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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청소하고 그동안 와이프는 일을 하고 아점을 먹었다. 그리고 와이프는 피아노를 배우러 학원에 가고 난 학원 근처에 있는 빵집에서 신문과 12월호 르몽드디플로마티크(르디)를 커피 한 잔 먹으며 읽었다. 예전에는 무조건 거의... 아메리카노만 먹었는데 요즘에는 달짝지근한 카페모카가 그렇게 맛날수가 없다. ㅋㅋ

 

오늘자 한겨레신문 기획기사에 인하대 김진방 교수의 인터뷰가 있었다. 상당히 긴 글인데 좋은 글 같아, 줄 친 부분만 옮겨본다. 공교롭게도 2011년 12월 르디에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있었다. 제목이 <공유지의 비극, 희극으로 바꾸려면>이라는 글인데 공통점은 모두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최초의 여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라고 한다)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어쩔수 없이 모두 이기적인 동물일까? 공유지의 비극을 희극으로 바꿀수 있는 것일까? 두툼하지만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한겨레신문 2012.1.4  선택2012-1 경제 민주화  김진방 교수 인터뷰

 

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경제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책에는 수요.공급곡선이 있지만, 세상에는 없다. 경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다. 그 관계가 민주적이지 않다. 그래서 개선해야 한다. .... 핵심은 자본과 노동의 관계와, 자본과 자본의 관계 두 가지로 요약된다. 두 맥락 모두에서 참여가 중요하다. 하나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다. .... 기업에 고유한 네트워크나 지식 등을 노동자가 능동적으로 축적하며 기업 경쟁력을 높인다. .... 두번째는 자본끼리의 참여다. 지배대주주가 외부 투자자를 적극적을 경영에 참여시켜야 한다.

 

진보는 다르다. 경제 분야에서도 공공성 확대라는 체제의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다. 이게 바로 경제 민주화 이슈다. 보수가 강조하는 것은 재분배다. 소득세를 늘리고, 소득 분재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개선하는 등의 구호를 외칠 것이다. 그 전제는 현재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승작독식 질서는 그대로 둔다는 것이다. 진보는 그 질서 자체를 건드려야 한다. .... 어떻게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핵심 질문은 '우리 경제 체제는 경제의 공공성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경제는 사적 영역이라는 게 보수의 논리, 시장만능주의다. 그런데 자원 생산과 배분은 시장영역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공공영역에도 경제가 있고 생산.배분을 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는 최근까지도 바게트빵 가격을 지방정부가 관리했다. 많은 사람들이 빵값은 시장에서 수요.공급으로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누구나 빵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생각을 경제정책에 반영했다.

 

보편적 복지는 사실 개념 설정이 정확하지는 않다고 본다. .... 수혜자가 국민 전체가 된다거나 무상이 된다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곤란하다. 시장에 맡기는 것보다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 .... 사실 분노의 이유는 실업이 아니다. 근로빈곤이다. 그런데 다들 일자리 이야기만 하니 답답하다. 일자리는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열심히 일해도 어렵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모두가 사익을 추구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어떤 영역, 어떤 집단에서는 이익이나 효용이 아닌 박애.우애.배려.보복심리 등이 작용한다. 요즘에는 경제학도 많이 바뀌었다. 행동경제학, 실험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이타심에 근거한 경제학 연구를 많이 한다. .... 비정규직 문제는 유연성 문제가 아니다. 자본이 노동을 분리통치해 교섭력을 낮추는게 문제다. .... 정규직화하면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는데, 어차피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비용은 발생하고 누군가 진다. 누가 지느냐의 문제다. 현재는 약한 개인이 너무 많이 진다. 기업의 부담이 더 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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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1-05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글을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에서 읽었어요.
시장을 믿는 사람들의 끝을 요즘 보는거 같은데, 미국에서는 다시 공화당이 우세할지 모른다 하네요. 물론 오바마가 민주당이라 하더라도 그다지 잘 한 것은 없지만요.

햇빛눈물님, 너무 오랜만에 들리셔서 새해 인사 못 드렸어요.
새해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하셔요. 지리 관련된 좋은 글들, 올해도 부탁드립니다.

햇빛눈물 2012-01-05 14:54   좋아요 0 | URL
오늘 신문에 보니 공화당 대선주사 첫 경선에서 롬니가 1위를 했다고 나오더군요. 뭐 오바마나 롬니나, 통합진보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이럲식의 정치의식이 무의미하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말할수 밖에 없는 정치 현실이 가끔 너무 한심하다고 생각되네요. 마녀고양이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알라딘에서 너무 좋은 님들을 알게되서 기분좋은 2011년이었습니다.
 

요즘 하도 게을러져서 블로그에 글 쓰는 것도 한동안 뜸했다. 12월에 본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8.9번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9번에 대한 후기도 메모만 해놓고 페이퍼 작성도 못했다. 솔직히 그렇게 바쁘지도 않고 더구나 요즘 방학기간이어서 시간도 얼마든지 충분하지만 늘어지는 요즘이다. 한동안 늘어졌으니 이제는 기운 좀 차려야겠다.

 

오늘자 신문에서 본 기사 하나 스크랩한다.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실증적 비판서이다. 그런데 책의 저자가 식민지근대화론의 선두주자라 불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가 주축이 되어 만든 낙성대경제연구소 출신이라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같은 저자의 2005년에 나온 <개발 없는 개발>을 먼저 읽는게 도움이 될 듯 하다. 경제사학의 관점에서 '식민지 개발, 근대화론'의 논리적 허구성을 파헤친 책이니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한겨레신문 2012.1.4  식민지근대화론 ‘실증적’으로 비판하다

 

`일제 초기 조선의 농업’ 출간
김제·만경평야 기존 연구 등
농업개발론 실증 비판 초점
개발론·수탈론 치우침없이
‘구조론’ 통해 사실 규명 집중

 

 » 2007년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조정래 작가가 쓴 소설 <아리랑>에 묘사된 전북 김제·만경평야가 1904년 당시엔 바닷물이 수시로 들어오는 갯벌이었으며, 일본인들에 의해 농업이 가능한 지역으로 개발됐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허수열 충남대 교수는 “당시 김제·만경평야는 갯벌이 아니고, 다양한 수로가 만들어져 있는 등 농업이 이뤄지고 있었다”며 “실증적 연구를 철저하게 펴지 못한 식민지근대화론의 오류”라고 주장한다. 한길사 제공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라고 불리는 김제·만경평야로 곧 호남평야의 일부였다. (…) 그 초록색 들판은 누구에게나 한없이 넉넉하고 푸짐하면서도 경건하고 겸손한 마음까지 품게 했다.” (조정래, <아리랑>)

 

“<아리랑>이 시작되는 1904년으로 돌아가면 그 지평선까지는 광활한 갯벌과 소금기로 풀이 죽어 있는 갯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조정래는 징게 맹갱 외에밋들의 광활함과 풍요로움을 구성지게 노래했다.” (이영훈, ‘김제 역사의 본류에 진입 못 하고 이방인으로 맴돈 조정래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구별조차 못하는 엠비시(MBC)’, <시대정신> 2007년 가을호)


조정래 작가는 장편소설 <아리랑>을 통해 풍요로웠던 전북 김제·만경평야의 모습과 거기에서 벌어진 일본인들의 참혹한 수탈에 대해 말했고, 경제사학자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갖가지 실증자료를 들어 이를 비판하며 ‘일본인들이 개발하기 전 김제·만경평야는 갯벌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2007년 벌어졌던 이 논쟁의 진정한 승자는 과연 누구였는가?

 

6년 전 <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저작을 통해 ‘실증’을 무기로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공격했던 허수열 충남대 교수가 다시 한번 식민지근대화론을 실증적으로 비판한 책 <일제초기 조선의 농업>(한길사 펴냄)을 펴냈다. 허 교수는 조정래의 ‘수탈론’, 이영훈의 ‘개발론’ 모두 사실로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한다. 산더미 같은 자료들을 뒤적여 그가 내린 결론은 매우 건조하다. “일제 초 김제·만경평야는 조정래가 생각한 것처럼 풍요로운 평야지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해안에서 6~7㎞ 떨어진 벽골제 앞까지 갯벌이었다고 본 이영훈의 주장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흔히 수탈론과 개발론의 대립으로 압축되는 식민지근대화 논쟁은 여전히 우리 역사학계의 가장 큰 화두다. 최근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자유민주주의 논쟁’과 같은 역사 인식의 대립도, 그 근원을 따져올라가다 보면 일제강점기에 대한 해석의 대립에 닿는다.

 

특히 실증적 방법론을 내세운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기존 민족주의 사학을 공격하는 모양새가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식민지근대화론의 진앙지라 할 수 있는 낙성대연구실(현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창립 멤버였던 허 교수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논쟁을 제기한다. 곧 식민지근대화론이 보여주는 실증적 연구가 도리어 실증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각종 통계와 사료, 지도 등 엄청난 규모의 실증적 자료 분석을 담은 이 책은 식민지근대화론이 강조해온 농업개발론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제시대 농업연구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는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5>(김낙년 엮음)이 정리한 일제시대 조선의 국내총생산(GDP) 추계다. 이 자료에서 나타난 1910~1945년 사이 농업생산의 성장에 따른 국내총생산의 비약적 증가는 ‘일제시대에 근대적 개발이 이뤄졌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기초적인 근거가 됐다.

 

그러나 허 교수는 “1910년대의 국내총생산 통계는 과소평가되어 있으며, 이런 오류를 바로잡는다면 일제강점기 때 비약적 성장이 있었다는 주장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농업생산량 통계의 작성법은 1908년에 처음 시작되었고 1915년 관련 훈령이 나오면서 비로소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됐기 때문에, 1917년까지의 통계는 아직 체계화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조선총독부가 1918년과 1919년 <통계연보>에서 과거 통계들을 수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김제·만경평야에 대한 연구는 이런 큰 문제의식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방법 가운데 하나다. ‘벽골제가 저수지가 아닌 방조제였고 그 앞까지는 갯벌이었다’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당시 보잘것없던 한국의 농업생산력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실증적 접근을 편 허 교수는 “벽골제는 저수지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종합적으로 볼 때 김제·만경평야에는 농업용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정상적인 농업이 이뤄졌다”고 결론짓는다. 이밖에도 재배면적과 농업기반시설의 변화, 우량품종의 보급 등 다양한 농업생산 요소들을 검토한 연구들을 통해 ‘일제강점기 때 농업생산이 급증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주장은 사실로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했다고 해서 무작정 전통적인 수탈론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수탈은 생산수단이 일본인 수중으로 집중되고, 소득이 민족별로 불평등하게 되고, 그것이 민족차별을 강화해 나가는 과정이 확대 재상산되는 식민지적 경제구조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허 교수는 개발론과 수탈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총체적인 구조를 보는 ‘구조론’을 통해 사실을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 책의 첫머리에서 “서로 다른 이론의 안경을 쓴 과학자에게는 같은 사실도 다르게 보인다”는 미국 경제학자 새뮤얼슨의 경구를 인용한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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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종교'에 대해 비관적이기에 알렝드 보통의 신간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보며 "왜 이런 책을 내고 그래.."하며 알렝드 보통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좀 살펴보니 내 생각이 좀 성급했던 듯 싶다. 원제를 보니 <Religion for Atheists: A non-believer's guide to the uses of religion>이다. 부제가 더 내용의 핵심에 와 닿는 듯 싶다. "non-believer's guide"_ '비신자를 위한 가이드'. ㅋㅋ 

나름 재미있을 듯 싶다. 아울러 다른 두 책도 스크랩한다.(읽어야 하는데...ㅠ.)

   

한겨레신문 2011.9.28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종교로부터 빌려올 게 많죠”

‘무신론자…’ 한국어판 내고 첫 내한 알랭 드 보통
미사·명상·미술작품 등서
공동체·인간성 회복 가능
‘인생 학교’ ‘리빙아키텍처’
자신의 실천 방법 소개도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행복의 건축> 등의 저서로 유명한 스위스 태생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이 <무신론자들을 위한 종교>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내한했다. 서강대 제공 
 
“종교의 초자연적 존재를 믿지 않지만 종교적 공간, 종교예술, 제의 등에 노스탤지어를 가진 이들을 위한 책이다. 종교로부터 빌리거나 훔쳐올 게 많다고 본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청미래)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처음 내한한 영국 저술가 알랭 드 보통(43·사진)은 27일 서울 시내 중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자기 책과 철학 등을 소개했다.

“테러, 전쟁 등 종교 문제는 종교와 종교, 종교와 반종교 사이에서 생긴다. 종교란 절대적인 것이거나 완전히 엉터리라는 사고를 버릴 때 길이 열린다. 교리가 아니라 미사, 명상, 종교건축, 종교미술에서 사랑, 믿음, 관용, 정의, 절제 등의 미덕을 배울 수 있으며, 그 가운데서 공동체 정신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는 예를 들어 제의에서 잃어버린 교육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도들에 대한 종교의 교육은 효과적이다. 선불교의 다례, 가톨릭의 미사 등 종교의식은 행사 또는 계절에 따라 반복된다. 이 종교들은 인간이 잘 잊는 존재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반복하면서 진리 또는 진실이라는 아이디어를 주입하는 것이다.”

보통은 새로운 것이 좋다는 믿음에 따라 이뤄지는 현대 교육이 정작 궁극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종교는 인간이 정신과 육체로 이뤄져 있다는 전제 아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신체를 이용한다. 음악, 예술, 건축 등의 심미적 아름다움을 이용해 종교의 아이디어를 더 오래 간직하고 체화하도록 한다. 단순히 책을 읽어서 얻는 지식과는 다른 것이다.”

그는 대학, 박물관 같은 교육기관 외에 여행, 레스토랑, 호텔, 공원 등 다중이 모이는 곳을 관리하는 사람들 역시 종교로부터 현대사회가 잊고 있는 공동체 의식을 끌어내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적인 모임으로 유대인들의 ‘아가페 식당’을 소개했다. 여기서처럼 식사를 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 가장 두려운 것,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서로 이야기해보라고 권했다. 나 잘났어, 참 대단해 식의 대화는 진정한 교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종교인한테만 맡겨놓을 수 없다. 비종교인들도 종교의 힘을 빌림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본다.” 보통은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모한테서 종교는 바보나 믿는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자라면서 오히려 집안이 비지성적임을 깨닫고 공부를 했다. 유대교는 나의 뿌리라서, 기독교는 ‘유대교의 적’이라서 몰래 공부했다. 불교는 건축에 끌리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5년 전부터 텍스트에서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두개의 조직을 꾸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생 학교’와 ‘리빙아키텍처’가 그것이다. 인생학교는 평소에 과묵하기 마련인 사람들이 저녁에 한곳에 모여 사랑, 불안, 돈, 종교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자리라고 한다. 리빙아키텍처는 유명 건축가와 협력해 영국 런던 교외에 아름답고 편안한 다섯개의 건축물을 짓고 원하는 사람들한테 빌려준다. 공동체 회복에 기여하기 위한 취지다.

알랭 드 보통은 23살에 첫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출간한 이래 20년 동안 사랑, 일, 건축, 여행 등 일상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로 책 10권을 썼다. 저작 대부분이 한국을 비롯한 20여 나라에서 번역출간됐다. 국내에서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2002)가 36만부, <우리는 사랑일까>(2005)가 20만부 팔리는 등 20~30대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린 책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과 <철학의 위안>이라고 소개하면서 영국 독자 가운데 80%가 여성인데, 남자들은 도대체 뭐 하는지 궁금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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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있는 기사를 보고 알게된 소설이다. 사실 기사의 시작은 딕의 <높은 성의 사내>를 애기하고자 한 듯 하나 내용의 대부분을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에 더 많이 할애하고 있다. 관심가지고 있었는데 며칠전 신촌의 숨어있는 책에 갔다 책이 있어 얼른 구입했다.(한권에 2000원에 구입했다.ㅋㅋ 90년대 나온 책이라 표지는 현재의 멋없는 허연 표지가 아닌 복거일씨 사진 옆에 있는 그림표지의 책이다. 화가가 누군지는 까먹었다.)

    

 

한겨레신문 2011.9.17  미국이 2차대전서 패한 뒤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면… 

승·패전국이 뒤바뀐 가정법
‘대체된 역사’에 맞서는 주인공
‘소설속의 소설이 된 현실’ 구성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의 원형

미국의 에스에프 작가 필립 케이 딕(1928~1982·사진)은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할리우드 영화의 원작자로 명성이 높다. 2013년까지 그의 대표 장편 열두 권을 완간한다는 목표로 출범한 폴라북스의 ‘필립 케이 딕 걸작선’이 그 네 번째 주자로 1963년 휴고상 수상작 <높은 성의 사내>를 내놓았다. 국내에서는 2001년에 한 차례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다.

<높은 성의 사내>는 2차대전에서 미국과 영국, 소련 등 연합국이 아니라 독일·일본·이탈리아 추축국이 승리했다는 가정 아래 전개된다. 소설 속 현재인 1962년의 미국은 독일이 지배하는 동부 로키산맥연방과 일본이 지배하는 서부 태평양연안연방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른바 ‘대체역사소설’이다. 미래와 외계를 주된 영토로 삼던 에스에프 장르가 상상력의 물꼬를 반대 방향으로 튼 것이 대체역사소설이다. 한국에서는 복거일의 등단작 <비명을 찾아서>(1987)가 이 장르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비명을 찾아서>의 앞부분에서 작가가 <높은 성의 사내>를 다른 몇 편의 대체역사소설과 함께 언급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이 작품을 읽어 보면 두 소설 사이의 유사성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우선,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각각 미국과 조선을 식민 지배하고 있다는 설정부터가 동일하다. <높은 성의 사내>의 주인공인 미국인 로버트 칠던은 <비명을 찾아서>의 조선인 주인공 박영세(기노시다 히데요)에 해당한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제 나라를 일본이 지배하는 현실에 적응하는 듯 보이지만,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런 상황이 부당하다는 자각에 이르고 어떤 식으로든 그 현실에 맞서는 쪽으로 나아간다.

“나는 앞으로는 조선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조선인을 대변하는 시를 쓰려고 해.”

“이걸 만든 사람들은 미국의 자랑스러운 예술가들입니다. 나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싸구려 부적에 관한 제안은 우리에 대한 모욕입니다. 사과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의 인용문은 기업체 과장이자 시인이기도 한 박영세가 직장 동료인 일본인 여성 시마즈 도키에한테 하는 말이고, 뒤엣것은 칠던이 일본인 가소우라에게 하는 말이다. 주로 일본인 고객을 상대로 미국의 골동품과 공예품을 파는 것이 칠던의 직업인바, 미국의 예술적 수공예품을 기계를 이용해 대규모로 찍어내 팔라는 가소우라의 제안이 그에게는 모욕으로 다가온 것이다. 박영세가 일본인 장교를 살해하고 조선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망명을 떠나는 데 비해 칠던은 이렇다 할 적극 행동에 나서지는 않지만, 적어도 식민 현실에 대한 회의와 저항이라는 점에서 두 주인공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두 소설의 더 크고 근본적인 유사성은 따로 있다. 복거일의 작품에서 박영세가 조선인으로서의 각성에 이르는 계기는 한 권의 책이 제공한다. 지은이가 밝혀지지 않은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이라는 소설이 그것이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배하고 조선은 그 지배에서 벗어난다는 등 우리가 아는 실제의 역사가 이 책의 기둥 줄거리를 이룬다. <높은 성의 사내>에도 한 권의 소설이 등장한다. 호손 아벤젠이라는 작가가 쓴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라는 작품이다(아벤젠이 높은 성채와 같은 요새에 숨어 산다는 데에서 소설 제목이 비롯됐다). 이 소설 속 소설 역시 2차대전에서 추축국이 아닌 연합국이 승리했다는 ‘가정’을 담고 있다.

“라이스가 화나는 건 이 부분이었다. 아벤젠이 쓴 책에 묘사된 아돌프 히틀러의 죽음, 히틀러와 나치당, 독일의 패배와 파멸. 그 모든 것이 왠지 더 웅장한데다 현존하는 실제 세계, 그러니까 독일이 패권을 차지한 지금 상황보다 옛 정신과 더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샌프란시스코 주재 독일 영사 후로 라이스의 독후감이 잘 보여주듯이, 이 소설 속 소설의 역할은 ‘가능할 수도 있었던 현실’을 상기시키는 데에 있다. 복거일의 소설에서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이 박영세에게 그랬듯이, 딕의 소설에서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는 칠던과 라이스를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 다른 주요 등장인물 줄리아나가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해 말한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다.

<높은 성의 사내>는 딕의 소설을 원작 삼은 영화들만큼 충격을 주거나 흥미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복거일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의 ‘원형’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한번쯤 읽어 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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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관심도서 페이퍼를 작성하지 않은지가 너무나 오래된 듯하다. 방학기간에는 시간이 좀 있어 이것저것 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일거리가 생기고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블로그에 글 다운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생각난 김에 관심도서 리스트를 만든다.(사실 리스트를 만드는 것 보다 집에 있는 책들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간이 뭐가 있나 하는 나의 관심은 끊을 수 없다.) 

      

# 1.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최성각씨의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를 통해 알게 된 책이었다. 그의 애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 책에 관심이 갔다. 그러나 책이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는데, 얼마 전 개정판이 한겨레출판사에서 나왔다. 부제인  "미국 인디언 멸망사-Bury My Heart at Wounded Knee"을 통해 충분히 책의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책의 저자는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출신이 아닌 루이지애나 앨버타 출신의 한 대학 도서관 사서라고 한다. 어찌 그런 이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런 고전을 쓸수 있으며 쓰게 되었을까 좀 궁금하다. 저자 소개 글을 읽어보니 "급진 러다이트주의자였던 그는 1998년 자신의 마지막 소설에 이러한 헌사를 썼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수동식 타자기와 아직도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기계를 거부하는 그의 인간애가 자신이 밝고 있는 땅에서 오랫동안 살았으나 무참히 그 땅에 묻힌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이어진게 아닐까 한다. 

# 2. 이정우씨의 <세계철학사1>이다. 솔직히 내가 이런류의 책을 읽을 시간적 여유와 필요성은 크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류의 책들에 눈길이 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집에도 많은 책들이 있음에도 그 대부분이 아직도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들에 자꾸 눈이 간다. 이정우씨의 책들도 집에 몇권 있다. 2000년 초반에 거름 출판사에서 나온 <접힘과 펼침>같은 책들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문득 궁금해진다? 그런데 내가 이런 책들을 읽고 싶은 이유는 뭘까?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일까? 정말 내가 원하는게 이 책들에 있기나 하는 걸까? 아직 제대로 읽고 공부하지 않으니까 드는 의문이겠지...

    

ps : 예전 헌책방에서 산 책들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사회철학대계>1.2.3권이다. 인터넷 책방에는 이미지가 없어 검색해 찾아보니 2.3권은 그림이 있어 퍼왔다. 내가 구한 책은 1993년 12월에 나온 초판 1쇄이다. 4.5권도 1998년에 나왔다. 이런 책들이 나왔던 그 시대가 왠지 더 살만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 3. 영국 글래스고대학에서 인문지리를 가르치고 있는 조앤 샤프의 <포스트식민주의 지리>이다. 전남대 지리교육과 교수인 박경환 교수(외1명)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박경환 교수는 3년 정도 전에 교사모임에서 주최하는 스터디 모임에 우연히 갔다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주제는 '디아스포라'에 관한 내용이었다. 미국의 코리아타운과 차이나타운을 예로 들어 강의를 한 것 같다. 사진도 많이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 같이 강의 들었던 젊은 선생님(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과 동기인지 아주 반갑게 애기를 하는 것을 보고, 참 젊은 교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좀 부러웠던... 사실 '포스트', '포스트모던', '모던'이라는 말이 붙은 내용들을 난 잘 모른다. 어렵기도 하고 관심이 없기도 하고... 그러나 이것들을 지리적, 공간적 관점에서 분석한 저작들은 관심이 간다. 전공이다 보니... 책소개글은 이렇다. 

포스트식민주의는 일본의 식민 지배와 미국의 신식민주의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우리에게 과거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향후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새로운 앎과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신)식민주의가 단지 역사적, 사회적 과정만이 아니라 지리적, 공간적 과정으로 전개되었듯,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들은 이의 비판 과정에서 풍부한 지리적 지식과 다양한 공간적 어휘를 활용한다. 포스트식민성이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탈식민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경제-정치적 권력의 공간과 사회-문화적 재현의 공간을 전환함으로써 탈식민화를 달성하고자 한다. 책은 우리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과정에서 빼앗긴 들판(즉 빈곤과 불평등의 공간)을 되찾아 재구성하게 하여 새로운 봄을 맞을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다.

 

   

# 4. 우석훈씨의 신간 두권이 나옸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 <디버블링>이다. 우석훈씨의 <88만원 세대>를 시작으로 그의 책들은 몇권 읽어보며 이런 학자들이 많이 한국에 있다면 좀 더 재미있는 책들이 많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상대적으로 <나와 너의 사회과학>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디버블링>은 재목과 표지부터가 심상치(?) 않다. 제목이야 책의 내용을 부각시키고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 같지만, 표지는 그래도 좀 너무한듯 하다. 하나도 이쁘지 않다. 아니 뭐 '토건경제' 깨부수려 작정한 저자(혹은 편집자)에게 책의 디자인은 충분히 희생할 가치가 있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쉬운 마음 버릴 길 없다. ㅋㅋ  참고로  디버블링은, 토건 경제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랐을 때 실물경제가 더 이상 그걸 버티지 못하고 거품이 붕괴하는 현상을 일컫는다고 한다. 하여튼 다른 대한민국의 흔해빠진 재미없는 경제학자들에 비해 우석훈씨의 남다른 관점과 재치만으로 충분히 가치있으며 한국에 필요한 학자가 아닐까 한다. 물론 책도 그렇고.

     

# 5. 이번 책들은, 한권은 너무나 멋있는 한 인간에 관한, 나머지 한권은 아주 단순한 이유지만 책의 표지(그림)가 너무 맘에 드는 책이다.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는 1966년 11월 7일 볼리비아 동남부 냥카우아수에 도착한 날 시작되어 유로 계곡 전투에서 체포되기 전날인 1967년 10월 7일에 끝난다. 그의 마지막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이 모여있다. 그의 글과 그의 사진과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느껴진다. 두고두고 그의 글들은 곁에 두고 읽어야 겠다. 오른쪽에 있는 <우리는 왜 착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의 표지는 어디서 본 듯한 그림인데 기억이 나지 않아 찾아보니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라고 한다. 이상 세계로의 도피를 꿈꾸는 낭만주의적 작품이라는데...그런 느낌이 나는 듯, 세상을 자기의 발 밑으로 밝고 있는 지배자의 느낌이 나는 듯 하기도 하다. 하여튼 표지 그림이 맘에 든다. 그러나 내용은 좀 어떨지 의문이 든다. 책 소개글을 보니 이런 내용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머리로만 생각하고 있던 추상적인 문제들에 대해 매우 실리적인 해답을 내놓는 윤리철학 책이다. "라고 쓰여있다. 내 주의는 '추상적인 문제'들은 우선 추상적인 수준에서 어느정도 해결되어야지 어설프게 이해하기 쉽게 한다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일반화를 시도하는 것은 사실 '추상적인 문제'를 이해하는데 약보다는 독이 되기 쉽다는 생각이다. 담에 서점에 가면 한번 들추어는 봐야겠다.
 

잠시 휴식.....ㅋㅋㅋㅋ(일요일 저녁에 쓰다가 지금(월요일 저녁)에야 나머지를 쓴다.ㅋㅋ)

         

# 6. 다음 책들은 음악가들에 관한 책이다. 포토넷이란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는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로 현재 6번째 <말러, 그 삶과 음악>이 얼마전에 <쇼팽, 그 삶과 음악>과 함께 출간되었다. 특이한 것은 이 시리즈의 책들의 부록으로 CD 2장이 포함되어 있는데, 말러편의 경우 모두 Naxos에서 나온 앨범에서 발췌한 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찾아보니 낙소스 레이블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책들이라고 한다. 클래식 애호가라면 나름 곁에 두고 한번씩 펼쳐보며 그들의 삶을 꺼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난 우선...말러편 부터.

   

# 7. 마지막 책들은 좀 말랑말랑(?)한 책들로 골라보았다. 레이첼 시먼스의 <소녀들의 심리학>은 책의 제목만으로는 정말 말랑말랑한 책 같지만, 부제인 '그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고 왜 등을 돌리는가'를 보게 된다면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왠지 '소녀'하니 노홍철이 무한도전에 나와서 외쳐대는 그 '소녀'들이 자꾸 생각난다. 물론 그 '소녀'나 이 '소녀'나 같지만 왠지 또 다르게 느껴진다. 학교에서는 내가 좀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여자고등학교에 대한 애기를 내가 가끔 하는 경우가 있다. 뭐 약간의 '로망'을 가지고 그러면 나이드신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하는 소리가 '너 가봐라 힘들어 죽는다'이다. 나도 이 말의 의미를 대충은 안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가 남녀 공학이었는데, 한 여학생이 나한테 삐쳐 한동안(거의 한달 정도인거 같다) 내 수업시간에 얼굴도 보지 않고 90도 방향으로 삐닥하게 앉아 수업을 들은 아이도 있었다. 뭐 심한 경우 들어보면 말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에 이 <소녀들의 심리학> 소개글을 읽어보니 이런류의 행동들의 '소녀들의 은밀한 공격 문화'라고 한다. 이 사회가 소녀들의 이런 '공격'적인 모습은 이해하려하지 않고 오직 '착한' 소녀만을 요구해 소녀들의 상처가 크다는 애기다. 그러고보니 남자들은 '은밀'한 것보다는 대 놓고 반항하거나 액션을 취한다면 소녀들은 뭔가 다른게 있다고 느꼈는데, 이런게 아닐까 한다. 여고로 전근 갈 때를 대비(?)하여 한번 탐독해봐야겠다. ㅋㅋ 

두번째 책은 <오늘도 집밥>이다. 양철댁님의 블로그를 읽다 알게 된 책이다. 정말 간만에 내 감성을 깨워줄 만한 책 같다는 생각이다. 부제가 '광고회사 15년차 서카피의 올바른 끼니해결 분투기'이다. 현실적이며 그러기 때문에 모두의 가슴에 한가닥 추억과 뭉클함을 안져줄 것 같은 책이라는 느낌이 확 다가오는 제목 아닌가? 얼마전 와이프와 애기랑 광화문 교보에 갔다가 구입을 하려 했는데, 애기가 갑자기 울며 떼를 쓰는 바람(낮잠을 잘 시간이었다)에 사지 못하고 그냥 집에 왔다. 알라딘에서 구입을 해야겠다.(안그래도 루체른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아바도옹의 말러 교향곡 3번 DVD가 새로 수입되었다고 하니 같이 구입하면 될듯.) 

세번째 책은 <정이란 무엇인가?>이다. 정말이지 구태의연한 제목이지만, "...무엇인가?"란 의문보다는 '정'에 더 관심이 가 눈에 들어온 책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들어보고 느껴보았을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 모를 만한 심리상태인 '정'에 대해 알 수 있을 만한 책이라면 구입해도 좋을 듯 하다. 이 책도 우선 서점에 가서 들추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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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2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빛눈물님 "잠시 휴식" 시간은 잘 보내셨을까요?

말러도 있고, 신간은 저도 신문 북섹션에서 관심 깊게 보던 책들이네요. ^^
일요일을 마무리하긴 애매한 시간인데.. 좀 더 휴식을 취하고 편히 주무세요~

햇빛눈물 2011-03-21 21:35   좋아요 0 | URL
네, '잠시 휴식'은 정말 잘 보냈습니다. 페이퍼를 쓰다 애기가 일어나 '잠시 휴식'을 취했죠. ㅋㅋ 그러고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바람결님의 감성적인 페이퍼를 볼 기대심으로 블로그에 들어가게 됩니다. 바람결님도 좋은 밤 되시길~~

양철나무꾼 2011-03-2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성각은 재밌게 읽었어요.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가 새로 나왔단 말이죠?
우석훈은 저도 쟁여놓고 있고, 말러에 관한 새 책도 흥미로워요.

'잠시 휴식'...장자를 꿈꾸는 건 아니시겠죠?^^

햇빛눈물 2011-03-21 21:36   좋아요 0 | URL
꿈만 꾸었답니다. ㅋㅋ 저도 한겨레신문 북섹션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왠지 읽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것 같은 책입니다. 쟁여놓고 읽지 못하고 있는 책이 한두권이 아니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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