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십대 후반의 화자는 프랑스 휴양지 발벡에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다양한 인물들을 관찰한다. 귀족과 부르주아, 호텔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과 해변 마을의 상인들과 하인들까지. 그의 인물 감상은 살벌하게 우스꽝스럽고 또 어처구니 없기도 하다. 부르주아인 이 청년이 현실 걱정 없이 바라보는 석양의 하늘과 저녁 바람, (당시 신문물) 전등으로 밝혀진 레스토랑에서의 근사한 시간들. 그동안 이 청년은 계속해서 여인들을 시선으로 좇고, 상상으로 끌어안고, (만만한 계급의 여자들에게는) 돈자랑도 하면서 (그 사이 사이 할머니한테 땡깡도 피우고) 망상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스완씨에 버금갈만한 화자의 롤모델 귀족 청년 생루와 그의 친척 샤를뤼스의 등장도 드라마틱하지만 이번 권의 하이라이트는 해변의 발랄한 걸그룹의 등장이다. 짜짜잔. 대여섯 명의 그 활달한 소녀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친해지려 애쓰는 화자. 우연이 몇 번 겹쳐 그 중 한 명인 알베르틴과 통성명을 한다. 


밥맛 없이 구는 변태 화자에 정내미가 여러 번 떨어지지만 의외로 이번 권에는 유머스러운 에피소드들이 많고, 그윽한 풍경 묘사와 (제비가 솟구치는 바닷가! 어두워진 시골길! 나를 따라오는 저녁노을! 아름다운 이 풍경들 묘사 속에 나도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은, 그래요 착각입니다) 솔직한 마음 탐구(랄까, 묘사랄까, 특히 시간차로 다가오는 행복이라던가, 자신을 삼등분해서 감정이 착각해도 의지가 붙잡아준다는 이야기에는 트위터리안의 냄새도 났다)가 아름다워서 욕을 삼키면서 계속 읽고 있다. 옛 한자어휘와 길게 꼬인 사극체 문장의 펭귄판과 소소한 오역이 꽤 많은 민음사 판을 원서도 좀 참조하면서 함께 읽느라 발벡의 여름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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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8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21-08-08 14:19   좋아요 2 | URL
두 번역본을 장면 기준으로 나눠 번갈아 읽는데요, 문체 뿐 아니라 분위기가 아주 달라서 재미있어요. 그러다 묘사가 어긋날 때나 이해가 잘 안될 때만 으응? 원서를 찾아봅니다. 원서 문장이 별나게/ 우리말 번역과 비교해서 고급스럽거나 그렇진 않아요. 다만 촘촘하게 인물의 감정과 풍경 묘사를 하는 점이 흥미롭지요. 그나저나 ㅁㅇㅅ 번역은 부드러운 큰 흐름으로 읽을 땐 좋은데 자꾸 걸리는 부분이 생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