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6 - 2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6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5권(2권 1부)을 읽으면서, 용정에서의 피폐한 타향살이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김두수의 등장으로 조마조마 살얼음을 걷는 듯 불안에 휩쓸리기도 하였다. 또한 오매불망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궁금증에 들뜬 채로 6권을 펼쳤다.

 

6권은 2편(꿈 속의 귀마동)과 3편(지리산사나이들)의 이야기가 반반씩 섞여있다. 그러나 크게는 3개의 공간으로 나뉠 수 있다. 서희와 길상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용정(또는 회령)’, 상현이 머무는 ‘서울’ 그리고 기생 기화가 된 ‘봉순’이 있는 진주다. 물론 구례를 중심으로 한 지리산 사나이들의 이야기엔 환이 중심에 있었다. 그렇게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을 훑듯, 공간적 배경이 바뀌면서 다른 많은 인물들이 쏙쏙 등장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환과 봉순의 이야기를 접하며 6여 년간의 지난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는 여지없이 반가웠다. 그리고 새롭게, 또는 낯선 인물들의 관계 속에 흐름을 놓치게 될까봐 조금은 긴장하기도 하였다.

 

서희를 중심으로 상현과 길상의 대치로 인한 팽팽한 긴장감 뒤로 상현은 떠난 뒤였다. 사실과 진실의 왜곡된 소문이 무성할 때, 서희는 그녀의 성격대로 가감한 선택을 하게 된다. 다른 그 어떤 이야기보다 서희와 길상의 나들이, 회령에서의 사건들에는 눈을 뗄 수없이 숨 가프게 달려야했다. 그 어떤 조건들을 뒤로하고 사랑의 선택에 있어, 서희와 길상의 마음, 그 마음들이 서로 부딪힐 때, 그 어떤 연애소설보다 애간장을 녹이면서 살벌하게 달콤했다. 그들의 마음 속 멍울이 깊어진다고 해도,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긴장감 넘치는 사랑의 줄다리기, 그 팽팽한 ‘밀당’의 현장이 무척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절망과 희망의 교차하는 어색한 분위기에 정신이 팔리고 아쉬워하다가, ‘그러나 이들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왔다.’(123)란 문구에 정신이 번쩍했다. 이야기에 푹 빠져 완전히 휘둘리고 있었다.

 

거친 사내들의 이야기가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지리산 사람들의 이야기 중 단연 으뜸은 ‘석’이었다. 그 많은 인물들 속에서 한조의 아들, 석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한조의 안타까운 죽음은 뇌리에 강하게 박혔고, 주변인물에 지나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마음을 끌었었다. 하지만 죽음으로 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새롭게 부각되어 이야기가 펼쳐진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아버지, 그 아비를 향해 울부짖는 석이의 모습, 그리고 불행의 거듭되는 피폐한 삶 속 물지게의 무게감만큼이나 삶의 무게가 나의 어깨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런데 <토지>의 이야기에서 결코 단역일리 없다는 생각에 내 마음 속 빛나는 주연, ‘석이’의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봉순이의 이야기는 스쳐 지났을 뿐이다. 그저 궁금했던 소식이지만 6권에서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더라’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만주로 떠날 때 함께하지 않고 홀로 남은 봉순이의 지난 행보가 여전히 궁금할 뿐인데, 그녀의 이야기는 뜬소문처럼 여러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정도랄까? 그런데 그녀가 진주를 떠나려고 한다. 어떤 사연과 우여곡절이 있는 것인지, 그녀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질 뿐이다.

 

늘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감으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서희와 길상 이외의 많은 인물들이 그려내는 삶, 각 권마다 호기심이 뭉글뭉글 올라와 기대감에 들뜨게 된다. 그 많은 인물들에게 생생한 생명을 불어넣은 작가의 위대한 상상력, 그 창작의 열의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 누구의 삶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명의 경외와 소중함을 절로 느끼게 된다고 할까? 그 누구도 단역도 조연도 아니다. 이야기 속의 다양한 인물들은 주연으로써 충실하게 뇌리에 깊이 박히는 것 같다. 그래서 점점 기대에 기대가 더해져 간다.

 

끊임없이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마냥,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마냥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야기에 그저 동화된다고 할까? 다양한 인물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이야기 속에 머물지 않았다. 내 주위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맴돌고 있다. 반갑고도 애달픈 마음들 속에서 애잔함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런가하면, 그들의 삶이 진짜 내 주변 사람들 속에 투영된다. 저마다의 굴곡진 삶의 사연들, 그 속에서 애잔함이 스미며, 왠지 모르게 든든해진다. 서로 어깨를 맞잡고 기대며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야 할 듯, 그게 삶인 듯하다. 

 

 

 

 

이민족 속의 우리, 이민족 속의 나, 그 의식이 그들만의 것은 아니다. 흘러온 수만 이곳 조선인들의 사무친 슬픔이다. ....... 십 년을 보내고 나면 독립이 될까? 기약이 없다. 영영, 어쩌면 영원히 그 꿈을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자기 자신은 한낱 어릿광대인지도 모른다. ....... 사방팔방이 절망의 두터운 벽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길림으로 간다지만 아홉 마리 소 중의 터럭 하나만큼이나 도움이 될는지, 제 집에 불이 났는데 남의 집 불을 꺼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선생, 그물 한 코 엮어보는 셈 칩시다. 한 코라도 부지런히 엮어나가면 고기 잡는 그물이 될 겝니다. 안 그렇소?‘(72)

 

“내가 무속도 보존할 가치가 있다 한 것은 그 속에 검은 왜놈들이 저희들 미신은 뒤로 감추고서 야만이다, 미개다 하는 수작을 빤히 알기 때문이라구. 그것이 다 이 나라 문화를 깡그리 없이 하자는 수작이거든. 그러니 내가 보존하자는 것은 미신을 보존하자 그것은 아니라고, 무속도 우리 백성들이 살아온 자취요 풍속이라면, 그걸 아주 싹 지워버릴 수는 없어. 아암 없구말구, 내 말이 어디가 글러? ...... 민속이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라는 게지. 때문에 그것은 그 민족의 전통이다, 이거야.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손 치더라도, 경제사정이 윤택해진다손 치더라도 전통이란 물건이 아니다. 그거야, 그러니 기계로써도 그거를 맨들 수 없고 돈으로 그것을 살 수도 없다는 게야. 그래 그 일본사람이 말하기를 이렇게 기계만 돌아가는 세상이니 소중한 민족의 오랜 유산들이 날로날로 소멸해가는 판국이라 슬프다! ...... 그게 조선 근대화 작업인 줄 알어? 도포가 어딨어? 갓끝이 어딨어? 깡그리 조선 것은 없이해보고 싶은 ...... 음, 흑,“ (25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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