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국가와 대칭국가 - 식민지와 한국 근대의 국가
윤해동 지음 / 소명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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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의 조선 강점과 식민지 시기 그 자체에 대한 연구는 그간 많이 봤지만 식민지시기의 국가(國家)의 의미와 식민지통치구조가 어떻게 작동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념을 떠나서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어떤 통치체제를 가지고 조선을 지배했고 구조적으로 어떤 차별이 있었는지 그대로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의 국가론을 이론적 프레임워크로 삼아 일제강점기의 국가론을 다룹니다.

일제강점이 끝나고 해방이 된지 70여년이 지났는데도 일제시기에 대한 통치구조에 대한 연구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습니다. 좋든 싫든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체계와 통치구조에 영향을 주었을텐데 이해가 쉽게 되지는 않습니다.

일단 이 책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베버의 국가론을 간략히 정의한다면, 베버는 근대국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 ‘물리적 폭력의 독점’으로 보았고 국가란’주어진 영토내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 사용을 실효적으로 행사하는 인간공동체’로 보았습니다(p373).

즉 여기서 물리적 폭력이란 치안과 안보를 담당하는 무력, 즉 군대와 경찰입니다.

하지만 조선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1910) 되면서, 왕조국가- 식민국가의 역사 진행과정을 거치면서 베버가 정의한 서구적 근대국가의 정의와는 다른 괘적을 가진 국가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조선동화정책 등이 과연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인가에서 전형적 근대국가의 정의와 차이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식민지시기 일본 식민권력의 통치형태를 대한제국과 같이 병존하던 통감부시기를 이중국가 (Dual state)시기로,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총독부와의 관계를 대칭국가와 식민국가(colonial state)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조선총독부의 통치메커니즘도 일본과의 관계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기 전부터 이미 대한제국의 군대를 무력화시켜 국가의 독점적 폭력을 무력화하기 시작했고, 대한제국을 일본에 병합한 후 한동안 대한제국의 권력과 통신부가 병존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때를 저자는 이중국가의 시기로 규정하였고, 대한제국이 일본으로 병합(annexation)된 이후 조선의 국가는 일본에 흡수도는 형태를 띄게 됩니다. 이후 일어난 군대해산이 바로 국가권력이 해체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조선총독부로 대표되는 일제의 식민권력은 총독에게 사법권과 입법권을 포괄하는 종합 행정권을 부여하였기, 조선에 주재하는 ‘조선군( 조선에 주둔하는 일본군)’에 대해 병력을 청구하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조선군을 포함해서 조선은행 그리고 이왕직 (李王職)은 일본 본국의 직접 통제를 받는 시스템으로 총독의 통치권력은 일본본토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았습니다.

식민국가를 대표하는 조선총독부는 저자에 따르면 영토와 독점적 물리적 폭력이 있으나 주권( sovereignty)이 부재한 근대국가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현저하게 부재한 식민지 조선은 따라서 거대 관료조직을 동반하는 ‘과대성장국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칭국가로 설명되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그 역사적 실체가 국토와 인민이 없는 반주권 (半主權)적 정체로서 조선의 왕통을 이어받은 망명정부(government in exile)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국제법적인 실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불운이 있었습니다. 또한 일제 강점이후 조선의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행위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뿐 아니라 미주 러시아 국내에서도 많은 활동이 있어 이는 사실 주권의 경합상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이 전반적인 이 책의 주요내용이며, 아래에서 ‘조선군’관련 내용을 부가적으로 말하려고 합니다.

조선군은 최초 조선주차군이라는 임시주둔 형태로 조선에 들와서 조선의 치안을 위한 활동을 하다 193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일본의 중국 침략을 위한 선봉부대가 됩니다. 일제가 중국과 만주침략을 위해 조선을 병참기지로 만든 건 다 알고 있지만 조선군의 주둔목적이 일본의 대륙침략이었다는 사실은 좀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1931년의 만주사변부터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까지 조선군은 일본의 중국침략애 깊게 관여했습니다. 태평양전쟁 이전까지 러시아를 제1의 적으로 규정한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이후 함경도 지역을 사실상 군정으로 통치하며 이 지역을 러시아와의 결전을 대비한 군사요충지로 만들었습니다.

조선군이 남하하여 제주도와 군산 등지에 주둔하게 된것은 미국과 적대하게 된 태평양전쟁이후였습니다.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 (조선군)이 중일전쟁과 제2차세계대전에서 어떤역할을 했는지 찿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서구학계에서 제2차세계대전의 범위를 더 넓게보고 시기를 확장하면서 최초로 이 대전이 발생한 지역과 시기가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아니라 사실은 일본이 1931년 일으킨 만주사변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구인들에게 적대적 공산국가인 중국의 군벌시대나 중국공산당 집권 이전 국공합작을 통한 일제에 대한 저항이 상당히 낯설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기존의 유럽중심적 시각에서 독일 나찌와 자유주의 서구진영의 대전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새로운 시각에 따르면 제2차세계대전은 유럽에서 먼저 일어난 전쟁이 아니라 중국에서 먼저 일어난 전쟁이었고, 이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중국을 도발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이전에 일어난 러시아혁명과 제1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일어난 혁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해도 중국에서 일어난 일본의 팽창적인 침략정책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아는 한 미국은 공산화되기 전 중국을 공산주의의 최고 방어선으로 생각하고 장개석 총통을 지원하고 1930년대 중국에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국가론이 중요한 이유를 한마디 덧붙이자면,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이후 2022년 현재 한국은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보수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청년들이 희생당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국가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고, 그게 국가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포함해 행정자치부 장관까지 모두 최근에 일어난 10.29참사에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정권을 맡긴 이유가 국민의 생명보호에 있는데도 ‘법적 책임’운운합니다. 해방되고 정부가 수립된지 70여년이 넘었는데도 정부의 이런 무책임한 경우를 보게 될 줄 몰랐습니다. 지금이 주권이 없는 식민지 시대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고시출신 고위공직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문제고 조직의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특정할 수가 있지요. 비정상을 정상으로 빨리 돌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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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박물관과 식민주의 - 식민지 역사의 재현과 문화재 관리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2
오영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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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출신 고대사학자인 저자가 정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사(前史)입니다.

본문 345쪽으로 총 4부로 구성된 책입니다.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이고, 따라서 초기 수장한 유물도 역시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인계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제는 식민지배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이론적 역사적 논거를 만들기 위해 평양의 낙랑고분과 가야 신라의 고분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그 유물을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전시했습니다.

목적이 정치적인 만큼 출토된 유물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연관성, 근대를 대표하는 일본과 서구제국의 우월성을 보여주고 조선의 문화가 지체된 문화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조선총독부 하부 조직으로 시작되어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라는 산업박람회 미술관에서 시작되었고, 조선의 역사적 유물을 발굴 전시하는데 조선인들이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유적의 발굴과 그 보고서는 전적으로 조선총독부와 일본 내각의 예산으로 충당되었고, 발굴은 도쿄제국대학 (東京帝國大學)과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출신의 고고학자, 역사학자, 인류학자들이 발굴을 주도하고 발굴계획 역시 제국대학출신 조선총독부 관료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정체적 역사관에 입각해 조선의 역사를 서술한 겁니다.

1920-30년대 조선의 고분발굴을 주도하던 일본인 학자들이 조선고고학을 처음 체계적으로 연구했다는 말이지만 그 시각이 정체사관을 기반으로 해서 현재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이 패망한 후 당시 총독부 박물관 주위에 있었던 일부 유학파 출신 지식인들이 미군정의 명령에 의해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인수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새출발을 했습니다.

당시 경성제대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던 후지타 료사쿠 (藤田亮策),그를 이어 총독부 박물관 주임이었던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로부터 박물관 업무를 인계받은 이가 독일 뮌헨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던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재원 (金載元)입니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로 대표되는 식민사관은 1920-30년대 당시 발굴된 가야고분의 유물로서 정립된 이론이고 일본은 왜가 가야지역을 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가야지역을 찍어 고분발굴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보고서를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발굴보고서 작성과 연구에 일본 최고의 두뇌들을 활용했던 것입니다.

불행한 것은 고고학 초기 전사가 모두 일본인들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의 고고학과 역사학은 이런 식민사관의 학맥과 끊을 수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고 이를 계승한 서울대 역사학 학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이책의 총평을 하며 마무리하려 합니다.

우선 최근에 나온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서라는 점이 의의가 있습니다. 다만 중복되는 내용이 많이 발견되는 건 흠입니다.

두번째 일제의 고적발굴조사의 의사결정과정, 즉 학자와 총독부 관료들의 입장차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점입니다. 이들은 조선의 고적발굴업무에 결코 일사불란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조선의 고고학 발굴사업이 철저히 일본의 제국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겁니다. 물론 발굴목적은 조선의 ‘정체성(停滯性)’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들어진 고대사’라는 주장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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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공부하신 작가 최예선의 세번째 책입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오래전에 ‘청춘남녀 백년전 세상을 탐하다 (모요사,2010)’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막 생기기 시작한 초창기의 저작으로 생각되는데 제 서가에서 잠자다 얼마전 읽었습니다. 이 책이 대체로 알려진 공공건물 위주의 근대 건축유산을 답사하는 경우라면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은 촛점이 온전히 가정집에 맞추어져 있고 집에 대한 건축 뿐만 아니라 주거생활, 인테리어, 가구 등도 같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책의 디자인도 대단히 강렬합니다.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살던 운현궁(雲峴宮)의 기와지붕과 운현궁 양관(洋館)이 겹쳐진 흑백사진의 배경으로 보라색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책의 디자인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경관을 구성하는 건물들의 현재모습은 직접적으로 일제시대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게 현실이고, 한국의 대부분의 서양식 건물들은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일제에 의해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소위 ‘근대’라고 불리는 시기의 건물들과 도시계획 등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을 이루는 공간과 장소의 기원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건축물의 경우 궁궐이나 영사관 등 공공건물에 대부분 촛점이 맞춰져 당시 사람들이 실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 책은 그런 단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일정부분 수행합니다.

총 380여쪽에 이르는 이책은 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지막 6장과 에필로그는 거의 집에 대한 저자의 수필로 보아도 무방하며, 건축 문화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 당시 문화계, 특히 문인들과 모던 취미 등에 대한 글들은 모두 1-5장을 중심으로 서술됩니다.

즉 1920-30년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조선의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은 양장을 차려입고 입식샹활을 하며 클래식을 축음기로 듣고 커피를 마시며 생활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모던한 생활공간이 필요했고, 이 필요가 도시형 한옥부터 불란서 양관 그리고 문화주택에 이르는 다양한 주택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모던한 생활은 곧 서구적인 생활로 인식되어 조선의 고위관리나 귀족들이 그들의 서구취향에 맞춰 대거 서구의 가구를 외국에서 들여왔기, 정동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호기심어리게 조선의 전통가구를 집에서 사용해 왔다는 겁니다.

전통과 모던의 혼성모방이 일어났고, 이에 발맞춰 종로와 을지로의 가구점 및 서양잡화수입업체들이 호황을 누렸습니다.

1945년 이전까지 주로 경성을 중심으로 운현궁을 포함해 잘 알려진 근대 가옥에 대한 건축 그리고 당시의 문화와 생활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접근법을 시도한 책으로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씨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은과모음,2011)’ 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시기가 근대가 아니고 1970년대 후반 이후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환경을 디자인, 문화적 측면에서 다루고 있으며 당시 아파트 인테리어 및 가구 등의 생활문화에 대한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소개하는 이 책이 우리 조부모 세대의 주거에 대한 글이라면 박해천 교수의 책은 국가주의 산업화 시대 주거에 대한 책으로 지금 한국전쟁을 겪으신 우리 부모세대의 주거에 대한 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도 산업화 시대 집에 대한 후속작을 펴낼 예정이라고 하니 어떤 글이 나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일제시대 건축사 및 도시사와 관련해 몇가지 언급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전문적인 영역이다 보니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로 도시답사에 대한 글들이 많지만, 서울의 근대적 도시계획이나 일제가 만든 신도시 영등포, 흑석동 등에 대해서 저는 문헌학자 김시덕 교수님의 책을 보고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경성 전도(大京城精圖,1936)에 대해서 처음 본 책도 김시덕 교수의 책입니다. 김교수의 도시답사 시리즈 중 첫번째 책 ‘서울선언(열린책들,2018)’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경성전도에 대해서 책에서 언급했듯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도판으로 출판했다고 했지만 사실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발행부수가 얼마 되지 않아 쉽지 않습니다.

또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도시계획 및 일제시대 도시개발역사에 대한 선구자이셨던 서울시립대 고(故) 손정목 교수의 책도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마 최초로 일제시대의 서울 도시개발계획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이분 책이 대부분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발표되었는데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도시개발계획은 그 자체로 근대화, 경제발전과 연동돼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따로 생각할 수 없는데, 아무튼 선구적 책들이 절판되고 구할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시경관은 사진가들과 인문학자, 문학가들의 관조의 대상이었고 그 자체로 모더니즘의 상징으로 기능했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로서도 현재 서울의 풍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또는 도시계획의 입장을 뛰어넘는 사는 장소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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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noa 2024-01-07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모던의 시대 우리집>의 저자 최예선입니다. 책을 꼼꼼히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자료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근대서울 자료 중 하나인 <대경성부대관>의 내용을
보실 수 있는 링크를 적어둡니다. 근현대 도시에 관심이 많으시니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https://museum.seoul.go.kr/CHM_HOME/ebook/ecatalog.jsp?Dir=67&catimage=

혹 링크가 깨진다면 서울역사박물관>학술자료>발간도서 에서 검색해보시면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연구 자료들이 더 많이 공공화되어야 더 즐거운 연구들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자료들의 바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인하대학교 정종현 교수의 책으로 제가 읽은 두번 째 책입니다.

전작, ‘제국대학의 조센징(휴머니스트,2019)’가 워낙 강렬하게 다가온 탓으로 같은 저자의 이 책도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국대학 출신의 지식인들의 계보를 중심으로 일제시대 이래 한국 기득권층의 사회적 기원을 밝힌 역작이어서 그렇게 느낀 것 같습니다.

저자도 이 책이 전작의 후속적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셨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전작보다는 평가를 박하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한국역사연구회의 웹진 <역사랑(歷史廊)>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라고 서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기 대문입니다. 아무래도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짧은 글들이 연재되기 때문에 각 인물들에 대한 삶과 시대에 대한 서술이 생략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이 책에 실린 인물들의 삶이 일제시대와 해방 분단에 걸쳐있다보니 각 시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패망과정이나 한국의 분단과정이 간단하게 서술될 성격도 아니고 특히 일제패망이후 미군정 진주가 시작될 때까지의 시기, 미군정 시기, 그리고 정부수립과 한국전쟁 시기까지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이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데 그냥 별다른 언급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역사연구자가 아닌 국문학 연구자의 글이기 때문에 어떤 전문성을 더 바라기는 어렵지만 전작에서 보여준 지식사회학의 관점애서 바라본 일제하 기득권층 연구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일제시대 독립운동사를 다룬 많은 글들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일 경력이 있는 군사독재정권이 의도적으로 역사서술에서 제외해 버려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도 받지 못했던 이들이기 때문에 한국의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삶이 복원되고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파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김사국, 김사민 형제의 글을 역사 복원 측면에서 의의가 있고, 정반대편에서 일제에 철저하게 부역한 밀정(密偵), 선우순 선우갑 형제의 일화도 일제부역자들이 끼친 악영향을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눈여겨 봐야할 인물로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를 세웠고 정부수립 후 우파인 한민당에서 재정을 담당했던 김성수와 일제시대 최대기업 중 하나였던 경성방직과 삼양사를 세운 김연수 형제에 대한 글입니다.

근본적으로 당시 조선을 통치했던 조선총독부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그런 큰 기업과 언론사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 자명한데, 과연 이들을 ‘민족자본가’, ‘민족언론’을 세운 위인이라고 치켜세우는게 맞느냐 하는 의심입니다.

저는 이들이 모호하게 처신해서 나름 부와 명예를 지켜왔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들의 친일 행적은 논란이 있을지언정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위 국산품 애용 캠페인을 벌려 품질이 일본 제품보다 좋지 않은 경성방직의 제품을 국민들이 구매해서 부를 축적했눈데 그 후손들이 아무런 공헌도 없이 그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봐야 할 과제입니다.

그런면에서 일제 패망이후 산업시설이 북한지역보다 현저하게 적었던 남한에서 해방이후 어떻게 큰 대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현재 한국 재벌들의 기원을 밝히는 일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가 남긴 적산 (敵産)이 미군정에 의해 어떻게 분배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봐야 합니다.

대략 280쪽에 이르는 작은 책으로 앞으로 좀 더 내용 보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일제시기와 해방이후를 다루는 책으로 현대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입문으로 일독하기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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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조선에 관한 책입니다. 17세기 조선 현종(顯宗)때 일어난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1670-1671)’이 이 책의 주제입니다.
2008년 나온 책이고 아마도 대기근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다룬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량은 320쪽 분량으로 대중역사서로 적당한 분량입니다.
제가 읽은 책은 2014년 초판 4쇄로 아마 기후와 연관된 17세기 역사서가 드물어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후속작이나 개정판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역사학계에서 17세기를 ‘소빙기(little ice age)’로 인식하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조선의 소빙기 기후변화에 그에 따른 대기근의 영향이 농업경제(農業經濟)가 근간인 17세기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핍니다.

시기에서 보듯 이 시기는 조선이 청의 침략을 받아 굴복한 병자호란(丙子胡亂,1636년 12월-1637년 1월) 이후의 시기입니다.

병자호란 이전에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유교적 이상주의, 명분론을 내세운 서인이 집권하고 그 명분론때문에 당시 후금, 즉 청나라의 침략을 받은 것이 병자호란이었습니다.

인조이후 효종 그리고 그 이후인 현종 당시가 이 대기근의 시기로 저자인 김덕진 교수는 17세기 특히 현종 당시는 대기근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현종당시 일어났던 예송논쟁도, 그리고 김육이 실시한 조세개혁인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한 것도 현종 재위 당시를 강타한 끊임없는 자연재해, 특히 경신대기근의 영향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17세기는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이 있었던 16세기나 18세기 철인군주였던 정조 당시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현종은 그 후대임금인 숙종보다 대중적인 주목이 덜합니다. 장희빈과 숙중 그리고 숙종 당시의 정치적 격변이 사극의 좋은 소재가 되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경신대기근의 참혹한 실상은 임진왜란 당시의 참혹한 실상과 견줄만한 자연재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갑작스런 기후변화로 농사를 지울 수 없게 된 농민과 여러 하층민들은 굶주려 관청으로 달려가 밥을 달라고 하고 너무나 굶주린 나머지 자식을 버리거나 줄기는 사례가 나타나고 임금과 국가는 비축해둔 식량을 모두 털어 백성을 구제합니다.

고위관료들은 이 와중에도 국가의 재정을 걱정하고 재원조달 방안을 궁리하지만, 이런 모든 결정과정이 정치과정이기에 정파에 따른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백성들을 구휼(救恤)하는 과정에서 부정이 일어나고 폭리를 취하는 무리가 나타납니다.

저자가 조선후기경제사를 전공하신 분이라 현종 재위시의 진휼책(賑恤策)을 알기쉽게 설명하셨고 당시 최대 당파였던 남인과 서인과의 관계도 알기 쉽게 설명하셨습니다.

주목할 것은 당시 조선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서인(西人)의 거두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이 현종이 실시하던 구휼정책을 비판하고 백성들에게 이들이 얼마나 도움이 안되는 존재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산림의 영수이면서도 백성들의 후생은 생각하지도 않고 현종이 어떻게든 재정을 마련해 굶주린 백성을 먹으려던 마음을 무시하고 자신의 수하를 시켜 비판으로 일관한 송시열의 행동은 납득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즉 왕실 정치에 영향력은 커도 백성의 삶에 별 도움이 안되는 존재였다는 점입니다. 조선 중기의 중요한 논쟁인 예송( 禮訟)이 최악의 자연재해가 일어나 사람들이 굶어죽어가는데도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예송논쟁이라는 것이 장자가 아닌 현종이 즉위한 이후 선대왕 효종의 계비의 장례에 대한 상복의례에 대한 것인데, 이런 하등의 생산성이 없는 논쟁에 조정의 고위관료와 유생들이 논쟁하는 것이 맞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대의 입장에서 봐도 현종의 재위시가 모두 가근으로 시작해서 끝났다고 하는데, 이 말은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자식을 버리거나 죽이고 부모를 버리고 먹을 것을 찾아 유랑을 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고고한 유학자들의 명분논쟁을 한 것이죠. 당대 일반 백성들도 이런 고위관료들과 송시열같은 유학자들의 이해 못했을겁니다.

제가 보기에 송시열은 지나친 명분론으로 조선의 역사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명나라와 주자만 숭상한 이상주의자이자 몽상가라고 평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17세기 이후 19세기 그리고 20세기초까지 서인 특히 완고한 서인 노론의 명분론과 외척세력들이 조선사회의 성장잠재력을 좀먹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시작이 송시열이기 때문입니다.

송시열과 대척점에 서서 사실상 대기근 극복을 위한 정책을 주도란 남인출신 재상 허적(許積)은 이책의 또다른 주인공으로 실질적인 구휼정책을 주도해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해냈습니다. 국가의 복지정책의 강도는 오히려 현재보다 훨씬 낫지 않나 싶습니다. 현 보수정부의 각자도생식 복지정책보다 말입니다.

주목할 점은 대기근으로 인한 재정적자로

첫째 숙종때 재정확보를 위해상평통보라는 화폐를 발행했다는 것입니다. 즉 돈을 찍어서 재정확보를 한 것이죠.

둘째, 역시 국가 재정확보를 위해 부자들에게 신분이동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돈을 얼마씩 내면 가령 노비에서 양민으로 신분을 올려준 것입니다. 대기근이 사회계급의 변동을 초래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돈을 주고 산 신분이동이 처음 허용된 때도 대기근 이전인 임진왜란 직후로 당시도 전쟁으로 국가재정상황이 엉망이어서 다른 재원조달방식이 없어서 이런 조치를 취했고 현종 당시가 두번째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일정하지 않은 농업생산량과 기후에 따라 변화는 작황은 그것이 인간의 생존에 직결되는 것이기에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고 농본사회인 조선도 결코 예외일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17새기의 이런 먹고 사는 문제는 조선이 그리고 대한민국이 농업사회였을 당시까지 길고 긴 영향을 남겼습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수립 당시에도 농업국가였고, 대부분의 공업시설은 북한지역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농업사회의 근간은 1970년대 공업화계획이 이루어져 현실화되기 전까지 한국사회의 근간은 농업이었습니다.

따라서 근세와 근대역사륵 볼 때 농업생산성은 생각보다 매우 큰 함의를 가진 걸로 생각됩니다.

끝으로 17세기 조선을 덮친 대기근 이외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20세기에 일어난 두 대기근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아래 소개하는 두 책은 기근(Famine)과 관련해 꼭 읽고 싶은 책들입니다.

Red Famine(Doubleday,2018)
스탈린 시기 현재의 우크라이나 땅에서 일어난 대기근이 관한 책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근래 더욱 주목받은 책입니다. 스탈린의 계획경제정책으로 인한 참사라는 일반적 평가를 받습니다.

Mao’s Great Famine(Bloomsbury,2018)
위의 책과 비슷한 맥락( 공산주의 계획경제)이지만 1958-1962년 마오쩌뚱 치하 중국에서 일어난 기근에 대한 책입니다. 약 45백만의 중국인들이 굶어죽은 비극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한국어판도 번역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두 책 모두 서구의 역사가들이 저술한 것으로 보수적인 그리고 자유주의적인 시각에서 공산주의를 평가하는 시각에서 쓰여진 것입니다. 자유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서구적 시각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먹을 것이 없고 면역력이 저하되어 굶어죽거나 병으로 죽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 젖먹이 아이들을 놔두고 어미가 죽거나하는 경우도 있고 먹을 것이 없어 자식을 버리거나 죽치거나 먹는 경우도 았었다고 하니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심란하고 울적했습니다.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기본적인 먹거리가 해결되지 못해 결국은 사회가 요동치게 된다는 걸 경신대기근의 사례로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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