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릴 수 없는 배 - 세월호로 드러난 부끄러운 대한민국을 말하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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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만큼이나 우리들의 의식 속에 가라앉아 버린 배.

 

이제는 관심 밖으로 사라져가려고 하는 배.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배, 잊어서는 안 되는 배.

 

지지부진.

 

세월호에 관해서 어느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배를 인양하지도, 실종자를 더 찾지도, 그렇다고 원인 규명이 되지도, 진상규명이 되지도, 책임자를 제대로 밝혀내고 처벌하지도(선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한다든지, 선주일가에게 전적인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해결밖에는 되지 않는다) 않고 있는 상태.

 

정말로 세월호는 우리가 '내릴 수 없는 배'린 말인가?

 

배는 한 번 타면 내려야 한다.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릴 수가 없다. 내리는 순간 죽음이다. 이건 처음부터 타지 말았어야 할 배다. 그런데, 이미 벌어진 일, 이제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진상규명이다.

 

이 책은 세월호로 인해 드러난 우리의 선박운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니, 근본에서 시작하자고 한다.

 

왜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도대체 배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교통사고가 나면 교통사고의 원인을 캐고, 교통사고를 방지할 대책을 세우는데 배가 가라앉았고, 이런 일은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데, 누구도 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책의 저자는 분노하고 있다.

 

세계최대의 조선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배를 일본에서 수입해 쓰고 있는 나라, 배를 철저하게 민간에게 맡기고 공적인 부분에서 손떼고 있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배 사고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선진국들은 배를 통한 교통도 공적 자산으로 분류하고 운영한다고 한다. 배는 대중교통수단이고, 버스 공영화를 주장하듯이 선박공영화를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일이고(낙도 주민이 배 편이 없어서, 또는 버스 편이 없어서 다니지 못해서야 어디 인권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는가)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가 이야기해야 한다고 한다. 세월호를 잊지 않는 길은 바로 이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체제를 바꾸는 것.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민간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며, 민간은 이익을 위해서 낡은 배를 수입하고, 안전검사는 대충하며, 비행기 승무원들이 해상구난 훈련을 하는 장소를 지니고 그런 훈련을 하는데도 배의 승무원들은 그런 훈련을 받을 장소도 없는 상황.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배의 승무원들, 형식적인 안전검사... 게다가 이익을 남기게 학생들 수학여행을 배로 하라고 공문을 보내는 교육청을비롯한 공공기관들...

 

이들을 바꾸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바로 선박의 공영화다. 돈도 얼마 들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있는 일이다. 그렇게 하게 해야 한다. 그게 세월호를 잊지 않는 길이다.

 

글 하나하나에 분노가ㅡ울분이, 답답함이 묻어 있는 책이다. 답이 보이는데, 그 답을 애써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냐고 이 책의 저자는 절규하고 있다.

 

이 목소리를 들으라고, 제발, 다시는 세월호처럼 바닷속에 수장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그렇게 외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지금 우리나라는 과연 이 책에서 말하는 '유령선'인가, 아님 '난파선'인가? 이 배의 승무원들은 어디 갔는가?

 

우리 제대로 승무원을 뽑아야 한다. 그게 바로 선박의 공영화다. 공영화를 통해 충분히 세월호와 같은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읽기에 상당히 힘들었다. 저자의 분노가, 슬픔이 책을 통해 내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는 세월호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니 내릴 수가 없다. 제대로 해결될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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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하루 종일 인터넷만 해요
한덕현 외 지음 / 시공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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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가 하루종일 스마트폰만 해요"라고. 물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스마트폰 중독에 대비해야 하는가'라는 글이 실려 있기는 하지만, 지금 대세는 인터넷 중독이 아니라 스마트폰 중독이다.

 

아참, 이 책에서 가장 조심하는 말이 '중독'이라는 말인데... 의학적으로 아직은 '인터넷 중독,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인터넷 중독,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말을 쓴다. 이 때 '중독'이 꼭 의학적 용어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심한 몰입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이 책에서는 '중독'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터넷 중독 혹은 인터넷 게임 장애의 경고 신호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마디로 '일상생활의 파괴'다. 지나친 인터넷 사용으로 낮에 깨 있고, 밤에 자는 가장 기초적인 생활 패턴이 무너진다.

 

둘째 학교나 직장에서 능률이 떨어진다. 즉 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지거나 학교나 직장에 잦은 지각, 결석, 조퇴를 한다.

 

셋째 인터넷 사용 문제로 가족 간의 불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넷째 인터넷 외에 다른 일상생활이 없다. 친구와의 다른 놀이, 운동, 가족과의 여행 등 삶의 다른 생활이 줄어들어 거의 없는 상태다.

 

다섯째 온라인/오프라인의 대인관계 균형이 무너진다. 즉, 오프라인에서 대인관계의 폭이 확연히 줄어들거나 온라인상의 대인관계가 지나치게 늘어난다. (6-7쪽)

 

이 정도는 의학용어를 떠나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을 인터넷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도 그래도 해당된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인터넷 중독을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바꾸고, 그에 대한 분석을 다룬 책이라고 봐도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달로 정보통신기기는 하루가 멀다하고 성능이 좋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전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정보화시대에 돌입한 나라 아니던가. 지금 초중고 학생들 중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학생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요즘 청소년들은 컴퓨터 앞에 잘 앉지 않는다. 커다랗고 이동이 불가능한 기계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하루를 모두 보내고 있다. 눈 떠서 눈 감을 때까지 이들은 스마트폰이 잠시라도 없으면 불안해 한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은 물론 게임까지 다 할 수 있기에 스마트폰은 제2의 자신이 된다. 누가 요즘 전자우편(이메일)을 보내는가. 그냥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하면 될 것을.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게임을 하고, 사회 생활을 한다. 지금은 물건을 사고 결제도 스마트폰으로 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 사회로 변모가 됐는데, 그 사회를 거부할 수는 없다. 다시 '러다이트 운동'을 벌일 수는 없으니 변화된 정보화시대에 적응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에서 그것을 '인터넷'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을 두고 어떤 갈등이 벌어지는지, 어떤 문제가 불거지는지, 그것은 개인의 성향과 또 가정의 환경과 어떻게 곤계를 맺는지,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임상실험의 결과를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치료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펴낸 책이기에 설득력이 있다. 막연히 인터넷 하지 못하게 하라가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인터넷 중독이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정의 문제, 또 사회의 문제임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문제가 주어졌으면 사회가 힘을 합쳐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총 5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 양날의 검, 인터넷 2장 인터넷 중독, 인터넷 게임 장애란? 3장 인터넷 중독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4장 그럼 치료는 어떻게 하나요? 5장 앞으로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 이다.

 

책의 순서대로 인터넷 중독에 대해서 알게 되고, 준비를 할 수 있게 편제되어 있다. 여기에 우리는 지금 현실대로 인터넷을 스마트폰으로 치환하여 생각해 보면 지금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한 상태인데... 거기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주어진 기기, 그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반응을 보이거나 열광적인 수용반응 떠나서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라는 생각으로, 그 도구를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참고로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마, 이 다음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차이에 대한 더 구체적인 연구 결과에 따른 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 인터넷 중독에 관한 책이지만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스마트폰 중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면서 읽은 책이다. 출판사에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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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깊다 2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1
전우용 지음 / 푸른역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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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시끌시끌한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로 정리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국정화를 추진한다는 얘기는 사상이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단일화, 일원화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사물도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같은 각도에서 보더라도 어떤 마음을 지니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역사에 대해서 어떤 정통한 사관이 있을 수는 없다. 역사는 여러 사관들이 부딪히고 부딪혀 정리되어 가는 과정에서 형성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역사다.

 

그런 역사를 단 하나의 관점으로만 기술하려 하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그냥 어떤 관점에 대한 강요일 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바로 지금이 역사를 공부해야 할 때다. 이상하게도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고 있는 듯한 느낌,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뒤로만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 때, 역사는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

 

역사를 알아야 거꾸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는 일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고, 역사의 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사람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 당대만이 아니라 역사의 시대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기록되고 어떻게 판단될 지 생각한다면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하여 지금은 역사를 공부해야 할 때다. 그것이 꼭 필요한 시대다.

 

이 책은 "우리 역사는 깊다"의 2권이다. 7월 18일부터, 12월 30일까지 일어난 일들 중에서 지금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역사적 사실들 30편을 골라 이야기해주고 있다.

 

첫 장면이 을축년(1925년) 대홍수부터 시작한다. 엄청난 비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던 때... 이것에 그치지 않고 저자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본다. 4대강 사업이 을축년 대홍수와 연결이 되는데... 홍수와 가뭄을 방지하기 위해 4대강을 정비한다고 하더니... 어느 것 하나 효과적으로 이루어내지 못한 상태...

 

엄정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자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자신의 관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관점을 이 책에서 드러내고 있다.

 

2권의 첫장면에서 대홍수를 이야기하면서 4대강을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이렇게 자신의 관점을,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자연을 개조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자연의 위험을 역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자연재해는 그 믿음을 수시로 붕괴시키곤 했다. 자연재해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형성된 균형 관계가 일시적이고 잠정적임을 깨우칠 수 있는 교훈이다. 그 교훈이 궁극에서 가르치는 바는, 자연을 함부로 길들이려 하지 말라는 것. 인간은 자연에 얹혀사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 아닐까.  25쪽

 

그리고 마지막 부분인 12월 30일은 청와대를 다루고 있다.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이름이 바뀐... 그런 역사적 사실. 처음 알았다. 경무대가 건물이 아니라 지명이었음을... '대(臺)'라는 말이 평지보다 높은 곳을 의미한다는, 인간의 세상보다는 천상의 세상에 가까운 곳임을...

 

그런데도 우리는 '경무대'를 건물의 이름으로 알았고, 이 이름을 다시 '청와대'로 바꾸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으니...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자, 그 무지함으로 비웃음만 사면 좋으련만, 역사의 바퀴를 거꾸로 돌리기도 하니...

 

이름을 잘못 붙인 것을 넘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들어서 명심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름을 잘못 지은 것이 무슨 대수인가. 그보다는 대통령 관저로서 '대'라는 이름에 충실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때로는 천문대가 되어 하늘에 비치는 민심을 살피고, 때로는 무대가 되어 국민들 즐겁게 해주면 좋지 않은가.   321쪽.

 

우리 역사의 날짜들을 짚어가면 우리 역사의 깊이를 보여주는 책인데, 이 마지막 장면은 너무도 절묘하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해주길 바라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역사를 반복하게 하지 않는 길이라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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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깊다 1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1
전우용 지음 / 푸른역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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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역사를 뒤로 돌리는 행위는 하나의 희극(코미디)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코미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웃지도 못하고, 분노도 못하고, 황당함에 입을 다물고만 있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 역사에 무지한 사람, 유교가 지배적이었던 조선시대에도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역사를 공부해야 했고, 임금들의 필수 학문에도 역사가 있었는데, 이 나라 정치인들은 역사를 외면하고, 무시하고 있으니...

 

역사의 바퀴를 뒤로 돌리면서도, 사회를 퇴행시키면서도 그것이 퇴행인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역사학자들... 사회에서 존재가 미미한 사람들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 이제는 '인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때인데... 이런 인문학 중에서도 '역사학'은 더 위기에 처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펼치면 이런 구절이 먼저 나온다.

 

"이런 학문이 어떻게 여태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

 

역사학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말라죽어가는 학문인데, 이런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 학문이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신기해 하는 다른 학자의 말에 이 책의 저자는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수치화되고 실용화된 학문이 아니면 취급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학문은 이런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이것이 현실임을 어찌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학문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우리 역사는 '깊어진다'

 

이런 '깊은 우리 역사' 알면 우리가 지금을 잘살 수 있다. 아니, 잘살기 위해서 역사를 알아야 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의 우리가 그냥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라는 '시공간의 축적'을 통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그러니 역사를 모르는 사람, 역사에 무지한 사람,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은 지금을 제대로 살 수가 없다.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뀐 교과서를 다시 국정으로 되돌리려는 정치권이 그런 교과서 편찬의 역사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듯이 역사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중요한 학문이다.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의 1권은 1월부터 7월까지 중에서 우리 역사에서 기억할 만한 일들을 다뤄주고 있다.

 

바로 첫 장이 '경복궁 잔디밭과 일제의 공간정치'(1월 7일)이고, 마지막 장이 ''위생'의 이름으로사생활에 개입하는 국가, 생체 정보 유출의 위험성'(7월 15일)이다.

 

각 날에 해당하는 역사적 사건들이 많겠는데, 이를 60개로 추려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데, 과거의 역사가 현재에도 지속됨을 각 장마다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이렇게 기술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고, 역사가 과거에 머문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작동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첫장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지금 우리들은 마당있는 집을 꿈꾸고, 그 마당에 파란 잔디를 심기를 꿈꾸지만, 우리나라 전통에서 잔디는 한자어로'사초(莎草)'라고 하고, 이 명칭에서 '사'자는 '죽을 사'자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회피했다는 사실.

 

즉, 잔디는 죽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풀이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일제가 경복궁을 헐고, 그 자리에 잔디를 심은 것은 조선이 죽었음을 우리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함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유래는 이런데, 우리는 지금 잔디를 못 심어 안달이니... 역사를 몰각한 모습이 이렇게 유지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1권에 30개의 역사적 장면이 있는데... 하나하나 다 읽을 만하고, 현재하고도 잘 연결이 되어서 역사학은 결코 죽어서는 안될 학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덧글

 

이 책의 1권은 알라딘 이벤트 이 달의 출판사 응원 댓글에 당첨되어 받았다. 이렇게 좋은 책을 보내준 출판사 '푸른 역사'에 고마움을 표한다. 푸른 역사,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하는 '청사(靑史)'다. 앞으로도 좋은 책을 많이 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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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식탁 -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
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 권지현 옮김 / 판미동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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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은 우리가 살기 위해 차리는 밥상이다. 이런 식탁에 무시무시한 수식어가 붙어 제목이 되었다.

 

"죽음의 식탁"

 

그 식탁에 앉으면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면 그 식탁은 무엇일까? 바로 농약으로 오염된 작물이 올라오는 식탁...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하겠지만...

 

사실, 우리가 농약으로 오염된 식탁에 앉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정말로 몰라서 앉게 되거나, 아니면 굶주려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농약에 오염되어 있음을 알고도 먹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이 죽음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믿을 수 있다고 여기는 정부기관에서 최대허용치를 정해놓고, 그 허용치 범위내에 들어있는 화학요소들은 안전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식품의약안전청'쯤 되는 정부 기관이 이 음식은 먹어도 된다고 하는데, 어느 누가 먹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런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또 그 기준에 따르면 과연 안전한가?

 

이 점을 세밀하게 따져서 추적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결론을 말하면 기준은 기업에서 온다와 그 기준을 따라도 절대로(!) 안전하지 않다이다.

 

그러면 우선 기업은 왜 안전하지 않은 기준을 제시하는가? 그것은 이윤 때문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에게서 인간의 삶이나 인간의 건강을 목표로 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습다.

 

이런 기업에 근거를 제공해주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기업에서 막대한 연구자금을 받으며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는 연구결과를 만들어낸다.

 

이것보다 더 안 좋은 점은 이 과학자들은 다른 과학자들이 그 기업 제품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면, 반대 결과를 도출하는 연구 결과를 어떻게든 만들어내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업의 임원들이 정계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정부의 규제기관의 책임자나 수장으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작은 제목인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에 대한 답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그 기업에 봉사하는 과학자들, 그리고 이들과 결탁되어 있는 관료들에 의해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결탁이 우리의 식탁을 '죽음의 식탁'으로 만들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일일최대허용량이라는 허구다.

 

일일최대허용량은 하루에 그 이하로 섭취했을 경우에는 인체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를 비판하는 증거들이 이 책에 많이 나와 있다.

 

사람마다 다른데... 그의 기질이나 건강상태, 신체조건, 또 유지해온 식생활 등등이 모두 다른데, 이들을 일괄로 처리해서 일일최대허용량을 정한다는 것도 우습고, 독성이 과연 어느 정도 양이 차야지만 독으로 작용하느냐 하는 문제도 있고.

 

이 책에서 이를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0+0+0=기형 60%다. 전혀 무해하다고 알려진 화학요소들이 여럿이 결합하면 인체에 해로운 결과가 나올 확률이 60%나 된다는 사실... 이를 확장하면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아주 조금씩, 공식기관의 발표대로 일일최대허용치보다 적은 양을 섭취하더라도 인체에는 해로운 확률이 60%이상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야말로 죽음의 식탁이 된다. 이런 죽음의 식탁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임을 잘 보여주고 있고.

 

이런 죽음의 식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 농약 사용 금지를 전면화하는 것... 그리고 유기농 제품을 먹어야 하는 것. 각종 화학제품들의 생산을 줄이고, 사용을 하지 않는 것.

 

이렇듯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무서워지는 책이다. 도대체 무얼 먹어야 할지, 아니 먹지 않아도 내 주변에서 내가 만지고 호흡하는 것들 중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 몸에 들어와 나를 서서히 죽여가고 있는 것들이 있음을, 그것도 모자라 다음 세대에까지 죽음을 물려주고 있음을 알게 하니 말이다.

 

이렇게 '죽음의 식탁'에 대해 알게 되면 생활습관을 고쳐야 한다. 자신의 생활습관을 돌아보고 고치고, 또 사회 환경을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내 건강이므로, 과학자들이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자신의 연구결과에 책임을 지는 윤리적 자세를 지니도록 압력을 넣을 수도 있어야 한다.

 

당연히 공적 기관이 규제기관에서는 제대로 규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기업이 단지 이윤만이 아닌, 사람들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도록 감시의 눈을 감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을 쓴 목적이리라. 너무도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이대로 가다간 나뿐만이 아니라 내 후손들까지도 고통에 시달리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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