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서 한국현대사를 연구하시는 박태균교수께서 2021년 쓰신 책입니다.
책은 레너드 버치(Leonard Bertsch)라는 미군 대위가 작성한 미군정시기 문서를 가지고 해방후 첫 3년(1945-1948)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하버드 법대 (Harvard Law School)출신의 변호사인 버치대위의 문서는 하버드 엔칭 도서관(Harvard Yenching Library)에 보관된 문서입니다.
버치대위는 미군정에 참여하면서 미군정 사령관이던 하지 (John Reed Hodge)의 배려로 당시 한국의 정치인들을 만나고 상관에게 보고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그는 미군정에서 정치분석과 사령관의 정치고문 그리고 좌우합작위원회를 지원하는 일도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버치문서를 작성한 버치라는 인물이 어떠한지에 대한 사항입니다.
다음은 통념과 다른 한반도에 대한 미군정에 대한 당시 미군 내부의 평가 그리고 현재 뉴라이트와 극우 세력에 의해 소위 ‘국부(國父)’로 불리는 한국계 미국인 이승만에 대한 것입니다. 통념과 매우 다릅니다.
첫째, 미군정은 통념과 달리 처음부터 남한단독정부를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소련이 점령한 북쪽과 남쪽을 한데 아우르기 위해 좌우합작위원회를 지원한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친일 이력이 있는 우익 인사들을 쓰는데 매우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둘째, 경찰은 해방직후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 때문에 잠시 움츠러져 있었으나 치안유지때문에 미군정이 자신들을 필요로 하자 입장을 바꾸었고 치안을 이유로 많은 민간인들을 좌익으로 매도하고 폭행과 살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셋째, 이런 경찰과 평안도 지역에서 내려온 서북 청년회를 비롯한 극우 단체들은 이승만이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할 것으로 알고 그를 지지했습니다. 인구 구성상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경찰과 우익 청년단의 테러가 기승을 부렸고 이들은 지방에서 이승만의 정치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넷째, 통념과 다르게 미군정은 이승만이 남한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정치를 잘 아는 미국인이었지만 본인이 모든것을 장악하고 마음대로 하실 원하는 독재적 인물이었고 본인의 이익에 반하는 모든 이들을 좌익으로 모는 매우 편협한 인물로 미군정은 그가 남한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미군정은 이승만을 돈이 목적인 인물 평가하고 있습니다. 2022년 현재도 소위 보수 정치인 중에 돈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승만은 그 원조에 해당합니다.
다섯째, 미군정은 조선에 단일정부를 세우기 위해서 장덕수와 김규식을 적임자로 생각했습니다. 김구는 우익 테러리스트로 인식하였고, 여운형의 죄익과의 협력 그리고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운형과 장덕수가 암살되고 이승만밖에 다른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섯째, 여운형이 대한 암살은 현재까지 미스터리이며, 1948년 정부 수립이후 김구 역시 암살됩니다. 한국전쟁 당시 김규식은 북한군에 붙잡혀 북송되다 병사합니다. 공교롭게도 이승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중도 우익 지도자들이 암살당했습니다. 암살자들 중에 현직 경찰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친일경력을 가진 극우 세력들이 해방 후 숙청되지 않고 살아남자 정적을 재거하고 이후 우파 기득권으로 뿌리내리기 위한 기반을 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곱째, 버치문서에 따르면 해방정국애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 정치인은 이승만이 유일하고 남과 북을 아우르는 단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던 김구 여운형 송진우 등이 암살되고 미군이 선호하던 우파의 정적인 장덕수마저 암살된 것을 보면 친일 세력들이 의도를 가지고 정국을 장악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덟째, 박태균 교수는 기본적으로 미군정기 때 보수우파로 신분을 세탁하고 들어온 친일세력들의 기득권구조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따라서 소위 우파에서 사실(史實)에 근거한 역사를 부장하고 역사를 새로써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근거를 여기에서 찿을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뿌리가 친일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건 우파 기득권 세력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그래서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이승만 우상화 작업과 국정교과서 발간을 추진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과거의 사실보다 금전적 이익이 더 중요했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 훨씬 덜 부담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MB당시 이들은 역사전쟁을 시작했고 극우들이 집권하는 이상 이들은 계속 과거를 지우려 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정에서 근무했던 버치대위는 이승만을 사기꾼이라는 표현을 썼을만큼 싫어했는데 그의 글은 그가 미국 하와이, 캘리포니아에서 무슨일을 했는지 조사에 근거한 것이었고 그는 이승만과 직접 접촉했던 요원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반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적인 하버드 대학에서 보관 중인 문서이고 미군정 정치요원으로 근무했던 미군대위가 작성한 보고서와 각종 메모를 통해 재구성한 논리이기 때문에 이 서술에 대해 뉴라이트의 반박은 쉽지 않을걸로 보입니다.
미군정에서 이승만을 합리적이지도 온화하지도 않은 정치인으로 평가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친일파에 관대한 그를 친일파를 포함한 반공주의 세력들이 옹립해 정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왜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사가 지워졌는지 그 이유를 여기서 찿을 수 있습니다.
이승만과 그 후계자들애게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항일은동세력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은 그들의 친일행위와 별볼일 없는 과거가 부각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니 아예현대사에서 지워버린 것입니다.
이승만 이후 들어선 만주국 장교 출신 박정희의 경우도 좀 더 절박한 이유로 자신들의 친일의 뿌리를 보수적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으로 가릴 정치적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정황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사가 공식적 한국역사에서 지워진 체 60여년 이상 흘러온 것입니다. 북한과 이들의 관계를 떠나서 한국의 1920-30년대 역사를 복원하는데 이들에 대한 역사는 필요한 부분입니다.
끝으로 이 책과 관련해 읽으면 좋을 책 몇권 더 소개합니다.
26일 동안의 광복(서해문집,2020)
한겨레 일본특파원이었던 길윤형 기자의 역작입니다. 해방이후 미군정 시작 전까지의 26일을 다루며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총독부와의 협상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미군정에서 여운형의 친일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인터뷰했던 총독부 관리들이 여운형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생생히 복원했습니다. 이 책의 프리퀄( prequel)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미지북스,2020)
국가형성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건국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한 책입니다. 자원이 부족하고 인프라가 미비했던 해빙 이후 한국이 미군정의 원조를 통해 그리고 일본인 기술자들의 노하우를 활용하여 어떻게 국가를 세워나갔는지를 살펴본 책입니다. 국가의 수립을 위해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산업을 어떻게 다시 가동시켜야 하는지 ‘취약국가론’이라는 독특한 관점애서 접근합니다.
1845-1948년 해방 후 3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이외에도 알아야 할 몇가지가 더 있은 것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이후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 어떠했는지
미국의 대중국 대소련 정책이 어떠했는지
동일한 시기에 일어난 미국의 일본 점령과 한반도 점령정책에 연관이 없는지
등이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할 사항으로 보입니다.
특히 미국은 1945-1952년의 7년간의 일본 점령기간 동안 봉건적인 일본 사회에 민주주의를 이식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조선 점령은 , 즉 미군정은 실패로 평가되었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 2년 후 한국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면에서 미군정 사령관 하지가 한국이 아일랜드인과 비슷하고 고분고분하지 않고 패전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이례적인 평가를 남겼습니다.
아무튼 이 사항은 2022년 현재에도 체크해봐야 할만큼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미국 그리고 서구유럽의 경계심이 고조되고 있고 레토릭이 극단적으로 흐르는 면이 발견되고 있어 주시가 필요해 보입니다.
사실상 황화(黃禍,yellow peril)가 재발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려가 됩니다.
분명히 영미 서구지역은 후진적이라고 인식했던 러시아의 도발과 함께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매우 당혹스러워 합니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 매우 경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탄생이 미국의 국가이익과 밀접히 관련있는 정치적 이벤트였다는 사실은 절대 망각하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미국의 군정 설치와 원조 그리고 한국전쟁 참전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