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
데이지 크리스토둘루 지음, 김승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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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다. 이 말이 먼저 나온다. 우리나라 교육을 생각하면, 도대체 어떤 답이 있다는 말인지... 최근에 'SKY 캐슬'이란 드라마가 이야기 중심에 서 있나 보다.

 

서울대,고대, 연대를 영어 앞 글자를 따서 이름도 찬란한 하늘, SKY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데, 이 대학들 중에서도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는 드라마라고 한다. (사실 이야기만 들었지 잘 보지 않았지만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가니...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에 무슨 창의융합, 배려, 관계지향, 민주시민, 공동체 그런 역량이 필요하고, 또 포함되는지 모르겠다. 오로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닌지...

 

그렇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공부는 마치 다 끝낸 것처럼 다음부터는 공부하고는 멀어지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 어떤 교육이 좋은 교육인가?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은 공허한 울림으로 되돌아오기 쉽다.

 

정말 답이 없다. 학교는 거대한 입시 기관이 된 지 오래고, 학교만으로는 부족해서 학원이 입시 기관으로 학교 위에 덧칠되어 있고, 이런 학원으로도 모자란지 무슨무슨 컨설턴트(사람들 참, 무언가 일을 할 때 외국어 잘 쓴다... 마치 있어 보이는 양)라고 하여 그 위에 또 덧칠이 된다.

 

여기서 지식이든 역량이든 어떤 것이 교육되는지 따지지 않는다. 오로지 좋은 교육은 좋은 대학에 보내줄 수 있는 교육이다. 혁신학교에 대한 비판으로 가장 많이 대두되는 것이 - 통계가 잘못되었다든지, 잘못 인용되었다든지 하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 학력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학력이라는 말은 진학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며, 진학이라는 말은 곧 좋은 대학에 얼마나 학생을 많이 보냈느냐로 결정이 된다. 여기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느냐, 그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철저한 결과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그것으로 평가를 하고 있는데, 교육과정은 핵심역량 강화, 학생의 배움 중심 교육, 창의융합 교육, 공동체 정신 함양 등 좋은 말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지식위주의 교육은 안 된다고, 프로젝트 위주의 수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은 이런 교육과정을 이루고 있는 기본 지침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책이다.

 

영국 교육과정을 비판한 책이고, 그것도 2013년도에 나온 책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지금 교육과정이 2015년에 개정된 것이고, 이때 영국을 비롯한 여러나라 교육과정을 참조했다고 하니, 우리나라 교육과정에 대해 생각하는 참조 자료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론적 배경-> 적용 사례 -> 왜 미신인가?라는 세 과정을 통해서 일곱 가지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일곱 가지 미신을 먼저 살펴 보자. 아니 미신이라는 말보다는 신화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미신이라는 말에는 이미 좋지 않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반면에 신화라는 말에는 좋음이라는 의미가 함께 하고 있으니.  

 

지식보다 역량이 더 중하다

학생 주도의 수업이 효과적이다

21세기는 새로운 교육을 요구한다

인터넷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

전이 가능한 역량을 가르쳐야 한다

프로젝트와 체험 활동이 최고의 학습법이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의식화 교육이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생각이 교육 현장에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역량이 어떻게 발휘되지? 기본적인 지식도 없이 역량이 발휘될 수 있나? 또 학생 주도의 수업이 가능해지려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하지 않나? 아무런 지식도 없는 학생들에게 체험 해 봐라 토론 해 봐라 하면 무엇이 나오지, 제자리에서 겉돌거나 너무도 얕은 수준에서 학습이 끝나지 않나. 뭐가 있어야  전이가 되고, 아는 게 조금이라도 있어야 검색을 하지... 새로운 교육이란 과거를 몽땅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지식 위에서 시작하는 것 아닌가.

 

위대한 과학자 뉴턴이 왜 위대한가? 모든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 시작했기 때문인가? 그는 과거를 바탕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위대한 과학자가 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자신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서 있었기 때문에 과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77쪽)

 

스마트폰만 있으면 더 많은 지식이 검색되는 시대, 손 안에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시대에 지식 운운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자. 검색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지? 많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검색하는 것과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검색하는 것이 같은가? 아마도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조목조목 자신의 근거를 들어서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이 일곱 가지 교육 미신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사회 경제적 차이가 교육에서도 그대로 차이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미 가정에서 많은 지식을 쌓고 학교에서 이런 학습을 하는 아이들과 가정에서 지식을 쌓을 기회가 없는 상태에서 학교에서 이런 학습을 하는 아이들은 출발점부터 다를 뿐더러 결과도 분명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주교육, 평등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공동체를 중시하는 교육을 하는 사람들, 이 점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 한다. 무엇이 불평등을 없앨 수 있는 교육인지...

 

하여 저자는 학교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할 핵심 지식을 정리해야 한다고 한다. 어느 수준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지식을 체계화 해서 교육해야 한다고, 그것이 먼저 시행되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학습자 중심, 프로젝트, 체험 활동, 역량 강화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또한 지식과 역량은 따로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임을 명심하라고 한다. 교육현장에서 결코 지식을 홀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교육에 답이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사회적으로 방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SKY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가상 현실이 되게끔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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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1 0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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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1 1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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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반창고 - 노래하는 교장 방승호의
방승호 지음 / 창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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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장 큰 방을 쓰는 사람은? 답은 교장이다. 홀로 넓은 방을 쓴다. 회의실로 쓰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사실 회의실은 따로 두면 되는데도, 무슨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리겠다는 건지, 교장은 늘 정중앙, 가장 큰 방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그냥 들어갈 수 없어 행정실을 통하거나 교무실을 통하게 하고 있고.

 

그만큼 교장은 만나기 힘든 사람이다. 교사들도 그러한데, 학생들이 교장을 만난다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힘든 정도가 아니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사실 교장 얼굴을 모르는 학생도 많고 교장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 학생은 손꼽을 정도다.

 

이 정도면 교육 현장에 교장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 군림하려? 아님, 그냥 그렇게 출세(?)하고 싶어 노력한 사람들이 한 자리 차지해야 해서. 이런 교장보다 더 불필요한 자리가 교감이 아닌가 한다. 교장을 보필하는 자리? 우습다. 보필이 아니라 교장이 되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자리가 교감이다. 그러니 교감이 무슨 교육적 역할을 한다는 것인지...

 

이렇게 교장과 교감은 군림하고 있다. 학교에서. 그들에게 어떤 교육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교사가 아니다. 행정가다. 하지만 행정가임을 한사코 부정한다. 자기들도 교육자란다. 교육을 하지 않는 교육자. 이런 이율배반이 없다.

 

교장-교감에 대해서 비판만 하면 되는가? 아니겠지. 그들도 한때 교사였을테니... 다만 과거를 잊고, 잃고 그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많아서 자연스레 행정가가 된 것이겠지만.

 

이런 교장들을 보다가 특이한 교장을 만나면, 사실 특이한 것이 아니라 교장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서양을 보면 교장이 상담사 역할을 늘 한다.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미국을 그렇게 따라하면서도 교장이 하는 역할은 따라하지 않으려 하는 이 모순.

 

특이한 교장 중에 방승호가 있다. 노래하는 교장, 상담하는 교장이다. 학생들 곁에 있어주는 교장이다. 언제든지 학생들이 교장실을 방문하도록 하는 교장. 아이들과 몸을 부딪히며 상담하는 교장. 놀이치료라고 해도 좋다. 모험기반 놀이치료라고도 하는데... 함께 몸을 부딪히며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가는 교장이다.

 

교장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참 애석하게도 다른 교장들에게는 이런 사례가 전파가 안 되나 보다. 다른 교장들은 여전히 큰 교장실에 홀로, 문을 꽉 닫아놓은 상태로 지내니 말이다.

 

이 책은 방승호가 만난 아이들 이야기다. 아이들과 어떻게 만났고, 어떤 상담을 했는지... 사실 상담 사례야 아이들마다 다르고 그 아이들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다르니, 이 책은 그냥 방승호라는 교장이 아이들과 만난 이야기라고 하면 된다.

 

상담은 기본적으로 아이들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할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기 위해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 함께 몸을 쓰는 과정을 통해 꼭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장 방승호는 서두르지 않는다. 아이들과 팔씨름을 하는 등 몸을 쓰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냥 함께 몸을 부대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 표정이 변하면 그때 비로소 말을 하기 시작한다. 말은 마음이 열려야 진실하게 나올 수 있다.

 

물론 한번에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세상에 한번에 해결되는 일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사람의 마음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알렉산더처럼 단칼에 자를 수가 없다. 하나하나 길게 어렵게 풀어가야 한다.

 

풀어가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상대를 온전히 이해해 줘야 한다.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먼저 몸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생각, 감정으로 닫혀 있던 문을 몸을 움직임으로써 열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 교장 방승호는.

 

아이들을 재단하지 않는다. 아이들 모두는 하나하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 그들은 모두 존재의미를 갖고 살아가는 존재다. 이렇게 인정을 하고 아이들이 자기를 펼쳐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다는 생각. 교장 방승호가 하는 일이다.

 

아이들 마음에 생긴 상처에 반창고 하나 붙여주는 것. 그 상처가 왜 생겨났는지, 그동안 몸을 잘못 굴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판단하고 몰아붙일 필요가 없다. 상처엔 우선 반창고를 붙여줘야 한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그 다음에야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런 교장. 분명 존재하는데, 다른 교장들이 좀 배웠으면 좋겠다. 공연히 목에다 힘만 주고 학교 생활을 하지 말고. 이런 교장이 늘어나야 교육이 제자리를 잡기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교장을 만나는 몇몇 아이들이 아니라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런 교장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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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교육이란 무엇인가 - 평범한 교실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현장 교사들 이야기
코니 노스 지음, 박여진 옮김 / 이매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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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존재가 교사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교사를 정의하면 인공지능이 대세인 미래 시대에서 교사란 직업은 없어져야만 하리라.

 

그러나 교사는 단순한 지식만을 전달하는 전달자가 아니다. 교사는 삶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다. 교과서는 그런 삶에 대한 교육을 하는 수단일 뿐이다.

 

교과서만 맹신하고, 오로지 대학만을 위해 공부하며, 학교에서 정치 교육을 하면 안 되고, 교사들이 정치활동을 하지도 못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인공지능이 교사로서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그렇게 우리나라 교육이 흘러왔고, 이번 정권에서도 교육개혁은 물 건너 갔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전인교육, 민주교육 말로는 떠들어대지만 내용으로 파고들어가면 대학을 정점에 두고 대학에 진학하게 하는 교육밖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정치 없이 민주교육이 불가능한데도, 마치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다. 또한 토론을 하라고 하면서 토론을 할 여건을 전혀 마련해 주지 않고 있으니...

 

이 책 '정의로운 교육이란 무엇인가'에도 이런 문제점이 나온다. 여러 학교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사들 이야기인데...

 

이를 '기능적 문해, 비판적 문해, 관계적 문해, 민주적 문해, 통찰적 문해'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문해를 이해능력이라고 단순하게 말하면 이 책은 순차적으로 이러한 문해의 단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학생들이 사회를 통찰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을 하는 것, 그런 교육이 이루어질 때 사회정의를 이룰 수 있는 교육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통찰적 문해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이해능력인 기능적 문해도 중요함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사실, 비판적이든 관계적이든 민주적이든 기본적인 이해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 교육 환경은 좋지 않다. 이들이 마음 놓고 교육을 하지도 못한다. 또한 학생들과 친밀하게 지내고 학생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지만 늘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그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이 할 일을 하는 교사, 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정의로운 교육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교사들이 있다. 이런 교사들로 인해 암담한 교육환경이지만 한줄기 빛을 발견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숨 쉴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교사들만의 힘으로 정의로운 교육을 완성할 수는 없다. 환경의 변화가 함께 해야 한다. 이런 교사들의 노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환경의 변화가 필요함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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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품격 - 삶이 있는 공간이 되려면 학교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임정훈 지음 / 우리교육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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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이 발표가 되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늘 있는 일이다. 대학에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입시제도가 바뀌어도 그게 그거인 셈이다. 그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으니까.

 

이렇게 우리나라 교육은 최종목표를 행복한 삶, 더불어 사는 삶, 민주적인 삶 등등을 말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으로 삼고 있다. 그게 다다. 학교 교육을 어떤 형태로 개혁한다고 해도, 대학에 목매달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 되고 만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교육내용에 관해서는 참 많은 논의가 있고, 모든 학부모들이 관심을 가지고 전문가인양 이야기들을 하는데... 교육을 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별 말이 없다.

 

관심을 가질 때는 학교 천장에 있는 석면이 발암물질이라는 것이 알려졌을 때, 운동장에 깔려 있는 인조잔디가 인체에 해롭다고 알려졌을 때 정도다. 건강에 아주 안 좋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잠깐 학교 공간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뿐이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 아이들이 대부분을 생활해야 하는 학교 공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자기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데도. 그래서 학교 공간은 늘 제자리다.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퇴보한다. 낡아가니까. 

 

다른 공간 분야는 앞서 나가는데, 학교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다. 다른 공간과 격차가 점차 벌어진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볼 일을 보지 못한다고 하는 학생도 많아지고 있다.

 

학교 화장실, 집에 있는 화장실보다 못해도 너무 못하다. 무슨 재래식 화장실도 아닌데 냄새가 지독하다. 거기다 휴지도 없다. 비데는 말할 것도 없고. 늘 퀘퀘한 냄새를 풍기는 화장실을 교실 바로 앞에 두고 있는 학급도 있다.

 

여름이면 냄새가 솔솔 교실로 들어온다. 그런 상황인데, 교실 책상과 의자는 어떤가. 몸에 맞지도 않는다. 왜 이리 재질이 좋지 않은지. 집에 있는 책상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어야 하는데, 몇 년 전, 아니 몇 십 년 전 선배들이 쓰던 책상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다.

 

비좁은 교실에서 아무 것도 없이 낡은 책상과 의자를 가구로 삼아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 한여름과 한겨울에 복도에 나가 보라. 복도는 실내로 취급되지만 학교에서는 실외에 해당한다. 냉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곳이다.

 

오로지 통로로만 사용되는 곳, 그렇다고 낭만이 있는 길도 아니다. 주변에 볼거리가 하나도 없고, 앉아서 쉴곳도 없는 그냥 직진만 가능한 공간이다.

 

그렇다고 운동장에 나가보면 앉아서 쉴 그늘이 없다. 휑한 운동장 뿐이다. 모든 학생들이 구기 종목을 해야 한다는 듯이 운동장에 기껏 있는 것은 축구 골대와 농구 골대뿐이다. 나무 그늘 밑에서 오손도손 이야기할 공간은 전혀 없다. 조용히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 또한 없다. 그렇게 넓은 운동장에 있어봤자 스탠드와 스탠드를 덮고 있는 등나무뿐이다.

 

화단은 있는데 학생들은 들어갈 수가 없다. 그냥 눈으로만 보는 공간이다. 복도에서 운동장에도 함께 할 장소는 없다. 그러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가? 없다. 전혀 없다.

 

학교는 한번 들어오면 특별한 허락없이는 나가지 못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교를 감옥이라고 한다. 교문은 굳게 닫혀 있고, 끝나는 종이 쳐야만 활짝 열린다. 하지만 이 교문을 아침에 통과할 때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감시의 눈이 여기저기서 번뜩이기 때문이다. 교문 양 옆에 서 있는 선도부 - 요즘은 거의 없다고 하지만 아직도 원시적인 이런 선도부를 두고 학생들을 지적하는 학교가 있다 - 학생들과 교사들... 이들은 학생이 어떤 얼굴로 오는지, 어떤 마음으로 오는지 관심이 업다. 오로지 교복을 제대로 입었는지, 염색을 하지 않았는지, 신발은 규정에 맞는 것을 신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학교라는 공간에 교복이라는 또하나의 규율이 덧씌어진다.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 행태다.

 

어느 마을에 가더라도 학교 건물은 눈에 확 띤다. 세상에 이렇게 개성이 없을 수가. 이렇게 획일적일 수가. 겉모습만 그런 게 아니라 속에 들어가보면 건물 배치도 천편일률적이다.

 

중앙현관을 중심으로 교장실, 행정실, 교무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어느 곳이나 그렇다. 또 교장실은 학교에서 가장 넓게 혼자 쓰는 공간이 된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개방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하다못해 같은 학년 학생이라도 다른 반이라면 아무 교실에나 들어갈 수 없다. 자기 반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급이다. 이렇게 너무도 폐쇄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곳이 바로 학교다.

 

이런 학교. 혁신학교니, 교육 혁신이니 말들을 많이 했지만 학교 공간에 대한 고민, 교복에 대한 고민, 교실 배치에 대한 고민, 복도에 대한 고민, 교장실에 대한 고민, 학교 화장실에 대한 고민 - 최근엔 아름다운 화장실 만들기 운동이 있긴 했지만  지속적이지 않았다. 한때 와 하고 학교 화장실에 관심을 가졌다가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관심이 또 사그라들었다- 운동장에 대한 고민, 책상과 의자에 대한 고민 등등은 없다.

 

그냥 교과 내용, 교육 활동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정작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는, 학생들이 또 교사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중요함에도 그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책은 이런 안타까움에서 씌었다고 할 수 있다. 공간을 바꾸지 않고 교육 내용만을 바꾸려고 하면 형식이 내용을 억압할 수밖에 없음을...

 

지극히 폐쇄적인 공간, 억압적인 교복, 강압적인 규율, 자치권이 없는 교실 생활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교육 내용만을 바꾸면 개방적이고 창조적이고 민주적이고 자치적인 학생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학교가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면 공간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공간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나라 학교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학교 공간이 얼마나 권위적이고 배타적인지, 비인간적인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학교는 사회 다른 공간에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보다 앞서가지는 못하더라도 비슷하게는 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과거에서 옴짝달짝 못하게 옭아매는 일이 될 것이다.

 

학교 공간이 좀더 좋아지기 위해서, 우선 학교에 색을 들여오자. 학교는 철저한 무채색이다. 색채를 조금 화려하게 칠해도 건물의 외벽만 그럴 뿐이다. 그것도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건물 내부는 철저한 무채색이다. 학생들 역시 무채색이다.

 

단조로운 색깔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면 학교 공간이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모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색채의 다양함은 우선 권위를 많이 벗어던지게 할 테니까 말이다.

 

하나하나 읽으며 생각할거리다 많다. 아주 오래 전 다닌 학교와 지금 학교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 정말 비극이다. 이 비극이 지속된다면 학교 교육이 성공할 수가 없다. 이제 교육 내용도 중요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학교 공간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여기서부터 교육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이 시작점은 누구에게나 만족감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교육관료들, 교사들, 학부모들, 학생들 모두 읽어야 할 책이다. 특히 학교에서 왕 노릇하고 있는교장부터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교장이 학교라는 공간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하니까. 그만큼 공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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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8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사, 삶에서 나를 만나다 -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고 서로 위로하는 수업 성찰
김태현 지음 / 에듀니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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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선생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리라. 어떤 사람은 그만큼 선생들은 쪼잔해서, 먹을 똥도 없다는 뜻이라고 하기도 하고, 선생들은 꽉 막혀서 배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냄새가 심해 먹을 수가 없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말들이 뜻하고 있는 것은 한 가지다. 선생 노릇 쉽지 않다는 것. 쪼잔하다는 얘기는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그만큼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고, 꽉 막혔다는 얘기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원칙을 지키며 타협하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른 쪽으로 해석을 하면 그래서 선생들은 인정을 받을 수가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쪼잔하든 구체적이고 자세하든 다른 사람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가 있고, 꽉 막혔든, 원칙에 충실하든 역시 상대에게는 구속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생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에 교사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고, 교사들에 대하여 방학을 없애야 한다는 국민청원도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 교사들이 성추행을 했다는 #미투 운동도 일어나고 있으니... 교사들은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누가 교사를 인정하나? 우선 교사들을 지원해야 할, 이름도 참 교육지원청이라고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장학사(관)들이 있는 교육청은 여전히 교사 위에 군림하고 무엇을 하라고 지시를 내리고만 있고, 교육청 위에 있는 교육부가 과연 교사들을 믿고 있는지, 그들이 교육제도를 바꾸기 위해 현장 교사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

 

교육과 관련있는 이런 조직이 이미 교사를 무슨 종 취급하거나 죄인 취급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사들의 자존감은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교사들을 더 끌어내리는 집단이 있으니 바로 학부모(부모가 아니라 학부모다. 학부모가 되지 말고 부모가 되라는 광고가 있을 정도니, 우리나라에서 학부모란 말은 긍정보다는 부정의 의미가 더 강하다)들이다. 가장 교사들을 믿지 못하는 집단, 자기 자식들을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나게 교사들을 불신하는 집단이 학부모들이다.

 

이들은 학교를 시장으로 판단한다. 상품이 학교에 들어왔다. 자식들이 상품이라면 교사는 판매자다. 소비자자 원하는 상품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러니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교사들은 무능한 교사일 뿐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성, 전인? 아니다. 오로지 좋은 성적, 좋은 대학일 뿐이다. 이것을 교사들이 만족시키지 못하면 무능한 교사일 뿐이다.

 

상품으로 교육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교사를 대하면, 그리고 교사를 존중하면 교육은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사람은 없고 상품만 넘치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다. 학부모는 학교를 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한 집단을 더하자. 교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학생들이다. 학생들, 교사의 존재이유기도 하지만 교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만큼은 인정받고 싶어하는 교사들이지만 학생들에게 유독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 모습이 바로 수업시간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떤 수업을 해도 듣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있다가 아니라 많다.

 

최근에 교사들에게 온갖 수업 방법에 대한 연수, 그리고 수업방법론이 나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수업 붕괴라는 현실에서 교사들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각종 방법론을 들고 나온 것 아닌가.

 

이 책을 쓴 김태현 교사도 그런 방법론을 전파한 사람 중에 하나다. 교사들에게 수업 붕괴를 막을 방패를, 수업 혁신을 이끌 창을 줄 수 있다고 믿고 나름 열심히 활동한 교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교사를 위로하는 글을 썼다. 수업 혁신, 아니 교육이 사는 길은 방법론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수업을 살리는 길은 기술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고, 온갖 교수법에 있지 않고 바로 교사의 삶에 있다고 하고 있다.

 

우선 교사가 행복해야 한다고. 교사들은 누구나 어려운 길에 있다고. 밤하늘에 별이 있는데 별을 볼 수 있는 학생들이 거의 없듯이, 학생들 가슴에 별을 심어주고 싶은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고 있다고...

 

학생들 가슴에 별을 심어주는 일은 기술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우선 교사들 자신이 별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별을 가슴에 심고 있어야 한다고.

 

그래 내가 마음이 편해야 다른 사람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데, 교사는 학생을 보기만 하고 자신을 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이제는 교사들 자신을 보아야 한다고.

 

어떻게? 바로 이 책에서 그림과 시, 글을 통해서 교사들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다. 딱히 어떤 방법론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지금 교사들에게는 방법론으로 대변되는 기술이 중요하지 않고 교사들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자신들 삶을 보고 힘듦을 인정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교육활동을 하는 것. 그렇다. 이 책은 교사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다.

 

사방에서 교사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은 교사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냥 따스하게 교사를 감싸주고 있다. 바로 여기서 시작하자고. 나만 힘든 게 아니라고. 우리 교사들은 모두 힘들다고. 서로 손을 잡아주자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교사들이 처한 상황, 고민을 알 수 있게 된다. 남 앞에 선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니, 교사들은 남 앞에 서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코 앞에 서지 않는다. 교사들 앞에 서 있는 존재는 바로 학생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이 책을 쓴 교사처럼 그림과 시 하나를 더하고 싶어졌다. 바로 이것이 학교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시는 서정춘의 '죽편1'

 

 

학생은 이 그림에서 마르가리타 공주와 시녀들 처럼 전면에 나와 있어야 한다. 이들이 바로 학교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정중앙을 차지하며 많은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학교가 학생을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교사는 화가다. 벨라스케스 자신을 그림에 등장시켰다고 하는데, 뒷편에 그것도 가운데가 아니라 한쪽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을 지켜봐야 하고, 그들의 마음에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 벨라스케스가 그림을 남겼듯이.

 

왕으로 대변되는 학부모, 교육청, 교육부 관료들은 멀찌감치 있어야 한다. 그림 속에서 거울 속에 있듯이... 이들은 나서서는 안 된다. 그냥 지켜봐주고, 지원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학교가 제대로 운영된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이 명작으로 남듯이.

 

서정춘의 시를 보자. 그럼에도 교육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생이 학교에 다닐 때 완성되지 않는다. 서정춘 시는 짧다. 그런데 시 속에는 긴, 긴 시간이 담겨 있다.

 

  죽편1

     - 여행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서정춘, 죽편, 동학사. 2002년 2판 1쇄. 18쪽.

 

교육은 그만큼 멀다. 수업 하나하나는 밤이 깊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가슴에 별을 심고 꽃을 피울 때까지 멀고 먼 시간, 긴 시간이 걸린다.

 

그 머언, 긴 시간을 보고 수업을 하는 교사, 그들이 삶을 보고, 삶을 사는 교사들이겠다. 이런 교사들에게 왜 지금 애들이 꽃을 피우지 않냐고 하는 사람, 이들은 교육을 모르는 사람이다.

 

교사에 대한 비난이 지금만큼 많을 때가 있었나 싶다. 하지만 이렇게 교사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힘들어 하는 교사들 곁에 가만히 앉아 있어주는 이런 책, 이런 책을 쓴 교사가 있다는 것. 어쩌면 우리나라 교육이 여전히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지도 모른다.

 

지치고 힘들고 우울함에 좌절에 빠진 교사들, 이 책은 이런 말을 해주고 있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ㅡ 우리 함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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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4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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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4 16: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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