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 생명은 서로 돕는다 - 인간과 자연, 생명의 아름다운 공존
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요한 브란트슈테터 그림, 박병화 옮김 / 이랑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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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만큼 공생이 필요한 시대가 있을까? 공생이 무너져 가고,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각자도생이 결국은 서로의 멸망을 초래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계적으로 공생이 무너져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자연 속에서 식물들끼리, 또 식물과 동물끼리, 아니면 자연과 인간이 이루는 공생을 이야기 하더라도, 공생이 무너져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공생이 무너지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인간이라면, 인간이 이룬 산업화가 자연의 공생을 무너뜨리는데 일조를 했다면, 인간과 자연의 공생은 이미 무너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자신들의 생활을 이루려 했기 때문이다.

 

공생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 나오는 30가지의 공생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머리 속에서는 인간이 떠나지 않고 있다.

 

소개된 공생 중에 인간에 의해서 사라질 공생들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된 공생이 아주 짧은 시간에 파괴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생관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즉 한 생명이 멸종한다는 것은 공생관계에 있는 다른 생명도 역시 멸종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결국 인간에게도 재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간을 다루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끼리의 공생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특히 농촌과 도시의 공생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첫시작은 꿀잡이새와 인간이다. 인간을 벌집으로 인도하는 새, 꿀잡이새. 도대체 이 새는 어떤 이익을 얻을까 했더니, 인간이 가져가고 남은 밀랍을 얻는다고,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를 공생이라고 하는데,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들의 공생을 다루고 있다.

 

그림도 곁들여 있어서 좋고 공생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를 자세히 들어서 더 좋다. 여기에 끊임없이 인간을 생각하게 해서도 좋다.

 

최근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기생충'이란 영화가 있었다. 기생은 공생과 달리 한 존재에게만 이로운 관계다. 그런데, 영화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에게 기생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개되었지만, 과연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에게 기생하는 것일까?

 

오히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생해서, 즉 가난한 사람들을 숙주로 삼아 자신들의 부를 늘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들의 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 사이에 기생관계가 아닌 공생관계가 이루어져야만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들 사이에 공생관계가 된다면 지나치게 많은 생산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이익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공생은 약자들끼리의 협동생활도 의미하지만, 강한 자와 약자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강자들이 일방적으로 약자들을 착취하는 관계에서는 기생이 이루어지고, 한 존재의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승자독식 사회, 1%사회라는 말이 들리는 바로, 지금이 공생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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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농사 짓기 -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
전희식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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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해서 살고 있는 전희식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몇 년에 걸쳐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일들을 겪어가는 농부의 일상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나오고, 우리나라 정치의 모습도 나오고, 농사에 관한 전희식의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원하는 것은 농사는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 어떤 존재 하나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 하나만 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과 공생이 함께 이루어지는 일이 바로 농사라는 것.

 

그런 농사의 바탕은 바로 마음이고, 그러므로 농사는 곧 마음 농사이기도 하다는 것. 우리가 마음 농사를 잘 짓는다면 사회가 어지러워질 이유가 없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있는데 어떻게 혼란한 사회,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겠는가.

 

그가 촛불을 보면서 한 생각도 바로 이것이다. 특정 권력자를 쫓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삶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촛불이 지닌 의미다. 그런데 지금은? 촛불이 권력자들의 모습만 바꿔놓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만큼 농사에 대해서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우리 삶에 기본이 되는데, 그 먹을거리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회는 암울한 미래로 나아갈 뿐인데...

 

농사를 짓지 않으면 오히려 잘한다고 장려금을 주는 나라, 농민들이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나는 사회에서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자고 하면 무슨 이상한 소리냐고 되받아치는 사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수만 잘 사는 성장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농사를 무시하고 어떻게 성장이 지속될 수 있단 말인가. 전희식은 그점을 답답해 한다. 그래서 그는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먼저 소득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한다.

 

최고임금상한제... 아니면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과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의 차이가 20배를 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내야 한다고... 그 차익은 다른 사람에게 써야 한다는 것. 만약 돈을 더 벌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임금을 올려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고...

 

차액으로 남은 이익들은 복지나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귀농해서 살아간다고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귀농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함께 살아감이 중요함을 농사를 지으면서 매순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희식의 글은 농사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농사에 대해서, 어떤 농사가 바람직한지, 또 농사를 통해서 우리는 공생의 의미를 깨우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교육에 대해서 지금 말들이 많다. 공정을 추구하는 정권에서 공정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입시의 공정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대학입시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도 교육에서 농사를 다뤄야 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농사에 대해서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그렇게 흙을 만지고 다른 생명을 기르고, 그 생명으로 인해 살아감을 깨우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냥 지식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와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

 

농사를 통해서 공정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데, 함께 살아가는 마음을 지니게 할 수 있는데, 또 인간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게 할 수 있는데, 미세먼지, 기후변화 이런 것들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데, 교육개혁에서 농사는 다뤄지지 않는다.

 

그렇게 학생들은 삶에서 농사를 저 먼 우주, 우리가 알 수 없는, 가지도 못하는 우주 이야기로 인식하게 된다. 아마도 전희식이 강연을 거절하지 않고 다니는 이유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못한 이런 농사에 대해서 학생들이 조금이라고 알려주려고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에게도 농사가 왜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고 있으니...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많은 사람들이 즐겨본다는데, 그들 자신이 바로 그런 자연인이 아니더라도 자연인처럼 자연과 동화되어 살 수 있음을, 농사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고 이 책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인공지능 시대 운운하는 이때,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농사가 시대를 이끄는 길임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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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어 수업 - 다음 세대를 위한 요즘 북한 말, 북한 삶 안내서
한성우.설송아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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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소이(大同小異)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읽었다. 북한말에 대해서 책 한 권을 내다니. 그것도 '문화어 수업'이라는 제목으로.

 

문화어는 북한의 표준어를 말한다고 보면 되는데, 평양말을 중심으로 삼았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문화어와 표준어는 많이 다를까? 많이 다르다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텐데... 우리나라가 분단된 지 70년이 넘어가지만 함께 해온 역사는 그것의 열 배가 넘으니... 아직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단계는 아니다.

 

가끔 남쪽으로만 국한하더라도 각 지방의 사투리들을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말의 뜻은 정확히 모르더라도 말을 하는 상황에 따라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사실 표준어를 쓰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표준어를 모두 알고 있지는 않다. 책을 읽더라도 모르는 낱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 그 말들을 하나하나 찾지 않아도 전체적인 문맥에서 뜻을 유추해내고 의미 파악을 할 수 있지 않은가.

 

북한말도 마찬가지다. 단어가 다른 것도 있지만, 그것들이 의사소통을 하는데 큰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할 때 통역을 동반하는가. 하지 않는다. 그만큼 외교적인 수사가 필요한 정상회담에서도 통역없이 대화가 가능한 것이 남과 북이다. 그러니 자꾸 남북의 말이 다르다고 강조할 것이 아니라 같은 점이 더 많다고 강조해야 한다.

 

이 책에서 계속 주장하는 것이 그것이다. 대부분은 같다. 약간 다르다. 그 약간 다름을 가지고 지나치게 과장하지 말자. 또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서로의 말을 잘못되었다고 하지 말자. 틀리다고 하지 말자. 누구네 말이 더 우월하다고 하지 말자. 그냥 세월이 흐르면서 지역에 따라서 언어가 약간씩 변화했을 뿐이다.

 

거기에는 우열은 없다. 자연스런 현상이다. 다만 남과 북이 철책선으로 가로막혀 서로 왕래를 하지 못하다 보니 생경하게 느낄 뿐이다. 우리가 가끔 텔레비전에서 듣는 지역 사투리들을 가지고 저급한 언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냥 와 다르네... 할 뿐이다. 다름에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자주 교류하다 보면 서로가 언어를 맞춰가게 된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그러니 언어의 통일성을 주장하기보다는 먼저 서로 만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서로 교류해야 한다.

 

장벽없이 만나면 언어는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서로 변해가게 된다. 그 점에 대해서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어느 한쪽의 언어를 중심으로 상대방의 언어를 폄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강제성이나 인위성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북한에서 실질적으로 방언조사를 할 수 없는 여건에서 생활 속에서 문화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가상으로 장면과 인물을 등장시켜 책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그래서 실생활에서 문화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다.

 

이제 남북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어야 한다. 철책선이 굳건히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 이 스마트한 시대에, 지구촌이라는 시대에 남과 북이 각자 자기들의 세계만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 한다.

 

고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인이라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표준어와 문화어 또 다른 지방언어들까지 다 포용하는 그야말로 대동소이한 우리말이 될 것이다.

 

남과 북의 교류는 우리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이 책을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빼기의 언어정책이 아니라 더하기의 언어생활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 사람들을 뿔 달린 도깨비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난 지금, 이제는 그들의 말과 우리들의 말이 모두 우리말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에필로그(313-318)에서 이 책의 내용을 너무도 잘 정리해주고 있다. 다만, 문화어 수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고, 완전할 수는 없지만 우리말을 되도록 쓰려고 하고 있는 문화어에서 책의 맨앞과 맨뒤 이름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한 것은 좀 아쉽다. 그냥 머리말, 맺음말 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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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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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로 마음 먹는다. 마음은 먹지만 밖으로 나가기는 쉽지 않다. 자꾸 망설여진다. 걷기에 적당한 장소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 마음은 늘 걷고 싶지만 실제 몸은 집 안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또 걷기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힘들다. 계속 걸어야 할까 망설이기도 하고, 도대체 왜 걷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때 멈추면 걷기는 중단되고 만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걷기의 인문학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처음 부분은 우리가 걷기를 시작하는 것만큼 편하지가 않다. 솔닛 자신이 걷는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내용이 명확히 들어오지 않는다. 아직 걷기 초반인 것이다.

 

참고 계속 읽기 시작한다. 읽기와 걷기는 이래서 비슷하다. 시작하기도 힘들지만, 시작하고도 처음은 더 힘들다. 이때를 이겨내지 못하면 도중에 멈추고 만다. 이 책은 읽어가면서 재미가 붙는다. 마치 걸으면서 점점 주변이 눈에 들어오고 재미가 있는 것처럼.

 

2부와 3부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걸을 때 어느 지점부터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이 책도 2부와 3부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원에 머무르는, 있는 사람들만의 걷기에서 정원 밖으로 나가는 걷기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유명한 시인인 워즈워스 남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이 걸은 거리가 만만치 않음도 놀랍지만, 당시 걷기는 정원 내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기에, 정원 밖으로 걷는 것을 당연하게 만든 이들의 걷기는 놀라운 걸음이라고 한다. 특히 동생인 도로시의 경우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제약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더 놀랍고.

 

정원 밖으로 나온 걷기는 이제 산으로 향한다. 등산 문학이 등장하고 보행을 위한 모임과 통행을 위한 투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3부로 가면 근대의 걷기가 나온다. 도시를 걷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 도시에서 이제는 걷기가 정치적 행위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행진, 시위... 우리는 이 걷기를 너무도 많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함께 모여 걷는 행위. 그것을 많이도 한 시민들이 바로 우리나라 시민들 아닌가. 그냥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삼보일배를 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극한의 걷기를 통해서 자신들의 의사를 강하게 표현하는 행위. 사회를 바꾸는 노력의 한 방편으로 걷기를 택하기도 했으니.

 

여기에 엄청난 거리를 걸은 사람들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토순례라고 하여 우리나라 남단에서 휴전선까지 걸은 사람들이 있으니... 걷기는 여러 이유로 실행이 되고 또 사람들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렇게 걷기는 개인의 행위에서 사회적 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걷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차, 자동차, 비행기의 등장으로 우리는 걷기보다는 이런 기계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빠르게 이동해주는 수단들이 나오면서 걷는 행위가 줄어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걷는 행위가 실내에서 실외로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헬스장이나 집안에 자전거나 러닝머신을 이용해 걷기를 대신하던 모습에서 도심에도 걷는 공간을 마련해서 걷는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

 

대도시, 환락의 도시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가 이 책의 대미인 4부를 장식하는 것도 이 점을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로만 접근이 가능할 것 같은 이 환락의 도시가 너무도 많은 자동차들로 인해 도로가 주차장이 되니 도심 한복판에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 그래서 걷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지금 새롭게 조성한다고 논란이 되고 있지만 광화문 광장이 조성되어 그나마 사람들이 걷는 장소가 조금 생기지 않았던가. 또 차없는 거리를 시행하는 도로들도 있어서 점차 사람들을 걷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들마다 걷는길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걷게 하고 있지 않은가. 제주도 올레길을 필두로 하여 술마다 치유의 숲길이 만들어지고, 가장 붐비는 서울에도 둘레길과 성곽길을 만들어 걷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듯 걷기는 사라질 것 같았지만, 사람들이 직립보행을 한 이후로 걷기는 사라질 수 없음을, 또 두 발로 걷는 장소를 마련함으로써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게 해 사회적 동물임을 인식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리베카 솔닛은 이 책 [걷기의 인문학]을 통해 걷기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 헤매면서 읽게 되지만 점차 읽기에 속도가 붙고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걷기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자연 속 걷기도 좋지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장소에서 걷는 행위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함을 생각한다. 직장인들이 출퇴근하거나 학생들이 등하교할 때 또 약속 장소레에 갈 때, 과연 걸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지, 여가를 내서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생활에서 걸을 수 있게 생활을 재편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걷기의 인문학은 단지 걷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삶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삶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걷기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잘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결국 이 책은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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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2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2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환자 혁명 - 약과 병원에 의존하던 건강 주권을 회복하라
조한경 지음 / 에디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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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장 쉬운 문제인지도 모른다. 우리 건강에 관한 것은... 그냥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아니, 여기에 한 가지 더 스트레스 덜 받으면 된다. 가능하면 아예 안 받으면 좋지만, 그것은 불가능할 것 같고.

 

너무도 단순하고 자명한 일인데, 건강을 지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너무 쉽기 때문에 너무 어렵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너무 쉽기 때문에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시험 볼 때를 생각해 보자. 문제가 너무 쉬우면 이건 아닐 것 같은데 갸우뚱 하면서 맞는 답에 의혹을 갖고 다시 풀거나 다른 답을 고를 때가 많지 않았는가.

 

여기에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이 한 마디 더하면 그냥 넘어간다. 전문가에다가 주변에서 모두들 이것이 옳다고, 그것도 언론에서 그렇다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쪽에 가담한다. 병도 그렇다. 병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다. 우리가 건강을 유지한다면 굳이 병원에 갈 이유가 없다.

 

그런데 병원에 가도 건강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병원에서 병을 치료하는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병원에 가겠는가? 그래도 간다. 왜냐하면 병에 대해서 자신은 모르고 의사가 잘 알고, 알아서 치료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신화들이 합쳐진 결과라고 하는데... 현대의학을 지배하는 것은 제약회사라는 이 책의 주장은 그럴 것이다라는 심증에 물증을 더해주고 있다. 제약회사들이 자신들의 약을 팔기 위해 어떻게 로비를 하는지, 그 약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완화할 뿐이라는 것.

 

이것의 최종판이 바로 백신이다. 마치 백신 접종을 안 하면 인류에게 감염병을 전파시키는 인류의 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바로 제약회사의 로비를 받은 언론과 정치집단들이다. 이들만이면 그래도 그들이야 뭐, 본래 그런 집단이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의사협회라든지, 세계보건기구 같은 경우도 제약회사들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하니, 참으로 참담하다.

 

자신의 건강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버린 꼴이다. 내 몸을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게끔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 그것도 많은 돈을 써버리면서 지내는 그런 상태가 바로 현대의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인 조한경은 아주 단순하다고 말한다. 우리 건강을 지키는 길은.

그것은 풍부한 영양 섭취, 즉 가공식품을 멀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온갖 제초체로 길러진 채소를 먹는 것이 아니라 유기농 식품들을 먹어야 하고, 탄산음료와 같은 것들은 멀리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생협이나 한살림 등 유기농 식품을 찾는 사람들이 유별난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 병원에 가지 않고 자연치유를 하려는 사람을 뭘 모르는 사람, 용감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기보다는 자신의 생활습관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병을 근원적으로 고치는 것이라고 한다.

 

영양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우리 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우리 몸을 어느 한 부분으로 조각내 증상만을 치료해서는 절대로 건강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 몸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어느 한 부분에 병이 들었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몸을 돌아볼 기회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부의 침입보다는 내부 환경을 중시하는 관점이다.

 

또한 잘 자야 한다. 잠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잠은 건강에 필수요소다. 잘 잔 잠은 보약보다도 좋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청소년들이 제대로 잠을 못 자고 학업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은 이들의 몸을 우리가 혹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지금 청소년들의 몸이 어떻게 무너져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지금처럼 청소년들이 잠을 잘 못자고 성장한다면 그들 몸에 다양한 이상 증세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내버려두는 것, 우리 어른들의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말 안 해도 건강에 필수인 요소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던가. 엄청난 스트레는 몸의 균형을 깨뜨린다. 그러므로 충분한 수면, 명상, 복식 호흡 등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이것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길이다.

 

이런 이야기에 이어 현대에 많이 발병하는 병들을 지금 의료계에서는 어떻게 치료하고 있고, 그것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것들을 우리 생활습관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건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증상을 들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그렇게 설명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읽은 것에 책임을 지라는 것.

 

지금까지 건강하지 못했다면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독자 여러분들의 책임이다. (342쪽)

 

당연하다. 내 몸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예전에 한의사였던 김홍경이 쓴 책도 제목이 [내 몸은 내가 고친다]였다. 이렇듯 당연한 일을 의사에게 맡겨버리고 나 몰라라 했으니, 이 책을 읽은 다음 건강은 내 책임이다.

 

옆에 두고 찬찬히 읽으며 내 생활습관을 들여다보아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한 책이다. 우리 모두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내가 내 몸에 책임을 지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함을 깨닫게 한 책이기도 하다. 적어도 의료산업에 완전히 내 몸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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