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문 베리타스 

[김진호] 대형교회가 추구하는 인간적 삶, 그 삶의 미학은 불온하다 
우리신학 2009 논총 게재  [2009-12-22 11:27] 

제작 년 말쯤 한 술자리에서 소설가이자 번역가이고 대학강사인 모씨는 요즘 대학생들이 ‘너무 착하다’고 말했다. 선생의 말을 지나치게 잘 듣고, 착실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는 티가 역력하단다. 자기를 사적으로 방문할 때면 반드시 뭔가를 사 들고 오고, 예의바른 말을 아낌없이 내놓는다고 한다. 게다가 그녀를 가장 당혹하게 한 것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라고 선뜻 대답하는 것이었다. 해방세대, 전후세대, 민주화세대 등, 아비는 친일파였다거나 공산주의자였다거나 독재의 공모자였다는 등의 오명을 저주했던, 끊임없이 이어지는 근대한국의 위기 이후 세대는 이른바 ‘고아의식’의 세대였다. 즉 아비를 부정함으로써 자아를 구축하려고 했던 세대인 것이다. 물론 그녀 역시 아비와의 투쟁으로 점철된 20,30대를 보냈다. 하여 ‘아버지를 존경하는 세대’라는 생경한 느낌이 그녀를 당황스럽게 했던 모양이다.

그때 다른 이가 끼어든다. ‘그건 선생이 명문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방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그의 친구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른바 비명문대학에서는 정 반대의 현상을 겪게 된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 자리에 있던, 나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이 이 두 사람의 생각에 공감을 표했다.

그날의 얘기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계층분화가 사회 각 영역에서 점점 견고하게 제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착함’은 점점 중상위계층의 덕목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 사회복지학 연구자들이 북미의 연구 성과를 우리사회에 적용하면서 우려스럽게 그 가능성을 인정하는 추세에 있는 이른바 빈곤층의 하위계급화 추세에 관한 논의와 쌍을 이룬다. 즉 빈곤층의 사회적 자기 파괴가 심화되어 더 폭력적이고 더 범죄적이며, 알콜릭도 더 많고 약물 의존성도 높은 하위계급(under-class)의 존재가 우리 사회에서도, 비록 자료가 충분치 않지만, 발견되는 증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요컨대 ‘사회적 착함’과 ‘사회적 악함’이 우리 사회의 병리성으로서 드러나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지난 해 나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연구 과제의 하나로 대형교회에 대한 연구를 기획하여 시행한 바 있다. 그것은 크게 보면 포스트민주화 시대 한국사회의 보수주의 연구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대형교회의 변동과정을 통해 읽어보려는 데 있다.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작업가설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근대 한국사회의 전통적 보수주의는 발전지상주의를 내재화하면서 형성되었는데, 민주화를 거치면서 분화되기 시작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현저히 퇴조하고 대안 사회에 대한 바람으로 전화되는 포스트민주화 시대에 이르면서 새로운 기조의 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발전을 위해 모든 걸 도구화하는 전통적 보수주의에 대해, 발전과 동시에 품격을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보수주의가 도처에서 엿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웰빙 담론과 결합되면서 문화적 심성으로 번안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분화된 보수주의는 교회의 제도화 속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의식이다. 민주화와 지구화 이후 한국교회는 나름 변화된 시대를 반영하는 제도적 리모델링을 시작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교회적 변화의 기조상의 차이를 선발대형교회와 후발대형교회라는 이념형적 모델을 통해 도식화하였다. 여기서 선발대형교회는 발전지상주의를 추구했던 권위주의 시대 교회의 팽창일변도의 존재형식을, 그리고 후발대형교회는 양적인 성장과 신앙적 품성을 결합시킨 탈권위주의 시대 교회의 미학적 존재형식을 가리킨다. 이러한 이분 도식은 이미 강남형대형교회와 강북형대형교회 등, 유사한 문제틀로서 제기되어 온 것이므로, 전혀 낯선 이념형적 틀은 아니다. 우리는 이 두 이념형적 모델을 전자는 전통적 보수주의와, 후자는 새로운 보수주의와 대응시키기 위해 입론화하였다.

최근 한국의 대형교회는 거의 예외 없이 변화된 시대에 맞추어 리모델링을 시도하고 있는데, 후발대형교회적 요소를 반영하는 자기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더 선발대형교회적 요소가 강한 교회가 있는 반면, 더 후발대형교회적인 요소가 강한 교회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후자, 즉 미학적 성장을 추구하는 대형교회 셋을 임의로 선정하여 조사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새로운 보수주의의 지형이 교회를 통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그리고 교회의 이러한 자기 변혁이 한국사회의 포스트민주화 과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세 교회란 소망교회, 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인데, 우리는 이들 교회의 목회자나 장로 등 교회의 이념주도층이 아니라, 특별한 직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비교적 충성도가 높은 평신도들에게서 나타나는 신앙이해와 사회적 태도의 특징을 발견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주로 거대서사적이고 공적인 언술보다는 사적이고 일상적인 언술에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은 무자기로 접촉한 교인들과의 인터뷰, 교회가 발행하는 문집들, 주보, 결혼예식 순서지, 각종 교회 프로그램, 그리고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각종 글들을 검토하는 것이었다.

부족하나마 조사와 분석을 지난해 말에 끝냈지만, 연구소 사정으로 아직 완성된 보고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우리 나름의 판단으로는 애초에 가졌던 생각에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야심찬 기획이었지만, 애당초 성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면 선행연구가 전무한데다, 우리가 잘 훈련된 조사자가 아닐뿐더러 ‘의심받는 외부자’인 탓에 접근 자체에 한계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SBS TV 다큐인 <신의 길 인간의 길>에 인터뷰로 참여한 주요 학자와 목회자 네 명 중 세 명이 우리 연구소 회원인 탓에, 교회와 신자들이 공히 ‘위험스런 이’들에 대한 경각심을 고추 세우고 있어 더 가까이 다가가서 살필 기회를 여간해서 얻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말한 대로, 우리는 이들 세 교회에서 새로운 보수주의적 요소가 신앙 속에 제도화되고 있는 뚜렷한 추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의 편집증적 성장주의에 대해 불편해하는 복음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데 이 불편함의 이유가 사뭇 흥미롭다. 그것은 교회의 ‘천박함에 대한 반발감’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기총 등 대형교회적 이해집단이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보인 노골적인 정치적 편향성은 교회의 팽창주의적 선교가 시민사회로부터 대단히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기총 등은, 시민사회가 교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를 민주화의 부정적 소산이라고 보면서 권위주의적인 정권 재창출을 통해 성장주의를 재활성화하는 정치적 지형을 조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전통적 보수주의의 신앙적 태도가 이미 교회 내부에서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보수주의적 신앙이 교회 내부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들 새로운 보수주의자들은 민주화를 거부하기보다는 보수주의의 미덕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민주적 제도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주체화하고 있는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연구프로젝트는 이러한 새로운 보수주의적 주체화를, 그리고 그 함의를 주로 일상적 언술 속에서 발견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가족주의’를 강화하는 요소가 신앙의 미학화의 주된 골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근대 한국사회는 극단적인 부침을 수차례나 겪으면서, 실패한 부권에 대한 자식들의 거부를 제도화하였다. 그것을 인식의 차원에서 보면 ‘고아의식’이며, 제도의 차원에서 보면 ‘개혁’내지는 ‘혁신’이다. 우리말에서 ‘개혁/혁신’이라는 말이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로서 사용되고 있으며, 그 말의 정서가 대체로 과도한 감성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은 바로 이러한 부모거부의 담론이 일상 속에 제도화된 탓이겠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존경의 부재’라는 정서로서 나타나며, 그런 점에서 사회적 관계의 도구적 성격이 강한 것은 이러한 불신의 제도화 탓이겠다.

그런데 최근의 보수주의적 신앙이 가족주의를 재강화하면서 가부장의 존경을 복권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존경은, 권위주의적 부권이 아닌, ‘친밀한 부모권’을 향하고 있다. 이때 부모-자식의 관계가 완력에 의존하지 않고 대화적이기에 가족주의적 존경이 가능하게 된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러한 친밀성과 존경이 살아 있는 가족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담론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친밀함과 존경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고비용이 요청된다는 데 있다. 자식과 대화하면서 그네들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고, 보다 나은 교육,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부모라야 친밀한 대화가 가능하며 존경의 대상이 될 만하다. 소비사회의 세례를 가장 충실히 몸에 체화한 존재인 자식들은 대체로 부모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욕망을 구성하기 마련인데, 그런 자식 앞에서 감정 조절에 실패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품성이 부모스러움의 기본인 것이다. 요컨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자본 능력’이다.

자식 세대도 ‘좋은 가족’의 조건이 자본 능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조사한 교회들의 청년모임은 ‘양질의 결혼시장’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거기에서는 자본능력과 신앙적 신실함이 함께 검증된 이를 만날 수 있고, 그러한 신앙적 태도 혹은 삶의 태도가 공동체에 의해 감시되고, 양질의 가족 카운셀링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요컨대 이 교회들에서는 ‘좋은 가족’ 이데올로기가 자본 친화적으로 신학화되고 있다. 하여 청년들은 청년 모임에 속한 이성의 동료를 잠재적인 배우자로 여길 뿐 아니라, 그 잠재적 배우자의 부모들 모임인 권사회나 신도회 등을 의식하며 무의식적으로 ‘착한 사람’ 연기를 신앙생활로 일상화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 ‘사회적 착함’은, 부족함 없이 자라 딱히 남의 것에 대해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 있는 여유로운 성장의 산물이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그러한 품성이 유지 재생산되게 하는, 이른바 ‘착한 사람’ 연기를 제도화한 교회, 즉 양질의 결혼시장을 보유한 교회들의 시스템의 산물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교회의 신앙담론이나 제도가 풍요를 신학화/신앙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결핍을 담론화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는 점이다. 대개 여기서 결핍은 타자의 영역이고, 동정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보수주의, 착한 사람 이데올로기/신학은 실패를 대상화된 것으로만 다루며, 주체의 형식으로는 다루지 않는다. 반면 맑스주의나 민중신학은 그 반대로, 풍요를 대상화하는 반면, 결핍이나 실패를 주체화의 핵심 요소로서 언술화한다. 후자는 풍요의 메커니즘, 그것의 주체화의 효능을 간과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보수주의적 재생산을 읽어내는 데 실패했다. 한데 반대로 새로운 보수주의는 실패를 탈주체화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실제로 소망교회는 이른바 명문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이는 교회 대학부의 일원이 되지 못한다. 또한 다른 두 교회도 세속적 성취율이 높은 이들에 상대적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부모세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실패자는 그 교회의 일원이 되지 못하거나, 일원이더라도 주변부에 있다. 실패는, 불쌍히 여기는 대상의 조건이긴 하지만, 주체화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최근 대형교회의 신앙의 미학화, 성찰적 성장주의는 또 다른 방식의 배제주의를 낳는 신앙적 장치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 보수주의가 ‘성장주의를 야만화’했다면, 새로운 보수주의는 ‘야만을 일상화’했으며 그것에 대한 경각심을 형해화시킬 우려가 농후하다. 그런데 후발대형교회는 그러한 일상화된 야만성, 그 망각되는 야만성을 신앙적으로 유지 재생산하게 하는 사회적 담론의 장치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후발대형교회가 야기하는 사회적 착함, 그 수상한 품성을 문제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형교회가 추구하는 인간적 삶, 그 삶의 미학은 지극히 불온한 모델인 것이다.

김진호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kjh55940@dreamwiz.com
한백교회 담임목사
계간 『당대비평』 편집주간
『반신학의 미소』 『예수의 독설』 『예수 역사학』 등 저술.
 

ps : 대형교회에 대한 분석은 탁월한 것 같다. 교회가 검증된(?) 결혼정보업체화가 되어간다는 말. 이해간다. 주위에 그런 말들을 하는 교회신자들도 더러 있었는데,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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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다 -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 미지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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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종교 특히 기독교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판되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내용으로. 재작년에 SBS에서 '신의 길 인간의 길'이란 4부작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다. 내용이 워낙 파격적이어서 우리나라 교단에서 방송사에 대한 대단한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뭐 결국 방송사 측에서 사과 방송을 냈다고 한다.(이런 다큐를 SBS같은 상업방송사에서 방송했다는 것도 대단한 것 같다.) 

이 다큐를 보면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나온다. 책의 원저자 인터뷰도 나오고, 물론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왔다. 근데 웃긴건 그 책이 나오자 마자 보수 교단의 반발과 사재기(?)로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하려 헌책방을 찾아봤지만 구하지는 못했다. 근데 얼마전 출판사를 바꾸고 개정판으로 완역되어 나왔다. 그리고 두번째 책은 한 퀘이커 목사의 종교의 원칙적 물음에 대한 책이다. 왜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이 일어날까? 같이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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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 열린책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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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있을법한 소설책이다. 칠레의 역사적인 민주화, 독재화의 과정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다. 희한한 일은 이 책을 출판하는 열리책들에서 이 작가의 작품 개설서 책을 단돈 666원에 먼저  

출판했다는 것이다. 아주 공격적인 마켓팅이 아닐수 없다. 왜 하필 666원이냐 하는 것은 아마도  

볼랴뇨의 역작 '2666'과 관련있지 않을까 한다. 근데 그럼 666원 보다는 2666원이 더 낳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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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규석의 윤리적 소비
천규석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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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난 학교로(고등학교) 발령받은지 갓 2년째인 병아리 신병 교사였다. 하지만 참 열심히 나름대로의 소신과 열정으로 가지고 열심히 수업을 했었던것 같다(?). 그때 내가 수업을 한 과목은 1학년 지리와 2학년 세계지리을 수업했다. 특히 난 세계지리 수업이 재미있었다. 단순히 교사로서... 아주 이기적으로 내 자신이 세계지리가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보고 다큐멘터리도 많이 보고 했었다. 그때 공정무역에 관한 내용을 알고 나름대로 중요하다는 생각에 공정무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고 그것으로 수행평가도 하고 학교 시험문제에도 출제했다.  

너희들이 먹는 초콜릿에도 이런 우여곡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왕 돈을 가지고 소비하는 것. 기왕이면 의미있게 소비하자. 그게 바로 도덕적 소비, 윤리적 소비다. 그때 난 뭐 윤리적 소비에 대한 그 어떤 이론적인 내용을 알았다기 보다는 그냥 내 생각으로 그것들을 말할 수 있는 단어가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삼성도 애기했었다. 삼성이란 기업은 물론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고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업이지만, 몇몇 부도덕한 기업인들에 의해 도덕적이지 못한 기업행태를 보인다. 그런 기업의 물건을 소비하기를 거부하는 것도 윤리적 소비가 될 수 있다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하기도 하고 앞뒤 재지않고 막무가네였던 것 같다. ㅋㅋㅋ 그런 후 여러가지 다른 글들을 읽어보면서 공정무역 또한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정무역은 제3세계국가들의 빈곤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고착화시키는 것이라는... 물론 이런 비판에 대한 비판으로 그럼 어쩌자는 거냐, 그나마 이렇게라도 하는게 그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냐 하는 볼멘 목소리도 있다. 내 머리로는 그 어떤 것이 좋다고 판단할 순 없다. 다만, 그것들을 이해할 뿐이다.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가 바로 공정무역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꼭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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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설연휴도  다 지났다. 언제부터인가 왠지 모르게 명절이 즐겁지않은 듯 하다. 나이먹음에 증거이겠거니 한다. 나도 예전에는 구정, 신정이란 단어를 무심결에 사용했다. 다들 그렇게 말을 하니 그것이 맞는 말인줄 알았다. 하지만 구정, 신정이란 단어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양력 초하루와 우리들이 사용했던 음력 초하루를 구분하기 위해서 만든 용어 였단다. 그 사실을 안 다음부터는 신정은 그냥 1월1일이고 구정을 그냥 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과거사 청산이란 거창하게 일본의 백배사죄와 배상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되어있는 이런 사소한 용어, 습관 부터 바꾸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아래는 한겨레신문 기사내용이다.  

1926년 서울 북촌 일대의 설 풍경

식민지의 우울함이 자욱했던 당시, 총독부의 양력 사용 강요에도 조선인은 여전히 설을 쇠고 있었다. 거리에는 갈비·꿩·귤·술떡 등 가지각색 세찬을 이고지고 다니는 남녀노소로 장터를 이루었다. 북촌의 한 떡국집은 초하룻날에도 문을 열어 타향살이하는 하숙생들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는데…  

서울이 근대의 바람을 맞아 도시화로 치닫고 있던 1926년, 그 해 2월14일치 <동아일보> 5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서울 북촌의 거리에는 수일 전부터 갈비, 꿩, 귤, 술병, 기타 가지각색의 세찬을 혹은 이고 혹은 지고 다니는 남녀노소로 때 아닌 장터를 이루어오는 한편으로 귀여운 딸과 어린 아들의 손을 잡은 부녀들이 혹은 옷전으로 혹은 신가게로 혹은 구둣방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의 설빔에 분망하다.”  

여기에서 ‘세찬’(歲饌)이라 함은 설날에 먹는 음식을 가리킨다. 그런데 나열된 세찬 중에서 꿩이 왜 들어 있을까? 꿩고기는 조선시대에 쇠고기보다 국물을 만드는 데 훨씬 많이 쓰인 고기 재료였다. 꿩을 사냥하는 일을 놀이로 했던 양반들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소보다 꿩고기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육고기가 필요하면 닭보다 꿩이었고, 쇠고기보다 꿩고기였다. 하지만 식용을 위해서 소를 키우기 시작하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야생의 꿩고기보다 쇠고기가 떡국 국물을 만드는 데 더 자주 이용되었다. 

떡국을 만들려면 먼저 가래떡이 필요하다. 가래떡은 원래 멥쌀가루를 익반죽해서 만든 떡을 여러 번 쳐서 손으로 문어다리같이 굴려 빚어 길게 만든다. 19세기 초반에 나온 <열양세시기>에서는 이 가래떡을 ‘권모’(拳模)라고 불렀고, 1840년 전후에 쓰인 <동국세시기>에서는 ‘백병’(白餠)이라 불렀다.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떡국 만드는 과정은 매우 자세하다. “흰떡을 엽전과 같이 잘게 썰어서 간장국에 섞어서 쇠고기와 꿩고기와 고춧가루를 섞어 익힌 것을 병탕(餠湯)이라 한다”고 적었다. 그런데 고춧가루를 떡국에 넣은 점은 지금과는 다르다. 아마도 꿩고기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1926년 설날의 세찬으로 꿩이 등장한 이유 역시 떡국의 국물을 내는 데 여전히 꿩고기가 으뜸이라고 여겼던 당시 서울사람들의 입맛 때문이었다.  

세찬으로 등장하는 갈비는 예나 지금이나 쇠고기의 갈비로 조리한 음식이다. 갈비는 조선 후기만 해도 왕실에서 우육(牛肉) 먹기를 금지시켰기 때문에 권세가가 아니면 먹기 어려웠다. 하지만 1920년대 초반이 되면 지금의 서울 낙원동 일대에 숯불에 구운 갈비를 냉면과 함께 판매하는 선술집이 생겼다. 하지만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갈비는 설날과 같은 명절이 되어야 일부 가정에서 특별음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귤도 조선시대에는 궁중에 진상하던 과일이었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제주도에 개량 귤이 재배되면서 그 사정은 달라졌다. 비록 지금과 같이 흔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돈만 있으면 귤 구입이 가능했다.  

술병은 술떡을 가리킨다. 다른 이름으로 기주떡, 기주병, 기증병, 벙거지떡이라고도 불렸다. 멥쌀가루에 막걸리를 넣고 부풀려 찐 술떡은 보통 한여름이 되어야 발효가 잘되기 때문에 한겨울에 먹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근대적인 기술이 도입되면서 한겨울에도 술떡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동국세시기>에서는 설날의 대표적인 떡으로 팥시루떡을 꼽았다. “멥쌀가루를 시루에 찌는 중에 삶은 붉은팥을 켜로 까는데 멥쌀가루의 두께는 시루의 크기를 보고 정한다. 혹은 찹쌀가루를 켜로 넣어 찌기도 한다. 이것을 증병(甑餠)이라고 부른다. 이것으로 새해에 귀신에게 빌기도 하고, 초하루와 보름 또는 아무 때나 귀신에게 빌 때도 올린다”고 했다. 하지만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었던 팥시루떡과 달리 그 부드럽고 달콤한 맛 덕분에 1926년께는 서울 종로의 가게에서 세찬의 하나로 팔렸다.  

비록 식민지의 우울함이 자욱했던 1926년 서울이었지만, 음력 설날을 앞두고 서울의 북촌 일대는 분주한 명절 대목의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섣달그믐날까지도 고무신 가게나 포목점 중에서는 밤늦게까지 준비 못한 고객을 기다렸다. 하지만 설날 초하룻날이면 종로의 대부분 가게는 문을 닫았다. 이에 비해서 양력설을 지내는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지금의 명동과 충무로 일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전방마다 문을 열고 회사마다 사무를 보며 나막신 신은 학생들이 학교 시간을 맞추느라 숨이 턱에 닿도록 달음질을 한다”고 했다.  

근대 이전에 일본 역시 조선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달력인 음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1867년에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단행하면서 근대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서양 역법을 채용하였다. 조선총독부는 공식적인 달력으로 조선인도 그들처럼 양력을 사용하도록 강요하였다. 이미 양력으로 바뀐 세상에서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에게 음력설날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서울에 유학을 와서 북촌 일대에서 하숙을 하던 조선인 학생들에게는 명절 설날에도 학교를 가야 하는 고달픔이 있었다. 물론 떡국을 먹는다는 생각은 상상도 못할 일.  

그런데 지금의 북촌 한옥마을 근처에 당시 떡국집 한 곳이 문을 열어 화제가 되었다. 앞의 <동아일보>에는 ‘지방학생 위해 떡국집은 개점’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초하룻날 떡국이 팔릴 것 같지 아니하여 화동(花洞) 어떤 떡국집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이야 누가 오늘 같은 날 떡국을 못 먹겠습니까마는 오늘 떡국을 먹지 못하면 까닭 없이 섭섭하다 하여 부모를 떠나 시골서 올라온 학생들의 주문이 하도 많기에 이렇게 문을 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닙니까 하숙집에서 떡국까지 끓여 주는 집이 어디 쉽습니까’ 하며 말을 한다.”  

이렇듯 조선총독부의 강요에도 불구하고 1926년 즈음에도 조선인은 여전히 음력설날을 쇠고 있었다. 당연히 설이란 이름도 신문에 떳떳하게 등장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이 되면 설이란 이름이 신문 지상에서 사라진다. 심지어 떡국을 먹지 말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쌀밥 먹기도 어려운데 왜 아깝게 떡국을 먹느냐는 주장이었다. 이 모두 전쟁에 미쳐버린 일본제국주의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로부터 적어도 1980년대 초반까지 설날은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네 달력에서 떳떳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자연히 떡국이나 술떡을 세찬으로 판매하는 가게도 지금은 없다. 그 대신 제상에 가득한 차례음식에 온갖 빛나는 음식들이 설날 아침의 식탁을 채운다. 사시사철 각종 음식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1926년 떡국집에서 간신히 설음식을 얻어먹던 하숙생의 애틋함이 그리운 이유는 무엇일까.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민속학) 한겨레, 2010.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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