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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대에 근무하시는 박승규 교수님의 논문들 최근에 재미나게 읽고 있다. 지리학의 필요성, 중요성 그러나 정반대의 현실에서 지리학이 지리전공자들이 해야할 일들에 관한 원론적인 차원의 그렇지만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글들이다. 교수님의 박사학위 논문을 엮은 <일상의 지리학>도 같은 맥락의 글인 것 같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다.

 

며칠 후에 박승규 교수님을 뵐 기회가 있는데, 책에 사인도 받아야 겠다. 아래 글은 읽은 논문의 밑줄 친 부분들이다.

 

 

 

인정,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쓰여지지 않은 공간을 발견하다

- 지리학이 인문학인 또 다른 이유 -

 

1. 서론

 

지리학을 인문학이라 했다. 지리학이 인간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이라 했다. ···· 지리학은 일상적인 사물이나 공간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이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한 번의 기획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 한 번의 기획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리학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한 번의 기획으로 지리학의 학문적 존재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다. ····

 

인간은 공간 위에 거주한다. 그렇기에 인간 개개인의 공간은 자아의 연장이다. ····

 

내가 존재했던 공간의 소멸은 나에 대한 망각을 재촉한다. 망각은 나를 잊게 한다. ···· 나의 기억을 망각하게 강요하는 것은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은 아니다. 하지만, 훨씬 더 근본적으로 나를 부인하게 한다. ····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떤 공간을 소비한다. 그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았을 때 개인의 정체성은 강화된다. ···· 인정받지 못하고, 망각의 대상이 되는 것은 두렵다. 그렇기에 인간은 개별자로든 집단으로든 자기 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지속적인 인정투쟁을 벌인다.

 

   

헤겔은 인간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보았다. ···· 헤겔과 호네트는 인간이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고유한 발전을 위해 권리를 쟁취하려는 투쟁의 문제이다. ···· 동일시와 같음이 우선시 되는 사회가 아니라, 차이와 다름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인정은 더욱 빛을 발한다. ····

 

인정 투쟁의 문제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해가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 한다면 그것은 공간의 문제이다. 공간은 인간의 정체성을 표현해주고, 인간 존재의 깊이와 밀도를 표현해주는 또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 인간 삶의 과정에서 일상 공간의 생산과 소멸은 삶의 생성과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 인정 투쟁의 문제는 인간 존재가 생산하는 다양한 공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노두인 셈이다.

 

      

 

지리학에서도 인정과 관련된 논의가 있다. 지리학에서 다루는 인정은 다문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다.(위 대구대 최병두 교수의 책 참고) ···· 다문화 현상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과 장소의 문제이며, 사물의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한다. 나아가 다문화 사회에서의 공간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문화 사회라는 개념 대신에 ‘다문화 공간’을 제안한다. ···· 그렇기에 인정의 문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이같은 문제의식을 토대로 본 논문을 작성하였다. ···· 철학적 개념으로서 ‘인정’을 이용하여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 인정은 인간의 근원적 욕구이고, 인간의 근원적 문제이기에 이것을 통해 지리학이 인간의 근원적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힌다. 이를 위해 헤겔의 인정 개념을 살펴보았다. ····

 

  

 

정작 헤겔의 인정 개념은 주체-객체의 인간관을 전제하고 있어 상호인정 과정에서 상대방을 타자화 시키는 약점을 보인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주체성의 이념에 근거하여 나와 너의 만남을 통해 형성되는 인정 개념을 제시하였다.(서로주체성의 개념은 위 전남대 김상봉 교수의 책을 참고)···· 인정 개념을 이용하여 관성적으로 인식하던 지리인식과 공간에 대한 사유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궁극적으로 지난번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 선택과목 개편과정에서 나타났던 지리학의 학문적 위기를 상기하면서 지리학의 학문적 존재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2. 인정, 인간 존재를 설명하다: 사회적 존재론에서 인간학적 존재론으로

 

1) 헤겔의 인정,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규정하다

 

헤겔은 인간이 자연이나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을 때 두 종류의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 ‘대상의식’ ···· ‘자기의식’ ····

 

헤겔은 이같은 인정 투쟁 과정을 「정신현상학」 ‘자기의식’장에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사례로 보여준다. ···· 이처럼 인정은 내가 인정받기 위해 나는 나와 동등한 자유로운 인격을 갖고 있는 상대방을 전제한 상태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헤겔에게 인정은 단순하게 인간 상호간의 인정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에게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에 존재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 그렇기에 헤겔의 인정 개념은 공동체성을 토대로 하는 사회적 존재론에 근거한다. ····

 

2) 서로주체성의 인정,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다.

 

···· ‘홀로주체성’ ···· ‘서로주체성’ ····

 

헤겔의 인정이 나와 너의 관계에서 상호인정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하더라도 나와 너의 관계 방식 자체가 주체-객체 관계의 도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면, 나와 너의 본질적 속성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

 

부버(Buber)는 인간의 본질을 ‘사이존재’로 본다. ‘사이존재’란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의 신체와 다른 인간의 신체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을 말한다.

 

   

(마틴 부버의 책으로는 위 세 가지 책을 참고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때 사이는 인간의 신체를 전제로 한다. 인간의 신체와 신체 사이의 빈 공간은 몸을 통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언어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실존적 만남의 과정에서 성립하는 그런 공간이다. ···· 내 몸이 있는 곳과 더불어 나와 함께 있는 타인의 몸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부버의 논의는 주체-객체로 이루어진 인간관을 극복하게 한다. ···· 그렇기에 그에게 상호인정의 문제는 나를 중심으로 하는 타자화된 너에 의해 이루어진다. 주체-객체의 인간관에서 빚어지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버는 내가 있던 중심에 너를 배치한다. ····

 

타자에 대한 인정은 그의 상황을 인정하고 그가 세계 속에 존재하는 방식을 존중한다. 반면에, 타자에 대한 부정은 타자의 세계를 점령하고 그의 시간과 장소를 새롭게 규정하며, 타자의 영혼과 타자의 생활세계를 말살하기 위한 구실로 기능한다. 그렇기에 서로주체성에 근거한 인정의 구조는 개인의 시간과 장소를 존중하고 배려한다. 자신의 시간과 장소를 새롭게 규정하도록 허락한다. 자신만의 공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두렵지 않게 한다.

 

3. 지리학, 인정을 통해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고, 쓰여지지 않았던 공간을 발견하다

 

1) 지리학의 본질, ‘보이지 않는 공간’을 보이게 하다

 

지리학에서 다루는 보편적 공간 범주에서 벗어나,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지만, 의미가 발견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공간(invisible space)'에 천착해야 한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는 파울 클레(Paul Klee)의 말은 보이는 것을 떠받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세계를 열어준다. ····

 

Fruits on Red. 1930. Watercolor on silk. 61.2 x 46.2 cm. Sta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Germany.

(내가 좋아하는 클레의 그림 중 하나다.)

 

클레에게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화가가 자신의 경험세계에서 일어나는 삶의 현실성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의 근원적 장소는 화가와 세계가 만나는 ‘사이영역’이다. 클레가 말하는 사이영역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무의식과 의식, 인간과 자연, 주관과 객관과 같은 양극이 역동적으로 교차하는 영역이다. 화가는 삶의 현실성을 산출하는 양 극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사람이다. ····

 

클레의 말에 동의한다면, 지리학자는 중요한 공간과 그렇지 못한 공간, 보이는 공간과 보이지 않는 공간 사이 영역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 지리학은 일상 공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면서 어느 하나의 가치체계를 대변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익숙하고 낯익은 공간에서 벗어나 불편하고 낯설은 공간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 사람들에게 안개는 일상이다. 안개 없는 일상을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이 안개를 발견한 것은 터너(Turner)의 풍경화를 통해서이다. ···· 예술가의 그림이 우리에게 익숙한 현상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듯이, 지리학자는 우리 일상을 구성하는 공간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

 

인간과 공간의 관계는 우리 삶의 생성과 변화의 과정에서 진화해 간다. 새로운 공간의 등장과 부침은 새로운 지리인식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새로운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을 요구한다. ····

 

지리학도 예술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간 삶을 구성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공간에 대한 발견은 지리학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다. ····

 

공간이 지리학자만의 독점적 대상일 수는 없지만, 공간을 통해 지리학이 세상과 소통하려 한다면, 지리학은 지금과는 다른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하고 낯익은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쾌적하지 않은 공간에 대해 언급한다. 작고 초라한 공간을 세상에 드러낸다. 우리 삶에서 늘 필요한 공간이지만, 정작 지리학자들에게 연구 대상이 되지 않았던 그런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 존재가 생산하는 다양한 공간에 대해 ‘철학하기(philosophiren)’를 시작해야 한다.

 

2) 공간에 대한 ‘하얀 글쓰기(e'criture blanche)’ 우리 사회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다

 

우리 삶터로서 공간의 의미는 다층적이다. 이질적이고 균열적인 공간 조각의 퍼즐을 맞추어야만 우리 삶터의 의미를 완성한다. 파편적인 공간 조각을 통해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narrative)’를 통해 가능하다. 각각의 공간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는 그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인간에 대해 말해준다. 자기 자신과 집단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공간과 장소에 퇴적되어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의 편린들이다. ····

 

지리학의 학문적 존재이유는 이처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한 모습과 권력에 기울어져 있는 이념적 지형을 바로잡는 것이다.

 

바르트(Barthes)는 ‘하얀 글쓰기(e'criture blanche)’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들추어내고, 본질을 회복하려 한다. ····

 

바르트의 이같은 생각은 지리학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리학은 ‘하얀 글쓰기(e'criture blanche)’를 통해 우리 사회에 감추어져 있던 공간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당연시해왔던 공간의 범주를 벗어나, 새로운 공간 범주를 발견해야 한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공간은 우리 주변에 퍼져 있다. 푸코(Foucault)가 ‘분산의 공간(space of dispersion)’이라 명명한 이같은 공간은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공간이다. ····

 

‘하얀 글쓰기(e'criture blanche)’를 통해 언어의 원형을 회복하려 했던 바르트의 생각처럼, 지리학에서도 ‘하얀 글쓰기’를 통해 인간의 일상적인 삶의 문제에 관심 갖던 지리학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한다. ····

 

지리학은 세상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세상과 소통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다면 지리학의 역할이 미진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고,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면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리학이 세상에 필요한 학문이며,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근원적 인식의 틀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문학이 지리학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4. 인문학으로서 다시 시작하는 지리학의 부활

 

크리스테바(kristeva)는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정신적 공간이라 말한다. 정신적 공간이 인간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적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항을 ‘다시 시작하는 부활’이라는 뜻으로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

 

 

(책을 찾아보니 쥘리아 크리스테바의 '반항' 개념과 관련된 책이 <반항의 의미와 무의미>란 제목으로 나온 책이 있다. 그러나 크리스테바 하면 <사랑의 역사>가 아닐까 한다. 사진의 책은 새로 나온 개정판이고 집에 초판이 있는데, 다른 책과 같이 읽으려다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읽겠지 한다.)

 

지리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인식하고 바라볼 수 있는 담론 생산은 크리스테바가 언급하는 반항의 연장선에 있다. 통념적인 지리인식에 대한 반항을 통해 다시 부활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하게 과거의 영화를 부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학문으로서 지리학의 전통을 복원하면서도 변화하는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진화하기 위한 반항이다. ····

 

지리학이 자신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지 못하고, 학문적 존재이유를 설파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모습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공간은 하나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세상을 인식하는 기본전제이다. 공간은 인간의 본질적 기원에 맞닿아 있는 근원적 요소이다. 그렇기에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리학은 인간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본질적이고 근원적 차원에 천착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지리학은 세상과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소거시킨다. 여러 개의 해답을 갖고 차이와 다름에 대한 인정을 통해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보여주고, 말하고, 쓸 수 있는 학문이 지리학이길 바래본다.

 

-끝-

 

대한지리학회지 제46권 제6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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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밀려있던 학회지들을 읽으면서 재미있고 의미있는 논문이 있기에 요약해서 옮겨 본다. 춘천교대 교수로 계시는 박승규 교수의 논문이다. 박승규 교수님은 2009년에 자신의 박삭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판한 <일상의 지리학-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묻다>를 통해 알게 되었다. (박승규 교수님이 현재까지 낸 책으로는 이외에서 공저한 <인문지리학의 시선>과 초등용 교재인 <우리 땅 방방곡곡>이 있다. <인문 지리학의 시선>은 1장 '개념에 담겨있는 지리학의 사고방식', 5장 '풍수 사상의 두 전통' 부분을 집필하셨다.)   

  

읽을 당시 인상도 강렬했지만, 글쓴이의 지리교육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는 글이었는데, '인문학으로서의...'은 그뿐만 아니라 작금의 지리교육의 '위기의식'을 보여주는 글이다. 그 어떤 지리철학(사실 읽고 싶어도 선택의 폭이 없다. 국내서적에서는...) 책 보다도 실질적이고 현실의 고민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글이다. 좀 내용이 길지만 지리학도로서 현재의 '지리학의 위기'를 고민해볼 수 있는 의미있는 글이라 생각된다.   

만약 앞으로도 지리 전공자들이 지리 교육의 필요성을 '당연'시 한다면 똑같은 논리로서 우리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논리에 의해 지리는 필요없는 학문으로 이 땅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것이다. 지리교육의 필요성을 논리로 만들고 '설파'해야만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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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지리학회지 제45권 제6호 2010년

인문학으로서 지리학과 지리교육
-존재이유를 묻다-
박승규

Geography and Geography Education as the Humanities:
Ask the Raison D’ˆetre
Seung-Kyu Park

1. 서론

국어, 영어, 수학이 모든 학교 교육의 과정에 핵심으로 자리한다. 그들은 두 과목으로 나뉘고, 수준별로 교육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입시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한다. ‘ 누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누가’ 국가 단위의 시험을 그렇게 해야 사교육이 줄고,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는지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자신의 시선에 대한 성찰없는 성실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반드시 확인하게 해야 한다. .... 아이히만이 보여주는‘철저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가 갖는 심각한 악의 평범성을 보면서 그녀(아렌트)는 몸서리 친다. ....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지리학은‘인정투쟁’을 벌여야 한다. 지리학은 다른 사람이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구성해, 다른 사람들에게 지리학의 존재이유에 대해 설파해야 한다.  

 

2. 지리학, 인간의 심연 세계와 일상 세계를 아우르다.  

1) 나는 공간을 차지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 존재는 지리적이다. 하지만, 존재론에는 지리학이 결여되어 있고, 지리학에는 존재론이 결여되어있다. .... 지리학자는 구체적인 사물을 사고의 대상으로 삼는다. 칸트(Kant)가 자신의 논리학 강의를 하기 이전에 자연지리학 강의를 열심히 했었던 것 역시 지리학이라는 학문이 갖고 있는 구체성에 기인한다. .... 벤야민(Benjamin)이 말하는 ‘무의지적 기억’이란 섬광처럼 순간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기억 방식이다. .... 그렇기에 ‘무의지적 기억’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지금여기’의 나를 드러내게 한다. 인간은 관념적이고 본질적인 논의를 통해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다. 매일의 작은 사물의 조각이 모여 완성되는 존재인 것이다. .... 사르트르(Sartre)의 주장처럼 ‘실존은 늘 본질에 앞선다.’ 본질은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벗어난다. 어떤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 놓여 있는가와 관련 없다. 늘 같다. 그런 점에서 본질은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저편에 존재하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과 다르다. 인간이 어떤 시공간에 놓여져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  

나에게 익숙한 동네의 부재는 인간관계의 부재를 양산하고, 그것이 곧 사회문제로 확대된다. ... 동네의 부재는 곧 익명성의 증가를 가져왔고,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소통의 부재를 양산한다. .... 자연스런 인간관계가 그립다. 연고주의가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것도 결국은 동네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공간의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 현대 사회의 부박함이 일어난 이유는 이런 근원공간에 대한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체험기회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 

도시 공간을 구축하고 있는 다양한 사물을 통해 인간을 이해한다. 사물 속에 담겨져 있는 인간의 다양한 기억과 욕망을 통해 도시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몸의 위치를 파악한다. 그렇기에 지리학은 인간 존재의 심연에 다가갈 수 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 않기에 인간 본질을 왜곡하지 않고 심연에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리학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부인하고 남아있는 마지막 명제를 데카르트(Descartes)는 생각하고 있는 나에서 찾았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명제는 ‘어디에서’ 생각하고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데카르트는 라일(Ryle)이 지적하듯이 마음과 육체에 관한 이원론적 시각을 제시하는 범주적 오류를 범한다. ‘지금 여기’에서 생각하고 있는 나와 ‘그때 거기’에서 생각하고 있는 내가 다를 수 있음을 데카르트는 인지하지 못했다. 생각하고 있는 내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생각하는 내용은 달라진다. .... ‘나는 공간을 차지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Shields(1997)가 데카르트의 명제를 바꾸어 제시하고 있는 이 명제는 지리학의 학문적 존재이유를 대변한다. 지리학이 인간 존재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통로이고, 지리학을 통해 인간의 심연을 비출 수 있음을 말해준다.  ...

2) 지리학, 일상적인 삶을 비추다  

.... 공간적전환(spatial turn)’은 세상을 인식하는 커다란 흐름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공간이 세상을 읽어가는 중요한 인식소임을 세상에 알리는 인식의 전환이다. 지리학은 세상을 읽어내는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그것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  

지리학은 우리 삶의 생생한 경험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익숙하기에 주목받지 못한 일상 공간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삶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대한다. 구체적이고 익숙한 요소들에서 시작해서 인간의 내면세계에 다다를 수 있는 학문임을 알아야 한다. 익숙한 공간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게 하고, 그것을 토대로 우리 삶의 문제에 대해 다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학문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지리학은 그런 학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

3. 지리교육, 존재론적 성찰과 교과 정당성 확보  

1) 지리 교과에 대한 성찰: 지리는 꼭 가르쳐야 한다  

... 다른 과목명을 대입했을 때 논리가 어색하고, 성립할 수 없는 지리만의 고유한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 교과이기주의로 폄훼하는 경우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리학 고유의 논리가 부족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다 객관적으로 지리교과의 필요성에 대해, 지리교과의 내재적 가치에 대해 세상을 향해 천명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 지리를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지리를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그것이 온전한 인간을 길러내는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지리교육에서 가르쳐야 하는 내용에 대한 숙의과정을 거쳐 과거와 다른 지리교육의 모습을 구성해야 할 때이다. .... 지리 교과도 ‘내가 지리를 전공했기 때문에 지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당위’적인 시선을 버려야 한다. 지리는 존재 그 자체로 학생들 이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교과임을 알게 해야 한다‘. 존재’의 차원에서 지리 교과는 교육적 이상을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음을 주장해야 한다. .... 우리가 지리를 전공했기 때문에 당연히 학교에서는 지리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왜 지리를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을 가로막는다. ....  

칸트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을‘철학하기(philosophiren)’라고 한다. .... 지리적 경험은 ‘위치’를 통해서 궁극적 실재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리적 경험에서 ‘위치’는 모든 지리적 현상들을 파악할 수 있는 출발점이며, 종착점이다. 지리학자는 지리적 현상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묻고, 왜 그와같은 현상이 그곳에서 발생했는지를 묻는다. 동일한 지리적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그와같은 현상이 발생한 곳이 어디인가에 따라 지리적 현상에 담겨있는 의미는 달라진다. ....  

일상 공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 존재를, 우리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일상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리교육은 ‘명제적 지식’ 내지는 ‘기술적 지식’에 대한 교육에서 벗어나 ‘실제적 지식(practical knowledge)’이나 ‘묵시적 지식(tacit knowledge)’도 함께 가르쳐질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  

4. 결론

...........

결론은 무엇일까요? 지리 전공자로서 이 부분에 무엇인가 쓸 내용이 있어야만 한다는게 바로 '결론'이지 않을까요? 

ps : 이와 관련된 도서를 생각하면 순간 떠오르는 책들이다. 

       

     

  지리학의 본질 2(대우학술총서번역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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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10-26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슨 지식을 흡수할 때 장소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할 때도 지도를 찾아보는 습관이 있습니다.지리라는 과목은 지질학 기후학 등 이과분야에 걸쳐있는 분야도 있기 때문에 문과 편향적인 사람들도 관심을 두어볼 만한 과목이라고 생각합니다.알렉산더 훔볼트 같은 사람은 지리학에서도 중요시하지만 특정분야를 떠나 많은 영향을 준 인물 아니겠습니까...그가 탐험 후에 남긴 기록들을 보면.저 역시 훔볼트 처럼 공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햇빛눈물 2011-10-27 12:56   좋아요 0 | URL
'훔볼트 처럼 공부'한다. 아주 좋은 말씀이십니다. 안그래도 예전에 훔볼트의 책을 구입한게 있는데 한번 훝어봐야겠네요. 요즘 '통섭'이란 말이 유행처럼 나오는데, 지리란 학문만큼 이에 어울리는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나간 신문을 읽다가 아는 교수님의 칼럼이 보여 옮겨 본다. 겨울때 1정 연수를 받으며 오경섭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좀 말씀을 길게(?)하는 스타일이셔서 강의 듣기 좀 힘든 면도 있었지만, 상당히 환경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분인 것 같았다. 

좋은 글같다. '촌철살인'류의 문구도 많이 보인다. 

ps : 그리고 대부분의 교수님들 프로필 사진은 10년에서 20년 지난 사진을 쓰시는 것 같다. ㅋㅋ 그리고 오경섭 교수님은 올 8월에 퇴임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문에는 한국교원대 교수로 나온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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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1.10.20  4대강 사업 찬양론들의 오류  

찬양론자들은 우리 강을 싸잡아서
원래 병들어 있다고 전제한 듯하다
이는 무지에서 비롯된 오류다



» 오경섭 한국교원대 교수·지형학

며칠 후면 4대강 사업의 완공(?) 축제가 있다고 한다. 그간 이 사업을 우려해온 대다수 국민들은 망연히 사태를 지켜볼 뿐이다. 신문과 방송의 주요 관심사는 서울시장 보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쏠려 있는 듯하다. 이런 와중에도 현 정권 관계자들과 일부 신문들은 4대강 사업을 적극적으로 옹호·찬양하고 있다. 이들은 올여름 사업구간 하천 본류 최고수위는 예년보다 높지 않았다는 사실로 사업이 성공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지형학 전공자인 필자의 관점에서는 올여름 사업구간 본류가 넘치지 않은 것은 아직 보의 수문을 달지 않은, 완공 이전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예외적인 사실일 뿐이다. 모래 준설로 통수단면(通水斷面)이 넓어진데다 아직 보의 수문을 달지 않은 상태여서 배수는 매우 잘될 수밖에 없었다. 즉 도로는 넓혀놓고 아직 신호등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차들이 막힘없이 주행할 수 있는 상황과 같다. 올해는 역설적으로 사업구간 본류의 홍수 위험이 가장 적은 해라고 할 수 있다. 보에 수문을 달고 배후에 물을 저장한 상태에서 금년과 같은 장마를 맞이했다면 어떠했을지도 고려해야만 한다. 4대강 사업 이전에도 여주대교 일대 등 몇곳을 제외하면 사업구간 본류는 대체로 범람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

올여름의 예를 잘못 해석한 4대강 찬양론자들은 그간 이 사업을 반대하거나 우려한 사람들의 견해는 무너졌다고 한다. 그러니 수질 문제도 사업 추진자들의 주장대로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즉 강모래를 퍼내고 보를 막았기에 수량이 많아져 수질도 좋아진다고 믿는다. 찬양론자들은 모래톱이 천혜의 수질정화 필터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정수기에 비유하면 4대강 사업은 정수필터를 없애고 물통은 크게 한 것과 같다. 찬성론자들은 이런 정수기가 있다면 그 물을 안심하고 마시겠는가?

또한 4대강 사업 찬양론에서 빠지지 않는 게 생태공원이다. 말이 생태공원이지 이것은 자연상태 모래톱을 파헤쳐서 만든 인공조경 공간일 뿐이다. 찬양론자들의 심미안은 아직도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산업화 시대에는 자연적인 것보다도 더 미끈하고 각지고 정돈된 듯한 인위적인 조경을 선호했다. 그러나 21세기는 자연의 요소들을 최대한 살리고 인공적인 요소는 절제하거나 극소화한 경관이 높이 평가받는 시대다. 이들이 찬양하는 조경은 이와는 정반대의 것이다. 4대강 사업구간 주요 하천 본류는 오염물 유입의 양과 질이 통제되지 않는 도시와 공단, 하굿둑 배후를 제외하고는 세계에 자랑할 수준의 수질과 기본 유량을 가뭄에도 유지해온 곳이다. 이곳은 4대강 사업 이전의 치수체계로도 홍수 피해가 별로 없었던 곳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곳만큼은 갈수기에도 강물이 잘 흐르고 천혜의 수질정화필터 구실을 하는 모래톱이 다른 나라와는 달리 잘 발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은 건강한 혈관을 무차별적으로 대수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찬양론자들은 우리 강을 싸잡아서 원래 메마르고 병들어 있다고 전제한 듯하다. 이는 우리 하천을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 오류다.

정부당국, 정치인, 언론인 등 4대강 사업에 긍정적 의견을 피력하려는 분들께 부탁할 말이 있다. ‘4대강 사업을 우려하는 국민=정부 일에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이란 편견을 버리기 바란다. 이런 시각의 말과 글은 그렇지 않은 대다수 국민에 대한 ‘언어폭력’이다. 또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4대강 사업을 자전거길, 천변 위락시설, 수변공간 개발 등 국민을 현혹하는 말로 포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들조차도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 않다 해도 이들은 4대강 사업의 곁가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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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24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4대강 찬양, 증말 미칠~~~~~~~~거 같습니다!

햇빛눈물 2011-10-25 22:27   좋아요 0 | URL
정신 나갔죠. 아니 처음부터 '정신'이라는게 없는 부류의 인간들 같습니다. 씁쓸할 따름입니다.
 

이 기사도 르디에 실려있는 도시화 관련 기사이다. 그런데 웹에 올려져있는 제목과 내가 보고 있는 인쇄된 책자에 실려 있는 제목이 다르다. 내가 본 기사 제목은 "기하급수적 도시화 제국 식민지에서 내부 식민지로"이다. 웹에 있는 제목보다는 위 제목이 훨씬 더 내용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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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디플로마티크 19호(2010.4)  산업화와 세계화의 쌍끌이, 도시 남획사
[Spécial] 세계의 거대 도시화 

신석기시대 이래 시작된 세계의 도시화 움직임은 산업혁명과 맞물리면서 일대 격변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도시는 사회적 관계의 재구성에 지렛대 역할을 하게 됐다.

 도시에 거주하는 세계 인구의 비율이 2007∼2008년 인류 역사상 최초로 농촌 거주 인구의 비율을 넘어섰다. 오늘날 도시에 살고 있는 인구는 33억 명이 넘으며, 그중 5억 명 이상이 인구 1천만 명 이상의 거대도시 또는 인구 50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거주한다. 유엔은 세계의 도시화율이 향후 수십 년 동안 크게 증가해 2030년에는 59.7%, 2050년에는 69.6%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장차 증가할 인구의 대부분을 구·신도시가 흡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1)

 40년 뒤 인구 70%가 도시 거주  

 이러한 대대적 변화는 인구밀도가 높은 신흥·빈곤 지역에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도시화를 이룬 선진국의 도시인구는 비교적 서서히 증가해 현재 74%인 도시화율이 21세기 중반에는 약 85%가 될 것이다. 이 도시의 팽창 가능성도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신흥 지역에서는 이례적으로 20세기 초부터 조기 도시화가 형성된 덕분이다. 하지만 이는 부국의 도시화와는 또 다른 유형에 해당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균형이 깨질 것이며, 이미 이런 현상이 진행 중인 곳도 있다. 아프리카의 도시인구는 1950년 이후 10배 이상 증가해 3300만 명에서 3억7300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2050년에는 12억 명으로 인구의 약 63%를 차지할 것이다. 20세기 중반에는 2억3700만 명, 오늘날엔 16억5천만 명에 달하는 아시아의 도시인구는 2배 이상 증가해 35억 명에 육박할 것이다.
 요컨대, 선견지명이 있던 역사가 루이스 멈포드(2)의 표현을 빌리면 온 세계는 “하나의 도시가 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계화된 경제구역의 연결고리를 이루면서 때로는 과도하게 커진 도시 거점의 집합이 될 것이다. 신흥·빈곤 지역의 도시화 확대는 많은 인류의 존재 방식과 행동 방식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갈수록 급속히 진행될 것이다. 도시화는 이주의 원인인 동시에 그로 인해 심화된 결과물인데, 이는 새로운 사회계층 분화를 유발하는 한편 인간에 의한 지구 생태계의 변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를 장기간에 걸친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해야 한다. 대규모 도시화 확대는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의 등장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인류세란 산업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새로운 지질시대(주거환경)를 지칭하기 위해 일각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산업혁명에 필요한 화석에너지 자원을 집중적으로 사용한 결과, 주거 환경이 획기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단절이 발생하기 전까지 수천 년 동안 경제·사회 생활은 “자연환경과 공생관계”(3)를 유지하는 마을 및 초기 도시로 이루어진 전통적 경제의 느린 리듬을 따랐다. 물론 사회가 자연에 국지적 영향을 끼치기는 했지만 생태계의 균형에 문제를 야기할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신석기시대의 농업혁명으로 인구의 정착 및 집중화가 시작된 이래 19세기까지 세계 인구 가운데 도시인구의 비율은 일정 수준을 넘지 않았다. 역사가 폴 베로크는 이전 추정치를 상향 조정하면서 이 비율이 지역 및 시대에 따라 9∼14%에 달했을 것으로 보았다.(4)
 물론 이처럼 기나긴 산업혁명 이전 시기에도 대규모 밀집지가 형성되기는 했다. 바빌론, 로마,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시안, 베이징, 항저우, 난징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 도시들 중 일부는 제국의 수도였으며 인구는 수만, 많게는 수십만 명에 달했다. 서기 1300년경 베이징의 인구는 50만~60만 명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5) 중세 유럽은 인구 2만 명 이상의 상업도시와 도시국가가 형성되면서 베로크가 말한 ‘도시 팽창’ 현상을 겪었다. 하지만 이는 도시와 농촌 간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도, 사회적 관계에 혁명을 가져오지도 않았다.
 1780년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는 100곳도 채 되지 않았다. 즉, 유럽이든 그외의 곳이든 도시의 지배를 논할 상황은 아니었다. 자본주의시대 이전의 사회적 재생산은 어디에서든 농업이 근간을 이루었다. 농업은 사회의 전반적 활동 구도를 제공한 농촌의 기반이었다.

 산업혁명, 다른 두 도시의 분기점  

 그러다가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와 산업화 간의 새로운 공생관계”가 자리잡았다.(6) 산업화는 노동과 자본의 집중화를 필요로 했고, 이로 인해 노동 분업 구조가 새로이 조직되면서 전례 없는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1750년 20%에 조금 못 미치던 영국의 도시인구 비율도 당시로서는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는데 1세기 중반 이후에는 80%에 달했다. 평균적으로, 새로이 산업화가 이루어진 지역(일본 제외)의 도시인구 비율은 1800∼1914년 10배로 늘어나 2억1200만 명에 이르렀다. 도시 일자리의 절반가량을 공업 부문이 차지하는 가운데, 이러한 증가의 기저에는 농업 생산성의 꾸준한 향상이 깔려 있었다. 변화가 얼마나 과격하게 이루어졌는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19세기 후반의 아동 및 성인 노동자층의 심각한 생활·근로 여건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지만 이런 움직임은 20세기에 이룩한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으로 서서히 이어지는 변화의 일환이었다.
 세계 식민지 도시는 이와 또 다른 경험을 했다. 산업혁명은 서구의 영토 확장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국제 노동 분업을 구축했고, 원거리 무역도 늘어났다. 1848년 마르크스는 이러한 첫 번째 세계화를 묘사하면서 이렇게 기록했다. “옛 산업이 새로운 산업으로 대체되고 있다. (…) 새로운 산업은 머나먼 지역에서 온 원자재를 이용하며, 그 생산품은 해당 국가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소비된다. 자국의 생산품으로 충당되던 옛 수요를 대신해 머나먼 고장과 기후의 생산품으로 충족돼야 할 새로운 수요가 탄생하고 있다. 자급자족하던 과거의 마을 및 국가를 대신해 보편적인 관계, 한마디로 국가 간 보편적 상호의존성이 발달하고 있다.”(7)
 ‘중심-변방’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이러한 비대칭적 상호의존성은 식민지 혹은 의존적 지역의 경제와 공간을 새로운 형태로 변모시켰다. 이 지역들이 세계시장에 강제적으로 편입되면서 도시와 농촌 사이의 전통적 연결고리가 와해됐고 내부 경제순환망도 피해를 입었다. 대신 수출용 기초생산품(면화, 설탕, 아편, 곡물, 금속 등)의 생산이 발달했다. 강제적인 식민 중상주의 조약의 제약 때문에, 지역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도·중국 등지에서는 원초적 산업활동이 뒷걸음질쳤다. 그 결과, 1750년 이전까지 세계 제1의 섬유 생산국이던 인도에서는 탈산업화가 거세게 이루어졌다.
 이렇듯 도시화의 수준은 비교적 미약했다. 그러나 국제교역이 새로운 구조를 보이면서 해안도시는 인구가 급증했으며 세계시장에 판매될 기초생산품의 창고가 되었다. 19세기 중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제는 ‘탈대륙화’해 해안 지역으로 이전했고, 인도의 경우 뭄바이·캘커타·마드라스 등은 인구가 증가한 반면 내륙도시 인구는 감소했다.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던 북아프리카 해안도시의 모습이 변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지역은 20세기, 특히 1950년대 이후 급속한 도시화를 겪었지만 제대로 된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다. 다만 신흥 개발도상국의 대도시(서울, 타이베이, 싱가포르, 홍콩 그리고 오늘날 상하이와 베이징)는 예외였다. 그외의 지역을 보면 옛 식민 시절에 무질서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이는 식민지배의 구조적 산물인 동시에 세계시장의 위력으로 강화된 내부의 경제·사회적 불균형에 기인한 것이었다.

 글로벌 도시와 글로벌화된 도시

 농촌 지역의 빈곤으로 인구의 도시 유입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남아시아에서는 거대한 연담도시(聯擔都市·Conurbation)가 형성됐다. 이 도시들(라고스·다카르·멕시코시티·카라카스·콜카타·다카·자카르타·마닐라 등)의 인구와 공간은 끊임없이 늘어났고 대량 실업, 빈민촌, 열악한 인프라, 가공할 만한 환경문제 등을 겪게 되었다. 이 도시권에서는 막대한 부와 대규모 빈곤이 공존하면서 세계적 규모의 ‘지구 빈민촌’(8)이 탄생했다.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이 밝혔듯이 부국의 대도시는 선진 북반구에 저개발 남반구를 결합한 ‘이중적’ 도시이기도 하다. 강력한 사회계층 분화가 된 이 도시에는 하인으로 일하는 이들과 많은 소외계층이 집중돼 있는데, 이는 상당수가 옛 식민국가의 유물이다.(9) 그렇지만 부·문화·지식·기술이 한데 모인 ‘글로벌’ 도시의 사회적 불평등은 ‘제3세계’의 ‘글로벌화된’ 도시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다.
 도시화는 산업화 및 세계화의 긴장과 갈등을 집결해 드러낸다. 이를 두고 앙리 르페브르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산업화의 방향이자 귀결점인 도시사회는 스스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형태를 잡아나간다.”(10)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 된 도시화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교육, 문화, 보건, 건전한 환경 등 공공재를 생산할 능력을 과연 갖추고 있는지 자문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러한 생산능력이야말로 집단적 복지와 아울러 개인의 자유 확대를 보장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의 1차적 조건이니 말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산업국가에 대규모 중심지가 형성되면서 이에 대한 고찰이 넘쳐났다. 빅토리아 시대 개혁적 도시계획가들은 빈민촌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작고 더 ‘살 만한’ 군집 지역을 새로 건설함으로써 도시를 분산하도록 제안했다. 그리하면 많은 인구를 더욱 쉽게 관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오늘날 중국과 인도의 정부 및 지역 당국도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훗날 멈포드를 비롯한 이들은 현지 자원과 단거리 공급망 활용에 기반을 둔 지역과 하위 지역의 계획화를 통해 도시 혼잡을 완화하는 구상을 했는데, 환경적 균형을 이룩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오늘날에는 이를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러다가 1970∼80년대에 이르러 시민이 자신들의 생활공간을 직접 관장하는 ‘공동체(Community)형’ 도시 개발의 구상이 꽃을 피웠다.(11) 하지만 오늘날에도 시민의 도시 점유와 도시공간 생산 조건에 관한 문제는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이는 21세기에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각주>
(1) <세계 도시화 전망, 2007년 개정 인구 데이터베이스>, 유엔인구국(UNPD) 경제사회부. http://esa.un.or/unpd.
(2) Lewis Mumford, <역사 속 도시: 기원, 변형 및 전망>(The City in History: Its Origins, Its Transformation, and Its Prospects), Harcourt Brace, International, New York, [1961] 1986.
(3) Mumford, 앞의 책.
(4) Paul Bairoch, <예리고에서 멕시코까지: 역사 속 도시와 경제>(De Jéricho é Mexico : villes et économie dans l’histoire), Gallimard, Paris, 1985.
(5) Tertius Chandler, <도시 성장 4천 년>(Four Thousands Years of Urban Growth), Edwin Mellen, Lewiston, 1987.
(6) Edward W. Soja, <포스트메트로폴리스: 도시와 지역에 관한 중대 연구>(Postmetropolis: Critical Studies of Cities and Regions), Blackwell, Oxford, 2000.
(7) Karl Marx & Friedrich Engels, <공산당 선언>, Flammarion, Paris, 1999.
(8) Mike Davis, <지구 빈민촌>(Planète bidonville), Ab Irato, Paris, 2005.
(9) Manuel Castells, <정보도시: 정보, 기술, 경제 재구조화 및 도시-지역 프로세스>(The Informational City: Information, Technology, Economic Restructuring and the Urban-Regional Process), Blackwell, Cambridge, 1989, <이중적 도시: 뉴욕의 재구조화>(Dual City: Restructuring New York), Russel Sage Foundation, New York, 1991.
(10) Rémi Hess, <앙리 르페브르와 세기의 모험>(Henri Lefebvre et l‘aventure du siècle), Métaillé, Paris, 1988, p.276 인용.
(11) Peter Hall, <내일의 도시>(Cities of Tomorrow), Blackwell, Oxford, 1996.

글•필리프 S. 골뤼브 Philips S. Golub
저서 <권력, 이익, 영예: 제국 팽창의 역사>(Power, Profit and Prestige: a History of Imperial Expansion), Pluto Press, London, 5월 출간 예정.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텔레비전의 종말>(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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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보지 못했던 르디에 실려있는 기사를 스크랩한다. 도시화와 재개발과 관련된 참고할 수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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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디플로마티크 19호(2010.4)  분리와 배제, 지구화된 도시의 삽질  

[Spécial] 세계의 거대 도시화  

2007년 무렵, 인류의 반 이상이 도시에 살게 되는 조용한 대변혁이 일어났다. 6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도시에서부터 수천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현대의 거대 도시까지, 도시화 과정은 연속이 아니라 간헐적이었다. 그러나 도시화 과정은 항상 일자리 배분, 계급 형성, 권력과 지식의 집중과 연관돼 있었다. 현대의 도시문명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생겨난다. 도시문명은 산업혁명의 이중적 측면을 물려받고 있다. 도시에서는 사회적 격리에 의해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 주변부로 밀려난다. 빈민촌의 수평적 확장이 미래 기술도시의 수직적 발전과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의 집적지라 할 대도시는 자본, 상품, 돈 많은 주민들의 유출을 막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결국 부동산 거품과 대중의 분노를 키우게 되는 것이다.

 ‘창조적 파괴’라는 명목으로 도시 재개발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뭄바이에서 런던·뉴욕·파리를 거쳐 베이징까지 투자자, 부동산 개발업자, 기업체 사장, 고급 간부와 부유한 여행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호화 주택, 기업 본사, 매혹적인 문화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좋은 구역에 자리잡은 서민 구역이 재정비되고, 예전 거주자들은 저급 주택이 모여 있는 외곽으로 쫓겨났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전세계 빈민촌이 저마다 건설 공사장으로 변해 서로 충돌하고 있는데, 우리는 명백한 계층 대립의 형태로밖에 해석될 수 없는 잔인한 불균형을 목격하고 있다”(1)고 지적한다.
 이같은 도시 재개발은 공간의 정복(혹은 재정복)을 놓고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오랫동안 전개돼온 투쟁의 연장선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런 시각은 특히 3차 서비스 산업국가로 진입한 국가에서 진행되는 사회그룹의 재구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정치적 효과를 도외시하는 측면이 있다.

 빈민촌서 격돌하는 힘의 비대칭성

 서비스 산업이라 불리는 분야는 신중산계층의 확장과 더불어 성장했다. 이는 20세기 후반부, 전세계적 차원 혹은 적어도 국가적 차원에서 대도시의 일부로 조성된 도시공간 내부에 재정적·사법적·문화적 기능이 집중된 것과 연관이 있다. 우리는 이런 변화의 두 가지 주요 특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편으로 교육중심지(고등교육기관과 졸업증서 수여기관)에 잘 갖춰진 지적 노동력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무엇보다 지적 노동의 열매를 따먹으려 애쓰는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부르주아의 운명과 동일시했다는 점이다. 또 한편으로 전통적 산업조직의 쇠퇴, 노동운동의 약화와 해체로 사회의 근본적 변화 계획과 이 계획의 기반이 되는 공동체 해방의 이상(理想)이 붕괴됐다는 점이다.  

 하비의 표현을 빌리면 ‘대립’(Confrontation)을 말하는 사람들이 꼭 ‘대결’(Affrontement)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도시공간에서 계층 분열이 일어나는 방식은 차라리 분리주의 방식에 의거하고 있다고 하겠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정면 충돌은 드물어졌다. 도시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전투원이 없어서 멈춘 것이 아니라, 항상 공격적 부르주아에 대해 프롤레타리아가 대결할 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는 “노동계를 약화하는 행동을 전개할 뿐만 아니라, 운명 공동체, 귀속감을 위한 다양한 전략 등 모든 계층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2) 반면에 프롤레타리아는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그들에게 가르쳐준, 기존 질서를 전복해야 하는 혁명 주체의 ‘역사적 역할’과 공동체적 존재에 대한 인식을 상실해버렸다.  

 서민층의 영토를 빼앗기 위한 지배계급의 술책은 당연히 서민층의 저항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켰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청소년 범죄나 체제전복 반대투쟁이란 명목으로 도시 재정비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칠레의 캄파멘토스, 시우다데스 카얌파스 같은 빈민가 거주민, 다른 호화 지역의 거주민, 경찰 혹은 군대 사이의 대결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마그레브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빈민촌 ‘퇴거’ 군사작전이 전개됐다. 시장세계화 시대에 대형 도시의 건물과 인프라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토지를 마련하기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옛날 거주자들을 강제 퇴거하고 그들의 집을 철거했다. 독일에서는 재통일 뒤 자금을 투자한 신부르주아가 재정비를 명분으로 베를린의 예전 낙후 지역에 대형 방화차를 동원해 불을 질렀다. 1960년대 미국 게토 지역의 흑인 폭동과, 1980년 초 마거릿 대처 정부가 ‘정비’한다고 약속한 영국 교외의 빈민 지역에서 아프리카와 카리브 연안 출신 젊은 이민자들이 일으킨 폭동도 있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에서 1970년대 발생한 시위, 점령, 수많은 무단 거주, 임대료 자진 삭감운동, 거주민 연합과 구역 위원회의 활성화 같은 여러 사건은 비평사회학이 ‘도시투쟁’으로 명명한 새로운 유형의 사회운동 출현을 믿게 만들었다. 이런 사건은 모두가 ‘도시에 살 권리’를 요구하는 신호로 여겨졌다. 그러나 반자본주의 투쟁의 새로운 전선을 개척했다고 믿던 극좌파 이론가들과 사회운동가들은 곧바로 환상을 버려야 했다.  

 계급투쟁에서 거주지 투쟁으로 영역을 확장한 노동자와 서민의 결합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성공하지 못했다. 공장에서의 노동자 착취 반대투쟁과 부동산 업자와 토지 소유자, 이들의 정치지원 세력에 대한 시민의 반대투쟁을 결합하는 시도가 칠레, 아르헨티나 혹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몇몇 도시(투렌, 볼로냐, 바르셀로나)에서 있었지만, 그 저항은 억압의 바람에 순식간에 꺼져버리는 기약 없는 촛불과 같았다. 게다가 결합투쟁은 회유로 무력화되었다. 권좌에 앉은 권력과의 협상은 폭동을 일으킨 주민들의 투쟁성과 급진성을 감퇴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한때 ‘반체제 인사’ 출신의 다니엘 콘벤디트(Daniel Chon-Bendit)가 1989년 프랑크푸르트-쉬르멩에서 다문화 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민주당(SPD) 소속 부시장으로 등극한 사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투쟁 지도자들이 기득권 세력에 영입됐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운동 대체 못한 도시투쟁  

 반자본주의 투쟁에서 다른 사회계층을 프롤레타리아 계층에 합류시킬 것으로 본 ‘도시투쟁’은, 훨씬 더 이론적으로 무장한 대학 출신의 ‘반체제’ 투사들(교사, 연구자, 건축가, 사회운동가…)이 이끌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는 ‘삶의 환경’을 얻기 위한 투쟁이, 단순히 무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노동계’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사실상 사회적 자유주의의 선구자인 프랑수아 뒤베, 디디에 라페이로니 등과 같은 ‘제2의 좌파 대학 지식인’의 지휘 아래 프랑스에서 전개된 도시투쟁은 고갈된 노동운동을 대신해줄 ‘새로운 사회운동’ 중 하나였다. 이 운동은 이제는 넘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자본주의와 결별하지 않고도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됐다. ‘도시를 바꾸는 것’은 사회를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에 더 ‘도시적’인 얼굴을 부여함으로써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자본주의식 도시화를 극렬하게 비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전력투구했다. 사회학자, 도시 지리학자, 건축가, 도시계획가, 도시 정비기술자와 지역 의원들은 ‘후기’ 자본주의의 필요조건에 도시공간을 조화롭게 맞추기 위해 지금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들은 마르크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3)가 이론화한 몇몇 주제에서 모든 혁명적 함의를 제거하고 나서, 그것들을 주저 없이 채택했다.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고, 한 구역의 역사성, 진정성과 개성을 보존·복원하기 위해 틀의 표준화를 거부하고, 특히 자발적 사회성을 상징하는 공공 공간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이런 주제에 해당한다.  

 이것은 ‘불도저식 재개발’ 시대처럼 도시의 과거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는 ‘호화’ 건물, 주택 혹은 사무실에 사용될 ‘토지’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방치된 ‘비위생적’ 지역을 완전히 헐어버렸다. 또한 수세기 전부터 물려받은 구불구불하고 혼잡한 도로를 ‘자동차에 적합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우회 도로’와 ‘방사선 도로’로 교체했다. 이제는 도저히 재생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그것을 파괴하지 않고 ‘재개발’, ‘쇄신’, ‘재활성화’, ‘재생’한다. “‘재(re)’라는 접두어로 시작되는 이런 용어들은 우선적으로 도시에 긍정적 이미지를 부과하지만 내재하는 사회문제를 완전히 은폐하는 용어다. 하나의 구역이 재개발될 때, 그것은 당연히 상당수 거주민이 거기에서 쫓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구역은 당연히 ‘더 나아지겠지만’ 똑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4)라고 벨기에 지리학자 마티우 반 크리킹겐은 지적한다. 프랑스 좌파연합 정부의 ‘도시정책’ 안에서 실시된 또 다른 유사 개념인 ‘도시 정비’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거대도시의 중심지역 인구 수를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메트로폴리스들’처럼 조정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기존 인구를 재정비한다는 의미다.  

 예전 노동자 구역에 봉급생활자의 중간층이나 상위층, ‘정보통신’ 사회의 발전에 따른 자유전문직 계층에 속하는 사회그룹이 유입되면 원주민은 그것을 침입으로 느꼈다. 대다수 원주민은 토지와 부동산 투기를 연상했고, 이런 투기 때문에 원주민이 쫓겨나고, 사회적 정체성에 걸맞은 주거 정체성을 만들어내려는 유복하고 교양 있는 시민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했다. ‘귀족계급화’는 만들어진 공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공간, 특히 대중 기반이 끊임없이 축소되는 좌파의 본질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유럽 차원의 현상이다. 즉, 곳곳에서 우리가 사회민주주의의 ‘귀족계급화’를 목격하는 것이다”(5)라고 지리학자 크리스토프 기이이는 지적한다. 사람들은 좌파 성향의 시와 읍이 도시계획을 세울 때, 주택과 문화 소비의 새로운 사회기반 시설을 열정적으로 건설하려 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파리의 바람직한 미래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정비계획을 설명한 호화 소책자에서 도시계획 건축 담당 수석보좌관인 안 이달고는 대도시 지역 의원에게 부과된 문제를 요약했다. 즉 ‘세계적 차원의 도시’ 중에서 자기 도시의 서열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문제, 다시 말해 “세계의 수많은 중심도시와 경쟁하는 프랑스 수도의 지위 문제”(6)를 지적했다. ‘대도시 중심부와 그 주변 지역을 연결해야 하고’, ‘광역 지역 내에서 그 주변 지역의 지위를 새롭게 조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멋진 서정적 담화가 일으키는 환상에 속아서는 안 된다. 가상의 ‘대(大)파리’ 계획에 들어 있는 자동화된 순환 RER(지역 간 고속전철)는 앙베르의 구시가를 에워싸는 렌 구역 주민이 이동수단에 접근하는 것을 오히려 봉쇄한다. 그 목적은 수도의 교통순환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지점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파리를 유럽의 경쟁도시에 비해 손색이 없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광역도시 지역의 중심부와 주변부를 연결해 ‘공동의 운명’에 처하게 한다는 ‘공유 프로젝트’는 전 지구의 사회생활을 지배하는 중요 원칙인 ‘거칠 것 없는 자유경쟁’을 공간 속에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각주>
(1) 데이비드 하비, ‘도시에 대한 권리’, <뉴 레프트 리뷰>, 53호, 런던, 2008년 9~10월.
(2) 폴 부파르티그, <사회계층의 부활: 불평등, 지배, 분쟁>, 라디스퓌트, 파리, 2004.
(3) 앙리 르페브르, <도시에 살 권리>, 앙트로포스, 파리, 1968.
(4) 마티우 반 크리킹겐, <라 트리뷴 드 브뤼셀>, 2007년 12월 6일자.
(5) 크리스토프 기이이, <선거 공략을 위한 새로운 사회 지리학>, 프랑스 정치생활 연구센터(Cevifop), 파리, 2002.
(6) 안 이달고, ‘파리는 전세계의 급속한 변화에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21세기 파리>, 파리도시계획 연구회-르 파사주, 파리, 2008.

글•장피에르 가르니에 Jean-Pierre Garnier
<현대의 극렬한 폭력: 도시, 지적 소시민, 서민계층의 소멸에 대한 소론>(아곤· 마르세유·2010)의 저자. 이 기사는 이 책의 서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파리8대학 언어학 박사. 역서로 <카인>, <성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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