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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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신 다음, 그의 책을 읽고 있다. 사실, 몇 권 읽지 않았음에도 그의 글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는데...

 

마지막 강의라는 제목이 붙은, 강의 녹음을 토대로 책으로 펴낸 신영복 선생의 사상이 집대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동양 고전에서 시작하는데, 이는 세계와 사람에 대한 인식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 다음에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처음 부분이 다소 어려울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동양고전의 세계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시경이나 주역 또 논어, 맹자와 같은 책이름과 공자, 맹자, 노자, 장자, 한비자, 묵자 등의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그들의 사상에 대해서는 깊게 배운 경험이 별로 없다.

 

서양 것을 추구하면서도 사실 서양 고전철학에 대해서도 동양고전에 대해서 무지한 것과 별 다를 것이 없다. 그만큼 우리는 교육과정을 통해서 고전과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멀어진 생활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전은 지금도 의미가 있기에 고전이고, 이런 고전은 결국 사람읽기, 삶살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사람과 삶은 결국 관계로 결정이 되고 만다.

 

우리는 고립되어 살 수 없고, 지금 내 삶을 유지하는 것도 온갖 관계들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이런 관계가 곧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 책의 핵심 단어를 고르라고 하면 단연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신영복 선생이 좋아하는 말이고, 또 글씨로도 많이 썼다고 하는데... 씨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씨과일이 보존되어 있다면 그것이 나무가 되고 다시 숲이 된다는 것.

 

하여 어려운 시절이라고 해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 씨과일을 잘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어려운 시절에 씨과일이 무엇일까? 신영복 선생의 이 담론을 읽고 그것은 바로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씨과일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지경에 처하더라도 사람을 포기하면 안된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고, 이 살아감은 바로 '석과불식(碩果不食)'에 해당한다. 사람이 살아감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일까?

 

바로 공부(工夫)다. 하늘과 사람을 잇는 것, 그리고 그 잇는 일을 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하던데... 공부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 요소다.

 

단지 자신이 출세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다. 이 때 공부는 사람됨의 공부고, 사람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추구하는, 머리로만 인식하지 않고, 마음에 닿게 하고, 그 마음에서 다시 발로 가게 하는 공부다.

 

신영복 선생이 강조한 머리에서 마음으로, 다시 마음에서 발로. 인식에서 공감으로, 공감에서 실천으로 가는 공부, 그것이 진정한 공부고, 이 공부의 핵심이 바로 '사람'에게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포기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회다. 씨과일을 먹어버리면 그 다음은 없다. 사람은 씨과일이다. 아무리 사회가 어려워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정책을 펴야 한다.

 

사람이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라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구나 인정해야 하는 당위 아니던가. 그러니 우리는 어려운 시대일수록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바른 관계를 맺는 길이기도 하다. 신영복 선생이 이 담론에서 하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이라는 씨과일을 소중하게 보존하고, 그 씨과일이 성장하고 다시 씨앗을 심도록 하자는 것.

 

하여 나를 보려면 사람을 보아야 한다. 내 주변의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들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자라게 할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나는 씨앗이므로, 그냥 자랄 수는 없으므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라야 한다.

 

석과불식(碩果不食)!

 

사람은 절대로 무시될 수 없다. 사람이 바로 희망이고, 미래고 바로 우리의 현재다. 그렇게 사람이 사랍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를 추구하는 사람, 그렇게 머리가 아니라 마음과 발로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할 때다.

 

곧, 선거다. 아직까지는 유일하게 우리가 주권이라고 하는 것을 행사할 수 있는 순간이다. 신영복 선생의 이 말을 누가 실천할 수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바로 나 자신이 이런 관계를 맺는 삶을 살도록 머리로 인식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발로 걸어가야 한다. 그런 생각을 다짐하게 한 책이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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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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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신 다음, 그가 쓴 책들을 골라서 읽고 있는 중. 그의 글을 평소에도 좋아하고 있었지만, 글 자체가 아니라 그의 글과 그의 사람됨이 일치하지 않나 하는 생각, 인품이 글에 배어나온다는 생각에 그의 글을 좋아했었다.

 

이제 그는 우리 곁에 없지만 글로써 남아 있을 것인데... 이 책은 책으로써 남아 있는 신영복 선생을 만나는 것 외에도 글씨로써 신영복 선생을 만날 수가 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물론 신영복 선생의 글씨는 소주에서, 처음처럼이라는 그 글씨를 만날 수 있다.)

 

제목이 '변방을 찾아서'다. 이 때 변방은 주변이라는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무언가 변화를 추구하는 그런 장소를 변방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변방에는 사람도, 철학도, 행위도 모두 포함된다.

 

변방, 어떤 변방, 신영복 선생이 글씨를 써준 곳을 찾아가서 그곳에서 느낀 점들을 글로 써낸 것인데...

 

신영복 선생에게 글씨를 부탁한 사람들은, 중심에 있어 안주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무언가 옳음을 향해 온몸을 바치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기리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써 준 글씨를 찾아 그들과 또 그들이 기리려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기행문이라고도 할 수 있고 철학적 사색을 담은 글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신영복 선생이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알 수 있는 책이다.

 

땅끝마을의 서정분교 도서관 이름인 '꿈을 담는 도서관'에서 시작하여 봉하 마을의 고 노무현 대통령 묘석까지...

 

글씨도 보고, 그 글씨를 쓰게 된 내력도 알게 되고, 그곳에서 우리는 어떤 변방을 발견하게 되고, 그 변방을 통하여 변혁을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신영복 선생의 삶 자체도 변방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선생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신영복 선생. 내가 선생이 쓴 책을 읽는 것 또한 변방을 찾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중심은 없다. 그는 중심에 들더라도 변방을 추구한다. 중심에 안주하는 삶, 그것은 고인 물이 되는 삶이다. 변방의 삶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의 삶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붙이는 말 : 선생이라는 말을 쓰기가 참 쉽지 않다. 그냥 다른 사람을 높여서 선생이라고 하는 경우는 형식적인 언어 활동에 불과하겠지만, 선생은 자신보다 먼저 깨달은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니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 책에서 '선생'이라는 호칭 때문에 곤란에 처한 경우가 나온다. 바로 벽초 홍명희의 문학비에 쓰인 해설에서 '선생'이라는 말을 가지고 모 단체에서 시비를 걸었다는 말이 나온다. 자신들과 뜻이 맞지 않으면 무조건 배제하고 보는 그런 사람들, 이들은 보수를 자칭하고 있지만, 보수가 아니라 단순한 수구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하면 홍명희는 그의 사상 여부를 떠나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요, 우리나라 소설사에 한 획을 그은 "임꺽정"의 작가로서 '선생'이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충분하고, 그의 사상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기보다는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고 - 대부분의 평이 이렇다고 알고 있는데 - 이런 점으로 보아 그가 바로 '보수'라고 할 수 있는데...

 

보수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보수를 보수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이런 현실을 무어라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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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생활 좌파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낯선 질문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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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좌파가 존재해서는 안되는 나라다. 좌파라는 말 앞에는 늘 '종북'이라는 말이 붙고, 좌파라는 말보다는 '좌빨'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

 

게다가 국가보안법이 있어서 속칭 좌파라고 하는 정당을 해산까지 시킨 나라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좌파는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좌파라는 말보다는 '진보'라는 말을 더 좋아하고 많이 쓴다. 진보라는 말에는 좌파라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은듯이 우리는 '진보다'라고 외치는 정당들이 많다.

 

그런데 좌파의 상대가 우파라면 진보의 상대는 무어지 하는 생각이 든다. 진보의 상대는 보수 또는 퇴보?

 

진보라는 말은 왠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느낌을 많이 준다. 지금까지 지켜왔던 좋은 것들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보다는, 더 좋은 것을 향해 계속 전진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

 

반대로 보수는 있는 것을 지켜내야 한다는, 진보가 무턱대고 앞으로만 나아가려 한다고, 지금은 변화가 아니라 안정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언어들에서는 이상하게도 (적어도 나에게는) 수직의 느낌이 난다.

 

반대로 좌와 우라는 말에서는 수직보다는 수평의 느낌을 받는다. 어떤 일을 바라보는데 관점이 다를 뿐이지 같은 위치에 서 있다는 느낌.

 

'진보-보수'라는 말보다 그래서 나는 '좌파-우파'라는 말이 더 좋은데...

 

우리 언어에서 좌파 앞에 '종북'을 붙이거나 또는 '좌빨'이라고 하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순수하게 좌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사회당이든 공산당이든 또 녹색당이든, 반자본주의신당이든, 어느 정당에 속해 있지 않든 자신의 신념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다.

 

그들은 스스로 '좌파'라고 이야기하고, '좌파'임을 자랑스러워한다. 우리가 좌파라면 몸을 사리는 것과는 정반대다. 이들에게 좌파는 좀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추구하는 사람들,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 공부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자연스레 좌파는 예전에 있던 좋은 것이 사라졌다면 그것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지금의 것이 좋다면 그 좋은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행동하고, 잘못된 제도나 관행이 있다면 과감하게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투쟁한다.

 

이게 바로 좌파다.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신념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떠밀려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희생'이라는 관념이 없다.

 

그냥 하는 것이다. '희생'이 보답을 요구하고, 어떤 특권의식을 조장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들에게는 이런 개념이 없기 때문에 남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그냥 자신의 생활에서 자신이 옳다고 여긴 신념들을 실천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어떤 특정한 정당이나 이념에 묶여 있는 활동가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서 좌파적인 삶을 실천하는 '생활좌파들'인 것이다.

 

반갑게도 우리나라 출신(한 명은 망명자의 신분이고, 한 명은 국적은 우리나라이지만 1950년대 이후부터 계속 프랑스에서 살고 있었으니)도 나와서 우리에게 좀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생활 속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실천하고 사는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었던 글을 책으로 엮어 냈다고 하는데...

 

이들이 어떻게 좌파적 삶을 살아가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 일이니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들의 생활은 우리의 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적용될 소지가 많다는 점을 알아두어야겠다.

 

이 책에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이 위대하다거나 훌륭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삶에 주체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이 책이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함께 가기를 좋아하는 사람, 낮은 곳에 있르려는 사람, 그들이 바로 '좌파'다.

 

참 멋진 말이지 않은가. 이 '좌파'란 말이. 이 사회를 바라보는데, 낮은 곳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 서로 도우며 소외되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좌파'라고 한다.

 

우리도 이런 '좌파'라는 말이 제 자리로 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아마 이 책은 그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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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이 트인다 - 녹색 당신의 한 수
황윤 외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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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정도 있으면 국회의원 선거다. 아직 선거구 획정이 되지 않은 상태인데... 어찌될런지 모르지만 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지리라.

 

정치권은 다시 정치권력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국민들의 관심은 저 멀리 달아나 있으니, 그들만의 선거가 될 확률이 높아질까 걱정이다.

 

그만큼 정치권에 대한 사람들의 실망감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말이나, 그 정당이 그 정당이다라는 말이 그런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투표를 하지 않으면 그 놈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당선될 것은 확실하고, 마음에 드는 정당도 인물도 없고, 이래저래 사람들은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정치는 중요하다. 사람을 정치적 인간이라고 하지 않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치와 먼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우리네 삶 자체가 정치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를 도외시할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지 않고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가 내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 아니므로.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런 선택을 한 뒤, 그 선택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눈을 치켜뜨고 지켜보고, 압력을 넣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이보다 좋은 방법은 내 삶에 좋은 쪽으로 영향을 주는 정당을 선택하는 일이다. 정당들의 정책을 잘 살펴보고, 어떤 정당의 정책이 내 삶을 좋은 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인지 판단하고 그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내가 선택 안한다고 해서 내 삶에 영향이 없어지지 않기에.

 

때마침 녹색당의 책이 나왔다. 이 책은 녹색당의 출사표라고 보면 된다. 녹색당이 주로 실천하겠다는 공약 10개가 나와 있고, 이 공약과 더불어 비례대표로 출마할 사람 5명의 출마의 변이 실려 있다.

 

내가 남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 출마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과 더불어 좀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고 하다보니 정치계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이 다섯 사람의 출마의 변에 잘 나타나 있다.

 

생활정치, 우리들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서로 함께 웃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들은 비례대표로 나서는 어려운 결단을 했다. 이들의 결단이 투표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아직 의문이지만, 이렇게 행동으로 나섰다는 것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다.

 

적어도 그 놈이 그 놈인 우리나라 정치계에 그 놈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고, 명확하게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제시한 공약을 어떤 형태로든 기득권을 쥐고 있는 정당에서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이들은 누구보다도 아래에서 힘든 사람들과 울고 웃으며 함께 생활했다는 점에서 커다른 의미가 있다.

 

또한 이들의 주장은 나만 잘살자는 것도 아니고, 힘없는 사람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자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 아무리 소수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니, 이들의 주장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동물권, 먹거리·농업, 탈핵, 민주주의, 기본소득, 성평등·인권, 기후·에너지, 노동·일자리, 주거, 교육에 걸쳐 명쾌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그 공약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하여 이 책 제목처럼 우리나라 정치계에도 제발 '숨통이 트'였으면 좋겠다. 숨통이 트이는 것, 정치계에 소수정당이 들어간다는 것도 있지만, 이들이 그동안 의사를 전달하기 힘들었던 일반 국민들의 의사를 정치계에 끌고 들어간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도 숨통이 트인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작은 제목처럼 "녹색 당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가 막힌 한 수. 이 작은 제목을 끊어 읽기에 따라 "녹색당,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고, (이러면 정치권에 심한 회의감을 지니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녹색당은 그런 회의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중요한 한 수라는 의미가 된다) "녹색, 당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미래 세대는 녹색이 다수일 수밖에 없는, 녹색을 외면하고는 정치를 할 수 없는, 또는 생존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녹색을 지지해야만 한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형태로든 지금 변화가 필요한 시점, 녹색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는 이 녹색을 중심으로 우리의 생활을 꾸려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들의 공약에 관심을 가지기를... 이들의 공약과 다른 정당의 공약을 비교해보기를...

 

선거가 끝난 뒤 그 공약들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살펴보기를, 지켜지지 않으면 우리의 권리를 행사해서 지켜지게 해야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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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24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제목 멋지네요! `녹색당, 신의 한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kinye91 2016-01-24 12:49   좋아요 0 | URL
네. 어떻게 끊어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지만, 결론은 비슷하다고 봐요. 지금은 우리 삶과 밀착된 정치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하니까요. 녹색을 표방한 녹색당이 결국 이 작은 제목의 맨 끝에 있는 `수(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요.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Acquaintance Rape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로빈 월쇼 지음,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옮김 / 미디어일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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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이다. 이 말이 심하게 느껴진다면 "성폭행"이다. 그것은 서로가 마음이 있는 썸도 아니고, 서로의 만남을 이어가는 데이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로의 합의하에 육체관계를 맺는 섹스도 아니다.

 

한 사람에 의해 다른 한 사람이 또는 여러 사람에 의해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강제로 성관계를 당하는 일이다. 이것은 범죄다. 당연히 범죄인데... 이 책의 제목이 이렇게 나온 것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또는 당한 일을 '강간'이나 '성폭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일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떨 때 사람들은 '강간'이라고 명확하게 인식하는가? 바로 이 책에는 강간의 좋은 사례(참, 이 말 쓰기도 민망하다. 좋은 사례라니, 이런 역설이 있다니... 하지만, 이것은 경찰이나 검찰이 기소하기 좋고,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 이것도 가능성일 뿐이라는 게 우습다 - 많다는 것이다)가 나와 있다.

 

좋은 사례의 피해자는 대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처녀로 그녀는 어느 날 오후 두세 시경,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의 벙문안을 가다가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 의해 공격을 당한다. 그 남자는 칼이나 총, 혹은 쇳조각 같은 흉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녀가 소리 지르지 못하게 주먹을 날려 턱뼈를 부러뜨린다. 그리고 적어도 한 번 이상 그녀을 칼로 찌른 후 수풀로 끌고 가서 강간을 한다. 피해자는 이미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계속해서 극렬하게 저항하고, 그 덕분에 어느 남자 경찰관에게 발견돼 마침내 목숨을 건진다. 이후 공식적인 의료 검진을 통해 피해자의 질 속에 남아 있던 정액이 가해자의 것으로 밝혀지고, 마찬가지로 가해자 몸에 묻어 있던 혈흔과 피부 조직은 피해 여성의 것으로 확인도니다. 또한 피해자의 온몸에 난 상처들 역시, 사건 당시 가해자가 갖고 있던 흉기로 인한 것임이 판명되기에 이른다.  218쪽.

 

아마, 이 지경에까지 이르려면 강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아니, 주로 목숨을 잃어야지만 강간살해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인식을 지니고 있으니, 알고 지내던 사람, 그것도 데이트를 하거나 또는 그전에 이미 성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에게 '강제로' 당했다고 해도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많았고, 또 무언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강간'은 아니었다고 피해자가 생각하거나 (가해자는 말할 것도 없다. 피해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이 책에 나와 있는 사례들을 보면 이렇게 관계를 맺은 다음 가해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피해자을 집에까지 데려다 분다. 이 생각 없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화의 문제라고 이 책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그런 사회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가해자가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강간'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 신고가 되는 경우가 1/5도 채 안된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한 강간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사례들이 미국의, 그것도 17년 전의 미국 사례라고 우리가 안십해도 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국보다 성에 관해서는 더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성에 관해 상당히 개방적인 미국에서도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한 강간이 많이 일어나고, 일어나는 빈도에 비해 신고 건수는 적고, 처벌 건수는 더욱 적은데...

 

우리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네가 처신을 잘못해서 그래'라고 하는 경우가 더 많은 나라니...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얼마나 많을지 두려워진다.

 

특히 조금 권력이 있단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만지고 놀리고 하는 것이 일상화되다시피 했는데... (그많은 유명인들의 성추행 사건 보도들을 보라. 이들은 잠깐의 실수라고 하거나, 기억이 안난다고 하거나, 잘못한 게 없다고 한다. 피해자가 받을 고통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언론도 마찬가지로 흥미 위주로 기사를 쓰지. 피해자의 인권은, 감정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이것이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떤 통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성경험을 한 청소년들은 약 4%정도라고 하고, 이들의 첫 성경험 평균 나이가 15세 전후라고 나와 있는데, 우리나라 나이로 15세 전후라고 하면 만으로 따져도 중학교 3학년 또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이들의 성경험이 과연 모두 합의에 의한 성관계일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도 이렇게 그것이 '강간 또는 성폭행'이라는 생각없이 그냥 어쩔 수 없는 일, 일어날 수 있는 일, 또는 자신이 잘못해서, 유혹해서 생긴 일이라는 인식으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았을까.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 모 대학에서 벌어진 성추행, 성폭력 사건도 따지고 보면 그냥 쉬쉬하고 넘어갈 뻔한 일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오히려 피해자가 더 피해를 보는 일도 생기고 하니, 아마도 신고 없이 넘어가는 일은 우리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아는 사람에 의한 강제적 성관계, 즉 싫다는 의사 표현을 했음에도 물리력이나 또는 심리적 압박을 통해서 강제로 맺은 관계는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닌" 바로 "강간"이라고... "성폭행"이라고.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찌 미국이라는 나라의 일만이겠는가. 우리에게도 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것은 여자만의 일이 아니다.

 

피해를 여자가 당하더라도, 그 여자의 주변에는 남자가 있다. 함께 고통을 받을 남자가 있으니, 역시 이런 일은 남녀 모두의 일이다. 서로가 예방하고, 또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 몇 가지 대응방법이 나와 있으니 그것을 참조해도 될 듯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응보다는 예방이 더 우선이다. 인식 개선이 우선이다.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리고 법률적으로도 명확하고 단호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이루는 남자와 여자가 모두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

 

이 책 학교에, 집에 비치해두고 두고 두고 참조해보면 좋을 듯하다. 남일이라고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하면 안된다. 이건 우리 모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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