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가 모델을 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의 오류를 먼저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술가가 다르게 볼 거란 생각을 놓쳤죠. 피카소의 입체화가 모델을 앞에 두고 그렸다는 게 놀랍죠. 피카소를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보고 있었다면 정말 '예측불허의 무'를 보는 느낌이었을 테지요. 코가 왜 저기 있는 거야! 하는 순간 다른 게 또 예상을 깨고 나타날 겁니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볼 지도 모르죠.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환청이 들릴 지도요. 와하하)) 달리도 모델을 앞에 두고 초현실화를 그렸죠. 그들은 시간을 그린 걸까요. 공간을 그린 걸까요. 상상은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끼어드는 걸까요. 제가 알기론 시작부터 끝까지 끼어 듭니다. '지속'이 그런 걸 만드는 게 아니라 구심력으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영감(靈感)-돌발변수를  '지속' 자체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여하간 그림이, 음악이, 조각이 완성되기 전까지 예술가 자신도 잘 알지 못합니다. 이미 구상을 했다 해도 완성까지는 그야말로 예측불허죠. '지속'이 끝나면 그림도 끝납니다. 순발력에 있어선 사진작가가 월등하겠지만, 찍은 사진을 확인해야 포착과 완성 사이의 것들을 알 수 있다는 점과 그.것.이 오기 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예측불허"의 창작세계에서 예외일 수 없죠. 

그림은 그림 대로 제 갈 길을 마치고, 우리가 보는 관점에 따라 그림에 대한 해석은 달라지면서 그림은 또다른 변화를 겪어야 합니다. 같은 책을 두고도 누구는 심오하다, 누구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자기도 모르는 걸 빙빙 에둘러서 말하는 거 아냐? 의견이 분분 하듯이요.

예술가가 나는 그렇게 그린 게 아니었어! 라고 말해도 100명의 감상자가 그건 이거 같아! 라고 하면 어찌 되는 겁니까. 예술가의 무의식을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봤다고 해야 되는 겁니까(프로이트가 도라와 한스에게 그랬듯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저 예술가의 뜻을 존중해야 하는 겁니까. 하지만 우린 그냥 놔두지 않죠. 분석가들이 그에게서는 이런저런 게 보인다~~~라고 말하는 수많은 평들을 생각하며, 그가 권위가 있으면 있을수록 그런 거 같다 수긍해왔던 문화 속에서....인간은 진실을 알 수 있는 구조인가, 조작하는 구조인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뭉게뭉게)))

그런 의미에서 교과서 국정화 결사반대! 
단적으로 국어에서 이것은 이런 은유다, 이것은 이런 상징이다 외우게 하는 짓 좀 그만해! 시를 그딴 식으로 배우다니! 이봐, 말이 거칠군...아, 죄송...제가 국정 교과서 출신이라;;; 공부 좀 한 사람처럼 그러시네...제가 지금 이 고생하는 탓 좀 하면 안 됩니까! 그러시든가 말든가 내 인생이 중요해 같은 사회 좀 보라고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5-11-02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 만점입니다.... 단서를 잡아내는 힘을 느낍니다.. 힘의 포획이라는 평론집을 읽어야겠네요...

AgalmA 2015-11-02 17:13   좋아요 0 | URL
제 생각줄기로만 말씀드려서 좀 부끄러운 감이 있습니다. 이론들을 찾아가며 제대로 정리해보고 싶네요.
<힘의 포획> 재밌겠더군요. 저도 근간 읽어봐야 할 듯^^

2015-11-02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새가 눈에 띄면, 열심히 쫓아가던 사냥감을 버리고 어김없이 새를 향해 짖어대는 사냥개 스패니얼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정당하게 불만을 터뜨릴 수 있고 당연히 불만을 터뜨려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사람처럼) 나는 모든 것을 쫓았다..... 나는 별다른 수가 없어 큰 욕심 없이 많은 책을 읽었다. 이 도서관 저 도서관을 다니며 다양한 저자의 책들을 두서없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책을 읽는 기술이나 질서도 없고, 기억력과 판단력도 부족해 작은 이익밖에 얻지 못했다.
로버트 버턴 <우울의 해부>
알베르토 망구엘 <밤의 도서관> 머리말 중 p 11

 
....여러 번 얘기했지만 다시 또, 로버트 버턴 <우울의 해부> 완역본 국내 출간 좀!



1. 쓰는 것은 사는 것에 대한 반성

세상엔 수많은 글이 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글도.
누군가의 기억을 강탈한 글, 문장들을 자신의 글 속에 승화시키려는 노력보다 포획하기 바쁜 글, 사람들의 허점을 이용해 교묘히 조작하고 조립한 글, 선동이나 동조에 급급한 허영의 글....
글 쓰는 자는 사랑에 빠진 자이지만 또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의 범죄자이기도 하다.
바벨탑과 최초의 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사라진 걸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초고층건물과 웹으로 진화했을 뿐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 현상 너머에는 분명히 인간의 욕망이 있고 각자 의미를 가져온다.

조지 오웰은 글쓰는 동기로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을 거론했다. 이는 아주 단순히 요약된 형태이다. 더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동기에 얽매일 때 글은 글쓰는 자에 갇힌다는 점이다. 목적에 의해 글은 순수를 잃는다. 나는 글의 순수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목적에 경도된 글의 위험성을 걱정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이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려는 목적이었다고 했을 때, 예술적인 글쓰기를 정치적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나 속으로 되물었다. 실제로 초현실주의는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중에게 외면 당했고, 근근이 이어져오고 있다. 목적은 정말이지 끝끝내 올바를 수 있을까. 목적은 수많은 이들의 동기-출발점으로 작용할 뿐이지 않을까.

책은 선점과 독점의 편력사이다. 전리품처럼 필수품처럼 모든 이가 골고루 나눠 갖기 위한 게 아니라면, 같은 책은 존재 이유가 없다. 그래서 글 쓰는 자는 매순간 달라지기 위해 도주적, 분열적, 증식적, 탐욕적이다. 글 쓰는 자는 점령하려는 폭군이거나, 그것을 피하려는 은둔자 둘 중 하나를 주로 택했다. 욕망 속에선 서로 다르지도 않다. 폭군과 은둔자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다. 이 세상의 유비(類比)를 또 생각하게 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습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확인된 앎을 비교해가며 내 앎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이다. 로버트 버튼이 우울하게 술회하고 있는 저 문장처럼 내 영토는 아주 보잘 것 없다.
그래서 사람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나. 어제는 10년 넘게 안 사람의 이름이 기억 안 나 휴대폰 전화부를 한참 뒤져야 했는데, 이니셜만 있었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 에세이에서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고 말하며, ˝내 작업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 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라고 문장을 마쳤다.
그가 말하는 `개별성`과 `정치성`은 문제 지적과 포괄적인 지향을 담고 있겠지만 나는 또 의문을 던진다. 글은 자신과의 투쟁, 자기와 세계와의 투쟁이 쟁점이었다고 볼 때 `좋은 글은 개별성을 지워야만 한다`는 건 타당한 표현인가. 그가 비판한 전체주의와 왜 같은 문장을 쓰는가.
또, 그가 거론한 모든 것을 이용한 `정치적` 목적의 글과 열광도 나는 많이 봐 왔다.
이렇듯 글은 쓰인 것의 반대를, 부정을 늘 함께 가져온다. 글 쓰는 자는 자신이 쓴 글에 의해 바로 고발되고 배신 당한다. 책만 칭송하는 무신론자가 책의 언어만 믿고 현실의 언어는 의심하며 책의 언어는 존경하면서 현실의 언어는 천대한다면, 그 자신도 비웃음 거리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글을 쓰기도 전에 나는 범죄자가 될까 봐 두렵다. 나도 모를 어떤 갈취가 있지 않나 싶어서다. 자신의 언어에 도취해 확신하는 자의 사상을, 어조를 의심하면서 내가 그러고 있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뒤따른다. 그래서 작가들은 늘 자신을 실패자라고 말하는 지도.
그렇다고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내일을 희망하는 어설픈 회개자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태어난 건 내 책임이 아니지만, 나는 사는 동안 내내 묻는다. 왜 하느냐고. 조지 오웰이 밝힌 글쓰기의 네 가지 동기가 이 물음에도 해당될 것이다.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생각으로 이리 저리 고른다면 쓸모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면피를 반성과 혼동해선 안 되리라. 우리의 어떤 목적도 순수하지 않으며 항시적인 정답일 수 없다. 회피하기 위해 단지 취향이자 취미이고 오락이라 말할 때조차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읽기와 말하기와 글쓰기의 최선은 성취가 아니라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과 타인과 세계에 대한 자세이기도 하다.

글에 대해, 책에 대해, 목적에 대해, 윤리에 대해 오래 생각해보는 여러 날이다.

 

기억과 예술의 공통점은 선택의 요령, 즉 세세한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런 결론은 예술, 특히 산문에는 칭찬의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기억에는 모욕적인 말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모욕은 당연하다. 기억에는 전체적인 그림이 담기지 않고 세세한 것이 주로 담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이라이트가 전체는 아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한다는 확신, 또 우리가 모든 생명체에 그럭저럭 살아가게 허락한다는 확신은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기억은 알파벳 순서로도 정리되지 않는 도서관, 어떤 작가의 전집도 갖추지 못한 도서관이라 할 수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 <밤의 도서관> p 38~39


3세기 초 중국에서 황실 도서관의 책들은 저명한 궁중 학자들의 합의로 결정된 네 가지 느슨하고 포괄적인 표목ㅡ 정전이나 고전, 역사서, 철학서, 그 밖의 문학서ㅡ 하에 정리되었고, 각 표목에 속한 책들은 각각 초록색, 붉은색, 푸른색, 회색으로 장정되고 구분되었다(이러한 색 구분법이 초기 펭귄 클래식과 에스파냐어 아우스트랄 컬렉션에도 사용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런 분류법에 따라, 책들은 제목의 철자나 발음 순서로 정리되었다.
알베르토 망구엘 <밤의 도서관> p55

 

 

2. 의도하지 않으셨겠지만 제게 책임감을 부과한 선물들, 감사드립니다.

춥고 울적하기 쉬운 날들, 치열하지만 행복한 책읽기, 글쓰기가 모두와 함께 하길.



ㅡ Agalma

 

 

 

 

 

 

 

 

 

 

 

 

 

 

 

 

 

 

 

 

 

 

 

 

 

 

 

 

 

 


댓글(29)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0-31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10-31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댓글실력ㅋㅎ고마워요..몇년간 카폐친구들과 쌓은 스킬인듯...푸하하.
기쁠땐 막...즐거워하면 좋은데 참..이런것도 당심답단..
생각을하고가요!

2015-11-08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래, 쓸쓸하구나


11
˝나는 결코 나 자신을 말할 수 없어요. 말하는 나가 뒤에 남기 때문이에요. 말하는 나를 다시 말한다 하더라도, 그 말 하는 나는 또다시 뒤에 남아요. 시 또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다 계속해서 실패하는 형식이에요.˝ 
이성복 시론  <무한화서 2002~2015>



그래서 우린 쓸쓸한 거에요. 언어에서든, 현실에서든, 관계에서든. 
그런데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더욱 복잡해지는 거죠.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0-28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8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8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8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8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8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8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8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0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5-10-31 01:18   좋아요 0 | URL
성격이 급해서ㅋㅋ...아마도, 그러나 역시 게으르게요^^;

2015-10-31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핵 두려움은 지나치다?

 1. 핵에 있어 테러리스트들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리차드 뮬러 논지는 자의적입니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이미 군사적 목적이 있는데, 외부의 적을 상정하는 저자의 논점이 틀렸습니다. <세상을 구한 남자> 다큐멘터리에서도 보았듯이 냉전 체제에서 소련과 미국이  핵전쟁을 일으킬 뻔 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군요. 트루먼은 이미 일본에 핵무기를 써먹었죠.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위험 요소가 많아요. 전쟁이 일어나면 적국의 무력화를 위해 공항부터 집중 타격하듯이 적국의 원자로 공격 안할 거란 보장 있습니까? 전쟁이 일어나면 곧바로 약점이 될 곳이죠. 2차 세계 대전 때와 다른 타격점을 만들었다고 봐야죠.  911 자살테러처럼 일어날 거라 생각 못한 일을 뒤에 생각해봐야 늦은 일입니다. 핵의 폐해를 생각할 때 핵 사용에 대한 신중함은 결코 지나친 게 아닙니다. 

2. 현재 기술로는 완벽할 수 없는 핵폐기물 저장, 그에 쏟는 막대한 비용도 문제지만, 핵발전소 가동 지역에 주로 발생하는 질병(갑상선 이상 등등)으로 사망자가 계속 나오고 있으며 그곳 주민들은 사는 내내 불안 속에 살죠. 삶의 터전이 거기라 쉽게 떠나지도 못하고요. 그런 보고들은 쉬쉬 되고 있으니 잘 알려지지 않고, 지역이니 국가니 발전 소리가 과연 온당한 걸까요. 대의를 위해 소수의 피해는 감안하자 그겁니까.
독일이 후쿠시마 사태 후 원전 추진을 중지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계속 추진하면 자본주의 경쟁 심리상 그 의지를 고수할 수 있을까요? 개발도상국이 서구 국가와 경쟁하기 위해 가장 탐내는 에너지가 핵 발전소죠. 핵 발전소는 발전이 아니라 탐욕과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건 핵발전소에 문제가 크게 발생하면 막을 수가 없잖습니까. 피해는 천문학적이고요. 체르노빌, 후쿠시마 보고도 핵을 안전하게 쓸 수 있다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다니 참 놀랍습니다.

3. 천연우라늄에 대해....한번 시작되면 큰 일이지만 핵반응이 그리 쉽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우라늄 원자가 쪼개져야 하고, 그때 열에너지와 중성자가 나오고 이것이 다른 원자들의 분열을 일으켜 핵분열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미 지구엔 선사시대 발생한 걸로 추정되는 수십 억년 된 천연원자로가 있는데, 지금의 현대 원자로와 같은 방식으로 우라늄 축적 층에 지하수가 덮고 있는 신기한 자연현상이죠. 
이 모든 걸 핵에너지 전문가이고 버클리 물리 교수인 리차드 뮬러 씨가 더 잘 알겠지만, 그는 인간의 인위성과 탐욕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기 보다 공리성에 치중한 인상입니다.

4. 핵발전소를 더더 지을 만큼 그렇게 대단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가 싶습니다. 대체 에너지 개발이 쉽지 않고 또 시일이 걸리는 현황이다보니 그보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핵 에너지를 써먹자 이 심리 있지 않을까요? 산업혁명 시대부터 지금까지 화석연료를 무분별하게 썼듯이.
핵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보다 피해가 더 크다는 걸 중요하게 봐야죠. 핵 에너지 활용으로 인한 발전보다 반대급부의 피해를.
북 다이제스터님 서재글(http://blog.aladin.co.kr/713413104/7666226) ,  guiness님 서재글(http://blog.aladin.co.kr/705307136/7869980) 보면, 전기자동차는 오래 전에 사용 가능했으나 석유에너지, 자동차 산업 등 자본가들 압력으로 폐기되었다는 걸 말씀하시고 있죠. 핵 에너지 옹호론도 이런 역학을 무시할 수 없죠. 이미 핵피아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고요. 음모론이라고 보기엔 신빙성 있는 보고들이 많습니다. 핵 발전소를 국가 사업으로 해외에 파는 시점이니 자본가들과 다르지도 않고요.
물리를 보고 삶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사회가 돌아가는 판을 제대로 보고 물리를 말했어야 하지 않나...리차드 뮬러에 대한 리뷰를 보고 든 아쉬움입니다.

근거 자료를 하나하나 가져오기도 좀 귀찮고; 오늘은 좀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리처드 뮬러 주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런 먼댓글로 갈무리한 점 양해바랍니다.

ㅡAgalma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0-28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8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골상학 얘기에 문득...

골상학은 프란츠 요제프 갈(1758~1828)을 시작으로 구스타브 셰브(1810 - 1873), 요한 스푸르츠하임(1776~1832)으로 이어지며, 머리 형태가 사람의 성격 특성을 좌우한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사이비과학으로 판명되었지만, 골상학 관념은 여전히 어설픈 심리학, 성차별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ex- 남자 뇌/여자 뇌 - 아래 그림 참조)

뇌와 신경중추, DNA를 조사하는 뇌과학 시대, 지금은 좀 나아졌다 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건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의식, 영혼, 자아는 어느 장소에 있는가!


˝영혼은 하나의 사건이다. 영혼의 장소는 뇌가 아니며 다른 어떤 신체기관도 아니다. 영혼은 성찰의 종합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삶이 있는 곳에 있다˝
-루트비히 뷔히너(1824~1899) <영혼의 장소에 대하여>

ㅡ한스 J. 마르코비치, 베르너 지퍼 <범인은 바로 뇌다> 중

유물론자인 루트비히 뷔히너의 말은 관념적이기도 한데, 마르크시즘 시대를 거쳐온 들뢰즈 `사건의 철학`과 닮은 것도 같다.

 

 

 

 


2. 사건이 연결될 때

연말이 다가오고 2015 독서계획 중, 들뢰즈(<의미의 논리>, <안티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읽기는 어떻게든 처리해야겠다 싶었다. 세 책 다 읽기는 시작했지만 완료가 까마득)) 신간 그만 보고! 중고서점 뒤지는 것도 이제 그만해!(내 안의 독서 초자아의 외침) 들뢰즈 읽기가 완료되면 계획 60% 성공률! 계획의 좌절 속에도 내년에 또 계획을 세우겠지...흥미로운 신간도 계속 날 유혹할 테고(아아, 이게 제일 문제지. 올해도 그렇게 당했ㅜ).
이 실패의 범인도 바로 뇌!
무거운 의무감과 신나는 도전의식(이게 도대체 몇 번째인가...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의미의 논리>를 펼쳤다.

이 책에서 제일 처음 거론되는 1, 2계열- 플라톤과 스토아 학파는 서로 대립한다. 들뢰즈는 스토아 학파의 사건 개념을 받아 들인다.

˝플라톤에게 달의 둥그럼은 달의 질료에 구현된 하나의 형상이다. 그러나 스토아 학파에게 이 둥그럼은 달의 질료가 일정하게 배치됨으로써 생기게 된 표면효과이다. 플라톤의 경우, 달이 변화해도 둥그럼의 형상 자체는 하등의 변화를 겪지 않는다. 스토아 학파의 경우, 달이 변화하면 둥그럼 자체도 변화하는 것이다.˝(<의미의 논리> 중 이정우 교수 서론, p26)

플라톤과 스토아 학파를 골상학과 뇌과학으로 대입해봤다. 플라톤은 골상학의 논리라고 볼 수 있다. 내부 특성이 형태와 사건을 좌우한다는 식. 스토아 학파는 현대 뇌과학과 신경심리학이 섞인 걸로 생각된다. 뇌에서 특성을 맡은 유전자들과 기관들이 상호작용하고 외부와 만나며 사건과 의미가 발생한다. 완료는 아니니 끝없이 변화한다.
이 생각은 어디까지나 내 가정(假定)적 추론일 뿐이고 앞으로 바뀔 수있다.

˝사건이란 존재 세계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기호 체계 바깥의 그 무엇을 요청한다는 것이다˝(p27)

이 사건들을 인식하며 내가 무슨 의미를 만들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한 가지는 안다. 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이면, 내 2015년 독서 계획 마무리는 무척 곤란할 거라는 걸...
이웃들의 독서 계획은 잘 되고 있으려나.


덧)
아래 첨부된 이런 이미지는 제발 웃고 넘어갑시다. 이미지와 `시뮬라크르`에 매번 당하면서도 또 당하는 우리.
그림 내용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문제를 웃으며 생각해보자 올린 건데, ˝이런 걸 자꾸 보게 되는 게 더 문제다!˝ 라고 폭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주셔도 됩니다/ 고치는 걸 운명으로 생각하는 1인;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lou:Do 2015-10-27 0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웃들의 독서 계획도 엉망입니다. 계획과 실행 그 사이의 괴리는 항상 언제나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지요 ㅎㅎ

AgalmA 2015-10-27 06:38   좋아요 0 | URL
저만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전혀 기쁘진 않군요. 남은 두 달 잘해보자고요ㅜㅜ/

Clou:Do 2015-10-27 0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네. 함께 힘내보아요 ㅎㅎㅎ

cyrus 2015-10-27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자크가 요제프 갈의 골상학 이론에 심취한 적이 있어서 자신의 소설에 갈의 골상학을 자주 언급해요.

AgalmA 2015-10-27 21:47   좋아요 0 | URL
사람은 그 시대의 영향 속에 있어서 겠죠. 발자크가 프로이트나 융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많이 달랐을 지도...

cyrus 2015-10-27 22:38   좋아요 1 | URL
발자크가 프로이트의 시대에 태어났으면 심리소설의 대가가 될 수도 있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