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겠지만 이 책의 내용이 2023년 현재 한국의 상황과 너무 유사한 기시감 ( déjà vu)이 들어 소름이 돋았습니다.

글 제목에도 언급했지만 이 책은 주로 1960년대 당시 한국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으며, 국문학을 전공하신 연구자가 쓴 또 한권의 현대사 연구서입니다.

근현대사 역사분야에서 역사학 전공하신 분들 뿐만 아니라 한문학 또는 국문학 연구하시분들의 양서가 많은데, 아마 연구 텍스트가 불가피하게 걉쳐지는 것도 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기에 앞서 문학연구자께서 집필하신 역사서 몇권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한양대 국문학과 정민 교수님의 조선 천주교 연구서인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김영사,2022)‘입니다. 한문학자이자 정약용 전문가이신데, 18세기 조선에 어떻게 천주교가 들어오게 되었는지 살핀 책입니다.

두번째는 한문학자이신 강명관 작가가 쓰신 ‘노비와 쇠고기( 푸른역사,2023)’ 입니다. 조선에서 최고 관립교육기관인 성균관이 한양에 어떻게 쇠고기를 도축하는 일을 맡아하며 예산을 충당했는지 고찰한 매우 낯선 주제의 책입니다. 성리학이 지배하던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성균관의 노비인 반인(泮人)이 성균관과 국가로부터 얼마나 착취를 당했는지, 한편 조선이라는 유교국가의 국가재정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쇠고기를 둘러싼 조선의 사회경제사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려대 국문학과 권보드래 교수의 ‘3월1일의 밤(돌베개,2019)‘ 입니다. 정치사적 맥락이 아니라 각 지역별 3.1운동에 참가한 일반 조선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독특한 연구서로 매우 인상깊었던 책입니다. 3.1운동 백주년을 기념해서 2019년 3월1일 출간된 책이기도 합니다.

이상으로 국문학 연구자가 집필하신 주요 역사서 소개는 간단히 마칩니다.

이 책이 놀라운 건 1960년대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책을 읽는데 너무도 뚜렷하게 2023년 5월 현재의 상황이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7장 한일협정반대운동과 관련한 부분을 그대로 전제합니다.

항일회담에 쏠린 전 국민적인 공분(公憤)은 그것이 민족적인 자긍심을 얼마되지 않은 달러와 교환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군사정부가 자신의 실정(失政)으로 고갈된 국고를 메우기 위해 일본의 자본을 서둘러 받으려는 것, 그 대가로 식민 통치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나 그에 합당한 배상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 골자였다 (p293)

실제로, 당시 미국이 한일회담을 무리하게 강행한 것은 자신의 약할을 일본에 넘기려는 동아시아 구상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p303)

위의 글은 1964년 박정희 군사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시작한 한일외교정상화 합의에 대한 당시 비판을 서술한 일부입니다.

이 글을 일고 2023년 윤석열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진행한 ‘굴욕 외교’와 너무나 유사해 소름이 끼쳤습니다. 심지어 이 무도한 검찰정부는 일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마저 인정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한일관계 정상화에 매달리는데, 미국이 일본을 자신들의 꼭두각시( puppet)로 삼아 동아시아 안보를 리드하게 하고 한일간의 식민지 문제를 불문에 붙이는 식으로 관계 정상화를 강요했다는 점에서 2023년은 1964년과 판박이처럼 닮았습니다.

1964년은 가진 것이 없어 일본에 손을 벌린 걸로 변명이라도 했지만 2023년 현재 산업적으로 반도체, 군수 등 분야에서 일본보다 전략적 경쟁력이 강한 한국이 왜 일본에 굴욕외교를 감행했는지 납득이 안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관이 문제라는 생각말고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이 일을 추진한 한국 정부가 무력을 직접 사용하는 군사정부에서 ‘압수수색’을 전가의 보도록 사용하는 검찰정부로 바뀐 것으로 수단이 바뀐 것이지 독재라는 성격이 바뀐 건 아닙니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 외에 몇가지 이 책에서 짚은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합니다.

6장 라이샤워와 미국의 지역연구는 미국의 유명한 일본사 연구자이자 동어시아정책통이었던 에드윈 라이샤워( Edwin O. Reischauer)에 대한 글입니다. 미국 동아시아학 초기의 권위자로서 지금도 그의 책이 일종의 경전처럼 읽히지만 그는 한국과 일본을 중국문명의 ‘변형’으로 보면서 일본은 서구문화에 잘 적응한 긍정적 중국문명이고 중국은 이에 실패한 부정적 중국문명이며 한국은 ‘타락한 관료국가’로서 ‘슬픈 변이형’ (p254)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평가는 식민사학자였던 서울대 이병도(李丙燾)교수와의 감수로 집필되어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라이샤워의 영향력은 그가 중국 한국 일본 삼국에 대해 집필한 두권의 책이 한국의 동양사학계에서 한 때 기본 텍스트로 쓰여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9년 한국에서 번역출판된 ‘동양문화사(상/하) ( 을유문화사,1989)’ 가 그 책이고 제가 아는 한 조너던 스펜스의 새 책이 출판되기 전까지 이 책은 동양사를 전공하려면 반드시 읽어야하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라이샤워가 중국사 전문의 페어뱅크스와 집필한 것으로 원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East Asia: the Great Tradition ( Hougthton Mifflin,1960)

East Asia : the Great Transformation (Houghton Mifflin,1965)

마지막으로 작가 최인훈(崔仁勳,1936-2018)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인이 되신 평론가 김현, 김윤식으로부터 전후최대의 작가라고 평가를 받았던 분으로 저 개인적으로도 고등학교 재학시 국어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스무살 어린 나이에 읽고 또 읽었던 ‘ 광장( 문학과지성사, 초판 1960)’의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길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최인훈을 다시 읽는 건 어쩌면 문학을 통해 1960년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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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75년 발행된 책이고, 약 20여년 전 미국에서 중고로 구입한 책입니다.

한국에서 흔히 배우기를 ‘포츠담 회담’으로 한국의 해방이후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배웠고, 저 역시 미소영 3 대 강대국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책과 달리 부록으로 들어있는 포츠담 선언의 원문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이 책을 보고 확인한 건, 포츠담 선언이 2 가지라는 점이고 그 영문명칭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를 촉구하는 선언은 Potsdam Proclamation 입니다.

그리고 독일의 분할과 전후배상(reparation)문제를 명시하고 폴란드의 서쪽 국경이 어디인가를 정한 선언은 Potsdam Declaration 입니다.

이 두건의 외교문서는 서명한 국가도 다릅니다. 첫번째 Proclamation 은 미국 소련 그리고 중화민국이 서명했고, 두번째 Declaration 은 미국 소련 영국이 서명했습니다.

그래서 왜 두 ’선언‘의 영문명이 다른지 궁금해져 찿아 봤습니다.

먼저 Proclamation. 롱맨사전 ( The Longman Dictionary)에 따르면, 아래의 의미입니다.

an official public statement about something that is important, or when someone makes such a statement

즉 중요한 어떤 사실에 대한 공식적으로 발표된 글이라는 뜻으로 포고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맥락이면 , 연합국측은 일본에 전쟁에 끝내지 않는다면 일본제국을 없애버리겠다는 ‘경고’를 이 포고문을 통해 통고하고 전쟁능력울 말살해 버리겠다고 합니다.

일본제국에 대한 내용인데도 조선과 만주 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일본의 본토 4개섬이 일본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라고 적시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조항으로 간접적으로 3대 강대국이 조선의 해방을 약속했다고 ‘해석’할 여지는 있습니다.

다음 Declaration 은 어떤 의미인지 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롱만사전에 따르면 뜻은 아래와 같습니다.

an important official statement about a particular situation or plan, or the act of making this statement

즉 이 내용은 중요한 상황이나 ‘계획’, ‘실행’에 대한 공식문서입니다. 즉 3대 열강이 제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나찌 독일에게서 어떤 방식으로 전쟁배상금을 받아낼 것이며, 어떻게 나찌 독일을 비무장화시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계획’입니다.

소련의 스탈린은 포츠담회담( Potsdam Conference)에서 소련이 유럽 동부전선에 참전하여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를 거론하면서 패전국 독일로부터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대해 충분한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관철시킵니다.

미국과 소련은 전쟁배상계획을 논의하면서 그 방법의 일환으로 독일을 분할(devision)합니다. 독일의 동쪽은 소련이 그리고 서쪽은 연합군 일원인 영국과 미국 등이 분할해서 기본적으로 각 점령지역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을 배상받기 위해 독일의 자산을 반출하거나 자연자원을 반출합니다.

흔히 알고있던 것과 다르게 독일의 분할은 결국 전쟁에 참전한 연합국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지 이데올로기의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전황이나 전투 자체 혹은 병기 등에 치증하는 경향이 있지만 전쟁을 하기 전과 전쟁을 하는 와중에 그리고 전후에 얼마나 치열한 외교교섭이 있는지 드러나지 않은 이면을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결국에는 돈을 위해 그리고 부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으면서 전쟁의 ‘경제적 측면’을 설명하는 책을 찿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전쟁의 배상문제는 제1차세계대전이나 제2차세계대전이나 모두 대단한 영향력과 후과를 남기는 사안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에 대해 승전국들이 과도한 배상을 요구했고, 전쟁배상금을 갚기 위해 결국 화폐를 무제한으로 발행해 통화증발이 일어난 독일에서 결국 나찌를 중심으로 하는 전체주의 정치세력이 나타납니다.

즉 제1차세계대전의 전쟁배상 문제로 인해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독일에 대한 전후배상문제는 이 ‘포츠담 선언’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어 의문이 어느정도 풀렸지만, 일본은 포츠담 회담 당시 아직 항복 전이어서 일본의 항복 조건에 대해서는 별도의 고찰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 문제는 한일국교정상화와 관련된 한국에 대한 일본의 피해배상문제 ( 물론 한국이 제2차세계대전의 승전국이 아니라는 문제는 있습니다)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무시’외교와도 관련이 있어 역사가 아닌 현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 이해의 첫번째가 일본이 연합국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무조건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을 했는지, 일본이 승전숙들에게 어떻게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reparation)을 했는지 보는 것입니다. 독일과 이태리 그리고 일본은 제2차세계대전의 악의축( Axis of Evil) 국가로서 모두 이 전쟁의 패전국입니다. 따라서 독일에 대한 배상조건과 일본의 배상조건을 비교하고 실제 얼마나 배상이 집행되었나를 살피고,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지, 일본이 왜 한국에 전쟁피해 ’배상‘을 꺼리는 지를 살피면 됩니다.

포츠담 회담은 제2차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위한 마지막 회담이기는 하지만, 그 이전의 테헤란 회담(1943)과 얄타회담(1945)을 모두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회담에 대한 책은 추후 기회가 되면 정리할 예정입니다.

위의 세 회담에 대한 연구서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전쟁사나 우크라이나 등을 전문으로 연구하시는 분들의 연구서입니다.

Potsdam, Michael Neiberg (Basic books,2015)
Yalta, S. M. Plokhy ( Penguin,2011)
Eight Days at Yalta, Diana Preston (Picador,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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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10년, 1960년대 - 비틀스에서 68혁명까지, 김경집의 현대사 강의
김경집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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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이신 김경집 작가가 2022년 집필하신 이 책을 읽었습니다. 본문만 610쪽에 달하는 이 책을 굳이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1960년대 개론(overview)’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1960년대를 전후해 전세계에서 일어난 각종 정치, 외교, 전쟁, 문화, 경제에 관련사안을 거의 대부분 언급하고 넘어갑니다.

언급한 주제가 방대해서 책말미에 참고문헌 서지목록만 20여쪽에 달합니다.

모든 개론서(槪論書)의 용도가 그렇듯 이 책도 1960년대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처음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그리고 참고문헌을 보고 관심있는 특정 분야를 더 읽으면 되는 것이지요.

아래에서는 저 개인적인 입장에서 관심있는 테마 몇가지를 언급하려고 합니다.

최근의 대일관계와 관련해서 이 책은 간략하게 5.16군사쿠데타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박정희의 군사독재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났는지, 그리고 군사정권이 왜 ‘한일국교정상화’에 목을 매고 추진할 수 밖에 없었는지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대일관계를 이야기하는데 미국의 아시아 정책과 공산주의 봉쇄정책( containment)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65년의 한일협정은 이후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신조 정부 간 ‘위안부 합의’ 그리고 2023년 윤석열 정부가 행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면죄부’애 이르기까지 관통하는 주제로 역사가 아니라 현재가 우리가 일본과 당면한 현안입니다.

즉 이 모든 ‘원죄’는 박정희 군사정부의 ‘ 한일국교정상화’애 있으니 적극적으로는 한일협정 자체의 ‘파기’내지 최소 2015년 및 2023년 일본과 협상한 내용에 대한 파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계외교사를 보면 정상간의 합의나 조약이 파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국제법 체제 아래서 말입니다.

한국 외교부가 일본과의 합의를 왜 깨면 안되는지 외교 당국자의 설명이 없고 또 너무 나이브한 것으로 보여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미소분쟁과 관련한 그리고 핵무기와 관련되어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1962.10)’입니다. 미국의 역사가들이 평가하기를 ‘쿠바미사일 위기’는 소련과 미국의 핵전쟁이 일어나기 일보직전까지 갔던 ‘가장 위험했던 순간’으로 기억할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Stalin) 사후 집권한 후르시초프 (Nikita Sergeyevich Khrushchev)는 ‘스탈린 격하운동’으로 중공의 마오쩌뚱과 대립하며 전통 공산주의를 ‘수정’한 수정주의자(Revisionist)라는 비판을 공산진영 내에서 받고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미국이 사실상 경제적 식인지로 지배하던 쿠바가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공산화되자 이 새로운 소련의 지도자는 소련의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시킵니다.

미국은 이 일로 발칵 뒤집혀 핵전쟁의 공포에 질려 있었고,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소련과의 물밑협상을 담당하도록 하고 소련의 군함의 쿠바 상륙를 불허하는 해상봉쇄 조치를 취합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이 원자폭탄 (atomic bomb)을 떨어뜨려 핵무기가 세상에 처음 나타나고 이를 계기로 일본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을 하게 되었고 세계는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약 20여년이 지난후 핵전쟁의 공포가 쿠바미사일 위기로 거의 현실화되었던 것이지요.

이 사건이후 핵무기는 실제 사용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핵무기에 대한 공포로 인해 핵무기 개발이 자제되는 양상이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시대에 소련과 핵무기 감축협정을 맺고 실질적 감축에 들어간 것입니다.

미국 입장에서 쿠바이후 핵무기로 문제가 된 경우는 아마 이란과 북한이 거의 유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란과 미국은 이미 비핵화 협정을 맺어 어느정도 핵무기 관련 이슈를 해결한 전략이 있으나 북한은 현재 통제가 되지 않아서 골치거리입니다.

하지만 일정부분 미국이 동아시아서 자신의 국익 극대화를 위해 북한을 압박한 측면도 있어 북한의 핵개발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현재 윤석열 정부의 ‘이념외교’는 득보다 실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미일의 두 동맹국인 미국과 일본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과 물밑대화를 계속하고 있으나 현 한국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틀 수 있는 중재자가 될 수 있고 또 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인 중국을 무시로 일관합니다.

극우 이념에만 너무 충실한 다분히 망상에 근거한 처신이라고 봅니다.

미국과 일본을 향해 무력시위룰 하는 북한을 자극해 북한이 한국에 험한 말을 하고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게 한국의 국악에 어떤 이득이 있나요?

군대 가야할 젊은이들이 북한과 전쟁위기가 고조되어 혹시라도 전장에 나가야 한다면 현재의 소위 ‘보수’정부를 지지할까요?

솔직히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한심하죠.

최근에 북한을 적대시하고 북한미사일 위협이 한국을 향하게 된건 현 윤석열 정부의 정책실패입니다. 변명할 여지가 없어요. 미국과 일본을 향한 무력시위를 오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MB때 북한을 자극해서 연평도에 북한이 공격한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1960년대는 사실 2023년 기준으로 이미 60여년이나 전인 오랜 과거이지만 제2차세계대전이후 현재의 세계를 만든 시작에 해당하는 시기이고 1960년대 20대였던 청년들이 대부분 1945년 종전이후 태어난 베이비 붐세대( baby boomers)로 현재 MZ 세대의 조부모뻘입니다. 서구의 68 혁명이나 한국의 4.19혁명 모두 현재 구세대 내지 ‘꼰대’라고 뭉뚱그려 묘사되는 그 세대들이 젊은 20대 시절 세상을 바꾸려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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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잊힌 퇴조의 출발점 - 자유주의적 전환의 실패와 촛불의 오해
백승욱 지음 / 북콤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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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현재 한국사회의 전환점이 1987년이 아니라 1991년이라는 점을 주장한 책으로 특히 소위 ‘민주’진영이라고 불리는 586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에게 뼈아픈 대목이 많습니다.

현재 기형적으로 무능한 소위 ‘보수’진영은 차지하고라도 민주진영의 무능함과 안이함을 지적합니다. 보수가 기획한 2016년의 촛불을 민주당이 ‘가로챘다’는 입장이며, 수긍이 되는 분석입니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퇴행적 행태들이 1987년이후 ‘절차적’민주화를 실현했으나 거기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운동권출신 정치인들의 철학부재와 안이함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실패로 끝난이유는 소위 ‘87체제론’에 입각해 자신과 적을 구별하고 윤리적으로 우월한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맹목적인 주장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걸 ‘승리사관’이라고 규정하죠. 이런 사고는 한국사회의 자유주의적 ‘제도화’에 소홀하게 된다는 단점을 가지게 됩니다. 저자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가지게 된 시작점을 1991년으로 보고 있으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었는데도 그 당시 사회변화의 요구는 ‘잊혀진’상황으로 이후 벌어진 IMF 구제금융사태 등 한국을 뒤흔든 큰 변화의 시작점으로 봅니다.

요새 많이 잊혀진 역사적 사실 중 하나가 보수세력인 민정당에서 추진한 ‘북방정책’입니다. 군인출신으로 신군부의 핵심이던 노태우 대통령은 당시 공산주의국가인 소련과 수교를 했고 당시 중공과도 수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공산권 몰락도 한몫했으나 다분히 전략적 경제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은 문민정부와 민주당 정부에서 이를 계승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검사출신 대통령은 자신이 소속한 정당에서 30여년 전 전략적으로 추진했던 러시아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스스로 걷어차는 어처구니없는 외교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실리’가 뭔지 모르는 무지한 행태입니다. 바보처럼 한국의 국익을 생각하지 않고 일본과 미국의 국익을 대변하는 현정부의 행태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일제가 심어놓은 패배주의적 ‘정체사관’에 찌들려 있는 극우 성향 대통령이 국익훼손과 역사의 퇴행에 앞장선 겁니다. 미국의 푸들을 자처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려는 최근의 행태는 대통령의 권한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주장대로 촛불이 보수의 ‘궁정쿠데타’성격을 가졌다면 그 쿠데타를 주도한 소위 보수세력들도 구심점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현재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인들도 말로 자유를 떠들지만 사실 얼치기 전체주의자에 불과합니다. 공화제 정치가 뭔지 법치가 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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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자이신 강명관씨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초기저작인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2003)’이후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한문이 전문이시다보니 조선시대 전반에 결친 한문전적(典籍)을 해석하시는데 탁월하시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제자체가 조선후기의 사회사, 신분사, 상업사, 재정사와 연관이 있지만 저자는 이책이 ‘상업사’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언급하셨습니다.

하지만 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이 분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또 사회과학적 견지에서 조선, 특히 조선후기 사회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책은 제목에서 보듯, ‘노비’신분의 쇠고기 도살 및 판매자와 그 수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쇠고기를 도살하고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노비는 다른 어떤곳도 아닌 조선의 최고교육기관인 ‘성균관’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이 될 수 있는 조합이 아닙니다. 그래서 매우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17-18세기의 상황을 2023년 현재로 대입하면, 국가가 교육관련된 재장을 서울대에 보내지 않아 서울대에서 소를 잡아 판매한 돈으로 학생을 교육하고 기숙사 및 식비를 대며 고시를 준비시키는 상황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런 선뜻 생각하기 어려운 체제가 19세기 말 갑오경장(甲午更張,1895)으로 조선의 신분제(身分制)가 혁파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괴이(怪異)하다고 생각한 점 몇가지를 아래에서 정리하려 합니다.

첫째, ’조선이 제대로된 행정력(行政力)을 갗춘 사회였는가?‘ 에 대한 점입니다. 신분제사회인 조선에서 수많은 양반들이 과거(科擧)를 본 이유는 그들이 국가를 왕과 ‘함께’ 다스리는 관료(官僚)가 되기 위해서였죠. 이를 위해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경전을 읽었고 결국 관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결국 노비들을 경제적으로 수탈( exploitation)하면서도, 노비들이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해도, 제도적인 개혁을 하지 않았습니다. 관료의 최악의 경우인데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해결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무려 300년 이상을 말입니다. 조선이 유교적 법치국가니, 유교적 도덕정치를 한다는 등 여러 주장이 있지만 사회구성원의 경제적 어려움을 300년 이상 방치하고 있었다는 건 조선의 양반 위주의 관료행정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양반관료들은 하물며 국왕이 시정명령을 내려도 시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두번째, 성균관을 케이스로 본 조선의 재정체제가 너무 허술해서 놀랐습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은 성균관이라는 최고교육기관에 초기부터 국가재정을 충분히 배정하지도 않았고, 군주도 고위관리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균관에서만 일을 할 수 있는 노비인 반인(泮人)들에게 그들의 노동제공 댓가로 소를 도살하고 쇠고기를 판매할 수 있는 푸줏간인 현방(懸房)에 대한 독점적 운영권을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반인들이 먹고살길을 도모하라는 것이 원래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재정이 부족한 성균관은 자신에게 속한 노비들을 착취해 쇠고기를 팔아 모은 이익을 가져다 쓰기 시작했고 조선후기들어 이들의 수탈은 점점 가혹해져 갔습니다. 평소 생각하던 성균관이란 고등교육기관의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져나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셋째, 반인들을 수탈하던 기관은 성균관만이 아닙니다. 소위 삼법사(三法司)로 불리던 권력기관으로 한성부(漢城府), 형조(刑曹), 사헌부(司憲府)에서 속전(贖錢)이라는 면목으로 반인들의 현방에서 수탈을 해왔습니다. 속전이란 말은 쉽게 법을 어긴 사항에 대한 벌금이라는 뜻인데 여기에 또 기막히고 낯선 조선사회의 모습이 있습니다.

넷째, 조선은 농업기반의 사회로 소를 잡는 일은 기본적으로 불법이었습니다. 조선개국이후 1895년 갑오개혁이전까지 그랬습니다. 반인들이 생계를 위해 현방을 열었지만 불법인 쇠고기를 팔았기 때문에 일종의 영업세인 속전을 권력담당기관인 삼법사에 내지 않을 방도가 없었습니다.

유교적 관점에서 농업이 산업의 근본이고 나라의 근본이라는 명분에서 소를 잡는 것이 불법이지만 쇠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계층이 양반층 특히 고위관리와 벌열들이었고 특히 선현을 위한 제사에 쇠고기는 필수였습니다.

결국 쇠고기 도축이 불법이라는 명분과 쇠고기 소비 사이의 현실적 간극을 무시한 상태로 수백년을 지내오게 됩니다. 반인들은 속전을 피할 길이 없었고 결국 구조적으로 착취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속전 수탈을 위해 불법상태를 방치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양반계층은 나이브하고 졸렬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책만 읽을 줄 알았지 비현실적인 몽상가들이었죠.

다섯째, 조선후기 재정의 허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재정부족에 시달려 자신에게 속한 반인을 착취할 수 밖에 없었던 성균관은 물론이고 법률을 집행하던 권부인 형조, 한성부, 사헌부도 현방을 착취하는 방법이외에 재정문제를 풀 방법이 없었습니다. 군주도 고위 양반관료도 명분만 이야기하고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노비들을 무엄하다고만 할 뿐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해결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성적인 재정문제를 온전히 노비들의 노동력과 경제력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얼마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없는 명분론자들인지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의 제5장은 반인들이 당하던 수탈의 온갖 사례들로 가득합니다. 책의 가장 긴 글이기도 하죠.

여섯째, 노비의 노동력과 경제력에 의존한 조선의 권부와 성균관의 사례는 직접적으로 한 미국학자의 논쟁적 주장을 떠오르게 합니다. 미국의 한국학자 제임스 팔레교수(James B. Palais)는 조선이 ‘노예제 사회‘라고 주장해서 한국의 학자들을 분개하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선형적 역사발전사관으로 볼 때, 조선이 노예제사회라는 주장은 그보다 진보한 서양의 자본주의사회보다 ‘정체된’사회라는 의미여서 한국학자들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선형적 역사관은 그저 19세기 서양에서나온 시각의 하나일 뿐 그대로 믿는 이들도 별로 없어 위의 주장에 너무 감정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팔레교수는 조선후기 조선인구의 상당한 부분 즉 약 절반 이상이 노비들이었고 이들이 위의 예에서 보듯 실질적으로 성균관과 삼법사의 경제적 재정적 기반이 된게 사실이라면 학자의 주장으로 음미할 부분이 있습니다. 다 아는바처럼 조선의 양반들을 수신(修身)을 한다고 전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육체적 노동은 모두 노비를 포함한 상민계층에서 전담했습니다. 이 책에서 보듯 성균관의 관노비인 반인들은 자신이 속한 성균관과 권부인 삼법사 그리고 나중에는 궁궐의 궁방까지도 일부 재정을 책임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상 고위층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조선후기 인구 증 노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가 되는지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조선이 노예제 경제를 물적기반으로 하는 ‘노예제 사회’라고 해석하는 건 논리적으로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한국학자들이 할일은 반박자료를 찿아 반론을 제기해야 하지만 이 책에서 제시한 반인들과 현방 그리고 권력기관들의 수탈관계를 보고는 조선은 최소 경제적, 재정적 측면에서 ‘노예제 사회’가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끝으로 책의 물리적 면을 보겠습니다.

책은 총 9장이고 본문만 540여쪽입니다. 그 뒤로 약14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주석이 있습니다.

2023년 2월에 나온 책이고, 조선후기 사회와 신분제 그리고 조선후기 상업과 특히 쇠고기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흥미로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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