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나는 얼른 만화를 사서 읽어보았다.

고레에다 감독이 만드는 영화라면 분명히 내 취향일 것이므로.

그리고 왜 그가 이 만화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이 시리즈 여섯권을 읽으며 난 자연스럽게 요시다 아키미의 팬이 되었고, 감독의 선택이 너무나 이해되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자매들을 영화에 어떻게 담아내었을지, 분명히 실망스럽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아쉽게도 집 근처 영화관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없어서

핑계김에 딸과 서울 나들이를 했다.

메가박스 코엑스점에 가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서점에 들렀다 오는게 오늘의 코스.

 

영화관에는 오전시간이라 그런지 의외로 6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 팬들이 가득있었다. 할머니들이 영화가 시작되기전 소녀들처럼 소곤소곤 거리며 군것질하는 모습에 딸과 나는 웃음이 났다.

 "꼭 일본 영화에 나오는 할머니들 같다. 엄마도 곧 저렇게 보이려나? ㅎㅎ"

 

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원작을 보면서 영화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고 빠지게 될까 고민(?)해 보곤 했는데

역시나 감독은 자매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혀 어색하거나 섭섭하지 않게 이야기를 잘 배열해놓았다.

무엇보다 네 여배우를 한 영화에 출연시킨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는데 배우들이 그 어느 영화에서보다 훨씬 더 빛났다. 화장 안한 맨 얼굴과 얼굴에 패인 자연스런 주름도 너무 너무 너~~~무 예쁘다. 이렇게 배우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니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라면 단역으로라도 줄을 서는 거다.

카마쿠라의 네 자매가 사는 오래된 집도 영화에서 보니 더 매력있었다. 추억을 가득가득 담아서 '많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느낌'의 집! 역시 고레에다는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하는 집과 마을길과 골목풍경들을 예쁘게 담아낼줄 아는 감독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카마쿠라에 가보고 싶어졌다. (여행상품으로 만들어줘요~~)

집과 집 사이로 난 철길, 분홍빛 벚꽃 터널, 바다 전망의 식당, 바다위에서의 불꽃놀이...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풍경이지만 고레에다의 영화 속에서는 문득, 일상이 아름다워진다.

확실히 영화 속에서는 장례식 장면도 많고 죽음의 이미지가 있지만 고레에다가 늘 그렇듯 그 죽음은 소멸의 이미지가 아니라 죽음 이후 살아남은,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이미지다. 철없는 어른들보다 더 성숙해버린 아이들이지만 어느새 삶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어있기에 영화는 슬픔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종일관 밝고 행복한 분위기다.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거지? 나는 주책처럼 엄청 눈물을 쏟았다. 왜...이렇게 행복한데...눈물이 나는거야...)

문득 딸에게 저런 언니들을 만들어 주지 못한게 미안해진다. 마음고생이 많았을 스즈에게 그저 "고마워" 한마디만으로도 용기를 주는 든든한 언니들.  앞으로 우리 딸의 인생에도 혈육이 아니더라도 저렇게 든든하고  멋진 언니들이 생겼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딸은 어떻게 영화를 보았을까 걱정했는데 (극장안에 젊은 관객은 거의 없었으므로 ㅠㅠ)

'이렇게 좋은 영화를 왜 많이 상영을 안하는거야?' 한다. 자기는 이런 따뜻한 영화가 좋다고. 배우들도 너무너무 예쁘고.

그래, 저런 아름다움은 외면만을 가꾼 아름다움은 아닌거 같지? 자기 삶을 사랑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아름다움인 것 같아. 딸과 함께 이런 얘기 하면서 걷는 시간도 소중했다.

 

 

 나오는 길에 너무 예쁜 어린왕자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었다.

 

 

 

영화관에서 우리 앞에 앉았던 할머니들은 오늘 <어린왕자>까지 보고 가신다던데 ㅎㅎ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하는 딸에게 서점에서 자서 어린왕자 컬러링북을 하나 사주기로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딸이 정성껏 색칠 해 놓은 그림을 보고 눈물이 또 왈칵...

자기는 다시 태어나면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하루종일 그림만 그리며 살고 싶다는 말에...

그런데도 꿈은 접어두고 이제껏 공부한다고 너무 애쓴 딸을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짠해 진다.

 

저렇게 명암을 넣어가며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덧칠해가며 공을 들여 색칠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대견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예쁘기도 하다.  

해야 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하며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PS. 이 글 작성하려고 서재에 들어와보니 2015 서재의 달인 스티커가 붙어 있네요.

     연말을 맞아 너무나도 뜻깊은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2015년은 제가  알라딘 서재에서 정말 즐겁게 보낸 한 해로 영원히 기억될 것 같아요.

     부족한 저의 글 읽어주시고 칭찬해 주시고 힘을 주신 이웃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더욱 열심히 책 읽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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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2-23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렇게 줏대가 없으니...항복...두손들었어요 ㅎㅎ.
이 영화의 원작을 읽으며 분명 미묘하고 섬세한 표정을 담아내기 힘들꺼라 생각하고 영화는 보지 않을꺼야하고 생각 했는데..오로라님 글 읽으니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느껴져요. 제가 아직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을 잘모르는 탓이겠죠? 이참에 원작을 찾아 읽고 영화도 봐야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딸을 생각하시는 오로라님 마음이 뭉클..마치 `고양이의 보은`에 등장하는 엄마와 딸의 모습같아요 ㅎ
그리고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살리미 2015-12-23 21:26   좋아요 1 | URL
제가 워낙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해서 애정 가득한 눈으로 봤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사실 저도 첨엔 저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할지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영화는 전혀 원작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영화 나름의 완성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원작에서 보았던 그 풍경들이 눈 앞에 막 생생하게 살아나서 펼쳐지니까 슬픈 장면도 아닌데도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답니다.
서재의 달인은 해피북님처럼 멋진 이웃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죠 ㅎㅎ. 저도 감사드립니다^^

달팽이개미 2015-12-2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짝짝짝!!!! ㅎㅎㅎ 제가 너무나 사랑해마지않는 정말이지 넘넘 기다렸던 영화를 보고 오신 특별한 오늘이네요~~ㅋㅋ마침 오늘 4권을 읽은터라 그대로 감정이입이 되어서는 마치 제가 영화를 보고온냥 행복하게 리뷰를 읽었답니다~~~ㅎㅎ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더더더더 듣고 싶은데, 리뷰가 마지막 문장을 향해가는 것도 아쉬웠어요~ㅋ-ㅋ 많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느낌의 집!!아~~제가 1권에서 꼽았던 명문장이었는데, 이렇게 콕 찝어 적어주시다니~~맞아요! 이 만화는 이 문장으로부터 모든게 술술 풀려나가는 느낌이에요 ㅎㅎ카마쿠라 여행상품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게됐다는요 ㅋㅋ 역시 고레에다 감독님, 실망시키지 않으셨군요~~~특별할 것 없는 풍경을 문득 아름다워지는 일상으로 만드는 마술..오로라님이 쏟으셨던 눈물의 의미를 알것만 같아요~~^^ 민낯의 예쁜 배우들~~제가 좋아하는 아야세 하루카의 모습이 어땠을지도 넘 궁금해요~~ㅋㅋ 모녀의 아름다운 데이트~~~좋은 날 행복한 리뷰 적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ㅋ-ㅋ

살리미 2015-12-23 21:33   좋아요 1 | URL
달팽이개미님도 이 영화 기다리고 계셨군요^^ 영화 얘기를 마구 마구 더 하고 싶었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참느라 애썼답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꾸준히 보다보니 이 영화에서도 감독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었고요, 그런 점이 더욱 매력적인 영화에요. 사람과 가족과 일상을 너무 아름답게 그릴 줄 아는 감독이에요. 고레에다 장르를 개척하신듯^^
사실 개봉전 예고편을 보면서는 아야세 하루카가 원작과는 달리 긴 머리 스타일로 나와서 어떤 느낌일런지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왠욜~ 단연 이 영화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이제껏 보아온 그 어떤 아야세 하루카보다 훨씬 아름답고 단아하고 강단있는 첫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들 몸매도 얼마나 이쁜지... 또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ㅎㅎ

달팽이개미 2015-12-23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레에다 장르 개척에 엄지척요!!ㅎㅎ 그 어떤 아야세 하루카보다 아름다웠군요...ㅎㅎ매력적인 이 영화를 언제 보게 될런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문득 보며 행복해할 영화 한편을 주머니 속에 간직한 느낌이에요^^*

살리미 2015-12-23 21:52   좋아요 1 | URL
네. 일상이라는 게 이렇게 빛나는 건지,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나 반전이 없는데도 이렇게 멋진 영화가 될 수 있는건지... 우리 같이 찬양합시다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12-23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안 보려고 했는데.... 어떻해요 ㅎㅎㅎ 보고 싶어져버렸잖아요~~ ㅎㅎㅎㅎㅎㅎ

살리미 2015-12-23 21:56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어제 굳은 의지의 댓글을 읽긴 했는데.... ㅎㅎㅎㅎㅎㅎ
여배우들의 매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 ㅋㅋㅋ
사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중 좀 실망스러웠던 작품중에 <자학의 시>란 작품이 있어요. 그것도 만화는 너무너무 좋은데 왠지 그 만화 캐릭터를 그대로 영화화 한 걸 보면 오그라들면서 좀 참기 힘들어지더라고요. 그건 워낙 캐릭터가 쎄서 그렇기도 하지만 ㅋ
암튼 제가 보기엔 전혀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연기가 배우탓인지 감독의 연출탓인지 아주 훌륭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