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5 - 2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평사리의 떠난 사람들, 그들의 용정에서의 힘겨운 삶, 생생한 사투의 현장이 2부 1권의 시작이었다. 그것도 큰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시점, 평사리를 떠난 뒤 2~3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서희는 이미 용정에서 대상으로 성장한 후였고, 용이의 삶은 기대와 달리 삶의 무게, 그가 짊어진 운명의 굴레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분노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못난 사내라 한탄하면서도, 오히려 갈 곳을 몰라 허둥거리고 있었다. 이동진의 아들, 상현과 서희의 애증, 그리고 길상과의 애매한 삼각관계(?) 속 그들의 격정이 흥미진진하였다.

 

평사리를 떠난 서희의 일행의 이야기에 새로운 인물들-김 훈장이 하숙하게 된 농가, 정호네 가족, 학교를 운영하는 송장환, 장인걸-의 삶이 스며있었다. 평사리가 아닌 용정으로의 공간적 변화에 쉽게 예상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평사리 사람들의 삶에 더욱 마음이 쏠렸기에, 용정에서의 새로운 인물들에 조금은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금녀’라는 인물이 온신경의 세포를 들썩거리게 하였다. 임이네, 월선의 삶처럼 김두수와 얼키고설킨 ‘금녀’라는 인물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기대로 가득 찼다. 홀로 떨어진 봉순이 소식만큼이나 그녀의 삶이 궁금해졌다.

 

김평산의 아들 거복은 김두수란 인물로 등장했다. 거복이 이름이 아닌 김두수의 존재가 조금은 의아했던 차였다. 기억에도 분명, 거복이어야 했을 인물임이 분명하였기에 나름 나에겐 기막힌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평산의 둘째 아들, 한복이 평사리에 뿌리내리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면서도, 그의 이야기가 마음에 쓰이기에, 그의 형의 존재가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악행을 일삼았던 거복, 평산의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의 등장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분명 그의 존재만으로도 용정의 피폐한 삶이 더욱 뚜렷해지는 듯,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의 존재, 그 등장만으로도 이야기는 더욱 탄력을 받고, 팽팽한 긴장감에 손끝이 떨리도록 아찔했다.

 

그에 반면, 길상과 새끼 새 나리의 교감은 마음을 더없이 훈훈하게 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어린 생명이 전해주는 생의 짜릿한 희망, 그 뜨거운 욕망이 또한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어린 생명, 그 삶을 살리기 위해 길상이 빼앗은 생명들, 그리고 그 생의 전율을 또한 어린 아이, 옥이에게서 느끼며, 그가 풀어낸 상념들 속에서 ‘생명’이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제부터 꾀꼬리새끼의 죽음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윤보의 죽음을 생각한 것도 죽음이 가지는 동일한 뜻에서인지 모른다. 한 생명에 대한 자비와 다른 생명에 대한 잔혹, 꾀꼬리새끼를 위해 여치의 목을 비틀어 죽인 일, 이 이율배반의 근원은 어디 있으며 뭐라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경우에 있어서도 약육강식의 원칙이냐? 아니다. 사랑의 이기심이냐? 아니다. 애정의 의무냐?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선택이냐?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이 이율배반의 자비와 잔혹은 영원한 우주의 비밀이냐? (205-206)

 

애틋할수록 마음이 자꾸만 조마조마하니, 못쓸 불안감에 휘감기는 것처럼, 5권-2부 1권-의 전체적인 느낌은 초조하고 애달팠다. 예전 평사리의 삶과 달리, 타향살이의 설움이 짙게 베어나는 탓인지 용정의 삶은 내내, 답답함과 애잔함이 전신을 짓누르는 듯했다. 손끝으로 파고들어 가슴 속 깊이 스며든 삶의 비애와 한이 온몸으로 느껴져, 그저 몸서리치며 뿌리치고 외면하고픈 마음이 컸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생생한 이야기, 살아 숨 쉬는 인물들 면면에서 바로 오늘, 지금의 우리가 비쳐지고, 내 주변의 삶이 엿보였다. 삶 속의 희로애락, 그 이면의 온갖 모순과 갈등, 그 이율배반적 늪에서 그저 발버둥거리기만 하는 나 자신과 오롯이 대면해야 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임이네에 대한 용이의 마음처럼?

 

앞으로의 전개를 어떻게 예상하고 기대하고 있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직 김두수의 이야기는 살짝 드러났을 뿐이며, 그 악행의 끝이 어디일지, 고단한 삶이 더욱 처절해질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봉순은 언제쯤 등장할 것인지, 그녀의 소식과 함께 구천(환)의 소식도 하루 빨리 날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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