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nial Latin America (Paperback, 7)
Stanley J. Stein / Oxford Univ Pr on Demand / 197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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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도에 출판된 책으로 한국어판이 존재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남미 역사학 교수인 스탠리& 바바라 스테인 교수의 저서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기간을 다룹니다.

남미와 북미의 차이점을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1. 북미는 북미 원주민 사회와 백인 이주민 사회가 분리되어 서유럽의 문명적인 영향을 받아 금방 산업사회로 발전한 반면 남미는 원주민인 인디오와 아프리카에서 노동력으로 수입된 흑인 그리고 스페인의 이주민들이 섞여 발전이 지체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다분히 인종주의적, 유럽중심적(Eurocentric)설명입니다. 1970년이라서 이런 설명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2. 두번째는 18세기 이후 북미와 영국에서 값싼 공산품이 남미 대륙으로 밀려들고, 특히 영국이 남미와 서유럽간의 대서양 무역루트를 장악해서 상대적으로 뒤처진 식민지 유산을 가진 남미대륙에 산업이 상장할 기회가 줄어들었다는겁니다.

3. 즉 경제적 산업적 측면에서 스페인과 이베리아 반도는 남미를 식민지로 경영하는데도 카톨릭 교회의 영향과 함께 중세의 중상주의적 교역체제가 바뀌지 않은 상태로 서유럽보다 뒤쳐져 있었습니다. 18세기 들어 영국과 미국의 산업에 경쟁력에서 밀리게 되고 이 영향은 고스란히 남미 국가들에게도 미치게 됩니다. 광활한 영토와 자연자원 그리고 풍부한 농산물과 목축업이 발달되었는데도 다른 공업생산이 미비해 남미 여러나라들도 뒤쳐지게 됩니다.

4. 포르투갈 제국은 이 책에서 단지 영국의 산업을 매개해 주는 중간자로서의 성격으로 설명됩니다. 포르투갈의 브라질 지배에 있어 영국의 공산품이 브라질로 침투하여 브라질은 원료공급지이자 식민지 시장으로서만 기능하고 산업 발전의 원동력을 상실한 것으로 설명됩니다. 포르투갈의 해상권을 영국에게 빼앗긴 18세기 이후 자국의 낙후된 산업으로 인해 영국의 값싼 공산품이 대량으로 브라질로 유입되는 걸 막을 수없었고 사실상 브라질에 영국의 이권을 대리하는 정도에 머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영국은 산업혁명이후 거의 전세계에서 이권을 위해 움직였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것은 은(silver)입니다.

시기로 따지면 16세기정도로 짐작되는데 남미에서 채굴된 은은 중국 대륙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중국경제에 관한 연구를 보면 16세기 명나라 당시 중국에 상당한 양의 은이 유입되었고 그 산지로 멕시코를 지목합니다.
16세기 당시 필리핀의 마닐라와 멕시코의 아카폴코항을 연결하는 무역로가 은을 유통시킨 대표적인 경로로 알려졌습니다.

풍부한 은광이 스페인 제국의 남미 식민지 개척의 주요 요인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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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 한국현대사를 연구하시는 박태균교수께서 2021년 쓰신 책입니다.

책은 레너드 버치(Leonard Bertsch)라는 미군 대위가 작성한 미군정시기 문서를 가지고 해방후 첫 3년(1945-1948)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하버드 법대 (Harvard Law School)출신의 변호사인 버치대위의 문서는 하버드 엔칭 도서관(Harvard Yenching Library)에 보관된 문서입니다.

버치대위는 미군정에 참여하면서 미군정 사령관이던 하지 (John Reed Hodge)의 배려로 당시 한국의 정치인들을 만나고 상관에게 보고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그는 미군정에서 정치분석과 사령관의 정치고문 그리고 좌우합작위원회를 지원하는 일도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버치문서를 작성한 버치라는 인물이 어떠한지에 대한 사항입니다.

다음은 통념과 다른 한반도에 대한 미군정에 대한 당시 미군 내부의 평가 그리고 현재 뉴라이트와 극우 세력에 의해 소위 ‘국부(國父)’로 불리는 한국계 미국인 이승만에 대한 것입니다. 통념과 매우 다릅니다.

첫째, 미군정은 통념과 달리 처음부터 남한단독정부를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소련이 점령한 북쪽과 남쪽을 한데 아우르기 위해 좌우합작위원회를 지원한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친일 이력이 있는 우익 인사들을 쓰는데 매우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둘째, 경찰은 해방직후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 때문에 잠시 움츠러져 있었으나 치안유지때문에 미군정이 자신들을 필요로 하자 입장을 바꾸었고 치안을 이유로 많은 민간인들을 좌익으로 매도하고 폭행과 살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셋째, 이런 경찰과 평안도 지역에서 내려온 서북 청년회를 비롯한 극우 단체들은 이승만이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할 것으로 알고 그를 지지했습니다. 인구 구성상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경찰과 우익 청년단의 테러가 기승을 부렸고 이들은 지방에서 이승만의 정치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넷째, 통념과 다르게 미군정은 이승만이 남한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정치를 잘 아는 미국인이었지만 본인이 모든것을 장악하고 마음대로 하실 원하는 독재적 인물이었고 본인의 이익에 반하는 모든 이들을 좌익으로 모는 매우 편협한 인물로 미군정은 그가 남한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미군정은 이승만을 돈이 목적인 인물 평가하고 있습니다. 2022년 현재도 소위 보수 정치인 중에 돈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승만은 그 원조에 해당합니다.

다섯째, 미군정은 조선에 단일정부를 세우기 위해서 장덕수와 김규식을 적임자로 생각했습니다. 김구는 우익 테러리스트로 인식하였고, 여운형의 죄익과의 협력 그리고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운형과 장덕수가 암살되고 이승만밖에 다른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섯째, 여운형이 대한 암살은 현재까지 미스터리이며, 1948년 정부 수립이후 김구 역시 암살됩니다. 한국전쟁 당시 김규식은 북한군에 붙잡혀 북송되다 병사합니다. 공교롭게도 이승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중도 우익 지도자들이 암살당했습니다. 암살자들 중에 현직 경찰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친일경력을 가진 극우 세력들이 해방 후 숙청되지 않고 살아남자 정적을 재거하고 이후 우파 기득권으로 뿌리내리기 위한 기반을 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곱째, 버치문서에 따르면 해방정국애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 정치인은 이승만이 유일하고 남과 북을 아우르는 단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던 김구 여운형 송진우 등이 암살되고 미군이 선호하던 우파의 정적인 장덕수마저 암살된 것을 보면 친일 세력들이 의도를 가지고 정국을 장악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덟째, 박태균 교수는 기본적으로 미군정기 때 보수우파로 신분을 세탁하고 들어온 친일세력들의 기득권구조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따라서 소위 우파에서 사실(史實)에 근거한 역사를 부장하고 역사를 새로써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근거를 여기에서 찿을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뿌리가 친일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건 우파 기득권 세력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그래서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이승만 우상화 작업과 국정교과서 발간을 추진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과거의 사실보다 금전적 이익이 더 중요했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 훨씬 덜 부담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MB당시 이들은 역사전쟁을 시작했고 극우들이 집권하는 이상 이들은 계속 과거를 지우려 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정에서 근무했던 버치대위는 이승만을 사기꾼이라는 표현을 썼을만큼 싫어했는데 그의 글은 그가 미국 하와이, 캘리포니아에서 무슨일을 했는지 조사에 근거한 것이었고 그는 이승만과 직접 접촉했던 요원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반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적인 하버드 대학에서 보관 중인 문서이고 미군정 정치요원으로 근무했던 미군대위가 작성한 보고서와 각종 메모를 통해 재구성한 논리이기 때문에 이 서술에 대해 뉴라이트의 반박은 쉽지 않을걸로 보입니다.

미군정에서 이승만을 합리적이지도 온화하지도 않은 정치인으로 평가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친일파에 관대한 그를 친일파를 포함한 반공주의 세력들이 옹립해 정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왜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사가 지워졌는지 그 이유를 여기서 찿을 수 있습니다.

이승만과 그 후계자들애게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항일은동세력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은 그들의 친일행위와 별볼일 없는 과거가 부각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니 아예현대사에서 지워버린 것입니다.

이승만 이후 들어선 만주국 장교 출신 박정희의 경우도 좀 더 절박한 이유로 자신들의 친일의 뿌리를 보수적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으로 가릴 정치적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정황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사가 공식적 한국역사에서 지워진 체 60여년 이상 흘러온 것입니다. 북한과 이들의 관계를 떠나서 한국의 1920-30년대 역사를 복원하는데 이들에 대한 역사는 필요한 부분입니다.

끝으로 이 책과 관련해 읽으면 좋을 책 몇권 더 소개합니다.

26일 동안의 광복(서해문집,2020)

한겨레 일본특파원이었던 길윤형 기자의 역작입니다. 해방이후 미군정 시작 전까지의 26일을 다루며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총독부와의 협상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미군정에서 여운형의 친일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인터뷰했던 총독부 관리들이 여운형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생생히 복원했습니다. 이 책의 프리퀄( prequel)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미지북스,2020)

국가형성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건국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한 책입니다. 자원이 부족하고 인프라가 미비했던 해빙 이후 한국이 미군정의 원조를 통해 그리고 일본인 기술자들의 노하우를 활용하여 어떻게 국가를 세워나갔는지를 살펴본 책입니다. 국가의 수립을 위해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산업을 어떻게 다시 가동시켜야 하는지 ‘취약국가론’이라는 독특한 관점애서 접근합니다.


1845-1948년 해방 후 3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이외에도 알아야 할 몇가지가 더 있은 것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이후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 어떠했는지

미국의 대중국 대소련 정책이 어떠했는지

동일한 시기에 일어난 미국의 일본 점령과 한반도 점령정책에 연관이 없는지

등이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할 사항으로 보입니다.
특히 미국은 1945-1952년의 7년간의 일본 점령기간 동안 봉건적인 일본 사회에 민주주의를 이식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조선 점령은 , 즉 미군정은 실패로 평가되었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 2년 후 한국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면에서 미군정 사령관 하지가 한국이 아일랜드인과 비슷하고 고분고분하지 않고 패전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이례적인 평가를 남겼습니다.

아무튼 이 사항은 2022년 현재에도 체크해봐야 할만큼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미국 그리고 서구유럽의 경계심이 고조되고 있고 레토릭이 극단적으로 흐르는 면이 발견되고 있어 주시가 필요해 보입니다.
사실상 황화(黃禍,yellow peril)가 재발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려가 됩니다.

분명히 영미 서구지역은 후진적이라고 인식했던 러시아의 도발과 함께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매우 당혹스러워 합니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 매우 경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탄생이 미국의 국가이익과 밀접히 관련있는 정치적 이벤트였다는 사실은 절대 망각하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미국의 군정 설치와 원조 그리고 한국전쟁 참전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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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신진욱교수가 쓰신 세대론 관련 비판서입니다.

우석훈 박권일씨가 쓰신 ‘88 만원세대 (레디앙,2007)’이래 10여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국의 정치권과 담론을 휘젓고 있는 세대론의 허상을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연구한 책이죠.

이전에 소개했던 서강대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문학과 지성사,2019)’의 주장을 비판한 책이라고 보아도 될 듯합니다.
즉, 한국사회의 계층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을 세대론으로 감추고 기득권의 이익에 복무하게 만드는 실익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음의 두 장입니다:

제5장 누가 왜 ‘청년’을 말하는가?
제6장 정치담론과 세대담론의 융합

위의 두장은 앞장에서의 ‘청년’세대와 지탄을 받아온 ‘586’세대의 실체를 현재 나와있는 각종 통계 및 사회학적 연구들을 인용해서 밝히고 난후 그렇다면 사실과 다은 이런 주장들을 누가 왜 어떤 필요에 의해 하게되었는지를 분석한 것입니다.

위의 두 장의 주장을 언급하기 전에 중요한 몇가지를 지적해야 합니다.

첫째, 세대는 동일하고 균질적인 사회학적 집단(group)으로 정의될 수가 없는 개념입니다.

둘째, ‘586세대’라는 용어의 의미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해왔으며 60년대에 출생한 이들을 모두 586으로 묶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1980년대 당시 대학에 진학한 소수의 운동권 학생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하며 일반화의 오류가 포함된 개념입니다.

셋째, 마찬가지로’2030’ 또는 ‘MZ세대’라는 용어도 사회학적 집단 범주라기보다는 정치적 슬로건이었고 기업의 마케팅용어로 1980-90년대 출생 세대를 지칭하기는 모호한 용어입니다.

이상이 위의 두 장에 대한 부가설명을 위해 필요한 대강의 전제입니다.

우선 청년 담론(discourse)은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것이 아니고 특정한 정치적 이벤트, 즉 선거가 있을 때 주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청년과 기성세대를 한데 묶어 기사화한 건 2015년 이후 폭증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이전에는 기사량이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19년 조국씨 관련 수사와 함께 기사량이 폭증했습니다.
굳이 이런 분석을 통하지 않더라도 당시 매체들이 조국씨 일가를 맹폭했든지 다 아실 겁니다.

그럼 어떤 매체가 왜 이렇게 청년과 기상세대를 묶은 담론을 폭증시켰는가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책에서 ‘혐오담론 ‘으로 지칭한 586세대에 대한 부정적 담론은 2007년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대우 이한우씨가 쓴 칼럼[정치하는 386의 굴욕]을 그 586 기득권론의 시초로 봅니다(p287)

586 무능론은 2007년 당시 빅뉴스 대표였던 변희재씨가 조선일보 칼럼에서라고 봅니다(p290)

586 청년 착취론의 경우는 2008년 당시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 강경희씨가 386세대가 신통치 않은 통치능력을 보여준다는 칼럼을 썼습니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청년과 586을 대비시키며 386세대를 기득권으로 몰며 절망적인 20대를 대비시키는 칼럼을 씁니다. 이 주장은 조선일보 논설실장 송희영씨의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당시 20대 비정규직 비율이 31%였고 50대는 40%였습니다. 칼럼이 현실과 동떨어진 정적 만들기를 했던 셈입니다.

이 책에서 극우 매체인 조선 등에서 위에서 본 것처럼 사실과 다른 담론 조작(manipulation)을 한 예는 이외에도 많지만 간략히 줄이면 이런 겁니다:

한국의 극우 정치인들과 매체들은 김대중 정부이후 다시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과거 그들이 탄압했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대거 재도 정치권에 들어서자 이들을 견제하고 악마화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이들의 무능과 착취론을 극우 매체들을 통해 유포하기 시작한 겁니다.

따라서 이들은 아마도 세대론이 사회집단을 설명하는데 부적합한 개념임에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극우 매체를 통한 담론 조작을 실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9년 조국 장관 관련 기사의 폭등을 경험하면서도 느꼈던 것인데 저는 조국씨가 개인적인 인맥을 통해 불공정한 행위를 저지른 건 알겠는데 상대편인 국민의 힘이나 극우 매체인 조선일보 논설실장이나 데스크가 조국씨를 이렇게나 비난해도 되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윤대통령도 지금 보시면 아시겠지만 부인과 장모가 경제범죄사건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1970년대로 가면 유명한 압구정 현대 아파트 분양시 특혜분양이 있었는데 고위 공직자와 더불어 언론인들도 그 특혜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책이 세대론애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는 목적에서 쓰여진 책이기는 하지만 책의 후반부는 상당부분 매체에서 생산한 기사량의 추이, 기사내용의 연관관계 분석, 기사량이 폭증한 시기에 어떤 정치적 사건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사건 당시 매체가 그런 담론를 기사화한 의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제 결론은 극우 매체들이 각종 비리와 무능으로 취약한 정치적 입지를 만회하기 위해 당시 집권세력이던 586 세력을 청년담론과 묶어 이들의 무능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이런 담론 전략으로 극우 세력들은 2022년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이들이 이런 담론 조작을 해서 생긴 이익은 명백한 것이었습니다.

끝으로 극우 매체의 담론 조작과 함께 생각해야 할 이벤트가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소위 언론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종편이 출범했습니다.
유튜브가 활성화되기 전 종편은 기존의 공중파 공영방송체계를 흔들고 언론의 담론 지형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 이후 밗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세월호 참사가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기레기’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때가 세월호 참사이후로부터입니다.

사건을 평가하고 의견을 붙여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언론인 혹은 지식인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비판을 하던 기자에서 정부에서 준 보도자료를 복붙하고 받아쓰는 기레기로 변한 겁니다.

이 책에서 보듯 ‘586 세대와 청년’담론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2015년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그 다음해입니다.
우연이라고 보기는 너무 공교롭다고 생각하지 않으신지요.

그리고 종편과 기레기들의 세계가 완성된 2019년의 조국씨 수사의 경우 그 메커니즘이 최대로 돌아간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때는 극우 매체 뿐만 아니라 한겨레와 경향 소위 진보매체서도 586세대 비판 담론이 출현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종편과 기레기없이 과연 극우 세력이 집권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극우 세력 스스로 진단하길 정상적 언론환경에서 집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자 종편 출범을 서둘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당시 극우 정치세력인 한나라당은 수많은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비판에도 종편 출범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사실을 토대로 짐작해 볼 때 정상적인 언론환경 아래에서 극우세력들은 아마 집권이 불가능할 것이라고추측합니다.
그렇지 않고 종편의 출범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이책을 읽고 보니 한국에서 더욱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젠 매체의 기사 내용을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담론 조작을 통해 많이 세뇌되었으리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어떤 실체에 접근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대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특정한 직업군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유용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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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에서 전쟁사와 외교사를 가르치는 가토 요코 교수가 지은 전쟁사 책입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세계대전,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행한 5번의 역사강연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으로 일본의 시각이지만 비교적 객관적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이 책은 흔한 전쟁사 책들처럼 전투과정이나 전투 전략을 서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전쟁을 정치와 외교의 연장으로 보면서 전쟁의 당사국들과 주변국들이 어떻게 하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는지 국익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느 국가와 무슨 내용으로 외교협상울 진행했는지, 그리고 당시 일본이 처한 국내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전쟁의 정치사 또는 전쟁의 사회사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 같습니다.

본문이 430여쪽이니까 두께로는 중간정도라고 볼 수 있고, 일본에서는 문고판이 2016년 출판되었습니다. 한국어판 출판이 2018년이니 2년의 시차가 존재합니다.

원래의 강연은 2007년 5일간 행해졌고 2009년에 초판이 나왔습니다.

일본학자들의 책들이 그렇듯 대부분 이 책에서 인용되는 책들은 일본학자가 쓴 일본문헌들이 대부분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인들의 글은 아주 적게 인용됩니다.

이 책을 보면서 한국의 일제강점기을 좀 더 거시적으로 봐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일본이 조선을 1910년 병합했고 조선이 제2차세계대전 후 연합국의 결정에 따라 해방되었다는 서술로는 20세기 전반기 한반도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후 세계열강의 일원으로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으며 조선을 식민화 하기 이전에 이미 타이완과 홋카이도 그리고 오키나와를 식민지로 병합했습니다.

청일전쟁을 거치면서 청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과 속국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무력화시켰고 부동항을 찿아 시베리아와 연해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를 러일전쟁에서 이기고 한반도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해양세력인 영국과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데 동의합니다.

러일전쟁이후 러시아가 계속 연해주에서 이권을 챙기고 동북 3성에 영향력을 강화하자 남만주와 몽골을 대륙세력에 대한 일본의 이익선으로 인식한 일본은 이후 남만주철도의 이권을 중국으로 부터 받고 요동반도에 대한 경제적 독점권을 향휴하면서 산동반도와 화중 지방으로 영향력을 강화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독일령 산동 반도를 장학했으며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이권을 챙기려고 합니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이 중국에서 과도한 이익을 누린다고 생각하고 이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즉 일본제국주의는 후발주자로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누려온 경제적 이익을 빼앗아 누리기 위해 조선을 비롯한 남만주와 산동 반도를 복속시켰으며 영국과 프랑스의 이권이 걸린 인도차이나 반도를 침공하였고 중국에서도 이권을 되도록 많이 획득하도록 했습니다.

소련은 연해주애서 일본과 마주하고 있는 대륙세력으로 일본은 안보상의 이유로 소련의 연해주와 동죽3성 진출을 극도로 경계한 것입니다.

일본은 공산주자들이 중국의 이권을 독점하지 못하도록하면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얻은 경제적 이권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외국인 중국땅애서 제멋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민간인을 학살하며 호전적인 전쟁국가라는 인상을 주변국들에게 심어줍니다.

심지어 태평양 전쟁 발발이후 객관적인 경제력과 잠재력에서 상대가 될 수 없었던 미국과 전쟁을 벌여 결국 전쟁에서 패전하고 맙니다.

제2차세계대전은 기계화된 총력전으로 기본적으로 한국가의 생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쟁을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고 이후 패전이라는 대가를 치룹니다.

아무튼 이와같은 총력전에 따른 군수물자조달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독일과 미국의 전쟁물자동원(mobilization)에 대해서는 두권의 연구서가 있는데 전쟁의 경제적 측면을 다룬 드문 연구서입니다.

아래의 두 책을 참조바랍니다.

Wage of Destruction (Penguin Books,2008)

Destructive Creation (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18)

이 두책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은 재국주의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식민지 주민들을 동원하고 쥐어짰으며 포로로 잡힌 군인들에게도 가혹행위를 일삼았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아직도 스스로를 일본군국주의의 희생자 원폭의 희생자라는 이미지만을 강조하려 합니다.

적어도 일본인들이 가해자로서 저지른 전쟁범죄와 함께 그들의 피해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가해자로서의 행위에 대해 반성이 없다면 그건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 밖에 안되는겁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조선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군에 의해 점령당했을 때 일본도 미군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미군정기를 이야기하면서 일본의 점령기를 같이 이야기 하지 않는 건 미국의 아시아정책과 공산주의 봉쇄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졌는지 전체적인 구도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 일본을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사실상 통치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은 일본에 민주주의를 이식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하고 같은 맥락에서 한국도 바라봅니다. 하지만 과연 일본의 정치가 민주주의 정치인지는 다시 따져 볼 문제입니다.

일본과 한국에 대해 앨리트들은 어느정도 이해할 지 몰라도 이해의 한계가 존재하고 서양의 정치제도 이식이 아시아에서 그렇게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이 역시 별도로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변국이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사항은 아무래도 관심이 가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역사적인 애증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웃국가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일제 패망 후 70여년이 지났는데도 한국 정부가 일본에 대한 제대로된 정책이 없는 것 같아 매우 우려가 됩니다.
특히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손해배상은 반드시 관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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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삼재 - 동경 유학생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의 삶과 선택
류시현 지음 / 산처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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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春園)이광수와 육당(六堂) 최남선은 학창시절 국어를 공부하면서 배웠던 인물입니다.

반면 벽초(碧初) 홍명희는 소설’임꺽정’의 작가로만 알려져 있을 뿐 사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위의 두 문필가보다 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된데에는 홍명희가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지낸 지식인이고 1990년대까지 북으로 간 공산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을 악마화하고 역사에서 지워버리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면 춘원과 육당의 ‘적극적’친일행위도 일반 대중들에게 교묘하게 빠져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한 인물을 평가하는데 빛과 어둠을 모두 보아야 하는데도 어두운 쪽을 감추고 역사적으로 밝혀진 친일행위를 숨긴건 한국사회에 그렇게 해야 이익을 침해받지 않을 세력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솔직히 책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이들의 공과를 떠나 이들의 이념적 성향을 떠나 20세기 초 한국을 대표하던 지식인이었던 세명을 본문 256쪽에 담는다는 목표 자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솔직히 개론서로 이해하기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여러 단체와 사건들이 나오지만 대표적인 것 몇가지만 짚으면, 신간회의 결성과정과 이후 좌우의 결별 그리고 그 영향은 너무 간략하게 서술된 것입니다.

마지막 4부는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일본의 패망, 건국준비위위원회, 신탁통치안, 좌우대립, 분단 반민특위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모두 담았습니다. 각 편마다 책 한권이 필요한 주제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계기로 이책의 세 주인공의 삶을 각각 별도로 들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이광수와 최남선이 과연 계속 교과서에 나오는게 맞는지 고려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들이 태평양 전쟁말기 일본의 대학에 재학 중이던 조선인 학생들에게 행한 학도병 권유 강연의 일부 내용만 보았는데도 소름이 돋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을 사지에 모는 이런 강연을 어떻게 하고 다닐 수 있는지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미국인걸 알고도 말입니다. 황당했습니다.

1944-1945년의 최남선과 이광수의 적극적 친일행위는 이들이 최초에 국문학에 기여한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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