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과 변환의 중대한 기로에서, 우리는 변화의 물결이 우리 자신과 우리 인생의 친숙한 부분들을 휩쓸어갈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새로운 물결이 어떤 생소한 기쁨과 만족, 어떤 미지의 존재를 가져다주게 될지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의 상상력은 경험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지의 존재가 일깨우는 파충류적 공포심은 일단 눈을 뜨기만 하면 흉포하게 날뛴다. [...] 혁명가가 된다는 것은 곧 상상력을 펼친다는 뜻이다. 친숙한 것의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질서를 머릿속에 그리며, 새로운 질서 안에서 얻게 될 것이 잃어버릴 것이 주는 잘못된 위안을 뒤덮고도 남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일이다. - P314

<종의 기원>은 자연선택설을 주장하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을 전복한다. 바로 개체의 소멸을 통해 종이 생존하고 진화하게 된다는 가설이다. 다윈은 죽음이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며 생득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암시한다. 죽음은 공평한 우주 법칙의 일부이다. - P378

탤벗은 자신의 위업에 기뻐했지만 박식한 정신이 곧잘 빠지곤 하는 만성 질환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다른 일에 열중하게 된 것이다. - P387

사진관에서 가장 눈에 띄게 광고하던 은판 사진은 ‘갓난아기와 어린이의 사진‘과 ‘고인의 초상사진‘이었다. 빛과 그림자의 단명성을 둘러싼 과학적 고투에서 탄생한 사진은 존재 자체의 일시성과 겨루는 예술로 성장하게 되었다. - P393

이제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아주 오래된 시간을 배경 삼아 마치 깜박이는 찰나 같은 우리 일생을 생각하니 불현듯 우리 존재의 덧없음이 우리를 아프게 찌른다. 우리는 혼돈과 엔트로피가 혼재하는 우주의 강물 위에서 아주 잠깐 섬을 이루었다가 다시 비존재를 향해 영원히 떠내려가는 존재일 뿐이다. - P403

우리 안의 모든 창조적인 힘과 수학적 계산과 사납게 날뛰는 사랑의 감정은 수천 년에 걸쳐 진화해온 신경조직을 따라 1초에 24미터의 속도로 진동한다. 이 사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정신의 작용 또한 일련의 전기 자극일 뿐이다. - P483

그날이 오기 전까지 한번 창조된 것은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한번 심어진 씨앗은 몇 세대, 몇 세기, 몇 문명의 시간이 지난 후, 집단과 나라와 대륙을 가로지르고 이주하여 꽃을 피울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날뛰는 전쟁 중의 평화 속에서, 잠재적 재능이 숨어있는 빈곤과 무명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얻지 못한 많은 것을 가지고, 난파된 사랑의 잔해 속에서 살아가고 죽는다.
나도 죽으리라.
당신도 죽으리라.
우주적 관점에서 아주 잠깐 자아의 그림자 주위로 뭉쳤던 원자들은 우리를 만들어 낸 바다로 돌아가게 되리라.
우리 중에 살아남게 될 것은 기슭 없는 씨앗과 우주먼지 뿐이리라. - P8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