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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보았던 저스틴 커젤 감독의 영화 <맥베스>는 스크린 가득 풍겨나던 뿌연 안개의 이미지와 스코틀랜드의 대자연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내가 애정해마지않는 대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와 마리옹 꼬띠아르 두 주연배우의 연기는 두말 할 필요없이 훌륭했고, 같이 본 친구는 지루하다 했지만 나는 그들이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계속 두근거렸다.

주인공들의 대사가 원작을 그대로 반영한 것도 고전의 느낌이 물씬 나서 좋았는데 그 때문에 집에 가면 바로 원작 맥베스를 읽어보리라 다짐했지만, 그 다짐마저도 뿌연 안개 속으로 흐려져 사라지다가.... 어젯밤, 읽던 책 한권을 끝내고 조금은 뿌듯하고 조금은 허무한 마음에 갈팡질팡하던 손이 책상위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이 책으로 나를 인도했다.

 

예전엔 세익스피어 특유의 시적인 대사들이 좀 오글거려서 읽지 못했는데, 영화를 보고난 여운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지 대사가 매우 리드미컬하게 울리며 비장함을 자아내었다.

 

"고운 건 더럽고, 더러운건 고웁다"는 말처럼 충신이던 코도의 영주가 역적으로 판명나 처형당하고, 믿었던 맥베스가 덩컨왕을 죽이고, 아름다울것 같던 권력이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되는 이 삶의 아이러니! 선과 악이 뒤섞여 혼탁해지는 이 상황이 작품 속에서도 내내 안개와 바람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환상처럼, 환영처럼 시종일관 뿌옇게 깔리던 안개와 거친 자연에서 불어오던 바람은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삶의 허무와 절망을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를 "대지를 붉게 물들이는 안개와 바람의 파토스"라고 평했는데 너무 적절해보인다.

 

전장에선 그렇게 강한 맥베스였는데 왕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면서부터 급격히 흔들리던 눈빛은 그가 양심으로부터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역설적이지만 자신의 죄를 너무나 잘 알고 갈등하기 때문에 점점 더 극한 악으로 내몰리는 맥베스. 무너져가는 그를 그런 눈빛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마이클 패스벤더말고도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훌륭했다.(내게 올해 오스카상 수상권한이 주어진다면 남우주연상은 마이클 패스벤더에게 줄 것 같다. 지난주 <스티브 잡스>를 보고 나서 마음이 완전히 마이클에게로 넘어갔다. 디카프리오...미안...)

 

그리고 욕망앞에서는 여성성도 없애버리고 나약한 맥베스를 계속 다그치던 맥베스부인.  영화는 원작에는 없던 그들 부부의 아이 장례식으로 시작하는데 아이를 잃은 슬픔을  겪은 그녀지만 맹세한 목표앞에서라면 '젖을 빠는 아이에게 젖꼭지를 확 뽑고 머리통을 부셔버렸을거란' 단호함을 보다 더 부각하기 위해 그렇게 각색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 맥베스 부인조차도 거듭되는 살인에 정신줄을 놓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는 건 우리는 모두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어쩔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고, 반대로 그런 양심의 가책조차 없다면 과연 인간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도 가지게 된다.

 

맥베스가 왕위에 오르고 복수에 집착하는 폭군이 되어갈 때 분열된 리더를 가진 조국 스코틀랜드는 절망의 나라가 되어간다. 스코틀랜드의 귀족 로스가 잉글랜드로 피신해있는 맥더프에게 전하는 스코틀랜드 상황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다를 바 없어서일까?  책임을 느껴야 하는 자들이, 양심을 가져야 할 자들이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저 불쌍한 스코틀랜드만도 못한 나라가 아닌가.

 

# 아, 불쌍한 나라!

  못 알아볼 지경이오. 어머니가 아니라

  무덤이라 할 수밖에 없는 그곳에선

  무지한 자 말고는 어떤 것도 웃지 않고

  탄식과 신음과 대기 찢는 비명을 토해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며, 격렬한 슬픔은

  흔해 빠진 감정 같소. 조종을 듣고도

  누구인지 안 물으며, 착한 사람 목숨이

  모자 위의 꽃보다 더 빨리 시들어

  병들기도 이전에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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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2016-01-29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어릴 때 읽어서 주인공의 심리를 깊이 읽어내지 못하고 난해하게 느꼈던 기억이 있어요~
오로라님의 글을 읽고 나니, 영화로 한번 보고 싶어지네요^^

살리미 2016-01-29 18:08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고나면 책읽기가 수월해지실 거예요. 저도 이 책 오래전에 사놓긴 했지만 읽고 싶진 않았거든요 ㅋㅋ
영화가 원작의 대사를 거의 사용하고 있어서 영화한편 보는게 소설 한권 읽는 느낌을 주더라고요.

해피북 2016-01-29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오로라님. `삶의 아이러니`라니요 (봐야할 영화와 읽어야 할 책 추가되는 소리가 들려요ㅋ) 오로라님 덕분에 눈이 충혈 되도록 봐야할 영화가 넘쳐나고 손가락이 짓물도록 읽어야할 책들이 장바구니에 넘쳐나고 있어요 ㅋ 오로라님은 북플을 물들이는 안개와 바람같은 존재신거같아요. ㅎㅎㅎ

살리미 2016-01-29 19:55   좋아요 0 | URL
하악!! 무슨 말씀을 ㅋ 철저히 주관적인 제 느낌이라 저는 책임질 수 없습... 같이 간 사람은 내내 졸았다고요 ㅋㅋ

초딩 2016-01-29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슬쩍 담아 갑니다~

살리미 2016-01-29 19:56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그렇게 주워담아온 책들이 도토리처럼 한가득이에여^^

2016-01-29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9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1-29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스 페인팅 때문인지 북플로 사진을 보니까 주연배우가 눈을 감은 줄 알았어요. ㅎㅎㅎ

살리미 2016-01-29 20:1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도 그렇게 보입니다. 의도적인 것인지 영혼없는 좀비 같아보이기도 하네요. 이중적으로.

지금행복하자 2016-01-2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장에서 못보고 다운만 받아놓고 또 못보고 ㅎㅎ
꼭 봐야겠어요...불끈!!

살리미 2016-01-29 23:20   좋아요 0 | URL
장엄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였어요. 큰 화면으로 보면 더 좋지만 저도 다운받아서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어요^^

프레이야 2016-01-30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를 놓쳤어요. 찾아서 봐야겠습니다.^^

살리미 2016-01-30 07:32   좋아요 0 | URL
개봉당시 워낙 상영관도 없었고 영화도 금방 내려버렸었죠. 놓치기 쉬웠습니다. 이 정도급의 영화가 그렇게 홀대받아서 되나 싶더라고요. 즐거운 관람되시면 좋겠습니다^^

유부만두 2016-01-3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보고 책 다시 펼쳤어요!! 영화 번역이 훨씬 멋졌지요. 아 그 안개 경치.. 그 중후한 대사들!
영화에서 마지막 처리...노을이 내리는 장면과 그 소년의 뒷모습으로 재해석되는 게 정말 멋졌어요!

살리미 2016-01-30 13:43   좋아요 0 | URL
보셨군요!!! 저도 영화에서 새롭게 각색된 부분까지도 영화가 훨씬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책만 읽었을땐 그런 감동을 못받았을뻔했어요. 마지막 엔딩씬도 원작엔 없던 것이더군요. 다시금 피바람이 불것이라는 암시처럼 붉게 일렁이는 화면...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니 다시 한번 더 보고싶어져요!!

비로그인 2016-01-30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베스가 영화로도 재밌다고하니 한번 시도해보싶네요~

살리미 2016-01-31 00:44   좋아요 0 | URL
네, 꼭 보실 기회가 생기셨음 좋겠어요^^ 원작과 다른 점도 좀 있으니 비교하면서 보셔도 재밌을거예요.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언컨대 이 영화는 내 선호쟝르는 아니다. 사전 아무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극장에서 예고편을 보았을 때, 디카프리오와 톰 하디 출연에도 불구하고 그리 흥미롭진 않았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작품이라 했을 땐, 응? 그럼 한번 볼까? 했다. 그의 전작들이 모두 쉽진 않았지만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의 주인공 디카프리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연기의 신처럼 맡은 배역마다 훌륭하게 연기를 해내었지만 오스카와는 악연이었다.
심지어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의 그의 연기는 내겐 ˝오스카를 꼭 거머쥐겠어!!!˝ 하는 것으로 보였다. 분명 그의 미모가 연기를 깎아먹고 있는 점도 있지만 연기에 대한 그의 과도한 열정이 거부감으로 다가오는 면도 분명 있었다. 그는 항상 너무 열심히 함으로써 너무 과한 느낌을 준다.
그런 그가 이냐리투 감독과 손잡았다. 이냐리투는 자신이 만든 영화의 주인공에게 오스카 상을 쥐어줄 수 있는 능력자다.
우리의 디카프리오에게 오스카의 영예가 주어질 것인가?
내가 영화를 보러 간 건 그 이유가 가장 컸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숨소리의 영화`다. 디카프리오는 대사의 거의 팔할 이상을 숨소리로 연기한다. 영화의 초반부터 그는 이야기 한다.
˝포기하면 안돼. 숨이 붙어 있는 한 싸워야 해.˝
사력을 다해 숨쉬려는 자. 그는 1800년대의 사람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사력을 다해 숨쉬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그의 숨소리는 끝내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고 절대 죽을 수 없다는 분노의 목소리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휴 글래스라는 인물은 모피 회사에서 운영하는 사냥꾼 집단의 리더인데 인디언 포니족 여인과의 결혼에서 낳은 아들이 호크가 있다. 휴 글래스의 동료 사냥꾼인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이들 부자, 특히 호크에 대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기는 야만 대 문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백인 우월주의가 싹트던 시절이었다. 마침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읽은 터라 존 피츠제럴드로 대변되는 순혈주의 백인 마초 집단에 대한 묘사가 흥미로웠다. 그들은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인디언들을 인간 이하로 생각한다. 사냥을 위해 사람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원주민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야만인으로 몰아간다. 원주민의 피가 섞인 혼혈은 당연히 사회로부터 거부당한다.
다시 말하면 휴 글래스는 혼혈의 아들을 두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미국인도 인디언도 아닌 경계 밖의 인물이었고, 양쪽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진 리스의 소설에서 앙투아네트가 그들의 문명에 끼지 못하고 좌절해야 하는 운명이었다면, 휴 글래스는 끝까지 쫓아가서 복수하는 인물이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질수록, 그의 고난이 힘겨워질수록 그의 고통이 이제 그만 끝나기를 기원하게 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복수에 대한 염원이 그를 다시 살려놓는다. 그의 싸움은 대자연과의 싸움이며 동시에 편견과의 싸움이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싸우라. 그러니 숨을 쉬라.˝
영화의 마지막에 그가 관객을 똑바로 응시하는 장면은 그가 숨쉬는 것을 똑똑히 보라는 의미로 들린다.
그리고 백인우월주의에 대항하는 그에게 숨을 쉬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가를 깨닫게 한다. 우연히도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와 이 작품의 시대가 비슷하다. 순혈주의, 백인 우월주의, 제국주의에 맞선 앙투아네트는 비록 날개가 꺾였지만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살아남았다. 복수는 신의 영역으로 넘겼다. 그렇지만 그는 살아남음으로써 그의 할 일을 다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과연 오스카는 이번에 그에게 영광을 선물할 것인지 더 궁금해졌다.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댓글을 보았는데, 오스카는 이제 그만 그에게 상을 쥐어주고 그의 고통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영화를 보면 그의 연기에, 그것도 거의 대역없이 모든 부분을 연기해 낸 그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내 생각도 그렇다. 수상을 위해 연기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오스카는 이제 그에게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쥐어줘야 한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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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1-17 01: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차별에 대해 끝없이 저항해야합니다. 순치되면 노예의 굴욕이 고통스러우니까요.

살리미 2016-01-17 01:43   좋아요 5 | URL
그 숨소리가 너무 간절해서 소름이 돋았어요. 아무 생각없이 숨쉬고 사는 나를 채찍질하는 느낌처럼요...

서니데이 2016-01-17 01: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 영화리뷰 잘 읽었습니다.
디카프리오 있는 것보다 이 이미지가 더 나은 것 같아요. ^^ 영화에 맞추어 책도 포스터와 같으 표지로 나왔나봐요. ^^

살리미 2016-01-17 01:55   좋아요 4 | URL
디카프리오에겐 미안하지만 저도 이게 더 낫다고 봅니다 ㅎㅎ
디카프리오는 자신의 미모를 너무 학대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해요 ㅎㅎ 의도적인것 같긴 하지만...

Blue 2016-01-17 0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이 영화를 보았는데 곰과 싸우는 장면 이후부터는 끝나지 않는 숨소리를 들으며 제발 디카프리오에게 상을 줘!! 라고 바라며 보게 되더라구요. 오스카와 디카프리오의 관계나 과하다 싶게 표현된 긴 과정들이 오히려 영화에 몰입을 방해하더라구요. 열연은 인정되나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과함...

살리미 2016-01-17 09:53   좋아요 2 | URL
과하죠... 지루할만큼 끝까지 가고요. 끔찍한 장면도 많아서 눈도 찌푸렸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제 그만 상을 주고 디카프리오의 고통을 끝내주라 한 댓글이 너무 이해됐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끝끝내 몰아쉬는 숨이 많은 걸 상징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션을 보면서도 든 생각이었지만 저같음 벌써 삶을 놓아버렸을거예요 ㅎㅎ
그에게 끝내 숨을 쉬게 한 게 무엇이었나, 감독도 그걸 말하고 싶은거구나 싶더라고요.

오거서 2016-01-17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보러 가기로 했어요. 오랜 만에 디카프리오가 거지꼴로 개고생(?)한다니 한 번 봐둬야한다는 기대감이 생겨요~ ^^

살리미 2016-01-17 09:55   좋아요 2 | URL
이 영화는 꼭 극장에서 그 화면과 사운드를 즐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디카프리오는 왠 개고생인지... 그 잘생김을 다 내려놓고 말입니다. 골든 글로브 챙겼지만 오스카상도 좀 줘야해요 ㅋㅋ
그리고 거지꼴을 해도 잘생겼다는 ㅋㅋㅋ

서니데이 2016-01-1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읽으니, 영화가 어려워보이기도 하고, 심각해 보이기도 합니다. 원작소설은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오로라님, 일요일 저녁 편안하게 보내세요.^^

살리미 2016-01-17 19:43   좋아요 3 | URL
영화의 서사는 의외로 단순하답니다. 끝까지 쫓아가서 복수하는 내용이죠. 그 과정을 쫓아가는게 힘들긴 합니다만^^ 저도 원작소설은 어떤지 궁금해요.
서니데이님도 주말 마무리 잘 하세요^^

고양이라디오 2016-01-17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의 리뷰를 보니 영화를 보며 미처 생각치못했던 부분들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전 감독이나 배우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나 기대보단 못했어요. 하지만 영상미나 영화의 사실감은 좋더라고요.

살리미 2016-01-17 21:04   좋아요 1 | URL
고양이라디오님 리뷰도 나중에 꼭 들려주세요^^

고양이라디오 2016-01-17 23:15   좋아요 1 | URL
오로라^^님 벌써 리뷰 올렸습니다ㅎ
좋은 밤 되세요^^

서니데이 2016-01-18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 오늘도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오늘보다 내일이 더 춥다는데, 이러다 우리나라에서 오로라현상 보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살리미 2016-01-18 23:24   좋아요 3 | URL
ㅎㅎ 저는 요즘 일생에 한번 오로라는 봐야지않겠나 싶어서 아이슬란드라도 가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우리나라에서 보게 된다면 너무 영광이지요.
서니데이님~ 오늘 너무 추워요 ㅎㅎ

오거서 2016-01-23 11:27   좋아요 0 | URL
오로라를 본다는 상상만으로도 끌려서 댓글을 남기게되네요 ^^
서니데이 님의 위트에 놀라고 공감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나는 얼른 만화를 사서 읽어보았다.

고레에다 감독이 만드는 영화라면 분명히 내 취향일 것이므로.

그리고 왜 그가 이 만화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이 시리즈 여섯권을 읽으며 난 자연스럽게 요시다 아키미의 팬이 되었고, 감독의 선택이 너무나 이해되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자매들을 영화에 어떻게 담아내었을지, 분명히 실망스럽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아쉽게도 집 근처 영화관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없어서

핑계김에 딸과 서울 나들이를 했다.

메가박스 코엑스점에 가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서점에 들렀다 오는게 오늘의 코스.

 

영화관에는 오전시간이라 그런지 의외로 6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 팬들이 가득있었다. 할머니들이 영화가 시작되기전 소녀들처럼 소곤소곤 거리며 군것질하는 모습에 딸과 나는 웃음이 났다.

 "꼭 일본 영화에 나오는 할머니들 같다. 엄마도 곧 저렇게 보이려나? ㅎㅎ"

 

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원작을 보면서 영화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고 빠지게 될까 고민(?)해 보곤 했는데

역시나 감독은 자매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혀 어색하거나 섭섭하지 않게 이야기를 잘 배열해놓았다.

무엇보다 네 여배우를 한 영화에 출연시킨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는데 배우들이 그 어느 영화에서보다 훨씬 더 빛났다. 화장 안한 맨 얼굴과 얼굴에 패인 자연스런 주름도 너무 너무 너~~~무 예쁘다. 이렇게 배우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니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라면 단역으로라도 줄을 서는 거다.

카마쿠라의 네 자매가 사는 오래된 집도 영화에서 보니 더 매력있었다. 추억을 가득가득 담아서 '많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느낌'의 집! 역시 고레에다는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하는 집과 마을길과 골목풍경들을 예쁘게 담아낼줄 아는 감독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카마쿠라에 가보고 싶어졌다. (여행상품으로 만들어줘요~~)

집과 집 사이로 난 철길, 분홍빛 벚꽃 터널, 바다 전망의 식당, 바다위에서의 불꽃놀이...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풍경이지만 고레에다의 영화 속에서는 문득, 일상이 아름다워진다.

확실히 영화 속에서는 장례식 장면도 많고 죽음의 이미지가 있지만 고레에다가 늘 그렇듯 그 죽음은 소멸의 이미지가 아니라 죽음 이후 살아남은,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이미지다. 철없는 어른들보다 더 성숙해버린 아이들이지만 어느새 삶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어있기에 영화는 슬픔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종일관 밝고 행복한 분위기다.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거지? 나는 주책처럼 엄청 눈물을 쏟았다. 왜...이렇게 행복한데...눈물이 나는거야...)

문득 딸에게 저런 언니들을 만들어 주지 못한게 미안해진다. 마음고생이 많았을 스즈에게 그저 "고마워" 한마디만으로도 용기를 주는 든든한 언니들.  앞으로 우리 딸의 인생에도 혈육이 아니더라도 저렇게 든든하고  멋진 언니들이 생겼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딸은 어떻게 영화를 보았을까 걱정했는데 (극장안에 젊은 관객은 거의 없었으므로 ㅠㅠ)

'이렇게 좋은 영화를 왜 많이 상영을 안하는거야?' 한다. 자기는 이런 따뜻한 영화가 좋다고. 배우들도 너무너무 예쁘고.

그래, 저런 아름다움은 외면만을 가꾼 아름다움은 아닌거 같지? 자기 삶을 사랑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아름다움인 것 같아. 딸과 함께 이런 얘기 하면서 걷는 시간도 소중했다.

 

 

 나오는 길에 너무 예쁜 어린왕자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었다.

 

 

 

영화관에서 우리 앞에 앉았던 할머니들은 오늘 <어린왕자>까지 보고 가신다던데 ㅎㅎ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하는 딸에게 서점에서 자서 어린왕자 컬러링북을 하나 사주기로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딸이 정성껏 색칠 해 놓은 그림을 보고 눈물이 또 왈칵...

자기는 다시 태어나면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하루종일 그림만 그리며 살고 싶다는 말에...

그런데도 꿈은 접어두고 이제껏 공부한다고 너무 애쓴 딸을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짠해 진다.

 

저렇게 명암을 넣어가며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덧칠해가며 공을 들여 색칠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대견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예쁘기도 하다.  

해야 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하며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PS. 이 글 작성하려고 서재에 들어와보니 2015 서재의 달인 스티커가 붙어 있네요.

     연말을 맞아 너무나도 뜻깊은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2015년은 제가  알라딘 서재에서 정말 즐겁게 보낸 한 해로 영원히 기억될 것 같아요.

     부족한 저의 글 읽어주시고 칭찬해 주시고 힘을 주신 이웃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더욱 열심히 책 읽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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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2-23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렇게 줏대가 없으니...항복...두손들었어요 ㅎㅎ.
이 영화의 원작을 읽으며 분명 미묘하고 섬세한 표정을 담아내기 힘들꺼라 생각하고 영화는 보지 않을꺼야하고 생각 했는데..오로라님 글 읽으니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느껴져요. 제가 아직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을 잘모르는 탓이겠죠? 이참에 원작을 찾아 읽고 영화도 봐야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딸을 생각하시는 오로라님 마음이 뭉클..마치 `고양이의 보은`에 등장하는 엄마와 딸의 모습같아요 ㅎ
그리고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살리미 2015-12-23 21:26   좋아요 1 | URL
제가 워낙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해서 애정 가득한 눈으로 봤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사실 저도 첨엔 저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할지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영화는 전혀 원작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영화 나름의 완성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원작에서 보았던 그 풍경들이 눈 앞에 막 생생하게 살아나서 펼쳐지니까 슬픈 장면도 아닌데도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답니다.
서재의 달인은 해피북님처럼 멋진 이웃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죠 ㅎㅎ. 저도 감사드립니다^^

달팽이개미 2015-12-2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짝짝짝!!!! ㅎㅎㅎ 제가 너무나 사랑해마지않는 정말이지 넘넘 기다렸던 영화를 보고 오신 특별한 오늘이네요~~ㅋㅋ마침 오늘 4권을 읽은터라 그대로 감정이입이 되어서는 마치 제가 영화를 보고온냥 행복하게 리뷰를 읽었답니다~~~ㅎㅎ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더더더더 듣고 싶은데, 리뷰가 마지막 문장을 향해가는 것도 아쉬웠어요~ㅋ-ㅋ 많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느낌의 집!!아~~제가 1권에서 꼽았던 명문장이었는데, 이렇게 콕 찝어 적어주시다니~~맞아요! 이 만화는 이 문장으로부터 모든게 술술 풀려나가는 느낌이에요 ㅎㅎ카마쿠라 여행상품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게됐다는요 ㅋㅋ 역시 고레에다 감독님, 실망시키지 않으셨군요~~~특별할 것 없는 풍경을 문득 아름다워지는 일상으로 만드는 마술..오로라님이 쏟으셨던 눈물의 의미를 알것만 같아요~~^^ 민낯의 예쁜 배우들~~제가 좋아하는 아야세 하루카의 모습이 어땠을지도 넘 궁금해요~~ㅋㅋ 모녀의 아름다운 데이트~~~좋은 날 행복한 리뷰 적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ㅋ-ㅋ

살리미 2015-12-23 21:33   좋아요 1 | URL
달팽이개미님도 이 영화 기다리고 계셨군요^^ 영화 얘기를 마구 마구 더 하고 싶었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참느라 애썼답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꾸준히 보다보니 이 영화에서도 감독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었고요, 그런 점이 더욱 매력적인 영화에요. 사람과 가족과 일상을 너무 아름답게 그릴 줄 아는 감독이에요. 고레에다 장르를 개척하신듯^^
사실 개봉전 예고편을 보면서는 아야세 하루카가 원작과는 달리 긴 머리 스타일로 나와서 어떤 느낌일런지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왠욜~ 단연 이 영화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이제껏 보아온 그 어떤 아야세 하루카보다 훨씬 아름답고 단아하고 강단있는 첫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들 몸매도 얼마나 이쁜지... 또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ㅎㅎ

달팽이개미 2015-12-23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레에다 장르 개척에 엄지척요!!ㅎㅎ 그 어떤 아야세 하루카보다 아름다웠군요...ㅎㅎ매력적인 이 영화를 언제 보게 될런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문득 보며 행복해할 영화 한편을 주머니 속에 간직한 느낌이에요^^*

살리미 2015-12-23 21:52   좋아요 1 | URL
네. 일상이라는 게 이렇게 빛나는 건지,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나 반전이 없는데도 이렇게 멋진 영화가 될 수 있는건지... 우리 같이 찬양합시다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12-23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안 보려고 했는데.... 어떻해요 ㅎㅎㅎ 보고 싶어져버렸잖아요~~ ㅎㅎㅎㅎㅎㅎ

살리미 2015-12-23 21:56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어제 굳은 의지의 댓글을 읽긴 했는데.... ㅎㅎㅎㅎㅎㅎ
여배우들의 매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 ㅋㅋㅋ
사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중 좀 실망스러웠던 작품중에 <자학의 시>란 작품이 있어요. 그것도 만화는 너무너무 좋은데 왠지 그 만화 캐릭터를 그대로 영화화 한 걸 보면 오그라들면서 좀 참기 힘들어지더라고요. 그건 워낙 캐릭터가 쎄서 그렇기도 하지만 ㅋ
암튼 제가 보기엔 전혀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연기가 배우탓인지 감독의 연출탓인지 아주 훌륭하더라고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이길보라 감독, 이상국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시종일관 밝고 사랑스러운 가족! 장애가 있으니 분명 뭔가 슬픈 사연이 있을 거란 내 선입견을 부숴버리고, 이 부부는 정말 행복해보이며 그들과 세상의 소통을 담당한 딸과 아들도 `부모가 장애가 있으니 넌 이렇게 살아야 해` 하는 세상의 기대에 묻혀버리지 않고 자신의 꿈을 꾸며 당당하게 살아간다.
물론 그들이 가꾼 행복 속에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의 힘든 순간도 있었고 매순간 부모를 대변해야만 해서 너무 일찍 철들어야만 했던 사정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 가족의 매력에 푹 빠질 정도로 그들은 사랑하고 사랑의 힘으로 삶을 반짝이게 만든다. 그들이 세상과 말하는 방법 `수어`로는 박수소리를 손을 반짝반짝 하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그 반짝임을 보는 순간 나도 또 한번 용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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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2-09 2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의 기대라는 것이 결국은 우리가 가진 편견일 수 있겠네요. 오로라님의 글을 읽으면서 결말이 좋은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로라님,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

살리미 2015-12-10 07:56   좋아요 0 | URL
네. 행복이라는 것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였어요. 제 댓글이 너무 늦어버렸네요^^ 서니데이님, 좋은 하루 시작하세요^^

해피북 2015-12-10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서니데이님 글에 공감합니다. ˝ 이렇게 사는게 행복이지 `라는 틀을 만들어 틀에 기대어 바라보며 판단하는 일은 늘 생각해봐야할 부분 같아요 ㅎ 저도 이영화 리스트에 담아봅니다^~^

살리미 2015-12-10 21:19   좋아요 0 | URL
요즘 본 두 영화가 우연히 비슷했어요. 이건 다큐고 미라클 벨리에는 실화에 바탕을 둔 극영화지만요. 둘 다 장애를 가진 부모와 장애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가족에 대해 가족 구성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점이 밝고 건강하다는 것이었고요. 눈물짜는게 아니라 시종일관 웃음이 나요^^

cyrus 2015-12-10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이 장애가 있으니 부모는 이렇게 살아야 해`, 이런 편견이 장애 자녀를 둔 부모를 힘들게 하는 말입니다.

살리미 2015-12-10 21:26   좋아요 0 | URL
저 영화에서는 감독이 청각장애를 가진 자기 부모의 삶을 찍는거에요. 어려서부터 청각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교육을 받은 감독은 ˝부끄러움의 의미보다 부끄러워하면 안된다는 것을 먼저 배웠다˝고 하죠. 부모와 세상의 소통을 담당하는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찍 철들고, 넌 부모가 장애인이니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시선 때문에 무엇이든 열심히, 악착같이 했다고 해요. 그러다 문득 자기 길을 가고 싶다고 학교도 그만두고 인도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세상의 편견에 마음 상한 적이 왜 없었겠어요. 그걸 이겨내고 더욱 단단해진 가족들에 참 보기 좋았어요.
 

어제 뉴스룸을 보다가 손석희가 이 시를 읽는데, 눈물이 많은 나는 또 울컥하였다.

시와 친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외국시인의 감성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나여서 브레히트 시집은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브레히트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영화 <타인의 삶>이다.

1984년 동독. 조지 오웰의 소설처럼 당시 동독에서는 비밀경찰과 감청요원들이 30만명이 넘을 정도로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삶이 감시대상이었다. 영화는 그런 사회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작가 드라이만과 비밀경찰 비즐러의 이야기다.
비즐러가 드라이만의 삶을 감시하다가 결국 그의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에 동화되어 버리는데, 그때 결정적 역할을 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브레히트의 시다. 드라이만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슬쩍 가지고 나온 시집을 자기집 소파에 누워 읽어보는 장면과, 드라이만의 선생님이 목을 매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슬픔에 찬 드라이만이 선생님이 선물했던 악보인 <아름다운 영혼의 소나타>를 연주할 때 그걸 도청하던 비즐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봤을때 이미 영화의 결말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예술을 사랑한다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면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이념은 신봉할 수가 없다. 레닌도 그랬다지 않나. 베토벤의 `열정`을 계속 듣는다면 혁명을 완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드라이만도 말한다. ˝이 곡을 진심으로 듣고도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비즐러는 감시를 소홀히 하고 결정적으로 드라이만에게 도움을 준 사건으로 한직인 우체국으로 쫓겨나 평생 캄캄한 방에서 편지봉투 뜯는 일이나 하게 되는데, 그러는 사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은 통일을 맞이한다. 그리고 정말 멋진 엔딩씬이 기억난다. 맑스 서점에서 자신을 위한 책을 한권 사는 비즐러!

오늘 아침 첫눈이 펑펑 내리는 걸 보면서 어젯밤 들은 시가 떠올랐고, 브레히트 덕분에 멋진 영화 한편이 떠올라서 행복했다^^


**********************************************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 B. 브레히트 -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 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왕들이 손수 바윗덩어리들을 끌고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된 바빌론
그 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일으켜 세웠던가?
건축 노동자들은 황금빛 찬란한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에는
개선문이 많기도 하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개선했던가?
끊임없이 노래되는 비잔틴에는
시민들을 위한 궁전들만 있었던가?
전설적인 아틀란티스에서도
바다가 그 땅을 삼켜 버린 날 밤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들이 그들의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데려가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왕은 자신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울었다. 그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말고도
또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하나씩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십 년마다 한 명씩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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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12-03 14: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타인의 삶>은 두고두고 간직하는, 그런 영화이지요.^^
첫눈다운 눈이 펑펑 내리신 날~ 눈같이 하얗고 행복한 날 되세요~~

살리미 2015-12-03 14:39   좋아요 2 | URL
눈 내린걸 철없이 좋아하기만 하는 것도 사실은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이 길에 어딘가에 나서야 하는 사람들, 눈 치울 걱정부터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싶어서요.
그치만 오늘 아침엔 너무 눈이 예쁘게 펑펑~ 내렸고, 시적 감성이 없는 저로서는 그 눈을 보면서 어젯밤 들었던 시가 좀 뜬금없이 떠올랐고.. 오후에 시간이 나면 영화나 다시 한번 볼까.... 그러고 있답니다^^
철없다 그러더라도 눈을 소복이 담은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기분이 덩실덩실 해지는건 참을 수가 없네요~~
저녁에 이렇게 내렸더라면 바로 소주 한잔 하러 나섰을거에요 ㅎㅎ

cyrus 2015-12-03 2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술을 사랑한다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오로라님의 말씀을 다르게 생각합니다. 과거 권력자들은 예술을 사랑했습니다. 예술가들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하지만, 예술을 대한 사랑이 너무 지나치면 정치권력과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데 이용했어요. 히틀러는 바그너의 음악에서 게르만 민족의 역동성을 발견했고, 스탈린은 자신을 우상화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독려했고, 그렇지 않은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도록 활동을 제한시켰습니다. 예술을 자신의 권력 수단으로 이용한 권력자들은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민족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성향은 개인의 이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로라님의 말씀이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예외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살리미 2015-12-03 20:16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예술에 대한 사랑이 광기로 변해버린 경우도 있네요. 어떠한 사랑이든 그게 집착이 되면 본질이 흐려지겠죠. 개별적인 존재의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 예술이라면 이미 예술이 아닌 권력이고요. 저 영화를 떠올려보면서 차갑고 냉철했던 비즐러에게도 시를 읽고 음악을 들으며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 감성이 있었기에 행동의 변화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거였어요. 동독에서 그런 예술가들을 권력을 다지는 도구로 쓰고 싶어했던 것과는 달리 진짜 예술은 결국은 전체주의를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라고요.

달걀부인 2015-12-03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약간의 시차가 있었지만 좀전에 팟방에서 뉴스룸을 들었어요. 집안일하면서 들은거라서..이게 시라는 건 놓쳤구요. 듣고나서 저도 많은 생각을 했더랬어요. 활자로 보니..좋네요. 고맙습니다.

살리미 2015-12-03 20:19   좋아요 0 | URL
늘 느끼는 거지만 손석희의 뉴스브리핑은 참 좋아요~^^ 감성을 최대한 걷어내야 하는 뉴스라는 매체에서 사람들 마음을 톡톡 건드려주는 느낌이랄까요 ㅎㅎ

기억의집 2015-12-03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타인의 삶 디비디로 있는데, 플레이어가 없어 몇년 동안 썩히고 있어요. ㅠㅠ

살리미 2015-12-03 20:20   좋아요 0 | URL
아... 안타깝네요 ㅠㅠ 근처 도서관에 가져가셔서 보시면 안될까요? 미디어실이나 전자열람실 같은데서요.

기억의집 2015-12-03 20:40   좋아요 0 | URL
도서관이 멀어서 안 가게 되더라구요. 버스 타고 가자니 버스요금이 아깝고.. ㅎ

고양이라디오 2015-12-03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삶> 참 인상깊은 영화였어요ㅎ
좋은 시 감사합니다~^^

살리미 2015-12-03 20:24   좋아요 1 | URL
고양이라디오님도 보셨군요~ 참 두고두고 생각나는 영화에요. 우리랑 비슷한 상황이었어서 그런지....

고양이라디오 2015-12-03 21:02   좋아요 0 | URL
오래전에 봐서 우리랑 비슷한 상황이란 생각을 못했었는데... 정말 그렇군요ㅠㅠ

살리미 2015-12-03 21:10   좋아요 1 | URL
저는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생활상을 잘 모르니까 그 시대가 배경인 영화들이 참 좋더라고요. 독일의 경우는 우리랑 같은 분단상황에서 통일을 이루었기때문에 특히 동독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보면서 같은점과 다른 점들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통일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통일이 되었는데도 엄마가 충격을 받을까봐 알리지 못했던 <굿바이 레닌>이란 영화도 정말 재밌었어요.

고양이라디오 2015-12-03 22:20   좋아요 0 | URL
<굿바이 레닌> 먼가 제목만으로도 재밌을 것 같은 영화네요ㅎ
보고싶은 영화 목록에 올려둘께요ㅎ~ㅎ

2015-12-03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3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5-12-04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술도 휴머니즘이라야 예술이고 권력의 나팔수가 되면 타락하죠.

살리미 2015-12-04 08:3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예술이라는 것이 목적성을 가지게 되면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되니까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5-12-04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이 영화 아름다워서 참 먹먹했던 기억이... ㅠㅠ 피아노 한 곡 제대로 못 치는 제 자신이 참 초라하게 느껴지더라구요. 막상 브레히트는 흘려들었는데 오로라님 덕분에 좋은 시 읽고 가요. 왜 대단하다는 지 알 것 같네요.

살리미 2015-12-04 10:58   좋아요 0 | URL
저도 피아노 한곡 제대로 못쳐서....ㅠㅠ 독일 영화 특유의 약간 투박하면서도 진중한 아름다움이 느껴졌었죠~ 영화에서도 브레히트의 시가 낭송되긴 하는데 이 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래된 기억이라 잘은 모르겠는데.... 그저 브레히트라고 하니 그 시집이 생각났어요^^ 이참에 한번 브레히트 읽어볼까?..... 또 생각만 하고 있고요....
그의 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라는 말이 요즘 너무 공감이 가기도 하니까요.

해피북 2015-12-05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오로라님 덕분에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되 정말 좋아요^~^ <타인에 삶>이라는 영화는 다행스럽게도 네이버에서 볼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브레히트 시집도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아마도 손석희 아나운서의 음성으로 듣게되면 더 여운이남을거 같아요 요것도 티비팟으로 찾아봐야겠어요 ㅎㅎ

살리미 2015-12-05 14:41   좋아요 0 | URL
다행이네요. 이 영화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특히 엔딩씬이 너무 맘에 들었어요!!
그리고 손석희의 뉴스브리핑도 꼭 찾아보세요^^ 역시 아나운서의 발음이 최고예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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