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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작든 크든 누구에게나 서재는 있다. 고등학생의 서재에는 참고서와 문제집만 꽂혀 있겠지만 성인이 되면서 자신이 만들어가는 책꽂이가 바로 자신의 영혼이다. 보르헤스는 천국이 존재한다면 아마 도서관을 닮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서재는 바로 자신이 만든 유토피아의 모습일 게다. 당신은 그리고 나는 어떤 서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궁금해 한다.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타인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늘 타인의 서재가 궁금했다. 학창시절에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이 너무 궁금했다. 아주 가끔 시집을 읽는 여학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은 규정하기 어렵다. 학벌이나 직업으로 평가하기도 어렵고 사르트르식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들어봐도 지식인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의 총량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발언의 내용과 실천적 행동의 족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당대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타인에게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으며 역사 발전의 합리적 원칙을 제시할 수 있어야 지식인이다. 다른 사람에ㅐ게 미래에 대한 전망을 논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의지와 인식의 힘을 가진 사람이 지식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행성:B잎새’의 『지식인의 서재』는 지식인과 서재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지식인의 가장 첫 번째 덕목은 말할 것도 없이 ‘책’이다.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지식을 쌓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지식인이다. 그러니 서재는 지식인의 가장 근본적인 영혼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열다섯 명의 열혈 독서가들은 『한국의 책쟁이들』의 주인공들과 조금 다른 눈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책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사람들, 책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 서재가 삶의 중심이지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행복한 책읽기 종결자들이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새로운 정보를 거부하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만 지겹도록 반복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화부터 내는 사람, 남에게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 말이다 - 조국의 서재, 19쪽

책을 읽지 않고 늙어가는 수컷 영장류의 비애를 간명하게 전달하는 조국의 서재는 그의 미모만큼 핸섬하다. 규범적 틀을 깨고 나온 그의 생각과 변화의 욕망은 모두 서재에서 출발한다. 세상은 의문으로 가득 찬 사람이 필요하다는 러셀의 말처럼 그의 말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물론 열린 생각과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독서를 만 권 이상 하고 나면, 사실 그렇게 새로운 것들이 많지 않아요. 같은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게 많지요. 아주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책은 10퍼센트나 될까요? 그래서 이제 저는 '아 이것은 정말 새롭다' 하는 것만 골라내어 독서를 하죠" - 이안수의 서재, 81쪽

충격적인 이안수의 말이다. 만권쯤 읽으면 그럴 법도 하다. 나는 태어나서 몇 권이나 읽었나 짐작해 본다. 세상의 모든 책은 고전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만 권의 경지는 아직도 멀고 험한 경지인 것 같이 느껴진다. 양으로 승부할 수는 없으나 질은 양을 담보로 하지 않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조국부터 최재천, 이안수, 김용택, 정병규, 이효재, 배병우, 김진애, 이주헌, 승효상, 박원순, 김성룡, 장진, 조윤범, 진옥섭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감독부터 건축가, 시인, 북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그 깊이와 넓이가 탄탄한 사람들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이들의 서재는 단순히 책을 꽂아 놓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며 내밀한 영혼의 숙성실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타인의 서재 훔쳐보기 프로젝트이다. 방송작가 한정원의 인터뷰와 전영건의 사진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편안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수없이 오갔을텐데 짧게 정리된 글만 보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가 충분히 한 권의 책이 될 만한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자신의 책읽기 노하우와 서재의 비밀, 책에 대한 관점 등 고수들이 들여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은 단순히 물질적인 형태 너머의 4차원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 비밀의 문을 열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우리는 15명의 고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읽을 책뿐만 아니라 읽어야 할 사람과 읽어야 할 삶이 너무 많다. 하지만 비균질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한계를 헤아려보면 ‘책’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느끼게 된다. 우리들의 삶은 유한하며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아는 것이 힘이든 모르는 것이 약이든 읽으면서 고민하고 생각할 일이다. 오늘도 읽고 쓰고 그리고 느껴야 할 일들이 우리에겐 너무 많지 않은가. 지식인의 서재는 아니더라도 나만의 서재 하나쯤은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두 칸짜리 작은 책꽂이부터 시작해보자.


11052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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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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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든 크든 누구에게나 서재는 있다. 고등학생의 서재에는 참고서와 문제집만 꽂혀 있겠지만 성인이 되면서 자신이 만들어가는 책꽂이가 바로 자신의 영혼이다. 보르헤스는 천국이 존재한다면 아마 도서관을 닮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서재는 바로 자신이 만든 유토피아의 모습일 게다. 당신은 그리고 나는 어떤 서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궁금해 한다.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타인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늘 타인의 서재가 궁금했다. 학창시절에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이 너무 궁금했다. 아주 가끔 시집을 읽는 여학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은 규정하기 어렵다. 학벌이나 직업으로 평가하기도 어렵고 사르트르식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들어봐도 지식인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의 총량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발언의 내용과 실천적 행동의 족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당대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타인에게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으며 역사 발전의 합리적 원칙을 제시할 수 있어야 지식인이다. 다른 사람에ㅐ게 미래에 대한 전망을 논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의지와 인식의 힘을 가진 사람이 지식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행성:B잎새’의 『지식인의 서재』는 지식인과 서재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지식인의 가장 첫 번째 덕목은 말할 것도 없이 ‘책’이다.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지식을 쌓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지식인이다. 그러니 서재는 지식인의 가장 근본적인 영혼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열다섯 명의 열혈 독서가들은 『한국의 책쟁이들』의 주인공들과 조금 다른 눈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책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사람들, 책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 서재가 삶의 중심이지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행복한 책읽기 종결자들이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새로운 정보를 거부하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만 지겹도록 반복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화부터 내는 사람, 남에게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 말이다 - 조국의 서재, 19쪽

책을 읽지 않고 늙어가는 수컷 영장류의 비애를 간명하게 전달하는 조국의 서재는 그의 미모만큼 핸섬하다. 규범적 틀을 깨고 나온 그의 생각과 변화의 욕망은 모두 서재에서 출발한다. 세상은 의문으로 가득 찬 사람이 필요하다는 러셀의 말처럼 그의 말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물론 열린 생각과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독서를 만 권 이상 하고 나면, 사실 그렇게 새로운 것들이 많지 않아요. 같은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게 많지요. 아주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책은 10퍼센트나 될까요? 그래서 이제 저는 '아 이것은 정말 새롭다' 하는 것만 골라내어 독서를 하죠" - 이안수의 서재, 81쪽

충격적인 이안수의 말이다. 만권쯤 읽으면 그럴 법도 하다. 나는 태어나서 몇 권이나 읽었나 짐작해 본다. 세상의 모든 책은 고전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만 권의 경지는 아직도 멀고 험한 경지인 것 같이 느껴진다. 양으로 승부할 수는 없으나 질은 양을 담보로 하지 않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조국부터 최재천, 이안수, 김용택, 정병규, 이효재, 배병우, 김진애, 이주헌, 승효상, 박원순, 김성룡, 장진, 조윤범, 진옥섭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감독부터 건축가, 시인, 북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그 깊이와 넓이가 탄탄한 사람들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이들의 서재는 단순히 책을 꽂아 놓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며 내밀한 영혼의 숙성실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타인의 서재 훔쳐보기 프로젝트이다. 방송작가 한정원의 인터뷰와 전영건의 사진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편안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수없이 오갔을텐데 짧게 정리된 글만 보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가 충분히 한 권의 책이 될 만한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자신의 책읽기 노하우와 서재의 비밀, 책에 대한 관점 등 고수들이 들여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은 단순히 물질적인 형태 너머의 4차원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 비밀의 문을 열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우리는 15명의 고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읽을 책뿐만 아니라 읽어야 할 사람과 읽어야 할 삶이 너무 많다. 하지만 비균질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한계를 헤아려보면 ‘책’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느끼게 된다. 우리들의 삶은 유한하며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아는 것이 힘이든 모르는 것이 약이든 읽으면서 고민하고 생각할 일이다. 오늘도 읽고 쓰고 그리고 느껴야 할 일들이 우리에겐 너무 많지 않은가. 지식인의 서재는 아니더라도 나만의 서재 하나쯤은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두 칸짜리 작은 책꽂이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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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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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릇된 것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오래 굳어지면 겉보기에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 P. 35

어떤 기준으로도 분류하기 어려운 책을 만나면 조금 당황스럽다. 형식과 내용의 독창성은 좋은 책이 갖추어야 할 미덕이지만 잘못하면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지루하고 비슷한 방식의 글쓰기보다 맛깔스럽고 재밌는 내용과 형식은 독자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세상에 태어나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그런 책을 찾아 읽는 것 또한 독자들의 안목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폴 콜린스의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이라는 책을 보고는 눈을 의심했다. 세계의 혁명을 꿈꾸었으나 자본주의의 상품 코드가 되어버린 체 게바라도 아니고 논쟁을 하다가 부지깽이를 휘두른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의 이야기도 아니고 기행을 일삼았던 작가나 예술가의 일대기도 아니고 『상식』(1776)과 『인권』(1791)을 썼던 미국과 프랑스의 사상적 혁명가 토마스 페인의 이야기라니?

관심을 가질만한 인물의 재탄생인지 아니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거리가 새로 발견된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영국과 미국 사람들에게 토머스 페인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급진적이고 괴팍한 형태의 ‘상식’이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면 18세기에 그가 쓴 소책자 ‘상식’의 파괴력을 짐작할 만하다. 그 내용은 차치하고 그의 쓸쓸한 생애에 먼저 눈길이 간다. 상식과 인권을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토머스 페인의 인생은 ‘종교’의 문제가 핵심처럼 보인다. 토머스 페인은 무신론자였을까?

그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는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 상식, 인권을 말할 수 없다는 논리는 아니겠지만 페인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의 사상이나 그가 쓴 책의 내용이 아니라 바로 ‘신’에 대한 그의 생각을 더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종교는 상식과 인권에 앞서는 걸까?

문학을 전공한 이 책의 저자 폴 콜린스는 토마스 페인이라는 실존 인물의 죽음부터 그의 생애와 사상을 점검하기 시작한다. 거꾸로 더듬어가는 시간여행은 우리들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토마스 페인이 죽은 현실적 공간에서 출발해서 그의 유골을 추적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한 영화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그것은 비극이다. 토머스 페인의 페인이 쓴 『상식』은 어떤 책인가?

왜? <상식>은 1776년 1월 10일 출간된 뒤 세 달 만에 12만부가 팔렸다. 그 뒤 3년 동안 판매량이 50만 부까지 늘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라 다들 책을 돌려 가며 보았다. 미국 인구가 250만이었고, 그 가운데 상당수는 문맹이었으니 글을 아는 사람은 모두 이 책을 읽었다고 봐야 한다. 식민지 시대 미국에서 성격을 제외하면 그 어떤 문서도 넘볼 수 없는 지위다. - P. 34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녔던 책의 저자 토마스 페인은 죽음 이후가 더 극적이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의 영향을 주었고, 『인권』을 발표해 프랑스 혁명을 옹호했던 토머스 페인의 유골은 그만큼 중요한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의 경계로서 ‘유골’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다. 그의 삶이, 그의 사상이 걸어온 길을 죽음 이후의 ‘유골’의 행적이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 저자고 말하고 싶은 진실은 아닐까?

그 진실은 여전히 유효한 토마스 페인의 사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민과 국가의 관계 그리고 인간이 가져야 하는 당연한 권리와 자유의 의미에 대해 분명하고도 상식적인 대안을 내놓은 페인의 삶을 유골을 통해 미루어 짐작하는 아이러니! 이 책은 죽음 이후를 추적하는 기이한 방식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한 사상가를 기억하고자 한다.

“어떤 그릇된 것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오래 굳어지면 겉보기에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 P. 35

적어도 마르크스가 나오기 전까지 가장 중요한 개혁가로 기록될 만한 인물, 토마스 페인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어떤 죽음을 맞이했든지 인류에게 인상 깊은 말들을 남겨 놓았다. 그것은 시대와 상황을 고려할 때 더없이 중요한 목소리였으며 아무나 흉내내기 어려운 용기였음을 기억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소설처럼 극적인 유골찾기를 통해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때문도 아니고 방대한 자료와 기록을 바탕으로 정교한 시간의 퍼즐 맞추기를 완성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혹은 살아야 할 미래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 그보다 먼저 『상식』과 『인권』을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는 감히 이렇게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토머스 페인은 바로 당신의 등 뒤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토머스 페인은 어디에 있는가?
독자여, 그가 없는 데가 어디인가? - P. 272


110309-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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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 인간 이봉창 이야기
배경식 지음 / 너머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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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역사가 서술될 때 비로소 영웅과 지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삶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독립운동사이고 인간의 역사이다. 그래서 나는 ‘영웅신화’가 아닌 삶을 고민하는 인간의 역사로서 독립운동사를 쓰고 싶었고, 이봉창은 그러한 나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 P. 14

많은 책을 읽다보면 눈에 띠는 작가와 만날 때가 있다. 오래 사귄 벗을 만날 때 만큼이나 진한 감동을 받을 수 있고 깊은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며 삶의 화두를 던져주기도 한다. 그것은 작가의 삶이 온 몸으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한데서 오는 감동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잘 벼려진 칼날처럼 예리한 감수성이나 무심하게 던지는 촌철살인의 통찰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경지이다.

어떤 분야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열정을 다하다 보면 그러한 경지가 자연스럽게 얻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순전히 ‘열정’과 부단한 ‘노력’ 덕분일 게다. 이것이 가장 신뢰할 만한 안목이 아닐까? 천재적인 영특함과 찰나의 판단력이 주는 날카로움에 경탄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전자의 지긋함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배경식의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는 공부와 연구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길어 올린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싶다.

무릇 역사는 영웅의 행적을 기록하거나 승자의 편에서 서술된 변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반드시 뒤집어볼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이 필요하다. 이 책은 기존의 독립운동사에 대한 불경스런 도전일 수도 있고 영웅담에 대한 개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진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용기를 낼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기도 하다. 영웅은 진정 영웅으로 태어나 영웅답게 살다 죽었을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수십 개의 문장을 걷어내고 줄이고 줄여 단 세 줄의 시를 만들어 낸 시인의 노고를 상찬하기 위해 이 책의 맨 앞에 이 시를 싣지는 않았으리라. ‘너에게 묻는다’는 안도현의 시가 놓인 자리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인간 ‘이봉창’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며 저자가 독자들에게 먼저 시 한 편을 권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 ‘이봉창’의 모습이 우리가 믿고 싶은 영웅이 아닐지라도 함부로 발로 찰 수 없다는 전제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그래서 조금은 무겁고 차분한 마음으로 읽어야할 책이기도 하다.

1932년 1월 8일 일본 경시청 앞에서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 만 31세의 젊은 나이에 성공과 실패를 따지기 전에 무모함을 따지 전에 그 모든 것을 알고도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의 용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자는 저자의 말은 역사적으로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일제 식민지 일본의 심장부를 노린 일대 사건은 독립운동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저자는 그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평가절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이 책의 목적은 앞서 인용한대로 결과가 아닌 과정의 역사를 보여주는 데 있다. 영웅의 신화가 아니라 고뇌하는 인간의 역사가 우리에게 지극히 커다란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것은 아닌가. 평범한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로 살면서 느꼈을 일본인과의 차별,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조선인의 굴레, 천황의 행렬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낼 정도로 뼛속까지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인간 이봉창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에 충실했던 그의 삶은 영웅으로 분장된 독립운동가의 모습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천황 폭살을 감행한 이봉창의 용기는 다시 논할 필요도 없다. 다만 거기까지 가야했고 가고 싶었고 갈 수 밖에 없었던 한 식민지 청년의 생이 눈물겹다. 저자는 수많은 자료와 참고문헌을 통해 마치 퍼즐을 맞추듯 독립운동가 이봉창과 인간 이봉창의 삶을 직조해낸다. 객관적인 자료와 문헌을 통해 만들어진 신화의 화려함을 걷어내고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순간, 이봉창은 오히려 화려하게 부활한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통해 살펴본 이봉창의 삶은 다르지 않다. 영웅이면서 식민지 청년이었던 이봉창을 통해 저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한국적 근대의 모습이며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아니었을까 싶다.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일상은 비루하고 욕망은 순수하다. 어떤 사건과 행위가 그 모든 것을 가릴 수는 없다. 이봉창이 스스로 지었던 일본이름 ‘기노시타 쇼조’를 앞세워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다고 한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이봉창이기 전에 기노시타 쇼조였던 그의 변화과정을 읽어내고 깊은 고뇌와 신산스런 삶을 읽어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었을지. 그래서 작가의 ‘이 글은 독립운동가의 영웅담이 아니라 식민지 사회라는 ‘한국적 근대’를 경험했던 한 식민지 청년의 자기고백이자 삶의 기록’이라는 프롤로그의 선언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는 독립 운동가 이봉창이 아닌 수많은 ‘기노시타 쇼조’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100919-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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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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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온전한 사랑이라면, 환경과 거리상의 장애가 충분한 애정을 공급하는 걸 방해하여 애정의 굵은 선이 가는 선으로 바뀔지는 모르지만, 말라비틀어진 상태에서도 감정의 동맥은 사랑을 끊임없이 담아 심장으로 옮기는 법이다. 그게 제대로 된 사랑의 운명이다. 결코 죽지 않는, 적어도 감정의 본질만은 손상되지 않는 바로 그런 사랑. - 『사랑에 관한 연구』(P. 38),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여자 그리고 사랑

  사랑은 본질적인 자아와의 만남이다.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를 벗고 내 존재의 심연과 마주하는 일이 사랑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근본적으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취향이 아니라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위태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소설가 정이현은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통해 본능적으로 현실에 적응적인 여성들을 보여주었다. 그녀들의 이기적 욕망과 계산적 사랑에 대한 냉소는 작가가 만든 허구가 아니라 우리들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자화상일 지도 모른다. 김연수도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통해 사랑과 현실 사이의 비루함을 경쾌하게 보여준 바 있지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를 통해 사랑과 이상의 보편성에 접근하고 있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수많은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랑은 이야기의 가장 풍요로운 주제가 되었으며 인간 삶의 가장 큰 바탕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물론 그러하다.

  고종석은 소설을 쓰고 시를 읽어주고 현실을 분석하다가 때때로 언어의 정밀함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고종석의 여자들』은 두 가지를 유의하며 읽어야 한다. 하나는 고종석이며 또 하나는 물론 여자들이다. 그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자이노파일(gynophile)은 여성애호 혹은 여성취향 정도의 뜻으로 해석된다. 고종석의 글들을 읽어온 독자라면 굳이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책을 읽으면 되겠지만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오해없이 그의 말을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또 한 하나는 여자들이다. 한 두 명도 아니고 34명의 여자가 고종석의 여자들이다.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가 들려주는 여자 이야기는 누구나 흥미 있게 들을 만하다. 취향의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여자와 사랑, 참 어렵다.


섹스(sex) 혹은 젠더(gender)

  생물학적 성인 섹스(sex)와 사회적 성인 젠더(gender)는 이 책을 이해하는 관점이 된다. 여성은 남성보다 현실적이지만 이성적 사랑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그것은 우열과 선악의 가치 판단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차이일 뿐이다. 통상적으로 유전적 본능과 심리적 진화의 결과라고 본다. 하지만 사회적 성역할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교육과 사회화의 과정에서 여성으로 길러지고 내면화되는 여성성은 올가미가 되어 순종과 억압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섹스와 젠더의 차이는 고종석이 말하는 자이노파일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 고종석은 생물학적인 섹스가 아니라 젠더로서의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때때로 이분법적 구별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성으로 태어나 여자로 길러지는 과정에서 부딪쳐야 하는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더구나 시대 현실, 사회적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이었던 과거에는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이 책의 처음을 장식하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바로 그런 여성의 대표라고 볼 수 있다. 혁명 전사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과 한없이 여성이 되고 싶었을 그녀의 삶에 대한 고종석의 연민어린 시선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도 작가의 관심은 여성성과 사회적 존재 사이의 어느 지점에 서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여자들이 다수 등장한다.


고종석의 여자‘들’

  한 여자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라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을까. 이 책에 아니 고종석에게 선택받은 서른 네 명의 여자들은 흥미롭게도 윤심덕과 최진실을 제외하면 대중예술을 통해 환상과 꿈을 심어준 여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 노래와 춤 혹은 연기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와 실제 여자 사이에는 그만한 간극이 있는 것일까. 특이한 두 명의 이야기는 ‘자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기는 하다.

  고종석의 여자들은 역사 혹은 사회적 맥락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여자들이다.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호기심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 책에 소개된 여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익숙치 않은 여성들도 있지만 측전무후, 임수경, 오프라 윈프리에 이르기까지 생존 여부를 떠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자들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 시대와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삶에 대한 열정과 뚜렷한 신념을 가졌던 여성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의 삶은 오히려 간결하고 단순하다. 범접하지 못할 아우라를 뿜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인 능력의 유무를 떠나 삶의 자취에 향기가 묻어나고 열정의 깊이에 감탄할 만한 여자들이 소개된 책이다.

  또한 이 책은 그녀들을 바라보는 고종석의 눈을 빌려보는 데 의미가 있다. 고종석의 선구안과 문체는 고종석을 이해하고 그녀가 선택한 삶을 긍정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책이 작가의 주관에서 벗어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객관적 시선과 보편적 정서를 끌어 낼 수 있다면 읽을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수필 형식의 짤막한 글들이 완성도 높은 전체 구성을 염두해 둘 수는 없다. 신문에 연재된 칼럼을 모은 책이 가진 한계가 서른 네 명의 매력적인 여자들을 만나는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책의 말미에 고종석의 친구 황인숙과 강금실의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어 반갑기도 했고 저자의 인간적인 모습에 공감하며 책장을 덮었다.


10020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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