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의 방법
유종호 지음 / 삶과꿈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세계에서 시인의 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 시집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 노래와 음악을 즐겨 시가(詩歌)문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 전통과 환경을 가진 대한민국의 대표선수를 뽑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유종호 선생은 한용운부터 신현림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50명의 한국시 대표선수와 대표시를 선별하여 독자들에게 <시 읽기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시 한 편을 소개하고 쉽고 간략한 해설을 덧붙이고 그 시인의 다른 작품 한두편을 더 소개하면서 시인의 특징과 내력을 간략하게 소개하여 시에 대한 흥미와 더불어 시 자체에 대한 호감과 정서적 반응을 훈련(?)시키는 잡지의 연재물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노교수의 수고와 세월이 묻어나는 새로운 이론서이거나 나름의 독특한 방향 제시를 기대하고 직접 책을 뒤적여 보지 않고 주문한 것은 개인적인 실수이다. 책을 주문한 목적과는 차이가 있으나 일반 독자에게 시를 소개하는 방법과 안목, 쉬우면서도 탄탄한 문장은 나무랄 데가 없다.

  다만 월간지에 연재되었던 글이라서 그런지, 앞부분과 뒷부분에 시에 대한 관점과 소개가 겹치고 있는 것이 흠이다. 또한 시에 대한 주관적 호감과 해설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가장 나쁜 책이 될 것이다.

  “시는 이해(理解)되기 전에 전달(傳達)된다”는 T. S. Eliot의 말은 내가 시를 대하는 기본 태도이다. 해석과 분석은 어찌보면 남의 생각 들여다 보기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열린 시각의 확산이다. 특히 한 편의 시를 읽고 음미하며 감상하고 내것으로 소화하는데 설명과 방법이 있다는 것에 나는 반대 입장이다. 물론 시는 어렵고 딱딱한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시를 싫어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소개된 ‘시 읽기의 방법’이겠지만 지나친 해설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이 책은 그런면에서 나름대로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시문학의 대가들을 골고루 다루고 있으며, 그들 시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주관적이거나 분석적 설명을 지양하고 있어 성공적이다. 반면 앞서 말한대로 한 편의 시든 그 시인의 다른 시이든 하나의 관점과 목표를 가지고 시를 대할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을 독자들에게 심어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패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도 시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생활이 힘겹고 팍팍할 때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는 혹은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의표를 찔러주는 다양한 시들을 찾아 읽는 재미는 문학의 다른 장르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임에 틀림없다. 소개된 50편의 시 중에서 찾아낸 내가 공감하고 재밌게 있었던 시 한 편은 다음과 같다.

 


      오늘의 노래 - 故 이균영 선생께

  심야에 일차선을 달리지 않겠습니다.
  남은 날들을 믿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 할 일은, 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건강한 내일을 위한다는 핑계로는
  담배와 술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헤어질 때는 항상
  다시 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겠습니다

  아무에게나 속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심야에 초대를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신도시에서는 술친구를 만들지 않겠습니다
  여자의 몸을 사랑하고 싱싱한 욕망을 숭상하겠습니다
  건강한 편견을 갖겠습니다
  아니꼬운 놈들에게 개새끼, 라고 바로 지금 말하겠습니다
  완전과 완성을 꿈꾸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늙어가는 것을 마음 아파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오늘 살아 있음을 대견해하겠습니다
  어둡고 차가운 곳에서 견디기를 더 연습하겠습니다
  울지 않겠습니다

                                        - 시 : 이희중




200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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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속 여행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소설 장르가 어차피 허구의 세계라면 인간의 상상력을 극대화시켜주는 내용이 가장 소설다운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쥘 베른의 소설들은 시대를 앞서고 있다. 1828년 프랑스 항구도시 낭트에서 태어나 1905년에 사망할 때까지 쥘 베른은 끊임없이 현실밖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도전과 상상력을 표현해 냈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이제 고전이 되어버렸고, <해저 2만리>와 <달나라 탐험>은 CF의 카피가 되어 작가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경우이다. 과학에서 ‘문학적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하는 실례로서 그의 소설은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단순히 SF 과학소설로만 볼 수는 없다.

  쥘 베른 컬렉션 첫 번째 작품으로 열림원에서 번역한 <지구 속 여행>은 재미있다. 다시 한번 번역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신춘문예에 관심이 있었던 고교시절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으로 등단한 김석희의 소설을 꼼꼼히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 그는 전문 번역가로서 이름만 보고, 믿고 고를 수 있는 번역서들을 수없이 쏟아내고 있다. 150여년 전 작가의 상상력은 지금도 나를 즐겁게 한다. 지구의 중심으로 떠나는 황당(?)한 여행이 아이들에게만 흥미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쁜 일상과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이 시대 어른들에게 잠시나마 휴식과 여유를 즐기게 할 것이다.

  ‘1863년 5월 24일 일요일’이라는 특정한 시간으로 소설을 시작한 것은 내용의 신뢰감을 주기 위한 좋은 방법으로 보인다. 19세기 중반, 종교와 과학은 이미 대립을 넘어 주도권을 완전히 과학이 잡게 된 시기였다. 쥘 베른은 당시의 발달된 과학 지식을 총 동원하여 개연성 있는 허구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생물학과 지질학을 비롯하여 온갖 과학적 상식과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들을 동원하여 지구 속 탐험을 떠나는 주인공들에게 독자들은 신뢰를 보일 수 밖에 없다. 여로형 구성법의 전형인 이 소설은 인간의 상상 이외에는 접근할 수 없는 지구 중심으로 떠나는 여행을 보여준다. 주인공 리덴 브로크 교수와 그의 조카, 그리고 충직한 한스는 완벽한 3인조 여행단이 된다. 나레이터는 조카인 나의 시점이다. 물론 관찰자의 역할만 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도적인 역할에서 한발 빗겨선 모습에서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상식적인 독자들에게 가깝고 그것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소설의 시작은 추리 소설처럼 시작된다. 룬 문자로 구성된 양피지 한 장이 고문서 속에서 발견되고 그 암호문을 해독하는 것으로 여행은 시작된다. 그런데 이 암호문의 비밀이 재밌있다.

  근대의 과학자들도 종종 자신의 발견을 애너그램으로 감춰두곤 했다. 왜? 한편으로는 종교적 검열을 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한 발견을 오랫동안 자기 혼자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시는 경쟁적으로 발견이 이루어지던 시대. 나중에 발견의 우선권을 주장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겨야 했다. 공개를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상황. 감추면서 드러내는 애너그램의 이중성은 이 고민을 간단히 해결했다. -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진중권, 휴머니스트, p188>

  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애너그램으로 감추어진 문서는 아르네 사크누셈이라는 학자의 암호문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단으로 박해를 받았고, 그의 저술은 1573년 코펜하게에서 모조리 불태워졌다. 그래서 그의 책은 아이슬란드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 양피지 한 장이 그의 문서 전부인 셈이다. 암호문에서 힌트를 얻은 리넨브로크 교수는 조카를 데리고 ‘지구 속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행을 준비하고 땅 속으로 들어가기 전의 준비과정이 소설의 3분의 1쯤 된다.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고 긴장감이 결여될 수 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이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잊고 살았던 유년의 추억과 상상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인디애나 존스’로 대표되는 헐리우드의 환타지 모험 영화들은 모두 쥘 베른에게 빚지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동화속 꿈의 세계를 꿈꾸며 현실이 아닌 허공에 발딛고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에너지가 아닐까 싶다. 그 꿈들이 우리에게 넉넉하고 여유있는 마음을 나눠주다면 왜 거부하겠는가. 다음에는 우주로 여행을 꿈꿔봐야겠다.


200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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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여관
임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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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간을 다른 짐승하는 구별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교한 언어와 불의 사용, 혹은 웃음의 能否에 따라서 구별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특징은 생존과 무관하게 동족을 살해하는 행위가 아닐까하고 나는 생각해본다. 동물적 본능을 넘어서는 그 치욕스런 인간의 魔性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일 것이다.

  임철우의 장편소설 <백년여관>은 인간이 아닌 악마들에게 상처받은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제목을 보고 문득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떠올랐으나 연결되지 않고 여름 호러물로 제작되어도 좋을 만큼 참혹하다. 이 소설은 북망산자락 해가 들지 않는 습지의 축축하고 끈적한 이끼처럼 온몸을 휘감는다. 이틀동안 온 몸이 근질거리고 신경이 날카로워질만큼 가슴이 시렸다. 2003년 이청준의 <신화를 삼킨 섬>이 보여준 에둘러 말하기 방식으로는 같은 사건에 대한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백년은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 100년을 의미할 것이다. 제주도 4․3, 6․25와, 베트남 참전, 5․18로 이어지는 가장 비극적인 사건들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아픈 기억들을 토해낸다. “섬이 하나 있다. 그림자의 섬. 영도(影島).”의 백년여관에 시애틀에 사는 재미교포 김요안이 찾아오고 소설가 이진우가 우연한 동행이 되어 찾아든다. 이 여관을 중심으로 복수와 미자, 문태, 신지, 금주, 함흥댁, 순옥, 은희, 조천댁 등의 인물들이 견뎌낸 시간들이 우리들 삶의 일부이며 현재의 기억이다. 살아 남은 이들 모두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며 죽은 영혼들 또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억울하게 죽어 구천을 떠도는 죽은 영혼들보다 지독한 트라우마(trauma).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外傷後-障碍,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 충격 후 스트레스장애·외상성 스트레스장애라고도 한다. 전쟁, 천재지변, 화재, 신체적 폭행, 강간, 자동차·비행기·기차 등에 의한 사고에 의해 발생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전신적 질병이다.
  증세는 개인에 따라 충격 후에 나타나거나 수일에서 수년이 지난 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급성의 경우 비교적 예후가 좋지만 만성의 경우 후유증이 심해서 환자의 30% 정도만 회복되고, 40% 정도는 가벼운 증세, 나머지는 중등도의 증세와 함께 사회적 복귀가 어려운 상태가 된다.
  증세는 크게 과민반응, 충격의 재경험, 감정회피 또는 마비로 나눌 수 있다. 과민반응의 환자는 늘 불안스러워 하고, 주위를 경계하며,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증세를 보인다. 충격을 다시 경험하는 환자의 경우에는 사건 당시와 같은 강도로 느끼는 기억, 꿈, 환각이 재연될 수 있다. 감정회피 또는 마비를 나타내는 환자는 충격이 일어났을 때의 감정·생각·상황 등의 기억을 피하려고 노력하며, 정상적인 감정반응은 소실된다.

  임철우의 소설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심리학적 기제에 대한 설명이다. 김소진의 소설 <자전거 도둑>에서 볼 수 있는 개인의 정신적 외상이 아닌 우리 민족의 치유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임철우는 독자들에게 집요하게 되묻고 있다. 외면하고 싶거나 잊고 싶었던 기억의 촉수들이 살아나 더할 수 없는 가학적 쾌감을 느끼도록 할 목적이 아니라면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망각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 후기에서 “한 인간 존재의 죽음은 육신의 호흡이 멎음으로써가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지상의 맨 마지막 인간이 사라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인권과 평등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부정은 인간 존재에 대한 부정이며 야만적 행위의 본질이다. 인류가 저질렀던 세계사의 만행들을 새삼 뒤적거릴 필요도 없다. 현재형이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우리의 문제에 대해 작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니다. 당신이 말하는 해묵은 역사나 지나간 사건 따위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난 단지 사람을,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죽은 자와 아직 살아 있는 자. 그들의 이름 없는 숱한 시간들을, 사랑과 슬픔과 고통의 순간들을 나는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기억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 작가 후기



200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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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 2000년 제3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구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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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나 소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은 너무 다양하여 선별하여 듣지 않거나 무비판적인 수용을 하게되면 그 피해 정도는 다른 것에 견줄 수가 없다. 특히 소설의 영원한 주제는 사람일 수밖에 없어 더욱 그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묻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소설의 본령이라면 작가의 메시지는 독자의 의미망에 포착되기 전에 이미 공론의 장에 포함된다. 즉 문학은 개인적인 독서 행위를 넘어서는 사회적 몸짓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문의 소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김명인의 시 ‘의자’에서 제목을 빌려와 일련의 단편들인 ‘나무’ 시리즈를 하나로 묶고 있다. <관촌수필>과 <우리동네>의 작가로 잘 알려진 작가다. 2000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작가의 마지막 책이었다.

  다른 작품들에도 마찬가지이겠으나 이문구 소설의 특징은 충청도 사투리의 힘으로 요약할 수 있다. 행동이 아닌 말의 힘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우리 문학에서 색다른 모습은 아니다. 아름답고 정감있는 토속어로 한국인의 현재 모습을 가장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로 읽히지는 않는다. 실용성과 환금성이 없는 나무들을 내세워 현재 농촌의 모습과 중장년층의 농촌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그려냄으로서 사실적인 표현과 보여주기의 역할을 충실히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감동할 수 있는 독자는 많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의미도 찾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상자 선정의 말에서 ‘어떤 경의를 표하더라도 충분치 않을 것’이라고 극찬하고 있으나 쉽게 동의할 수는 없다.

  물론 한국어가 지닌 아름다움을 사투리의 힘을 빌어 그 바닥까지 드러냈다는 측면에서 이문구의 소설은 탁월하다. 전통문학의 해학을 이만큼 되살린 작가가 드문것도 사실이다. 책장을 덮을 때까지 나는 계속 소리 죽여 킥킥대거나 미소를 지으며 읽었다. 풍성한 언어가 주는 말의 힘은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리만족이다. 그것 나름대로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소설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데는 동의한다.
 
  장평리 찔레나무, 장석리 화살나무, 장천리 소태나무, 장이리 개암나무, 장동리 싸리나무, 장척리 으름나무, 장곡리 고욤나무, 더더대를 찾아서 - 이렇게 8편의 단편으로 묶여 있는데 인물들과의 친연성으로 인해 마치 장편 소설을 읽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단편의 주인공들이나 주변인물들은 모두 과거의 농촌을 상기시키는 감상적 피상적 대상의 인물들이 아니다. 작가의 경험에서 배어나오는 90년대 농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에피소드 정도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도시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농촌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작은 사건들이 모여 공동체적 삶의 모습들을 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문체가 주는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강원도의 힘(?)을 보여준 작가 김유정을 떠올리게 하는 이문구의 소설은 소탈하고 깔끔한 맛으로 읽힌다.

  그러나 ‘동인문학상을 받으며’에서 보여준 작가로서의 의식이 아니라 사회와 친일문제를 바라보는 단적인 문장에서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김동인 선생을 친일문인의 범주에 넣고 그 이름으로 된 상을 받을 수가 있느냐고 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애시당초 독립운동가의 자제가 아닐 뿐 아니라 일제 때 마키무라로 창씨개명했던 보통사람의 자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뿐더러 “진정한 의미의 친일문인은 춘원 하나뿐”이라고 한 스승의 견해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팔모로 봐도 두드러지거나 유별난 구석을 가진 위인이 아니다. 오히려 천성이 늦되어서 무엇이나 뒤늦게 터득하고 뒤전에서 갈피없이 헤매기가 예사였다. 그렇지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는 태도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이 땅의 문학 부흥을 위한 혁신적인 개혁’이라는 조선일보사의 취지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문인이 문학을 위하는 언론에 신뢰에 호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시대의 작가가 반드시 사회의식이 투철하거나 균형감각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방식대로 인간과 사회를 분석하고 반영하여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 작가의 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관점으로 이문구의 소설들을 바라본다면 적잖은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진정한 의미의 친일문인은 춘원 하나뿐”이라는 말을 어떻게 전적으로 믿을 수 있으며 순히 ‘문학을 위하는 언론’이라고 해서 ‘신뢰와 호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놀랄만한 발언이라는 생각은 개인적인 판단일까?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발언도 아니고 수상 소감에서 자연럽게 내비친 작가의 견해라서 더욱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나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오래된 금언을 좋아한다. 작가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 당연히 자신의 견해와 관점들을 밝힐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한 작가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작품과 더불어 작가의 의식과 삶에 대해 총체적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작품 외적 문제로 시비거리가 될 정도의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독자로서 느끼는 이문구에 대한 발언은 실망스럽다.


200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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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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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에게는 우연이나

  나에게는 숙명이다.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는 일이

  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 시는 정호승의 <새벽편지>에 수록되어 있는 ‘첫눈’이라는 시의 일부다. 1987년 민음사에서 출판된 이 시집을 읽고 나는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어쩌면 먼 미래의 삶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유치할만큼 사랑에 관한 짤막한 구절일 뿐이었지만, 감수성 예민한 고등학생에겐 오래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 되어 버렸다.


  ‘사랑이란……?’는 질문을 받는다면 지구위에 60억명이 제각기 다른 대답을 하게 된다.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다. 아니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감염되는 바이러스처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장 진부하면서 가장 흥미진진한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성에 대한 사랑을 한 철학자가 고민하고 있다.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은 그렇게 3년의 간격을 두고 나에게 찾아왔다.


  2002년 여름에 출판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원제가 ‘Essays in love’였고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95년에 번역되었지만 주목을 끌지 못했었다고 번역자는 전한다. 재번역판은 제목만으로도 주목 받을만하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내용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친절하게도 제목위에 ‘소설’이라고 장르를 지정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용은 작가의 대단히 사적인 경험을 들려주는 것으로 진행된다. 작가가 사랑했던 여인 ‘클로이’를 5840.82분의 1의 확률로 만나 사랑을 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헤어지는 장면을 설명한다. 헤어진 후의 감정까지도 상세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 과정속에서 들려주는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는 보통을 넘어선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주관적 감정을 객관적으로 확대 시키는 능력이다. 또한 사적인 영역의 상황들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반적 상황으로 분석하고 정리하는 잠언과 같은 말하기 방식이다. 


  이 소설은 “삶에서 낭만적인 영역만큼 운명적 만남을 강하게 갈망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누구나 믿고 싶은 내 사랑의 숙명론.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확률적으로 어려운 것인가를 설명한다고 해서 우연이 필연을 가장할 수 있는지.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전화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는 간단한 진술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대목들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투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는지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분석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겠지만, 작가는 나름대로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사소한 대화와 상황을 통해 그것을 시도한다. 여기에 많은 철학자가 동원되고 여러사람의 금언들이 인용된다. 그런 장치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객관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읽는 사람들의 제각기 다른 상황에 적용하거나 공감하는데는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렇게 한 여자를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속에 아리스토텔레스, 비트겐슈타인, 역사, 종교, 마르크스까지 총동원하며 사랑의 딜레마를 풀어내려는 시도가 신선했다. 그것이 억지스럽지 않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녹아들 수 있는 것은 작가의 경험에 바탕을 둔 진지한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두 책에서 얘기하는 섹스에 대한 흥미로운 견해를 살펴보면,


  생각만큼 섹스와 대립하는 것은 없다. 섹스는 육체의 산물이다. 무분별하며, 디오니소스적이며, 직접적이며, 이성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이며, 희명을 동반한 육체적 욕망의 해소이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섹스가 친밀함의 상징이기는 하다. 그러나 섹스 자체가 두 사람이 친밀해지는 것을 보장하진 않는다. 오히려 섹스가 상징하고 있는 이상적인 조건을 깨뜨릴 수도 있다. -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좀더 험난한 과정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누군가와 섹스를 나누는 것은, 마치 책을 사두고 그것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분명 시간이 흘렀고 사람 사이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관점이 변화했음을 느낄 수 있는 다른 표현들이다. 앞의 책에 비해 ‘Kiss & Tell’(유명한 인물과 맺었던 밀월 관계를 인터뷰나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하는 행위)이라는 원제를 가진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은 ‘형식의 새로움’이 가장 큰 매력이다. 번역본의 제목이 주는 상업성은 정말 대단하다. 개인적으로 파란 하늘에 흰구름을 배경으로 한 표지만 한동안 바라보았다. 책은 내용 이전에 손으로 만져보고 쓰다듬고 냄새맡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오감으로 다가오는 책의 즐거움은 내용을 넘어선 감동을 준다. 이 제목과 표지를 보면 누구나 사고 싶어지는 책이다.


  하지만 내용이 주는 감동은 전만 못하다. ‘클로이’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던 앞의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이사벨’을 주인공으로 마치 한 사람의 전기를 쓰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독특함이 있다. 책 중간에 이사벨이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어린 시절의 사진과 가족, 친구들의 사진은 잠시 이 책의 의미를 착각하게 만든다. 작가의 의도이든 아니든 나는 한 개인의 연애 보고서 이외의 다른 의미로 읽지는 못했다.


  키스에 대한 느낌은 오히려 앞의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었다.


  가장 달콤한 키스, 키스라면 이래야 한다고 꿈꾸어오던 키스였다. 가볍게 스치다가 머뭇머뭇 살며시 밀고 나가자, 우리 살갗에서는 독특한 맛이 풍겨나왔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키스에 대한 환상과 작가의 느낌을 설명해 줄거라는 기대는 끝까지 버리지 못했지만 결국 한 줄도 언급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결국 이사벨과도 헤어지고 만다. 그러고 보면 두 책의 공통점은 비극이다. 실패한 연애 이야기다. 만약 연애의 성공이 결혼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책의 화두는 ‘감정이입’이다.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능력이다.”라고 선언하며 작가는 이사벨을 만나는 순간부터가 아니라 헤어지는 순간부터 제시해서 독자들의 들뜬 마음을 일단 진정시키고 출발한다. 사랑을 하는 과정을 한 여자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보여준다고 해서 특별한 내용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소소한 과정과 대화들, 한 개인에 대한 철저한 관심과 기억들이 빚어내는 놀라운 효과는 행간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의 머리, 혹은 가슴속에 그려질 ‘이사벨’을 그려본다면 그 효과는 더욱 확실하게 나타나는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누구나 감추고 싶은 것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버리면 더 이상 자기를 좋아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욕구 뒤에는 누군가가 우리에 관한 모든 사실을 알아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놓여있다. 그것이 비밀 누설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는 주범이다. -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라는 작가의 발언은 주목할만하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무언가를 바닥까지 뒤집어 보여주려는 의도를 짚어내는 것으로 이 책의 의미는 드러난다. 거울처럼 투명하게 독자들에게 되비쳐 주려는 것이 작가가 노린 효과는 아니었을런지 모른다. 특별한 형식과 독특한 방식으로 또 하나의 연애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앞의 책에서 보여준 감동과 공감의 울림이 부족하다. 앞으로도 가볍고 친숙하게 그의 책들이 쏟아지겠지만 골라 읽기가 또 하나의 숙제로 남는다.


  그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알고자 하는 의지는 줄어든다는 역설을. -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200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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