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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속 여행 ㅣ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소설 장르가 어차피 허구의 세계라면 인간의 상상력을 극대화시켜주는 내용이 가장 소설다운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쥘 베른의 소설들은 시대를 앞서고 있다. 1828년 프랑스 항구도시 낭트에서 태어나 1905년에 사망할 때까지 쥘 베른은 끊임없이 현실밖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도전과 상상력을 표현해 냈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이제 고전이 되어버렸고, <해저 2만리>와 <달나라 탐험>은 CF의 카피가 되어 작가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경우이다. 과학에서 ‘문학적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하는 실례로서 그의 소설은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단순히 SF 과학소설로만 볼 수는 없다.
쥘 베른 컬렉션 첫 번째 작품으로 열림원에서 번역한 <지구 속 여행>은 재미있다. 다시 한번 번역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신춘문예에 관심이 있었던 고교시절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으로 등단한 김석희의 소설을 꼼꼼히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 그는 전문 번역가로서 이름만 보고, 믿고 고를 수 있는 번역서들을 수없이 쏟아내고 있다. 150여년 전 작가의 상상력은 지금도 나를 즐겁게 한다. 지구의 중심으로 떠나는 황당(?)한 여행이 아이들에게만 흥미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쁜 일상과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이 시대 어른들에게 잠시나마 휴식과 여유를 즐기게 할 것이다.
‘1863년 5월 24일 일요일’이라는 특정한 시간으로 소설을 시작한 것은 내용의 신뢰감을 주기 위한 좋은 방법으로 보인다. 19세기 중반, 종교와 과학은 이미 대립을 넘어 주도권을 완전히 과학이 잡게 된 시기였다. 쥘 베른은 당시의 발달된 과학 지식을 총 동원하여 개연성 있는 허구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생물학과 지질학을 비롯하여 온갖 과학적 상식과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들을 동원하여 지구 속 탐험을 떠나는 주인공들에게 독자들은 신뢰를 보일 수 밖에 없다. 여로형 구성법의 전형인 이 소설은 인간의 상상 이외에는 접근할 수 없는 지구 중심으로 떠나는 여행을 보여준다. 주인공 리덴 브로크 교수와 그의 조카, 그리고 충직한 한스는 완벽한 3인조 여행단이 된다. 나레이터는 조카인 나의 시점이다. 물론 관찰자의 역할만 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도적인 역할에서 한발 빗겨선 모습에서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상식적인 독자들에게 가깝고 그것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소설의 시작은 추리 소설처럼 시작된다. 룬 문자로 구성된 양피지 한 장이 고문서 속에서 발견되고 그 암호문을 해독하는 것으로 여행은 시작된다. 그런데 이 암호문의 비밀이 재밌있다.
근대의 과학자들도 종종 자신의 발견을 애너그램으로 감춰두곤 했다. 왜? 한편으로는 종교적 검열을 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한 발견을 오랫동안 자기 혼자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시는 경쟁적으로 발견이 이루어지던 시대. 나중에 발견의 우선권을 주장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겨야 했다. 공개를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상황. 감추면서 드러내는 애너그램의 이중성은 이 고민을 간단히 해결했다. -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진중권, 휴머니스트, p188>
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애너그램으로 감추어진 문서는 아르네 사크누셈이라는 학자의 암호문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단으로 박해를 받았고, 그의 저술은 1573년 코펜하게에서 모조리 불태워졌다. 그래서 그의 책은 아이슬란드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 양피지 한 장이 그의 문서 전부인 셈이다. 암호문에서 힌트를 얻은 리넨브로크 교수는 조카를 데리고 ‘지구 속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행을 준비하고 땅 속으로 들어가기 전의 준비과정이 소설의 3분의 1쯤 된다.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고 긴장감이 결여될 수 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이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잊고 살았던 유년의 추억과 상상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인디애나 존스’로 대표되는 헐리우드의 환타지 모험 영화들은 모두 쥘 베른에게 빚지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동화속 꿈의 세계를 꿈꾸며 현실이 아닌 허공에 발딛고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에너지가 아닐까 싶다. 그 꿈들이 우리에게 넉넉하고 여유있는 마음을 나눠주다면 왜 거부하겠는가. 다음에는 우주로 여행을 꿈꿔봐야겠다.
200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