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대기 샘터 외국소설선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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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위치는 신기하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우연인 이채로운 일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몹시 덥거나 추워져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 그만큼 지구는 매우 예민한 위치에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지구의 위치는 또한 생명이 가능한 대기를 만들어 주었다. 금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 질소로 이루어진 죽음의 평형상태다. 따라서 금성의 표면이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 지구는 적절한 온도가 나오도록 유지하고 있는 살아있는 별이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지구의 절규와는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다. 좀 가혹한 얘기지만, 인간은 지구라는 별에 착 달라붙어 질병을 일으키는 ‘미세 먼지’다. 지금까지 인간이 ‘산업화’와 ‘미래를 위한 진보’ 등의 명분으로 지구에 어떤 일을 해왔는지 돌이켜보면 그럴 법도 하다.

 

민간 우주 항공사 ‘스페이스 엑스(Space X)’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앞으로 십여 년 내에 화성에 사람을 보내고 궁극적으로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꿈을 밝혀 왔다. 그는 또 저궤도 위성을 수백 개 띄워서 지구 전역을 연결하고, 미래에는 이 시스템을 확장해 화성에서도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화성은 그동안 지구 이외의 태양계에서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행성으로 꼽혀왔다. 무엇보다 화성은 중력, 자전 속도, 대기의 존재 등에서 지구와 가장 흡사한 과학적 조건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화성의 하루는 24시간 37분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과 산소의 존재이다. 생명체의 존재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비록 극소량이긴 하지만 지난 1976년 미국의 우주선 바이킹 호(Viking spacecraft)의 화성 탐사로 수증기와 산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화성 표면의 물기 없는 골짜기들과 강바닥, 과거 화성의 기후상태에 대한 흔적들은 화성이 한때는 물로 가득 채워져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인간의 화성 거주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우린 ‘낙관적 전망에 파묻힌 의문’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과연 지구를 두고 화성에 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제2의 지구를 만드는 일은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화성에 ‘화성인’으로 알려진 생명체가 살 수 있다는 상식은 정말 진실일까. 만약 화성인이 살고 있다면 이는 과연 인간에게 유익한 것일까. 책을 펼치면 길이 나온다고들 하지만, 어떤 책에는 광활한 우주가 펼쳐져 있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마음대로 우주에 여행할 수 있는 시대는 오지 않았지만, 대신 책으로 우주여행을 떠날 수는 있다. 그 책이 바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화성 연대기》(샘터, 2010)다. 이 책에는 우주의 미래뿐만 아니라 ‘왜 우리는 화성인을 만나야 하는가’라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근본적 질문이 압축되어 있다.

 

《화성 연대기》는 독자들을 인류가 정착한 화성으로 실어주는 타임머신(Time Machine)이다. 타임머신 조종사는 레이 브래드버리다. 그는 능숙하게 타임머신을 조종하여 1999년부터 2006년까지, 그다음에 연도를 훌쩍 건너뛰어 2026년의 우주로 향한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미래의 지구는 예전의 영롱한 푸른빛을 내지 못한다. ‘죽은 행성’이나 다름없다. 화성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인류는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으로 만들기 위해 화성에 나무를 심고, 도시를 세운다. 운명을 개척하기 시작한 지구인들은 ‘화성의 지구화’에 성공했지만,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화성인들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었다. 이 소설은 화성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과 정반대의 관점을 제시하며, “과학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진실을 끄집어낸다.

 

지구인들이 지배한 화성은 황량한 아름다움이 고요하게 감돌지 않는다. 인간의 발길이 닿은 그곳은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적의에 찬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세계이다.

 

‘메뚜기 떼가 이집트 온 땅에 몰려와 이집트 온 영토에 내려앉았다… 그것들이 온 땅을 모두 덮어 땅이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우박이 남긴 땅의 풀과 나무의 열매를 모조리 먹어버렸다. 그리하여 이집트 온 땅에는 들의 풀이고 나무고 할 것 없이 푸른 것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구약성경의 「출애굽기」 편에 보면 무시무시한 메뚜기 떼의 습격을 언급한 기록이 있다. 메뚜기 떼는 우리에게 공포로 각인돼 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초토화하는 극성의 대명사다. 그것은 10가지 재앙 중의 하나다. 브래드버리는 ‘화성을 파괴하는 침략자’로 변한 지구인들을 ‘메뚜기 떼’에 비유한다.

 

 

로켓들은 밤에 치는 북처럼 왔다. 떼거지로 활짝 핀 장밋빛 연기처럼 내려앉는 메뚜기 떼처럼 왔다. 그런 다음 로켓에서 손에 망치를 든 사람들이 뛰어나와 낯선 세계를 두들겨 낯익은 모습으로 바꾸고 모든 미지의 요소를 패서 부수어버렸다. 입에 못들을 여러 가닥의 술처럼 물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쇠 이빨을 가진 육식동물처럼 보였다.

 

(『2002년 2월 메뚜기 떼』 180쪽)

 

 

19세기 사람들은 우주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파동 형태의 빛을 전달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맑고 깨끗한 대기(大氣)’라는 뜻을 가진 에테르(ether)다. 그러나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Michelson-Morley experiment)이 성공하면서 에테르의 존재를 인정하기 어렵게 되었고, 아인슈타인(Einstein)은 물리학의 구 패러다임(paradigm)이 누워 있는 관에 못을 박았다. 빛을 전달하는 에테르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에테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고독’이라는 감정의 파동을 퍼뜨리는 매질(媒質)이다. 우리는 우주 개발을 꿈꾸면서도 여전히 낯설고 어두컴컴한 우주에 혼자 남은 고독을 무서워한다. 화성을 주제로 한 브래드버리의 작품 속에는 이 ‘고독’이라는 에테르가 스며들어 있다. 화성에 오래 거주한 지구인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지구에 남아있던 고독이 에테르에 실려 우주를 둥둥 떠나디다가 저 멀리 있는 화성 표면에 안착했을지도 모른다.

 

 

우주는 마취제였다. 1억 킬로미터의 거리는 사람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기억을 잠들게 하고,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없애버리고, 과거를 지우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일에 전념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2005년 11월 지켜보는 사람들』 320~321쪽)

 

 

인간의 심장 속에 어둠과 미지에 대한 공포심이 흐르고 있다. 그 흐릿한 대기 속에 홀로 삼켜진 채 화성의 비밀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현실이라 부르던 세계의 존재는 아스라해지기만 한다. 그들은 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공포감을 억누르기 위해 화성인에 비협조적으로 대한다. (『2005년 11월 비수기』의 샘 파크힐) 지구인들은 화성을 지구처럼 비슷하게 만들려고 ‘낯선 것’이라고 느껴지는 대상을 가차 없이 파괴한다. 그들의 행동은 우리가 계속 억누르는 어두운 면이다. 미지의 공포에 대항할 수 있어도 일시적 효과에 그칠 뿐이다. 왜곡된 공포심은 이성과 상식마저 억눌러 ‘파괴’ 본능을 깨운다.

 

인류와 화성의 미래를 그린 동화는 결국 고독으로 수렴한다. 《화성 연대기》의 고독은 좀처럼 지구인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화성인은 좀처럼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지구인이 목격했다던 화성인은 오랜 우주 생활에 지쳐버린 지구인들이 겪는 신기루일 수 있다. 지구 밖에서도 지극히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화성인과 만남을 고대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적막한 우주 속에서 고독하고 쓸쓸하게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화성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화성 연대기》는 한 번쯤 권해볼 만한 책이다. 눈으로 한 번 읽은 다음에, 책을 덮고 나서 두 눈을 감아보아라. 자신의 고향과 비슷한 화성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작가의 영혼이 독자에게 질문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당신들은 정말로 화성인을 만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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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09-1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만나기 싫어요..2026년이면 10년후인데 그때도 좋은 책 읽고 이렿게 댓글달고 싶어요.ㅎㅎ

cyrus 2017-09-12 20:00   좋아요 0 | URL
만약에 지구인이 화성에 거주하면 거기 책 읽는 사람이 있을까요?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9-12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 브래드버리는 ‘화씨451‘로 알게 됐어요.
이 책도 재밌을 것 같아요.
님의 문제제기도 호기심을 자극하구요~^^

cyrus 2017-09-12 19:42   좋아요 0 | URL
제가 브래드버리의 진가를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몇 년 전에 브래드버리가 영면했을 때 네이버 블로거들이 추모 글을 남겼습니다. 그분들의 심정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 두 권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

sprenown 2017-09-12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화씨451을 트뤼포 영화로 봤습니다. 솔직히 이런 공상과학소설을 쓰는 사람인지도 몰랐어요. 종이책없는 세상은 끔찍합니다. 검지에 침묻혀서 휘리릭 넘기는 질감과 소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yrus 2017-09-13 16:37   좋아요 0 | URL
《화성 연대기》에는 상상력이 허용되는 문학(판타지, 호러)을 규제하는 미래 세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중에 《화씨 451》과 비교해보고 싶습니다.

카스피 2017-09-13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성하면 재작년인가 화성에서 홀로 살아남기를 그린 마션이란 영화가 알려지기 전까지는 보통 화성인의 침략을 다룬 우주 전쟁의 이미지가 상당히 강한 편이죠.
화성연대기에서 인간은 이미 1999년에 화성에 가게되는데 아직까지 인간이 화성에 가기에는 무척 요원해 보입니다(이 책은 1950년도에 나왔는데 저자는 한 50년뒤면 인간이 화성에 닿을거란 낭마적인 상상을 한 셈이죠)
화성연대기는 70년대 후반 동서추리문고,1980년대 모음사에서 나왔고 샘터에서도 다시 재간될 정도로 SF명작중의 한권인데 ㅎㅎ 전 이 세 출판사 책을 모두 갖고 있네요^^

cyrus 2017-09-13 16:37   좋아요 0 | URL
박상준 씨가 쓴《화성 연대기》서문에 보면 2013년에 원작이 영화화된다고 나와 있어요. 아직 소식이 없는 걸로 봐서는 제작 준비 중이거나 소리 소문 없이 무산되었을 것 같습니다. ^^;;

카스피 2017-09-13 18:34   좋아요 0 | URL
읽아보셔 잘아시겠지만 일종의 연작 단편 형식이라 영화로 만들기 좀 애매합니다.차라리 드라마로 만드는 것이 아마 나을 듯 싶어요.

AgalmA 2017-09-13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두려움을 기필코 대상화해서 보려는 특징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야 구체적인 방도를 살필 수 있어서겠죠. 생존본능에 기인하는 거겠지만 화성이나 외계인에 대한 지구인의 공포는 사실보다 우리 감정에 기인하는 게 더 크죠.
이런 문학이 시야를 더 넓혀주는 역할을 해서 좋아요 :)

cyrus 2017-09-13 16:3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불명확하고 낯선 대상을 만나면서 생기는 두려운 감정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 소설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감정이 심해지면 자신과 다른 대상을 ‘비정상적’으로 인식해서 ‘차별’하고 ‘혐오’하게 됩니다.
 
극한의 경험 -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희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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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이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금언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실감케 하는 말이다. 이 말의 배경에는 과학이 예술이나 종교와는 달리 주관적 가치 판단에서 벗어나서 사물의 본질과 현상의 구조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과학관이 깔려있다. 서구 문명은 이성을 가진 인간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데카르트(Descartes)생각하는 나’, 즉 이성을 가진 인간을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모범 답안으로 제시한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무기 삼아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게 세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자, 이제 인간은 세계를 인간을 위한 세계로 개조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다. 그렇게 성립한 것이 바로 인본주의.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에 따르면 과학혁명은 인간이 신(종교)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이제 인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로 자리 잡게 되고, ‘중심의 중세사회에서 인간중심의 근대사회로 이행한다. 하라리는 근대 사회에서 지식을 얻는 방법을 한눈에 보여주는 자신만의 공식을 내세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 2015),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에 나오는 것들이다. 최근에 나온 하라리의 신작 극한의 경험(김영사, 2017)을 읽기 전에 이 두 권의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신작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사실 극한의 경험따끈따끈한 신작이라고 소개하기가 애매하다. 극한의 경험사피엔스호모 데우스보다 먼저 나온 책이다. 극한의 경험2008년에 출간되었고, 2014년과 2016년에 각각 사피엔스호모 데우스가 나왔다. 하라리의 전공 분야는 중세사와 군사 역사다. 하라리는 자신의 두 가지 전공 분야를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엮어 나가면서 인류에게 영향을 끼친 전쟁 문화가 무엇인지 살핀다.

     

하라리는 근대인들이 전쟁에 대해 낭만적으로 접근한 것에 주목한다. 근대 이전 중세 사회에서 전쟁은 지옥을 방불케 하는 재앙이다. 중세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켜 패배하면 신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전쟁을 피하거나 전쟁터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자신에게 신의 은총이 내리길 간절히 기도했다. 18세기 후반부터 낭만주의가 등장함으로써 전쟁을 바라보는 근대인들의 눈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나온 전쟁 회고록을 살펴보면 대다수 전쟁을 혐오하지 않는 관점을 취한다. 오히려 전쟁 회고록 글쓴이들은 전투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치중한다. 이러한 글쓰기 전략은 전쟁이 인간의 감정을 압도하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에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황홀한 감정을 숭고로 명명했고, 숭고의 개념을 광활한 자연이 아닌 전쟁터에서 찾으려고 했다. 참전 군인들은 참호에서 생활하고, 군사 훈련을 받고, 전우와 적군이 총탄에 맞아 쓰러져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다. 군인은 마음이 아닌 몸으로 전쟁 경험을 체득한다. 총소리만 듣고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곱상한 청년이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생활하면 극한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전사가 된다.

 

하라리는 군인들이 전쟁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특이점을 계시라고 말한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신의 눈치 받지 않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전쟁을 긍정적 계시 경험[1]으로 받아들인다. 종전 이후에 참전 군인들은 나라를 지킨 영웅으로 대접받고, 전사자들은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쳐 희생한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사회는 참전 용사, 전사자들의 전쟁 경험권위를 공적으로 부여한다. 전쟁을 경험한 자는 전쟁 회고록을 써서 전쟁이 숭고한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극한 상황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전쟁의 교훈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전쟁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품게 되고, 억제된 감정의 해방을 분출하기 위해 직접 전쟁터에 뛰어든다. 앞서 소개한 지식=경험X감수성 공식이 전쟁을 바라보는 인식까지 바꿔 놓은 것이다. 베이컨의 금언을 빌리자면 근대인들은 전쟁을 아는 것이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라리는 전쟁의 역사를 지식=경험X감수성공식으로 설명한 서술 방식에도 결함이 있다고 밝힌다. 나는 이 책에서 하라리가 놓친 변수 하나남성성(masculinity)’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전쟁 회고록 집필에 열중하는 낭만주의자 남성들의 모습은 군대 경험담을 로 푸는 한국 남성의 모습과 조금 비슷하다. ‘국가의 아들이 된 한국 남성은 각종 군사 훈련을 받는 동안 간접적으로나마 전쟁 분위기를 느껴보고, 국가 수호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있는 건장한 남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이다. 군대를 경험한 남성들은 자신들이 국방의 의무를 지켰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당연히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인식한다. 군대가 가지는 남성성의 강요 및 군대 자체가 만들어내는 남근주의적 인식이 군대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 즉 군 미필 남성, 성 소수자 그리고 여성의 사회 참여를 배제한다. 군대를 경험한 남성이 군 가산점제 도입을 반대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전략은 매번 한결같다. “여성은 군대 경험을 하지 않았으니, 군대 생활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군 가산점제 찬성하는 남성들의 주장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2]는 낭만주의자들의 금언과 일맥상통하다. 이 말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보편적 남성성으로 남아 있다. 전쟁을 특별한 경험적 계시로 미화하는 시각이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게 하는 변수가 바로 군대와 남성성의 찰떡같은 조합이다. 따라서 나는 하라리의 공식에 '새로운 변수'를 추가해서 이렇게 바꾸고 싶다.

 

 

지식 = 경험 X 남성성

 

 

 

 

 

[1] 극한의 경험391

 

[2] 같은 책,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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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9-0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도 있죠.
말씀처럼 남성이 아닌 남성성이 문제인거 같습니다.
남성성도 인본주의 영향인지 궁금해집니다. ^^

cyrus 2017-09-09 07:28   좋아요 0 | URL
남성성과 인본주의의 관계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

2017-09-08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9 07:33   좋아요 1 | URL
최근 북핵 위기가 고조되니까 ‘전쟁을 하자‘, ‘우리나라도 핵무기를 개발하자‘ 등 호전적인 주장의 댓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이런 주장들이야말로 ‘행동없는 지식‘입니다. 사실 ‘지식‘이라고 보긴 어렵고, 생각없는 개소리입니다.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저런 개소리들이 나옵니다.

sprenown 2017-09-12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피엔스 밖에 읽어보지 못해서 저자의 정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잘모르겠습니만,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전쟁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품게 되고, 억제된 감정의 해방을 분출하기 위해 직접 전쟁터에 뛰어든다.라는 표현은 너무 지나치지 않나 생각합니다.(전쟁에 참여하는 남성들은 애국적 지원병보다 강제징집병들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요? 또, 2차대전시 레지스탕스와 일제강점기 우리 무장독립군도 환상과 경험을 위해 전쟁터에 뛰어 들었을까요?) 저도 물론 현역으로 전방에서 군복무를 했습니다만, 전쟁은 두렵고 무섭습니다.포탄이 난무하고 총알이 빗발치는곳에서 언제죽을지 모르는데 두렵지요..제가 남성성이 부족한, ‘찌질한 남자‘여서 그럴까요? 요즘 여기 알라딘서재에 웬 페미니즘 바람이 불어서 인지, 기획에 의한 마케팅(책을 구매하는 20대후반내지 30초반의 여성들을 타킷으로하는)인지 페미니즘관련서와 그에 대한 의도된 서평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성평등이슈를 공론화해서 이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겠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그런거라면 적극 찬성합니다만...

cyrus 2017-09-10 19:07   좋아요 1 | URL
《극한의 경험》을 비판하는 독자평도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sprenown님처럼 저자의 입장에 문제를 제기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책이 서양 전쟁사에 국한되어 있어서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남성성(강하고, 용기 있고, 마초 같은)이 없다고 해서 ‘찌질한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자들만 있는 사회 집단 내에서 ‘남자‘로 인정받으려면 ‘남성성‘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면 안 된다‘, ‘남자는 울면 안 돼!‘ 등이 있어요. 이를 어기면 ‘남자답지 않은 여자‘로 놀림거리 받았어요.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남성성의 실체와 문제점을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사회가 은연중에 강요하는 남성성은 남성, 여성 그리고 성 소수자들 모두 악영향을 끼칩니다. 저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성을 비판하는 것이지 ‘남자‘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성성에 갇혀 있거나 남성성이 낳은 편견에 사로잡힌 남성은 비판합니다. 그러나 이를 남자 전체를 비난하고, 혐오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지금도 페미니스트들의 순수한 의도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매도하는 인식이 남아있습니다.

sprenown 2017-09-12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뿌리깊은 문화적 전통이라는게 의식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양문화의 뿌리라 할수 있는 기독교, 성경자체가 굉장히 남성우위, 가부장적으로 기술되었고, 우리나라 역시 조선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내훈을 편찬한 이후 급격히 남존여비사상이 확산되었죠. 결국 의식의 확장과 공감을 통한 제도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법상 호주제폐지나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 간통죄폐지,정책상의 양성평등제도 등도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만 보다 많은 분야에서 제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죠. 관심있는 시민사회단체간의 연대를 통한 입법화,제도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얘기가 되겠지만 여성스스로도 통렬한 자각을 통해 스스로의 자존을 무너뜨리는 언행을 삼가는 것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cyrus 2017-11-16 16:56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남존여비사상의 기원과 그 배경을 거의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남성이 사회적 · 문화적 전통이 낳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남녀가 처한 부당한 상황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인데요, ‘공감을 통한 제도화’에 찬성합니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차별적인 제도를 보완하는 대안을 주장합니다만, 급진적 페미니스트가 지적하는 한계가 되기도 합니다.

sprenown 2017-09-12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그러나 희생은 하지 마세요.

cyrus 2017-09-12 15:12   좋아요 1 | URL
sprenown님.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페미니즘 관련 글을 쓰려고 합니다. 비판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sprenown 2017-09-12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관련 서적 한권 읽지도 않았는데...땡길때 몇권 읽고,공부도 좀 해서 비판다운 비판해 보겠습니다.

cyrus 2017-09-12 19:45   좋아요 1 | URL
sprenown님을 만나기 전에는 글 쓰는 것에 매너리즘을 느꼈어요. 최근 sprenown님을 만나게 되니까 의욕이 생깁니다. 저는 적극적인 ‘반응‘을 원했습니다. ^^
 

 

 

 

※ 레이 브래드버리 – 장의사(The Handler) [1부]

http://blog.aladin.co.kr/haesung/9573458

 

 

※ 레이 브래드버리 – 장의사(The Handler) [2부]

http://blog.aladin.co.kr/haesung/9580203

 

 

 

 

 

베네딕트는 시체에서 시체로 돌아다니며 그들 몸 위에 온갖 모욕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맞닥뜨린 것은 메리웰 브라이스라는 간질병 발작이 지병인 노인이었다. 브라이스 노인은 지금까지 몇 번인가 이곳으로 운반되어 왔지만 이장 직전에 되살아난 인물이었다. 베네딕트가 시트를 젖히자 브라이스 노인이 눈을 깜박거렸다.

 

“아아!”

 

베네딕트는 시트 위로 쓰러질 뻔했다.

 

“이봐, 안 일으켜 줄 거야!”

 

시트 밑의 인물이 외쳤다.

 

“그렇고말고, 처음부터 전부 들었지!”

 

노인은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꼼짝도 못하고 이렇게 누워 있는 동안에 네놈이 지껄이는 걸 빠짐없이 들었어! 아아, 네놈은 지독한 놈이다, 무서운 놈이야, 악마, 요괴다. 모독자, 사디스트, 비뚤어진 악마, 무서운 놈이야. 기다리고 있어라, 나는 이곳을 떠나서 시장과 시의원들 모두에게 이 일을 얘기하겠어!”

 

노인은 입에 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안 됩니다!”

 

베네딕트는 무릎을 꿇었다.

 

“여기를 나가게 해 줘! 네놈은 무서운 놈이야. 몇 년 동안이나 이런 일이 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도 누구 한 사람 그 사실을 몰랐다니! 네놈은 괴물이야!”

 

“아닙니다.”

 

그는 일어서려다가 다시 털썩 주저앉아 공포에 떨었다. 노인은 쌀쌀맞은 모멸감을 담아 말했다.

 

“네놈이 한 그 끔찍한 소리는 다 뭐야. 그리고 그 끔찍한 짓거리들은!”

 

“죄송합니다.”

 

베네딕트는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이 일어서려고 했다.

 

“안 됩니다!”

 

베네딕트는 노인에게 들러붙었다.

 

“안 놔!”

 

“안 됩니다!”

 

베네딕트는 모질게 밀쳐지자 굵은 주사기에 손을 뻗어 그것을 노인의 팔에 찔렀다.

 

“이놈이! 사람 살려!”

 

 

 

 

 

노인은 시트에 뒤덮여서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창문 쪽으로 쓰러질 듯한, 묘석이 늘어진 묘지 쪽으로 보이지 않는 눈을 부릅떴다.[13]

 

“이봐, 거기 묘석 밑에 잠들어 있는 여러분! 도와 줘요, 내 말을 들어 줘!”

 

노인은 입에 거품을 물며 털썩 쓰러졌다. 이제 곧 죽으리라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여러분, 내 말을 들어 줘요. 당신도, 당신도, 그리고 당신도 빠짐없이 모두. 이놈은 오랫동안 이런 끔찍한 짓을 해 왔어. 이 이상 계속하게 할 순 없어!”

 

노인은 입가의 거품을 핥으면서 점점 기력이 쇠퇴해 갔다. 베네딕트는 멍하니 그곳에 서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것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라고, 절대 아무것도 못해.”

 

“모두 무덤을 나와!”

 

노인이 말했다.

 

“도와 줘! 오늘밤이라도, 내일이라도, 언제라도 좋아! 이놈에게 덤벼들어서 없애 줘! 아아, 무서운 놈이야!”

 

노인은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어리석군.”

 

베네딕트는 마비된 혀로 말했다.

 

“당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야. 자, 빨리 뒈져 버려.”

 

“모두 일어나! 모두 나오라고! 도와 줘!”

 

“이제 그만 지껄여. 내 기분이 나빠진다고.”

 

방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밤이었다. 밤이 깊었다. 노인은 큰소리로 떠들다가 점점 기력이 약해져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소 지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자마자 숨을 거두었다.

 

“네놈은 모두를 골탕 먹였군, 무서운 놈이야. 하지만 오늘밤에야말로 네놈이 따끔한 맛을 보게 될 걸.”

 

그날 밤은 묘지에서 폭발이 있었다, 라고 전해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일련의 폭발음과 함께 이상한 냄새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노호하는 소리가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주변에서는 빛과 번개가 엇갈리고 교회의 종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지고 묘석은 쓰러지고 만물이 서로 저주하고 물건이 마구 공중을 날아다니고 뒤쫓기는 자의 비명, 갖가지 그림자, 시체 임시 안치장의 불빛이 이리저리 어른거렸고 그곳을 재빨리 출입하는 사물의 모습, 창은 깨지고 문은 경첩에서 떨어지고 나뭇잎은 날아다니고 철문이 삐걱거리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베네딕트의 모습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사라졌나 싶으면 다시 홱 나타났다. 그리고 마침내는 베네딕트의 고통에 찬 절규가 울려 퍼졌다. 그 후에는‥… 잠잠해지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마을 사람들은 시체 임시 안치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과 교회를 빠짐없이 조사한 뒤로 묘지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피가, 엄청난 양의 피가 여기저기 튀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마치 하늘에서 피비가 내린 것 같았다. 그러나 베네딕트의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 게 뭐야.”

 

그것이 모두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 해답이 발견되었다.

 

묘지를 걷고 있던 그들의 발걸음이 어느 깊은 나무 그늘에서 멈췄다. 그곳에는 옛 시대의 묘석이 죽 늘어서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는 작은 새소리도 없다. 두꺼운 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도 여기서는 전구 빛처럼 약하고 가냘프게 마치 연극의 소도구처럼 맥없는 빛에 불과했다. 그들은 어떤 묘석 앞에 멈춰 서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 여기다!”

 

사람들은 칙칙하고 이끼가 낀 묘비를 들여다보고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곳에는 마치 손가락으로 급히 새겨 넣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 손톱으로 새긴 것인지 흔적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음과 같은 묘비명이 새겨져 있었다.

 

 

 

 

베네딕트의 묘

 

 

 

“이것 봐!”

 

누군가가 외쳤다.

 

“이것도, 이 묘석도, 이쪽도, 그리고 이것도, 전부 똑같애!”

 

그 남자는 손가락을 들어 다섯 개의 묘비를 가리켜 보였다. 사람들은 그쪽으로 달려와서 보려고 다가섰다. 묘석의 하나하나에 손톱으로 세게 긁은 듯한 똑같은 묘비명이 있었다.

 

 

 

 

 

베네딕트의 묘

 

 

마을 사람들은 못 박히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해.”

 

한 사람이 가냘픈 목소리로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한 사람이 이 다섯 개의 묘지 전부에 매장되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우뚝 서 있었다. 다시 조용해졌다. 나무그늘의 어둠에 겁을 먹으며 그들은 본능적으로 초조하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사람들은 답을 찾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한 사람이 마비된 입술을 겨우 움직여 한 마디 내뱉었다.

 

“안 될 것도 없지.”

 

 

 

 

 

 

- 끝 -

 

 

 

 

 

 

 

 

 

레이 브래드버리 극장(The Ray Bradbury Theater)

Season 6 Ep. 12

(1992년 10월 27일 방영)

 

 

[13] 원작에서 노인은 ‘창문 밖’에 있는 묘지를 바라보면서 죽어간다. 원작을 각색한 TV 드라마 판은 원작과 다르다. 노인은 시체 안치소를 빠져나오지만, 굳게 잠긴 철문에 막혀 탈출에 실패한다. 베네딕트가 주입한 독극물에 맞은 노인은 철문 앞에 쓰러지면서 묘지를 쳐다본다.

 

 

 

 

 

 

 

 

 

 

 

 

 

 

 

 

 

 

 

 

 

※ 출전 : 정태원 역 《나의 꿈꾸는 여자 : 환상 미스테리 걸작선》 (동숭동,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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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시인선 92
김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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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가을비가 내렸다. 도시에 살면서 가을비의 정취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분주히 살아가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면 반사적으로 우산을 펼치거나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어제 내리는 비 때문이었을까? 문득, 김상미 시인의 『보헤미안 광장에서』라는 시가 떠올랐다.

 

 

 

갑자기 내리는 비

그 비를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 펼쳐지는 우산들

 

그러나 우산은 지붕이 아니다

아내 있는 남자가 남편 있는 여자가

몰래 잠깐 피우는 바람 같은 것이다

 

갑자기 내린 비가 멎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러니 사랑을 하려거든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을 하려거든

한 지붕 아래에서 하라

 

갑자기 내린 비는 금방 지나가고

적은 우산에 묻은 빗방울들은

우산을 접는 순간 다 말라버린다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40쪽)

 

 

 

산 넘어 바다 건너 도시까지 왔을 저 가느다란 빗줄기. 우산 받쳐 들고 무언가에 쫓기듯 걷는 도시인들이 발 딛고 선 이 풍진세상 굽어보며 사선을 긋는다. 세상을 너무 건조하게 살지 말라며, 빗줄기는 광장을 축축이 적신다. 논에 물을 대는 농부처럼 먼지 자욱한 거리 구석구석까지 살며시 다가간다. 빗줄기는 피라미 떼처럼 스멀스멀 사람들 가슴으로 기어들어 와 잔잔한 물결이 되어 아름다운 동행자가 되어준다. 허공에서 빈 가슴으로 하얗게 반짝여 다가온 빗줄기는 어느새 서성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인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비를 피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비 내리는 날이면 사람들은 우산을 찾고, 그것은 비를 막아주는 사람들의 동행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와 동행하는 시간이 짧다. 시인은 ‘진짜 사랑’이라는 행복한 감정을 만드는 방법을 저 빗줄기의 움직임에서 읽는다. ‘진짜 사랑’은 누군가에게 다가가 적셔 드는 빗줄기와 같다. 내가 먼저 진실한 사랑으로 누군가의 가슴을 적실 수 있다면 그것이 순수하고 소박한 행복이다. 비에 젖은 땅에 언젠가 바람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흔적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워갈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곧 멈출 비처럼 행복했던 기억을 흙에 묻을 것이다. 그 위에 ‘추억’이라는 이름의 묘비명을 세우고. 비는 그렇게 슬픔의 상징어이면서, 생명과 행복을 약동하는 힘을 타고 내리는 위대한 자연 현상이다.

 

비가 금방 그친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 없다. 빗방울이 떠난 빈자리에 꽃잎 피는 소리가 남는다. 빗줄기가 이내 큰 강물을 이루어 철썩철썩 힘차게 흘러간다. 자연의 순리는 아무 일 없는 듯 그렇게 지나간다. 자연도, 우리 삶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생긴다. 시인은 시든 오렌지를 먹는 행위에서 ‘인생의 참맛’을 느낀다. 

 

 

 

시든, 시드는 오렌지를 먹는다

코끝을 찡 울리는 시든, 시드는 향기

그러나 두려워 마라

시든, 시드는 모든 것들이여

시들면서 내뿜는 마지막 사랑이여

켰던 불 끄고 가려는 안간힘이여

 

삶이란 언제나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에도

남아 있는 법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나는 내 사랑의 이로

네 속에 남은 한줌의 삶

흔쾌히 베어먹는다

 

(김상미 『오렌지』,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10쪽)

 

 

 

시간은 우리를 위해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언제인가 우리는 이 모든 소중한 것들과 헤어질 것이다. 우리 삶은 많은 가변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또 머물러야 할 것들이 떠나는 상황에 슬퍼한다. 하지만 삶의 슬픈 의미 앞에 마음을 움츠리는 것보다 두려움 속 멋진 행복을 찾는 것이 낫다. 한 사람의 인생에도 미각이 압축되어 있다. 내가 내 삶을 다스리는 태도에 따라 행복의 열매를 따기도 하고, 상실의 쓴맛을 본다. 그러니 산다는 일은 누굴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아무 말 말고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그 사이만큼만 서로를 사랑하고 즐겨요

얼룩투성이 심연 같은 긴 이별, 짧은 편지 따위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잘 익어가는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마음 놓고 우리들의 취향대로 아주 작은 왕국을 만들어요

두 켤레 신발이 뜨거운 햇볕 아래 반짝이는!

 

(김상미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중에서,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81쪽)

 

 

 

시인은 ‘현재’에 의미를 두고 있다.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서둘러 염려하느라 기진하기보다 내가 지나가고 있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미래의 어느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아무 말 말고, 서로를 사랑하고 즐겨요. 이별 따위 저 멀리 던져버리고.’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 글의 제목은 홍진영의 노래 '산다는 건' 노랫말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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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8 10:35   좋아요 1 | URL
두 사람이 우산 한 개를 써서 걸으면 불편해요. 이동이 불편하니까 옷 한쪽만 젖게 됩니다. 차라리 우산은 포기하고 냅다 뛰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번 주 일요일,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9-08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시에서는 피할 곳이 근처에 있어 피하게 되는 것 같네요. 시골 벌판에서 갑자기 비를 맞게 된다면? 피하기를 포기하고 비를 즐길 것 같습니다^^:

cyrus 2017-09-08 10:36   좋아요 1 | URL
비를 피하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겠어요. ^^
 

 

 

 

 

 

 

 

 

 

 

 

 

 

 

 

 

 

* 정태원 역 《나의 꿈꾸는 여자 : 환상 미스테리 걸작선》 (동숭동, 1993) 

 

 

알라딘에 표지 사진이 없는(No image) ‘오래된 책’이 많다. 작년에 표지 사진 없는 책을 위해 알라딘 회원이 직접 찍은 표지 사진을 추가하는 것을 서재지기님에게 제안한 적이 있다. 처음에 《나의 꿈꾸는 여자》를 검색했을 땐 표지가 없었다. 지금은 표지가 나온다. 표지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이다. 이런 작업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겠지만, 내겐 정말 고마운 일이다. 오래된 '절판본'에 대한 리뷰를 쓰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레이 브래드버리 장의사(The Handler) [1]

http://blog.aladin.co.kr/haesung/9573458

 

 

 

 

베네딕트는 시트를 씌운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마치 밤늦게 영화를 보고 돌아왔을 때처럼 강력한 기만함과 자신만만함을 느꼈다. 영화관을 나왔을 때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돼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미남이고 단정하고 용감한 영화 주인공의 매력을 빠짐없이 겸비하고 목소리까지. 그렇다, 성량이 풍부하고 맑았으며 왼쪽 눈썹을 약간 치켜 올린 그는 소리내어가며 지팡이를 짚는다‥…. 이러한 영화 최면술이 베네딕트의 경우 자택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까지 죽 지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베네딕트가 그러한 기적적인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베네딕트의 생활에서는 이 두 가지 시간, 즉 영화관과 이‥… 베네딕트 자신의 냉방이 완비된 소극장‥…의 두 가지에서였다.

 

베네딕트는 잠든 사람들의 열을 누비고 다니면서 하얀 명찰에 쓰인 이름을 하나하나 조사했다.

 

월터스 씨. 스미스 씨. 브라운 양. 앤드루스 씨.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분은 어떠신지요, 셀먼드 부인?”

 

그는 침대 밑에 숨은 아이라도 찾듯이 시트를 젖히더니 이렇게 말했다.

 

기분이 좋으신 것 같군요, 부인.”

 

 

 

       

 

 

생전의 셀먼드 부인과는 한 번도 말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스커트 자락에 숨긴 롤러스케이트로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구는 척하며 하얀 조각상처럼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베네딕트는 의자를 끌어당겨 확대경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인, 알고 계십니까. 당신의 모공은 지방 과다 분비입니다. 살아가는 납 인형이었던 거지요. 지방은 모여 여드름이 되지요.[5] 결국은 기름진 식사가 사망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스펀지케이크나 크림 캔디 같은 걸 마구마구 뱃속에 채워 넣은 것이 원인이었던 거지요. 부인은 언제나 좋은 머리가 자랑거리였죠. 나 따위는 마치 신발 밑의 동전쯤으로나 보고‥… 그런데 그 머리라는 게 파르페나 레모네이드나 소다수 속에 떠 있는 것에 불과했지요. 그 대단한 자랑거리였던 머리도 요 모양이 되어서…‥.

 

베네딕트는 그녀에게 훌륭한 수술을 가했다. 두개골을 둥글게 자르고 뚜껑을 열어 골을 꺼냈다. 그리고 과자점에서 사용하는 설탕 짜는 기구로 그녀의 텅 빈 두개골 속으로 생크림과 분홍색, 흰색, 녹색의 장식용 설탕 등을 짜넣고 그 위에 아름다운 핑크빛 글자로 단 꿈이라고 쓴 후 뚜껑을 닫고 두개골을 꿰매 맞추고 솔기를 납 가루로 감추어 버렸다.

 

, 이제 됐다.”

 

베네딕트는 다음 시체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레인 씨. 인종적 편견의 맹장께서는 기분이 어떠신지요? 여러 번 빤 것 같은 순백한 분, 눈처럼, 목면(木棉)처럼 순백한 당신. 레인 씨, 당신은 유태인이나 흑인과 같은 소수 민족을 몹시 싫어하셨죠.”

 

시트를 벗기니 레인 씨가 냉담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보세요, 레인 씨. 나도 그 소수 민족의 한 사람입니다. 열악한 소수 민족입니다.[6] 이야기를 할 때도 큰소리를 내지 않도록 소곤소곤 말하고 쥐 같은 작은 존재에도 겁을 먹는 남자이지요. 이제부터 그런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려 하는지 짐작이 갑니까? 우선 편협한 당신의 몸에서 피를 완전히 뽑아낼 겁니다.”

  

 

 

         

 

 

눈의 순결함과 목면의 깨끗함을 가진 레인 씨의 체내에서 방부 액이 주입되었다. 베네딕트는 배꼽을 움켜쥐고 웃었다. 레인 씨가 새까맣게 된 것이다. 진흙처럼 검게, 밤의 어둠처럼 검게. 그가 사용한 방부 액이라는 것은…‥ 잉크였다.

  

 

아니 이거, 에드먼드 워스 씨 아닙니까!”

 

생전의 워스는 얼마나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고 있었던가! 굵은 뼈와 뼈 사이로 근육이 팽팽하게 뻗어 있어서 힘이 세고 가슴은 마치 바위 같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여자들은 말을 잃었고 남자들의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룻밤 이 육체를 빌려가 자기 아내에게 즐거운 경악을 안겨주고 싶다고 말했다.[7] 하지만 워스의 육체는 어차피 워스의 것, 그는 그러한 종류의 일이나 쾌락에 그 육체를 사용하면서 죄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화제를 풍부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 당신이 결국 이곳에 오셨군요.”

 

베네딕트는 일찍이 이런 종류의 기구를 장인방[8]에 달고 그것에 턱을 걸고 매달림으로써 자신의 우스꽝스럽기까지한 작은 키를 잡아 늘리려고 시도해본 일이 있었다.[9] 또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피부가 부끄러워서 햇볕 아래에 누워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물집이 생기고 피부가 분홍빛의 엷은 종이가 되어 벗겨져서 분홍색이 더욱 짙어진 축축하고 민감한 피부를 노출시키는 데 그쳤다. 마음의 창이라고 말들 하지만 너무 가까이 들러붙은데다가 유리구슬 같은 그의 작은 눈에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 집이라면 새로 다시 칠하고 휴지라면 태우고 어머니라면 쏴 죽이고 새 옷을 사고 차를 구입하고 돈을 버는 식으로 외부의 환경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피부나 육체나 얼굴색이나 목소리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한 조건에서 불운했던 베네딕트는 턱을 간질이거나 입술에 키스하거나 친구와 악수를 나누거나 향기 좋은 담배를 피우거나 하는 저 넓디넓은 밝은 세계로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추억에 빠지면서 베네딕트는 에드먼드 워스의 늠름한 육체 위에 버티고 섰다.

 

 

 

          

 

베네딕트는 워스의 목을 잘라내서 그것을 관 속에 똑바로 놓고 그것과 함께 190파운드만큼의 벽돌[10]을 채우고 배개 위에서부터 하얀 셔츠와 검은 상의를 싸서 상반신처럼 보이게 하고 턱 부분까지 청색 빌로드로 덮었다. 몸통 쪽은 냉동기 안에 넣었다.

 

  

이것으로 워스 군, 내가 죽으면 몸통과 목을 나눠서 내 목에 당신의 몸통을 이어서 매장시킬 것이오. 미리 조수에게 돈을 줘서 그 일을 시킬 거요. 생전에 아름다운 육체를 갖지 못했던 사람은 하다못해 사후에서나마 그것을 소유하게 되는 거지.”

 

에드먼드 워스의 목 위로 탁 하고 관 뚜껑이 닫혔다.

 

관의 뚜껑을 닫은 채로 장례를 하는 풍습이 이어져 온 것에 베네딕트에게 너무나도 좋은 일이었다. 베네딕트는 시체를 거꾸로 엎드리게 해서 이장하거나 억지로 외설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베네딕트의 흥미를 끈 것은 오후의 차를 마시러 가는 도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세 명의 노파였다. 이 세 명은 모이기만 하면 소문을 퍼뜨리기로 유명했다. 뚜껑을 닫은 채였기 때문에 참석자는 몰랐지만 사실 세 명은 관 하나에 넣어져 영원히 차가운 수다를 계속하게 되었다. 다른 두 개의 관에는 작은 돌이나 깅엄[11], 쓰레기가 채워져 있었다.

 

저 사이좋은 세 사람이 결국 따로따로 헤어졌군.”

 

그렇게들 말하며 사람들은 울었다.

 

.”

 

베네딕트도 눈물 어린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 또 베네딕트는 정의감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부자는 알몸뚱이로 매장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5달러의 금단추가 달린 황금색 의상을 입히고 양 눈꺼풀에 각각 20달러 금화를 얹어서 이장했다. 어떤 변호사들은 전혀 매장되지도 못하고 진개소각로에서 태워지고 관에는 일요일에 숲에서 잡은 스컹크를 넣기도 했다.

 

오후 근무 중에 쓰러진 어떤 나이든 여자는 끔찍한 계획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녀의 이불 밑에는 어떤 노인의 그것이 함께 매장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차가운 기관에 능욕당해 숨겨진 손이나 그 밖의 것으로 애무를 당하면서 관에 눕혀졌다.

 

그렇게 해서 그날 오후도 베네딕트는 시체에서 시체로 돌아다니며 그들 몸 위에 온갖 모욕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맞닥뜨린 것은 메리웰 브라이스라는 간질병 발작이 지병인 노인이었다. 브라이스 노인은 지금까지 몇 번인가 이곳으로 운반되어 왔지만 이장 직전에 되살아난 인물이었다. 베네딕트가 시트를 젖히자 브라이스 노인이 눈을 깜박거렸다.

 

아아!”

 

베네딕트는 시트 위로 쓰러질 뻔했다.

 

 

 

 

- 3부에 계속 -

 

 

 

 

 

 

 

 

 

* cyrus의 주석

 

 

 

[5] 당, 지방 과다 섭취로 여드름이 생길 수 있다.

 

[6] 베네딕트가 정말로 ‘소수 민족’이라면 그는 유전적으로 어느 혈통에 속할까? 자신의 외톨이 신세를 ‘외면 받고 차별받는 소수 민족’으로 과장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7] 워스는 마초(macho)다. 베네딕트는 ‘남자다움’, 마초에 대한 열등감과 갈망을 느낀다.

 

[8] 기둥과 기둥 사이의 벽 윗부분에 가로지른 나무 (역자 주)

 

[9]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당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에 사람을 뉘여 놓고 다리가 침대보다 길면 자르고 모자라면 잡아 늘렸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사회를 재단하는 규범이다.

 

 

 

 

 

 

 

 

 

 

 

 

 

 

 

 

 

* 조지 L. 모스 《남자의 이미지》 (문예출판사, 2004)

 

 

베네딕트는 ‘키가 크고, 여자를 유혹할 수 있는 단단한 근육을 가진 남성상’을 원한다. 자기 스스로 몸을 늘리려는 시도는 ‘규범적 남성성’에 맞추기 위해 발버둥치는 불행한 남성의 모습이다. 베네딕트는 워스의 ‘늠름한 육체’에 대리만족을 느꼈고, 자신이 죽으면 워스의 ‘늠름한 몸덩어리’와 자신의 목을 이어 매장할 거라는 망상을 한다.

 

[10] 190파운드를 ‘kg’으로 환산하면 86kg.

 

[11] 번역본에는 ‘깅감’으로 나와 있는데, 현행 외국어 표기법으로 고치면 ‘깅엄(gingham)’이다. 깅엄은 ‘격자무늬가 있는 평직 무명 양복지(역자 주)’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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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7 17:55   좋아요 0 | URL
이제부터 절판본 표지 사진 찍을 때 좀 성의 있게 찍어야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