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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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다만 우리의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셰익스피어)

 

    

 

우리는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늘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주 작은 것에서조차 행복을 찾아내는 마음가짐이다. 마음을 다친 상처가 고통, 수치심, 절망, 불안을 낳고 이러한 것들을 거부하다 보면, 무력이나 분노, 경멸, 실망 등의 부정적인 마음 상태가 형성된다. ‘진짜 나를 무시한 채, 열등감에 휩싸인 자아에 집착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부터 시작되는 감정들은 결국 자신의 마음에 상처만을 남긴다. 이 모든 문제가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차분히 생각해보면 나의 문제점을 무엇인지 되돌아 살펴볼 수 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은 시급히 개선할 수 있으며,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까지 생기게 된다.

     

글쓰기는 삶을 더듬어가는 여행이다. 우리 앞에 마련돼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생 앞에 항상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존재다. 공지영월춘 장구(越春 裝具)맨발로 글목을 돌다를 통해 우리는 희망이라는 실체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두 편의 작품 모두 작가가 주인공 겸 화자로 등장한다. 월춘 장구는 자신의 내적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가의 세밀한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월춘 장구봄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할 장비를 뜻한다. 불완전한 삶 속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이 소설을 쓰였다. 삶의 역경을 뜨거운 인내로 녹여낼 때 거기서 싱싱하고 힘차게 자라나는 희망의 새싹이 돋아난다. 작가는 어둡고 쌀쌀한 계절을 의지로 넘길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본질과 이질적인 것은 상흔을 남긴다. 그리고 그 상흔으로 인해, 그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아픔의 힘으로 우리는 생의 모퉁이를 돌기도 한다. 그것이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인지 아닌지는 나는 아직도 모른다. 블라인드 포인트, 라고 산에 오르던 친구는 말했다. 모퉁이를 돌면 그곳에 무슨 죽음과 무슨 삶이 펼쳐져 있을지 모르는 험악한 등정에서 산악인들은 언제나 그 블라인드 포인트를 돌아야 한다고. 그리고 초보자들에게 그것은 대개 죽음보다 더한 공포와 고통을 준다고. 거기서 주저앉는 사람이 참 많이도 있다고, 그러나 그 공포를 이겨낸 자에게만 산은 그 정상을 허락한다고. (17~18)

 

 

이 대목에서 맨발에서 글목을 돌다맨발글목의 의미를 재확인할 수 있다. ‘글목글이 모퉁이를 도는 길목을 의미하는데 작가가 만든 단어다. ‘맨발은 작가 자신을 포함한 상처 받는 존재를 가리킨다. 월춘 장구맨발에서 글목을 돌다의 유사성은 삶의 상처를 진솔하게 묘사하는 글쓰기다. 자기 상처를 드러내며 세상과 대화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작가의 성숙함 앞에서 자신을 뒤돌아보지 않을 독자는 없을 것이다.

     

소설집의 표제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조금은 과장되고 웃음이 섞인 블랙코미디다. 6개월째 사망 선고를 받고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할머니를 관찰하듯이 바라보는 소녀인 화자와 그 가족들의 심리 묘사가 잘 드러나 있다. 할머니의 재력을 호시탐탐 노리는 가족들은 할머니 곁을 떠나지 못한다.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미음 대신에 흰 쌀밥과 갈비를 먹기 시작하는데, 이 장면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의 감정 상태를 읽을 수 있다. 공포관리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에 관해 생각하면 슬퍼지기보다는 평소보다 행복해진다. 자기 죽음에 관한 생각에 직면했을 때 인간의 뇌가 무의식적으로 행복감을 찾거나 유발함으로써 자각적인 고통에 자동으로 대처하게 된다. 어쩌면 할머니는 죽음의 공포에 대처하기 위해 평소에 좋아하는 갈비를 입에 댔을 거고, 의도치 않게 생명이 연장된 것이다. 할머니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행위로부터 심신의 안정은 물론 죽음의 공포를 최소화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은 할머니의 생명 연장을 지켜보면서 공포를 느낀다. 다음 장면은 인간의 삶과 죽음, 공포와 웃음, 비극과 희극의 양면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큰외삼촌과 막내외숙모는 다시 할머니의 방으로 우르르 몰려들어갔다. 그들의 젓가락에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갈빗살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할머니가 웃으면 함께 웃고, 할머니가 호통을 치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들의 얼굴에 눈에 띄게 공포가 어렸다는 것이고, 그 공포를 감추려는 듯 표정은 더 딱딱해지고 있었다. (76)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절망인 죽음을 마주쳐야 하는 할머니가 생의 의지를 끝까지 놓지 않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블라인드 포인트의 공포를 이겨낸 할머니의 의지인 걸까, 아니면 더 살고 싶어서 살아있는 자들을 억지로 붙잡으려는 집착일까.

    

 

 

 

Trivia

 

* 12

걸레를 빨다 말고 키다리 아저씨를 쓴 오스카 와일드를 생각했다.

 

→ 「키다리 아저씨의 작가는 진 웹스터(Jean Web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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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7-09-03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라인드 포인트‘의 공포를 이겨낸 할머니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의지를 잡아당긴 것은 희망의 새싹이구요.^^
‘글목‘이란 말 앞에서 한참 생각이 머뭅니다. 글을 쓰려고 컴퓨터나 종이 앞에 섰을 때마다 긴장이 되거든요. 발상이 떠오를 때 시작을 하지만 제 글이 어디로, 무엇을 향해 가게 될 지 처음부터 알 수는 없거든요. 다른 이들이나 저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다만 가보는 거죠.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맞닥뜨리는 미지의 감성에 대한 스릴이 있습니다. 이 마음 역시 희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 글이 도달하게 될 곳이 썩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

cyrus 2017-09-04 09:08   좋아요 2 | URL
저도 논쟁이 될만한 주제의 글을 쓸 때면 긴장됩니다. 합당한 비판을 받고 싶어서 제 생각을 소신있게 밝힙니다. 그런데 쓰다 보면 ‘비난‘받을 만한 엉터리 내용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비난 받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제 글쓰기의 원칙입니다. 그 글은 실패한 글입니다. ^^
 
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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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 그 한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믿음으로.(<김예슬 선언> 중에서)

 

 

고려대 교정 건물에 붙여진 대자보의 주인공은 대학을 과감히 뛰쳐나왔다.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며 당돌하게 말이다. <김예슬 선언>을 읽었을 때 심장이 찔렸다. 고통스러웠다. 아팠던 이유는 대자보 속에 우리 모두의 문제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만두고 거부하였던 것은 고작 대학이 아니다. ‘대학이라는 이름 아래 성공과 경쟁만을 강요하는 세상이다. 대학 문제는 우리 모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자리 문제와 교육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김예슬의 외로운 대항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이십 대들을 슬프게 했다. 그 슬픔은 7년이 흐른 오늘에도 전혀 걷히지 않았다. 슬픔은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그 눈물이 피눈물이 되어 우리 발목을 차갑게 감싸고 있다. 7년 전 대학생이었던 이십 대는 이제 삼십 대가 되었다. 누군가는 결혼했고, 누군가는 여전히 취업을 준비하는 백수이고, 누군가는 직장에 취직해 삶에 충실히 하고 있다. 우리가 안고 있었던 고민은 고스란히 후배들에게 넘겨졌다. 영초 언니(문학동네, 2017)를 읽으면 가슴에 답답함을 느꼈던 7년 전 청춘들의 모습이 떠올린다.

 

책의 저자인 서명숙천영초와 함께 데모했던 대학 후배다. 영초 언니는 저자의 젊은 날의 초상이면서도 천영초 한 사람을 위한 자화상이다. 천영초는 70, 80년대 시대의 아픔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녀는 부당한 권력에 당당하게 맞선 운동권의 전설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저자에게 언니를 기억하는 회상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영초 언니는 그 당시 ‘386 운동권 세대가 겪어야 했던 처절한 고통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저자와 천영초는 386 세대가 헤쳐 나온 시대적 운명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쯤이면 쉰을 바라보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늘날의 청년세대가 생각났을까?

 

386세대는 자유가 억압된 70년대와 민주화에 대한 희망이 차가운 환멸로 돌변한 80년대를 보냈다. 유년기에 유신독재를, 대학 시절엔 전두환 군부독재를 겪으면서 반쪽짜리민주화의 과정을 지켜본 이들이다. 그 시절의 대학은 최루탄과 휴교가 일상이었다. 대학생들은 화염병과 최루탄이 매캐한 거리에 뛰어들었고, 자유를 갈망하는 열정은 빨갱이로 낙인 찍혔다. 386 세대의 부모들은 경찰에 붙들리거나 고문당하는 자식을 볼 때마다 가슴 치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성동구치소로 향하는 저자가 호송차 창문 넘어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빠지는 장면이 있다.

 

 

호송차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바깥 풍경을 내다보았다. 가로수의 새잎들이 연녹색으로 간질간질 움트는 5월의 거리 풍경은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웠다. 지나는 이들의 얼굴도 다들 행복해 보였다. 난 언제나 저 거리, 저 풍경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중에 돌아가게 된다고 해도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둔 세상은 피안의 세계처럼 아득했다. (164)

 

 

거리의 중심에서 소리 질렀던 저자는 이제 희망 없는 청춘의 실체를 감지한다. 그녀의 상념은 민주주의라는 공적 가치에 청춘을 바친 바보 같은 세대의 아픈 혼잣말이다. 나아가 희망 없는 청춘을 보냈던 삼십 대 독자들을 슬프게 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지금의 삼십 대는 십 년 전만 해도 ‘88만 원 세대 또는 삼포 세대 등으로 불렸다. 청년세대를 규정하는 이름이 많지만, 의미가 썩 좋지 않다. 그 단어 속에 취업난과 고용 불안, 치솟는 학비에 시달리며 외로운 생존경쟁을 해내야 하는 이십 대의 차가운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쓸쓸한 외침은 사회 전체를 진동할 합창이 되지 못했다. 기성세대는 울부짖는 청년들을 향해 나약하게 자책하지 말고, 더 노력해라고 닦달했다. 어떤 이는 그들 보고 빨갱이에게 사주받은 미성숙한 세력으로 규정했다. 정당한 분노마저 빨갱이로 몰아가는 작태가 낯설지 않다.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이 세상은 80년대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등장은 반쪽짜리민주화로 귀결되었고, 끝까지 살아남은 정치 기득권 세력은 권력과 부를 불공정하게 독점했다. 정치 기득권 세력은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암세포처럼 퍼진 적폐 세력이 되었다. 그리고 적폐 세력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늘 권력 주변에 기생했고, 권력에서 흘러나오는 단물을 마음껏 빨아대면서 자란 악성 종양이 바로 최순실과 그녀의 딸 정유라. 정유라는 청년세대와 다른 삶을 살았다. 잘난 어머니 덕택에 돈을 걱정 없이 썼다. 그래서 그녀가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발언에 가슴 아픈 의문의 1를 당한 청년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비상식적인 세상으로부터 연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 청년세대는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었다. 빛나는 촛불로 그동안의 긴 연패의 굴욕을 잊는 빛나는 1을 추가했다. 빛나는 1이 없었다면 최순실은 떵떵거리며 살면서 민주주의를 우습게 봤을 거고, 서명숙은 영초 언니를 쓰지 못했다. 지금 상상하기 끔찍하지만, 국정 농단 세력의 정부가 뻔뻔하게 지내고 있었어도 저자는 영초 언니를 썼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삶과 청춘을 바친 사람들을 무시한 적폐 세력들은 저자의 이름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추가했고, 영초 언니를 불온서적으로 지정했을 게 뻔하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캠퍼스의 일상적 삶을 좌우하던 현실 속에서 대학을 다닌 386 세대의 이야기들이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낯선 무용담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영초 언니는 어려운 시절을 기어이 극복한 화려한 성공 미담을 부각한 386 세대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천영초를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자 시점으로 일관한다. 천영초를 포함한 386 세대가 기성 사회에 어렵게 적응하는 모습이 담긴 심리적 풍경(영초 언니 프롤로그 9)’을 지켜보고 서술한다. 천영초와 그의 남편 정문화는 여전히 사회변혁을 열망했으나 그들의 뜨거운 열정을 알아주고 동조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운동권의 삶을 살았던 386 세대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평생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다. 천영초도 예외가 아니다. 정당 생활을 접은 천영초는 혁명자금을 모으려고 다단계 회사에 들어갔고, 똑똑했던 정문화는 경제 감각이 떨어져 궁핍한 생활을 보냈다. 천영초는 운동권 동지로서의 정문화를 사랑했지만, ‘가정을 책임지는 남편으로서의 정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저자는 기성 사회에 대한 경험이나 준비가 미흡한 386 운동권 세대의 씁쓸한 뒷모습까지도 낱낱이 기록했다. 젊은 날에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꿈꿔야 할 미래를 빼앗겼던 386 세대는 삭막했던 청춘의 슬픈 결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영초언니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건 우리 사회 전체를 확 바꿔놓을 혁명자금이 아니라 당장의 생활비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언니의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스스로 믿고 싶어하는 바를 눈앞에서 박살내고 싶지는 않다. (261)

 

 

안타깝게도 삭막했던 청춘은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대물림 되고 있다. 오늘도 청년들은 답답한 도서관 건물 안에서 좋은 직장, 좋은 결혼, 좋은 노후 생활을 위해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다. 앞으로 달려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될수록 절망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가 사라진다. 경쟁으로 자신을 몰아넣고 있다. 영초 언니를 다 읽고 나니 여러 가지 걱정이 든다. 세월이 흘러 나 자신 또한 따뜻한 현실이라는 소파에 파묻히면서 제2, 3의 김예슬을 비웃을까 봐. 수십 년 후에 우리가 한때 열광했던 김예슬이 천영초처럼 잊힐까 봐. 쉽게 변하지 않는 세상을 다행이라 여기며 요즘 젊은이들은 그저 뭘 모르는 것들이라 손가락질할까 봐. 알게 모르게 시간이 지나면 청년세대도 기성세대가 된다. 저자가 천영초를 아직 완전히 잊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물결에 휩쓸려 정신없이 망각해버린, 그럼에도 언제나 의식 한쪽에 찜찜하게 남아 유령처럼 짓누르는 사회적 열망의 냄새를 여전히 맡고 있다. 영초 언니386 세대와 청년세대가 스스로 자신의 삶과 시대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특별한 책이다. 따라서 책 속에 변함없이 젊은 ‘20대의 영초 언니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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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09-0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땅에서,얼마나 많은 ‘영초 언니‘ 가 외롭게 살다 갔을까요..

cyrus 2017-09-02 12:12   좋아요 0 | URL
남성의 역사에 파묻힌 언니들의 기록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북프리쿠키 2017-09-0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글 보고 갑니다^^;

cyrus 2017-09-02 12:13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좋습니다. ^^

2017-09-01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2 12:1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현재 삶의 질을 과거와 비교해봤자 작은 위안만 얻을 뿐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혐짤이라는 은어가 있다. ‘혐오을 합친 말인데, ‘짤림 방지의 준말이다. 인터넷 게시물이나 블로그 등에 첨부된 사진이나 그림을 뜻한다. ‘혐짤을 쉬운 말로 풀어쓰면 혐오스러운 사진이다. 이 글에서는 혐짤이라는 표현 대신에 혐오 사진이라고 사용하겠다.

 

혐오 사진을 이용해 악의적으로 장난치는 누리꾼들이 많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상관없는 사진을 올리는 것이다. 대개는 음란한 사진을 올려 게시판 이용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또 혐오 사진을 올려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좀 오래된 일이긴 한데 7, 8년 전만 해도 알라딘 서재에 광고성 음란 게시물만 올리는 회원들이 있었다. 누리꾼들이 주로 공개하는 혐오 사진은 사람이나 동물의 시신이다. 그 밖에 희소병에 걸려 신체가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환자, 대변이나 토사물을 찍은 것도 혐오 사진이다. 혐오 사진 게시물은 익명의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온라인 공간의 테러라고 보면 된다. 혐오 사진을 볼 경우 정신적인 충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친절한(?) 누리꾼은 게시물 제목 앞에 혐짤 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혐짤 주의가 적힌 게시물을 발견하면 못 본 척 지나치면 된다. 그런데 혐짤 주의가 사람의 호기심을 유발하게 한다. 궁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마우스를 클릭하면…‥. 그다음 상황은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혐오 사진이 나름 컬트적인 인기가 있다 보니 악명 높은 혐오 사진 또는 게시물을 따로 모아서 목록으로 만든 것도 있다. 일본 온라인 커뮤니티 ‘2ch’절대로 검색해서는 안 될 검색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있다. 이 목록에 나온 검색어를 구글(Google)에 검색하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충격과 공포를 받는다.

 

 

 

 

 

2ch 유저들은 검색어의 위험성을 측정(객관적이지 않다)해서 숫자로 매겼는데, 위험도 7’은 제일 위험한 수준이다. 검색 한 번으로 트라우마가 생기고, 덤으로 악성 바이러스까지 얻는 상황이다.

 

미술의 세계에서도 보는 이의 눈과 마음에 충격을 주는 괴상하고 무서운 그림들이 있다. 미술의 세계에 아름다운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게 무슨 예술이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추한 그림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절대로 검색해서는 안 될 그림들을 모아 봤다. 물론, 이제 공개할 그림들은 유명 전시관에 소장되어 있거나예술로 인정받은 것들이다글의 제목은 재미있으라고 만든 패러디(parody). 그렇지만, 깜짝 놀라게 하거나 불쾌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니 심장이 약한 분은 자신의 소중한 심장 꽉 부여잡고 보시길. 심장이 놀라 도망가면 책임 못 진다.

 

 

 

 

* 작가 미상 구상시회권(九相詩繪卷)위험도 : 2~6

 

구상(九相)인간의 시체가 부패되는 아홉 단계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불교 경전에 나오며, 중국의 시인 소동파(苏东坡)는 이를 주제로 한 구상시(九相詩)’를 남기기도 했다. 구상시회권은 구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이 그림의 일부를 어디서 볼 수 있느냐면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세종서적, 2005) 2217~218이다. 그림 전체를 보려면 구글에 九相詩繪卷을 검색해야 한다. 그런데 검색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들개와 새가 부패가 심한 시체를 뜯어 먹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나오는데, 살이 뜯어져 나가고 사지가 절단된 시체의 모습이 그로테스크하다.

 

 

 

 

*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위험도 : 1, 2

 

 

 

 

 

 

 

 

 

 

 

 

오딜롱 르동은 상징주의와 초현실주 중간에 서 있는 프랑스의 화가다. 르동은 꿈의 화가. 그가 첫 번째로 제작한 석판화집 제목이 <꿈속에서>였다. 그의 그림에는 현미경에 통해 볼 수 있는 생명체, 고전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들, 목만 남은 사람 등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꿈속에 갇힌 존재가 되어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하는 꿈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서기원 씨는 르동의 웃음 짓는 거미를 오마주한 작품을 제작했다. 르동이 그린 거미는 어두컴컴한 곳에서만 사는 음흉한 괴물에 가깝다면, 서기원 씨가 그린 거미는 정말 해괴한 형태의 괴물이다. 화려한 색채에 얼굴을 과장되게 그렸기 때문에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다. 트라우마를 줄 수 있는 위험도 5’. 어떤 그림인지 궁금한 분은 여기 링크로 보면 된다. 링크 주소를 클릭한 순간, 서기원 씨의 그림이 나오므로, 깜놀 주의.

 

 

※ 관련 링크 (깜놀 주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7601553

 

 

 

 

 

 

*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 위험도 : 1, 2

 

 

 

 

 

 

 

 

 

 

 

 

앙소르의 그림에 자주 나오는 단골 소재는 가면해골이다. 그는 인간과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했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과 불안을 표현하기 위해 가면과 해골이라는 어두운 도상을 이용했다. 비통한 남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 배경 소품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 오토 딕스(Otto Dix) 위험도 : 2

 

 

 

 

 

 

 

 

 

 

 

 

오토 딕스는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하여 참전했다. 철없는 조국애에 도취한 군인 딕스는 빗발치는 포탄 소리를 듣고 전몽(戰夢)에서 깨어나게 된다. 그는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비참함에 치를 떤다. 전쟁이 끝난 후 화가가 된 딕스는 삼면제단화 형태의 전쟁을 제작했다. 제단화의 가운데 그림에 총탄 구멍으로 너덜너덜해진 병사들의 시체가 참호 속에 널브러져 있다. 서경식 선생은 딕스의 전쟁그림은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철저하게 깨뜨린 작품이라고 평했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나라를 위해 몸 바치는 독일인의 우수함을 내세우고 싶었던 나치 정부에 그의 그림은 희생 장병을 모독한 매국노의 퇴폐 그림으로 비난받았다. 2010년 서울대 미술관에 오토 딕스 전이 열린 적이 있다.

 

 

 

 

 

*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위험도 : 2, 3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고기가 어는 과정을 알고 싶어서 실험했다면, 동명의 화가는 고기를 이용해 고통받는 인간이 변형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그림으로 실험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제목에 습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화가는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고통을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었던가. 베이컨의 그림 속에는 화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 상태의 농도가 확연하게 보인다. 극도의 불안함은 역동적으로 온몸을 휘감아 원래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의 그림은 공포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미술에서는 모든 것이 잔인해 보입니다. 실재가 잔인하기 때문이죠.”(프랜시스 베이컨,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 H. R. 기거(Hans ‘Ruedi’ Giger) 위험도 : 2, 3

 

 

 

 

 

 

 

기거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기거가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에이리언(Alien)’을 창조한 초현실주의 화가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대단하다면서 엄지를 올렸을 것이다. 반대로 기거의 이력을 알려주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그로테스크한 그림들을 보여주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그린 그림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기거가 괴팍한 성격이긴 하지만, 병원에 입원할 정도는 아니다. 기거는 한 인터뷰에서 만일 내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아마 창조적인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미쳤거나라고 말했다. 미치지 않은 사람도, 창조와 거리가 먼 사람들도 기거의 그림을 좋아할 수 있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들의 기괴한 분위기를 거부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극단적 상상력이 동원된 어두운 본성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 즈지스와프 벡신스키(Zdzisław Beksiński) 위험도 : 2~6

 

벡신스키의 그림은 기거의 그림보다 더 오싹하다. 벡신스키는 자신이 제작한 그림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고, 자신의 그림에서 의미를 찾는 일이 무용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냉소적인 태도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유사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의 그림이 와전되어 전해졌고, 세 번 보면 죽는다는 저주의 그림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이 그림에도 섬뜩한 벡신스키의 화풍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땅 한가운데에 거울이 달린 거대한 의자가 있다. 의자 위에 창백한 여성의 목이 놓여 있다. 여성의 목이 거울에서 스르르 나타난 것처럼 느껴진다. 벡신스키가 무슨 의도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없다. 도무지 봐도 알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감. 이게 바로 보는 이를 불안하게 만들고, 긴장하게 만드는 어두운 아우라(Aura). 벡신스키의 그림들은 위키아트(Wikiart)’벡신스키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무서운 그림을 싫어하는 사람은 안 보는 게 낫다.

 

 

위키아트 https://www.wikiart.org/en/zdislav-beksinski

공식 홈페이지 http://www.dmochowskigallery.net/

https://beks.pl/zdzislaw-beksinski-grafiki/

 

 

 

 

 

 

 

 

 

벡신스키의 그림은 책표지로 사용된 적이 있다. 동서문화사의 책 두 권의 표지로 사용된 어둡고 쓸쓸한 풍경화가 바로 벡신스키의 그림이다. 그런데 출판사는 그림을 제작한 벡신스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두 권의 책 모두 2003년에 나왔고, 벡신스키는 2005년에 사망했다. 과연 출판사는 화가에게 허락받고 그림을 표지로 사용했을까? 저작권을 무시했던 출판사의 행적을 봐서는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0%. 이익에 눈멀어 저작권법을 무시하면서 책을 만들다간 언젠가 화를 입게 된다. 이 글과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지난달에 저작권법 위반으로 동서문화사 대표가 불구속기소 되었다.

 

 

[, ‘대망개정판 무단발간한 동서문화사 대표 기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8&aid=0003875857

 

 

 

 

 

 

 

 

참고도서

 

 

1. 오딜롱 르동

 

 

 

 

 

 

 

 

 

 

 

 

 

 

 

 

*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 상징주의 미술(열화당, 1987)

* 질 장티 상징주의와 아르누보(창해, 2002)

* 김형구 르동(서문당, 2004)

* 르동(재원, 2004)

 

 

 

 

2. 제임스 앙소르

 

 

 

 

 

 

 

 

 

 

 

 

 

 

 

 

* 울리케 베크스 말로르니 제임스 앙소르(마로니에북스, 2006)

* 나카노 교코 무서운 그림 3(세미콜론, 2010)

 

 

 

 

3. 구상시회권, 오토 딕스

 

 

 

 

 

 

 

 

 

 

 

 

 

 

* 서경식 고뇌의 원근법(창비, 2002)

* 진중권 춤추는 죽음 2(돌베개, 2009)

 

 

 

 

4. 프랜시스 베이컨

 

 

 

 

 

 

 

 

 

 

 

 

 

 

 

 

 

 

 

 

 

 

 

 

 

 

* 크리스토프 도미노 프랜시스 베이컨(시공사, 1998)

* 루이지 피카치 프랜시스 베이컨(마로니에북스, 2006)

* 안나 마리아 빌란트 프랜시스 베이컨(예경, 2010)

* 데이비드 실베스터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디자인하우스, 2015)

 

 

 

 

 

5. H. R. 기거

 

 

 

 

 

 

 

 

 

 

 

 

 

 

* 기거(아트앤북스, 2003)

* H. R. 기거 HR 기거(마로니에북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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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09-0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섭네요. 하긴, 인류의 진화과정이 돌연변이의 역사이지요. 이렇게 자판 두들기는 손가락도 앞 지느러미가 변형된 거고, 발가락은 뒷지느러미의 변형에 불과하니...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런지.. 돌연변이의 역사!

cyrus 2017-09-01 20:31   좋아요 0 | URL
르동이라는 화가가 괴물 묘사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 중의 하나가 진화론이었습니다. ^^

sprenown 2017-09-0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섭네요..하긴, 인류 진화의 역사가 돌연변이의 역사죠..앞으로 어떻게 진화할련지.. 희귀병도 많이 생기고, 별 희한한 일들도 많이 생기는 호모사피엔스의 삶이죠.

cyrus 2017-09-01 20:32   좋아요 0 | URL
인류가 진화할수록 상상력도 풍부해지는 것 같습니다. ^^

qualia 2017-09-02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위 ‘혐짤’이란 용어 설명 부분하고 혐오 사진 구경에 대한 경고 부분까지만 읽었습니다. 중간 혐오 사진 부분은 재빨리 내려서 안 봤습니다. ㅎㅎㅎ 근데 맨 아래 부분 H. R. 기거 작품 사진은 살짝 봤습니다.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외계 우주선과 외계인을 H. R. 기거가 디자인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 외계 우주선과 그 조종사인 스페이스 쟈키(space jockey)의 괴기함(혐오감과는 다른 느낌이죠)과 공포유발감은 정말 영화 사상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계 우주선 안에서 알을 까고 나와 변태 과정을 거치는 에일리언 디자인도 역대 최고의 괴물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능가하는 건 아직까진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한 가수의 실황(라이브) 공연 무대도 H. R. 기거가 디자인한 것이 있어요. 그건 그러나 정말 웅장하면서도 어떤 경외감이 들게 하는 명작이었습니다. 전혀 혐오감 같은 건 들지 않는, 그 가수와 그 가수의 노래와 이미지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뭐랄까 신의 자애로움이 느껴지는 그런) 거대 인물상(혹은 신인상)이었죠. 그러나 저는 H. R. 기거의 전모에 대해선 거의 전혀 모릅니다. 서점에서 그의 작품집을 훑어보았던 적이 있는데요. 제 취향이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후루룩 넘기면서 보고 말았더랬습니다. 아무튼 깊이 탐구할 만한 문제적 예술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공포스럽고 괴기스럽고 혐오스러운 작품들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습니다. 그에 비해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외계 우주선과 외계인은 일종의 순화된 공포와 괴기스러움으로서 얼마든지 영화적 흥미진진함을 불러일으키는 특이한 사례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보면 볼수록 온갖 호기심과 상상력이 샘솟는 느낌입니다. 첨언하자면 《에일리언》 유형 이외의 다른 공포 영화는 거의 본 적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더라고요. 저 또한 트라우마에 한번 걸리면 빠져나오기 힘들어 하는 유형의 인간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cyrus 님의 경고를 받아들여 윗글 중간을 건너뛴 것이죠. ㅎㅎ 《이벤트 호라이즌》 같은 유형의 영화가 저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영화 주제는 매우 철학적이고 의미심장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다시 보고 싶진 않더라고요. 그보다 더 수위가 높은 공포물들은 아예 본 적도 없고 볼 생각도 없고 말이죠. 다른 분들은 공포 감각, 괴기 감각, 혐오 감각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사람마다 수용할 수 있는 그 수위나 임계점은 많이 다를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cyrus 님의 감각 수위는 저와는 많이 다른 것 같더라고요. ㅎㅎㅎ ^^

[처음 댓글 올린 시각 : 2017-09-01 21:53]
[오타 수정해 다시 올린 시각 : 2017-09-02 00:55]

cyrus 2017-09-02 12:30   좋아요 0 | URL
qualia님은 기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계시는군요. 기거의 그림을 보면 과거 낭만주의자들이 느꼈던 숭고, 경외감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저도 기거의 디자인을 긍정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

2017-09-01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2 12:32   좋아요 0 | URL
혐오 사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들은 자신이 혐오 사진을 보면서 느꼈던 정신적 충격을 상대방도 느껴보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즉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 이런 심리인거죠.. ^^;;

AgalmA 2017-09-0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딜롱 르동 그림은 종교적이고 성스러운 그림도 많은데 혐오로 많이들 분류하는 게 오딜롱 르동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못마땅합니다ㅜ 그런데 이상하게 혐오쪽을 깊게 건드리면 종교적이기까지 하다는 게 참 아이러니!

cyrus 2017-09-02 20:35   좋아요 1 | URL
르동의 그림들을 소개하면서 분석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도 르동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
 
배려를 파는 가게
켄 블랜차드 외 지음, 이제용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모든 정성을 쏟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려는 것은 물론이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열심히 살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기업이 고객을 향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닮았다. 기업을 운영하는 관리자 치고 ‘고객 만족 서비스’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고객 중심의 경영철학으로 성공적인 경영을 하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고객 만족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알아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 국내 기업은 고객지향의 서비스 경영을 소홀히 하는 측면이 있다. 당연히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를 위해서 많은 서비스 경영 교육이 필요한 실정이다.

 

기초적인 개념을 익히는 데에는 정석만 한 것이 없다. 《배려를 파는 가게》(한국경제신문, 2017)는 가장 기본적인 고객 만족 서비스의 원칙을 강조한다. 이 책에 아주 기초적인 서비스의 정석이 들어 있다. 《배려를 파는 가게》는 ‘켄블랜차드컴퍼니(The Ken Blanchard Companies)’의 회장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켄 블랜차드(Ken Blanchard)와 소속 임원들이 함께 쓴 책이다. 켄블랜차드컴퍼니는 경영인을 대상으로 서비스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책에 나오는 하틀리 교수는 대학에서 ‘전설적인 서비스’라는 이름의 강의를 진행한다. 이 강의를 듣는 책의 주인공 켈리는 대학생이며 대형 할인매장의 파트타임 직원이다. 《배려를 파는 가게》는 고객 배려 서비스 경영의 기본 원리를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혼자서도 실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 경영학과 과정에 이 강의가 들어가도록 담당자들을 설득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경영학과 과정에 고객 서비스를 필수 과목으로 넣지 않는 건 잘못이에요. 사업을 성공시키는 모든 건 결국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서비스를 통해 만들어지죠.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기업은 직원이나 고객과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기업입니다. 그런데도 경영학과 과정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17쪽)

 

 

기업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가격과 품질보다 서비스가 상품의 선택을 좌우하는 요즘의 경제 현실에서 고객의 입장을 생각하는 회사가 결국 경쟁에 이긴다. 서비스는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감동을 키우는 교감의 미학이다. 서비스 기업의 최종 목표는 당연히 ‘고객 만족’이다. 고객 만족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내부고객, 직원이다. 그러면 내부고객을 만족하게 하는 사람은? 관리자다. 아직도 머리로 경영하는 관리자들이 이 평범한 이치를 외면한 채 고객 만족 서비스를 내세운다. 관리자로부터 아무런 서비스도 받지 못하고 만족감을 못 느끼는 내부고객은 외부고객에게 기본 서비스조차 제공하지 못한다.

 

하틀리 교수는 고객을 배려하는 직원이 되기 위한 세 가지 비결을 강조한다. 첫 번째는 고객의 이름을 외우고 부르기. 두 번째는 판매와 상관없는 다른 얘기를 나누기. 세 번째는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고객을 마치 사랑하는 사람처럼 마음속에 그려 놓고 정성으로 대한다면, 고객의 만족도는 훨씬 더 높아진다. 이 세 가지 비결이 고객 배려 서비스 경영의 기초다. 이 세 가지 비결보다 가장 중요하고, ‘실전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ICARE 모델’이다.

 

ICARE는 다섯 가지 단어의 첫 글자를 합친 것이다. I는 고객에게 제공하는 이상적인 서비스(Ideal Service)다. 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직원은 고객의 욕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C는 가치와 비전을 명확히 해주는 서비스 문화(Culture of Service)다. 관리자는 고객을 위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비전과 가치를 직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은 서비스 비전에 걸맞은 행동을 실천할 수 있다. A는 고객의 욕구와 취향에 집중(Attentiveness)하는 것이다. R은 고객의 작은 요구에도 세심하게 반응(Responsiveness)하는 자세다. E는 직원이 능동적으로 고객 만족 서비스에 제공하는 재량권(Empowerment)을 의미한다.

 

품질의 제품을 가장 적합한 가격으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은 사업의 기본이다. 이를 바탕으로 고객을 진정 내 가족처럼 정성을 다해 서비스해야 한다. 고객 배려 서비스는 ‘고객이 왕’이라는 과거 서비스 경영원칙과 다른 것이다. 기업이 고객을 왕처럼 섬기는 서비스에 치중하게 되면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의 횡포에 시달리는 내부고객을 보호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생긴다. 내부고객과 외부고객 모두 만족하는 서비스는 단기간 내에 경영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강력한 무기다. 업무지식은 학습을 통해 획득할 수 있지만, 몸에 배어있는 배려심은 쉽게 가질 수 없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고객 만족 서비스의 의미를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는 ‘사람과의 친밀한 대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모든 구성원이 공유해야 한다. 진정한 조직의 힘은 모두 마음으로 함께할 때 발휘된다. 고객을 위한 서비스는 보여주기식이 아닌 경륜이며, 진심이 배어 나오는 행동,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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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08-3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객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기본이겠지만, 내부고객인 조직구성원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우선되어야 할거예요..그렇지 않은 기업들이 이윤추구만을 위해 종업원들을 개,돼지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게 우리사회의 현실입니다.

cyrus 2017-08-31 17:3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 책은 회사 대 외부고객뿐만 아니라 회사 대 직원(내부고객) 간의 관계 형성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2017-08-31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1 09:14   좋아요 1 | URL
책을 반대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봤어요.

기업이 착한 이미지를 내세워서 고객을 대하는 서비스가 하나의 쇼로 전락할 수도 있겠어요. ^^

푸른희망 2017-08-31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누구나 모르는건 아닐진대......,아는걸 행동하는건 참 쉽지 않지요

cyrus 2017-09-01 09: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상대방의 배려를 이용하는 악질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잘 해주는 태도를 회의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남을 돕거나 배려하는 일은 자기 손해라고 생각하는 거죠.

2017-08-31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1 09:16   좋아요 1 | URL
어딜 가나 갑질 손님, 갑질 기업이 문제입니다.. ^^;;

2017-09-01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1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소설을 처음부터 끝가지 읽기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편하게 읽고 싶은 분은 아래 댓글로 알려주세요. 소설 전문을 한글 문서 파일로 저장했습니다. 문서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비석

(The Tombstone)

 

 

레이 브래드버리 作

 

 

 

번역: 정태원

출전 : 《공포특급 5 : 세계 편》 (한뜻, 1996) [1]

 

 

 

 

 

 

 

 

 

긴 여행과 작은 콧구멍을 간질이는 먼지와 T자형 포드 속에서 뼈가 드러난 몸을 흔들거리고 있는 오클라호마 출신의 그녀의 남편, 월터(Walter)가 처음에는 역겨울 정도로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벽돌을 쌓아 만든 이색적인 마을로 들어가 숙소를 찾았다. 숙소의 주인은 두 사람을 작은 방으로 안내하고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휑뎅그렁한 그 방 가운데 비석이 서 있는 것이다.

 

레오터(Leota)는 깊은 생각에 잠긴 눈빛을 보이다가 곧 놀라 숨을 멈추는 모습이었다. 생각이 악마적인 속도로 빠르게 뇌리를 스쳤다. 레오터는 월터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미신에 푹 빠져 있다. 그녀는 숨을 죽이며 뒷걸음쳤고, 월터는 무거운 눈꺼풀이 덮인 회색 눈동자를 빛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싫어, 싫어요. 나는 죽은 사람과 함께 방을 쓰는 건 딱 질색이에요.”

 

레오터는 단호하게 말했다.

 

“레오터!”

 

월터가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주인이 물었다. “부인, 설마 그런…‥.”

 

레오터는 속으로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물론 믿기 어렵겠지만 이것은 오클라호마 사내인 남편에 대한 레오터의 유일한 무기다.

 

“죽은 사람과 함께 함께 자기 싫어요. 이 방에서 비석을 들어내요!”

 

월터는 푹신한 침대를 피곤한 듯이 쳐다보았다. 레오터는 남편의 코를 납작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신이 났다. 확실히 미신이란 편한 것이다.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비석은 회색 대리석으로는 최고급품입니다. 휘트모어 씨(Mr. Whetmore)의 소유물입니다.”

 

“돌에 새겨진 이름은 하이트(Hite)인데요.”

 

레오터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래요. 그 사람을 위해 조각한 것이니까요.”

“그러면 그 사람은 죽었습니까?”

 

레오터가 묻자 주인을 고개를 끄덕였다.

 

“자, 보세요!”

 

레오터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방을 찾아 헤매 다닐 기운은 없다는 듯이 월터는 신음소리를 냈다.

 

“마치 묘지와 같은 분위기야.”

 

레오터는 그렇게 말하고 월터의 눈에는 단호한 빛을 보았다. 주인이 설명했다.

 

“앞서 묵은 휘트모어 씨는 견습석공이었어요. 처음 맡은 일이 이 비석이었는데 매일 밤 7시부터 10시까지 끌을 휘둘렀죠.”

 

“그래서요?” 레오터가 흘끗 방을 둘러보고 휘트모어의 자취를 찾더니 계속했다.

 

“그 사람은 어디 있죠? 죽어버렸나요?”

 

그녀는 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아니오. 의욕이 없어져 봉투 만드는 공장에 취직해 버렸습니다.”

 

“왜요?”

 

“해고되었거든요.”

 

주인은 대리석에 조각된 문자에 손을 갔다 댔다.

 

“이 이름은 하이트죠. 철자가 틀렸어요. 화이트(White)로 해야 할 것을 말이에요. 가엾은 사람이에요, 휘트모어 씨는. 열등감이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소한 잘못으로 해고당하고 말았어요.”

 

“나는 어쨌든 좋소.”

 

월터는 발을 질질 끌며 방으로 들어가 레오터에게 등을 돌리고 빛이 바랜 갈색 여행 가방을 열기 시작했다. 주인은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휘트모어 씨는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어요. 매일 아침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끓이는데 커피를 한 스푼이라도 흘리는 것도 휘트모어 씨에게는 굉장한 일입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전부 던져버리고 며칠씩이나 커피를 안 마시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뭔가 실수했을 때 그 낙담하는 모습은 정말 딱하답니다. 항상 오른발부터 신던 신발을 왼발부터 먼저 신어버리면 다시는 신발을 신지 않을 것처럼 10시간이건 12시간이건 맨발로 있습니다. 아무리 추운 아침에도 말이죠. 그래서 이름의 철자가 틀린 편지라도 오면 ‘수취인 불명’이라고 봉투에 써서 다시 우체통에 넣어버려요. 휘트모어 씨는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런 핑계로 제 기분이 달라질 것 같아요?”

 

레오터는 차갑게 말했다.

 

“월터, 당신 뭐 해요?”

“옷장에 당신의 실크 드레스를 걸고 있어. 빨간 드레스 말이야.”

 

“그만둬요. 이곳에서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여자란 왜 이리도 멍청할까’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주인은 한숨을 쉬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죠. 휘트모어 씨는 여기서 내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내가 식료품 가게에서 칠면조를 사오는 동안에 그 사람은 트럭을 빌려 비석을 이 방으로 가져왔어요. 내가 돌아왔을 때는 아래층에서 이미 대리석을 조각하기 시작하고 있었어요. 너무나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나도 불평 한마디 못했습니다. 너무 신이 나서 일하다가 철자를 틀려버리고는 그대로 한마디도 없이 방에서 뛰쳐나가버린 거죠. 방세는 화요일까지 지불되었지만 다시는 이 방에는 들어오기 싫어하는 것 같아 내일 아침 우선 트럭으로 운반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에요. 그러니 하루쯤 옆에 두어도 괜찮겠죠?”

 

월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레오터? 이불 안에까지 죽은 사람이 있는 게 아니야.”

 

말투가 너무나도 강압적이라 레오터는 월터를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 레오터는 남편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고 표정이 더욱 굳어져버렸다. 그리고 주인에게 손가락질하며 불평했다.

 

“당신은 돈을 벌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월터, 당신은 자고 싶은 거죠? 두 사람 모두 ‘나가자’는 말을 못하도록 말이에요!”

 

월터는 질린 얼굴로 주인에게 돈을 지불했다. 그 동안에도 레오터는 계속 떠들어댔다. 주인도 마치 그녀가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듯 무시하고 편히 쉬라고 했다.

 

“거짓말쟁이!”

 

레오터는 문을 닫고 나가는 주인을 향해 소리쳤다. 월터는 옷을 벗자마자 침대로 들어갔다.

“서서 비석만 보고 있지 말고 불이나 꺼. 나흘간의 여행으로 너무 지쳤어.”

 

야무지게 팔짱을 긴 레오터의 팔이 평평한 가슴 위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함께 자는 건가.”

 

그녀는 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20분 후, 여러 가지 소리와 움직임에 견딜 수 없어 월터는 이불 아래서 독수리 같은 얼굴을 내밀고는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끔벅거렸다.

 

“레오터, 아직 안 잤어? 아까부터 불 끄고 자라고 했잖아. 뭐 하고 있는 거야.”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레오터는 무릎을 꿇고 붉은색, 하얀색, 분홍색의 윤이 나고 싱싱한 제라늄을 꽂은 화병을 돌 옆에, 그리고 또 막 꺾은 장미를 꽂은 깡통을 환상의 묘 앞에 놓고 있었다.[2] 마룻바닥에 있는 큰 가위는 흠뻑 젖어 있었다.

 

지금 그녀는 알록달록한 리놀륨 장판과 닳아서 귀퉁이가 다 떨어진 방석을 기분 좋게 쓸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곧 등을 펴고 죽은 사람을 모독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넘고 그곳을 멀리 돌아 방구석까지 갔다.

 

“이제 끝났다.”

 

레오터는 불을 끄고 삐걱거리는 침대에 몸을 누였다. 그러자마자 침대가 삐걱거리는 것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남편이 소리쳤다.

 

“도대체 어쩔 셈이야!”

 

남편의 목소리가 날아들자 주위의 암흑을 응시한 채 여자는 말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위에서 자고 있으면 누구든 편하게 잘 수 없어요. 그래서 주문을 걸어 꽃을 바치는 거예요. 죽은 사람이 밤늦게 일어나 덜거덕거리며 돌아다니지 않도록 말예요.”

 

월터는 레오터가 응시하고 있는 어둠을 바라보았지만 적당한 대답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월터는 그저 혀를 차고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30분도 채 되지 않아 레오터는 월터의 팔꿈치를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며 그의 귀에다 대고 겁먹은 소리로 빠르게 속삭였다.

 

“월터! 일어나요. 일어나.”

 

만약 필요하다면 한밤중 내내 남편의 기분 좋은 단잠을 방해할 셈이었다.

 

 

 

 

 

 

 

“왜 그래?”

 

“화이트 씨예요! 화이트 씨의 유령이 이 방에 나타났어요!”

 

“무슨 소리야. 잠이나 자!”

 

“거짓말이 아니에요. 들어보세요.”

 

월터는 귀를 기울였다. 리놀륨에서 아래로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분명치 않은 사내의 목소리가 슬프게 울렸다.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슬픈 목소리였다. 월터는 일어났다. 남편의 움직임을 알고 레오터는 흥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들었죠, 들었죠?”

 

월터는 차디찬 리놀륨 바닥에 발을 내딛었다. 아래층의 소리는 가성으로 변했다. 레오터는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조용히 해. 안 들리잖아.”

 

화난 듯이 월터가 말했다. 그리고 심장 고동이 들릴 정도의 고요 속에서 귀를 바닥에 붙였다.

 

“꽃을 쓰러뜨리면 안 돼요!”

 

레오터는 소리쳤다.

 

“바보 같은 소리 말아!”

 

월터도 다시 긴장한 듯 듣고 있다가 욕을 퍼부으며 침대에 들어왔다.

 

“아래층에 누가 있어서 그래.”

 

월터가 투덜거렸다.

 

“그래요. 그게 화이트 씨라니까요.”

 

“아니야. 화이트 씨가 아니야. 우리들은 이 집 2층에 있잖아. 아래층에 누가 묵고 있어. 들어봐.”

 

아래층에서는 다시 가성이 들렸다.

 

“저건 부인 목소리야. 남편에게 다른 사람의 부인을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하잖아. 두 사람 모두 취해 있어.”

 

“거짓말 말아요!”

 

레오터는 억지 부리며 말했다.

 

“침대가 무너질 정도로 떨고 있으면서 허세 부리지 말아요. 유령이에요. 분명해요. 여러 가지 목소리로 말하고 있어요. 예전에 한론 할머니가 예배 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검둥이하고 아일랜드 사람과 여자 두 명의 목소리와 청개구리 소리를 합친 목소리로 잘난 듯이 떠들어대던 그 목소리예요.[3] 죽은 화이트 씨가 오늘밤 여기에 온 우리들을 증오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들어보세요!”

 

그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래층의 소리는 커졌다. 월터는 팔꿈치를 짚고 엎드려 포기한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웃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웃을 기력조차 없었다.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관 속에서 일어났어요!”

 

레오터가 째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일어났어요! 월터, 지금 여기를 나가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는 우리 두 사람 모두 싸늘하게 식어 있을 거예요!”

 

다시 물건이 떨어지고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말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레오터가 울음을 터뜨렸다.

 

“무덤에서 나왔어요. 자유롭게 우리들 머리 위를 지나다니며 발을 쿵쿵 구르고 있어요.”

 

그때 남편은 옷을 다 입고 침대 옆에서 부츠를 신고 있었다.

 

“이 건물은 3층까지 있어.” 셔츠 옷자락을 바지 속에 넣으며 월터가 말했다. “위층 사람들이 막 들어온 거야.” 그러나 울고 있는 레오터에게는 다시 이렇게 말해야 했다.

 

“이리와, 올라가서 그 사람들을 만나보자. 그러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서 취한 그 부인을 만나자구. 일어나, 레오터.”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레오터가 비명을 지르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웠다.

 

“또 관 속으로 들어왔어요! 나오려고 발버둥치고 있어요.”

 

 

 

 

 

월터는 불을 켜고 빗장을 끌렀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꽤 기분이 좋은지 춤을 추든 방으로 들어왔다. 사내는 초점 없는 푸른 눈동자와 주름살, 그리고 백발이 섞인 머리에 두툼한 안경을 끼고 있었다.

 

“이거 정말 실례합니다.”

 

작은 사내가 말했다.

 

“저는 휘트모어라고 합니다. 나갔다가 지금 돌아왔습니다. 참으로 놀랄 만한 행운을 만났답니다. 내 비석은 아직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흘끗 돌에 눈을 돌렸다.

 

“아! 있다, 있어! 좋아. 이걸…‥.”

 

그리고 몹시 구겨진 모포 아래에서 엿보고 있던 레오터를 눈치 챘다.

 

“인부들이 손수레와 함께 기다리고 있어요. 괜찮으시다면 지금 곧 여기서 비석을 운반하고 싶습니다. 1분도 안 걸릴 겁니다.”

 

월터는 아주 반기듯 웃었다.

 

“저 물건이 나간다니 잘됐군요. 자, 어서.”

 

휘트모어 씨는 체격 좋은 우람한 두 명의 남자를 방으로 들였다. 그는 기대에 부풀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너무 놀랐습니다. 오늘 아침까지 나는 자포자기한 패배자였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비석이 작은 손수레에 실렸다.

 

“바로 1시간 전 우연히 하이트라는 사람이 폐렴으로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이트 씨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화이트가 아니라 하이트란 말입니다. 그 사람의 부인을 방문하고 오는 참입니다. 부인도 이미 비석 준비가 되었다니까 기뻐하더군요. 어쨌든 하이트 씨가 죽은 지 1시간도 되지 않았습니다. 아! 나는 정말 행복하답니다!”

 

휘트모어 씨와 월터가 웃으며 악수를 하는 동안 비석은 손수레에 실려 방에서 나갔다. 놀라운 일이 차츰 정리되는 것을 레오터는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 모두 끝났어.”

 

휘트모어 씨의 모습 뒤로 문을 닫고 월터는 빙긋 웃으며 꽃은 세면대로 깡통은 휴지통에 버렸다. 암흑 속에서 월터는 레오터의 긴장된 침묵을 눈치 채지 못한 듯이 침대에 기어올랐다. 그녀는 오랫동안 한마디도 안하고 고독을 음미하면서 누워 있었다. 월터가 한숨을 쉬고 모포를 고쳐 덮어주는 게 느껴졌다.

 

“자자, 그 변변치 않은 것을 치워버렸어. 아직 10시 반이야. 잠잘 시간은 충분히 있어.”

 

월터는 희희낙락하며 레오터의 즐거움을 빼앗아갔다. 레오터가 입을 열었을 때 침대 밑에서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월터를 붙들고 의기양양하게 레오터는 외쳤다.

 

“어머, 또 그 소리. 우리 주위예요. 잘 들어보세요!”

 

월터는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었다.

 

“얼마나 더 설명해야 알아듣겠어? 당신, 머리라도 한 대 맞아야 정신 차리겠어!”

 

“잘 들어봐요.”

 

레오터는 속삭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귀를 기울였다. 노크 소리는 아래층에서 들렸다. 문이 열렸다.

 

“아, 당신이군요. 휘트모어 씨.”

 

분명치 않은 희미한 여자 목소리가 멀리서 슬프게 들렸다. 그리고 갑자기 침대 위에서 떨고 있는 레오터와 월터의 귀에 아래층 깊은 어둠 속에서 휘트모어 씨의 대답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하이트 부인. 비석을 가져왔습니다.”

 

 

 

[끝]

 

 

 

 

 

 

 

※ 안 봐도 되는 cyrus의 주석

 

 

[1] 도서 리뷰 (http://blog.aladin.co.kr/haesung/8452837)

 

[2] 제라늄과 ‘막 꺾은 장미’는 어디서 나온 걸까? 레오터가 꽃병에 담긴 꽃을 꺼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 꺾은 장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레오터는 장미꽃을 꺾기 위해 밖으로 나갈 것일까? 비석 때문에 벌벌 떨었던 레오터를 생각하면 밤중에 숙소 밖으로 혼자 나가 꽃을 구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3] 이 소설이 나온 시기가 1940년대. ‘검둥이(Nigger)’를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절이다. 1840년대에 아일랜드인들은 대기근을 피해 바다를 건너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지에 이주했다. 이들은 이민자라는 이유로 핍박과 차별을 견뎌야 했다. 레오터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검둥이와 아일랜드인 사람의 목소리가 합친 것’이라고 포현함으로써 흑인과 아일랜드인에 대한 차별적인 감정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 《공포특급 5 : 세계 편》 (한뜻, 1996)

 

 

 

『비석(The Tombstone)』<위어드 테일즈(Weird Tales)> 1945년 5월호에 발표되었다. <위어드 테일즈>는 1923년에 창간된 미국의 펄프 잡지(pulp magazine)다. 이 잡지는 1954년 1월에 폐간되기까지 과학, 미스터리, 판타지, 공포 등 다양한 장르 소설들을 선보였다. 오늘날 SF, 판타지, 공포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잡지에 실렸다.

 

 

 

 

 

 

 

 

 

 

 

 

 

 

 

 

 

 

 

 

 

 

 

 

 

 

 

 

 

 

 

 

 

 

 

 

 

 

 

 

 

 

 

 

 

 

 

 

 

 

 

 

 

 

 

 

 

 

* 프랑수아 레이몽, 다니엘 콩페르 《환상문학의 거장들》 (자음과 모음, 2001)

* 《러브크래프트 전집 1~4》 (황금가지, 2009~2012)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 크툴루의 부름 외 12편》 (현대문학, 2014)

*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황금가지, 2015)

 

 

 

 

<위어드 테일즈>에 작품을 발표한 작가로는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 어거스트 덜레스(August Derleth), 로버트 블록(Robert Bloch), 로버트 E. 하워드(Robert Ervin Howard),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Clark Ashton Smith),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 등이 있다.

 

 

 

 

 

브래드버리는 1942년부터 <위어드 테일즈>에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위어드 테일즈>에 처음 실린 브래드버리의 작품은 『양초(The Candle)』다. 이 시기의 브래드버리는 공포소설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어거스트 덜레스는 브래드버리에게 소설집을 발표해보라고 제안했는데, 덜레스는 잡지에 실린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을 책으로 만드는 ‘아컴 하우스(Arkham House)’ 발행인이었다. 덜레스의 도움에 힘입어 나온 결과물이 <Dark Carnival>이다. 이 소설집은 브래드버리의 첫 번째 단편집이며 『비석』뿐만 아니라 다음에 소개할 『장의사(The Handler)』 등 <위어드 테일즈>에 실린 작품들이 포함되었다.

 

『비석』은 거대한 비석이 놓인 방에 묵은 부부의 소동을 그린 이야기다. 부부는 방 아래층에 들리는 정체불명의 소리에 흥분하고, 긴장한다. 월터의 아내 레오터는 비석에 새겨진 이름의 인물, ‘화이트’의 유령이 지나가는 소리라고 주장한다. 사실 아래층에 들린 소리는 자신이 제작한 비석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이동한 휘트모어 씨의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슬픈 목소리의 정체는 밤중에 남편의 죽음을 지켜본 하이트 씨의 아내였다. 공교롭게도 ‘하이트’로 잘못 새겨진 비석의 주인은 부부 근처에 있었다. 하이트 씨 부부는 월터와 레오터 부부가 있는 방 아래층에 묵고 있었다.

 

 

 

 

 

이야기의 결말이 허무하다. 특히 원작을 TV 드라마로 각색한 <레이 브래드버리 극장(The Ray Bradbury Theater)> 6기 15화는 원작에서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의 긴장감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데 실패했다.

 

 

 

 

 

 

 

원작과 드라마 판의 차이점은 드라마 판에 비석의 이름이 ‘화이트’라고 새겨진 것(남편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은 론 화이트), 백발의 휘트모어를 ‘머리가 벗겨진 인물’로 묘사한 점, 그리고 결말(원작과 '조금' 다르다. 유튜브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보시라)이다. <레이 브래드버리 극장>은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총 6개의 시즌(season)으로 방영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시즌 6 마지막 에피소드가 <비석> 편이다…‥.

 

레오터 역을 맡은 셜리 듀발(Shelley Duvall)스티븐 킹(Stephen King) 원작,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영화 <샤이닝(The Shining)>에서 광기 어린 소설가(잭 니컬슨 분)의 아내로 출연했다. 셜리 듀발은 스탠리 큐브릭 때문에 자신이 신경쇠약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큐브릭은 영화 한 장면을 위해서 100번 넘게 촬영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녀의 최근 소식이 좀 안타깝다. 예전보다 TV나 영화 섭외가 줄어들었고, 정신병에 시달려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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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7-08-31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SF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환상소설도 쓴 분이네요.ㅎ

cyrus 2017-08-31 12:41   좋아요 1 | URL
레이 브래드버리의 문학 범위의 폭이 넓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SF 작가들과 다른 매력이 있어요. ^^

transient-guest 2017-08-31 14:26   좋아요 1 | URL
주말에 혹시 logos에 갈 기회가 있으면 (아직 재고처리하는 과정입니다 곧 문을 닫겠지요...산타크루즈 유일의 중고서점입니다만 곧 사라지는) 아직 남아있는 재고를 찾아봐야하겠습니다.ㅎ

AgalmA 2017-09-02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레이 브래드버리 신간 2권이 아작에서 나왔잖습니까. 이 페이퍼에 추가하셔야지요^^!

cyrus 2017-09-02 20:48   좋아요 1 | URL
사지 않았고, 읽지 않은 신간도서는 페이퍼에 소개하지 않는 것이 제 글쓰기의 원칙이라서 추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서 읽고, 리뷰로 쓰고 싶습니다. ^^

AgalmA 2017-09-02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래드버리를 이 정도로 소개할 정도면 충분히 자격있으신데 소신에 짝짝짝요~

cyrus 2017-09-02 20:53   좋아요 0 | URL
《화씨 451》, 《일러스트레이티드 맨》도 아직 안 읽어봤어요. 브래드버리에 입덕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ㅎㅎㅎ

AgalmA 2017-09-02 20:57   좋아요 1 | URL
막 입덕할 때가 독서 묘미이기도 하죠^^ 저도 최근에 처음 접하게 된 레스코프에 깜짝 놀라 <왼손잡이>도 꼭 읽을 생각입니다^^

2023-08-08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2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3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