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시각) 아이슬란드 남부에서 발생한 화산폭발로 유럽 지역은 지금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폴란드 대통령 부부의 안타까운 비행기 사고에 의한 장례도 이 사고로 인해 많은 국가 지도자들이 참석을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관련 기사들을 모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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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지열에너지 대국' 꿈 

남서부 해령 화산에 구멍 뚫어
초임계수 채취등 탐사 작업 

아이슬란드 지질학 연구팀이 대양저(大洋低)가 새로 만들어지는 중앙해령을 조사하기 위해 화산 중심부에 직접 구멍을 뚫고 있다고 BBC 인터넷 판이 26일 보도했다. 대양저는 대륙 사면에 이어지는 평탄하고 넓은 해저 지형으로 깊이 4,000~6,000㎙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해령(中央海嶺)은 화산 활동이 일어나는 곳으로,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 북극해 남극해를 통과하는 총 7,000㎞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산맥을 말한다. 

구드문두르 오마르 프리들라이스손 박사팀은 2,000만 달러를 들여 아이슬란드 남서부 레이캬네스 해령에서 지난 해 땅 속 3,082㎙까지 파 들어 간데 이어 올해 4,000㎙이상까지 구멍을 뚫는 프로젝트(IDDP)를 추진 중이다.
이 곳은 13세기 마지막 폭발을 일으킨 뒤 언제든 분출할 수 있는 유년기 지형으로, 부글부글 끓는 진흙 연못과 갈라진 틈에서 솟구치는 수증기 등이 마치 외계와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중앙해령에 속해 있는 아이슬란드는 테니스 공 솔기처럼 지구 대양의 가장자리를 빙 둘러싸고 있으며 바로 이 곳에서 대륙들이 분리되면서 새로운 대양저가 생겨나고 있다. 

초고온 지하수와 용해된 광물질을 뿜어내는 해저 열수구(해저온천)들이 대부분 깊은 바닷속에 있는 것과는 달리 아이슬란드는 대서양 해수면 위로 솟아 오른 화산 맨틀 암석층 위에 있어 접근이 상대적으로 쉽다. 아이슬란드 지열 발전소는 이미 지하 600~1,000㎙ 깊이에서 뽑아 올리는 섭씨 240도 증기로 국내에서 쓰는 전력 대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번 탐사에서 지질학과 에너지 흐름, 화학적 환경 등에 대한 연구 뿐 아니라 ‘초임계수(超臨界水)’를 채취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초임계수란 수증기와 물 뿐 아니라 구리 은 금 등의 귀금속이 녹아 있어 훨씬 큰 에너지를 지니는 단일한 상태의 물이다.
지열 발전소 관계자들은 금세기 말까지 아이슬란드가 액화 수소 형태로 지열에너지를 수출하는 ‘북방의 쿠웨이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상준기자  2006.3.7 

 

화산폭발 

서기 79년 8월24일,이탈리아 남부 폼페이.베수비오산 정상에서 거대한 버섯 모양 구름기둥이 피어오르더니 곧이어 굉음과 함께 화산재와 용암이 솟구쳤다. 시커먼 유황 연기가 천지를 삼켜버린 사흘 뒤 로마제국 최고의 휴양지 폼페이는 지구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전설처럼 전해지던 일은 1748년 나폴리왕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목욕탕 원형극장 등 건물은 물론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그대로 돌처럼 굳어 있는 모습은 순식간에 닥친 자연의 재앙 앞에 놓인 인간의 무기력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발해의 멸망 또한 939년 1월 발생한 백두산의 화산 폭발 때문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거란 역사서인 '요서(遙書)'엔 발해가 내분과 민심 이반으로 인해 망했다고 기록돼 있지만 그토록 광대했던 제국이 일시에 스러진 건 화산 폭발에 따른 참사로밖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산 폭발이 인류 전체를 위협했다는 주장도 있다. 7만3000년 전 수마트라섬 토바 화산 폭발 이후 엄청난 양의 재가 6년 동안이나 태양을 가린 통에 지구 기온이 뚝 떨어져 1800년간 빙하기가 도래했었다는 게 그것이다(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스탠리 앰브로즈 교수 등).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빙하 밑 화산 폭발로 분출된 화산재 구름이 유럽 하늘을 뒤덮으면서 영국 · 독일 등 북부와 중부 유럽 공항의 항공기 이 · 착륙이 전면 금지되는 등 사상 유례없는 항공대란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화산재가 항공기 엔진에 치명적일 수 있어 유럽시간으로 월요일 오전까진 운항을 재개하기 어렵고,완전 정상화엔 상당기간이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겨우 나아지려던 세계경제에 다시 먹구름이 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행기야 다시 뜨겠지만 화산재가 여기저기 퍼져나가 햇빛을 막으면 지구 곳곳에 어떤 기상이변을 일으킬지 알 길 없다. 1815년 4월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은 다음해 여름 유럽은 물론 미국 동부에까지 눈과 서리를 내렸다는 마당이다.

일각에선 미국 옐로스톤 공원 밑 화산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며 슈퍼화산 폭발 가능성도 제기한다. 나라 안팎에서 재앙이 겹치는 틈을 타고 혹세무민하는 종말론이 등장할지 모른다. 괜한 낭설에 솔깃하지 말고 하루하루 겸허하게 최선을 다할 일이다.

한국경제 2010.4.18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화산폭발 

기원전 1480년 그리스 테라 섬의 화산 폭발은 7년간 지구환경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막강했다고 한다. 섬 일대에 61m 두께의 화산재가 쌓이고 수십m의 거대한 해일이 지중해를 덮쳤다. 섬 중앙에 화산 폭발로 파인 곳의 지름이 12.5㎞나 된다. 신들에 의해 파괴됐다는 아틀란티스 섬의 전설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폼페이의 최후’로 잘 알려진 79년 이탈리아 베수비오산 폭발은 로마문명과 헬레니즘 문명을 재로 덮어버렸다. 유독가스로 1만6000여명의 인명이 희생됐다.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산의 폭발은 가장 규모가 큰 폭발로 전해진다. 화산재로 뒤덮인 시커먼 하늘이 3일 동안 지속됐고 화산재는 1년여 동안 남아 햇빛을 가렸다. 멀리 떨어진 캐나다에서도 여름 없는 한 해를 보냈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에서의 화산 폭발로 유럽의 항공로가 대혼란에 빠졌다. 거대한 화산재 구름대가 북대서양 상공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럽 각국에서의 영공 폐쇄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유럽행 우리 국적 항공편도 어제 10여편이 결항했다. 화산재 남하로 폴란드 북서쪽의 항공기 운항이 금지됨으로써 오는 18일 고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하려는 각국 정상들의 방문 일정에 차질이 우려된다. 비행기 대참사에 이어 뒤덮은 화산재가 장례에 차질을 줄 형국이니 설상가상이란 말이 실감난다.

화산 폭발의 영향은 지대하다. 마그마 분출에 따른 직접 피해와 빙하를 녹여 대홍수나 산사태를 유발한다. 아이슬란드에서도 홍수 대피령이 내려졌다. 황화수소, 아황산가스, 염화수소 등 화산 기체 분출물의 영향으로 방대한 지역의 호수나 연못이 염산이나 황산 성분이 강한 산성화 호수가 된다. 심각한 토양오염은 지옥을 방불케 한다. 화산재의 영향 또한 엄청나다. 화산재 구름은 시야를 가릴 뿐 아니라 비행기 엔진에 빨려들어가면 치명적 손상을 준다. 작은 암석조각이나 모래 등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햇빛을 가려 겨울이 길어지고 심하면 농작물을 초토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화산 폭발이나 지진에선 비교적 안전하다. 그러나 지구촌 대재앙이 잦은 것을 보면 우리만 예외일 수 없다. 철저한 대비만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세계일보 2010.4.16 임국현 논설위원 
 

 

아이슬란드 ‘잿빛 하늘’

 

16일(이하 현지 시간) 아이슬란드 비크(Vik)에서 촬영한 하늘의 모습. 지난 14일 아이슬란드 남쪽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엄청난 규모의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유럽 전역으로 이동하면서 항공 대란이 발생했다. 유럽 주요 공항들은 화산재가 시야를 가리고 엔진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비행기 이착륙을 모두 취소했다. ⓒ로이터 2010.4.17 

 

아이슬란드 '화산재' 여파에 유럽행 비행기 잇따라 결항 

14일(현지시각) 아이슬란드 남부에서 발생한 화산 폭발로 국내 항공사들의 유럽노선 항공편이 잇따라 결항되고 있다. 유럽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항공편도 발이 묶였다.

대한항공은 16일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러시아 모스크바행 등 유럽지역 4개 노선의 운항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도 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행 등 2편의 운항을 취소했다.

16일 오전 10시30분 현재 인천공항공사는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러시아 모스크바, 핀란드 헬싱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과 연결된 항공편 12편의 운항이 전면 취소됐다고 밝혔다.

유럽에서도 영국·아일랜드·노르웨이 등 일부 국가의 공항 이착륙이 전면 금지됐다. 파리 드골 국제공항 등 프랑스와 스웨덴·덴마크·핀란드·벨기에·네덜란드의 주요 공항들도 폐쇄됐다. 유럽항공안전당국은 화산재로 인한 항공편의 영향이 2일간 계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도 유럽행 항공기가 결항됐다.

유럽 화산재 확산 예상지역

유럽 대부분 공항이 전면 통제된 것은 화산재가 비행기의 안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화산이 폭발하면 연기와 함께 재가 분출되는데, 그 안에는 미세한 암석조각, 유리, 모래 등이 들어있다. 이 물질이 항공기 엔진에 빨려 들어갈 경우, 자칫 엔진이 멈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화산재는 최고 11Km 상공까지 치솟아 바람을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운항 중인 비행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1982년 6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떠나 호주 퍼스로 향하던 브리티스에어웨이즈 소속 여객기의 엔진 4개가 화산재 때문에 모두 꺼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엔진이 꺼진 채로 급강하하던 비행기는 간신히 엔진을 재점화시켜 인근 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영국 왕립공학회 스튜어트 존은 "화산재는 입자가 매우 작기 때문에 녹아 굳어지면서 엔진의 모든 구멍을 막아버려 연료 및 냉각 시스템을 마비시킨다"고 지적했다.

대신 지상에 있는 사람의 건강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산연구가 데이비드 로서리 박사는 "화산재 구름은 높은 고도에서 바람을 따라 떠돌아다닌다"면서 "유난히 붉은 노을이 관측될 수는 있지만 너무 높아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0.4.16 

 

아이슬란드 화산폭발 홍수로 이어져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빙하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로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모습

아이슬란드의 남쪽 에이야프얄라요쿨에서 14일 오전 1시께(현지시각) 발생한 화산 폭발이 홍수로 이어져 주민 800여명이 대피하고 주요 도로와 공항이 통제됐다.

   아이슬란드 경찰 대변인은 "에이야프얄라요쿨에서 화산 폭발로 빙하가 녹아 큰 홍수가 일어났다"며 "아직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없으나 홍수와 여진으로 약 800명이 대피했다"고 말했다.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로 화산 인근에서는 두 차례의 큰 홍수가 발생하면서 주변 도로들이 전면 봉쇄됐으며 홍수로 교량이 붕괴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공항청 대변인은 아이슬란드 주요 공항의 경우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화산 인근 공항 1곳은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아이슬란드 기상연구소 관계자는 화산 꼭대기에서 나온 연기가 약 6km 상공까지 뒤덮었으며, 에이야프얄라요쿨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이 2.5m 높이까지 불어났으며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홍수 발생 지역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한 남성은 "오전 10시30분께 엄청난 소음이 났고, 진흙과 흙더미가 산에서 쏟아지는 것을 봤다"며 흙더미가 산에서부터 농장이 있는 국도변까지 4km 구간을 흘러내리는데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에이야프얄라요쿨 빙하에서는 지난달에도 빙하 밑에 위치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주민 600여명이 대피한 바 있다.
충청일보 2010. 4.15

 

반도체ㆍ휴대폰 유럽수출 `올스톱`…현지공장도 가동 차질   

국내기업도 피해 확산
하루 손실액은 반도체 500억ㆍ휴대폰 300억원…항공화물 운임 300만달러
  

 

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무게 100t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보잉747(B747-400F) 화물기 90여대가 터미널을 지키고 있었다. 모두 유럽행 항공기.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이후 지난 16일부터 사흘째 발이 묶여 있다. 항공사별 결항 현황은 대한항공이 53편(도착 21편,출발 32편),아시아나 17편(도착 7편,출발 10편)이며 외항사는 20편(도착 9편,출발 11편)에 달한다. 항공회사 관계자는 "스톡홀름 파리 프랑크푸르트 빈 등 유럽 중심도시로 향하는 화물 운송이 전면 중단됐다"며 "터미널 옆 화물집하장에도 수천t의 수출화물이 쌓여 있다"고 전했다.

◆회복 조짐 경기에 복병으로 등장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이 한국 경제에도 어두운 화산재를 드리우고 있다. 항공기로 실어나르는 반도체 휴대폰 등의 수출이 직접적 타격을 받고 있는 데다 유럽 생산기지에 대한 부품 · 소재 공급이 차단되면서 현지 공장 가동이 중단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어서다.
유럽발 항공대란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수출경기 위축에 따른 기업들의 실적 악화는 물론 경제 전반의 성장률이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장을 지낸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유럽과의 여객-화물 운송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올 상반기 정부의 성장 목표치 달성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항공기 결항으로 최대 피해를 입고 있는 품목은 휴대폰이다. 삼성 LG 등이 유럽에 수출하는 휴대폰 물량은 하루평균 20여만대.이들 업체의 휴대폰 평균 판매단가가 150달러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하루 매출 손실이 3000만달러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유럽에서 20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삼성전자 관계자는 "TV나 가전제품과 달리 휴대폰은 유럽 현지에 공장을 두고 있지 않다"며 "현 시점에서 프리미엄 제품 수요가 많은 유럽으로의 수출 차질은 경영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 공장 가동 차질 우려

사상 최대 호황가도를 달리고 있는 반도체업계도 뜻밖의 악재에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유럽으로의 수출 중단에 따른 매출 손실이 하루 평균 2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물량을 합하면 국내 반도체업계 손실은 50억원이 넘을 공산이 크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의 폴란드 공장도 한국에서 공수해 오는 전자부품 · 소재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완제품 생산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TV 모니터 등을 생산하는 삼성전자의 러시아 · 슬로바키아 공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 들어 LCD · LED TV와 휴대폰 등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부품 품귀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만큼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LCD 패널에 들어가는 '이중휘도향상필름(DBEF)'과 '타임 컨트롤러',휴대폰에 내장되는 그래픽 메모리 등은 현지 재고 물량이 1주일치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꾸로 유럽 최대 반도체회사인 ST마이크로에서 자동차용 · 전력용 시스템IC를 수입하고 있는 자동차업계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장부품 비중 확대로 비메모리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조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반도체 가격이 더 뛰어오를 것 같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특송업체 접수 중단

최근 화물 운송 수요 확대로 항공기를 완전 가동해 온 항공업계도 울상을 짓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유럽행 화물기는 하루 평균 6편.편당 운임이 50만달러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하루 300만달러씩의 매출을 허공에 날리고 있는 셈이다.

DHL 페덱스 등 항공 특송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대부분 화산재 피해를 입은 서유럽에 거점을 두고 있어 지난 주말부터 특송 접수를 중단했다. 독일을 허브로 삼고 있는 DHL 관계자는 "전기 전자 자동차부품 의류 등의 수출입이 큰 애로를 겪고 있다"며 "프랑크푸르트 공항 자체가 폐쇄된 마당에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페덱스 코리아 측도 "파리 등 허브 공항에 미리 집결해 있던 화물은 배송에 큰 애로가 없겠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며 "주말이 지나 본사의 지침을 받아봐야 세부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캐비어 등 유럽산 식자재를 수입하고 있는 특급호텔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식재료의 특성상 신선도가 중요해 충분한 비축 물량을 갖고 있지 않다"며 "메뉴를 조정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 20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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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진 2010-04-19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예전에 어떤 교과서 관련 세미나에 갔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리와 역사 교과서에 아프리카에 대한 역사 부분이 전무하다, 아프리카를 너무 제국주의적인 시선에 의해 피상적으로 보고 있다라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나 또한 세계지리 수업을 할때 아프리카 부분에 대해서는 애기할 수 있는게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그때 서점에서 책한권을 산게  루프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였다. 한동안 책 꽂이에 장식품으로 있었는데, 우연히 프레시안에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이 있어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책들이 더 많이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한다. 

 

[철학자의 서재]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우분투, 당신이 있으니 제가 있습니다."  프레시안 2010.2.20

우분투! 우분투(Ubuntu)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말 중 하나인 반투어(Bantu language)의 인사말이다. 본래 인사말은 다른 이와 교감하고 공경을 나타내는 말이다 보니 '굿 모닝'이나 '안녕하세요'와 같이 매력적인 말이 많다.

그러나 우분투는 이런 매력적인 인사말 중에서도 유난히 우리의 귀를 사로잡는다. 물론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굿 모닝'과 상대의 무탈을 기원하는 '안녕하세요'도 우리에게 미소를 간직하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하지만 '당신이 있으니 제가 있습니다.'라는 뜻을 가진 우분투의 겸허함은 유난히 서로를 따뜻하게 하는 인사말로 다가온다.

상대의 실존에 대한 공경과 사랑을 보내고 그로 하여금 나 자신을 확인하는 이 인사말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사말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요즘 이런 인사말이 유난히 매력 있어 보이는 것은 인사말들이 가진 속뜻이 희미해져가고 그저 인사치레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도 든다. 어느새 타인은 나를 있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우분투와 같은 말은 로맨티스트만의 용어가 되어 이 매력적인 인사말의 속뜻이 점점 낯설어져 가고 있다.

서구의 아프리칸 오리엔탈리즘

대항해(大航海) 시대가 시작된 후 아프리카를 접하는 서구의 시선은 서툴렀다. 익숙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서툰 접근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서투름은 폭력이 될 수 있다. 15세기 중엽 포르투갈 사람들이 제일 먼저 서부 아프리카 해안에 도착하였다.

그 뒤를 이어 다른 나라의 모험가와 선교사들이 먼저 들어오고 다음은 상인들, 그다음은 군대가 들어왔다. 1487년 바르톨로메오 디아즈가 폭풍우 곶을, 1497년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인류의 발상지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곳곳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서구인들은 아프리카를 직접 손대 보지도 않고 곁눈질로만 해부하기 시작했다. 타인의 삶을 멋대로 해부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그 해부조차도 곁눈질로는 잘될 리가 없었다. 수만 년 전부터 이어져온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그들은 단 몇 년 만에 모두 파악했다고 자부했다.

16세기가 되자 아예 선교 거점을 마련하고서는 아프리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이 기억하고 간직하는 하는 것은 '넬슨 만델라' 하나뿐이다. 그러고 나서는 아프리카는 덥고 위험해 보여 가까이도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프리카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해왔다.

무엇보다도 자기들이 대충도 알지 못하는 갈등과 전쟁 특히 질병과 비참함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언제나 아프리카를 도와줄 각오가 되어 있다. 저쪽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곳곳에 존재하는 비참함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영화 <블랙호크 다운>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소말리아에서의 작전은 그곳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간섭의 비극적인 결과이다. 또 매년 쏟아지는 서구의 막무가내 지원은 아프리카를 발전시키기보다는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물론 선의의 지원이 많지만 거의 모든 아프리카의 빈국은 그들이 받는 지원금 이상의 부채와 이자를 그 지원국들에 갚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양의 입장에서 본 동양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을 비판하는데 아프리카를 향한 오리엔탈리즘은 이보다 훨씬 더 일그러져 있다. 착취하든 지원하든 소위 선진국들은 항상 아프리카에 군림하려 든다.

한편, 아프리카가 북반구의 선진국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일그러져 있다. 유럽을 직접적으로 접해 본 적도 없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전해오는 말에 의해 수많은 환상을 만들었다. 그 넘쳐나는 먹을거리와 풍요, 그 부유함의 한 조각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각오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유럽으로 떠났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더욱 고약한 가난이었다.

이렇게 일그러진 시각은 타인의 존재를 긍정하는 상호 간의 관계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타자를 규정하는 데서 생겼다. 타인과의 관계가 상호간의 소통 없이 일방에 의해 규정된다면 이것은 오해와 폭력을 낳는다.

타자에 대한 인정은 평화의 시작이다 

 

▲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프레시안 

타인과 자신의 관계를 정립하고 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을 여느 철학자들은 '인정(recognition)'이라 부른다. 헤겔은 인간의 자기의식은 현실 속에 살아있는 타자의 존재에 대한 반성을 통하여 완성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개인은 서로를 용납할 수 없고 적대적 관계가 된다. 따라서 이때 상호 간의 폭력이 난무하게 되고 우리 속의 수많은 '나'와 '너'는 오직 자신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툴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을 규정하려는 고약함이 누그러들지 않는 한 이러한 다툼은 계속될 것이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그동안 너무 쉽게 단정하고 규정한 타인에 대해 함께 반성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책 서두에 나오는 아프리카 시 한편은 그들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상호 인정과 동떨어져 있는지 알게 해준다.

검정은 많은 색깔들을 갖는다,
우리가 찾는 빛깔은 검정.
검정은 아주 다채롭고
검정은 장님한테만 어둡게 보인다…….


종족에 따라 다르지만 아프리카인들은 검정색을 많게는 20여 가지로 구분한다고 한다. 그 동안 아프리카를 향한 외부의 시선은 참으로 서툴렀던 것 같다. 지리적, 종족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제국주의자들의 국경 나누기는 물론이고, 선교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서투른 접근은 그들 사회에 테러에 가까운 폭력이 되었다.

그들이 애를 태워가며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선교 활동을 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야만을 버리고 문명을 선택하게 하겠다는 접근은 자신의 옷을 타인에게 억지로 구겨 넣고 만족해하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이었다. 이런 폭력적인 교육후원은 아프리카 공동체를 붕괴시켰고 그들의 오랜 경험과 역사는 타인의 규정에 의해 단절되어버렸다.

원로들의 경험이 필요 없어지고 전통은 역사적 매개가 없이 단절되었다. 이 대륙은 겉보기에는 젊어졌지만 젊어진 것이 아니라 미숙해져버려서 유럽인들의 말대로 야만에 가까워져버렸다. 북반구에서 온 자칭 문명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영어와 서양의 역사를 가르치며 서구문물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고 결과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공동체와 삶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부유하진 않았을지 몰라도 부족하지는 않았던 과거의 전통적 사회는 빈곤과 결핍의 사회가 되었다. 상호인정이 아닌 일방에 의한 규정은 이렇게 잔인하게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절망 속에 머물게 했다.

그러나 역사는 공평한 것인지 더 잔인한 것인지 폭력의 창끝은 유럽을 향했다. 아프리카를 야만으로 간주하며 자신들을 문명으로 자부하던 유럽인들의 독단은 '우리'와 '너희' 간의 상호 인정을 거부하고 타인에 대한 거부로 이어져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세계대전의 무대로 만들고 말았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을 두고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발전해온 인류가 이런 야만으로 빠져든 것에 대한 반성과 지탄을 했다. 스스로를 문명이라 자부하며 타인에 대해 야만으로 규정한 유럽이 스스로 전쟁과 학살을 자행한 것에 대해 그는 서구 문명이 자랑해온 계몽은 타인에 대한 지배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서구인들의 자신들에 대한 과신(過信)과 타인에 대한 무시는 자신들도 모르게 스스로를 폭력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타인에 대한 비인정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야만의 상태에 빠지게 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동질성이 아니라 공통성이다."

그간 서구 사회가 아프리카에 대해 곡해해온 것과 비슷한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도 나타난다. 자신의 잣대를 상대에게 들이대서 자신에게 맞추려는 모습은 비단 서구가 아프리카에 보이는 모습만은 아니다.

보통 통일-비단 남북 간의 통일만 아니라-을 이야기할 때 '동질성'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같은 질을 회복한다는 말인데 얼핏 근사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살면서 같은 질을 가진 사람을 한 번도 본적 없는 것은 내가 시골사람이어서는 아닌 듯하다.

보통, 사람의 질을 말할 때 '기질'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기(氣)의 질을 의미한다. 하지만 부모님으로부터 같은 기(氣)를 물려받은 동기(同氣)인 형제간에도 그 기의 조합이 달라 기질이 다르게 나타는데 하물며 부모가 다른 타인에게 자신 같은 동질성을 요구하는 것은 참 잔인한 말이다. 상대에게 나와 같은 동질성을 요구하는 것은 타인에게 나를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인정은 동질성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공통성을 찾고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분투가 타인의 존재를 통해 나를 확인한다고 해서 나를 타인 속에 넣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지를 품지 못하는 생각이다. 타인과의 공통성 속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차이를 존중할 때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우분투의 이념일 것이다. 하나의 조화로운 흐름을 이루는 통일에는 다름을 아우르는 통이(通異)가 동행해야 한다.

아마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의 숨겨진 또 다른 제목은 '처음 느끼는 다른 삶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타인의 삶을 쉽게 단정지어버리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보통 "강아지" 하면 "멍멍", "고양이" 하면 "야옹" 하듯이 "아프리카" 하면 "우가 우가" 한다. 저자의 집필 의도는 이러한 오해에 대한 반발이다.

아프리카인들에게도 삶과 역사가 있고 따라서 사랑과 기쁨 그리고 슬픔이 있다. 비록 책에서는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루지만, 현대인이 가지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의 모습은 서구의 역사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무지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우리 주변에는 항상 아프리카가 존재한다.

이 책은 아프리카를 예로 타인에 대한 인정에 대해 재미있게 접근하려 한다. 타인에 대한 인정은 타인이 나를 인정하게 하는 손잡음이다. 그 손잡음이 '너희' 속의 '나'를 '우리'로 만들고 나 밖에 있는 타인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신이 있으니 제가 있습니다. 우분투. 

/이원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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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探究] <85> 가뭄의 뿌리를 추적하다:'天災'와 '人災' 사이 

프레시안 2010.4.16

중국은 역사적으로 농업 중심 국가였다. 역대 모든 정권이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만큼 중국과 농업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러나 중국의 농업은 '하늘'에 의지해 왔다. 광활한 중국 땅에는 가뭄과 수재가 없었던 해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중국은 역사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자연재해'를 이겨내는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그 가운데 '수재'와 '가뭄'은 중국인들에게 매우 익숙했다. 그러나 금년 봄의 가뭄은 유난히 심각하다. 이 어려움은 '100년에 한번 오는 가뭄'이라는 표현으로도 짐작이 된다.

중국에서는 지형적인 특성상 자연재해가 특별히 많다.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유엔 재난경감 국제전략기구(UNISDR)'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최근 300년간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가 10만 명이 넘는 50차례의 자연재해로 1억 5100만 명이 사망했다. 이러한 50차례의 자연재해 중 유럽은 3차례에 불과했다. 1812년 겨울의 동해(凍害)로 프랑스인 40만 명, 1845년부터 1846년 사이의 아일랜드의 기근으로 150만 명, 1908년 이탈리아의 지진으로 11만 명이 각각 사망했다.

그러나 중국 땅에서는 26차례나 일어났고, 누적 사망자도 1억 3백 만 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68%에 해당한다. '유엔 재난경감 국제전략기구'는 "중국은 세계적으로 자연재해가 가장 심각한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대륙에서 일어나는 지진의 빈도와 강도의 측면에서, 중국이 세계의 1위로 전 세계 지진의 1/10 이상이 중국에서 발생했다. 중국에서는 태풍의 상륙 빈도도 매년 평균 7차례가 넘는다. 인류가 기록을 한 이래로 매년 중국에서는 가뭄과 수재, 산지재해, 해안선에서의 재해가 발생하고 있다"있다고 발표했다. 더 나아가 이 보고서에서는 역사상 기록된 지진의 횟수가 8,000번 이상이며, 그 가운데 중국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진도 6 이상의 지진만 1,000회 이상이었다. 특히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 지진으로 인한 사망률 비율 중 중국인이 50퍼센트 이상이다.

그 이유를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바크트만 교수는 <환치우스바오(環球時報)> 기자와 인터뷰에서 전체적으로 유럽의 자연조건에 비해 아시아의 자연조건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럽은 지진대가 적고 강수량이 비교적 일정하기 때문에 농업, 목축업, 어업이 혼합식 경제 형태를 띠고 있고, 대다수 유럽인들은 하늘에 의지하여 생존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연계 자체가 유럽인들의 삶을 위협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자연재해가 나타나면 일종의 '마녀의 마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많은 전설이나 신화가 인간과 자연의 투쟁의 시각에서 기록되었고 이들이 영웅이다. 따라서 '여와보천(女蝸補天)'이나 '우왕치수(禹王治水)' 등의 신화 등이 대표적이라고 바크트만 교수는 주장한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중국이 유럽에 비해 자연재해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중국은 광활하고 지형이 복잡하다. 따라서 수 천 년 간 수재, 가뭄, 지진, 곤충의 습격, 전염병, 등 각종 재난으로 점철되었다. 따라서 중국의 역사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재난 극복과 항쟁의 역사'이다. 기록으로 보면 기원전 602년부터 1938년까지 2,540년 동안 황허가 범람한 것이 1,590차례, 물길을 크게 바꾼 것이 26차례였다. 결국 평균 3년에 두 번 정도 홍수가 나고, 백년에 한 번 씩은 물길을 바꾸었다는 의미다. 

 

금년 봄, 중국은 북부에는 황사로, 남부는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윈난, 광시, 충칭, 쓰촨, 구이저우 등 서남부 지역이 더욱 심각하다. 작년 9월부터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았다. 윈난 지역의 경우를 살펴보자. 윈난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대별된다. 일반적으로 건기는 매년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로 칭장(靑藏)고원에 찬고기압이 머물기 때문에 강수량이 적다. 우기는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로 평균적으로 비가 많이 내린다. 그러나 작년은 비가 내려야할 8월부터 비가 내리지 않았고, 우기가 조기에 끝나버렸다. 올 봄 가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3월 19일 오후부터 21일까지 윈난성에서도 피해가 가장 극심한 취징(曲靖)시를 방문, 취수ㆍ급수현장은 물론 보리·쌀 등의 농작물 재배현장도 일일이 둘러봤다. 원자바오 총리의 어두운 표정 앞에 물이 마른 저수지의 바닥이 마치 진흙기둥처럼 갈라진 보도 사진은 중국 가뭄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번 가뭄으로 중국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윈난의 리강(麗江)도 강바닥이 드러났고, 천하제일의 산수라던 광시 꿰이린(桂林)도 강물이 말라서 중국인들의 걱정이 크다.

중국의 매체들도 가뭄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싣고 가뭄에 대한 특별 보도를 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가뭄으로 인한 피해는 연인원 6천 만 명에 달하고, 피해면적이 한반도의 두 배이며, 피해 추산 액만 2백억 위안(30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에서는 이번 재난이 '천재(天災)'인지 '인재(人災)'인지를 놓고 논쟁이 분분하다. 중국 내의 언론들은 대체로 이번 가뭄을 '천재'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과학원의 원사이자 2009년도 세계자연기금회(WWF)가 수여한 '에딘버러공작 보호단 메달'을 수상한 천이위(陳宜瑜) 박사는 이번 중국 서남지역에서 발생한 가뭄은 '정상적이고 주기성 자연재해'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는 "수재나 가뭄 발생은 모두 정상적이다. 왜냐하면 지구의 기후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기후의 이상은 정상적이고 의심할 바가 없다. 지역적인 소환경과 전 지구적인 대환경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설재(雪災)나 유럽의 설재도 모두 심각했다. 전체적으로 올해 지구의 기후가 이상하다. 두드러진 것은 중국의 재해도 전 지구적인 기후 이상의 일부다"라고 지적하였다.

'천재'의 근거를 뒷받침하는 중국 국가기상국(NCC)의 발표를 보면 윈난, 구이저우 일대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강수량이 부족했고, 온도도 예년에 비해 높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몇 년 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중국 남부의 가뭄이 계속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기상통계에 따르면 작년 9월 이래로 윈난, 광시, 충칭, 쓰촨, 구이저우의 일부 지역의 강우량은 전년 동기대비 50%나 적었다. 일부지역은 70-90%까지 부족했다. 작년 8월부터 현재까지 중국 서남지역의 강수량은 1951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적었다는 점도 가뭄의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가뭄의 원인과 관련해 지난 4월 11일자 <아주주간(亞洲週刊)>의 의미 있는 보도가 있었다. <아주주간>은 '중국 가뭄의 뿌리를 추적하다(追査中國旱災禍根)'라는 주제로 이번 가뭄을 표지기사로 다루고 있다. <아주주간>은 중국이 21세기 들어서면서부터 대규모적인 가뭄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근거로 2009년 여러 성에 가뭄이 들었고, 2008년에는 윈난에서 연속 3개월간 가뭄이 들었으며, 2007년에는 22개성에 가뭄이 발생하였고, 2006년에는 충칭에 100년 만에 가뭄이 왔었으며, 2005년에는 화남지역에 가을부터, 겨울, 봄에 이르도록 가뭄이 계속되었고, 특히 이 해에는 윈난 지역에서는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봄 가뭄이 있었고, 2004년에는 남부지역에 53년 만에 가뭄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는 '자연이 인간들에게 이미 경종울린 것'이자, '지난 세기 인간들이 환경에 저지른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아주주간>은 자연재해 중 가뭄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홍콩의 중문대학 지리와 자원관리학과의 천용친(陳永勤) 주임교수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천 교수는 "홍수의 파괴력은 단기간 내 인명재산의 손실이 얼마나 큰지 인간들은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보면 가뭄의 살상력이 더욱더 심대하다. 왜냐하면 가뭄은 시간이 길지만 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더 크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주주간>은 중국 서남부지역의 가뭄을 어쩔 수 없는 '천재'의 부분도 분명하게 있지만 배후에는 '인재'의 요인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근거로 중국의 전임 수리부 장관을 지낸 첸쩡잉(錢正英) 여사를 인터뷰했다. 그녀는 1923년생으로 중국공산당 집권 초기부터 수리부와 수리전력부에 근무한 이후 부부장(차관), 부장(장관) 등을 역임했고, 중국 최연소 장관이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중국의 '수리'분야의 전문가이자 황허, 창장, 회이허(淮河), 주장(珠江) 등 강 유역을 정돈하는 계획에 참여했고 수리, 수전 등 대규모 건설의 정책에 관여했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공개적으로 "90년대 들어서면서 황허의 물 흐름이 중단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서서히 (수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우리들은 오랫동안 치수, 용수만을 강조했지요. 뒷날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어요. 타리무허와 헤이허 등 내륙에 있는 강 물줄기가 중단되기에 이르렀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과거의 수리 업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그것은 관리가 허술했고, 과도하게 개발했다는 것입니다"라고 지적하였다. 1990년대 말 중국공정원(中國工程院)은 그녀에게 <21세기 중국 지속발전 가능한 수자원전략>이라는 프로젝트를 의뢰하였다. 그녀는 전문가들로 구성을 하고 '기존 수리 사업의 부작용'에 대해 정부에 건의했다.

그녀의 회고에 따르면 195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댐을 건설한 것이 8만개 이상을 건설하면서 수해를 방지하고자 했다. 문화혁명시기에는 매년 30만개 이상의 우물을 파기도 했다. 특히 당시는 이른바 '농업은 따자이(大寨)에서 배우자!'를 강조하던 시기를 계기로 치수가 농업의 기본정책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리 분야의 자금 투입을 소홀히 하였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특히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는 1980년대에 들어서 수리시설에 대한 투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더욱이 수리시설이 다른 용도로 바뀐 경우도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 예로 윈난 지역은 원래 물이 부족한 지역이 아니었으나 수자원 이용률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윈난의 수자원의 능력은 전국의 3위이지만 이용률은 겨우 6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아주주간>은 '인재'의 측면에서 윈난 지역의 기존 원시우림성장속도가 빠른 '고무나무(橡膠樹)'와 '유칼립투스(gum tree:중국명 桉樹)로 바꾸어 심고 있는 점을 인터뷰를 통해 지적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지적에 대해 중국관영 언론들과 현지 관리들은 부인하고 있는 사실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주주간>은 환경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 사업이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윈난성 정부가 세계은행 차관으로 실시하는 대형 프로젝트라는 점을 보도하고 있다. 현재 이 프로젝트는 인도네시아의 금광그룹(金光集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고 윈난성의 푸얼시와 원산(文山)시가 공동으로 약 86만무(1무: 약 200평)의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윈난성 전체에서 유칼립투스의 임업면적이 5%에 불과해 큰 영향이 없다고 지적하지만 주목할 것은 윈난성의 고무나무 조림면적은 6백만 무에 달하고 유칼립투스 조림면적이 백만 무에 달해 계획대로 조림할 경우 그 면적은 2천만 무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나무를 열대우림을 제거하고 심고 있는가? <아주주간>은 펄프사업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 중심에 인도네시아의 금광그룹이 있다. 이 회사는 자본금 2백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내 최대 펄프회사이다. 이 금광그룹이 윈난성 정부와 합작으로 2002년부터 '경제적' 속성수 조림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설립된 윈난성의 윈징(雲景)펄프회사는 윈난성 최대 규모의 국영펄프회사이다. 이들 회사들은 펄프사업을 위해 속성수를 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속성수를 심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아주주간>은 지역의 기후에 변화를 준다고 지적하고 있다. 윈난 쿤밍이공대학 환경학과 학과장 호우밍밍(侯明明)교수의 지적에 따르면 "시상반나(西雙版納)의 열대우림은 층이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제일 아래층은 관목, 중간층은 교목으로 나무의 높이가 20-30미터이고, 어떤 나무는 60-70미터의 마천수들이 자라고 있다. 이들 숲에는 등과식물들이 자란다. 이렇게 되면 매우 훌륭한 생태환경 시스템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경우 지하수의 증발은 낮고 전체 생태가 습윤 상태가 되어 열대 우림의 지면간의 구조도 산소를 많이 품은 수분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고무나무 숲은 높이가 일반적으로 15-18미터로 땅에는 어떠한 관목이나 등과식물도 못자란다. 땅에는 고무를 채취하러 다니는 일꾼들을 위한 길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수분 증발이 빠르다. 실험을 해보면 고무나무 밑에서는 2시간이면 건조되지만 기존의 열대우림에서는 3시간 이상이 지나야 건조가 된다. 당연히 숲 속의 나무가 바뀌면 생태환경이 바뀌고 기후도 바뀌게 된다. 지나치게 '경제성' 만을 강조할 경우 '인재'는 피할 수 없는 재앙으로 인류에게 되돌려준다.

자연재해를 이기려면 자연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치가들과 경제인들은 '과학기술이 제일의 생산력'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들 환경학자들에게는 '식물이 제일의 성장력'이다"라는 호우밍밍 교수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중국이 빨리 재난을 극복하길 기원한다. 

/한인희 대진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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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정말 이 글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 나라에 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치가 떨린다. 안그래도 요즘 kbs의 하는 짓이 가관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영웅'하는데 도대체 그들은 '영웅'이라는 말 뜻을 아는지 모르겠다. 물론 돌아가신 분들의 '한'을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왠지 자꾸 뭔가를 가릴려는 듯한 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천안함 사건과 관련되 가장 일목요연하며 논리적인 글이다. 그리고 조선일보의 2004년 한국형 호위함 결함 기사는 지금의 조선일보의 논지와는 정반대 주장에 좋은 근거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국민일보 2010.4.1  나름대로 분석해본 천안함 침몰 진상

1.아군 혹은 미군에 의한 오폭 오조준의 가능성

지금 일각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이 가설에 대해서 가능성을 높게 상정해봤지만,다음의 몇 가지 반대되는 근거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첫째, 사고 당시 주변해역에 있었던 미해군 혹은 우리 해군의 함포 그 어느 것으로도 천안함 정도 되는 배를 한번에 두동강을 낼 수가 없습니다. 현대 해군의 함포는 적함의 상부구조물을 무력화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지 과거 전함시대의 거포처럼 한번에 적함을 바다 속으로 처넣을 수 있는 대구경 함포가 아닙니다. 물론 작은 경비정 정도는 단 일격 으로 수장이 가능하지만 만재배수량 1500톤이나 되는 천안함 정도를 한번에 두쪽을 낼 수 있는 함포는 당시 해역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함포를 두들겨 맞았다면 선체 곳곳에 피탄 흔적이 나타나야 하고 실종자가 지금처럼 후미와 바닥에 모두 쏠려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근 속초함의 연이은 함포발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결론부분에서 다시 보충해드리겠습니다.

둘째, 현재 상황에서 천안함을 한번에 두동강을 낼 수 있는 무기는 사실상 어뢰뿐 인데, 문제는 천안함이 침몰한 위치가 어뢰나 기뢰에 피격될 수 있는 해역이 아니기에 이 역시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현대의 어뢰는 과거처럼 배 옆구리를 뚫고 들어가 폭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부분 선박의 바닥 바로 밑에서 폭발하여 거대한 수중 진공상태를 만들어 목표 선박의 용골을 비틀어 반쪽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 곳곳에 나돌아다니고 있는, 순식간에 반토막이 된 채 침몰해버리는 표적함들의 동영상이 바로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죠. 천안함 역시 어뢰에 피격되면 그렇게 함이 두동강이 날 수 있다고 가정을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천안함이 침몰된 해역은 그런 어뢰를 쓰기에는 바닥이 너무 얕다는 게 걸립니다. 미해군이건 우리건 설사 북한잠수함이라고 해도 어뢰를 발사했다면 사고 당시 천안함의 위치에서는 미처 명중되기도 전에 바다 밑바닥에 처박혀 버렸을 겁니다. 누가 어뢰를 발사했건 천안함을 현재의 모습대로 두동강을 낼려면 최소한 심도가 50미터는 되어야 합니다. 현재 천안함 침몰지점의 심도로 볼 때 불가능하죠.

다음은 기뢰에 피격되었을 경우인데, 문제는 그렇게 얕은 해역에는 기뢰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과 만약의 경우 유실된 기뢰에 피격되었다면 천안함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침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정말 기뢰에 의한 것이라면 분명히 사망자들의 시신이나 기름과 선체조각 등 각종 부유물들이 천지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주변해역에 널려 있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해군이나 해경이 건져낸 물품들을 봐도 그렇고 생존자를 제외한 사망자들의 시신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선체의 절단면을 만져본 수중구조대원들의 증언이 선체의 절단면이 아주 깨끗하다고하니, 분명 기뢰에 의한 외부 폭발에 의한 침몰은 아닌 듯 합니다. 기뢰에 맞았다면 선체의절단면은 분명히 너덜너덜 걸레쪽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 두가지 가설들을 입증해줄 또 다른 단서는 바로 부상자들의 상처유형입니다.만약 함포에 맞았거나 어뢰 혹은 기뢰에 의해 피격되었다면 부상병들 가운데 반드시 화염이나 화약의 폭발에 의한 화상 환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부상자 대부분은 충격에 의한 골절상이나 타박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고 생존자들의 증언가운데 화약냄새가 없었다는 대목은 그들의 증언이 맞다는 가설 하에 어뢰나 함포에 의한 피격은 아니라는 분석이가능합니다.

2. 북한에 의한 공격가능성

일부 냉전극우들과 조중동에서 슬슬 현정권 면피를 위해서 냄새를 피우고 있지만, 몇가지 사실 때문에 사실상 아니라고 봅니다. 사고 시점이 한미 양국해군의 훈련기간이었다는 점, 당시 미해군의 이지스함 2척이 해역에 이미 들어와 있었고 우리해군의 이지스함도 작전중에 있었습니다. 미군의 첨단 군사첩보위성과 정찰시스템들이 총동원 되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시점에 감히 특수부대나 잠수함 혹은 반잠수정을 침투시켜 "긁어 부스럼"을 만들만큼 저들이 멍청할까요? 그랬다간 바로 전면전으로 치닫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것도 고속정도 아닌 천안함 정도의 대물을 노리고서? 이미 십여년전에도 상어급 소형 잠수함의 침투경로를 출항지에서부터 추적해 모두 알고 있었을 만큼 북한의 움직임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이 자국 함정이 작전하고 있는 수역에서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을 과연 용인했을까요?

또 다른 반증하나는 사고 당시 이례적으로 평양에서 직접 정찰기를 띄워 백령도까지 내려 왔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해주인근 전방 레이다나 통신감청으로 사고당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을 북한당국이 왜 평양공항에서 직접 정찰기를 띄웠을까요? 그 얘기는 좀 더 최신의 기종으로 더 상세히 상황을 파악할 필요성 때문이었을 겁니다. 평양주변에 집중 배치된, 그들에게는 가장 최신예 기종인 미그 29의 정찰카메라로 백령도일대 해역의 상황을 모니터링해야 후일 남조선 정부의 그 어떤 대응도 가능하다는 정치적인 판단이 작용했을 겁니다. 북한의 움직임은 그들도 지금 이곳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뭔가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는 소립니다. 그러니 통상적인 해주인근의항공정찰보다 더 좋은 장비를 가진 평양인근에서 출격해 직접 최고위층에 보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그들이 뭔가 기습적인 공격을 주도했다면 이러한 예외적인 정찰은 애초부터 불필요했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이명박정부가 자신들에게 책임을 덮어씌울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기에 정찰을 강행했다고 봅니다. 요즘 중국방문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김정일 입장에서 설사 세 번째 서해교전의 보복을 하고 싶었다 해도 지금은 뭘 감안해도 그럴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미 국무성이 이례적일만큼 빠르게 그럴 가능성을 차단해버렸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한국내 일부의 고질적인 북한신경과민증세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미 국무부의 "북한 개입 가능성 없다" 라는 발표는 그쪽으로의 사태 와전을 좌시하지 않겠다 는 미국의 의중이 담겨져 있습니다. 6자 회담 재개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에서 더더욱이나 그럴 이유가 없지요.

3. 사건진실의 핵심: 왜 천안함이 평소 가지 않던 백령도 연안으로 침로를 잡았는가

김태영 국방장관은 천안함이 15차례나 그 해역을 지나다녔다고 발표했지만 이것은 명백히 허위진술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대 동형함종을 지휘하거나 탑승했던 예비역 제독들과 장교들 그리고 천안함에서 근무했었던 전역자들이 모두 일치되게 천안함 같은 함종이 그렇게 얕은 바다로 진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더구나 견시를내세워도 안전이 보장되기 어려운 깜깜한 밤중에 연안으로 배를 몬다? 이건 예삿일이 절대로 아니지요. 천안함보다 더작은 참수리급 고속정들도 그렇게 얕은 곳은 잘 안들어가는 해역에서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모든 진실은 거기에 전부 숨어 있는 것 아닐까요? 분명 천안함은 그렇게 얕은 바다로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부여되거나 발생하고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사고가 난 천안함은 예사롭지 않는 행동을 계속하다 결국 예사롭지 않게 가라앉았습니다. 그 사실을 깊게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 시점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예사롭지 않은 증언 하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안함이 자꾸 물이 새서 불안하다"는 실종 부사관의 아내 되시는 분의 증언.

해군의 특성상 자주 교체되는 장교들보다 한배에서 오래 근무한 부사관들 특히 기관이나 선체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사관들이 배 자체에 대해선 더 정통 합니다. 누구보다 자기가 탄 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부사관의 입에서 물이 새서 불안하다는소리는 천안함의 상태가 뭔가 비정상적인 요소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천안함이 물이 새서 불안하다는 증언은 그 외에도 실종병사의 부모도 같은 말을 했고 주로 배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면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게다가 지난 2차 서해교전이후 피해분석과정에서 가장 크게 대두된 사항은 바로 최전방에서 작전하는 참수리급 고속정들에게는 "천안함과 같은 초계함의 엄호가 반드시 필요하다"였고 아마도 이 때문에 천안함과 같은 초계함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예전보다 더잦은 작전에 투입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잦은 작전투입은 선체의 피로도를 과중시키는 첩경이고 그렇다면 천안함은 불과 20년이 조금 넘은 선령이지만 이미 선체의 핵심적인 부분 어디에선가는 골병이 들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이 시점에서 잠시 우리는 사고 발생시각에 대해서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국방부를 비롯한 해군당국은 사건 발생 시각에 대해서 생존자들이 있음에도 계속말을 바꾸고 사건 발생시각을 은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생존자들을 지금병원에 몰아넣고 일체의 언론접촉을 막고 입단속을 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이럴까요?

그 점 역시 천안함이 예외적으로 백령도 해안에 근접했었던 사실과 무관치 않습니다. 군당국은 사고시점을 9시 30분전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제 생각에는 사고는 분명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 단적인 예로 한겨레 신문에 보도된 실종된 차균석 하사의 여자친구 핸드폰 문자메시지 단절시각을 놓고 보면 9시 15분을 전후해서 뭔가 심각한 상황이 천안함에서 발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차하사의 문자메시지를 보면 여친의 대답이 늦다고 되려 핀잔을 주던 상황에서 갑자기 15분을 전후해 비번이던 차하사의 메시지가 끊어진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국방부, 해군 그리고 생존 최함장이 말하는 것처럼 사고는 9시 30분 혹은 그 이후에 갑작스레 발생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랬다면 당시 비번인 부사관 혹은 병사들의 휴대전화 통화와 메시지들이 일제히 9시 15분을 전후해 끊어졌을 이유가 없습니다.

위 두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천안함의 이상행동에 대한 가설들을 세워보면, 선체중앙 혹은 용골등의 핵심 부위에서 균열 혹은 그에 준하는 선체의 안전을 매우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 상태가 9시 15분을 전후해 발생했고 보고를 받은 함장은 이에 전원 비상전투배치 혹은 위기시 대응행동을 명령했을 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비번이던 승무원들도 핸드폰을 모두 팽개치고 나갔을 거구요. 특히 선체의 기관부와 안전을 담당하던 부사관들과 사병들이 일제히 선체 하부 사고지점에 달려들어 비상복구를 하는 동안 당연히 함장은 백령도 연안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 어떤 선박도 비상상황이 되면 연안으로 접근하지 외해로 나가는 짓은 하지 않지요. 그런데 문제는 선체 하부에서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전에 배는 두동강이 나버렸고, 그와 동시에 선체 하부에서 복구작업을 벌이던 거의 절반에 달하는 인원들은 미처 손쓸새도 없이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을겁니다. 틀림없이 사고지점으로 긴급 복구 작업을 위해 내려가면서 수밀격벽을 폐쇄했을겁니다. 아마도 총지휘는 실종자중 가장 계급이 높은 선임원사가 맡았겠지요.

실종된 인원 대부분이 그와 같은 임무에 투입될 위치에 있는 병사들과 부사관들이고 그에 비해서 나머지 인원들 특히 장교들이 전부 생존했던 것은 바로 그 위급한 시각에 그들이 자기 정위치인 함교나 선체 상부에 있었기에 설명이 가능합니다. 통상 수심 25미터 내외의 얕은 바다로 가지 않아야 하는 천안함이 작전상황도 아닌 그 시각에 그토록 백령도 연안으로 근접했었던 이유는 선체가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배 밑바닥에 물이 엄청나게 새기 시작했던가,아니면 사람으로 치면 척추에 해당하는 배의 용골이 비틀리거나 부러져 이대로 가다간 배가 두동강이 나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도대체 천안함 함장 최중령이 그런 얕은 바다로의 침로변경을 지시했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마도 함내 전체 비상이 발동되기 몇 시간전부터 이상징후가 보고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일부에서는 천안함이 모종의 특수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추측하고 계시지만, 만약 그런 종류의 극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면 비번의 부사관이 한가로이 여자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는 일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함정의 운영 특성상 정말 임무수행중이었다면 모두들 자기 전투위치에 서있었을 테니까요.지금 이러한 제 주장을 입증시켜줄 가장 명백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는 바로 실종자들의 평소 함내 위치와 근무장소 그리고 보직입니다. 그들 모두가 천안함이 침수 혹은 균열시 이를 복구하거나 막아야 할 임무를 가진 병사들이었습니다. 만약 함포나 어뢰와 같은 외부 피격에 의한 것이었다면 생존자와 실종자는 이렇듯 보직이 확연하게 구분될래야 될 수가 없습니다. 어뢰나 미사일, 함포에 의한 피격이라면 사망자나 실종자는 계급과보직과는 상관없이 무작위로 발생해야 맞습니다. 일부의 주장대로 만약 기뢰에 접촉했다면 틀림없이 시신들이 여기저기 사방에 떠올라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여태 그 엄청난 수색에도 불구하고 시신하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그런데 지금 생존자들과 실종자들의 보직과 계급을 보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됩니다.놀랍게도 함장이하 장교들이 모두 살았습니다. 부사관과 사병들도 선체 하부 복구와 관련이 없는 부서 근무자들은 전원 무사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일까요? 분명 천안함이 백령도 연안으로 접근했어야했던 긴박했던 이유와 생존자와 실종자가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예사롭지 않은 우연은 이 사고가 분명 급작스러운 것이 아님을 말없이 대변합니다.그리고 이것이 명백한 필연에 의해 생과 사가 갈렸던 대형사고였음을 말해줍니다.그들 대부분이 선체 하부에서 뭔가 심각한 임무에 종사하다가 그대로 매몰된 채 바다에 가라앉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4. 급작스런 사고의 발생 그리고 은폐조작 시도: 석연치 않은 행동이 설명가능 근본적으로 함장의 말대로 9시 30분 무렵 갑작스런 사고 발생이라면 9시부터 사고발생시점까지의 모든 통신기록을 공개안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공개를 할 수 없습니다. 함에 심각한 뭔가가 발생한 시각은 9시 30분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죠.

구조된 이후 함장이 보고를 구실로 그렇게 빨리 현장을 떠나버렸던 행동 역시도 총체적인 조작과 상부의 구체적인 지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얘깁니다. 함장은 사건의 핵심증언자인데, 사건 현장을 그렇게 쉽게 내버려두고 도대체 어딜 그리 급하게 갔어야 했고 왜 핸드폰까지 들고서 상부에 보고를 그렇게 긴급하게 했어야 했을까요?

저의 가설에 따라 현 정권의 행동들을 분석해보면 왜 그들이 지금 저런 행동을 취하고 있을지는 보다 더 수월하게 설명이 가능합니다. 함장은 아마도 계속 가동되고 있었을 통신을 통해서 천안함이 계속 항해하기 어려운 매우 심각한 상황에 도달했음을 보고했을 것이고 백령도 연안으로 긴급하게 대피기동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비상을 걸어 선체보수반원들을 총동원해 투입했겠지요. 그러나, 배는 결국 연안근처에서 두동강이 나버렸고(선체가 처음엔 후미가 부서졌다고 하더니, 지금 상황에선 선체 절반이 뚝 부러졌다는 사실이 밝혀진 걸 보면 애초부터 이 사고는 선체의 구조적인 하자 문제였습니다) 격실을 폐쇄하고 선체복구에 나섰던 절반에 가까운 보수반원들은 결국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게 된겁니다. 해경에게 구조되면서 마지막 구조 인원들이 '우리가 마지막이다'라는 말을 한게 우연이었을까요? 떨어져나간 선체에 갇힌 보수반원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 당장 구조를 할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소리지요.

자, 이 시점에서 왜 대통령과 안보담당 주요장관들이 벙커에 들어가 숙의와 논의를 거듭하게 되었을지를 따져보겠습니다. 가뜩이나 이런저런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번 사고가 곧이곧대로 발표되면 정권의 입지는 바로 레임덕으로 직행하게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뻔히 내다보이는 상황에서 저들은 이유야 어떻든 사고를 최대한 은폐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면서도 당장 북과는 관련이 없다는 식의 차단을 한 것 역시도 그만큼 내부사정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최대한 잃어버린 선체 후미의 수색을 지연한 것도 혹시나 생존자들이 나와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미필적고의가 작용했다고 보여집니다.

심해작업을 하는 수중구조대에게 필수적인 감압실을 고작 하나만 떨렁 들고와서 작업을 한다든지, 정지된 물체를 찾기위해서는 기뢰수색장치를 갖춘 함정이 필수인데도 그 출동에 늑장을 부린 것이라던지, 이미 실종자들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고 실종자 가족들 대기 장소에 일찌감치 빈소를 만들려다가 가족들을 격분시키고 어영부영 철수한 것이라던지. 충분히 부표설치가 가능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표설치를 고의적으로 하지 않은 점이라던지, 국방장관의 말대로 떨어져나간 선미의 위치를 알고 있었지만 어선이 찾아낼 때까지 수색을 게을리 했던 점 ...그것도 부족해 실종자 가족을 가장하고 가장 민감할 실종자 가족들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경찰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이 사고에 대해서 정부가 사실상 팔짱을 끼고 있다는 명백한 정황은 사건 발생직후 혈맹이라는 미해군에게 일체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봐도 분명합니다. 아무리 조류의 흐름이 빨라 구조활동이 원활치 않고 우리 해군의 장비가 빈약해 진척이 어렵다는 변명은 명백히 눈가리고 아웅에 불과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미해군걸 빌려도 됩니다. 미해군이 평소 이런 일에 우리를 거부할 사이이던가요? 가상적국인 러시아 잠수함 침몰사건때도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하던 미국이 동맹국이 요청만하면 그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한데도 지금 정부는 우리 해군 단독으로 수색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미해군을 투입했다가 혹시라도 곤혹스러운 사실이나 정황이 외부에 드러나는 일은 애초부터 막겠다는 의지가 아니고서는 지금 이럴 수는 없습니다. 선체 잔해 수색을 위해서 최첨단 무인수중 탐사기 정도는 요청만 하면 미해군은 전세계 어디로도 24시간안에 수송이 가능하며 깊은 바다에서 작업하는데 필수인 감압실 역시도 얼마든지 추가 지원이 가능합니다. 미해군의 무인 수중탐사기는 수천미터 심해와 각종 험악한 곳에서도 금속탐지장치와 열영상장치등의 최첨단 탐지기능으로 잔해를 찾아내는데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고해역의 시계가 불량하다한들 고작 25미터 내외의 얕은 바다에서 반경 1킬로도 떨어져 있지 않은 선체후미 잔해를 미해군의 첨단 탐색장비가 못찾았을까요? 아니죠, 정권은 미해군에게 이를 부탁했다가는 너무도 빨리 이를 찾아낼 것을 알고 있기에 절대 미해군의 힘을 빌리지 않은 거죠.

마지막으로 천안함 근처 속초함이 계속 사격을 했던 이유를 따져볼까요?

원래 76밀리 함포는 상부의 허가 없이는 발사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서슴없이 속초함은 76밀리 함포를 5분간이나 사격했습니다. 연막을 피워야 하니까요. 속단일지는 모르나 속초함의 사격은 뭔가를 봐서 사격한 것이라기보다는 천안함 침몰사고의 본질을 흐리기 위한 일종의 연막이었을 공산이 큽니다. 그런데 이러한 속초함의 행동은 북한의 추가정찰과 샤프 한미연합사 사령관의 급거 원대복귀를 낳았지요. 다들 이게 뭔일인가 했던것이지요. 샤프 연합사 사령관은 한국정부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고 북한은 나름대로 엉뚱하게 독박을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요. 또한 인도적인 구조를 위해서라면 남다른 협조를 아끼지 않는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샤프사령관을 복귀시켰을 거구요. 물론 샤프 사령관의 협조제의는 우리정부가 정중히 거절했을 거 같네요.

천안함은 선체에서 예상치 못한 급작스런 균열과 침수로 백령도 연안으로 피신했던 것이고 그 와중에 결국 붕괴를 막지 못하고 선체가 둘로 갈라지면서 침몰한게 아닌가합니다. 물론 저의 가설이 정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드러난 정황증거를 보면 외부의 공격이나 오폭 보다는 그들 자체의 문제였던 거 같습니다. 생존자와 실종자가 극명하게 가려진 것도 급작스런 선체 분해가 아니라면 일어나기 어렵지요.

문제는 지금 이 상황에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을 경우 가장 큰 비난을 뒤집어 쓰게 될게 명약관화한 이명박 정권이 대대적인 은폐를 위해서 예의 그 벙커회의를 수차례 주재하게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구서야 뻔한 사실들을 이렇게 오래도록 감추고 말을 바꿀 이유가 저들에게 없습니다. 

2010-04-01 국민일보 권종상 객원논설위원 

 

한국형 호위함(FFK) 선체균열 심각

NLL 사수등 긴급작전 많아 무리한 운용 탓  
2002년부터 척당 17억~24억 들여 보강작업  조선일보, 2004.9.22

우리 군의 주력 전투함인 한국형 호위함(FFK)들이 건조된 지 12~24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선체 균열이 심각해 척당 17억원의 비용을 들여 선체 보강작업을 실시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해군이 22일 국회 국방위 소속 한나라당 송영선(宋永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해군이 총 9척을 보유 중인 호위함들의 상부 구조물에 균열이 지나치게 많이 발생, 지난 2002년부터 교대로 선체 보강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함정 수명은 30년 이상으로, 선체 노후화가 예상보다 빨리 온 데 대해 해군측은 “호위함은 파고가 4.1~4.5m 이상이면 항구로 피하도록 설계됐지만 서해 북방한계선(NLL) 사수작전 등 긴급한 작전 소요가 많아 파고 5m 이상일 경우에만 피항(避港)하는 등 배를 무리하게 운용해온 것이 주원인”이라고 밝혔다.
선체 보강작업은 도크 내에서 4개월 가량 이뤄져 이 기간 중 예상치 못한 전력 공백이 발생하고 있으며, 선체 균열에 따라 장병들의 안전사고도 우려되고 있다. 해군은 지난 2002년 서울함을 시작으로 지난해 충남함 등 2척에 대한 보강작업을 마쳤고, 금년에 경북함 등 2척이 진행 중이며 2006년까지 나머지 4척에 대한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선체 보강작업은 함정 상부 구조물에 신축성 연결부(Expansion Joint)를 설치하고 주갑판과 선체 옆에 두께 12~24㎜의 보강판을 붙이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형 호위함은 1980년 1번함(울산함)이 건조됐으며, 만재 배수량 2180t, 길이 102m, 전폭 11.3m, 승조원 150명으로, 구경 76㎜ 함포 2문, 30~40㎜ 기관포 3~4문, 하푼 대함미사일 8기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해군은 기존 호위함의 노후화에 대비, 2011년 이후 신형 호위함을 배치하는 차기 호위함(FFX) 사업을 금년 중 착수할 예정이었으나 설계에 검증이 필요하다는 군 고위층 지적에 따라 내년 중 착수로 1년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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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항상 하나다. 하지만 많은 경우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진실에 이르려면 우선 사실을 축적해야 한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이 가장 일차적이고 믿을만한 사실에 속한다.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과정과 관련된 사실을 제일 많이 수집한 쪽은 해군 당국이다.

하지만 해군은 침몰 원인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존자 58명의 증언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편집자들은 수집된 몇 조각 안 되는 자료들을 가지고 사건의 진상을 그려보려는 뉴스 가공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작업에는 정부나 군 당국의 발표는 물론이고 이른바 전문가들의 추론이나 추측, 익명의 ‘관계자’나 ‘소식통’들의 말에다 떠도는 소문까지 동원된다. 신뢰도나 비중이 다른 여러 정보들을 마구 뒤섞어 편집자의 의도대로 조립하는 일도 흔히 일어난다.

4월1일과 3월31일치 <조선일보>의 뉴스 가공이 전형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31일 조선일보는 “침몰 전후 북 잠수정이 움직였다”는 기사를 1면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정부 소식통’을 인용한 이 기사는 “사고 발생 지역인 백령도에서 멀지 않은 북한 서해안 잠수함 기지에서 천안함이 침몰한 지난 26일을 전후해 잠수정(또는 반잠수정)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북 잠수정이나 반잠수정이 기지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어서 이번 사고와의 연관성을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바로 그 ‘소식통’의 말을 덧붙였다. 균형감각을 갖춘 편집자라면 잠수정이 며칠 기지에서 안 보였다는 것을 바로 천안함 사고와 연관시키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더욱이 모든 정보가 집중되는 청와대가 (잠수정의) “궤적이 불분명하지만 천안함 사고와는 별개로 보고 있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날 조선일보를 펴 든 독자들은 “북한 잠수정이 이번 사고와 관련된 모양”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은 독자들의 선입견이나 이해부족 탓이 아니라 이런 인식을 갖도록 편집자가 뉴스를 가공했기 때문이다. 어뢰니 기뢰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판에 북한 잠수정이 움직였다는 정보가 주요기사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1일치 조선일보는 ‘김정일 방중설’까지도 천안함 사건과 연관시키려는 의도를 보였다. “천안함 침몰에 북한이 연루됐을 것으로 보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방중을 결정했을 것”이라는 어느 ‘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한 것이다. 중국 방문과 같은 큰일을 하루이틀 만에 결정한다는 가정도 상식 이하이고, 국제사회가 천안함 침몰에 북한이 연루된 것으로 본다는 주장은 뭘 근거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뉴스도 “그래, 북한이 범인이야” 하는 인식을 굳히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편집자들은 알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도 연일 천안함 사건을 다룬다. “아직 북한의 개입 여부를 확증할 수는 없지만” 하는 식의 설명을 붙이면서도 제목에서 ‘국가적 위기’, ‘결단의 자세’, ‘비상한 조치’ 등 전투적인 용어를 구사하면서 북한과의 결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투의 주장을 편다. 

한겨레신문 2010.4.2
 

ps : 이 나라 언론 기사의 질을 보여준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된 보도를 몇개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도무지 논리적인 근거는 없다. 추측성, 그럴 것이다. 여기다 이데올로기적인 억측까지...지금도 차디찬 바닷속에서 그리운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을 젊음이들이 부디 좋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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