간을 보면 자꾸 책 욕심이 든다.

음, 한동안 책을 안사다가 오랜만에 나한테 주는 선물처럼 좀 비싼 책을 사면 안될까?

암튼 일단 관심이 가는 책들을 기록해두어야 겠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데려와야지!

 

 

 

 

 

 

 

 

 

 

 

 

 

 

이 글을 써놓고, 책 표지를 집어넣고 보니, 피터 싱어의 책 제목이 나에게 묻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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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4-01-07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졸음운전에는 휴식밖에 없어요.암만 회사일이 중해도 건강이 최고지요.
그나저나 늦었지만 감은빛님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면 새해 복많이 받으셔용^O^

감은빛 2014-01-08 12:43   좋아요 0 | URL
네,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운전중에는 엄청 졸리다가도
막상 쉬려고 휴게소에 들어가면 또 잠이 안오는 경우도 많아요.
제 경우는 거의 시간에 쫓겨 다니느라 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지만요.

축하 고맙습니다!
카스피님도 축하드립니다!

2014-01-08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8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해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꾸만 생기는 오해 때문에 아예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래도 또 오해는 생기겠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을 닫고 있는 나를 보는 이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으로 나의 생각을 읽어내려 할 테니까. 하긴 내 생각이라는 것에 대해 가끔은 나 조차도 헷갈릴 때가 있는데, 남이 어떻게 내 생각을 알 수 있겠어? 삶에서 오해란 일상적으로 늘 발생하는 것. 필수적인 것이겠지.


상처


그래. 좋아! 오해는 생길 수 밖에 없어. 그런데 그 오해로 인해 입은 상처는 또 어떻게 해야하지? 오해가 반드시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뒤따라오는 상처도 역시 삶에서 필수적인 것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어느 유명인이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다던데, 청춘을 한참 지난 나는 왜 늘 아픈 걸까? 아직도 청춘이라 여기라는 건가? 아니면 청춘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늘 아픈 걸까?

아니. 그래. 다 좋아! 아플 수도 있지. 아프기도 하고 또 낫기도 하는 것이 인생일테니. 그런데 이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패턴이 지겨워 질때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잠시 아픈 건 참을 수 있어. 하지만 아픈 상처가 채 낫기도 전에 또 상처입고 또 상처입게 될 거라는 게 뻔히 눈에 보일 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연말 풍경


연말은 늘 똑같아. 지겹도록 술을 마시고 또 다음날이면 술을 마셔야 하고 또 그 다음날에도 술을 마셔야 하고. 술자리 얘기도 대개 비슷해. 지난 1년간 수고 많았고, 또 다음 1년간 수고해라! 뭐 이런거지. 이 역시 완전 똑같은 패턴. 물론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기는 해. 하지만 내 머리는 그리 좋지 않아. 디테일은 늘 쉽게 잊어.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떠들고 마셨던 그 날의 기억이 작년 것인지, 재작년 것인지, 아니면 삼사년 전의 것인지도 가물가물해. 올해는 철도 민영화, 안녕들, 밀양 송전탑, 의료 민영화 등이 술자리에서 거론되었지만, 어느 해라고 안그랬나? 김대중 시절에도, 노무현 시절에도, 이명박 시절에도 늘 정부는 서민들의 목을 졸라댔고, 우리는 그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뭐 하나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늘 술을 마셨지.


나랑 상관없는 어느 서양인의 생일


내일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느 서양인의 생일이라는데, 아니 그 동네가 서양이었던가, 동양이었던가, 모르겠다. 암튼 십자가에 매달린 그 모습은 서양사람 느낌이니 그냥 서양인이라고 하자. 아주 옛날에 살았던 분이라는데, 심지어 그 생일도 실제로 그 분의 생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데, 왜 우리는 그런 사람의 생일을 기념해야 하는 거야? 아, 물론 이렇게 말하면 역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어느 인도인의 생일을 기리는 날을 들먹일거야. 그래. 나는 그것도 이상하다 생각해. 그치만 인도인의 생일을 기리는 분위기와 서양인의 생일을 기리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 쯤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거야.

거리에 흘러넘치는 해마다 똑같은 음악들은 지겨워! 나무들에게 뜨거운 전구를 잔뜩 달아서 눈을 어지럽히는 짓거리도 꼴보기 싫어. 아름답다고? 예쁘다고? 누군가 너에게 뜨거운 전구를 잔뜩 매달고 아름답다고 감탄하면 네 기분은 어떨까? 넌 전구가 무겁고, 칭칭 감겨있는 전선이 갑갑하고 답답하고, 열을 내는 전구들이 뜨거워 괴롭기만 한데 말야.

흰 수염에 배 나온 할아버지가 선물을 나눠준다는 괴상한 얘긴 정말 듣고 있기 힘들어. 썰매를 타고 날아다닌다고? 그 배 나온 할아버지가 굴뚝을 통과해서 다닌다고? 굴뚝이 없는 집은 어떻게 할거야? 게다가 이거 불법주거침입이잖아. 선물이란 것도 그래. 사람마다 갖고 싶은 게 다 다를테고, 물질적인 것 만이 아닌 다른 특별한 것들도 많을거야. 그 할아버지가 대체 어떻게 모든 이들에게 다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거니?


오늘 밤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마. 오늘은 그냥 12월 24일이란 숫자가 매겨진 하루일 뿐이야. 그저 어제와 똑같고, 내일과도 똑같을 하루. 괜한 의미를 부여했다가 나중에 더 실망하지 말고 그냥 평소처럼 지내. 그래 그게 제일 좋을거야. 너에게도 또 나에게도.


어느 추운 겨울 날 내가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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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12-24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 모르는 그 분의 생일에 관해;

우리나라의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문화는 외래 문화의 창조적 수용이라고 밖에 해석이 안 되지만, 아니면 서양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날이 감사하기 좋은 날로 생각합니다. 실제 그 분은 언제 태어났는지조차 모르고, 내일 그분의 생일은 동지에 맞춰진 기념일입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정리하고 반성하고 새해를 계획하기 좋은 ... 저의 제안입니다.

감은빛 2013-12-26 11:35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안녕하세요.

어제였죠.
그날은 감사하는 날이라기보다는 먹고 마시고 노는 날인 듯해요.

마립간님의 말씀과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믿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생일에
한 해를 정리하고, 반성하고, 새해를 계획하고, 누군가에게 감사하고 싶진 않습니다.
우리는 옛부터 설날(구정)에 그런 일들을 해왔죠.
요새는 양력 1월 1일(흔히 신정이라 부르는)에 그런 일을 하기도 하구요.

2013-12-24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6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3-12-25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하이....
추운날 술 많이 드시면, 더 추워요. 적당하게 드세요. ^^

그러게요...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존재인지라
오해를 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그러네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말하지 않으면 몰라, 말해도 다 모르는걸... 이라고 항상 제 스승님이 말씀하세요.
그게 슬프기도 하지만, 그냥 한계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중이예요.
저는 40대 중반인데도, 상처 잘 받는걸요, 평생 이럴거 같아요.
그래도... 감은빛님을 만난 날, 즐거웠어요. 시간을 통 내지 못 하고 다시 못 만나고 있지만요.

감은빛 2013-12-26 11:4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녀고양이님.

술 자리가 많네요.
술을 조금만 먹어야지 생각해도,
늘 시국 얘기하다보면 자꾸 들어가고,
술이 취하니 더 술을 들이키게 되네요.
술을 좀 줄여보려고 저도 나름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죠. 늘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존재이죠.
바보처럼 그렇지 않다고,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진심은 통한다! 뭐 이런 말을 계속 믿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믿지 않을래요.

저도 그날 생각이 종종 나네요.
지금보다 조금 이른 시기였죠.
연말 분위기가 나는 추운 겨울날.
또 기회가 되면 즐겁게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을게요. ^^
 

음식솜씨

 

음식을 잘 만드는 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딱히 요리라고 부를만한 대단한 음식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음식을 만드는 데 나름 재주가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전형적인 경상도 집안에서 나고 자라 부엌일을 해볼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몸이 약한 어머니께서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가끔 공장에 일을 나가셨는데, 그때 동생 밥을 챙겨주느라 계란을 굽고, 라면을 끓이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어린 내가 할줄 아는 건 뻔했다. 맨날 라면과 김치와 계란만 먹는 것이 지겨워서 라면을 끓일때마다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대부분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혼자 생각하고 해봤는데, 의외로 맛은 괜찮았다(고 기억한다.).

 

본격적으로 내가 음식을 좀 하는데 라는 잘난척이 시작된 건 자취생활을 하던 때였다. 앞서 말했듯, 딱히 잘하는 음식을 꼽기는 뭐하지만 대부분 내가 만든 음식은 괜찮았다. 대학 시절 어느 날 어머니가 안 계실 때, 냉장고에 콩나물이 있길래, 아버지께 콩나물 국을 끓여드렸는데, 드시기 전에는 미심쩍어 하시더니, 드신 후에는 '니가 너거 엄마보다 낫다.'고 말했다. 그날 난 콩나물 국을 처음 끓여본 거였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그냥 혼자 생각한 대로 끓인 거다. 알고 있던 사실은 딱 하나였다. 콩나물이 다 익기 전에 뚜껑을 열면 콩나물 비린내가 나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거였다. 물론 아버지가 그냥 아들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씀일 수 있다. 평생 내공을 쌓아온 어머니께 내가 비교나 되겠는가! 그저 비기너스 럭(초심자의 운)일 수도 있다. 어쩌다 소 발에 쥐 잡은 격으로 말이다.

 

한때 농사짓는 마을에 살 때는 옆집 형님이 놀러왔길래 김치찌개를 대접했다. 그 형님은 고향인 평택을 떠나 이곳저곳 떠돌며 여러 사업을 전전했고, 그 중엔 식당 운영도 있었다고 했다. 형님은 아무래도 못미더운 표정으로 내가 부엌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찌개를 먹기 직전까지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거 내가 못먹을 음식에 손을 대는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그 형님도 내 솜씨를 인정. 사실 다른 재료가 없어 멸치 다시 국물에 김치만 넣고 끓인 거였다. 냉장고에 남아 있는 각종 쌈채소를 잘게 썰어 넣은 게 나름 독특한 승부수였다. 형님은 아주 만족해하며 내 음식 솜씨를 인정했다.

 

이번에 세 차례의 집들이를 하면서 어떤 음식을 대접해야 하나 잠시 고민한 적이 있었다. 몇 가지 음식을 떠올리긴 했지만, 막상 집들이 때는 재료를 준비하지 못했다. 두번째 집들이 때, 아내가 김치전 재료를 준비해뒀는데 그게 내 실력을 발휘할 유일한 기회였다. 전부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얘길 여러 차례 들었다. 내공이 뛰어난 주부들에게 들은 칭찬이라 조금 우쭐했다. 요즘은 예전만큼 자주 음식을 만들지 않아서 솜씨가 많이 녹슬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기본은 하는 구나 싶었다.

 

한밤의 김장

 

한때 내가 자신있었던 메뉴 중 하나는 부추 무침, 부추 오이 무침이었다. 고춧가루와 소금으로 간을 보고 마늘과 각종 양념들로 맛을 내는 무침 류의 음식에 자신있었다. 김장을 직접 해보기 전에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결혼 후 해마다 가까이 계시는 장모님의 지도로 김치를 담가보니, 내가 자신있었던 그런 류의 음식이었다. 김장을 한번 해보니 다음에는 혼자 소량의 배추로 겉절이 김치를 뚝딱 만들수도 있었다.

 

우리 집은 아내가 채식을 하기에 젓갈류가 안들어간, 남들과는 다른 김치를 담근다. 작년까지는 년중 행사이니만큼 장모님과 아내가 일정을 조절해서 주말 하루 날을 잡아 김장을 했는데, 올해는 아내와 장모님 모두 바빠서 그랬는지, 계속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결국 주문해놓은 절임배추가 평일인 어제 도착했고, 아내는 저녁에 퇴근 후 둘이서 김장을 하자고 했다.

 

밤 10시 반이 넘어, 아이들을 재워놓고(사실은 방에 불끄고 문 닫아두고, 떠들지 말고 자라고 윽박질러놓고)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를 할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고, 둘 다 피곤해서 그냥 오늘은 준비만 해놓고 잘 생각이었다. 아내는 꼼꼼하게 재료들을 구해놓았는데, 그것들을 다듬고, 씻고, 물을 빼기 위해 채반에 받쳐두는 것까지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무를 채칼로 가는 일은 약간의 기술과 힘을 필요로 한다. 김장때 늘 내가 하던 일이다. 난 쪽파를 다 다듬고 씻은 후에 무를 채칼로 갈기 시작했다. 무채가 수북이 쌓여 있는 걸 보더니,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무채를 미리 만들어놓으면 맛이 없다는데, 그냥 지금 양념을 만들어 둘까요?' 난 그러자고 했고 우린 또 바삐 움직였다. 채칼로 배를 갈고, 갓과 쪽파를 썰고, 찹쌀을 쑤는 등 바빴다. 이때까지만해도 양념만 만들어 놓고 김장은 내일 할 생각이었다. 시간은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그때 다시 아내가 아예 그냥 지금 김장을 해버리자고 제안했다. 조금 피곤했지만 이왕 손을 댄거 그냥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절인 배추의 소금물을 빼기 위해 넓은 채반에 받쳐두고 다른 재료들을 장만했다. 아내가 30분만 물을 빼도 된다고 들었다 했는데, 거의 한 시간이 지나도 물이 덜 빠졌길래, 내가 손으로 하나씩 짰다. 배추에 속을 넣는 일은 내가 했다. 여러 해 반복해서 하다보니 동작이 손에 익었다. 장모님도 늘 손이 빠르고 잘 한다고 칭찬해주셨다. 어제는 워낙 피곤해서 손이 더 빨라졌다. 배추도 양이 적었기 때문에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잽싸게 김장을 끝내고 한 포기는 겉절이를 만들고, 남은 갓과 쪽파를 함께 버무려서 또 한 종류의 김치를 만들었다. 여기까지 하고나니 시간은 새벽 3시가 조금 넘었다.

 

정말이지 쓰러져 자고 싶었지만, 어지럽게 널려 있는 도구들과 재료들을 모두 치워야 했다. 크기가 제각각인 큰 다라이와 채반들을 깨끗하게 씻어서 포개놓고, 각종 그릇과 통들을 씻고, 바닥을 닦고 어쩌고 하다보니 시간은 4시를 넘었다. 이제부터 잠을 자도 얼마 못자고 출근 준비를 해야하는 구나. 김장을 하느라 아픈 허리와 무릎을 두드리고 주무르며 다시는 한밤에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냥 밤에 잠을 못자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거늘, 고된 육체노동까지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으랴. 나는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잠을 잘 못자는 편인데, 딱 그 순간이 그랬다. 아내는 씻고 곧 뻗었으나, 난 씻고 나오니 다시 정신이 말똥해졌다. 이럴때 방법은 하나다. 술을 한 잔 하고 눕는 거다. 술을 꺼내 안주도 없이 세 잔을 거푸 마시고 누워도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한참을 뒤척였는데 어떻게 잠들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마 기절하듯 순간적으로 잠이 들지 않았을까?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참 싫다! 따뜻한 이불 아래서 딱 한 숨만 더 자면 안될까? 오늘 아침엔 추위와 피로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미친 짓 같았지만 그래도 어제 김장을 끝내둬서 다행이다. 오늘 퇴근해서 김장을 해야 한다 생각하면 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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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3-11-28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남편은 음식은 아니고 청소 전문이라는, ㅋ~.
난 나 앉을 곳만 깨끗하면 된다는 주의여서,
이리저리 밀춰놓고 앉는데...
울남편은 창문 틈의 먼지를 손가락으로 쓸어가며 검사를 한답니다.
덕분에 이젠, 각자의 몫이 완전히 정해져서...
우리집은 음식은 내가, 청소는 남편이 하는 완전 분업화된 가족입니다여, ㅋ~.

날도 추운데 고생하셨네요.
어제라서 다행이예요, 오늘은 더 추워요~^^

감은빛 2013-11-28 15:49   좋아요 0 | URL
분업이 잘 되어있군요! ^^
저희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요즘은 집에서 음식을 거의 안 하거든요.
재료와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건지,
귀찮아서 안 하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음식을 안 하니, 설겆이나 청소라도 열심히 해야죠. 뭐.

라주미힌 2013-11-28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장 배우고 싶네요 ... ㅎ

감은빛 2013-12-02 12:43   좋아요 0 | URL
전 사실 배우고 싶어 배운 건 아닙니다.
어머니와 장모님 두 분께 번갈아 배우셔요!

단발머리 2013-11-2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완전 멋지세요.
일단 올해 자체판단 대김장기여도 7.8에 성공한 저의 객관적인 판정에 의하면,
감은빛님은 대김장 기여도 8에 육박하시네요.
아, 아내분은요.
아내분은, 대김장 기여도 9.2세요.
이건 전체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점수 받는 거거든요.

수고하셨어요~~.
다음에 부추 무침, 부추 오이 무침 레시피 좀 올려주실 수 있어요?
저, 주부인데, 여기서 레시피 물어봐도 되나요? @@

감은빛 2013-12-02 12:4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저의 기여도를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근데 저보다는 단발머리님께서 더 고생하신 듯한데,
제가 좀 더 낮게 나와야하지 않을까요?

레시피는 따로 없어요.
글에도 적어놓았는데, 저는 따로 공식처럼 음식을 만들지 않아서요.
그냥 그때 그때 기분내키는대로,
즉, 손이 가는대로 만든답니다.

게다가 제가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단발머리님보다는 못 할 것 같은걸요.
 

 

 

 

 

 

 

 

 

 

 

 

 

 

 

알라딘 인문 엠디가 페이스북에 이 책의 표지와 함께 다음의 글을 올렸다.

 

#오늘의제목 <남자는 언제나 이유를 모른다>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뭐가 미안한 건데?" 어떤 면접 압박 보다도 어려운 공포의 질문들.

 

여기에 번역자인 친한 형이 '남자를 위한 책일까, 여자를 위한 책일까?' 라고 댓글을 달았다. 나는 표지를 보는 순간 딱! 이건 늘 궁지에 몰리는 남자들을 위한 지침서 같은 책이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아마 남자를 위한 책인 것 같다는 의견을 댓글로 남겼다. 다만 엔터를 치기 전에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남자를 이해하도록 돕는 용도의 여자를 위한 책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읽어봐야 알 수 있겠다는 도망갈 구멍을 하나 만들어 뒀다. 그러자 그 형이 '남자를 겨냥한 책이 (감히) 저런 제목을 달았다면 많이 안 팔릴 것 같은데… ^^' 라는 댓글을 다시 올렸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난 평소 저런 생각을 자주 해서, 딱 제목만 봐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은데. 일단은 그 형의 의견에 동의하고 넘어갔는데, 한참 후에 다시 댓글이 달렸다. 목차 등 책 정보를 살펴본 그 형이 저자도 남자이고, 남자들을 독자로 겨냥한 책이 맞는 듯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제목이 맘에 안 드는지, '남자에게 이유를 묻지 마라' 정도의 제목이 어땠을까라는 제안을 했다. 음, 난 여전히 저 제목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어서 별로 제목에 대한 의견은 없었고, 이 정도 대화를 하고 보니 책 정보라도 한번 봐야겠다 싶어서 나도 목차와 저자 정보를 읽었다. 일본인 저자는 남성인 듯하고, 번역자는 (이름만 봐서는) 여성인 듯하다. 내용은 확실히 남자들을 위한 책이다. 정말 궁지에 몰렸을 때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재미로 한 번쯤 읽어볼 만하겠다 싶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여기에 '원제=여자는 남자의 어디를 봐야 할까.'라는 댓글을 남겼고, 아마도 여성이 아닐까 생각되는 두 분이 각각 '어떤 면접압박보다 어려운 질문들....이라니ㅎㅎㅎㅎㅎ'와 '그걸 왜 모를까요... ㅎㅎㅎㅎ'라는 댓글을 남겼다.

 

'그걸 왜 모를까요' 라는 댓글을 남긴 여성분과 친분이 없어, 직접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모를 수밖에 없다.'는 답을 드리고 싶다. 저 질문은 반대로 여성들도 남성들이 '왜 모르는지'를 모른다는 뜻이다. 하긴 여성과 남성으로 단순화해서 그렇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본다.) 나는 늘 또래 친구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서울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연애를 할 때는 여자친구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결혼하고 나니 아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아이들 입장에 쉽게 서지 못해 어려움이 많고, 직장 생활에서는 사장님과 직속상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평직원의 입장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뿐인가 대학 동기들, 친한 친구들, 선후배들, 함께 활동하는 동지들 등등 누구 하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연애 시절, 갑자기 표정과 분위기가 변한 여자친구는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였다. 이 데이트를 위해 얼마나 기다렸고, 얼마나 설렜는데, 지금 이렇게 망쳐버리다니. 아니 근데, 대체 왜 화가 난 걸까? 왜 기분이 나빠졌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 수 없다. 이러다 싸움으로 번지면 으레 질문을 당한다. '왜 화났는지 알아?' 알 수 없다. 알라딘 인문 엠디의 표현처럼 면접관의 질문보다 더 어렵고 긴장되는 것이 여자친구 혹은 아내의 질문(혹은 추궁)이다.

 

아내와 자주 다툰 덕분에 아내도 이젠 내가 모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내가 아내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그 원인을 쉽게 깨닫지 못하듯, 아내 역시 내 기분 변화와 그 원인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해봐도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그게 왜 기분이 나쁜 걸까? 왜 그 말에 화를 내는 걸까?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봐도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이쯤 되면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포기하는 게 낫다. 굳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의 심정을 쫓으려 애쓰기보다는 상대의 그 감정과 원인을 그대로 인정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그리고 상대를 존중해서 되도록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더 중요할 것이다. 연애와 결혼 생활을 거쳐 여기까지는 어렵게 어렵게 왔다. 그런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문제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거다. 그리고 지독하게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거다. 한바탕 서로의 생활 방식과 의견 충돌로 싸움이 생기고, 어렵게 화해를 하고 나면 당분간은 서로 조심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새 긴장이 풀리고 자신도 모르게 같은 일이 반복된다. 개인마다 경우는 다르겠지만, 분명 노력한다고 실수를 완벽하게 보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답은 아마도 서로의 실수를 감싸주는 포용력이 아닐까? 젊은 시절 한때는 '사랑'이란 단어에 대한 어떤 환상 혹은 집착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랑한다는 감정 하나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더는 사랑이란 말을 믿지 않는다. 다만 서로 위하는 마음,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 이해하지 못해도 감싸줄 수 있는 마음, 이런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

겨울비가 내린다. 11월 30일 밀양 탈핵버스를 탈까 말까를 놓고 며칠째 고민 중이다. 요즘 계속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주말만이라도 좀 쉬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 토요일에는 이미 다른 일정도 있다. 하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밀양에 가보지 못한 것이 계속 맘에 걸린다. 지난 토요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탈핵 집회에는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지만, 기대만큼 많은 수는 아니었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사태와 천주교 신부님들의 시국선언까지 그레이트 어메이징 스펙타클 판타스틱 정국에서 밀양과 강정은 점점 잊혀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공사가 재개된 후 이 추운 날씨에 날마다 경찰과 한전 직원과 중장비와 맞서고 있을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달려가 봐야 할 텐데. 에이 우울한 마음에 또 술 생각이 간절하다. 요즘 거의 매일 마셨건만, 술을 마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너무 많다. 내가 나중에 일찍 죽는다면, 그건 술 때문이 아니라, 부패 정치인들, 부패 관료들, 핵마피아들, 건설마피아들, 돈에 눈 먼 기업인들, 정치 깡패들, 용역 깡패들, 권력에 눈 먼 경찰들과 검찰들과 판사들 등등 이 사회 각지에 뿌리 내리고 있는 썩은 인간들 때문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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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3-11-26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 책을 서점 가서 죽치고 봐야 겠어요. 이런 주제의 책들을 좀 가지고 있어 비교해 보고 좋으면 알라딘에서 냉큼 주문해야지요^^

감은빛님은 정말 열심히십니다. 전 그런 생각도 못하고 산답니다. 추운데 공사를 저지할 어떤 힘도 없어 매우 우울하군요~ 전달 보니, 신림역 앞에서 막 서명도 받고 그러던데.. 에휴~

감은빛 2013-11-27 14:16   좋아요 0 | URL
실물을 보지 못해 좋은 책일지 어떨지 모르겠어요.
살펴보시고 좋으면 알려주세요.

늘 투쟁 현장의 소식을 접하고 살지만,
매여있는 몸이다 보니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죄스럽고 미안합니다.
강정 해군기지,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 영양댐, 강원도 골프장, 내성천 등등
지금도 수많은 개발 현장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뿐인가요?
쌍차(쌍용자동차)와 현기차(현대, 기아자동차), 콜트 콜텍, 발레오 공조 등 장기투쟁 사업장들도 많죠.

온갖 현장들에서 들어오는 소식들을 듣고 있으면 따뜻한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참 한심하다 느껴집니다.
당장 생업을 작파하고 달려갈 수도 없으니 안타깝네요.

비로그인 2013-11-26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탈핵집회에 꼭 가고 싶었는데 못 갔어요 ㅠㅠ 김익중교수님, 한국탈핵이라도 열심히 읽고 리뷰 써야겠어요
감은빛님 일찍 죽으면 안돼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당당하게 그넘들의 수명을 단축시켜야죠~같이 화이팅해요!!!

감은빛 2013-11-27 14:19   좋아요 0 | URL
그날 김익중 교수님께서 속 시원하게 연설해주셔서 모두 힘이 났어요.
탈핵은 세계적인 추세이고,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말씀.
저도 그 책 읽어야 하는데, 잊고 있었네요.
아른님의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일찍 죽고 싶진 않지만, 스트레스와 술과 과로로 오래 살것 같진 않네요.
그 넘들의 수명을 과연 단축시킬 수 있을까요?
그래도 아른님이 응원해주시니 힘 내겠습니다!
함께 힘내 봅시다! ^^

루쉰P 2013-11-26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 여전히 ㅋ
요즘 루쉰 선생을 읽는 데 무덤 서문에 이런 글을 쓰시더군여.
대충 풀자면
'나는 요즘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고 오래 살려고 하고 있다. 왜냐면 세상을 마음 껏 하는 무리들에게 오래 살아 글이라도몇 편 지어 그들을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 위함이다.'
루쉰 선생 역시 권력자들에게 그들이 마음데로 하는 세상을 자신의 위치에서 불편하게 하고자 오래 살거라 결의 하셨는 데 감은빛님도 절대 몸 망가 뜨리지 마세요 ^^
그건 적에게 이로운 겁니다 ㅎ

감은빛 2013-11-27 14:22   좋아요 0 | URL
대단씩이나 할 건 없어요.
일이 많아져서 예전처럼 집회나 현장을 못 가보고 살고 있으니까요.

루쉰 선생의 말씀이 맞지만,
그건 루쉰 선생 정도 되는 분이니 가능하지요.
저야 뭐 일찍 죽던 오래 살던 그들에게 별 영향도 못 미칠텐데요.

루쉰님 댓글 오랫만에 보니 참 좋네요!
자주 오셔서 글도 쓰시고, 댓글도 종종 써주세요! ^^

노이에자이트 2013-11-2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이웃에는 알콜중독 아줌마가 있습니다.잊을 만하면 난동을 부리는데 온 동네(복도식 아파트)가 들썩거립니다.그걸 생각하며 이 글을 읽으니 심정이 복잡하네요.

감은빛 2013-11-28 15:35   좋아요 0 | URL
그런 분들이 동네마다 한 분씩 계시는 듯해요.
예전 살던 곳에도, 지금 이사온 곳에도 꼭 그런 분이 계시네요.
그 복잡한 심정을 알듯 말듯 하네요.

2013-11-28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8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3-11-28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존 그레이 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보고 많이 배웠어요.
개정판이 나오기 전에 읽었는데, 남자와 여자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거죠.
부부 생횔에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에요. 저자가 그것을 겨낭하고 쓴 책이니까요.

자기의 마음도 모를 때가 있는데, 상대의 마음을 알기란 얼마나 어려울까요.
하지만 이런 류의 책을 보며 노력하는 자는 그렇지 않은 자보단 살기가 더 쉬워 질 거라고
믿습니다.

감은빛 2013-11-28 15:4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보자마자 그 책이 딱 떠오르더라구요.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를지 모르겠네요.

저는 이런 류의 책들이 오히려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 이렇게 못박아버리고,
모든 현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도 좀 우려가 됩니다.

다른 분들은 부부생활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둘 다 '화성남, 금성녀'를 읽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어요.
책은 책이고, 현실은 현실이니까요.
그래도 다르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점,
또 다른 신화를 만들긴 했지만 신화 자체를 드러낸 점 등은
인정받을 만한 공로라고 생각합니다.
 

꿈보다 해몽

 

오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1.
에너지 음료 2개(1+1 구매)를 마시면 42시간 동안 잠을 안자고도 버틸 수 있다.

2.
37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에너지 음료 2개의 효능도 떨어지는데, 이때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다시 멀쩡해진다.

3.
42시간 잠을 자지 않고, 에너지 음료 2개를 마시고, 정종과 맥주를 여러잔 마시면 취한다.

4.
잠을 잘자고, 에너지 음료를 마시지 않고, 정종과 맥주를 여러잔 마셔도 취한다.

5.
술에 취한 다음 날엔 쓸데없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 분이 이 쓸데없는 글이 좋다고 댓글을 남겼다. 나는 이글의 어떤 점이 좋은지 궁금하다고 댓글을 달았고, 한참 후에 그 분이 다시 아래와 같은 답을 달았다.

 

하하. 에너지 음료와 술 권하는 뭔가에게 건조하고 담담하게 투정하는 듯해 짠하면서도 마지막 짧은 '봄'이 좋네요.

 

그야말로 멋진 해석이다.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고, 이런 쓸데없는 글에는 과분한 해석이다. 어쨌거나 결론은 에너지 음료 2개면 42시간 동안 버틸수 있다는 것이다!

 

 

의미부여

 

오늘 점심은 내장탕을 먹으러 갔다. 맛있는 집을 가기 위해 차로 이동했는데, 얼마전 들어온 신입 편집자가 내 옆에 앉았다. 운전자 포함 5명이라 우린 서로 붙어 앉을 수 밖에 없었는데, 내가 앉자마자 신입은 코에 손을 대며 "팀장님, 이거 술 냄새예요?" 라고 물었다. 아, 나한테서 술 냄새가 아주 심하게 나나보다. 나는 순순히 "네."라고 답했고, 신입은 "대체 얼마나 드신거예요?" 라고 다시 물었다. "글쎄요. 세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많이 먹었어요." 나는 되도록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리며 답했다. 그리고 신입은 계속 안주는 뭘 먹었냐, 누구랑 마셨냐, 몇 시까지 마셨냐 등을 물었다. 이 여자가 민망하게 왜 자꾸 캐묻나 싶었지만, 건성으로라도 답은 해줬다.

 

내장탕을 맛있게 먹고 돌아오는 차에는 또 신입이 내 옆에 붙어 앉았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팀장님한테 나는 이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참 정겨운 느낌이예요!" 아내는 술 냄새와 담배 냄새를 질색하는데, 이 친구는 정겹다니. 이런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나 싶었다. 그런데 얘길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술과 담배를 즐기셔서 항상 그 냄새를 맡고 자랐다고 한다. 같이 살 때는 늘 그 냄새를 맡는 것이 싫었는데, 이제 떨어져 살다보니 그 냄새를 맡으면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그래서 정겨운 느낌이라고 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술 냄새, 담배 냄새에서 아버지를 떠올린 것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에 어떤,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테면 'Never gonna falling love again'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어떤 장면, 구체적인 장소와 사람과 분위기와 행동들을 떠올린다거나, 오래된 등산화를 신으면 몇년 몇월 몇시쯤 어느 산을 올랐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기억이나 연상은 당시의 기분을 그대로 불러온다. 한편 당시의 기분과 상관없이 그저 그리운 느낌만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당시에는 화가 났거나 슬펐다해도 지금 떠올릴 때에는 그저 그리울 뿐일 때가 가끔 있다.

 

하필 술 냄새와 담배 냄새로 기억되는 아버지가 썩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친구에게는 특별한 의미일 것이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은 나를 무엇으로 기억하고 떠올리게 될지 궁금하다.

 

 

요즘은 소설 보다 역사책이 더 땡긴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근현대사 책에 자꾸 손이 가고, 눈이 간다. 오늘 살펴본 책은 요거! 조만간 주문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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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3-11-2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빠 담배 냄새가 좋았는 걸요. 울 언니들은 질색했지만. 아빠의 담배냄새와 까슬한 턱수염 촉감이 아직도 기억나요. 생신이라고'솔'담배를 선물했다고 초등학교 2학년 일기장에는 적혀있더라고요. ^^ 뭐 좋은 거라고. ㅋ 어린 맘에 아빠가 젤 좋아하는거라고 선물해드렸나봐요.

그런 아버지가 이제 안 계시니, 참.. 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여기서 괜히 아버지 타령을.. ^^

감은빛 2013-11-25 18:47   좋아요 0 | URL
담배 냄새는 대개 좋아하지 않던데요.
특히 여성분들은 더욱.

'솔', 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저는 담배를 선물한 적은 없지만,
담배 심부름, 술 심부름은 참 많이 했어요.
그때 '솔'을 자주 사러다녔어요.

담배를 선물 받은 아버님께서 북극곰님을 참 예뻐해주셨을 것 같아요.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래 기억되시겠어요.

2013-11-21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5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클 2013-11-22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고 제 옷에 나는 냄새 킁킁 맡아보니 섬유유연제 냄새와 스킨 냄새만 나네요. 저만의 냄새는 별로 없는 듯. 개발 좀 해야겠는걸요? ^^

감은빛 2013-11-25 18:49   좋아요 0 | URL
대개 스킨이나 향수 냄새가 자신만의 향기가 되는 것 같아요.
저야말로 얼굴에 뭘 바르는 걸 귀찮아해서,
저만의 냄새가 없는 듯 해요.

마녀고양이 2013-11-2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는 에너지 음료 한잔 마시고 그날은 어찌 버티는데,
땅겨쓴 에너지로 인해 이후 이틀은 잠만 자댑니다... 에너지 음료, 오, 싫어... ^^

감은빛 2013-11-25 18:50   좋아요 0 | URL
대개 에너지 음료로 밤을 새고나면 다음날엔 죽을 것처럼 피곤하더라구요.
저도 한 이틀 푹 잠만 잤으면 좋겠어요.
요즘 잠이 참 모자라네요!

페크pek0501 2013-11-2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스북에 남긴 글,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 놓은 것이 재밌네요.

"5. 술에 취한 다음 날엔 쓸데없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 저는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쓸데없는 글을 쓸 때가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기로 했어요.
쓸데없는 글이 어떤 이에겐 쓸데없지 않은 글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쓸데있는 글이
어떤 이에겐 쓸데없는 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래서는 아니고...
쓸데없는 글도 가끔은 필요하단 생각입니다. 제 표현대로 말하면 영양가 없는 글도 필요한 게
우리 인생이다, 뭐 이런 거죠. 아... 이것도 쓸데없는 댓글이 되려나요...ㅋ

감은빛 2013-11-26 13:36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니 다행입니다. ^^

술에 취한 다음 날엔 쓸데없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취하지 않아도 쓸데없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 건 굳이 밝히지 않았네요.

페크님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세요.
저 역시 늘 쓸데없는 글을 쓰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겐 쓸모 있는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댓글, 제게는 아주 좋은 글인걸요.
늘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다락방 2013-11-2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떤' 남자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는 무척 좋아했던 적이 있어요. 아찔하게 섹시한 느낌을 줬었거든요. 대부분의 남자들로부터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요. 이게, 그 사람만의 고유한 체취와 담배냄새가 섞여 더 멋진 향을 내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 것 같아요. 하핫

감은빛 2013-11-27 14:06   좋아요 0 | URL
누구나 고유한 체취가 있죠.
특히 냄새에 민감한 여성분들은 그런 걸 잘 느끼시는 듯.
아찔하게 섹시한 느낌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네요. ^^

yamoo 2013-11-26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하를 막론하고 술냄새와 담배냄새는 역겨워하는 1인입니당~

그나저나 1번 내용이 사실인가욤? 사실이라면 도저하고픈 1인..ㅋㅋ

아, 근데 쓸데 없는 글이란게 뭔가요?? 알라딘 서재에서 쓸데없는 글은 별로 못봤는데~ㅎ

감은빛 2013-11-27 14:09   좋아요 0 | URL
술 냄새, 담배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모처럼 외투를 꺼내입은 날,
마침 갑작스레 회식이 잡혀 밤 늦게까지 술집에 머물렀다면,
그 외투엔 술 냄새, 담배 냄새, 고기 냄새를 비롯한 온갖 음식 냄새가 배였겠죠.
이런 때는 다음 날 아침에 그 옷을 입을 수 없더라구요.

1번은 제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사람마다 효능과 부작용이 다를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쓸데없는 글은 1~5번 페이스북에 쓴 글을 말한 거구요.
평소에도 쓸데없이 끄적끄적하는 글들을 말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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