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힘 Philos 시리즈 4
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 지음, 이윤기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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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지막 3개월간 주제는 「신화」였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막론하고 신화는 공동체의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며 민중들의 생각과 경험과 기억이 보태진 집단 창작물이 바로 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기록하면서 현재의 형태로 고정되었으나 기록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니 원본은 의미가 없고 디테일에 목숨 걸 필요도 없습니다. 세계 각국의 신화는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고 문명 시대에도 예술에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21세기에도 라그나로크 같은 게임의 세계관을 제공하며 스타벅스 커피잔에도 세이렌이 새겨질 만큼 자본주의 첨병으로도 활약합니다. 그래서 조지프 캠베은 “꿈이 사적인 신화”라면, “신화는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이라고 정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종횡무진 세계 각국의 신화를 누비며 비교 신화학의 전설이 되어버린 저자에 대한 찬사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1987년에 세상을 떠난 조지프 캠벨의 이 책은 1991년에 출간되었습니다. 1992년 이윤기가 번역했고, 2002년 개정판이 나왔다가 2020년 출판사를 바꿔 재출간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싶은 책이지만 배경지식이 전혀 없거나 신화 입문용으로는 조금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너무 쉽고 재밌는 콘텐츠에 익숙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적당한 난이도는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인터뷰어 빌 모이어스는 “신화는 가시적인 세계의 배후를 설명하는 메타포이다.”라고 정의합니다. 인상적인 발언인데, 이 말은 조지프 캠벨이 천착했던 칼 융의 ‘집단 무의식’을 설명합니다. 신화는 근대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전부터 군집 생활을 했던 인류 공동체의 삶과 꿈을 반영합니다. 원형적 상징으로서 자연에 대한 공포,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아 신화는 태초의 인류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조지프 캠벨은 “‘산타 클로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힌두의 구루導師의 가르침 속에 있습니다. 산타 클로스는 부모와 자식 관계를 이어주는 은유이지요. 관계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체험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산타 클로스는 없습니다. 산타 클로스는 관계를 인식하는 길로 아이들을 인도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습니다.”라며 동심을 파괴합니다. 종교와 신화의 관계를 설명하는 태도가 객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내재한 서양의 전통과 문화와 달리 우리는 유교적 전통과 가부장적 결속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화,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그게 무슨 삼각김밥 끈 떨어지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으나 인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가족과 사회를 통해 만들어진 욕망의 하수인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자유의지라는 거대한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건 사유하는 기능을 점검하지 않는 개인의 책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겨울 산에서 길을 잃어 아재 둘이 동사했다는 뉴스를 접하며 동호회원들의 무관심보다 어둡고 캄캄한 산속에서 난감했을 불안과 공포가 떠올라 한동안 마음이 쓰였습니다. 인류는 여전히 신화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먼 훗날 신화로 전해지지 않을까요.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동해로 떠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대신 다가올 미래는 결국 과거와 현재의 결과일 뿐이라는 걸 알면 어차피 연말에 후회만 남기는 신년 계획 대신 내 삶의 신화를 스스로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와 태도를 점검하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달력이 바뀐다고 삶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희망 고문 대신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을 직시하는 일이 신화 읽기를 통해 우리 삶에 숨겨진 메타포를 읽어내는 방법일 겁니다. 그러니 계속 따로, 또 같이 걸어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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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2 사계절 만화가 열전 21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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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현실과 유리된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적이 없다. 모든 책은 인간 스스로 자기를 알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다. ‘나’가 아닌 ‘너’와 ‘그들’ 그리고 외부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태’를 향한 호기심과 관찰의 탐구 과정을 담은 기록인 책은 폭발적 지식의 빅뱅을 가능케 했다. 단기간에 엄청난 지식과 정보 습득이 가능해지자 과학기술은 빛의 속도로 발달했고 인간의 인지 능력과 사고력은 무엇을 상상하든 실현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하늘이 파란 이유도 노을이 붉게 물드는 과정도 알게 됐다.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 불합리한 선택, 종교적 도그마, 학살자의 심리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책들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책은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적이 없는데도 스스로 하나의 세계가 되어 버렸다.

인터넷 이후 시대, 즉 정보화 시대의 독서는 이전 시대와 그 목적과 방향이 전혀 다르다. 지식의 생산자였던 연구자들은 건재하나 소비 대중은 폭과 넓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누구나 읽고 쓰는 시대를 살면서도 ‘독서’는 가장 느린 매체가 되어 외면받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점점 중요해지는 문해력과 미디어 리터러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쇼츠, 릴스, 틱톡 등 점점 호흡이 빠르고 단축, 요약된 정보를 소비한다. 유일하게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는 건 인간의 욕망뿐이다.

현상이 어떠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창현의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1권과 2권은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드러내려는 안간힘으로 보여 안쓰러운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취향 저격인 책에 대한 상찬은 낯이 간지러워 솔직한 이야기를 쓰기가 어렵다. 만화에서 강유원을 만나는 어색함과 만화는 책을 읽기 싫은 사람들이 보는 거라는 편견이 어우러지면 이 책이 놓일 자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통쾌함을 느끼고, 동류의식에 위로를 받고. 나같은 사람들이 어딘가에 또 있을 거라는 기이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나 혼자 뿐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중독인 것을.

만화의 소재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없다. 하지만 가벼운 독서법, 자기계발서, 서평집 따위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 한 권쯤은 괜찮지 않은가. 왜 문학을 넘어선 자리에 이 책이 놓여야 하는지, 왜 강유원을 등장시켜 독서의 본질과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점검해야 하는지 살펴 볼 수 있다면 이 책은 서가의 어떤 책보다 중요한 자리에 놓여야 할 것이다.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거나, 책을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냐고 묻는 정도가 돼야 재밌는 책이다. 왜 책을 읽어야 하냐거나 독서가 꼭 필요하냐고 생각한다면 다른 책을 살펴보는 게 좋다.

유머를 이기는 방법은 없다. 독서 클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피는 건 메시지를 담는 포장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을 살펴보며 자기 삶의 여유(개그)와 태도(의미)를 점검할 수도 있다. 무엇을 위해 왜 사느냐고 묻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드물다. 눈앞에 현실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늘이 흐리고 내일 아침은 혹한의 겨울이 시작될 거라는 예보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 고전과 신화를 뒤적이는 마음, 단테의 베아트리체를 상상하던 사춘기와 시지프를 다시 생각하는 중년, 걷고 뛰고 땀을 흘리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가해한 일들을 바라보는 오늘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바스라진다. 사라지는 모든 것이 아쉬움을 남기는 건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무엇이 없지도 않다. 가능한 모든 일을 저지르고 도전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면서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게 뭔지 다시 고민하려면 죽기 전에 읽어야 할 도서 목록보다 자기 몸과 유머를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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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세계 신화 여행 - 오늘날 세상을 만든 신화 속 상상력
이인식 지음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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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와 코스모스. 혼돈과 질서는 우리 인생처럼 경계가 모호합니다. 평온한 일상이 질서정연하고 안정된 삶이라면 불안하고 흔들리는 미래는 혼돈일 겁니다. 카오스는 가이아를, 다시 가이아는 타드타로스와 닉스와 헤메라를....카이아와 우라노스는 12명의 티탄과 크로노스를...크로노스와 레아는 헤라, 데메테르, 헤스티아,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를...제우스는 수많은...

이 책으로 세계 신화를 처음 시작하는 건 어떠냐고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편적인 사건과 사고, 신들의 에피소드는 훗날 그려진 명화를 설명하고 뒤이어 과학적 사실과 현실의 문제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신화 본래의 맛과 멋과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다만 신화는 어차피 모두 허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신화가 주는 의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가 반영된 인류의 무지와 공포와 지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싶습니다. 판테온pantheon에는 12명의 신이 있습니다. 제우스(최고의 신, 신과 인간의 아버지), 헤라(결혼), 아테나(지혜, 예술, 정의), 아폴론(빛, 음악), 포세이돈(바다), 아르테미스(술, 사냥), 아프로디테(미, 사랑), 헤파이스토스(대장장이), 데메테르(농업), 헤르메스(상업), 아레스(전쟁), 헤스티아(가정). 이들은 알 수 없는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인격화한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이해할 수 없는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합리화하는데 필요했을 거라 짐작합니다. 대표적인 그리스와 로마 신화 뿐 아니라 북유럽, 인도의 신화까지 정리해서 소개한 과학자의 수고로움에 경의를 보냅니다. 다만 신화와 관련된 과학적 사실과 현실의 이야기는 ‘통섭’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신화와 종교라는 전혀 다른 영역을 뒤섞어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부분들이 많아 아쉬웠습니다. 모든 걸 뒤섞는 게 통합이나 통섭적 사고가 아니라는 걸 모를 리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어쨌든 이 책은 서른네 가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구성이지만 중복출연하는 신들이 있으니 서로 연결 고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틈틈이 한 편씩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신화를 많이 읽었다면 과학적 해석에 흥미를, 읽지 않았다면 신화 이야기 자체로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모임에서는 인어, 바벨탑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동성애, 임사체험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주제는 신화를 떠나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눴습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든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유토피아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변치 않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 너무 복잡한 이해관계, 서로 다른 삶의 목적과 방향으로 매일매일 부딪치면서도 함께 사는 사람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어떤 곳일까요.

이인식은 “세속적인 천년왕국주의는 여러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로버트 오언Robert Owen(1771~1858)의 유토피아 사회주의, 카를 마르크스Karl Marx(1818~1883)의 공산주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1889~1945)의 나치주의가 대표적인 사례이다.”(548쪽)라고 황당한 주장을 하고 세속적 이념과 정치경제적 지향점은 천년왕국주의의 여러 형태가 아닙니다. 이 책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유토피아는 신들이 꿈꾼 적도 없고 인간들이 실현할 가능성도 없어 보입니다. 부정적 현실 인식이 아니라 지금-여기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꿀 권리, 현실적 희망을 놓지 않는 용기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멀리서 오프 모임에 참석해 주신 회원님이 참석하신 모든 분께 선물해 주신 캘리그라피 필통이나 직접 육포를 만들어오신 사회자님의 정성을 감탄하며 사람들이 가진 따뜻함, 이타심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느낌니다. 저마다 다른 빛깔과 향기로 빛나는 인간은 또 그만큼의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이 부딪치는 자리, 오로지 단 한 권의 책으로 연결된 분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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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지배 - 디지털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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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병철의 글을 읽었습니다. 아포리즘처럼 한문장씩 꾹꾹 눌러쓴 책이니 얇은 분량이라고 만만하게 볼 책은 아닙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거리가 멀고 행간의 의미가 채워지지 않으면 앞으로 나가기 힘이 듭니다. “자유와 감시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지배는 완성된다.”라는 문장이 책 전체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정보화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부제는 이 책이 현대인이 겪는 불안과 위기의식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그 이유를 탐구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경제와 정치, 아니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한몸으로 움직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커플처럼 어색하지만 헤어질 수 없으니 불편한 동거가 계속됩니다. 한병철은 이를 “정보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권력 기술을 터득한다.”라고 지적합니다. 여전히 신자유주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몇몇 정치인이나 경제학자들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정보’와 ‘데이터’로 요약되는 미래 산업의 화두가 우리 삶-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점검하는 생활철학이자 사회학적 고찰입니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말과 사물』, 구스타프 르봉의 『군중심리』,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플라톤의 『정치학』 등 100쪽에 불과한 분량의 글에 사회학의 고전과 철학적 담론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에 발터벤야민이나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까지 다양한 고전과 인문학적 교양이 진입장벽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의 특성상 일반대중을 향한 말과 글의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실패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문턱일텐데 용어와 개념을 친절하게 풀어 설명하거나 쉬운 말로 바꿔 쓰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나 지나친 친절은 독서의 깊이와 확장성을 가로막을 수 있으니 선택은 독자의 몫이라고 하겠습니다.

정보체제, 인포크라시, 소통행위의 종말, 디지털 합리성, 진실의 위기 등 다섯 가지 주제로 정밀하게 써내려간 현대사회의 자화상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것 또한 독자의 몫입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자각하는 역할로 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역할은 충분합니다. 저는 해법과 대안까지 한세트로 구성된 완벽한 책을 원하지 않습니다. 현실에 뛰어든 정치, 경제, 사회학 연구자들의 면면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했고 지금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학문적 이론이 어떻게 현실에 실현될 수 있는지, 그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모르지 않습니다. 특히 ‘교육’ 분야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들어 육아, 교육 전문가로 자처하며 특단의 대책과 기막힌 해법을 내놓습니다. 추종자가 생기고 반대를 위한 반대자도 나섭니다. 장하준이나 한병철처럼 영어나 독일어로 쓴 글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요.

미성숙하며 조작 가능한 ‘투표 가축’이라는 표현은 양극화를 부추기고 담론 분위기에 독극물을 뿌린다는 저주에 가까운 우려가 뼈아프게 느껴집니다. 생각이 다른 주장을 ‘가짜 뉴스’로 치부하는 양극단의 진영 논리도 어이 없지만 실제 사실관계를 따지기 보다 자기 생각과 감정에 맞는 정보와 데이터만 수용하는 필터 버블과 디지털 동굴이 바로 지금 우리가 겪는 소통행위의 종말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점점 더 넘치는 정보의 감옥에 갇혀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는 대중은 그 정보 자체의 출처와 관점을 비판적으로 살피지 않습니다. 미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한병철, 아니 우리들의 시선은 어떤가요. 그들은 친구, 연인, 가족, 이웃, 동료들입니다. 아니, 또 다른 ‘나’의 모습입니다.

트럼프 당선이 촉발한 ‘대안 사실들alternative facts’은 서사적 연속성과 정합성 결여, 탈이데올로기화된 정보체제를 의미합니다. 가짜 뉴스를 대안 사실이라뇨. 정말 놀라운 발상입니다. 어느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 선택이 종북주사파가 추진한 대한민국 붕괴 시나리오라는 발언이 실제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의 발언일까요. 아니면 가짜 뉴스일까요.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 등 미국 사회에 어둔 그림자를 드리운 트럼프 당선의 의미를 이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없을까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인류는 실수를 반복하는 법입니다. 한병철이 들고나온 민주주의의 위기는 단순히 정보를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길들여지되 길들여지는 줄 모르고 판옵티콘에 갇혀 자유를 외치는 죄수같은 형국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대인을 향한 경종입니다. 딸랑딸랑~ 여러분 정신차리세요~

모임에 참석하신 분들이 대부분 진실의 위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로운 가치 허무주의가 자리잡는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공론장에서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고 합리적 토론이 이어질 수 없다면 ‘정보’라는 이름으로 쇠뇌시키는 미확인 카톡들, 유튜버의 뇌피셜들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거대한 구조적 모순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세상 전부로 착각하는 우리는 정보의 집에 갇혀 사는 ‘소비 가축’은 아닐까요. 탈정치화는 새로운 미성숙을 만들고 디지털 커뮤니티는 하나의 상품commodity으로 전락한 현실에 대한 한병철의 비판이 정치적 해위 능력 없음을 자인해야 하는 우리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간만에 귓가에 울리는 매미 소리가 여름이야~ 라고 외치는 듯 싶습니다.

데이터주의는 이데올로기 없는 전체주의다. -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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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 소중한 것을 지키는 삶에 대하여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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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란 녀석은 자신을 목격한 이에게 어김없이, 그리고 단호하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 53쪽

잠시 비가 그치고 나면 사람들은 젖은 마음을 말리려 바람을 햇빛과 바람을 찾는다.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은 돈이 없어도 누구나 즐길 수 있으니 다행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숨 쉬는 공기까지 비용을 지불한다. 여름에 시원한 바람, 겨울에 따뜻한 온기, 미세 먼지 걱정 없는 실내 공기는 공짜가 아니다.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을 나열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돈의 액수가 행복의 크기, 인생의 만족감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왕과 귀족이 다스리던 시대를 지나 부르주아가 탄생하고 ‘혁명’을 통해 공화정이 들어섰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놀랍게도 ‘개나 소나’ 한 표를 행사하는 국민주권 시대, 절차상 완벽한 민주주의 시대를 살게 됐다.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한 현대 국가 체제를 감히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플라톤의 염려대로 대중들의 열망은 중우 정치 혹은 포퓰리즘으로 비난받고 거대한 ‘이권 카르텔’, 이를테면 법조 카르텔에 의해 입법, 사법, 행정의 견제장치가 무너진 과두 정치가 대한민국의 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심각한 현상은 국민 대다수가 이를 용인하며 현실을 변화시키는데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계층 상승의 욕망에만 몰입한다는 사실이다. 자존심이 세지만 자존감이 낮을 때 벌어지는 우울한 현실을 우리는 매일 목도하며 산다. 지긋지긋한 ‘을’들의 전쟁 말이다.

경제 체제로서 자본주의와 정치 제도로서 민주주의는 성격이 전혀 다른 부부처럼 오랫동안 동거 중이다. 정부가 라면값에 개입하는 건 공산주의다.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다. 무상급식, 의료보험, 노인 연금 같은 모든 복지 제도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어떤 ‘이즘-ism’도 사람보다 소중한 가치일 수 없다. 무엇을 표방하는 정부든 인간다움을 잃는다면 민주주의는 반드시 책임을 묻는다. 서로 다른 생각을 편견없이 수용하며 동의할 순 없어도 인정하는 태도를 잃는다면 그것이 곧 독재와 파시즘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자본주의는 실체가 없다. 수없이 많은 변화를 거쳤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다듬고 고쳐가는 중이다. 수정자본주의는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민주적 가치를 받아들여 계속해서 변해가는 유기체와 같다. 정치, 즉 국민들의 삶과 삶의 가치에 따라 놀랄만큼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현실에 적용하기도 한다. 사회민주주의가 보편화된 유럽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복지를 부러워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쓸데없는 이념 논쟁, 이를테면 종북몰이와 수구보수 논쟁 같은 소모적 진영 논리에 갇혀 있는 건 아닌가. 전임 대통령이나 과반의석을 차지한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몰고 전직 대통령을 간첩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공직에 임명되는 현실을 우리들의 ‘상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들에게 정권을 넘겨준 이들의 면면과 실수 또한 작금의 현실에 버금가는 부피와 무게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어느 쪽이든 거대한 이권 카르텔, 기득권에 의한 과두 정치라는 사실을 국민들은 알고도 외면하는 것일까. 총선과 대선마다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이제 그들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여 보자. 세상을 흑백논리로 구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다른 대안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2008)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임승수는 페미니스트 아내와 함께 행복한 사회주의자로 살고 있다.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인 성향상 개인적인 이야기, 내밀한 고백은 대체로 불편하다. 소설가와 시인은 작품으로, 논픽션 작가들은 이성의 사유로 기능할 뿐이다. 개인으로서 그들의 삶이 궁금하지 않은 건 내 성향일 수 있으나 적어도 책을 통해 만나는 그들을 굳이 현실적 개인으로서 그 면면을 살피고 싶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로 사는 임승수의 생활이 궁금해 책장을 넘겼다.

글을 쓰고 강의하는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에 고개를 끄덕였고, 명문대 공대 출신으로 안락하고 일반적인 삶을 거부한 사람의 행복과 자유에 동의했다. 사람들은 과격하고 폭력적인 ‘혁명’과 ‘전쟁’을 떠올리지 않고 냉정하게 사회주의를 들여다 본 적이 있이 있을까.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같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빌려올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상관없는게 아닌가. 수많은 ~~주의 너머에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먼저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인류 문명에 끼친 빛과 그림자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한 적은 없다. 합의는 절망과 체념이 아니라 배려와 양보다. 니체의 말대로 사실보다 결국 해석의 문제일 뿐이다. 이 책은 임승수 개인의 일상이 아니라 건전한 상식과 다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한숨이다. 내게는 임승수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상식주의자’로 보인다. 제2, 제3의 더 많은 임승수가 나타나기를, 더 많은 사람이 ‘상식주의자’로 변해가기를 희망한다. 바꿀 수 있는 충분한 힘과 능력이 주어졌으나 스스로 외면한채 그들만의 리그에 진입하려는 이기적 욕망들이 현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아무도 당신의, 아니 나의 삶을 바꿔주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려하지 말고 내가 바뀌면 된다는 적응적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공감해야 답답하고 느리지만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그 시작은 생각과 태도의 변화로부터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기심만 가득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초래하는 공동체성 파괴와 인간 소외 현상을 마치 본성의 산물인 양 호도한다. 그런 언동이 인민을 착취하는 한 줌 지배 계급의 행동에 면죄부를 준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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