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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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가 키케로를 인용하고, 키케로가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하고, 줄리언 반스가 그들을 인용하고, 그렇게 한없이 우리는 삶과 이야기와 죽음의 공동체.


옥스퍼드 재학 시절에 처음 몽테뉴를 읽었다. 죽음에 관한 우리의 현대적 사유가 시작되는 지점에 그가 있다. 그는 고대 세계의 현명한 본보기들과 우리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종말을 현대적으로, 원숙하게, 종교를 초월해 받아들이고자 하는 노력을 하나로 이어준다.

“Philosopher, c’est apprendre à mourir.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몽테뉴는 키케로를 인용하고, 키케로는 이어서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한다. 죽음에 관한 그의 박학한 면모를 드러내는 유명한 저서들은 금욕주의적이고 문학적이며 일화가 많고 경구적이고 (어쨌거나 그가 의도한 바대로) 위안을 준다.

(중략)

몽테뉴는 죽음을 물리칠 수 없는 우리가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너의 말이 넘어지거나 지붕에서 타일 한 장이 떨어질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라. 네 입안에선 언제나 죽음의 맛이, 네 혀끝에선 언제나 죽음의 이름이 감돌아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죽음을 예견할 때 죽음의 예속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이에게 죽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기실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다.


(중략)

몽테뉴는 “종교의 가장 확실한 토대는 삶에 대한 경멸이다”라고 말했다. 잠시 빌려 사는 이 세계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기독교도에게는 논리적이며 실로 본질적인 것이었다. 현세에의 과도한 애착(말고도 죽지 않는 몇몇 육생의 형태를 욕망하는 것까지)은 신에 대한 무례였을 것이다. 영국의 몽테뉴라고 할 수 있는 토마스 브라운 경84은 이렇게 썼다.
“이교도에게도 삶을 사랑하게 될 동기들이 있겠지만, 기독교도에겐 죽음을 외경하는 (즉, 두려워하는) 동기들이 있다. 기독교도가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형은 세포 재생에 관한 첫 번째 농담이 기원전 5세기에 생긴 것임을 지적하며 ‘자신은 예전에 돈을 빌렸었던 놈과는 다른 인간이 됐기 때문에 빚을 갚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놈’도 관련이 있다는 말을 했다. 그는 나아가 내가 몽테뉴의 표어 ‘philosopher, c’est apprendre à mourir’를 잘못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키케로의 그 말은 꼬박꼬박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을 덜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철학자는 철학적 사색을 통해 죽음을 연습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신의 정신으로 소일하고 있으며 죽음이 제거할 육체는 무시하고 있다.nn플라톤학파는 죽은 후 인간은 순수한 영혼이 되어 육신의 장애를 벗어나기 때문에 더 자유롭고 명징하게 사유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는 살아 있는 동안 죽음 이후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단식과 자학과 같은 기술을 연마해야 했다. 플라톤학파는 죽은 후에 모든 것이 좋아지기 시작한다고 믿었다. 반면에 에피쿠로스학파는 죽은 후엔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다. 듣자 하니(여기서 ‘듣자 하니’란 말은 ‘형이 말해준 또 한 가지는’을 의미한다) 이 두 개의 전통을 조합해 스스럼없는 고대인 특유의 ‘이것 아니면 저것’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즉 ‘죽은 후 우리는 더 낫다고 느끼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라는.

플로베르와 모파상과 공쿠르와 졸라가 마치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듯 묘사와 분석을 통해 이 세계를 전부 소진시켜 더는 픽션 장르가 할 수 있는 게 남지 않게 된 시점에, 즉 소설의 시대가 막을 내릴지도 모르게 되었을 때 르나르는 산문을 쓰기에 이르렀다. 돌파구는 오로지 요약, 주석, 점묘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사르트르는 『일기』를 거창하지만 다소 마지못한 태도로 상찬하는 글에서, 르나르가 제시한 해결책보다 그 딜레마에 더 큰 갈채를 보냈다.
“한 가지 것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수많은, 더 현대적인 시도는 그 기원을 쥘 르나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이런 말도 했다.
“그를 현대문학의 시작점으로 본다면, 그 이유는 그가 스스로 들어가길 금했던 영역에 대해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기』를 썼고 시기상 르나르의 『일기』와 몇 년이 겹쳤던 지드는 (아마도 경쟁심에) 르나르의 『일기』는 ‘강이 아니라 증류주 공장’이라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뒤이어 ‘열광하며’ 읽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양조장을 원하는가? 아니면 강을 원하는가? 삶이 독주에서 걸러낸 몇 방울 같기를 바라거나 노르망디 사과주 1리터 같기를 바라는가? 이는 독자들이 선택할 몫이다. 작가는 개인의 기질은 물론, 역사적 순간도 통제할 수 있는 바가 거의 없으며, 다만 작가 본인의 미학에 얼마간의 책임을 질 뿐이다. 증류주 같은 르나르의 글은 이미 사라진 문학에 대한 그 자신의 응답이자 거리낌 없는 본성의 표출이었다. 1898년에 그는 이렇게 썼다.
“거의 모든 문학작품에 대해서 지나치게 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평은 천 페이지 분량의 『일기』에서 4백 페이지째에 등장하는데, 르나르가 사망한 후 그의 부인이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길 바라는 페이지들을 골라 태워버리지 않았다면 『일기』는 천오백 페이지에 달했을 것이다.
『일기』에서 르나르는 고도의 정확성을 기해 자연계를 살피면서, 감정을 배제한 찬탄을 곁들여 묘사한다. 그리고 똑같은 정확성을 기해 인간계를 살피면서, 회의적인 태도와 아이러니를 곁들여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숱한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과 달리 자연과 아이러니의 기능을 이해한다. 1899년 12월 26일, 아이러니라는 게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해진 새로운 세기가 막 도래할 즈음 그는 이렇게 썼다.
“아이러니는 잔디를 시들게 하지 않는다. 다만 잡초를 태워 없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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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나르의 친구 중, 희곡작가이자 재담꾼이었던 트리스탕 베르나르는 지나가던 영구차를 보고 마치 택시나 되는 것처럼 멈춰 세운 적이 있었다. 영구차가 멈춰 서자 그는 쾌활하게 물었다.
“타도 돼요?”
마흔여섯 살의 나이로 죽기 전에, 르나르는 지척에서 죽음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다음은 그가 여느 때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죽음을 수습한 사례들이다.

진지함이라. 예컨대 1840년대까지의 교황령에서 태어난다는 건 나로선 바라는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는 교육 수준이 지독히도 낙후돼 있어서 전체 인구의 불과 2퍼센트만 문맹을 면했다. 사제와 비밀경찰이 모든 걸 주관했다. ‘사상가들’은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불온한 부류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런 가운데 그레고리 16세는 ‘중세에 어울리지 않는 건 무조건 불신했기 때문에 철도와 전신이 자신의 통치권 안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금했다’. 이것이 진지하냐고? 천만에. 철저히 잘못된 방향에서 ‘진지하다’면 모를까. 이후 피우스 11세가 1864년에 제정한 ‘금서 목록’의 칙령으로 갈무리되는 세계가 있다. 그 세계에서 왕은 교회가 과학, 문화, 교육 전반을 통제할 것을 주장했고, 다른 종교를 숭배할 자유를 배척했다. 천만에, 내가 이런 것에 끌릴 리 없다. 그들은 처음엔 종파분리론자를 추적할 것이고, 그다음엔 다른 종교들을, 그런 후 나 같은 사람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럴진대, 거의 대부분 종교 체제하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독점을 좋아하는 것처럼, 종교는 권위주의를 좋아한다. 혹여 지금 이 말을 듣고 자동적으로 권위의 상징 같은 저 바티칸에 있던(‘보좌에 앉아 계시던’이라고 해야 하나?) 교황들이 떠오른다면, 그러지 말고 교황의 역사에선 악명 높은 적과 같았던 반가톨릭교도를 떠올려보라. 바로 로베스피에르 말이다. 이 ‘청렴결백한 자’는 1789년 가톨릭교회의 사치와 세속성을 공격하며 국가적 명사로 떠올랐다. 삼부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그는 사제들에게 투명한 수단을 동원해 모든 자산을 팔아 그 수익을 빈자들에게 분배하는 것으로 초기 기독교의 금욕과 미덕을 다시 배우라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교회가 저어한다면 혁명은 기꺼이 도울 것임을 넌지시 시사했다.
대부분의 혁명 지도자들은 무신론자이거나 진지한 불가지론자였고, 새 정부는 수립되기 무섭게 가톨릭 신과 그의 지방 대표들을 제거했다.

서머싯 몸의 명언이 두 개 있는데, 내 딴엔 그 두 명제와 줄기차게 논쟁을 했기 때문인지 몇 년 동안 내게 울림을 주었다. 첫 번째는 ‘아름다움이란 따분한 것’이란 주장이다. 두 번째는 (초록색 색인 카드가 일러주기를) 『서밍 업』의 제77장에 나온다.
“인생의 크나큰 비극은 사람이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당시 내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건 영감님한테나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서머싯 몸은 삶을 이끌 최상의 정신 상태는 ‘유머를 간직한 체념’이라고 생각했던 불가지론자였다. 『서밍 업』에서 그는 그때까지 사람들에게 신의 실재를 믿게 했던 온갖 미흡한 주장들을 (주요 원인부터, 설계부터, 완성부터) 숨 가쁘게 검토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주장들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은 길고 유행에 뒤지는 주장인 ‘e consensu gentium’, 즉 ‘만민의 합의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곧 인간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천차만별의 문화가 배출한 최고의 위인들과 최고의 현자들까지 포함된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신에 대한 모종의 신념을 품어왔으니 신은 실재한다는 의미다. 그토록 광범한 본능이 충족될 가능성 없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세계에 대한 실질적인 지혜와 지식, 그리고 명예와 부를 갖춘 것이 무색하게 서머싯 몸은 ‘유머를 간직한 체념’의 정신을 고수하지는 못했다. 그의 노년은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든 것이 앙심, 멍키 글랜드,적의에 찬 유서 작성으로 점철돼 있었다. 그의 육신은 정력과 정욕 속으로 잠겨 들어가면서 심장은 더욱 딱딱해지고 정신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날이 공허한 부자로 전락했다. 행여 그가 자신의 (쌀쌀맞고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조언을 포함한 유언장에 내용을 추가하고자 했었다면 ‘인생의 또 다른 비극은 우리가 제때에 죽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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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에세이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데이비드 실즈『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보다 줄리언 반스의 이 책이 훨씬 풍부하고 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줄리언 반스에게 더 호감을 갖게 되었다. 신랄하기론 둘다 막상막하겠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무신론 책보다 대중에겐 불가지론자 줄리언 반스의 이 책이 더 호응이 높을 수도 있겠다.
그는 이 책이 자서전이 아니라고 했지만 예순 둘 나이에 죽음에 대한 책을 쓴다면 그 의미가 없을 수 없다. 그가 처음 본 (닭의) 죽음, 가족과 주변인의 죽음, 많은 철학자와 문인의 죽음, 자신에게 닥칠 죽음을 살펴보고 있으니 말이다.
반스는 서머싯 몸의 박학다식에 매우 존경을 표했는데, 이 책을 읽는 우리로서는 반스에게 그와 같다 하겠다. 삶과 죽음, 문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위트 넘치는 강의 같으니까.
아, 이 책 읽고 나면 서머싯 몸 『서밍 업』을 또 안 볼 수가 없다. 미뤄뒀던 그 책도 이제 읽을 때가 도래했다.








첫 번째 짐을 끌고 거대한 노란색 운반용 바구니 속에 넣을 즈음에야 (전에 없이 그 어머니의 그 아들답게) 나는 그 물건들이 내버리기엔 너무도 아깝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부모의 살림살이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들을 남몰래 비닐봉지에 넣어 방치하는 대신, 유품 정리업자가 탈락시킨 물건들을 운반용 바구니에 넣고, 비닐봉지들은 보관해두었다. (어머니라면 이렇게 하길 바랐을까?) 마지막 물품 중 하나는 형이 실망스러운 햄샌드위치에 대해 썼던 여행지인 샹페리에서 아버지가 산 시시한 철제 카우벨이었다. 카우벨은 바구니 밑으로 덜커덕 떨어지면서 딩동, 소리를 냈다. 나는 내 밑에 펼쳐진 물건들을 바라보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조금이라도 켕길 만한 게 없었음에도 왠지 저열해진 기분이었다. 마치 부모를 관에 안장하지 않고 종이 봉지에 담아 묻기라도 한 것처럼.

각설하고. 이것은 나의 ‘자서전’이 아니다. 그렇다고 ‘잃어버린 부모님을 찾아서’ 따위의 이야기도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사실엔 핏줄이기 때문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스스럼없이 굴게 되는 점과,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될 거대한 무지의 영역이 공존함을 안다. 그리고 그 푸프가 품은 기록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부모에게 대단한 비밀이 있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불필요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헤아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아버지도 여든두 살에 죽었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 거라고 늘 생각했었다. 아버지를 더 사랑했고, 어머니에겐 기껏해야 짜증 섞인 정을 느꼈을 뿐이니까. 정작 실상은 정반대였다. 여파가 덜할 거라고 예상했었던 어머니의 죽음은 더 복잡하고 더 위태롭게 다가왔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냥 아버지가 죽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죽자 둘 다 죽은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집 정리 과정은 예전에 우리가 한 가족이었던 시기를 발굴하는 작업이 되었다.

창조자에 대한 믿음보다는 죄의식과 심판에 대한 욕망에 더 기울어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삶은 인간에게 신을 믿도록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쪽지 중 하나에서 그가 한 말이다.
또, “당신은 죽은 후에도 살아 있게 될 것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는 자신을 상상했고, 이에 “나는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하는 것을 상상했다. “당신이나 내가 제시할 만한 이유들 때문이 아니라, ‘나는 소멸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때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확히 안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하기야 우리 중에서도 저런 식의 말을 할 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아주 특별한 보상을 바라고 자신을 공양하는 근본주의자 말고. 하지만 우리는 그 말이 암시하는 게 뭔지는 몰라도, 그 말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하고 무거운지는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 친구 R이 내게 얼마나 자주, 어떤 상황에서 죽음을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잠에서 깨어 있는 하루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후 간간이 일어나는 야간 침입들이 있다고도 했다. 외부 세계가 뚜렷한 평행선을 그릴 때, 저녁으로 접어드는 시간, 낮이 짧아질 때, 혹은 긴 하루 동안의 하이킹이 끝나갈 때, 자주 죽음의 필연성이 불청객처럼 내 의식을 비집고 들어온다.
좀 더 참신하게 말해보면 나의 모닝콜은 텔레비전에서 스포츠 경기가 시작될 때 성가시게 울어대는 때가 많은 것 같고,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5개국(이젠 6개국이 됐다) 럭비 경기 대회 때 유독 심한 것 같다. 나는 R에게 낱낱이 털어놓으며 행여 이 주제를 내 멋대로 곱씹는 것으로 비쳐질까봐 해명했다. 내 말에 그가 대답했다.
“죽음에 대한 네 생각은 ‘건강한’ 것 같은데. (우리 둘 모두의 친구인) G처럼 미친놈 같진 않잖아. 나도 미친놈인 건 마찬가지지. 언제나 ‘당장 저질러’ 유형이었거든. 이를테면 입에 권총을 집어넣는 것이지. 템스 밸리 경찰이 와서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에서 내가 그 말을 한 걸 들었다면서 내 12구경 산탄총을 압수한 이후론 장족의 발전을 했어. 이제 가진 총은 (아들 소유가 된) 공기총뿐이야. 무용지물이야. 쏴지지도 않거든. 그러니 난 너와 ‘함께 늙어갈 거야.’”

만약 내가 러시아 작곡가를 내세워 G와 맞붙어야 한다면 나는 라흐마니노프보다 더 뛰어난 작곡가이며 그 못지않게 죽음에 천착했던 쇼스타코비치에 그와 똑같은 액수의 판돈을 걸겠다. (더 큰 돈을 걸 수도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쇼스타코비치가 말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습관화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예기치 못한 때에 엄습해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과 친해져야 하며, 그 한 가지 방법은 글로 쓰는 것이다. 난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생각하는 게 나이 든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사람들이 좀 더 빨리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어리석은 실수를 할 확률도 줄어들 것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강렬한 감정일 것이다. 그보다 더 깊은 느낌은 없을 거란 생각도 가끔 든다.”
이는 공언된 견해가 아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죽음이 (영웅적 순교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면) 구소련의 예술에선 적절한 주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훌쩍이며 소매로 코를 훔치는 것과 다름없는’ 것임을 알았다. 그의 악보에서 〈디에스이라이〉를 불타오르게 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음악적인 위장술을 펼쳐야 했다. 그러나 이 신중한 작곡가는 점차로 자신의 내면에서 소매로 콧구멍을 슥 닦는 용기를 발견했고, 이는 그의 실내악에서 빛을 발했다. 그의 말년의 작품들엔 죽음의 숙명을 향한 느리고 명상적인 기도가 자주 등장한다. 베토벤 사중주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이 작곡가에게서 제15번의 첫 번째 악장에 관해 이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음악을 들은 파리가 허공에 뜬 채 죽을 수 있을 만한 연주를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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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5
루이스 캐럴 원작, 마틴 가드너 주석, 존 테니엘 그림, 최인자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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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루이스 캐럴과 나보코프... 그들의 소설을 읽었다면 당연히 연결 지을 수밖에 없다.

앨리스야 두말할 필요 없이 명작이지만 이 책은 주석 편집이 너무 난삽해서 2015년 사파리 출판사에서 나온 걸로 다시 구입해야 할 듯.

존 테니얼이 말벌 그리기 싫다고 <가발을 쓴 말벌> 빼라고 해서 초판엔 빠졌었다는 데 충격ㅎ 작가보다 파워가 더 세다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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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9.9.10 - no.026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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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을 페미니스트 작가라고 한정하기보다 카산드라 혹은 샤먼 같다고 하는 이유는 작가 특유의 어투로도 짐작 가능하다. 그녀의 글은 차갑고 명징하다. 그녀의 메시지는 저 심연의 기저에서 흘러나오므로 빨리,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카산드라의 노래처럼 우회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지만 너무 비극적이어서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을 듯하다. 카산드라의 언어는 치솟은 파도 너울 안쪽의 접혀진 음영 지대에 머물러 있는 어둡고 난해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나는 레싱의 글이 통속적이지 않아 좋다. 가령,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어미 새들의 소음 같은 것이 들리지 않아 좋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한 여인이 낼 법한 자기분열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신음이 들리지 않아 좋다. 욕망을 비운다고 하면서 욕망을 증폭시키는, 아직도 긴장과 흥분 상태 속에 있는 피곤한 글이 아니어서 좋다. 도리스 레싱은 그저 차갑게 예증할 뿐, 너무 자세한 해설을 보태지 않는다. 자기연민에 빠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페미니즘적인 글쓰기는 무엇일까? 여성적인 글쓰기가 따로 있기는 한 건가?

(중략)

섹스라는 단어도 실상 어원대로라면 교합이 아니라 분리이다. 라틴어 섹수스(Sexus)는 암수 분리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의 황제 섹수투스는 분리와 통합을 이중적으로 구사하는 고도의 통치 능력을 염원하며 섹수스에서 파생한 ‘섹수투스’를 자신의 황제 명으로 정했다고도 한다. 결혼에 이은 이혼은 외견상 결정적 파국 같지만, 내적 논리로만 보면 유기적이고 연기(緣起)적인 수순 같기도 하다.

도리스 레싱은 늘 자신을 탈영토화함으로써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늘 ‘바깥’에 있었다.

ㅡ 류재화,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만나는 건 쉽고 헤어짐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조언을 구하고, 상담을 하게 된다. 데이트를 하러 온 젊은 커플들이 가득한 한 카페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정신과전문의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이 사람과 결혼해야 하나요를 물으러 오지 않지만, 이 사람과 헤어져야 하나요는 물으러 오지요.” 입사할 때보다 퇴사할 때 더 고민이 많고, 장사를 시작할 때보다 접을 때 더 헷갈리는 것처럼, 결혼과 이혼도 똑같단다. 그 의사 선생님에게 소설 「이혼 지침서」의 내용과 ‘이모들’로부터 받았던 조기교육의 내용을 이야기해드렸더니 이렇게 말했다. “삶의 에너지가 더 강한 사람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지요. 물론 의사인 제가 권장할 방법은 아니죠. 나도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까요.”
영국의 대중저술가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는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Driving with Plato)』이라는 책에서 오늘날 이혼이 갖는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혼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한다. “서로 헤어지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헤어지려 하는 두 사람이 헤어지는 방법에 관해 강제적으로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ㅡ 김보경, <쑤퉁 「이혼 지침서」>

그는 마치 부활하는 것처럼 방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이 시점에서 화자는 줄곧 ‘그’였던 것에서 ‘그녀’로 바뀐다. 그 방에 들어온 (아내임이 분명한)그녀는 누군가가 들어온 흔적을 알아채지만 잃어버린 것이 없다는 것에 곧 안도한다. 그리고 그녀는 잃어버린 것이 없는 대신 새로운 물건 하나를 발견한다. 여기에서 이 소설의 문장은 시간을 마구 뒤집어놓는다. 분명 새로운 물건을 발견했는데 “그 물건은 그녀가 매우 좋아했던 것이었으므로”라는 과거형으로 그 새로운 물건에 대해 얘기한다. 그로 미루어보건데 그는 이 집에서 아내의 남편이자 집의 일부인 가구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처음부터 가족이란 제도에서 남자 가장의 방은 없다. 남자에게 집은 가장 낯선 공간이다. 특히 가부장제는 오랜 과거에서부터 남자를 끝없이 집밖으로 내몰았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에서 아내의 외출은 상황을 전도시킨 그의 배제였고, 그 배제에서 그가 아내의 집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가구가 되는 길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메모지를 찢어 달필로 다음과 같이 써서 화장대 위에 놓았다.(생략)˝

ㅡ함성호, <최인호 「타인의 방」>

최제훈 : 저는 기본적으로 소설뿐 아니라 모든 창작의 세계에서는 가급적 제한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미적가치는 어디서 싹을 틔울지 모르는 건데 밭 자체를 폐쇄해버리면 그만큼 세계의 인식 가능성이 줄어드는 셈이니까요. 극단적인 생각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무엇을 허용하고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중의 판단력 자체가 떨어질 수도 있고, 결국 필터를 자처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세계만 읽으면서 살게 될 수도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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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태도가 점점 확대되면 결국 우리는 비슷비슷한 인물이 등장하는 비슷비슷한 소설만 읽게 되겠죠. 소설은 어떤 지향점을 바라보기보다는 지금 여기를 파헤치는 데 특화된 장르라고 생각해요. 현실에서도 선한 사람들만 살아가면 좋겠지만 그건 바람일 뿐이잖아요. 왜 그렇게 되지 않는지를 소설은 냉정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죠.

ㅡcover story 최제훈+손보미, <이 세계에 사는 동안, 나는 계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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