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 김에 글도 쓰자


평소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막상 서재에 들어와 글쓰기를 누르면, 순간 누군가 삭제 버튼을 누른것처럼 머릿속이 하얘진다. 며칠 전, 우리 위대한 대통령께서 저 멀리 파리까지 날아가서 큰 웃음을 주셨는데, 주위 많은 사람들이 위대하신 대통령의 유머코드를 미처 이해하지 못해 웃지 못하길래, 그게 왜 우스운 일이고, 특히 외국에서 훨씬 더 많이 웃었을 거란 걸 글로 써서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짬을 내지 못했다.


다행히 녹색당에서 바로 논평을 냈고, 그걸 언론이 실어서 한때 이슈가 되었다. 다음날 존경하는 선배로부터 관련 자료를 준비해 줄 수 있는지 요청이 왔다. (엄밀히 말하면 한 다리 건너서 왔다.) 당시는 무척 바쁜 시간이었고, 그 자료는 준비된 것이 아니라 찾아서 만들어야 할 성격인데, 한 다리 건너 들어서 정확하게 뭘 원하는지도 제대로 파악 못했다. 일단 찾아는 보겠다고 답해놓고, 다른 일을 한참 하고 있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급했던 그 선배가 직접 자료를 찾아서 일단 해결했다고. 나중에 녹색당에서 낸 보완 자료를 보고, 아! 그래서 급했던 거구나 싶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좀 더 구체적인 데이터와 표를 보내줄 수도 있었겠다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이미 지난 일이었다.


[녹색당 논평]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 박근혜 대통령, 기후변화총회에서 ‘가상의 나라’ 이야기

http://kgreens.org/commentary/6399/


[녹색당 해설 자료] 박 대통령 기후변화총회 연설 비판 녹색당 논평 

(“안에서는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관련 해설 자료

http://kgreens.org/commentary/%ED%95%B4%EC%84%A4-%EC%9E%90%EB%A3%8C/


주말에도 밤 늦게까지 몸을 쓰는 일을 하고, 비록 시간은 늦었으나 몸쓰는 일을 했으니, 술은 한 잔 마셔야지 하고 함께 일했던 분들과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의외로 잘 알아듣는 분이 계셨다. 그렇구나! 다들 못 알아듣는 줄만 알았더니, 의외로 아는 사람들도 있구나.


오늘은 일을 더 하려고 남았건만, 오늘 해야할 일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건만, 아까 한참 전에 잠깐 들여다봐야지 하고 서재에 들어왔던게 벌써 몇 시간 전인지 모르겠다. 에이! 뭐 이런 날도 있는거지. 내일 또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내친 김에 글쓰기 버튼까지 눌렀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쓰고 싶은 꺼리가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하지만 막상 지금은 뭘 써야할지 몰라 막막하다.


녹색당 이야기 조금 더 


이왕 녹색당 이야기를 꺼냈으니 조금만 더 하자. 아니 우선 얼마전 비례대표 의석 수를 줄이는데 합의한 새정치민주연합 이야기를 해야겠다. 12월 3일자 프레시안 기사를 보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는 3일 정의화 국회의장 중재로 의장실에서 만나 논의한 끝에 비례대표 의원 수를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양당 원내대표가 회동 후 브리핑에서 밝혔다."고 한다. 계속 읽다보면 "즉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례대표 의석 관련 입장은 '축소 불가'(지난달 초순까지) → '축소도 성의있게 검토'(지난달 중순) → '줄일 수 있다'(12월 3일 6자 회동에서)로 바뀌어 온 셈이다." 라고도 알려준다.


뭐 새정치나 새누리나 50보 100보 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던 터라 놀랍지는 않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 나라는 지금껏 소선거구 단순다수득표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단순히 표를 더 많이 얻은 단 한 사람을 선출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무능하면서도 권위만 앞세우고, 제 잇속만 채우는 정치인들을 양산했다. 아무리 많은 표를 받아도 2등이 되면 낙선하기 때문에, 선거는 정책과 공약이 아닌 비방만으로 치뤄지고, 사표 심리 때문에 괜찮은 후보라도 당의 인지도가 낮으면 표를 받기 어렵다.


이러한 폐해 때문에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현행 18%에서 33.3%까지 확대하는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정당의 권역별 득표율과 의석수를 최대한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새누리와 새정치 라는 이름만 새것일 뿐, 아주 구태의연한 자들이 모여 이 모든 논의를 후퇴시키며, 오히려 비례의석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녹색당은 이번에 전 당원 온라인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했다. 총 5명의 비례 후보를 내기로 했는데, 선거에 나선 이는 모두 6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기존 정치인이 아닌 우리 이웃이라 할만한 분들이다. 간단히 소개해보자. 중학교 국어 교사였다가 밀양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소식을 접하고 송전탑 반대 싸움에 나선 이계삼 선생님, [어느날 그 길에서], [작별], [잡식 가족의 딜레마] 등 동물들의 생명권에 대한 다큐 작업을 해온 황윤 감독님, 기본소득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청년 활동가 김주온 님, '오늘 공작소'라는 단체에서 청년 활동을 이어온 신지예 님, '하늘소년' 이란 이름의 1인 인디밴드이며, '전국 세입자 협회' 활동가인 김영준 님, 부산에서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해오신 구자상 님 이렇게 6명이다.


이 분들은 전국을 돌며 당원들을 만나고 서로 토론하며 내부 경선을 치뤘다. 그리고 총 선거권자 5,595명 중에 2,960명 의 투표로(투표율 52.9%) 5명의 후보를 선출했다. 나는 내가 속한 당이 이러한 절차를 통해 비례 후보를 선출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이 후보들 어느 누구도(안타깝게 5명에 속하지 못한 1분도) 기존 정치인에 털끝하나 모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부탁드린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는 역량 있는 분으로, 당이 아닌 정책을 보고 선택하시길 바라고, 비례 투표는 꼭! 녹색당을 찍어주시길 바란다. 아니 비례 투표를 단순히 당 이름만 보고 정하지 마시고, 그 당의 정책과 비전 그리고 후보의 면면을 잘 살펴보고 투표해주시기 바란다. 저 위에서 언급했듯 말 바꾸기나 반복하고, 계속 끌려다니기만 하는 새것 처럼 보이지만 헌 정당을 무턱대고 찍지 마시고, 잘 고민하고 선택하시기를 바란다.


참고로 녹색당은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도 여러명 낼 계획이다. 이 분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소개할 때가 올 것이다.


여기까지 적고 나니 이제서야 아침에 무슨 글을 쓰려고 맘 먹었던 것인지 떠오른다. 이미 시간은 한참 늦었고, 나는 이미 지쳤다. 


















흡연자 아니 애연가로서 이 책을 외면할 수 없다. 하나의 물질이나 물건을 두고 역사를 조명해보는 류의 책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일단 책상 위에 올려놓기는 했으니, 언젠가는 파고들어 읽으리라. 기다려라. 이번 주말이 지나면 꼭 너를 펼쳐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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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2-09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들의 음료`란 말은 들어본듯 하지만....`신들의 연기`라......
멋진 표현이긴 합니다...^^

감은빛 2015-12-16 00:41   좋아요 0 | URL
신들의 연기~ 멋진 표현이죠.
한때 담배가 맛이 없어서 몇 년간 끊었던 적은 있지만,
담배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나중에 담배 때문에 폐암으로 죽는다해도, 저는 후회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만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뭐, 최근 몇 년간 안 바쁜 날이 언제였나 싶긴 한데, 지난 주부터 다음주까지는 특히 더 바쁜 듯하다. 지난 월요일엔 아침 출근길과 저녁 퇴근길 모두 캠페인을 하느라 보냈다. 아침엔 세월호 캠페인이었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연대모임에서 매월 16일에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아침 캠페인을 진행한다. 낮에는 일터에서 열심히 일했고, 저녁에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 '을들의 국민투표' 캠페인을 했다.


사실 저녁 캠페인은 예정에 없던 거라,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나갔다. 지하철 역사 안에서 투표 독려를 했는데, 처음엔 좀 버벅거렸다. 투표를 많이 해야할 젊은 층들은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조금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이 자주 관심을 갖고 다가왔다. 투표 방법을 알려주면 박근혜 정책에 표를 찍고 가시더라. 그래도 한 중년의 여성은 국민들의 의견에 표를 주시고, 애써줘서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고 가셨다. 준비 안된 상태로 나갔지만, 점점 하다보니 투표 독려 외침이 점점 나아졌다. 임금피크제, 최저임금, 비정규직 등을 키워드로 조금씩 말을 바꿔나갔다. 환경문제에 대한 발언은 대부분 자신있는데,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발언해본 적이 없다보니 스스로 말을 하면서도 어색했다. 어쨌거나 할당된 시간을 마치고 회의하러 나섰다.


월요일 밤에는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지역 시민신문의 편집회의가 있었다. 퇴근길 캠페인을 마치고 바로 간 거라, 저녁도 못 먹었는데, 다같이 배고파 짜장면을 시켜 먹고 회의를 했다. 회의를 마치고 당연하게 편집장님과 맥주 한 잔을 하고 집에 가니 12시였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밤 12시에 들어오다니. 일주일의 첫 날부터 아주 힘들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 일찍 회의가 있었기 때문에 회의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피곤했지만, 억지로 정신을 차려가며 일을 마친 시간은 대략 3시 쯤이었던가? 씻고 누운 건 아마 4시쯤이었을 것이다.


3시간도 채 못 자고 일어나 출근했다. 일찍 사무실에 와서 새벽에 만든 자료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했다. 아침 회의를 하고, 일터 업무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번 아침 회의를 마치고 나면 늘 피곤하다. 준비할 게 많아 전날 늦게까지 자료를 만드느라 그렇기도 하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렇기도 하고, 회의에서 나온 여러 내용들이 지치게 만들어서 그렇기도 하다. 그날만큼은 집에서 좀 쉬고 싶었지만, 퇴근 후 모임이 하나 잡혀있었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퇴근 무렵 확인을 해보니, 다행히 모임이 취소되었다. 집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수요일엔 일터에서 야근을 했다. 중요한 서류 작업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목요일 아침엔 탈핵 캠페인을 나갔다. 이제 날씨가 추워서 장갑을 안 끼고 서 있으니 손이 시려웠다. 다음 주부터는 아침 캠페인 나올 때는 꼭 장갑을 챙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목요일 저녁에는 전환마을 운동을 하기 위해 만든 연대단위에서 새로 준비하는 로컬푸드 식당에 불려가서 김장 준비를 했다. 퇴근 후 바로 달려가서 밤 11시 넘어까지 일했다. 배추가 무려 300포기였다. 다음날인 금요일에 김장을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는 바로 그 식당에서 녹색당 지역모임에서 김장을 할 예정이었다. 당원들이 직접 텃밭에서 기른 배추로 당원들이 직접 김장을 하기로 했다.


목요일 밤 자정 무렵 집으로 가면서 몸은 피곤했고, 다음날 일정을 생각하면 쉬어야 하지만, 이상하게 술을 안 마시면 잠이 안 올것 같았다.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취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시기라는  생각에 조금 취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안 취하더라.


금요일에도 일정이 많았다. 아침에 외부 회의가 있었고, 오후에도 또 외근이 있었다. 녹색당 김장 준비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퇴근해서 로컬푸드 식당으로 갔다. 헉! 낮에 끝냈거나 혹은 거의 끝나갈 줄 알았던 식당 김장(무려 300포기)가 거의 그대로 있었다. 전환마을 활동가들(대부분 녹색당 당원들)이 아침부터 열심히 일했음에도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갔다. 저녁엔 녹색당 김장(대략 30포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 10배를 해야 했다.


몇 해동안 김장을 하면서 (채칼로)무채를 썰고, 배추에 속을 넣는 일은 손에 많이 익었다. 특히 작년 녹색당 김장 이후로 무채 썰기의 달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그날 평생 만든 무채보다 훨씬 더 많은 무채를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채칼이 지금까지 써오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칼 날 수십개가 위로 삐죽 솟아 있었다. 헉! 이런 채칼은 또 난생 처음 보는구나.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손을 움직여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특히 그날 김장의 총 책임자였던 식당 주방장님은 아주 만족하시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무는 끝없이 쌓여있었다. 결국 손에 힘이 빠져 살짝 무가 겉돌면서 손을 살짝 베었다. 피가 맺히는 것이 보이자 얼른 손을 뺐다.(힘들게 썰어놓은 무채 더미에 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다행히 상처는 별 것 아니었지만, 자꾸 피가 배어 나왔다. 


고무장갑을 구해 끼고 다시 채썰기를 시작했다. 힘도 많이 빠졌기 때문에 처음보다 속도가 많이 느려졌지만, 또 한번 다쳤기 때문에 조심하느라 더 속도가 느려졌다. 조심하느라 노력을 했는데도 그 이후 칼날에 고무장갑이 두 번 더 찢어졌다.


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배추에 속을 넣기 시작했다. 여럿이 달라붙어 열심히 속을 넣는데, 가만보니 활동가들과 당원들이 김장 경험이 많지 않아 보였다. 속을 배추 깊숙히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냥 양념을 배추에 묻히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설명을 해줬으나,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뭐 어쩔수 없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김장을 끝내고 싶었고, 빠르게 속을 채워나갔다.


김장이 끝난 건 전날과 거의 비슷한 시간이었다. 11시 조금 넘은 시간. 그때부터 엉망이 된 식당을 청소하고 정리를 했다. 몸은 정말 지쳤건만, 빨리 청소를 끝내야 술을 마신다는 생각에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바닥을 쓸고 닦았다. 나 자신도 깜짝 놀랐던 건 군대에서 하던 빗자루 두 개를 이용한 바닥 미싱 솜씨가 그대로 였다는 거다. 제대한 지 18년이 넘었는데 말이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물론 중간에 저녁 먹을 때 막걸리 몇 잔을 마시긴 했지만, 그건 본격적인 술자리가 아니었으니) 다음날에도 또 일정이 있었지만, 맘껏 술을 마시고 취했다.


토요일엔 큰 아이가 다니는 공동육아협동조합 터전 이전 때문에 새 터전 공사를 했다. 다행히 지난번보다는 부모들이 많이 나와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난 이틀간의 300포기 김장으로 몸이 무척 힘들었고, 새벽까지 마신 술이 아직 덜 깬 상태였다. 어쨌거나 다른 부모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저녁엔 함께 힘을 쓴 아빠들과 또 술을 마셨다.


일요일 오후엔 일터에서 일을 해야 했다. 일요일이라 텅빈 사무실에 나와 혼자 일을 했다. 최근엔 거의 매주 주말마다 일이 생겼다. 터전 공사가 주말마다 있었고, 일터 행사 혹은 녹색당 행사 또는 참여하고 있는 다른 단위에서 일이 생겼다. 주말 이틀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오히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요일 하루는 술을 쉴 생각이었다. 사흘 연속으로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음날 출근 때문이기도 하고, 마침 저녁에 마땅한 약속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웹서핑을 하고 있는데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전화가 왔다. 옛 일터 후배였다. 지금은 충청도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가끔 주말에 본가인 서울로 올라온다. 그 전에 몇 번인가 주말에 전화가 왔었는데, 바빠서 제대로 연락도 못 받았던 게 기억났다. 녀석은 늦은 시간이지만 가볍게 한 잔 하자고 했고, 난 다음날 아침 중요한 일정이 있어 조금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결국 한동안 못 만났던 게 미안해서 나갔다. 1시경 만나 1시간동안 적당히 먹고 헤어졌다. 확실히 술이 들어가면 술이 술을 마신다는 말이 맞는게, 나갈때만 해도 썩 술이 땡기지 않았는데, 막상 헤어지려니까 한 잔만 더 할까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녀석이 잘 끊어줘서 무리하지 않고 돌아갔다.


이번 주도 월요일부터 쉽지 않았다. 아침 일찍 중요한 미팅이 있었고, 저녁에는 간담회가 있었다. 간담회 뒤풀이에서 또 술을 잔뜩 마셨다. 다음날 아침 회의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미리 회의자료를 다 만들어뒀다.


화요일은 아침 회의로 시작해서 중요한 일이 몇 있었다. 확실히 새벽까지 술을 마셔서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오후 늦게 외부 회의가 있었는데, 오후에 마쳐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해 늦어버렸다. 외부 회의가 끝나고 또 가볍게 술을 마셨다. 수요일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저녁을 보내면서 맛있는 걸 먹고 싶어 오리고기를 구웠다. 애들 밥을 먹이면서 난 혼자 술을 마셨다.


어제 목요일 아침엔 또 탈핵 캠페인을 나갔다. 정말 추웠다. 두껍게 입고, 장갑도 챙겼건만, 지하철 역 앞에 서 있는데 손도 시렵고, 발도 시렵고, 다리도 차가웠다. 같이 서 있던 당원은 장갑도 없이 맨 손으로 피켓을 들고 서 있는데, 너무 추워보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어제도 야근을 했고, 오늘 금요일도 야근을 했다. 오늘은 저녁에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송년회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거기 갈 생각이었는데, 퇴근 시간까지 중요한 문서를 다 끝내지 못했다.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다 악몽같은 일정이었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일은 마침내 터전 이사가 있다. 아마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몸을 써야 할 것이다. 일요일엔 일정이 세 개나 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중요한 서류 작업이 또 시작된다. 다음 주에도 적어도 이삼일은 야근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드는데, 이렇게 밤 늦게까지 일정(회의, 토론회, 간담회, 야근 그리고 김장!)을 마치고 자정 무렵이 딱 그런 시간이다. 에이! 술이나 한 잔 하고 자야겠다!
















이반 일리치 신간이 나왔다! 다음주까지 지옥같은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이 책들을 사서 읽어야지 생각했으나, 12월에도 일정이 만만치않다. 젠장! 그렇다고 1월이라고 쉽진 않을거다. 아! 우울하다. 빨리 가서 술 마시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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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8 0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11-2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내려오다보니 얼마나 고단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신지 짐작이나마 하겠습니다. 김장 300포기라니요, 30포기도 아니고 말입니다. 맡으신 일이 워낙 여러가지이다보니 강행군을 하시게 되나봅니다. 건강하셔야할텐데요. 나이가 들어가다보니 모든 것의 결론은 건강으로 맺게되네요. 기-승-전-건강 이라고나 할까요.

감은빛 2015-12-08 20:34   좋아요 0 | URL
네, 계속 무리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김장 300포기는 저로서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단발머리 2015-11-2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정말 바쁘시군요.
16일 세월호 캠페인을 포함해서 따라 읽다보면 하나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일들이라 너무 힘드시겠어요. 그 중에 김장 300포기 압권이예요.
채칼에 손이 베이셨다니.... 물이 안 닿아야 빨리 아뭅니다.
술은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하고 싶지만,
아.... 일이 너무 고되시니 그럴 수도 없을 것 같구요.
힘내세요~~~~~~~~~~~~~~~~~~~~~~~~~~~~~~

감은빛 2015-12-08 20:36   좋아요 0 | URL
이번 주 주말까지 보내고 나면,
조금(아주 조금은) 여유가 생깁니다.
물론 연말이라 안심할 수는 없겠지만요.

염려해주신 덕분에 금방 나았습니다.
응원에 힘입어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5-11-28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11-28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며칠전 선풍기 청소하다가 날개에 스쳐서 피가 좀 났는데...완전 수선 떨었던게 창피해지는 순간이예요. 잘 지내시죠? 제가 다독다독~^^ 위로하고 응원해드릴게요. 렛츠 치어~ㄹ 업~!

감은빛 2015-12-08 20:39   좋아요 0 | URL
헉, 저는 선풍기 날개에 스쳐 다친 것이 더 아파 보이는데요.
지금쯤 다 나으셨겠죠.
저도 여러 사람들의 응원과 위로 덕분에 금방 나았습니다.

이번 주 주말까지 계속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지만,
양철님의 응원 덕분에 잘 마무리 할 것 같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머리칼을 날린다. 나는 옷깃을 여미고, 목을 잔뜩 움츠린 채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다. 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멀리서 한 여성이 걸어온다. 내가 걷는 속도와 그가 걸어오는 속도만큼 우린 가까워졌다. 몸에 붙는 가죽 점퍼와 가죽 치마를 입었다. 날씬한 다리와 매끄러운 곡선의 엉덩이 그리고 가슴으로 눈이 간다. 나도 모르게 그의 알몸을 상상해본다. 바로 옆을 스쳐지나갈 때 그의 빨간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멈춰서서 슬쩍 고개를 돌려 뒷모습을 본다. 가죽치마의 매끈한 재질 덕분에 탄탄한 엉덩이가 도드라져 보인다. 뒤따라 걸어오던 여학생 두 명이 나를 보며 수군거린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다시 가던 걸음을 이어간다. 어느 가게에서인지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빠른 리듬의 음악, 젊은 여성의 노래 소리, 아마도 걸그룹의 노래겠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목소리의 여성들은 아름다운 몸매 흔들며 섹시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퇴근길 버스는 늘 만원이다. 여러 사람들 틈에 간신히 끼어서 손잡이를 잡았다. 내 눈 바로 밑에 어느 여성의 정수리가 보인다. 냄새, 낯선 여성의 정수리 냄새를 맡아야 하다니. 버스가 교차로에서 회전하면서 승객들의 몸이 휘청인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지만 몸은 이미 뒤로 기울어졌다. 앞에 선 여성이 내 가슴으로 확 기울어진다. 마치 내 품에 안긴 모양새다. 짧은 순간 내게 기댔던 작은 체구의 여성은 다시 바로 선다. 뒤로 기울었던 내 몸도 바로 선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서고 내리는 사람은 없지만, 또 새로운 승객이 탄다. 이미 발디딜 틈없이 꽉 찼건만 또 사람을 올라서면서 몸이 밀린다. 갈 곳은 없건만 사람들은 계속 밀어댄다. 조금씩 조금씩 발을 옮겨 옆으로 밀려났다. 내 앞에 있던 여성도 함께 밀려 여전히 그의 정수리는 내 눈 밑이다.


버스가 크게 돌면서 또 한번 몸이 뒤로 기울어진다. 이번에도 여성은 내 품에 살짝 안겼다가 바로 선다. 버스가 돌 때마다 이름 모를 여성은 내 품에 안겼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문득 이 여성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바로 앞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내 앞의 여성이 손잡이를 잡았던 손을 놓고 어깨에 멘 작은 가방에서 전화기를 꺼낸다. "여보세요." 앳된 목소리.  여성이 전화기를 왼쪽 어깨와 귀에 고정시키고 양  손으로 가방을 여미는 순간, 그의 옆 얼굴을 살짝 보았다. 귀여운 인상이다. 순간 또 버스가 돌면서 여성의 몸이 확 쏠린다. 손잡이를 쥔 팔에 힘을 꽉 주었다. 여성은 중심을 잃고 내 팔에 안겼다. "어머!" 높은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손잡이를 쥔 내 팔에 상체를 기댄채, 놀라 동그랗게 커진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본다. 곧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를 한다. 나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 답을 했다.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다시 쥐고, 왼손으로 전화기를 고쳐 쥔 채 작은 목소리로 통화를 한다.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 상대방에게 답을 하는 듯하다.


아마 남자친구인듯, 작은 목소리는 오늘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하루종일 서 있어서 다리가 무척 아프다고 했고, 점장님이 짜증나게 굴었다며 하소연 했다. 누군가가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아 혼자서 매장을 다 맡았다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고, 어떤 손님이 접시를 깨뜨려, 치우다가 손을 살짝 베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만원 버스 속에서 인파 속에 몸이 낀 채로, 이름 모를 여성의 일상이야기를, 남자 친구와의 대화를 다 듣고 있어야 했다. 남자 친구는 아마 회식이 있다고 한 듯, 술 많이 먹지 말고 끝나면 전화하라고 했다. 여성은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려 나를 슬쩍 올려본다. 그 시선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라, 슬쩍 눈을 돌렸다. 한번 더 고개를 살짝 움직여 인사를 한 듯했다.


어느 정류장에서 우루루 승객들이 내렸다. 비로소 숨통이 조금 트였다. 빈 공간이 조금 생기자 여성은 뒷문 바로 앞으로 자리를 옮겨, 폰을 꺼내들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까똑, 까똑 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린다.


버스를 내리자 다시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가방을 고쳐 메고, 옷깃을 여미는데, 그 여성이 나를 스쳐 앞으로 나왔다. 여성은 종종 걸음으로 골목을 향해 걸었다. 멀어지는 여성의 작은 체구를 바라보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훅 뱉어낸 흰 연기가 바람에 날려 하늘로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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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1-24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에 날려 하늘로 흩어지는 연기와 여자가 오버랩되네요. 잘 읽었어요.

감은빛 2015-11-27 14:59   좋아요 0 | URL
유레카님 고맙습니다!! ^^

2015-11-24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7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슬로뉴스에서 흥미로운 연재를 발견했다. 임대차 계약이 만료한 후에 집 주인이 임차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과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글쓰신 분은 9월 말에 계약이 끝나 사전에 이사 나갈 것을 몇 차례 전달했고, 집을 부동산중계소에 내놨으나, 가격 문제로 다음 임차인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 임차인이 정해지지 않아 집 주인이 보증금을 받지 못해도,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집 주인은 보증금을 현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이 집 주인은 추석 연휴를 핑계로 못 돌려주겠다고 했고, 그 후에도 계속 돌려주길 거부했다.


상황은 아직도 진행중이며, 총 3개의 기사를 읽으면서 과거 내 경험과 같거나 비슷한 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우선 계약서 상 집 주인과 집을 관리하며 집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점이 같다. 이 기사에선 주인 행세를 하는 할머니의 아들이 법적인 소유주였고, 내 경우에도 주인 행세를 했던 할머니의 어린 아들이 법적 소유주 였던 적이 있었고, 또 영감의 딸이 법적 소유주였던 경우도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나이 드신 집 주인 중에 경우없이 억지를 쓰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 여러가지 이권 때문에 자식 명의로 돌려놓았지만, 실제 그 집의 주인은 그 할머니나 영감이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남의 집 살이 해오면서 딱 한번 괜찮은 집 주인 만났는데, 우리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비교적 젊은 분들이었다. 거의 대부분 집 주인이나 그 대리인들은 나이가 많았고, 그 나이만큼이나 경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두번째는 집 주인이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고, 언성을 높이고, 욕을 퍼붓는다는 점이다. 예전에 나도 몇 번이나 집주인 횡포 때문에 괴로웠다. 그들의 횡포와 일방적인 태도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한겨울 몇 십년 만의 추위였다고 뉴스에서도 크게 다뤘던 그 밤, 보일러가 고장나 태어난 지 백일도 안된 큰 아이를 얼음판이 된 바닥에 누일수가 없어서 아내와 밤새 번갈아 안고 지새웠던 밤이 있었다. 다음날 보일러를 고쳐달라고 요구했더니, 세입자의 잘못으로 고장났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보일러 기사님은 수명이 지나도 한참 지났기 때문에 고쳐도 임시 방편일 뿐이다. 아마 겨울을 다 나기 전에 또 고장이 날 것이라고 했다. 다시 어린 아기를 안고 집 주인에게 찾아가보일러 교체를 요구했으나, 무조건 세입자 잘못이니 못해준다는 말 뿐이었고, 계약서에 적혀있는 집 주인의 의무임을 강조했더니 아기를 안고 있는 나를 계단에서 밀어버리고, 욕을 퍼부었다. 사람을 민 것도 엄연한 폭력이므로 경찰을 불렀으나, 경찰은 집 주인과 화해하라는 엉뚱한 말만 늘어놓고 돌아갔다. 그 사이 그 집 딸이 또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부었다. 맘 같아선 제대로 대응해서 버릇을 고쳐주고 싶었으나, 아직 어린 아기가 고생할 걸 생각하니 너무 불쌍해서 그냥 집 내놓고 이사나왔던 적이 있었다. 당시의 그 추위와 아기의 고생만 아니었으면 제대로 집 주인 애먹일 수 있었을텐데, 두고두고 아쉽다.


집 주인의 일방적인 태도는 그 집 뿐만 아니다. 녹물 때문에 3달을 넘게 싸웠던 집 주인도 어지간히 말이 안 통했다. 베란다 누수를 고쳐주지 않았던 주인도, 계약 만료 때문에 새 집을 알아보려고 계약금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무시했던 주인도 모두 임차인인 우리 말은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일방적인 요구와 태도만 고수했다.


나는 다행히 소송으로 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두 세번 정도는 내용증명 보내고, 민사소송을 할 것이라는 예고를 보낸 후에야 상황이 해결된 적이 있다. 녹물 때문에 3달 넘게 애 먹였던 집 주인은 내용증명과 소송 예고를 받고 나서는 곧바로 달려와서 사과하고, 해결을 약속했다. 그냥 말로 할 때는 3달 동안 아이들을 고생시켜놓고, 소송 걸겠다고 하니 바로 달려왔다. 계약금 건도 비슷했다. 몇 번이나 말 바꾸고 약속을 지키지 않더니, 내용증명 보내고, 그 집에 얽힌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소송을 걸겠다고 하니, 결국 태도를 바꿨다. 참 여러번 집 주인 횡포 때문에 변호사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그나마 나는 가까이에 물어볼 변호사 친구라도 있어서 이 정도였지, 만약 도움 줄 사람이 없었다면 훨씬 더 막막했을 것이다.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전태일 열사의 심정이 이해간다.


그래도 소송 전에 해결이 되었지만, 만약 끝까지 집 주인들이 버텼다면, 나도 아마 끝까지 누가 이기는지 가봤을 것이다. 당시 변호사 친구는 결국 소송으로 가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고, 막판에는 합의를 할 수 밖에 없게 될텐데, 원하는 만큼의 성과도 얻어내기 쉽지 않다고 얘기했지만, 나는 그럼에도 집 주인에게 소송을 걸어 이 상황의 잘잘못을 분명히 따지고, 충분히 괴롭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이 기사의 글쓴이가 존경스러운 점은 망설임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기사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어찌 망설임이 없었겠는가만 일정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찾아서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단하다!


세번째 공통점은 부동산 중계인의 태도다. 이 기사에는 부동산 중계인의 실수에 대해 짧은 언급이 있지만, 아마 이래저래 속상할 일이 많았을 것이다. 난 집 주인 운이 없었던 만큼 부동산 운도 없었는데, 앞서 한겨울 보일러 사건이 났던 집을 중계했던 부동산과는 주먹다툼 직전까지 갔었다. 이사 날짜는 휴일로 잡는 경우가 많고, 관례적으로 인터넷 뱅킹에 의한 이체로 잔금을 치루거나, 이사 나온 집 주인이 건네주는 수표를 받아 잔금을 치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사 나온 집에서 수표를 작은 단위로 여러장 끊어준 것이 아니라 큰 금액으로 달랑 한 장을 건네줬는데, 잔금으로 남은 돈과는 단위가 안 맞았다. 결국 수표를 쪼개어 잔금을 치뤄야 하는데, 은행은 영업을 하지 않고, 씨디기계에 수표를 입금해도 하루가 지나야 이체가 가능하다. 부동산 중계인은 이 점을 트집 삼았는데, 해서는 안되는 인격 모독성 표현을 하길래 따졌더니 다짜고짜 소리 지르고, 욕을 하더라. 그 중계인 경상도 사람이었고, 아주 익숙한 욕을 하길래, 나도 어릴때부터 한 욕하던 솜씨를 유감없이 들려줬다. 그 인간은 욕을 듣더니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고, 난 웃으면서 잘 됐다고, 당신 합의금으로 잔금 치르면 되겠다고 때려보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욕은 계속 들려줬다. 결국 장모님께서 중재하셔서 잔금 건은 해결되었으나, 그 중계인은 나의 사과 요구를 묵살하고 끝까지 자기 억지 주장만 펼쳤다. 그 동네 오래 살지 않았지만, 오가면서 그 중계인 만날 때마다 눈 앞에서 침을 뱉어주고, 욕을 들려주고 지나갔다.


녹물 문제가 있었던 집 부동산 중계인도 비슷했다. 처음엔 아주 좋은 집이라고 간도 쓸개도 다 내줄 것처럼 친절하게 대하더니, 막상 계약서 작성하고, 중계 수수료 지급하고 나면 남의 일이 되어 버린다. 처음 보여줄 당시에 녹물이 나오지 않았던 건 분명히 부동산이 우릴 속였던 것이었다. 초기에는 집 주인은 아예 연락을 받지 않았고, 부동산에 요청해서 해결해달라고 했는데, 해주겠다고 대답만 하고는 며칠을 그냥 보냈다. 몇 번이나 확인 전화를 걸었지만, 늘 연락 중이니 기다리라고만 했다. 결국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좀 언성을 높여 따졌더니, 오히려 중계인이 나에게 화를 냈다. 자기가 그 알량한 복비 몇 푼 받고 언제까지 심부름을 해야 하냐고. 녹물 문제는 분명히 집 주인이 해결해 줘야 할 중대한 하자이고, 당신은 이 건은 중계한 사람이기 때문에 해결해줄 책임이 있다고 했더니, 오히려 먼저 욕을 퍼붓는다. 전화로 욕 배틀을 하다가, 다음날부터 찾아갔더니 갈 때마다 자릴 비우고 없었다. 이후 내 전화는 아예 받지 않았다. 자신의 중계 책임을 다 하지 않고 오히려 의뢰인에게 욕을 퍼붓는 중계사라니! 참 이 나라는 집 주인들 만큼이나 엉터리 중계사들이 많다.


연재 기사 3편을 읽으면서 10년이 훌쩍 넘어, 15년이 다 된 기간 동안 서울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 밀집 지역에서 세입자로 살아왔던 숱한 고생들이 머리속을 스쳤다. 예전에 내가 쓴 글을 다시 찾아 읽어보니, 어느 분이 댓글로 그 주인들도 사람이니 분명 좋은 면이 있을 거라고, 잘 얘기해서 풀라고 남겼다.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이지만, 당시에 나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답을 썼다. 분명 그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것이다.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말이다. 하지만 집 주인으로서는 인간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짓을 저지른다. 아마 누구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촛불 시민들에게 곤봉과 날선 방패를 휘두르고, 군화발로 짓밟는 경찰들도 가족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다정한 남편일 것이다. 여기자를 성추행하고, 이권을 넘겨 뇌물을 받아먹는 정치인이나 권력자들도 그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는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이다. 핵 발전소를 잔뜩 지어 배를 채우는 핵 마피아들도 역시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다. 그들이 악마여서, 철저하게 나쁜 인간이어서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상황에 맞게 자신의 이익을 취할 뿐이며 그 짓이 그리 나쁜 짓이 아니라고 믿을 것이다.


예전에 평생 대중교통을 한번도 타 본적이 없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알 수 없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이 어떤 일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이 썩어빠진 대한민국에서 집 주인이라는 슈퍼 갑은 을인 세입자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자신이 옳고 잘났을 뿐이다.


암튼 이 기사를 쓰신 분이 하루 빨리 임차보증금을 돌려받고 연재를 중단하기를 바란다.


슬로뉴스 연재기사 보러가기

http://slownews.kr/46462

http://slownews.kr/46707

http://slownews.kr/47864


감은빛 예전 글 읽기

http://blog.aladin.co.kr/idolovepink/6459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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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2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7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5-11-13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육개월 못받은적이 있는데 정말 밤잠이 안왔어요. 20년간 한번도 이사를 안해봤는데 상경하면서 부터 거의 2년에 한번은 떠돌았으니...

저는 예전엔 부동산중개인을 하나의 전문가로 믿고 의지하자는 주의였는데 몇 년 겪고보니 그저 장사만 하시는분들이 많더군요.

다들 비슷한 일을 겪으며 타향살이를 하나봅니다.

집문제가 잘 해결되셔야할텐데요...

감은빛 2015-11-27 14:56   좋아요 0 | URL
모리님, 답이 많이 늦었어요.
세상에! 6개월이라니! ㅠㅠ
하긴 저도 녹물 나오는 집에서 3달 넘게 버텼는데,
매일 아이들 씻기면서 어찌나 짜증이 났는지 말도 못하는데,
나중에 어떻게 그 시간을 살았나 싶더라구요.

간혹 이런 글이나 이야기에,
자긴 아주 괜찮은 집 주인이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그 집 세입자가 아니니, 얼마나 괜찮은 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괜찮은 집 주인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죠.

쉽싸리 2015-11-14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 분위기가 나아지려면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봅니다. 못된 주인/중개인들이 정신차리게요...

감은빛 2015-11-27 14:58   좋아요 0 | URL
내용증명 그리고 행정적 절차를 밟아도,
못된 주인이나 중개인들이 정신을 차리지는 않더라구요.
그냥 그렇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잠시 기세에 눌려 당연한 행동을 마지못해 해줄 뿐이더라구요.
 

스피드 스태킹


그 아비의 그 딸이라고, 큰 애는 아빠를 닮아 뭐 하나에 꽂히면 푹 빠지는 편이다. 내가 스내치에 푹 빠져 늘 '어떻게하면 좀 더 동작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무게를 더 늘릴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처럼, 아이는 요즘 스피드 스태킹에 푹 빠져서 매일매일 신기록을 세우는 재미로 살고 있다.


스피드 스태킹은 플라시틱 컵을 일정한 공식에 따라 세웠다가 접었다가를 반복하는 것인데, 누가 더 빨리 하는가를 재는 국제 경기도 열린다고 한다. 아이가 처음 이 경기를 접한 건 공동육아 방과후 협동조합에서다. 같이 방과후 교실에 다니는 아이의 어머니가 스피드 스태킹을 가르키고, 공식경기 진행에도 참여하셔서 일찍 접하고, 어린 나이에 공식 경기에도 참여해 본 아이가 있다. 그 어머니께서 한번 방과후교실 아이들과 스피드 스태킹 교실을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엄청난 관심을 갖고 푹 빠져들었다. 공식 경기에 참여해 본 아이는 당연히 처음하는 아이들보다 월등히 기록이 빨랐는데, 우리 아이를 포함해서 그 아이보다 더 상급생인 아이들은 동생보다 기록이 느리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그 아이를 목표로 열심히 연습했다.


결국 방과후교실에선 매일매일 기록 향상을 위한 맹연습을 경쟁적으로 해왔고, 각 가정마다 아이들이 졸라서 공식경기에 쓰이는 컵과 초시계와 매트를 구매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도 계속 사달라고 졸랐으나, 일시적인 관심으로 한동안 하다가 금방 싫증내고 그만두는 건 아닌가 싶어 한동안 두고 봤는데, 이 정도면 그렇지 않겠다 싶어서 일단 컵만 구매했다. 매트와 초시계까지 장만하려면 그것도 돈이 제법 들더라.


아이는 요즘 일어나자마자, 학교 다녀오자마자 컵을 쌓았다가 접기를 반복한다. 매일 얼마나 기록 괜찮은 날엔 얼마나 줄었는지를 자랑하고, 별로 줄지 않았으면 또 투정하듯이 말한다. 아이가 워낙 열심히 하길래, 얼마나 재미있나 싶어서 나도 아이에게 배워서 해봤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였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 몇 번을 해봐도 도무지 손에 익지 않아서 버벅거렸다.


아이를 지켜보면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 정도 열의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겠구나. 숱한 어려움에 굴하지 말고 열심히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렴. 아빠는 언제너 널 응원한다!


아래 동영상은 월드 스포츠 스택스 오브 챔피언쉽이라는 국제대회 하이라이트 영상이다. 아이가 연습하는 공식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경기가 있는 것 같다.




스내치


아이가 몇 달째 열심히 스태킹을 하는 걸 보면서 나도 지지않고 열심히 스내치를 연습해야지 했으나, 사실 최근 바빠서 운동을 많이 못했다. 게다가 날이 추워지면서 몸이 굳어서 생각보다 자세가 잘 안 나온다. 이럴때는 스내치를 더 잘하기 위한 기본 운동에 주력하는 게 낫다. 데드리프트, 스퀏, 오버헤드 스퀏 등을 위주로 운동하면서 일부러 한동안 스내치를 하지 않았다.


특히 허벅지와 허리 근육을 키우기 위해 데드리프트를 주로 했는데, 덕분에 데드리프트 무게는 제법 올렸다. 예전에는 너무 단순한 동작이라 데드리프트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것도 계속 하면서 무게를 늘리다보니 나름의 재미가 있더라. 게다가 단순한 동작에서도 힘을 주는 방식과 자세에 대해 생각할 부분이 많더라. 


한편 좋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연성을 길러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꽤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 굳어버린 몸은 좀처럼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름 틈 날때마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유연성 향상에 신경을 쓰지만, 그다지 좋아진다는 느낌이 없다. 계속 연습해도 자세가 좋아지지 않고, 무게를 늘리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역기 스내치가 맘처럼 잘 되지 않으니 케틀벨 스내치를 연습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문제는 케틀벨 스내치가 역기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영상을 보면서 혼자 배우기 쉽지 않다. 또 지금 다니는 핏니스센터에 케틀벨이 없는 것도 문제다. 집에 케틀벨이 있지만, 연습할 시간이 없다. 한편 집에 있는 케틀벨은 스윙을 하기에 적절하지만, 제대로 배우지 않고 스내치를 하기에는 무리다. 한 두번 시도해보다가 실패했다.


아래는 러시아 케틀벨 스내치의 여왕으로 불리는 크세냐의 스내치 모습이다. 사용자의 요청으로 소스코드 공유를 거부했기에 여기에 첨부할 수 없었던 또다른 영상에서 그는 24kg 케틀벨로 제한시간 10분 안에 202개의 스내치를 해냈다. (이 영상에서는 어릴때 케틀벨을 놓치는 장면이 나오고, 마지막에 201개를 들어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당장은 쉽지않겠지만 언젠가 케틀벨 스내치도 꼭 익히고 말리라.




뭐 급하게 생각할 건 없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만족할만큼의 성과를 거두리라 믿는다. 오늘도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공부한 것을 직접 역기를 들어가면서 몸에 익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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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11-05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있는 케틀벨이 몇 키로짜리인지 모르겠는데 우와- 마지막 영상의 여성을 보니 저도 도전하고 싶어져요. 확실히 케틀벨을 들어올리니 허벅지까지 운동이 되는 게 보이네요. 허벅지 근육도 많이 발달했어요, 영상 속의 선수요. 일단 바른 자세를 아는 게 중요하겠어요.

응원합니다!

감은빛 2015-11-05 19:2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집에 있는 케틀벨로 도전해보세요. 제가 드린 책이 조금 도움이 될 겁니다. 거기엔 스내치 방법은 안 나와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클린 앤 저크는 나와있어요.

케틀벨은 애초에 코어 근육 강화와 컨디셔닝 운동용입니다. 허벅지와 허리(엉덩이) 힘으로 들어올리는 거예요. 절대 팔힘으로 들면 안 됩니다.

스윙을 충분히 익힌 다음에 클린 앤 저크를 연습하시고, 그 다음에 스내치로 넘어가야 해요.

저 선수가 들고 있는 24킬로그램 스내치를 하려면 적어도 몇 달간 꾸준히 연습해야 할 거예요.

대개 여성들은 10킬로 미만으로 시작하고, 남성들도 16킬로 정도로 시작합니다. 요령이 좀 생겨야 24 킬로를 들 수 있어요.

transient-guest 2015-11-06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의 시작과 끝은 스쾃하고 데드리프팅이라고 하고, 단순한 리프팅이 아닌 역도 (스내칭 등)라고도 하더라구요. 좋은 운동을 하고 계신듯. 저도 다친 어깨가 좋아지면 좀더 실제 파워를 늘리는 운동으로 바꾸어 나가려고 합니다. 단순히 역기만 들고 기계만 사용한지 6년 정도가 지나니까 재미가 없네요.ㅎ

감은빛 2015-11-12 19:29   좋아요 0 | URL
저런! 어깨를 다치셨군요.
저도 20대 후반에 어깨를 다치고, 한 몇 년 운동을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다쳤던 어깨는 유연성이 부족하고, 조금만 무리해도 통증이 느껴집니다.

역기를 드는 재미를 느끼고 나니, 머신 운동은 더이상 못하겠더라구요.
스내치는 처음 시작할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운동인 것 같아요.
조금만 쉬어도 금방 티가 나구요.

반면 스쾃하고 데드리프트는 비교적 간단한 운동이라
무게를 늘리기는 어렵지 않지만, 재미가 덜하죠.
근데 이 두 운동이 기본이 되어주지 않으면
스내치가 더 늘지 않더라구요.

빨리 어깨가 회복되고, 재밌는 운동 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