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빠삐용>은 귀신같은 탈옥 솜씨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 끝없는 도전 정신이 더욱 인상 깊은 영화이기도 하다. 신체의 구속은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말했던 “범죄가 개인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이방인처럼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설명되기 힘들다.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사회로부터 격리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다는 논리는 원인과 결과를 뒤집는 역설이다. 탈옥 영화들은 주인공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관객들이 주목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탈주에 대한 욕망이다. 자유를 차압당한 인간의 본능에 대해 공감을 형성한다. 비무장 지대 GP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나는 방에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의 대형 포스터를 오랫동안 걸어 놓았다. 주인공 팀 로빈슨이 시원스레 내리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어둠 속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가슴을 활짝 펴고 양팔을 뒤로 뻗은 자세의 포스터를.

  동명의 소설이 나왔다. 국내에서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파피용>은 공상과학 소설의 복습이자 예습이며 현재형을 보여준다. 먼저 복습에 대해 살펴보자. 공상과학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쥘 베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이브의 아버지 이름이 쥘이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이브의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파피용>은 쥘 베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 같다.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은 지구 밖을 여행하는 <파피용>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상상력과 탄탄한 구성 측면에서는 선배에게 한참 밀리고 있다.

  하지만, 예습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학전문기자였던 작가의 이력을 더듬지 않더라고 만만찮은 소설의 뼈대를 과학 상식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근거 없는 상상력조차 상상력은 문학의 가장 큰 재료가 된다. 아득한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인류가 걸어온 길은 빛의 속도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천년 후의 인류를 상상하는 것은 우리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비좁은 세상을 떠나 상상을 뛰어넘는 저 우주의 또 다른 세계로 떠난다는 설정은 그리 허황된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미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상상하는 자의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재형에 대한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지구의 현재는 결코 낭만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지향점이 없는 현대 사회의 모순들을 살펴보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소설에서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원자폭탄, 종교적 광신주의, 환경오염, 인구 과잉, 그리고 사방에 스트레스와 두려움’등 현재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기에 차고 넘친다. 전쟁과 기아, 자본주의와 민족적 이기주의 등 헤아릴 수 없는 모순들과 문제들을 가진 일촉즉발의 위기 행성 ‘지구’에 대한 반성이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미래는 없는 것인가? 작가가 소설 초입에서 여러 번 반복하는 말이 “마지막 희망은 탈출이다.”라는 문장이다. 과연 그러한가. 희망없는 별 지구를 떠나서 우주의 다른 행성을 찾는 것이 현생 인류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가. 작가는 그렇지 않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숨은 그림처럼 숨겨 놓았다. 14만 4천명이 태양돛을 단 범선을 타고 천 년 후에 도착할 인류의 새로운 지구를 찾아 떠난다는 설정은 황당하기만 하지만 거꾸로 그렇게 찾은 별이 바로 여기라는 설정이다. 끝없이 새로운 별을 찾아 떠날 수 없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마지막 ‘지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희망. 이 책에서 작가는 그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 하나를 살려 놓고 있다.

  아담과 이브 등 성서에서 차용한 주인공들의 이름과 우주 여행이라는 기본적인 발상은 그리 신선하지도 않고 낯설지도 않다. 전체적인 스토리와 소설의 기본 틀은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할 정도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개미>에서 느꼈던 강렬함이나 몰입의 즐거움은 찾을 수 없었다. 허명에 쫓겨 이 책을 선택하는 모험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 다만 도덕 교과서처럼 교훈을 따르지 않으면서 상상력으로 빚어낸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는 읽고 난 후에도 긴 여운으로 남는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떠나서 변화해야 하고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 자체도 힘이 드는 현실에서 문학은 또 하나의 각성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IMF가 터졌을 때 돈 많은 부자들이 술잔을 부딪히며 외쳤다는 “지금 이대로!”가 아니라 ‘마지막 희망’이 무엇인지 찾아 떠나는 14만 4천 명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내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지구는 살만한 별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별에서 국가도 군대도 폭력도 전쟁도 화폐도 결혼도 없는 완벽한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소설이나 읽으면서 살고 싶다. 그 소설이 현실이 될 수 도 있다는 사실들을 후세에게 전하며 조용히 늙어가고 싶다.


07071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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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Cat 2007-07-12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서두에서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은 팀 로빈스에요 ^^
오타 내신것 같아서 살며시 댓글 남기고 갑니다

sceptic 2007-07-13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수정했습니다...딴 생각하고 리뷰썼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