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 박영근 유고시집 창비시선 276
박영근 지음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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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작별

그 언제부턴가
가을도 다 지나고

가슴속에
식은 채 묻혀 있던
불덩어리 하나

다 피어나지도
저를 떨구지도 못한
꽃덩어리 하나

오늘은
허연 잿더미를 헤치고
말갛게 불티로 살아난다

이제 그만
저를 놓아주세요

찬 바람 속
몸시 앓다가
한 여드레쯤 지나면
문밖 골목에도
고즈넉이 흰 눈 내리겠다

  하나 둘씩 존재했던 모든 것들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혹은 사랑이든 미움이든 말이다. 고정희도 그랬고 윤중호나 오규원 그리고 박영근도 사라졌다. 시인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과 특별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들은 죽어서도 많은 말들을 한다는 사실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들이 토해낸 언어들은 죽지 않고 활자로 살아 남는다. 책으로 남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롯이 등불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맞아야 하는 사람들이 조금 덜 쓸쓸할 것이다.

  박영근의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는 시집 앞에 실린 몽골 초원 위에 누워 있는 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는게 아니라 어둠속 저 하늘 위 별자리에 누워있을 시인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소멸하는 모든 것들은 아쉬움과 여운을 남긴다. 시인 박영근도 그렇다. 그가 남긴 시들이 읽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표정으로 다가온다.

  ‘늦은 작별’이 아니라 너무 이른 작별이었다. 가슴 속에 묻혀 있던 불덩이 하나가 꽃덩어리로 피어나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난건 아닌지 모르겠다. 생에 있어서 순간성과 일회성의 엄밀한 규칙은 단 한사람에게도 예외가 적용된 적이 없다. 어느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듯이.  지금 현재 살아가는 방법과 자세를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문득 부딪히게 되는 죽음은 말할 수 없는 침묵이 되어 버린다. 예상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알고 있어도 속수무책이다. 받아들이되 이해할 수도 없고 외면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기억하느냐’고 묻고 있는지 모르겠다. 실제 생물학적인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의 사라짐이다. 인간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때 비로소 진짜 죽음을 맞이한다. ‘그 종소리’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때 우리는 떠난다. 하지만 박영근의 목소리는 오래도록 전해질 것이다. 시인이 끝임없이 되묻고 있으니까, 기억하느냐고.

기억하느냐, 그 종소리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천녀의 꿈이라 한들
제자리에 있겠느냐

우리가 사는 일이 온통 고통이라 해도
오늘 바람 속에 흔들리는
저 풀잎 하나보다 못하구나

기억하느냐
겨울 빈 들에서 듣던 그 종소리

  44편의 시들 중에서 유일하게 발표되지 않았던 시가 마지막에 실려있다. 뭉크의 ‘절규’를 주제로 한 시가 그것이다.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이 ‘절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시인의 죽음을 앞에 두고 절규한다고 해서 살아나지는 않는다. 모든 죽음은 안타까움을 남긴다. 세상을 향해 절규하던 목소리들, 노동 운동의 현장에서 치열했던 삶의 자세, 사람과 사물들을 향해 보여줬던 뜨거운 사랑이 담긴 시들을 남기고 떠난 박영근 시인을 기억한다. 그렇게 또 한 명의 시인은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절규

저렇게 떨어지는 노을이 시뻘건 피라면 너는 믿을 수 있을까

네가 늘 걷던 길이
어느 날 검은 폭풍 속에
소용돌이쳐
네 집과 누이들과 어머니를
휘감아버린다면
너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네가 내지르는 비명을
어둠속에 혼자서
네가 듣는다면

아, 푸른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
작은 새의 둥지도


070623-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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