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시대의 악과 악한 존재들 이매진 컨텍스트 53
테리 이글턴 지음, 오수원 옮김 / 이매진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크, 언제나처럼 테리 이글턴의 문장력은 정말 구구절절~ 번역상의 비문, 오문이 자주 눈에 띄지만 내 사정도 생각하며 넘어간다; 

소설만큼 재밌다! 풍부한 사유에서 나오는 재치있는 문장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토마스 만이나 괴테 문체 같기도 하고(만연체는 빼고), 밑줄긋기를 하지 않고 넘어가기가 힘들다. 아주 얇은 책인데도 문장을 계단 삼아 자꾸 생각하게 돼서 자주 멈춘다.

어떻게 글을 소화하면 이런 문장이 됩니까? 👂🏻📡📠 뭘 동원해도 막막한 이 한밤, 주인공이 죽는 걸로 시작하는! 윌리엄 골딩 <핀처 마틴pincher martin>을 애타도록 읽고 싶게 만드시네! 헉, 국내 번역본이 없어😧;; 원서를 얼릉 사라! Agalma여! 
이 무슨;;;;
새벽 4시에 일어나야 된다고요ㅜㅜ
테리 이글턴 선생님, 말 좀 끊어주세요. 흑흑))
어쨌든 제1장까지는 다 읽고 끊을까 하다가....날 새는 거 아냐;;;  악))악)))

악은 물자체다. 악은 맨몸에 거대한 보아 뱀을 둘둘 만 채 붐비는 통근 전철을 타는 행동과 비슷하다. 그런 짓을 해명할 배경 따위는 없는 법이니까 ㅡp10~11

원인 부재는 악과 선의 유사성 중 하나다. 악을 빼면 오직 신만이 자기 원인이라 일컬어진다 ㅡp12

논쟁의 여지가 없는 취향처럼 악이라는 단어는 뭔가를 일단락 짓는 말, 더는 문제 제기를 불허하는 종류의 단어다 ㅡp17

책임에 관해 말하자면 칸트와 <데일리 메일> 같은 우익 성향 타블로이드 신문은 공통점이 꽤 많다. 윤리 측면에서 칸트와 <데일리 메일>은 우리 각자가 자기 행동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기 때문이다 ㅡp20

우리를 형성하는 요소는 과거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해석한 과거다 ㅡp21

인간이 홀로 있다는 개념은 석탄 통이나 금문교가 홀로 있다는 개념하고는 전혀 다르다 ㅡp22

흔히 할 일 없는 자들이 나쁜 짓을 한다고들 한다. 기묘하게도 이 말은 늘 무슨 일이든 하는 게 전범 재판소행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암시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악한 자들의 문제는 한가하기는커녕 지나치게 바쁘다는 데 있다 ㅡp23
(Agalma 끼어듬 - 일반 범죄보다 사회/정치 권력자들의 치밀한 악행에 더 대입해 볼 것)

윤리가 개인의 사생활에만 관련되지 않듯이 정치 또한 공생활에만 관련되지 않는다 ㅡp25

많은 면에서 정신/정신분석은 영혼/신학의 대체물이다. 영혼과 정신은 모두 인간 욕망의 서사다. 종교에서 욕망은 종국에 신의 왕국에서 완성되지만 정신분석에서는 애석하게도 충족되지 않은 채 남는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이런 의미에서 정신분석은 인간 불만의 과학이다. 그러나 신학도 인간 불만의 과학이기는 매한가지다 ㅡp28

신학과 정신분석은 모두 통과의례와 고백과 파문의 의례를 잘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내분으로 들끓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또한 이 둘은 세속적이고 상식적이며 냉정한 사람들의 경멸 어린 불신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ㅡp29

지옥은 우리가 `들어가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빚이나 사랑이나 절망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없듯이 말이다.....지옥은 인간의 자유에 바치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현란한 찬사다 ㅡp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누군가는 구두를 먼저 고르고 옷을 결정한다지만

나는 음악을 먼저 고르고 책을 읽는다.


영국 인디록 밴드

Nothing But Thieves

처음 듣는 순간, 이들은 뜬다! 생각했다.

그 오래전 Coldplay, Sigur Ros도 내 예상 적중!


Muse와 Keane을 섞은 듯한 막강한 밴드~

Muse 공연 서포트 밴드도 했다 하니 역시ㅎㅎ

Coldplay도 데뷔 시기에 Radiohead 서포트 밴드 했던 걸 생각해 보시오~

 


 

Keane의 보컬 Tom Chaplin(좌)Nothing But Thieves의 보컬 Conor Mason(우)의 

풋풋함과 살짝 촌스러운 모습이 닮은 것 같기도~


아무려나 Nothing But Thieves를 한국에서 띄우는 데 기꺼이 일조하겠음!!!




 

와, 이 리메이크를 들으면 원곡을 잊어버릴 듯 황홀하다!


문득,

림프 비즈킷(Limp Bizkit)이 데뷔할 때 조지 마이클 "Faith"를 하드코어로 리메이크해 단번에 인기를 끌었던 게 생각났다.

간만에 들어보니 그땐 왜 그렇게 난리였지 싶다;

크흐,,,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다…….



하여간 Nothing But Thieves에 어울릴 책으로 뭐가 좋을까 하다가

이건?



서문 - 고유한 항해술과 안팎의 언어


1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 Hans Ulrich Obrist

2 리처드 웬트워스 - Richard Wentworth
3 구스타프 메츠거 - Gustav Metzger
4 쥘리아 크리스테바 - Julia Kristeva
5 리베카 솔닛 - Rebecca Solnit
6 머리나 워너 - Marina Warner
7 뤽 타위만스 - Luc Tuymans
8 파울라 헤구- Paula Rego
9 존 스테제이커 - John Stezaker
10 엘름그린 & 드락셋 - Elmgreen & Dragset
11 소피 칼 - Sophice Calle
12 유르겐 텔러 - Juergen Teller


이미지
뤽 타위만스 | 존 스테제이커 | 엘름그린 & 드락셋 | 소피 칼 | 유르겐 텔러










엘름그린 & 드락셋





소피 칼도 흥미로운 예술가~

자화상은 모든 인간, 모든 예술가의 초 관심사다.

그래서 동시대에 사는 소피 칼의 작업은 눈여겨볼 만하다.

 

 

 



 

 

 

 

 

 


 

http://k.peik.tripod.com/ich.htm


'사생활'과 '자화상'이란 주제에서 빠질 수 없는 여성 사진작가 낸 골딘(Nan Goldin)과 어떻게 또 다를지 궁금하지 않음?

 




 

소피 칼의 인터뷰에서 이 문장이 맘에 든다.

 

1978년,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스물 여섯의 소피 칼은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한 남자를 몰래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그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하고, 마침내 그의 여정에 합류해 베니스까지 쫓아가는 것이 그녀 작업의 출발이 된다.


ㅡHarper’s Bazaar 인터뷰 中ㅡ

http://antenna-blog.com/2013/04/02/interview-%EC%95%84%ED%8B%B0%EC%8A%A4%ED%8A%B8-%EC%86%8C%ED%94%BC-%EC%B9%BC-sophie-calle-%EC%9D%B8%ED%84%B0%EB%B7%B0/

 

 

 

 

앙드레 브르통이 파리의 거리에서 우연히 '나자'(실존인물)를 만나고 소설 『나자』를 썼듯이,

우리는 각자의 예술방식으로 그.것.을 잡는다. 





 

유르겐 텔러 - Marc Jacobs 광고 사진 

전위성과 상업성을 과감히 섞을 줄 아는 사진작가~


어째 『나자』 표지 여성과 포즈가 비슷?

우연의 신기함...




ㅡAgalma


 




* 덧 *


이 글에서 나는 '사생활과 자화상'을 말하며 여성의 시선은 어떤 특성이 있는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건 차별적 생각일까. 구분보다 시대 경향이나 위치로서의 특성을 보려 한다는 걸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다 줄여서 "젠더성"이라고 해야 하려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듣고 그녀의 작업을 찾아보며,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작가적 시선이 폭넓어졌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글은 "다큐멘터리 산문"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에서 나아가 더많은 목소리를 담는 작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소개글 중 2차 세계대전 중에 백만 명이 넘는 여성이 전쟁에 가담...),

<체르노빌의 목소리>

 

2009년에 헤르타 뮐러도 제2차 세계대전 속 인간 군상을 그려낸 작품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글은 "동시대성"이 더 강조되었다고 봐야겠다<체르노빌의 목소리>가 "미래의 연대기"로 소개되고 있고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선상이긴 하지만, 현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고민의 현재성"이 내겐 더 강하게 와닿는다. 


요즘 내가 주목하고 있는 예술의 어떤 방향성을 생각할 때 "다큐멘터리즘"은 확실히 강력해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과 예술의 전형성은 바뀌어가며 점점 넓어지고 있다.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니까앞으로 더 격렬해지겠지.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병통치약 2015-10-08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럼 음악이 나온 미국드라마를 본 기억이 있는데 도대체 제목이 생각 안나네요. 배우 얼굴도 기억이 나는데 말이죠. 스카프를 휘날리는 무희가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AgalmA 2015-10-08 15:07   좋아요 0 | URL
저도 궁금하네요-ㅁ-)

cyrus 2015-10-08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음식을 먼저 고르고 책을 읽습니다. 우걱우걱. 음식 먹다보니 책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음식이라고 해봤자 감자 칩, 빵, 이 정도입니다. ㅎㅎㅎ

AgalmA 2015-10-08 22:04   좋아요 0 | URL
쿠후후, 저도 그 방법 좋아합니다. 두 손을 다 쓰는 건 곤란하니 한 손만, 그리고 젖지 않는 음식을 선호하게 되더라는...역시 cyrus님도 그런 쪽 음식을ㅎㅎ 페이지 사이에 과자 부스러기 떨어지면 먹다가 터느라고 난리남;;;
아마 선호도 면에선 커피나 차가 1등이겠지만 나름 달인들은 술안주로 책을ㅎ;

cyrus 2015-10-08 22:09   좋아요 0 | URL
과자, 특히 부스러기가 많이 생기는 웨하스나 초콜릿이 있는 쿠키를 먹으면서 책을 읽을 때 조심해야합니다. 저도 과자 부스러기가 책 사이에 끼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초콜릿 과자를 먹으면 그걸 집은 손가락에 초콜릿이 묻어요. 하얀 책 종이에 초콜릿 흔적이 있으면 안되요. 제가 유별나게 책을 깨끗하게 보관하는 성격이거든요. ㅎㅎㅎ

AgalmA 2015-10-08 22:28   좋아요 0 | URL
저도 책에 얼룩 생기는 거에 극도로 민감해서 기름기 있는 과자 종류는 책 볼 때 절대 안 먹습니다ㅎㅎ
종이 우글거리는 것도 너무 싫어해서 얼음 음료도 엄청 조심해서 먹습니다;;
아이고, 우리 고생이 많네요ㅎ;;

수이 2015-10-0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글 뭔가 중첩성이 짙어요. 언제나처럼 잘 읽었습니다. :)

AgalmA 2015-10-09 00:19   좋아요 0 | URL
많이 바쁠텐데 안부 남기는 마음 감사요 :)

2015-10-09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2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행객에게 주의를 주거나 잘못된 길이라고 안내해줄 파수꾼이 없는 울타리의 문은 반드시 닫혀 있어야 하고, 주위를 가시덤불로 둘러놓아야 한다˝
ㅡ<존 러스킨의 드로잉> 서문 중





§
쉽게 갈 수 있다면 그 길은 통로일 뿐 도착지는 아닐 것이다. 도착지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다시 출발해야 했던가.

존 러스킨이 강조하는 ˝정확성˝은 바깥을 향해 있는 ˝목표 추구˝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안을 향해 있는 ˝끌어냄˝이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모두가 어려워하고 한계를 느끼는 지점이 이것이다.

방법과 터득과는 별개로 시간은 흐르고, 긴 시간 뒤, 문이 열린다. 언제 열렸는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 한다. 내가 도착해있는 세계를 놀라워하며 바라본다. 그곳에선 자유와 고독과 고통과 환희는 동의어이다. 모든 것이 한몸으로 움직인다. 같은 몸이 없듯 같은 예술도 없다. 각자 완성된 뒤 흩어진다.

잠비나이를 듣다가 여전히 도달하려 애쓰는 그 간곡한 선율에 이렇게 또 한 마디 남기고 싶었다. 자라섬에서 마음 가득 담아 박수 쳐주리라.



ㅡAgalma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5-10-06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저것 많이 공감되어 많은 답글 달고 싶은 글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2015-10-07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7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7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5-10-07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국제도서전.. 가실 거예요..?

AgalmA 2015-10-07 19:02   좋아요 0 | URL
요즘 사람 많고 답답한 곳은 좀 피하고 싶어서 아마 안 갈 겁니다...나와 같다면님 가십니까? 다녀 오시면 소감 들어보고 싶네요~
 
소멸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류은희.조현천 옮김 / 현암사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

토요일에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있었다. 친구가 잘 보이는 포인트를 알려줘서 저녁을 일찍 먹고 밀린 일도 놔둔 채 나가려 했다. 그래도 모처럼의 기회인데 싶어 사무실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1. 난 불꽃처럼 일하겠어!
2. 감기 기운이 있어서....
3. 뭐, 그닥~
4. (이미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빈자리)

그래서 나 혼자 갔다. 언제나 그랬다. 무언가 치르러 나가는 기분. 

너무 조용했다. 돗자릴 펴놓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 한 팀이 그나마 분위기를 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이곳은 무언가 일어나기에도, 구경하기에도 퍽이나 동떨어진 모양새였다.
강변에 낮은 연기가 흐르고 있는 걸로 봐서 한 차례 불꽃놀이가 끝난 상황인 것 같았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언제나 그랬다. 혼자 무언가 기다리는 기분.
시작은 놀랍고 대책 없이 계속되길 원한다.

펑.
펑펑.
펑.....뚜르르르르....펑.
딱.....뚜르르르르.....펑펑........
스마일 모양
물고기 모양
하트 모양
더!
더!
더!

한 번 터지기 시작한 불꽃은 끝나기 전엔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듯 쉼 없었다. 핸드폰으로 아무리 잘 찍어보려 해도 흐릿했다. 화면은 간교한 거울처럼 말하고 있었다ㅡ넌 절대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거야ㅡ효과를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흑백으로 설정했다.

그 불꽃은 대공포(對空砲)였다ㅡ기분 탓이야ㅡ실제와 화면을 번갈아보며 ㅡ 넌 왜 저 아름다운 빛을 전쟁의 빛으로 덮으려는 거야 ㅡ 화면을 바꾸듯 내 맘도 바꿔 보려 했지만 점점 식어갔다. 어느 해 팔레스타인 공습을 구경하던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의자까지 준비해 웃으며 바라보던 사람들.

불꽃이 환할수록 밤은 깊어갔다.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은 얼마나 지나서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었을까. 장담하건대 그리 길지 않았을거다.
2차 세계대전 때 보병대 설문 조사에서 군인의 4분의 1은 격전시 소변을 지렸다고 한다(참고로 대변은 12%). 신참 전쟁 특파원들도 자신이 총구 앞에 섰을 때 소변을 지릴지가 첫 궁금증이라고 한다.(스콧 스토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참조) 
그렇게 어딘가에서 환호하면서, 또 어딘가에선 공포에 떨면서 우리는 치른다. 

30분도 채 못 보고 건물에서 내려왔다. 
사무실로 돌아와 1시간도 못 채우고 퇴근했다. 내 속에서도 무언가 자꾸 터지고 있었다.

늦은 밤, 거리도 축제 분위기였다ㅡ오늘 따라 왜 이렇게 시끄럽지ㅡ1시간 전까지만 해도 토요일인 걸 알고 있었지만 이 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모두가 모두에게 뭐라고 소릴 지르고 있었고 나도 모두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갇히는 게 싫어 버스도 탈 수 없었다. 또 전쟁이군. 
전화를 걸었다.

난 네가 기분 좋아지라고 그런 건데.... 나도 그래. 사람 얼굴 안 보고 다닌 지 꽤 됐어.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서고 아는 체나 할 때 인사를 하게 돼.

주택가로 접어들기 전까지 내내 통화는 하울링이 심했고 수신 감도가 좋지 않았다. 토요일이 아닌 진짜 전쟁 때는 이보다 더 하겠지. 무료통화를 다 쓰고 나서야 집에 도착했다. 진짜 전쟁이 터진다면 그땐 똥오줌이나 다급한 통화로 끝나지 않을 테지.

누군가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죽는다. 

이번 서울세계불꽃축제 공식 집계로 사망자가 있었다. 조명 설치 작업자가 강물에 빠졌다가 시신이 되어 발견됐다. 이 날만 투입된 비정규직이었다고 한다. 43세. 아이가 있지 않았을까....

공중엔 환한 불꽃과 환호가 가득한데, 누군가는 그렇게 검은 물속에 가라앉는다.


한밤에 나는 우두커니 기다린다. 불꽃은 또 어딘가로 갔다. 







* 나는 이 글을 소설로 써 볼까 하다가 이렇게 버리고 싶어졌다. 태우지 못하는 게 분하다.




ㅡAgalma



p 89~90


˝(중략), 이에 비하면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아무것도 아닌 셈이지요. 그 어떤 나라도 오스트리아만큼 끔찍하게 파괴된 곳은 없습니다. 유럽의 그 어떤 나라도 이처럼 파렴치하지는 않지요, 국민들은 기만당하고 온 나라가 훼손당해 소멸돼 버렸지요. 사람들은 수십 년간 몰취미하기 짝이 없는 것만을 설교하고 전파시켰지요, 통치자 중에는 지난 수십 년간 비열하게도 아무 거리낌 없이 뒷거래를 일삼은 수많은 장관들,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주(州)를 소멸시키고 우리나라를 소멸시킨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그들이 장관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면서 경치 파괴와 도시 파괴를 보편화하고 촉진한 사실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지요. 그러나 수십 년간 비열함과 몰취미가 극도로 만연해 있던 우리나라가 이제 모든 분야에서 그렇게 짓누른 결과를 갖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요, 권력을 쥔 사람들이 경치와 도시를 파괴하고 소멸시키면서 민족의 영혼마저 망가뜨렸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혼은 망가졌고 그들의 기질은 비열하고 야비해졌지요. 어디에서나 음흉한 분위기만 감돌지요, 당신이 어딜 가든 이렇게 음흉하고 비열한 사람과 부딪치게 될 겁니다. 당신이 이전에 착하다고 여겼던 누군가와 얘기하다 보면 그 사람이 몹시 비열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성격이 바뀐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전에 착했지만 그새 비열하고 야비해지고 말았던 거지요, 그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비열함과 야비함을 암시하면서 억누를 생각은커녕 노골적으로 드러내지요, 당신이 아주 우호적이며 개방적이라고 기억하는 마을을 찾아가 보면 그곳이 악의적인 마을로 변해 버려 개방적인 면은 찾아볼 수 없고 비열하게 의심만 일삼는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될 겁니다, 오스트리아 전체가 돈벌이에만 급급한 장사판이 되어 버려 모든 것이 흥정의 대상이고 모두가 사기당하고 있지요,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당신은 아름다운 나라를 여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돈벌이에만 급급한 상점을 돌아다닐 뿐이지요,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당신은 문화의 나라를 여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딜 가나 유치한 모습밖에 보이지 않아서 황당할 겁니다. 이렇게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분위기 때문에 처음부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겁니다. 그것은 마치 지난 세기만 하더라도 어디든 널려 있던 동상들이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안긴 형용할 수 없는 카오스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 같다고나 할까요.˝


토마스 베른하르트 『소멸』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0-05 0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5 0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5 0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5 0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5 0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5 0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5-10-06 18:32   좋아요 0 | URL
새벽에 집에 들어가다가 골목에서 폐지를 모으고 있는 할머님과 마주쳤는데, 자신의 몸집보다 몇 배나 큰 수레에 자신의 무게보다 더한 짐을 싣고....이런 것이 세상의 정교한 질서라야 한다면.....그 수레를 어디까지 밀어 드려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저는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물며 그 곁을 지나갔습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10-05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때는 불꽃놀이가 예쁘기만 했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불편해지기 시작하더군요. 누구는 쌀 한가마니다 라고 말하면서 경제적인것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저는 그 소리가 꼭 포탄소리같아서 인듯 합니다. 집 주변에 군부대가 있어 뒷산에 가면 가끔 훈련하는지 포탄소리가 나거든요. 그때부터 인듯 합니다.

AgalmA 2015-10-06 18:33   좋아요 0 | URL
양면성...참 판가름하기 어려운 일이죠. 그리고 살아가면서 계속 부딪히고 쌓이고....

2015-10-05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5-10-06 18:38   좋아요 0 | URL
그날 관람자 중 보트 충돌 사고로 한강에 빠진 사람은 잘 구조되었다던데, 두 사건을 비교하니 더 심란했습니다.

아름다운 걸 마냥 아름답게만 느끼려하지 않는 저도 참...

북다이제스터 2015-10-0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고 하던데, 성격을 바꾼 사람도 있군요. 그사람 운명은 바뀌었겠네요.

AgalmA 2015-10-07 02:34   좋아요 0 | URL
북 다이제스터님 되풀이해서 읽어봐도 뭔가 이해가 안 됩니다-_-?
하지만 굳이 설명은 안 하셔도....제가 좀더 알아 들을 수 있도록 공부할께요...;

그런데요, 바꾸는 것조차 운명 아닐까요...
 

§

아침에 제2의 눈을 뜨는 순간이 있다. 좋은 돌을 머리맡에 놓아둔다면 반드시. 2의 성욕이 아닌 건 다행이다. 복잡한 건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편견이란 무엇인가> 감수를 맡은 김선욱 교수의 추천사부터 맘에 들었다. 그의 인용 잠시 보자.

 

롤스가 말하는 ˝옳음보다 좋음이 우선한다˝는 주장 또한 우리는 옳음보다 좋음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옳음을 해결하려면 좋음을 우선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우리는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적 필연성을 주장하려면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10년 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샌델 교수(이 책의 저자 애덤 샌덜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성의 기능 자체도 언어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보편적 진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칸트에게서 유래되고 롤스나 하버마스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추상적 인간관에 바탕을 둔 절차주의적 주장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p6)

 

(Agalma 끼어듬- 북플 속에서도 옳음 보다 좋음이 선호되는 현상(나도 불가피)은 내게도 가장 주목되는 점이었다. 다른 소셜네트워크를 안 해서 그런 것이니 음흉한 파수꾼처럼 보지 않았으면;;)

 

 

애덤 샌델은....비관여적 판단정황적 판단이라는 두 개념의 정립을 통해 솜씨 있게 수행하고 있다. 편견은 안 좋은 것이므로 편견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이다. 그런데 애덤은 편견 가운데는 정당한 편견이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우리가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편견임을 알려 준다.(p7)

 

 

마이클 샌델 ˝절차주의적 주장은 유지될 수 없다˝는 관점을 애덤 샌델도 동의하는 선상이며, 애덤 샌델의 비관여적 판단정황적 판단은 마이클 샌델의 미진했던 방법 제시를 고찰하면서 나온 개념으로 보인다.

 

추천사에 이어지는 애덤 샌델의 서문은 깔끔하면서도 명문이었다. 옮긴이 후기나 해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책 정리를 잘 해줘서(너무 그러면 얄미워요;) 서문만 읽었는데 얇은 책 한 권 읽은 기분. 하긴 서문이 34페이지다.

니체 <도덕의 계보학> 서문을 봤을 때만큼 좋았다. 그 책에도 그랬듯 이 책도 Agalma가 뽑은 Best 서문에 넣을 생각이다.

 

 

칸트가 관심을 갖는 편견에는 전통, 습관, 관습, 교육 같은 것이 포함된다. 거기에는 심지어 인간의 타고난 욕망까지 포함된다........ 칸트와 베이컨, 데카르트가 이야기하는 편견은 단지 부당한 반감이나 적대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우리에 대해 그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모든 판단의 원천을 가리킨다.(p13)

 

흔히 역사적, 객관적, 과학적이라고 말하며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말할 때, 우리는 자신의 편견 기반과 오차 또한 가늠해봐야 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그랬고 애덤 샌델도 말하고 있듯이 우리 사고와 판단은 ˝완전한 무()의 상태˝에서 시작하지도 끝내지도 않는다. ˝암묵적 앎˝

 

우리가 사물을 검토하면서 그 속성들(크기, 모양, 색깔 등)에 주목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인식이 아니다. 우리의 실제적 이해는 대부분 암묵적인 앎이다.(p25)


우리의 이해는 언제나 회고적이다(뒤를 돌아보는 성격을 갖는다는 의미에서).(p36)


얼핏 평등과 정의라는 추상적 원칙에만 의존하는 듯 보이는 연설들도 실은 이 원칙들을 납득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편견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p45 서문 마지막 문장)

 

애덤 샌델 <편견이란 무엇인가>가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기묘한 열풍 현상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어떤 편견의 작용이든 우리를 돌아보게 만들고 각자의 자리에서 1cm라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면.

 

서문만 읽고도 페이퍼 한 페이지 가득이니 책 다 읽으면 그 정리는 도대체....

 

§§

대선 이후 욕을 해대는-한 번도 그런 적 없어서 충격적이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호르몬 문제도 있을까. 멋부리는 것엔 아직 관심이 많으니 님 나름대로 정상!-그래서 일 외엔 모든 것에 무기력하고 살쪄도 내 친구인 친구가 내가 뇌과학 얘길 하도 해대니 뇌과학 책 좋은 걸로 하나 사 달란다. 네 좌뇌를 마비시키면 내가 네게 사과를 보여줘도 넌 사과라고 말 못 해라고 말했을 때 친구는 정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건 현재 과학적으로도 실현 가능한 일이다. 좌뇌/우뇌 기능에 대해서 상식으로는 알고 있지만 물리적 현실로 다가올 때 우리의 반응은 매우 달라진다. 치료와 해결 관점에서만 생각했지 그 역방향은 잘 생각하지 않는 탓이다. 여하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 내가 바란 게 이런 거거든!! 20년 친구라도 책값은 받을 것이다--. 너무 매정하다 말하지 마시길. 자기 돈 주고 사야 아까운 줄 알고 꼭 읽게 되는 법선물로 받은 책 미루다가 안 읽는 일 많잖음? 그래도 뭐 하나 더 챙겨주고 싶어서 사은품으로 나온 에코백을 같이 준 적 있는데 다 떨어질 정도로 들고 다녀서 내가 창피한 적도 있다; 펭귄북 에코백 보면 분명 자기도 달라고 그러지 싶은데.... 마카롱 시리즈 책이랑 머그컵 보여줬더니 이미 그런 반응 한 번 나왔기에 내가 단호히 제지했다.... 흐음.... 하지만 이번 펭귄북 에코백은 아..... 역시 옮음 보다 좋음의 문제ㅜㅜ....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책 제목처럼 <펭귄북 에코백 들고 다니며 책 읽는 모임>이라도 있으면 나름 정당성(편견의 합리화)이라도 만들 텐데...!!;;

암튼 아직 집에 있는 뇌과학 책들 다 못 봤는데 무슨 책을 추천할지 고민이다. 본격적으로 물으면 내 애호와 편견은 왜 우왕좌왕이냐<(-0-)>;;;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이길 바라는 마음....

그리하여 선택한 책은! 








Agalma;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5-10-09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뇌과학책이요, 친구추천하실 책 고르셨으면 알라딘에도 올려주시길...
쉬운 걸로다가 ㅎㅎㅎㅎ

AgalmA 2015-10-12 22:25   좋아요 0 | URL
뇌과학책 여러 권 접하다보니 강연이나 논문 모음보다는 기초 공부 한 권 제대로 하고 관심 분야로 넓히는 게 더 효율적이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인문학적 상식도 풍부하면서 뇌과학 전문성도 충분히 살린 승현준 박사 <커넥톰, 뇌의 지도>를 선택했습니다. 읽다 말아서;; 언제 리뷰를 올릴 진 모르겠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