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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국근대문학연구자이신 하타노 세츠코(波田野 節子)교수가 일본에서 출간한 책을 서강대 최주한 교수가 옮긴 책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한국근대문학의 시조(始祖)나 다름없는 소설가 춘원(春園) 이광수의 평전입니다.

여태까지 제가 보았던 정치, 사회,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라 이 책은 구한말에서부터 일제의 제2차세계대전의 패전을 거쳐 한국전쟁시기 그리고 1970년대까지 폭넓은 시기를 관통하는 소설가 이광수의 삶과 작품 그리고 그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본격 문학평전입니다.

본문 300쪽에 이르는 작은 책으로 일본에서는 주코신서(中公新書)로 2015년 출간된 책을 2016년 번역한 책입니다.

흔히 한국근대장편소설을 확립한 소설가로 알려져 왔고 고등학교 필독도서 목록에 그의 대표작 ‘무정(無情,1917)‘이 있고, 저 역시 대입시험을 보려고 그의 소설들을 한국문학전집에서 찿아 읽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 두차례나 유학한 식민지 지식인으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조선어와 일본어로 소설을 쓸수 있는 소설가였습니다.

흔한 편견 중 하나가 일제시대를 살아오신 어르신들이 모두 일본어에 능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인데, 지금과 다르게 문맹률이 높았던 20세기 초 조선에서 조선어와 또 다른 외국어를 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희귀한 경우였습니다.

그래서 역관출신이나 천한 신분이어도 외국어를 잘하면 출세가 보장되던 시기가 이미 일제의 조선병합 이전 고종 집권기에도 이미 있었습니다.

아무튼 한줌도 되지 않은 전문학교 학생과 후에 경성제대 학생들 그리고 일본으로 조기에 유학을 떠날 수 있는 소수의 재력가나 유력집안 출신들만 일본어나 중국어 그리고 영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는 일본 유학을 통해 일제의 식민정책에 우호적일 수 밖에 없는 유력인사의 자제들과 자신들과 소통이 가능한 조선출신 엘리트들을 통해 조선을 식민통치 해왔다고 보면 됩니다.

아무튼 이광수의 경우 더욱 특이한 것이 그가 평안도 정주 출신 고아였는데 두번의 도쿄유학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광수 자신의 천재성(天才性)도 있었겠지만 인생의 기회를 잡는데 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광수는 일본유학을 통해 일본에서 해석한 서구의 문학과 사상을 받아들였고, 조선총독부 산하의 매일신보를 통해 ‘무정’을 발표하는 등 일본의 식민통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즉, 이광수는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에 협력하기로 하기 이전에도 조선어로 소설을 발표하면서 각종 일본 지식인들의 책을 읽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사실상 이중언어 생활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친일 이후 그가 좀더 직접적으로 일본어 소설을 재조(在朝)일본인이나 재일(在日)조선인을 독자로 펴낸 겁니다.

그는 친일이후에도 조선인 독자를 위해 조선어 소설을, 그리고 일본어 소설은 일본어가 이해가 되는 위의 두 독자층을 겨냥해 펴낸 것입니다.

최초의 한국근대장편소설을 쓴 소설가가 일본을 통해 문학을 배웠고, 이중언어를 구사하며 현대 한국의 문학언어를 정립했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입니다.

여태 국문학을 하는 분들이 왜 일본어를 더 공부하시나 했는데, 한국의 근대문학의 태생이 일본과 연관되어 있어서 그렇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살펴본 이광수의 삶을 바라보는 저 자신은 이 소설가가 처한 시대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난감했습니다.

이광수는 가야마 마츠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하고 조선의 청년들을 태평양 전쟁의 전사로 나가는 걸 독려하고, 일본어로 소설을 발표하고 다른 친일인사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영원히 조선을 통치하는줄 알았다고 언급한 걸 보면 분명 친일전력이 있는 문학인입니다. 그건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친일 전력 이전에 이광수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기고를 시작한 것과 일본의 매체에 기고를 한 것들은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겁니다.

시대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난감합니다.

그가 남긴 조선어 문학, 논설, 수필 등과 더불어 일본어로 남아 있는 그의 글들을 어떻게 봐야하나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일본의 한국문학연구자가 바라본 이광수를 보았으니 한국에서는 이광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살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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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 풍문부터 실록까지 괴물이 만난 조선
곽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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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조실록을 비롯한 고대 중근세 기록물에 보이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책 내용도 흥미롭지만 뒷쪽에 정리한 서지목록이 흥미롭습니다. 멀리는 고조선 고구려 신라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걸친 괴물이야기이고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판단으로만 평가할 이야기는 아닌 듯 합니다.

드라마 작가인 저자가 한국 고유의 괴물 이야기를 정리한 것으로 의의가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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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콘래드 전문가 ( Conrad Scholar) 인 존 스태프( John Stape)가 2007년 출판한 우크라이나 출신 폴란드계 영국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에 대한 평전입니다.

한국에는 단편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로 알려진 소설가입니다.

그의 문학활동과 삶에 대해 조망한 평전으로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에 속합니다.

이글을 쓰기 위해 국내 문학사이트를 찿아 보았는데, 콘래드를 소개하는 부분이 잘못된 부분이 있어 일단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꽤 알려진 문학전문 사이트 세계문학 저자 소개인데도 잘못 소개되어 있습니다.
19세기 유럽사를 잠시만 살펴봐도 알 수 있은 역사적 사실을 잘못 소개해 안타깝습니다.


우선 그의 출신을 ‘폴란드 ‘라고 단정하는 건 사실 왜곡의 우려가 있습니다. 콘래드 출생 당시 폴란드라는 독립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중반 동유럽은 러시아 제국( Russian Empire)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 Austria-Habsburg Empire)으로 양분되어 있었고 아나톨리아 반도와 발칸지역은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의 출생지는 우크라이나의 베르디치프 (Berdychiv,Ukraine)라고 브리태니커 온라인 판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러시아 제국의 황제의 백성 (subject)로서 단지 폴란드 민족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그가 폴란드 출신 문학가라고 소개하는 건 명백히 한국 학계가 나이브 (naive)하다는 걸 의미합니다.

콘래드는 영국에서 선원생홯을 하고 선원 자격을 모두 영국에서 취득한 해양전문가이자 영국인임에도 그의 출신지 때문에 생전에도 폴란드계 유대인 ( Polish Jew) 또는 러시아계 유대인 ( Russian Jew)로 오해를 받았습니다만 그가 유대인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영국은 서유럽의 신교국가로 성공회가 16세기 헨리 8세이후 로만 카톨릭에서 분리되었습니다. 이런 영국에서 러시아 제국 출신이자 로만 카톨릭의 세례를 받은 콘래드는 종교적으로도 이질적인 존재였습니다. 1924년 그의 장례식은 아이러하게도 영국 성공회 주교좌 성당이 있는 캔터베리 지역에서 카톨릭 장례미사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후 콘래드의 영국출신 부인과 유족들이 카톨릭 전례에 따라 미사를 행한 것입니다.

평전에서 그의 출신 배경을 두고 그의 작품에 나타난 슬라브 적 특성과 그의 특이한 영어발음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등 영어권에서 흔히 나타나는 동유럽과 러시아를 후진적으로 생각하는 편견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평생을 영국을 조국으로 살았고 영어로 문학작품을 집필한 작가임에도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산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베르디치프에서 1857년 태어난 조지프 콘래드는 어려서 양친을 잃고 할머니 손에 자랍니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유아기때부터 배운 프랑스어를 평생 잊지 않고 영국에 정착하기 전까지 프랑스 마르세이유(Marseille)로 보내져 프랑스 상선을 타고 선원 생활을 시작합니다.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는 그가 평생 동경하던 대상으로 그의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은 그가 선원생활을 할 때나 이후 전업작가로 생활할 때 프랑스 문인들과의 교류는 물론 영국 상류사회와의 교류에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에게 모국어인 폴란드어와 러시아어는 그다지 의미가 없었고 그가 평생 사용한 언어는 프랑스어와 영어였습니다.

콘래드는 프랑스 작가 중 앙드레 지드와 특별한 관계를 가졌고, 지드는 콘래드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네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째, 콘래드의 생활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출판 에이전트와 늘 써야할 작품의 마감으로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마감을 거의 지킨 적이 없을만큼 집필이 더딘 인물이었습니다. 이건 그와 아내의 지병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통풍 (gout)과 기관지염( bronchitis) 등이 재발하면 병원이나 휴양지에서 요양울 해야했고, 치료비와 요양비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집필도 재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런던으로 나와 고급호텔에 투숙하며 아내나 자신의 병을 치료하거나 프랑스나 스위스의 온천휴양지에 가서 요양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출판 에이전트로부터 돈을 빌려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에 더해 그는 그 주위에 모이는 유럽과 미국의 문학가, 극작가, 저널리스트들과 끊임없이 만찬을 즐겼습니다.

이 평전에서 그의 이런 생활방식을 ‘’사치스럽다(extravagant)’로 표현 했습니다. 이름이 난 작가이고 상당한 수입이 있었지만 언제나 빚에 허덕이고, 돈을 위해 글을 쓰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두번째, 그는 젊은 시절 프랑스와 영국상선을 탔던 그의 이력은 19세기 후반 항공이 도입되기 전까지 세계화의 첨단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혼 전에 이미 남미는 물론 호주와 뉴질랜드, 타이티, 싱가폴, 말레이지아, 버마 그리고 아프리카 콩고 등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의 이런 이력으로 그의 소설 전반은 영미 문학의 큰 줄기인 해양모험 장르 ( Sea Adventure)에 속하고, 영미권에서 다른 문화권을 ‘이국적(exotic)’으로 바라보는 다분히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구체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출신 비평가 애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도 그의 ‘문화와 제국주의( Culture and Imperialism)’ 에서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이 책을 통해서 보게된 영미 문학계의 작동방식입니다. 콘래드는 첫소설을 영국 Unwin을 통해 출판했고 1890년대 이후에는 Heinemann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미국에서 그의 책은 Doubleday 를 통해 주로 출판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콘래드는 자신의 출판 에이전트와 출판과 관련된 모든 비즈니스 계약을 관리하며 출판 에이전트와 업무적으로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가며 심지어 빚을 내기도 하는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책에 따르면 콘래드가 활동하던 당시가 출판 에이전트가 활성화된 초창기이고 그는 이 새로운 제도를 적극 활용해서 전업작가로 자신의 소설의 판로를 개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이전트를 통해 콘래드는 자신의 소설을 시리즈화 ( serialization) 을 통해 영국과 미국의 문학잡지에 실었는데, 이를 위해 기존의 소설 원고를 개작해 분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식으로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기존에 출판된 소설이나 단편소설집을 개작하며 새로 서문을 써서 원고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100여년 전 영미권에서 이루어지던 출판 산업과 출판 에이전트의 여러 상황을 엿보는 건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고, 현재도 그들의 비즈니스가 본질적으로 변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콘래드 생애 후반기와 관련된 것으로 1914년부터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 The First World War) 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 ( Russian Revolution)의 영향입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가로 현대 영문학의 초창기 작가에 해당되는 콘래드는 다른 영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을 세계대전의 전장으로 보냈는데 그의 큰 아들 보리스 콘래드 ( Borys Conrad)는 프랑스의 서부전선으로 보내집니다.

그리고 보리스는 전장에서 받은 포탄충격(shellshock)로 평생 정신적 충격상태로 살아갑니다. 콘래드의 사치스러운 생활방식은 보리스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빚더미에 올랐고 부인과 이혼하는 등 평탄치 못한 삶을 보냈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그가 러시아 제국 출신임에도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10대에 우크라이나를 떠난 그는 프랑스를 거쳐 영국에 정착해 사는 동안 단 두번 고향을 방문했을 뿐이고, 두번째는 세계대전이 터진 1914년으로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리던 때 독일 땅에 있던 그와 가족은 이태리를 통해 급히 영국으로 귀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평생 고독하게 혼자 일생을 개척해야 했던 그는 평생을 이방인으로 고독과 함께 살 수 밖에 없었고 이런 그의 경험이 그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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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황정은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습니다.

출간된지 10년이나 된 소설을 이제야 읽었는데 내용을 떠나 문체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독서가 대부분 논픽션이나 역사, 경제 관련이다 보니 소설을 상대적으로 덜 읽게 되는데 적당한 길이에 간결하지만 힘있는 문체를 경험하게 된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각각의 소설들은 단문으로 현실을 묘사하고 대화를 이어가는데 군더더기가 없어 좋았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글은 97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오무사’ 입니다.
구도심의 사십여년 된 오래된 전자상가에서 전구를 팔고 있는 노인과 그 가게의 이미지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습니다:

전구를 판매하는 가게였으나 가게를 밝히는 전구라고는 벽에걸린 노랗고 푸른 알전구 다발뿐이었다.

빽빽하다.

라는 말을 사전에서 만든다면 아마 그런 광경일 것

이 틀림 없었다.

그야말로 빽빽하다.

라고 생각한 뒤엔 아무런 말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눈앞

이 빽빽했다

- p102


최근에 읽은 어떤 글보다 정확하고 명징한 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의 무대가 구도심에 자리한 오래된 전자상가이고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에 따라 그 장소의 역사적 두께와 지층이 같이 사라져버리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은 처연하기도 하고 ‘개발’의 이름으로 역사와 삶을 밀어버리는 무식한 짓을 군사독재자가 죽은지 40여년이 지나도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냉면집이 있는 을지로의 파헤쳐진 공사장이 생각났고, 소설에 묘사된 전자상가를 보며 종로의 낙원상가와 세운상가가 겹쳐보이기도 했습니다.

읽어보니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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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Dennis Kim > 외젠 앗제 사진집

사진은 존재의 ‘흔적’입니다.
글과 함께 사진의 중요성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죠.

하지만 사진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하기는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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