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호밀밭의 파수꾼》 특별판을 선보였다. 그런데 ‘특별판’인데 특별한 것은 없다. 북 커버 디자인은 1951년에 출간된 초판본 표지이다.

 

 

 

 

 

 

 

 

 

 

 

 

 

 

 

 

 

 

 

 

 

 

 

사실 내용도 특별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민음사는 오역이 많은 예전의 번역본(민음사 세계문학전집 No. 47)을 ‘특별판’이라고 홍보하면서 팔고 있기 때문이다.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뒷날개에 ‘새 문학전집을 펴내면서’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그 글에 이런 문장이 있다.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 엊그제의 괴테 번역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번역은 오늘의 감수성을 전율시키지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민음사는 문학 전집을 펴내면서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의 민음사는 초심을 잃었다. 오역이 가득한 ‘엊그제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새로 번역해서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샐린저의 탄생을 기념한답시고 뻔뻔하게 특별판을 냈다. 오역 문장을 그대로 놔둔 특별판은 독자들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오히려 독자들의 분노를 유발한다.

 

 

 

 

 

 

 

 

특별판의 번역을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대구 교보문고에 판매되고 있는 책을 참고했다. 《호밀밭의 파수꾼》(구판) 오역 문장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 문장이 있는 쪽수를 확인했다.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오역도 고쳐지지 않았다.

 

 

 

 

 

* 원문

“We studied the Egyptians from November 4th to December 2nd,” he said. “You chose to write about them for the optional essay question. Would you care to hear what you had to say?”

 

* 구판 22쪽, 특별판 26쪽

「우린 11월 넷째 주부터 12월의 두번째 주까지 이집트인들에 대한 공부를 했었다. 자넨 선택 문제로 이집트인들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로 했어. 자네가 뭐라고 썼는지 한번 들어보겠나?」

 

 

‘11월 4일부터 12월 2일까지’라고 써야 한다.

 

 

 

 

 

* 원문

My brother Allie had this left-handed fielder’s mitt. He was left-handed. The thing that was descriptive about it, though, was that he had poems written all over the fingers and the pocket and everywhere. In green ink. He wrote them on it so that he’d have something to read when he was in the field and nobody was up at bat.

 

 

* 구판 57쪽

동생인 엘리는 왼손잡이용 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애는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묘사적이었냐 하면, 그 애는 손가락 위도 좋고, 주머니도 좋고, 어디에나 시를 써놓았다. 초록색 잉크로 말이다. 그 애 말로는 수비에 들어갔을 때 타석에 선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때 읽으면 좋다는 것이다.

 

 

* 특별판 70쪽

동생인 엘리는 왼손잡이용 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애는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묘사적이었냐 하면, 그 애는 손가락 위도 좋고, 주머니도 좋고, 어디에나 시를 써놓았다. 초록색 잉크로 말이다. 그 애 말로는 수비에 들어갔는데 타석에 선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때 읽으면 좋다는 것이다.

 

 

 

→ 밑줄 친 문장은 문법이 맞지 않는 문장이다. 구판에 있었던 ‘수비에 들어갔을 때’라는 구절이 특별 판에서는 ‘수비에 들어갔는데’라고 고쳐졌다. 그래도 여전히 문장이 어색하다.

 

 

 

 

 

* 원문

Old Marty talked more than the other two. She kept saying these very corny, boring things, like calling the can the <little girls room>, and she thought Buddy Singers poor old beat-up clarinet player was really terrific when he stood up and took a couple of ice―cold hot licks. She called his clarinet a <licorice stick>.

 

 

* 구판 104쪽

마티는 다른 두 여자보다도 좀 말을 많이 했다. 그나마 그녀가 하는 말도 케케묵은 이야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화장실을 <어린 소녀들의 방>이라고 부르지 않나. 버디 싱어의 밴드에서 불쌍할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첼리스트가 보여준 정말 썰렁하기 짝이 없는 연주를 듣고는 멋있다고 하면서, 그 첼리스트를 <감초 줄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 특별판 129쪽

 

 

 

 

 

 

→ 사실 이 오역 문장 하나만 가지고 민음사의 특별 판 출간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따질 수 있다. 출판사는 클라리넷 연주자를 ‘첼리스트’라고 잘못 번역된 문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가? 알고 있으면서도 오역을 고치지 않은 건 독자들을 속이는 직무유기다.

 

 

 

 

 

* 원문

“You’re goddam right they don’t,” Horwitz said, and drove off like a bat out of hell. He was about the touchiest guy I ever met. Everything you said made him sore.

 

* 구판 115쪽, 특별판 143쪽

「그렇게 생각하면 됐어요」 호이트가 말했다. 그러고는 총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사람은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내가 한 말은 전부 그 사람을 화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 이 번역문을 다시 보면서 알게 됐는데, Horwitz’는 ‘호이트(Hoyt)’가 아니라 ‘호위츠’라고 써야 한다.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 구판을 사서 읽은 독자이다. 오역을 고치지 않은 채 특별판을 낸 민음사의 행보가 매우 유감스럽다. 내가 보기에 민음사는 작가를 기념하기 위해서 특별판을 낸 게 아니라 ‘리커버판’ 열풍에 편승해서 책을 더 팔아보려는 심산으로 낸 것 같다.

 

민음사는 특별판 판매를 당장 중지하고, 독자들의 지갑을 털 생각을 하지 마시라. 특별판을 구입한 독자들에게 책값을 환불하라! 오역이 고쳐지지 않은 책은 ‘잘못된 책’이며 ‘파본’이다. 민음사는 출판사 이름에 걸맞게 좀 더 ‘백성의 소리(독자의 소리)’를 귀담아들어라. 세계 문학 전집 출간을 위한 새로운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그 마음, 초심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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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3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3 17:17   좋아요 1 | URL
세계문학전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출판사가 민음사에요. 지난달 독서모임 선정 도서가 <동물농장>인데 그 날 참석한 분들 대다수는 민음사 번역본을 읽었어요. 민음사 <동물농장>도 나온 지 꽤 오래된 책인데다가 요즘 나오는 타 출판사 번역본과 비교하면 다시 다듬어야 할 문장들이 있어요. 고전 문학 작품을 읽으려면 ‘탈 민음사’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ㅎㅎㅎ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국내 최고 문학전집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잠자냥 2019-07-0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커버 판은 샐린저의 초판하고 표지가 같아서 혹했는데.... 그러면서도 번역은 좀 고쳤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살까말까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에휴 그만 마음을 접어야겠습니다.

cyrus 2019-07-03 17:22   좋아요 0 | URL
초판본 표지 디자인의 양장본이라서 책의 겉모습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판에는 구판에 없던, 단어의 의미를 설명한 역주가 달려 있어요. 그 외에는 보시다시피 크게 달라진 것 없어요. ^^;;

2019-07-03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4 15:21   좋아요 1 | URL
박맹호 회장이 지금 살아계셨다면 이번 일을 용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雨香 2019-07-03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을 때 번역평을 살피곤 합니다만, 번역평이 없어서 많이 아쉽습니다.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를 읽어보는데 다루는 책이 많지 않고, 그리고 그 뒤로 번역된 책들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예전에 관련 기사인지,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번역평도 상당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고 ㅠㅠ

조금 더 출판시장이 커지고, 번역본도 많아지고, 번역평도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믿고 읽으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cyrus 2019-07-04 15:24   좋아요 1 | URL
번역 평이 서평보다 쓰기 까다롭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된 번역 평을 작성하려면 번역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고, 번역 평에 대한 예상 반론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만큼 정신적 노동의 양이 많이 생겨요. 번역 평을 쓰려면 마음 먹었다면 욕먹을 각오를 해야 됩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9-07-03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그지같은 번역은 이미 악명이 높죠... 하, 파리대왕 보고 정말 기절하느 줄 알았습니다. 1940년대 말투의 작렬이라니...... 번역의 질 문제는 정말 많은 이들이 지적했을 텐데, 어떻게 눈 깜짝도 안 하고 뻔뻔하게 특별판이라며 책을 내는지..... 판형도 그지 같아서 마음에 안듭니다..

cyrus 2019-07-04 15:27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책 중에 제본이 갈라지려고 하는 것이 있어요. 문학전집은 양장본으로 나오는 게 좋아요. ^^

레삭매냐 2019-07-03 2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개인적으로 만난 최악의 번역은
오래 전 민음사에서 나온 <한 여름 밤의
꿈>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나라가 배경인데 박혁거세 운운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발번역인지 정말.

그나저나 표지갈이만 하고 번역에는 돈
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 같이 들리네요.
언행불일치의 표본으로 보입니다.

cyrus 2019-07-04 15:28   좋아요 0 | URL
헐~ 저 그 책 읽었는데 ‘박혁거세‘가 나오는 대사가 있었군요. 처음 알았어요... ^^;;

Falstaff 2019-07-0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악명 높은 역자들이 너무 많은 책을 번역해서, 도무지 이이들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 진짜 비극입니다.

cyrus 2019-07-04 15:29   좋아요 0 | URL
네, 오역 문제로 제대로 한 번 찍힌 번역가를 알게 되면 그 번역가가 옮긴 다른 책들까지 번역이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의심부터 하게 되더라고요.. ^^;;

2019-07-04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4 15:30   좋아요 0 | URL
제가 영어 독해 능력이 부족합니다. 영어 공부를 안 한지 오래 됐거든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9-07-04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단행동이 아니면 회사들은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습니다. 포장만 다시 해서 ‘리커버리판‘으로 둔갑시키는군요.

cyrus 2019-07-04 15:31   좋아요 1 | URL
이 문제는 민음사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독자들이 잘 모르는, 리커버판 열풍에 가려진 그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연 2019-07-04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자가 공경희... 꽤 유명하고 번역도 많이 한 분인데 왜 이런 초보적인 실수들을 했을까 잠시 의아하네요. 저도 이 표지 보고 사려고 보관함에 두었는데 님의 글 보고 당장 내렸습니다. 사실 민음사 세게문학전집 몇 권 보면서 번역에 불편한 경우가 꽤 있었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싶어 이상한 안심이 되구요 =.=;;;

cyrus 2019-07-04 15:34   좋아요 0 | URL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나온 지 시간이 많이 흘렀고, 다른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번역과 비교하면 상당히 올드한 편이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 개정판이 나온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90년대 후반에 나온 세계문학전집 중에 새로 번역해야 될 게 몇 권 있어요.

목나무 2019-07-0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어도 특별판이라고 내놓을 거면 기존의 번역 오류는 제대로 확인하고 내놓아야 하는 게 출판인의 도리인 듯 싶은데 그저 표지만 바꾸면 혹해서 살 거라는, 독자들을 얕잡아 보는듯한 행동에 실망스럽고 화도 나네요.
민음사 세계문학은 번역도 편집(오타 등)도 제법 거슬리는 게 많은 건 사실이라 선듯 구입하기가 꺼려지긴 하네요.

cyrus 2019-07-04 15:39   좋아요 2 | URL
네, 맞습니다. 출판사도 회사이니 책을 팔아서 수익을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독자들을 기만하면서 책을 팔면 안 되죠. <호밀밭의 파수꾼> 오역 문제는 이미 십년 전부터 나왔던 얘기입니다. 저보다 훨씬 먼저 오역을 지적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판사는 문제를 개선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어요. 출판사가 독자들의 의견을 귀 담아 듣지 않은 셈이죠.
 

 

 

우리나라에 출판된 조지 오웰(George Orwell)《동물농장》 번역본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직접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절판된 책과 아동용 책까지 포함하면 50권은 족히 넘을 것이다. 《동물농장》은 1945년 8월 17일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이 출판된 날 이틀 전에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제는 항복했지만, 해방된 지 일 년 만에 조선은 두 갈래의 길 앞에 서게 됐다. 분단의 길이냐, 통일 정부 수립의 길이냐. 결국 미국과 소련의 분단 정책에 의해 조선은 두 개로 나누어졌다. 공산주의 사회를 비판한 우화로 해석된 《동물농장》은 미군정 해외정보국의 지원을 받아 1948년 우리나라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농장》 번역본으로 알려져 있다.

 

 

 

 

 

 

 

 

 

 

 

 

 

 

 

 

 

 

 

 

* 조지 오웰, 김기혁 옮김 《동물농장.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문학동네, 2010)

* 조지 오웰, 도정일 옮김 《동물농장》 (민음사, 1998)

 

 

 

 

매년 《동물농장》 번역본이 한두 권씩 나온다. 작년에는 무려 8종의 《동물농장》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동물농장》 번역본은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가 번역한 민음사 판본이다. 지난달 독서 모임 선정 도서가 《동물농장》이라서 이번에는 ‘문학동네’ 판본(김기혁 옮김)을 읽었다. 두 판본의 출간 연도를 비교하면 12년이나 차이가 난다. 민음사 판본의 초판 출간연도는 1998년이고, 문학동네 판본은 2010년에 출간되었다. 세월의 차이가 느껴지는 만큼 번역 문체를 읽었을 때도 뚜렷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다.

 

 

 

 

 

 

 

 

 

 

 

 

 

 

 

 

 

 

* 조지 오웰, 김옥수 옮김 《동물농장》 (비꽃, 2017)

 

 

 

 

농부 존스(Jones)가 운영했던 동물농장의 원래 이름은 ‘Manor farm’이다. ‘manor’는 중세 유럽 봉건 체제에 유지된 토지 소유 형태, 즉 ‘장원(莊園)을 뜻한다. 이 단어를 ‘매너’라고 읽어야 하는데 도정일 교수는 ‘메이너’라고 썼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민음사 판본은 2010년에 출간된 71쇄인데, ‘메이너 농장’이라고 적혀 있다. ‘비꽃’ 판본(김옥수 옮김)에는 ‘장원 농장’이라고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매너 농장’이라고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직역하게 되면 《동물농장》의 우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Manor farm’의 의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동물 중에 ‘모제스(Mose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까마귀가 있다. 어떤 번역본은 ‘모세’라고 되어 있다. 이 녀석은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 집에서 사는 까마귀다. 오웰은 이 까마귀를 가리켜 ‘tame raven’이라고 썼는데, 해석하면 ‘길들여진 (큰)까마귀’다.

 

 

 

 

 

 

 

 

 

 

 

그런데 민음사 판본은 ‘집 까마귀’, 문학동네 판본은 ‘길들인 갈까마귀’라고 되어 있다. 두 단어 모두 ‘tame raven’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아마도 도정일 교수는 인간의 집에서 서식하는 까마귀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집까마귀’라는 단어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집 까마귀(house crow)’라는 이름을 가진 까마귓과에 속하는 새가 있다. 집 까마귀(house crow)와 까마귀(raven) 모두 까마귓과에 속한 새라고 해서 같은 까마귀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두 새의 학명이 다르므로 서로 다른 종이다.

 

 

 

 

 

 

 

 

 

 

 

 

 

 

 

 

 

 

 

 

 

 

 

 

 

 

 

 

 

 

 

 

 

 

* 에드거 앨런 포, 손나리 옮김 《까마귀》 (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윤명옥 옮김 《포 시선》 (지만지, 2017)

* 에드거 앨런 포, 김경주 옮김 《애너벨 리》 (민음사, 2016)

* 에드거 앨런 포, 공진호 옮김 《에드거 앨런 포우 시선: 꿈 속의 꿈》 (아티초크, 2014)

 

 

 

 

‘raven’을 ‘갈까마귀(jackdaw)’로 번역하는 것도 오역이다. ‘raven’은 우리나라에서는 ‘큰 까마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까마귓과에 속하는 개체 중에서 가장 크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유명한 시 ‘The Raven’가 우리나라에서는 ‘갈까마귀’로 잘못 번역되었고, 수정되지 못한 채 이렇게 오랫동안 알려지는 바람에 ‘raven은 갈까마귀’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 조지 오웰, 권진아 옮김 《동물농장: 어떤 동화》 (시공사, 2012)

* 조지 오웰, 박경서 옮김 《동물농장》 (열린책들, 2009)

 

 

 

 

‘길들인 까마귀’라고 번역된 《동물농장》은 ‘열린책들’ 판본(박경서 옮김)과 시공사 판본(권진아 옮김)이 있다.

 

포의 시 제목에 대해 첨언을 하자면, ‘까마귀’라고 번역되어 있는 포의 시집은 두 종이 있으며 ‘시공사’(손나리 옮김)와 ‘아티초크’ 출판사(공진호 옮김)에 나온 것이다. 반면 나머지 출판사의 시 선집들의 번역가들은 여전히 ‘갈까마귀’를 고수하고 있다. 시인 김경주가 번역한 민음사 판본의 시 선집에는 ‘갈가마귀’라고 되어 있는데, ‘갈까마귀’가 정확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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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7-02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시네요 싸이러스 브로...

이런 정성이란 -

그나저나 미군정의 지원으로 <동물농장>
이 번역되었다는 건 신박한 정보네요.

왠지 어느 보수지에서 실시한 장준하 선생
의 글로 약산을 공격하는 느낌이랄까요.

cyrus 2019-07-02 17:40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동물농장> 최초 번역본에 관한 내용은 <동물농장>(출판사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해설’을 참고했어요.

503을 옹호하는 방송을 했던 한국XX 논설위원 정모 씨는 (신)자유주의를 사회주의보다 좋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동물농장>을 추천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동물농장>을 오독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2019-07-02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2 17:41   좋아요 0 | URL
보면 볼수록 다 똑같은 검은색 까마귀인데 이걸 어떻게 하나하나 분류하고 학명을 붙였는지... 새삼 까마귀를 연구하는 동물학자들이 존경스럽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9-07-02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사이러스 님 !

cyrus 2019-07-02 17:42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
 

 

 

‘꼬마 검둥이 삼보(Little Black Sambo)라는 제목의 동화를 아시는가? 스코틀랜드 여성 헬렌 배너만(Helen Bannerman, 1862~1946)이 1899년에 발표한 동화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헬렌은 남편과 함께 의료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배너만 부부의 어린 두 딸들도 인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헬렌은 피서지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이 있는 동화 ‘꼬마 검둥이 삼보’를 썼다.

 

 

 

 

 

 

 

 

 

 

 

 

 

 

 

 

 

 

* 헬렌 배너만 《꼬마 깜둥이 삼보》 (동서문화사, 2005)

* 헬렌 배너만, 허문선 엮음, 홍선지 그림 《꼬마 삼보 이야기》 (계림닷컴, 2004)

* [e-Book] 헬렌 배너만, 플로렌스 화이트 윌리엄스 그림 《꼬마 삼보 이야기》 (바로이북, 2017)

 

 

 

 

‘꼬마 검둥이 삼보’는 1980년대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소개된 동화다. 동화 내용을 들려주면 “아! 기억 나, 본 적이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삼보는 아빠 점보(Zambo)와 엄마 맘보(Mambo)에게 빨간 코트, 파란 바지, 초록 우산, 보라색 신발을 선물로 받는다. 기분이 좋아진 삼보는 코트와 바지를 입고, 보라색 신발을 신고, 초록 우산을 들고 밀림을 산책한다.

 

 

 

 

그런데 삼보는 밀림에서 호랑이를 만난다. 겁에 질린 삼보는 살기 위해서 코트를 벗어 호랑이에게 넘겨준다. 계속해서 밀림을 지나던 삼보는 다른 호랑이들을 한 마리씩 만나면서 바지, 신발, 우산 순으로 빼앗긴다. 네 마리의 호랑이들에게 선물을 다 빼앗긴 삼보는 벌거숭이 상태가 된다. 호랑이들은 각자가 빼앗은 물건으로 멋을 부리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호랑이라고 생각한다. 호랑이들은 누가 가장 멋진 호랑이인지 따지면서 싸우게 된다. 삼보는 으르렁거리면서 서로를 공격하는 호랑이들이 자신을 잡아먹는 줄 알고 야자나무 위로 올라간다.

 

 

 

 

 

 

삼보는 야자나무 위에서 호랑이들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한다. 호랑이들은 삼보가 올라간 야자나무 주위를 서로 꼬리를 잡으려고 빙빙 돈다. 호랑이들은 그렇게 계속 꼬리를 물고 뱅뱅 맴돌다가 결국에는 몸이 녹아버려 버터가 되어 버린다. 호랑이가 녹아서 생긴 버터의 맛에 감탄한 삼보는 항아리에 버터를 담아 집에 돌아온다. 맘보는 버터로 팬케이크를 만들고, 배가 고픈 삼보는 팬케이크 169개를 먹어 치운다. 

 

 

 

 

 

 

 

 

 

 

 

 

 

 

 

 

 

 

 

* 요네하라 마리 《미식 견문록》 (마음산책, 2017)

* [구판 절판] 요네하라 마리 《미식 견문록》 (마음산책, 2009)

 

 

 

이 동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호랑이들이 버터로 녹아내리는 모습이다. 버터를 넣어 만든 팬케이크도 잊을 수가 없다. 러시아어 통시 통역사이자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米原万里)《미식 견문록》에서 어렸을 때 읽은 ‘꼬마 검둥이 삼보’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이 동화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을 들려준다. 그녀는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를 볼 때마다 동화에 나온 팬케이크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어른이 되면서 ‘꼬마 검둥이 삼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기억한 동화 속 삼보의 모습은 곱슬머리에 두꺼운 입술을 가진 아프리카 원주민의 외모이기 때문이다. 사실 배너만이 그린 삼보의 모습은 인도인의 외모에 가깝다. 그런데 ‘꼬마 검둥이 삼보’가 미국과 일본에서 번역되면서 삼보의 모습은 흑인의 외모로 그려지게 된다. 대부분 사람은 흑인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곱슬머리와 두꺼운 입술을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이러한 인종적 특징은 흑인을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인종차별적인 이미지다.

 

 

 

 

 

 

 

 

미국 출신의 삽화가 플로렌스 화이트 윌리엄스(Florence W. Williams, 1895~1953)가 그린 맘보의 외모를 보라. 미국 남부 백인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후덕한 흑인 유모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미국 남부 지역에서는 흑인 유모를 비하하는 의미를 가진 ‘매미(mammy)라는 단어가 거리낌없이 사용되었는데, 못생기고 뚱뚱한 흑인 여성을 가리킬 때 쓰이기도 한다.

 

‘꼬마 검둥이 삼보’의 줄거리를 보자마자 이 동화 속 장면들이 어색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인도를 배경으로 쓴 동화에 인도에 자라지 않는 야자나무와 인도인들이 먹지 않는 팬케이크가 나오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은 팬케이크 대신에 인도의 전통 빵 ‘난(Naan)’을 만들어 먹는다. 동화에 나오는 호랑이 버터는 유럽식 버터가 아니다. 소의 젖으로 만든 인도식 버터인 ‘기(ghee)와 유사하다. 아마도 동화 원작자인 헬렌은 인도 음식이 낯선 아이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을 만한 음식이 무엇일지 고민했을 것이고, 그래서 간식으로 자주 나오는 팬케이크로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꼬마 검둥이 삼보’는 영국과 미국 아이들에게 사랑받은 동화였으나 인종차별적인 묘사가 문제가 되어 추천 도서 목록에 빠지게 되었다. 동화 주인공을 단지 흑인이라고 문제가 된 것이 아니다. 흑인의 인종적 특징을 ‘과장되게’ 묘사한 것이 문제다. 그런데 어째선지 국내에 번역된 동화 속 삼보의 모습은 과거에 흑인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에 만들 법한 흑인의 외모와 비슷하다. 이 책을 번역한 동서문화사는 요즘에 사용하면 안 될 ‘껌둥이’라는 표현을 버젓이 책 제목으로 내세웠다. 책 앞표지에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책’이라는 홍보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꼬마 검둥이 삼보’를 읽고 쓴 독자 서평 내용이다. 어떤 독자는 “흑인들의 지질한 열등감 때문에 한동안 빛을 보지 못한 동화”라고 쓰면서 별 다섯 개를 줬다. 왜 이 동화가 인종 차별을 조장하는 책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 2018)

 

 

 

미국의 시인이자 페미니스트인 오드리 로드(Audre Lorde)는 어린 시절에 도서관 사서가 ‘꼬마 검둥이 삼보’를 읽어주는 장면을 회상하면서 인종 차별에 무관심한 사서가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잊지 못한다.

 

 

 도서관에서 이야기 시간을 진행하는 사서가 『꼬마 깜둥이 삼보』를 낭독한다. 그녀의 하얀 손가락이 까맣고 번들거리는 얼굴에 크고 붉은 입술, 돼지 꼬리 같은 곱슬머리의 소년과 버터 한 무더기가 그려진 동화책을 들고 있다. 내 마음에 상처를 줬던 그림들. 이번에도 내가 잘못된 거겠지 하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왜냐하면 나 말고는 모두가 깔깔거리고 있고, 게다가 시내 도서관이 이 책에 특별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도서관 사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체 뭐가 문제니?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서로의 눈동자를 보며: 흑인 여성, 혐오, 그리고 분노』 중에서, 287쪽)

 

 

 

‘꼬마 검둥이 삼보’를 문제 삼는 내 글을 보는 이들도 오드리 로드가 만났던 도서관 사서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대체 뭐가 문제예요?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아요!” 그렇다면 그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서 ‘째진 눈을 가진 민족’이라고 놀림 받으면 화를 내면서 우리나라 사람이 흑인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것에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반응이 괜찮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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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1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6-24 07:07   좋아요 0 | URL
어떤 민족이나 인종에 대해서 설명할 때 간혹 발화자의 편견과 선입견이 들어갈 때가 있어요. 사실 이 편견과 선입견을 철저히 배제한 채 민족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래도 편견과 선입견이 왜 심각한 문제가 되는지 알아야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루 알베르트 라사르트(Lou Albert-Lasard)의 회고록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하늘연못)를 언급해보려고 한다. 내가 오늘 이 글에서 말하려는 내용은 김재혁 교수가 옮긴 라사르트의 회고록 번역본에 있는 오류다.

 

 

 

 

 

 

 

 

 

 

 

 

 

 

 

 

 

 

* [절판] 루 알버트 라사르트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 (하늘연못)

 

 

 

첫 번째 오류는 65쪽에 있다. 본문에 릴케와 친하게 지낸 독일의 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Paula Modersohn-Becker)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그런데 김재혁 교수는 화가의 이름을 잘못 썼다. ‘파울라 벡커 모더존’이라고 썼는데, 중간 이름(‘모더존’)과 성(姓, ‘베커’)이 뒤바뀌었다. 김재혁 교수의 주석에도 화가의 이름이 ‘파울라 벡커 모더존’이라고 되어 있다.

 

 

 

 

 

 

 

 

 

 

 

 

 

 

 

 

 

 

 

 

 

 

 

 

 

 

 

 

 

 

 

 

 

* 버나드 덴버 《툴루즈 로트레크》 (시공아트, 2014)

* 엔리카 크리스피노 《로트레크: 몽마르트르의 밤을 사랑한 화가》 (마로니에북스, 2009)

* 앙리 페뤼쇼 《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 (다빈치, 2009)

* 마티아스 아놀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마로니에북스, 2005)

* 클레르 프레셰 《툴루즈 로트레크》 (시공사, 1996)

 

 

 

 

두 번째 오류는 118쪽 본문에 있다. 본문에 적힌 문제의 문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한 번은 파리 근교의 한 장터에서 뚤루즈 로트렉이 공연하는 <식충이(La Goulue)>를 보았다. 는 한 마리의 호랑이와 함께 등장했다. 도 어느 사이에 이젠 늙은이가 되었다.

 

 

릴케는 파리의 몽마르트르 가(Montmartre)에 자주 갔는데, 이곳에 자유분방함을 즐기는 예술가들이 자주 모였다. 1870년대부터 몽마르트르 가에 술집과 카바레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에 들어서면서 몽마르트르 가는 ‘밤의 중심지’가 되었다. 몽마르트르 가에서 가장 유명한 카바레가 물랭루주(Moulin Rouge)이다. 물랭루주는 ‘빨간 풍차’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1889년에 개장했을 당시 물랭루주 건물 위에 거대하고 붉은 풍차 장식이 있었다. 물랭루주는 무도회장인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와 더불어 몽마르르트 가를 대표하는 ‘핫 스팟(hot spot)’이 되었다.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 Lautrec)도 몽마르트르의 화려한 분위기에 푹 빠진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몽마르트르의 카페, 술집, 카바레 등을 드나들면서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물랭루주의 개업은 로트레크가 ‘화가’로서 유명세를 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물랭루주는 로트레크에게 포스터 제작을 의뢰했다. 로트레크가 그린 포스터는 공개되자 곧바로 인기를 얻었다. 특히 물랭루주의 최고 인기 스타인 ‘라 굴뤼(La Goulue)’의 춤추는 모습이 그려진 포스터는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굴뤼(goulue)’는 ‘게걸스럽게 먹는’, ‘식충이’, ‘대식가’를 뜻하는 ‘goulu’의 여성형 명사이다. 라 굴뤼의 본명은 루이스 베버(Louise Weber)이다. 그녀는 캉캉 춤과 유사한 자신만의 춤을 유행시켜 물랭루주의 스타가 되었다. 로트레크는 라 굴뤼가 은퇴할 때까지 8년 동안 가까이서 지켜봤고, 그녀의 매력을 담은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다.

 

자, 이제 118쪽에 있는 문장의 오류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뚤루즈 로트렉이 공연하는 <식충이>’라는 문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 내용이다. 릴케가 본 것은 ‘식충이’라는 뜻의 별명으로 알려진 라 굴뤼의 공연이었고, 로트레크는 무대 위에 춤추는 라 굴뤼의 모습을 그렸다. 사실에 맞게 문장을 고치면 이렇다.

 

 

 한 번은 파리 근교의 한 장터에서 라 굴뤼(식충이)의 공연을 보았다. 그녀는 한 마리의 호랑이와 함께 등장했다. 그녀도 어느 사이에 이젠 늙은이가 되었다.

 

 

세 번째 오류는 160쪽, 김재혁 교수의 주석에 있다. 이 주석에 적힌 내용을 보면 독일의 화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의 사망 연도가 ‘1960년’으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란츠 마르크는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1916년에 전사했다.

 

이 글에서 파울러 모더존 베커와 프란츠 마르크에 대한 설명을 일부러 생략했다. 파울러 모더존 베커와 프란츠 마르크, 이 두 사람의 삶과 작품 세계를 주제로 한 글을 따로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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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Colette)프랑스적인 작가가 아니라 파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 파리는 센강(Seine R.)을 기준으로 북쪽의 우안(右岸, right bank) 지역, 남쪽의 좌안(左岸, left bank) 지역으로 나뉜다. 좌안은 보헤미안적 낭만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곳에 값싼 주거지를 찾아 외지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 많았다. 이곳의 개방적인 분위기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 기질의 예술가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 [품절] 안드레아 와이스 파리는 여자였다(에디션더블유, 2008)

 

    

1920~1930년대 파리 좌안에 터전으로 삼은 여성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자유와 해방을 만끽했고, 당시 문화와 유행의 흐름을 이끌기도 했다. 미국의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안드레아 와이스(Andrea Weiss)파리는 여자였다는 멋 좀 부릴 줄 알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던 파리 좌안의 여자들(레프트뱅크의 여자들)을 소개한 책이다.

    

 

 

 

 

 

레프트뱅크의 여자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창작 활동을 펼친 콜레트, 레즈비언 커플 래드클리프 홀(Radclyffe Hall)우나 트루브리지(Una Troubridge), 르네 비비엔(Renée Vivien)나탈리 클리포드 바니(Natalie Clifford Barney) 등은 서로를 알아봤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 [품절] 래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 주디스 잭 핼버스탬 여성의 남성성(이매진, 2015)

    

 

 

래드클리프 홀은 남성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소설 고독의 우물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책에 묘사된 레즈비언의 사랑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됐다. 우나는 트루브리지라는 칭호를 가진 남작의 아내였으나 1919년에 이혼한 후에 홀의 연인이 되었다.

 

 

 

 

 

퀴어 페미니스트 주디스 잭 핼버스탬(Judith Jack Halberstam)여성의 남성성에서 홀이 활동하던 시대의 성 담론을 분석한다. 홀과 우나는 어디든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레즈비언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도덕주의자들의 비난을 조금은 피할 수 있었다. 홀과 우나는 레즈비언들만 모일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 게일 루빈 일탈(현실문화, 2015)

*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큐큐, 2017)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 역시 풍족한 삶을 살았던 레즈비언이다. 그녀의 집에서 열리는 살롱은 당대의 예술가들이 모여 들었고, 콜레트도 바니 살롱에 드나든 인물 중 한 명이다. 60년 동안 이어진 바니 살롱에 한 번쯤 다녀간 인물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거물급문학계 및 예술계 인사들이다. 앙드레 지드(Andre Gide),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등이 있다. 간첩으로 발각되기 전에 관능적인 댄서로 명성을 떨친 마타 하리(Mata Hari)도 바니 살롱의 단골이었다. 바니 살롱에 다녀간 남성 작가들은 세계 모더니즘 문학의 흐름을 주도한 인물이었고, 파리 좌안은 시대를 앞서간 문화의 근거지였다.

 

 

 

 

              

 

 

 

 

바니와 르네 비비엔의 연인 관계는 당대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품에 간접적으로 묘사될 정도로 유명했다. 두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Sappho)의 레즈비언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고, 사포가 태어난 곳인 레스보스 섬(Lesbos I.)에 레즈비언 학교를 세우려고 했었다. 비록 이 계획은 실패했지만, 바니는 파리에 여성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 레즈비언 문화를 전파했으며 르네 비비엔은 바나의 후원을 받으면서 시와 소설을 발표했다.

    

 

 

 

 

 

 

 

 

 

 

 

 

 

 

* [No Image, 절판] 레미 드 구르몽 색 색 색(문지사, 1993)

* [절판] 루 알버트 라사르트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하늘연못, 1998)

 

    

 

바니는 낙엽을 쓴 시인 레미 드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연인으로도 알려졌는데, 구르몽은 그녀를 아마조네스(amazones)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문학 및 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거나 편지로 주고받았다.[1] 릴케도 바니와 편지를 주고받은 문인이다. 바니는 릴케에게 받은 편지를 수록한 정신의 모험(Aventures de l’Esprit)을 발표했다.

 

동성애자 시인 및 작가들의 시 선집인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에 비비엔이 쓴 시 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물론, 사포의 시와 래드클리프 홀이 쓴 시도 있다). 퀴어 페미니스트 게일 루빈(Gayle Rubin)은 비비엔이 쓴 유일한 소설의 서문을 썼다. 이 서문은 일탈에 수록되어 있다.

    

 

 

 

 

 

 

 

 

 

 

 

 

 

 

 

* [번역 예정작] 콜레트 Le Pur et lImpur(Distribooks Inc, 2003) [2]

* [e-Book] 김인환 외 프랑스 문학과 여성(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8)

[3]

*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 출구(동문선, 2004)

    

 

 

한편 콜레트는 파리의 동성애자(게이, 레즈비언)들의 일상을 기록한 순수와 불순(Le Pur et lImpur)을 신문에 연재했다. 이 책에 바니와 비비엔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동성애를 성적 일탈로 보는 독자들은 콜레트의 글을 비난했고, 결국 연재 4회 만에 중단되었다. 순수와 불순20세기 초 파리의 퀴어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콜레트 본인이 이 책을 높게 평가했을 정도면 순수와 불순 콜레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프랑스의 페미니즘 연구가 엘렌 식수(Helene Cixous)가 정의한 여성적 글쓰기를 충실히 따른 작품으로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콜레트의 순수와 불순을 분석한 논문이 실린 프랑스 문학과 여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리 좌안은 여성의 삶을 구속하는 전통적 인습에서 벗어난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혼이나 인공 임신 중절(낙태)을 경험한 여성 예술가가 있었고, 예술에 향한 열정이 가득한 그녀들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파리 좌안의 여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이 파리 좌안에 모여 산다고 해서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적, 계급, 정치적 견해, 섹슈얼리티의 차이에 의해 대립하는 양상이 전개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에 일절 간섭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에 정착한 미국 출신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파리 좌안은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이었다. 파리 좌안의 여자들은 남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삶을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살아왔다. 예술에 향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파리 좌안 여자들의 우정은 파리를 예술의 도시로 성장하게 만든 중요한 힘이었다.

 

 

      

    

[1] 2015년에 구르몽의 색 색 색리뷰를 쓴 적이 있다. 색 색 색의 역자 해설에 구르몽과 바니의 연인 관계를 언급한 내용이 있다.

 

 

[2] 큐큐읻다출판사가 만든 퀴어 문학 출판 브랜드다. 이 출판사가 언급한 출간 예정 작품들에 순수와 불순이 포함되어 있다.

출처: https://www.jungle.co.kr/magazine/27177

 

 

[3] 2003년에 이미 종이책으로 나온 적이 있다. 알라딘에 검색하면 종이책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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