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이 말하는 것들 - 죽고 사라진 것들의 흔적에 관하여
이수빈 지음 / 에이도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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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화석(化石)은 죽은 생명체들의 무덤이다. 어두컴컴한 돌 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화석이, 오랜만에 눈부신 세상의 빛을 쬐면 화석(花石)로 피어난다. 무덤 속에 누워 있던 생명체들이 망치 소리에 깬다돌무덤이 깨지는 순간 생명체들이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한다.


고생물학자는 양손에 망치와 정을 쥐면서 돌무덤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 진짜로 찾고 싶은 것은 돌무덤에 깊이 새겨진 고생물들의 삶이다. 고생물학자는 화석과 함께 잠든 고생물들의 이야기를 발굴한다. 돌무덤을 찾는 것보다 돌무덤 속 생물들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기가 더 어렵다. 엄청 두꺼운 시간의 지층에 눌린 생물들의 이야기는 납작하다. 너무 납작해지면 생물의 일부 모습이 사라져 버린다. 눈에 보이는 흔적이 없으면 생물의 생김새를 완벽하게 되살리기가 쉽지 않다. 결국 돌이 되지 못한 생물의 이야기는 수수께끼로 남는다.


하지만 돌이 되지 못한 이야기라고 해서, 무조건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돌무덤에 있는 생물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돌무덤 껍질을 쪼아댄다. 고생물학자들은 생물들의 이야기가 사라지기 전에 망치로 돌무덤을 깨뜨린다. 가까스로 꺼낸 이야기가 온전히 남아 있지 않더라도 고생물학자들은 생물들을 대신해서 말해주어야 한다생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무엇을 먹으면서 살았는지 유추해야 한다.


2010년대에 발견된 화석들은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화석을 다룬 책들에 소개된 내용은 대부분 2000년대 이전에 발견된 화석들에 관한 이야기다. 화석이 말하는 것들: 죽고 사라진 것들의 흔적에 관하여은 화석을 주제로 한 과학 도서 중에서 아주 젊은 청소년 책’이. 저자는 최근에 알려진 화석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새로 수정된 고생물학 지식도 소개한다


삼엽충이 다리로 숨을 쉰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삼엽충 화석을 연구한 고생물학자들은 삼엽충 다리에 아령처럼 생긴 호흡기관을 발견했다. 그들은 삼엽충 다리에 아가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비랍토르는 한동안 다른 공룡의 알을 훔치면서 살아온 공룡으로 알려졌다. 처음 발견된 오비랍토르 화석이 공룡알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생물학자들은 화석이 된 오비랍토르가 다른 공룡의 알을 훔쳤을 거라고 주장했다. 제대로 말하지 못한 오비랍토르에게 알 도둑’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좋지 않은 별명 때문에 공룡이 나오는 영화나 만화에서 오비랍토르는 악당처럼 묘사되었다. 새롭게 밝혀진 연구 결과가 오비랍토르에게 씌워진 억울한 누명을 벗긴다. 공룡알은 오비랍토르가 낳은 것이다. 고생물학자들은 오비랍토르의 말을 잘못 해석했다. 오비랍토르는 돌무덤에서 살아나왔지만, 오랫동안 굳어져서 깨기 힘든 편견 속에 여전히 갇혀 있다. 저자는 돌이 된 지식의 편견을 깨뜨린다.


화석이 말하는 것들은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살았던 생물들을 위한 추모사. 고생물들이 말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추모사에 적혀 있다. 이 책은 수많은 화석을 기억하기 위한 비석이다. 그렇지만 종이로 만든 비석에 잘못 새긴 내용이 있다. 비석에 글자 하나라도 잘못 새기면 다시 만들어야 한다.



* 43

 

 호박이란 나무의 수액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광물입니다. 이 호박에 간혹 생물이 안에 담긴 채로 발견되기도 합니다. 영화 <쥬라기공원>에 나온 것처럼 모기나 여러 곤충이 보존된 채 발견되기도 하고, 도마뱀, 새의 날개, 심지어 공룡의 꼬리가 보존된 사례도 있습니다.

 


* 206

 

 보석의 한 종류이기도 한 호박은 영화 <쥬라기공원>을 통해서 익숙한 분들이 많을 겁니다. 영화를 보면 호박에 들어 있는 모기에서 공룡의 혈액을 추출해서 공룡을 복원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 호박에 들어 있는 모기에서 공룡의 혈액을 추출해서 공룡을 복원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 208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과거 공룡의 피를 빨았던 모기가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수액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광물인 호박 속에서 갇혀 현대까지 보존된 채로 있다 발굴됩니다.



이 책에 영화 <쥬라기공원>에 나온 호박(나무에 나온 송진이 굳어서 생긴 광물) 속의 모기가 세 번 언급된다







하지만 파리를 연구하는 곤충학자 에리카 맥앨리스터(Erica McAlister)는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영화에 묘사된 곤충은 모기가 아니라 크레인파리성체다. (참고문헌: 에리카 맥앨리스터, 이동훈 옮김, 위대한 파리, 마리앤미, 2023)




* 170





 희토류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부연하자면 희토류는 땅을 이루는 원소 중에서 성분의 비중이 매우 적은 금속 원소 17가지를 말합니다. 희토류 원소는 무게에 따라 가벼운 희토류 원소, 중간 희토류 원소, 무거운 희토류 원소로 나뉩니다. [중략] 브라킬로포사우루스의 다리뼈에서 발견된 희토류 성분은 , 스트론튬, 바륨, 스칸디움, 이트륨 등이었습니다.


(Fe)은 희토류 원소가 아니다.







<cyrus의 주석>




* 137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세균과 바이러스는 전혀 다릅니다. 세균은 스스로 증식할 수 있는 생물이지만, 바이러스는 다른 생물에 기생하지 않으면 번식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주1]


[1] 리케차(Rickettsia)숙주에 기생하는 세균이다. 이 세균은 발진티푸스를 일으킨다.





* 221

 

 황철석 질병이 처음 관측된 것은 1878년 벨기에의 베르니사르(Bernissart) 지역의 광산에서 발견된 화석이었습니다. 이 광산에서는 대규모의 이구아노돈과 만텔리사우루스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요, 이 발견으로 이구아노돈의 생김새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된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주2]


[2] 저자가 이구아노돈의 생김새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았다. 1878년 이구아노돈 화석을 발굴한 영국의 고생물학자 기드온 맨텔(Gideon Mantell)이구아노돈의 엄지발가락 발톱을 뿔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복원된 이구아노돈의 생김새는 코에 뿔이 달려 있고, 네 발로 다닌 거대한 도마뱀과 비슷하다. 후속 연구를 거쳐 현재 수정된 이구아노돈은 사족보행뿐만 아니라 두 다리로 서서 다닐 수 있으며 엄지발가락에 발톱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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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찾아서
토니 라이스 지음, 함현주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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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자연 도감은 살아 있다. 그림이 된 자연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세밀하게 그려진 자연은 생생하다. 자연의 맥박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자연의 얼굴은 형형색색의 빛을 드러내고, 자연의 입은 온갖 소리를 낸다자연 도감은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자연 도감을 만드는 데 있어 관찰하는 일은 그림과 내용의 정확성을 담보하는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관찰은 기다림과 인내심을 요한다. 과거에 도감을 만들려는 화가와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안목을 믿고 자연 본래의 형태를 최대한 잘 살려서 그리려고 했다사진이 등장하고, 측정 장비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자연 도감의 정확성은 한층 높아졌다. 지금은 카메라가 화가의 눈과 손을 대신해 주고 있다.


자연을 찾아서는 예술작품이 된 자연 도감들과 이 작품들을 탄생시킨 탐험을 소개한 책이다런던 자연사박물관에 수많은 동식물 표본이 소장되어 있다. 그곳에는 또 자연사 연구에 참고할 수 있는 각종 문헌이 보관된 도서관도 있다이곳에서 큐레이터로 일한 저자는 런던 자연사박물관 도서관에 있는 열 권의 자연 도감을 공개한다지금은 박물학자로 알려진 과학자와 탐험가들은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눈길을 주었다. 그들은 직접 자연의 실체를 확인하며 동식물을 관찰하고 조사해 왔다. 사진기기 없던 시절에 결성된 탐사대에 무조건 화가가 있었다. 화가는 과학자들이 보고 들은 자연을 그림으로 묘사했다. 자연에 호기심이 많은 화가는 본인이 직접 동식물을 관찰해서 그리기도 했다.


가까이서 자연을 조사했기에 화가들이 만든 자연 도감은 과학적 정확성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과학자들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여성이 마음대로 여행할 수 없었던 시절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Maria Sibylla Merian) 딸과 함께 수리남에 가서 2년을 체류했다. 메리안은 나비를 비롯한 곤충들과 생태계를 그렸다. 그녀가 만든 자연 도감에 나비의 변태 과정을 묘사한 그림이 있다. 박물학자들은 메리안의 자연 도감을 참고하면서 곤충학 지식에서 미흡한 부분을 보완했다.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비글호를 타지 않았다면 진화론을 정립한 사람은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5년 동안 비글호를 타고 세계 곳곳을 여행한 다윈은 화석과 표본들을 모으고, 보고 느낀 것을 공책에 적었다. 공책 속에 진화론으로 알려지게 될 생각의 씨앗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다윈은 갈라파고스제도를 탐험하면서 화석을 발굴하고, 동식물을 채집했다. 이때 그가 채집한 동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핀치(finch)라는 새다. 다윈은 여러 개의 섬에 서식하는 13종의 핀치를 관찰하면서 핀치들의 부리 생김새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크고 딱딱한 씨앗이 많은 섬에서 자란 핀치의 부리는 뭉툭하면서도 두껍다. 곤충을 주로 먹는 핀치의 부리는 뾰족하다. 13종의 핀치는 먹이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달랐다. 처음에 다윈은 13종의 핀치를 핀치류로 보지 않았다서로 다른 핀치의 부리를 흥미롭게 살펴본 사람은 핀치들의 부리를 그림으로 묘사한 존 굴드(John Gould)라는 조류학자였다. ‘다윈의 핀치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그림은 존 굴드가 그렸다다윈은 굴드의 핀치 그림 덕분에 자신이 관찰한 13종의 새들 모두 핀치류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다윈은 하나의 종이었던 핀치가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여러 종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인식했다. 굴드의 핀치 그림은 희미한 씨앗으로 된 진화론을 싹 틔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진화론을 독자적으로 발견한 앨프레드 월리스는 다윈의 명성에 가려진 바람에 탐험과 연구 업적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월리스는 말레이제도를 누비면서 생태계를 연구했고, 그곳에서 진화론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들을 수집했다. 월리스는 다윈 못지않게 동식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에 매진했는데, 화려한 깃털을 가진 극락조에 매료되었다. 월리스가 마지막으로 쓴 저서 뉴기니섬의 조류에 여러 종류의 극락조를 묘사한 삽화가 실려 있는데, 존 굴드가 그린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 소개된 박물학자와 화가들을 영웅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칭송한다. 그런데 이 책에 또 한 명의 영웅이 소개되지 않은 사실이 의아하다. 다윈은 이 사람이 없었다면 종의 기원을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윈이 존경했던 사람은 독일의 박물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그는 남아메리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여행했고, 자연은 관찰을 통해 경험되어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살아온 박물학자다. 훔볼트는 산에 자라는 식물 분포도를 조사하여 기후가 변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의 이름을 딴 동물과 지명이 있을 정도로 훔볼트는 자연을 열심히 찾으러 다닌 박물학자다이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책 제목의 부제[주1]가 훔볼트를 잊혀진 영웅이라고 말해준다.





[1] 안드레아 울프, 양병찬 옮김, 자연의 발명: 잊혀진 영웅 알렉산더 폰 훔볼트 (생각의 힘, 2021)






<cyrus의 주석>




* 7~8

 




자연을 찾아서는 과거 300년 동안 이루어진 가장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자연과학적 자연을 찾아서 [2] 탄생한 예술작품과 함께 이러한 탐험을 실증하는 자료들을 집중 조명한다.

 

 

[2]을 지워야 한다.






* 10

 




 내가 처음 자연사의 세계로 자연을 찾아서[3] 떠난 건 60여 년 전, 디플로도쿠스를 만나보겠다고 고지를 오르던 날이었다.

 

 

[3]을 지워야 한다.






* 178





온혈 포유동물 정온(定溫)포유동물 [주4]




[주4] 포유류는 계절과 상관없이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고 유지할 수 있다. 체온 조절이 가능한 동물을 과거에는 온혈동물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정온동물또는 항온(恒溫)동물이라고 부른다.






* 나가며, 379


 



 이 책에 소개된 여행들은 일반 과학사, 특히 자연사에 있어 중요하고도 매혹적인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 시작은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합리적이고 치우침 없는조사를 하려는 움직임이 속도를 내던 중세 이후, 17세기 후반이다. 영국 왕립학회(1660), 프랑스 과학아카데미(1966)[5] 같은 단체가 설립되면서 과학자들, 그중에서도 이전까지는 개별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던 박물학자들이 점점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5] 연도 오자. 프랑스 과학아카데미(Académie des sciences)1666에 설립되었다.






* 주요 인물 전기, 388

 






찰스 다윈, 1773~1858 찰스 다윈, 1809~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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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No. 2



2024년 2월 24일 토요일

일글책


참석자: 너진(일글책 책방지기), 고요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를 만들고 나면서부터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책가방 안에 <두루미> 선정 도서를 챙겨 넣고 다니는 일이다. 다 읽은 책이지만, 생각날 때마다 다시 펼쳐본다. 하지만 책을 들고 다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주말에 책방에 가서 내가 만든 독서 모임 선정 도서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사실 홍보라기보다는 책 소개에 가깝다. 독서 모임 참석 인원 한 명 더 늘리려고 책을 소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내가 직접 구매하고 읽은 책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평소대로 책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책에 관해 얘기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책방지기와 그곳에 자주 오는 분들에게 <두루미> 두 번째 선정 도서를 소개했는데, 그분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 두 번째 선정 도서]

() 미리엄 엘리아, 에즈라 엘리아 (그림) 미리엄 엘리아, 신해경 옮김

미술관에 갑니다(열화당, 2021)

 


이거 진짜 미술책 맞아요?”

 

애들이 보는 그림책 같아요.”

 

이런 특이한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두루미두 번째 선정 도서 미술관에 갑니다 어린이용 그림책을 패러디한 미술책이다. 판형이 작고, 분량이 얇아서 금방 다 읽을 수 있다이 책에 엄마와 두 자녀가 나온다. 엄마는 현대미술을 좋아한다. 엄마는 예술을 보여주기 위해 미술관에 데리고 간다. 하지만 자녀는 엄마가 소개하는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를 잘못 만난(?) 어린 친구들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볼 때마다 충격에 빠지고, 공포를 느낀다. 


현대미술은 정말 어렵다. 미술관에 갑니다에 나온 자녀는 현대미술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혼란스러워하는 대중들의 모습을 상징한다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룬 책이라서 그런지 책을 이해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우스갯소리로 미술관에 갑니다3분 만에 다 읽을 수 있지만, 그 책을 이해하려면 평생을 바쳐야 할지도 모른다. 미술관에 갑니다는 다 읽은 책인데도 다 읽은 것 같지 않은 책이다.


미술관에 갑니다는 독자가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도록 부추기는 책이다. 이 책은 여백이 너무 많다. 그 여백은 독자가 알아서 채워 넣어야 한다. 엄마와 두 자녀의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석하거나 난해한 작품들로 가득한 미술관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미술관에 갑니다를 여러 번 훑어볼 때마다 <두루미> 모임 시간에 꺼낼 질문들을 만들었다. 질문 만드는 일이 상당히 어려웠다. 내가 만든 질문 몇 개는 바로바로 대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질문 1] 

이해 안 되는 예술작품을 보면 어떤 반응을 해요? 현대미술을 잘 모르는 아이와 타인에게 이해 안 되는 예술작품을 어떻게 설명하실 거예요?



[질문 2]

누드가 있는 그림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하실 거예요? 끝나지 않은 미술사 대논쟁 중 하나가 누드에 대한 반응입니다. 현재 걸작으로 알려진 누드 그림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외설 논란에 휩싸였고, 대중들의 혹평을 받았어요. 반면 예술가들은 누드를 검열하는 태도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예술적인 누드와 외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질문 3]

미술관에 가서 예술작품을 봤을 때 속은 기분이 든 적이 있나요?



[질문 4]

현대미술이 어렵고 난해한데도 미술관에 가는 본인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미술관에 가서 재미있다고 느낀 적이 있었어요?



[질문 5]

철학자들은 현대미술을 철학으로 접근해서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합니다. 철학으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장단점을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두루미> 첫 번째 모임에 이어서 두 번째 모임도 참석한 분이 계셨는데, 별칭은 고요. 고요 님은 한때 학생들에게 그림책을 읽는 것을 가르치는 일을 했고, 자녀와 함께 미술관에 가본 경험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미술관에 갑니다가 마치 하브루타 학습 방식이 적용된 그림책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고요 님은 내가 준비한 질문들을 꺼내기도 전에 질문과 관련된 견해를 밝혔다.


미술관에 갑니다의 엄마는 자녀들이 작품에 대해서 질문하면 답변하고, 가끔 자녀들이 이해하기 힘든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한다. 하지만 고요 님은 자녀와 미술관에 가면 자녀들에게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을 묻지 않는다고 했다. 정확하지 않겠지만, 고요 님이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은 이렇다. 그분은 작품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작품을 보고 감정을 느끼는 것을 선호한다. 나와 정반대다. 고요 님은 미술관에 갑니다의 글(부모와 자녀의 대화)보다는 그림을 유심히 봤다고 했는데, 나는 반대로 글을 반복해서 읽었다.

















* 정서연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난해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21세기북스, 2023)

 

* [품절] 김찬용 김찬용의 아트 네비게이션: 대한민국 1호 도슨트가 안내하는 짜릿한 미술사 여행(arte, 2021)

 



고요 님은 미술관에 갑니다와 함께 읽은 책 한 권을 추천했다. 책 제목이 현대미술을 접한 사람들의 감정 상태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맞아, 진짜로 모르겠다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의 목차만 봐서는 대략 어떤 책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미술이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현대미술과 관련된 미술 사조와 용어를 설명한 책인데 이와 비슷한 책을 추천하자면 김찬용의 아트 네비게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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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2-2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 미술은 너무 작가의
주관이 강렬하게 반영되어서
그런진 몰라도 그닥 감흥이
없더라는...

cyrus 2024-03-01 09:56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에 ‘저게 뭐지?’라고 반응하다가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은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저의 주관적인 해석에 가깝지만,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틀리더라도 크게 신경 안 써요. ^^
 




전망 좋은 []

 

EP. 24



2023년 2월 24일 토요일

하나의 시선






밤이 되면 책은 살쪄요. 열두 시가 넘으면 책의 무게가 늘어나기 시작해요. 밤에 살찐 책을 읽으면 내 눈꺼풀이 무거워져요. 이런, 책에서 자장가가 나오네요. 그럴 땐 사탕과 초콜릿을 항상 즐겨 듣던 노래처럼 꺼내 먹어요.[주] 조용히 있던 입과 혀가 바빠져요. 새벽이면 주전부리가 심해요. 새벽만 되면 지치는 눈을 흔들어 깨우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예전부터 고민해 왔어요. 그렇다면 이번에 향수로 코를 잡아서 흔들어 볼까?


대구 앞산에서 멀지 않은 동네에 <하나의 시선>이라는 책방이 있어요. 이곳에서 평일과 주말에 책 향수를 만드는 수업이 진행됩니다. 저는 어제 1130분에 시작되는 주말 수업을 신청했어요.


<하나의 시선>은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과 주말 ‘11에 문을 엽니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책방에 도착했는데, 책방 내부는 조용했습니다. 어제 오전 수업과 오후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오전 수업을 신청한 사람이 저 혼자였거든요.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책 향수 수업을 일등으로 신청했고, 책방지기 하나가 만든 책방에서 하는 일일(One day)’ 수업, 아로마 테라피스트 선생님과 일 대 일로 했어요제 수업을 선생님의 반려견이 간식을 먹으면서 지켜봤어요<하나의 시선>반려동물이 들어올 수 있는 책방입니다.







책 향수를 만들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향을 알아야 해요. 스무 가지 에센션오일을 하나씩 맡아 봅니다. 저는 오렌지 향, 레몬 향, 삭힌 홍어에 나는 암모니아 향을 좋아해요향을 한 번 맡으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다른 향을 맡아야 합니다. 아주 잠깐 코를 쉬게 해주는 거죠. 너무 빨리 향을 맡으면 에센션오일 고유의 향을 느낄 수 없어요. 스무 가지 에센션오일의 향을 다 맡으면, 코를 잠시 쉰 다음에 2차로 향을 다시 맡습니다. 처음 향을 맡았을 때 느낌과 다시 맡은 향의 느낌이 다를 수 있대요.


제가 고른 에센션오일은 레몬그라스, 페퍼민트, 유칼립투스, 시더우드(cedarwood), 프랑킨센스(Frankincense)입니다. 다섯 가지 에센션오일이 향수의 재료가 되는데, 이들을 조합하면 만족스러운 향이 나오는지 코로 확인해야 합니다. 두 가지 향을 동시에 맡아봅니다. 조합해 보니 페퍼민트 향이 강하게 느껴졌어요. 페퍼민트 향을 덜어내기 위해 향수를 만들 때 페퍼민트 오일을 단 두 방울만 넣었어요완성된 향수는 일주일 지난 후에 사용할 수 있어요. 일주일 동안 알코올이 증발하면서 향이 더 좋아집니다.


집에서 향수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서 선생님에게 질문을 많이 했어요. 선생님이 명함을 주셨는데 선생님 이름이 책방지기 이름과 비슷한 하나였어요. 세상이 이런 .







선생님이 향을 신중하게 맡고 있는 저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사진을 보는 순간 내가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에 몰입하면 엄지손가락을 살짝 지켜 드는 버릇이 있어요. 이때 손의 모습이 엄지척하는 형태와 비슷한데, 어제 수업은 엄지척을 할 정도로 만족스러웠어요.















* [구판 절판] () 미셸 투르니에, (사진) 에두아르 부바, 김화영 옮김

뒷모습(현대문학, 2002)

 

* [개정판]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 세 번째 선정 도서] 

뒷모습(현대문학, 2020)




에두아르 부바(Edouard Boubat)라는 프랑스의 사진작가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사람들의 뒷모습을 주목했어요. 산책하는 사람, 연인, 무희 등 여러 사람의 뒷모습만 사진에 담았어요.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는 뒷모습을 찍은 부바의 사진에 자신의 글을 곁들였어요. 두 사람의 글과 사진이 만나서 태어난 책이 뒷모습입니다투르니에는 뒷모습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어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뒤쪽이 진실이다.’







<두루미> 세 번째 모임 선정 도서는 뒷모습입니다. 독서 모임 도서는 제가 예전에 읽었던 것입니다. 뒷모습2002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12년에 제가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썼어요. 그때 쓴 뒷모습서평이 이달의 당선작이었네요. 12년이 지나서 오랜만에 뒷모습을 봤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구판이에요. 구판 표지는 상반신만 탈의한 여성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었어요. 지금 나온 뒷모습앞표지는 구판과 달라요. 표지만 다를 뿐 내용은 같습니다.






 

책 속 사진과 내용은 같아도, 20대 때 읽었을 때 느낌과 30대인 지금 읽었을 때의 느낌은 달랐어요. 책에 눈으로만 맡을 수 있는 향기가 나요. 처음 책을 보면서 느낀 향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느껴지는 향은 달라요당신의 책장에 과거에 만난 책이 있으면 한 번 펼쳐보세요. 오랜만에 만난, 오래된 책이 새 책처럼 보일 거예요.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자이언티의 <꺼내 먹어요>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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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4-02-2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향수 만들기라니! 저도 배워보고 싶네요.

cyrus 2024-02-27 06:52   좋아요 0 | URL
제가 책 향수를 사용하는 법을 언급하지 않았네요. 책갈피에 뿌리면 돼요. 주말에 원데이 클래스 열리면 또 만들어 보고 싶어요. ^^

햇살과함께 2024-02-2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삭힌 홍어 향이라니 ㅎㅎㅎㅎ 상상만으로도!
저는 우디 향, 스모키 향이 좋습니다~
초집중하면 엄지척 하신다니 재밌네요! 사람마다 집중할 때 버릇이 다 있죠 ㅎ

cyrus 2024-02-27 06:56   좋아요 1 | URL
오일 향 맡느라고 저의 뒷모습을 누가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책방지기와 아로마테라피 선생님 둘 중 한 분일 거예요. 제가 집중력을 높여주는 향에 취했나 봐요. ^^;;

stella.K 2024-02-2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오늘 글은 좀 느낌이 다른 것 같아. 네가 쓴 글 맞지? ㅋ 홍어 삭힌 냄새를 좋아하는구나. 독특한데?
맞아. 뒷모습에서도 그 사람이 드러나기도 하지. 목소리나 억양에서도 그렇고. 향수에 관심 많은 줄 몰랐네.^^

cyrus 2024-02-27 07:02   좋아요 1 | URL
당연히 제가 썼죠... ㅎㅎㅎㅎ <하나의 시선> 책방지기가 제가 쓴 독서 모임 공지 글을 보더니 ‘학술적’인 느낌이 나서 쉽게 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독서 모임 공지 글을 에세이 형식으로 써봤어요. ^^

감은빛 2024-02-2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산 근처 책방이라는 안내를 읽으니, 환경운동 판에서 저와 인연이 있던 분들이 한때 대구 앞산 개발 반대 운동을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정작 저는 한번도 앞산을 가 본 적은 없는데, 마치 잘 아는 동네 뒷산 같은 기분이 들어요.

[뒷모습] 저도 예전에 읽었던 책이예요. 지금도 책장 어느 한 구석에 있을텐데. 그렇죠. 같은 책이라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서 집중하는 지점도 다르고, 감상도 다르죠.

cyrus 2024-03-01 09:58   좋아요 0 | URL
앞산이 다른 동네에 있어서 자주 가는 산은 아니에요. 어렸을 때 한 번, 학창 시절에 소풍으로 한 번 간 적 있어요. <뒷모습>의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데, 자료가 많지 않아요. 사진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은데 말이죠. ^^;;
 
환상의 미술 -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든 것의 시각 자료집
S. 엘리자베스 지음, 박찬원 옮김 / 미술문화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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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3.5점  ★★★☆  B+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 한대수 행복의 나라(1974) 노랫말 일부 -



사진은 1977년에 재발매된 한대수 1<멀고 먼 길> 앨범 앞표지다.





상상화는 그리기 쉽다. 내 생각과 상상한 것을 그대로 그리면 된다. 어떻게 보면 상상화는 꾸밈이 전혀 없는 솔직한 그림이다. 하지만 완성된 상상화는 온통 검다. 알록달록하게 색칠해도 상상화는 까맣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상상화는 어두컴컴하다. 상상화를 그린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그렸는지 잘 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뭘 그린 거야?” 그들은 깜깜한 상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눈앞이 깜깜하기만 하다.


비현실적인 상상화는 이상하고두렵고불쾌하고난해하다이해하기 힘든 상상화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까만 상상화가 낯선 사람들은 상상화를 그린 사람의 내면과 정신세계를 의심한다.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는 상상화는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한다우리 눈은 실물과 실체를 보는 것에 익숙하다익숙하지 않은 것이 시야에 들어오면 눈동자가 좁아지면서 저절로 눈꺼풀이 감긴다그래서 상상화가 항상 까맣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창문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우리 눈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세상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상하다고 느낀 물체나 존재에 거부감을 느낀다. 보기 좋고, 친숙한 세상만 보려고 하는 눈은 항상 열려 있는 창문이 아니라 장막이다.

 

상상화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은 환상의 미술: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든 것의 시각 자료집검은 책으로만 보일 뿐이다. 반대로 상상력이 흘러넘치는 사람은 이 책이 깊고 광활한 검푸른 바다로 보인다. 그들은 공상에 취한 상태다. 익숙해서 지루한 일상을 잠시 잊어버리고 환상의 검푸른 바다로 풍덩 뛰어든다환상의 미술솔직 과감한 상상화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막을 걷어내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오컬트, 죽음, 공포와 같은 어둡고 음산한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좋아한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준비 운동을 해야 한다. 몸이 물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환상의 바다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먹고 자란 괴물이 득시글거린다. 환상의 바다를 처음으로 유영하는 사람들은 잠자는 예술가들이 세운 드림랜드를 헤맨다상상하는 일을 시간 낭비로 여기는 사람이 환상의 바다로 무턱대고 뛰어들면 눈동자가 깜짝 놀라서 갑자기 눈이 감겨버린다. 환상의 바다로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눈 풀기 독서를 해야 한다상상력이 부족하면 눈이 뻑뻑해진다. 이미 출간된 저자의 또 다른 책들, 오컬트 미술: 현대의 신비주의자를 위한 시각 자료집》(하지은 옮김, 미술문화, 2022년)어둠의 미술: 무섭고 기괴하며 섬뜩한 시각 자료집》(박찬원 옮김, 미술문화, 2023년)은 환상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데 필요한 상상력을 한껏 끌어 올려준다.


상상하는 것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행위가 아니다. 새로운 현실을 확장하는 일이다. 상상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혁신적인 일이 아니다. 기존의 유를 새로운 유로 바꾸는 일이다. 상상하면서 환상의 세계를 그리는 예술가들은 개방된 세계를 묘사한다. 개방된 세계는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과거와 현재, 아름다움과 추함, 인간과 비인간이 혼재되어 있다개방된 세계에서는 어떠한 제한도 없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상상력은 이상하고, 환영받지 못한 사물과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상상력이 충만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예술가에게 상상력이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만드는 담력이다.







<cyrus의 주석>

 



* 13

 




 느릿느릿 걷고 힘이 센 퉁명스러운 성격의 외눈박이 거인, 장난스럽고 심술궂은 마법을 부리는 반짝반짝 날개 달린 자그마한 존재, 빛을 발하는 뿔이 달린 말을 닮은 짐승, 그 외에도 인어, 미노타우로스, , 난쟁이, 스핑크스, 사티로스, 백조 아저씨[주1], 잠 귀신! 키클롭스의 흙투성이 동굴에서부터 버섯들이 빚어낸 요정의 반지, 그리고 세상의 끝 어두운 숲에 숨겨진 마지막 유니콘까지. 모든 문화에는 환상적인 생명체에 관한 신나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원문]


 Lumbering one-eyed giants with surly personalities and prodigious strength; diminutive, winged beings twinkling with magic both mischievous and malicious; luminous equine beasts with shimmering horns, elusive and rare. Mermaids and minotaurs, dragons and dwarves! Sphinxes, satyrs, swan maidens and even the Sandman from the Cyclops’ dusty cave to the mushroom-spotted faerie rings to the last unicorn hidden in a dark wood at the end of the world, there are clamouring, tales of fantastical creatures to be found in every nook and cranny of every culture.

   


[1] 백조 아저씨는 오역이다. ‘maiden’처녀, 아가씨를 뜻한다. 백조 처녀(Swan maiden)’ 전설은 우리나라의 민담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하다. 하늘에 내려온 백조가 여자의 모습으로 목욕하고 있었는데, 이를 훔쳐본 남자는 백조의 깃옷을 감춘다. 여자는 원래 백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자의 아내가 된다.





* 47

 




 보리아 삭스는 상상의 동물: 괴물, 불가사의, 인간(2013)에서 모든 유인원에는 설인이 어느 정도 들어 있고, 모든 말에도 페가수스가 조금 들어 있다. 남성과 여성은 천사 같은 면도 있고 악마 같은 면도 있다. 켄타우로스, 늑대 인간, 마법사 맨드레이크[2], 스핑크스 같은 면도 있다라고 쓴다.

 


[2] 맨드레이크(mandrake)는 전설에 묘사된 식물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교수형을 당한 사람의 몸에 나온 정액에서 피어난다. 맨드레이크의 뿌리는 사람 형상과 닮았다. 맨드레이크를 뽑으면 뿌리가 비명을 지른다. 이 비명을 들은 사람은 미치거나 죽는다. 맨드레이크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 나온다. 맨드레이크는 중세 시대 마법사들이 마법의 약을 제조할 때 사용한 약초였다. 식물 이름이 아니라면 필 데이비스(Phil Davis)와 프레드 프레드릭스(Fred Fredericks)의 만화 <마술사 맨드레이크>(Mandrake the Magician, 1934년부터 2013년까지 연재)에 나오는 동명의 주인공 이름일 수 있다. 원서에 ‘mandrake’라고 적혀 있는데 맨드레이크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전자의 의미에 가깝다.






* 72~73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관한 20세기 이론은 경계를 허무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 특히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새로운 현대 신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괴물 같은 기괴함을 포옹하여 강렬하고도 불안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으며, 꿈과 악몽에서 영감을 얻어 대체 현실의 끔찍한 장면이 연상되는 광경을 그려냈다.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선구자들은 악마와 유령으로 구성된 어둡고 환상적인 동물원을 창조했는데, 그것은 인종차별주의, 민족주의의 너무나도 현실적인 위협과 파시즘의 폭력을 상징하였다. [3]




[3]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온갖 기행을 일삼은 괴짜로 유명하다. 달리는 히틀러(Adolf Hitler)를 찬양했는데 그 일이 문제가 되어 초현실주의자 그룹에 제명당했다.





* 111

 





J. J. 그랜드빌 J. J. 그랑빌(Grandville)






* 143


 





 『백설 공주이야기를 소름 끼치도록 뒤틀린 반전으로 재해석한 닐 게이먼의 단편 , 얼음, 사과[주4]는 공주와 계모를 경쟁 관계로 보고, 실제로는 그리 사악하지 않은 여왕이 뱀파이어 같은 의붓딸 때문에 공포에 질려 이 괴물로부터 왕국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는 내용이다.

 


[주4] 1995년에 발표된 닐 게이먼(Neil Gaiman)의 단편 소설 원제는 ‘Snow, Glass, Apples’. 소설의 모티프는 그림 동화집(Grimm’s Fairy Tales)에 실린 백설 공주. 게이먼의 단편 소설 제목의 ‘Glass’는 원작 동화 속 계모가 소유했던 말하는 거울을 상징한다. 따라서 소설 제목은 , 거울, 사과. 이 소설은 닐 게이먼 베스트 컬렉션(정지현 옮김, 하빌리스, 2023)에 수록되어 있다.






* 203

 




 만일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 선사시대를 목적지로 해서 트리케라톱스와 익룡과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티렉스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돌아오고 싶은가? [주5]



[주5] 타임머신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기계라는 사실을 잠시 제쳐두고, 똑똑한 타임머신이 실용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공룡을 만나고 싶으면 타임머신에 선사시대로 가자고 부탁하면 안 된다. 만약 타임머신이 당신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 기계는 정품이 아니다. 정품이 아닌 타임머신을 타다간 짝퉁 과거로 가거나 현재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선사시대에 가면 공룡을 볼 수 없다. 공룡은 이미 멸종되어 사라졌고, 그 대신에 두 발로 걷는 인류의 조상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님들을 만나 보고 싶으면 목적지를 선사시대로 하면 되고, 트리케라톱스와 티라노사우루스를 보려면 백악기로 가면 된다.





* 더 읽어보기, 236

 

Dinotopia: A Land Apart from Time, James Gurney, 1992 [주6]

 

Fairs and Elves(The Enchanted World), Colin Tuubron, 1984

Wizards and Witches(The Enchanted World), Brendan Lehane, 1984 [주7]

 

Fantasy, The Literature of Subversion, Dr Rosemary Jackson, 2008. [주8]



[주6] 1993년에 다이노토피아: 공룡 나라 여행(오경아 옮김, 디자인하우스)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주7] 분홍개구리라는 출판사가 총 아홉 권으로 이루어진 <인챈티드 월드>(Enchanted World) 시리즈를 번역 출간했다. ‘Fairs and Elves’의 국역본 제목은 요람을 흔드는 요정(박종윤 옮김, 2005)이다. <인챈티드 월드> 시리즈 전권 모두 절판되었다.

 

[주8] 로즈마리 잭슨(Rosemary Jackson)의 저서 <Fantasy: The Literature of Subversion>1981년에 출간되었다. 국역본 제목은 환상성: 전복의 문학(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문학동네, 2001)이다. 현재 절판되었다.





* 책 뒤표지

 






이 책에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의 그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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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2-2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울과 얼음의 차이는 많이 나는데^^;;

살바도르 달리 하면 ‘숟가락? 스푼과 낮잠‘ 일화가 압도적이어서 그것만 떠오르는데 히틀러랑 얽힌 사연도 있군요

cyrus님 어떻게 이런 고퀄 분석을 하실수가요. 번역가분들이 cyrus님 모셔서 강의하실 기회를 만들어주셔도 진짜 유익할 것 같아요^^

cyrus 2024-02-26 06:29   좋아요 1 | URL
달리의 작품 중에 <히틀러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어요. 그림을 보면 왜 저런 제목을 붙인 건지 알 수 없어요... ㅎㅎㅎ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전문가들 앞에서 가르칠 수준은 아니에요. ^^;;

감은빛 2024-02-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런데 알라딘에서 글 쓰면서 어떻게 이렇게 이미지들을 깔끔하게 예쁘게 넣으신 건가요? 저는 이미지를 넣으면 편집이 잘 안 되던데요. 신기하네요.

cyrus 2024-03-01 10:01   좋아요 0 | URL
사진을 편집하는 과정이 번거로워요. 사진 이미지 크기를 작게 조절해요. 사진 원본을 올리면 너무 크게 나오거든요. 그렇다고 사진이 너무 작으면 글씨가 작아지는 경우가 있어서 일단 보기 좋게 크기를 조절한 다음에 알라딘 블로그에 올려요.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 크기를 조절하고, 알라딘에 올리고, 다시 지우고.. 저는 이 과정을 반복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