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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윤성희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평점 :
지독한 감기에 걸려 본 사람들은 안다. 그 열병을 털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때, 뺨과 귓불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의 신선함을. 살아있다는 것은 그저 신열을 앓고 난 후에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는 공기의 시원함에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윤성희의 세 번째 소설집 <감기>는 구석구석 발라먹어야 하는 생선처럼 가시를 숨기고 있지만 예측할 수 있는 함정과 장치들이기 때문에 당혹스럽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소설을 읽으면서 낯설고 재미있는 스토리가 주는 감동은 사실 오래가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우의 이야기지만 소설가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문체가 우선이다. 한 데 뒤섞여 있어도 분명하게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윤성희가 가진 특징이고 매력이다.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좋아지는가 하면 별 생각없이 빨려든다.
적당한 거리두기와 냉소적인 시선이 아니라 무덤덤한 목소리는 마른 모래 바람처럼 서걱인다. 좀체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의 숨소리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읽어내야 한다. 그 섬세한 숨결들을 놓쳐버리면 윤성희는 지루한 작가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내게 윤성희는 아주 매력적인 작가로 기억되었다. 그녀의 전작 소설집 <거기, 당신?>를 읽으면서 느꼈던 독특한 면들이 고스란히 살아 움직인다. 나는 계속 그녀의 소설을 읽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수다스럽지 않다. 말이 많은 캐릭터가 필요해도 작가는 중간에서 차단하고 몇 마디 말만을 골라 던져주거나 대화와 대화 사이의 간격을 쭉쭉 넓혀버린다. 상징이 아니라 비약은 가독성을 떨어뜨리지만 상상력을 배가시킨다. 절제된 언어는 시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요설스럽지 않지만 할 말은 다하고 있다. 툭툭 내뱉는 어법과 어휘와 문장들 사이의 생략은 윤성희가 지닌 문체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나는 그래서 그녀가 마음에 든다. 어차피 작품이든 작가든 개인적인 취향일 수밖에 없다면, 마음에 든다고 말할 수 있다.
한결같이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사람들의 내면을 답답하게 끌고 나가는 방식이 때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람들 사이에 뚫린 ‘구멍’을 읽어나가는 일은 현실 속에 모든 존재들을 읽어내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감기에 걸려 재채기를 하든 죽은 사람에 대한 부채감으로 인생을 허비하든 상관없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가슴에 큰 구멍 하나씩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구멍을 숨기기 위해 크게 웃고 위선 혹은 위악을 부리거나 눈물을 흘린다. 옷으로 가려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슬쩍슬쩍 보이기도 하지만 서로 모른 채 하거나 알아도 눈을 감아버린다. 그 구멍들을 소설에서 직접 보여준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소설이 될까? 윤성희는 끝없이 빨려드는 블랙홀처럼 그 구멍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 구멍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에게 보물지도의 상징처럼 암호를 숨겨놓기도 하고 어휘나 문장들 사이에 숨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재미있다.
단편 ‘구멍’이나 ‘하다 만 말’ 그리고 ‘저 너머’나 ‘무릎’에서는 가장 자주 부딪히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가장 큰 행복과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가족들이 때로는 생의 가장 큰 불행이 되기도 하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런 가족들 사이에서 확인되는 개인은 서로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확인된다. 과거의 기억들과 현재의 삶은 끈끈하게 이어져 있지만 쉽게 분리되기도 한다. 같은 시공간에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거나 말하지 않고 교감하거나 삶의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거나 어떤 타인도 내 생의 이유를 확인해 줄 수 없거나.
부채감이나 열등감 혹은 몸과 마음의 이상 증세는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감기와 같다. 없다고 행복하지도 않고 있는 것을 자랑할 수도 없다.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인간 삶의 보편성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윤성희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그것들을 과장하고 확대하거나 지나치게 무시해 버린다.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으나 현실 밖의 세상과 이야기를 넘나든다. 그 경계가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순간을 무서워해야 해. 자네가 비겁해진 순간이 있었다면 그 한순간이 평생을 따라다닐 거야.” - ‘등 뒤에’중에서(P. 70)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순간을 무서워해야 하는 것일까? 그 한 순간이 평생을 따라 다닐 것이라는 말은 무심한 순간들이 어쩌면 결정적 순간이라고 믿었던 모든 순간들을 밀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불확정성 때문에 사는게 두렵고 때때로 허탈하고 외로워진다. 그 ‘순간’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외부의 힘이나 타인이 될 수도 있다.
“고백을 해본 사람들은 고백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알게 되지.” - ‘재채기’중에서(P. 117)
아무도 쉽게 고백하지 않는다. 고백을 하는 순간 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쉽게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노름판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패배의 낭패감을 견뎌낼 자신이 없는 것이다. 윤성희의 소설을 읽어가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단편들 사이사이, 소설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내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 툭툭 내뱉는 간단한 대화, 쉽게 읽어낼 수 없는 웃음과 엉뚱한 결말. 이 모든 것들이 작가의 다음과 그 다음까지를 기다리게 한다. 변하지 않는 개성과 다양성을 함께 기대하는 이기적인 독자가 그녀를 기다린다.
070625-0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