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서 여행 계획도 없이 어정쩡하게 연휴를 맞았다. 하루키의 신간은 제목에 나온 라오스 뿐 아니라 일본, 미국, 유럽을 방문하고 (최신작이라 했지만 1990년대 말부터 띄엄 띄엄) 쓴 기행문이다. 설렁설렁 다니며 쓴 혼잣말도 푸념도 섞인 글은 예전에 (사반세기!) 살았던 곳을 다시 방문하며 만나는 특별한 감정도 담고 있다. 향주머니와 함께 곱게 의식의 서랍에 넣어두었던 기억을 다시 펴본다....고 했다. 이번 기행문은 다른 장소, 다른 시간을 다녀보는 이중의 여행 경험이다.

 

간간이 나오는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하루키의 인상은 곱지 않아서 아, 이 아저씨가 우리나라에서 그리 돈을 벌고 팬을 확보했으면서 한 번 방문 하지 않았었지,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책 말미에는 일본 구마모토 탄광의 세계문화유산 선정 이야기도 실렸다. 하루키는 시대를 무시하고, 혹은 초월하고 쓴 글이랄까, 아니면 역사를 '아, 너무 복잡하고 슬프고 힘들군요, 맥주나 한 잔' 하는 심경으로 쓰는 걸까. 영 불편한 마음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하루키 상은 그리스나 이태리, 미국에나 갔으면 좋겠다. 그가 일본 현지에서 쓴 글에는 일본의 역사가, 맥주나 재즈 음악 말고, 강하게 풍겨서 거북해져 버렸다. 하루키를 쿨하게 읽을 수 있었던 건, 그가 까칠한 개인주의 작가 였기 때문이다. 그가 국적을 드러내고 일본인임을 풍기면 (아, 아, 나도 한일 축구전에 흥분하는 아재들이 싫었다고요) 나도 슬슬 방어 가드를 올리게 되고 만다. 하루키도 썼던데, 고추냉이 없는 초밥집처럼 하켄크로이츠 없는 나치스 독일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이런 표현을 쓴 것 역시 그의 역사관인가. 어쨌거나 나에게 하루키는 국적과 역사가 없는 좀 덜 생긴 아재 작가인 게 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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