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장벽을 향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달리는 두 청소년, 하이메와 안헬라의이야기다. 친한 언니의 번역서라 선물 받았는데 이제서야 읽는다. 아껴둔 마음이랄까.


오뒷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이기고도 고향땅으로 돌아오기 까지 십 년이 걸렸다. 천하의 명장이 '집'인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 아무리 고난과 역경이라지만 모험과 승리의 연장이고 그의 교만에 대한 징벌이다. 반면 열두살 하이메와 열다섯 안헬라는 집을 떠나야 한다. 과테말라 소도시에서 복닥거리며 가족과 친척들과 지낸 집을 갱들을 피해 그저 살아남기 위해 떠나야한다. 멀리 미국에 일하러 간 친형, 7년 정도 못 만난 토마스 형아를 찾아 아이 둘이 간다. 어른도 없이, 정식 서류나 여권도 없이 바지춤에 이천 달라를 꼬매 숨긴채, 낯선 브로커 아저씨를 만나고 타국에 밀입국해서 낯선 도시의 수용소들을 찾아 가야 한다. 단 둘이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타말레와 또띠야, 망고를 비닐에 넣어 들고 배낭엔 옷 두어 장, 반질고리와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담아 떠난다. 


마약과 갱단의 폭력을 피해서 미국으로 도망치는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는 작년 출간된 American Dirt라는 소설로 나와있다. 오프라 북클럽에서 선정할 정도로 많이 읽힌 이 책에서는 돈을 벌 욕심 보다는 그저 생명을 유지할 '단 하나의 길'을 따라 집과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을 막으려 미국은 거대한 벽을 쌓는다. 책이 호평을 받아도 테러를 하겠다고 위협하는 이들도 있고. 갱단과 마약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미래소설로 만든 <전갈의 아이>도 생각났다. 갱단과 마약, 그 폭력이 장벽을 세우면 넘어오지 않는건가. 그 장벽 너머에 갇히는 사람들은 어째야 하는가. 



<장벽 너머 단 하나의 길> 이 짧지 않은 이야기 내내 아이들은 고생길을 달린다. 잠시라도 맘을 놓을 수가 없었다. 덩달아 나도 함께 달리고 숨고 숨죽이고 (먹던 과자랑 커피가 미안해서 내려놓으면서) 읽었다. 청소년 소설이라서 비극이 없을거라고 믿고 싶었는데, 첫 챕터부터 미구엘이 그리 된 다음엔 어떤 어른도, 처음 보는 사람이거나 친절해 보이는 사람도 위험하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안들리는 거 알지만, 얘들아 그 농장의 구유에 있던 물은 정말 지지야! 그거 마시면 죽어!) 그 몇 주, 어쩌면 몇 달, 아이들이 멕시코를 거쳐 미국까지 천천히 강도를 높여가면서 위험한 길을 달릴 동안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었"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기를, 갱단에 목숨을 잃거나 악용 당하지 않기를, 버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은 각자의 한계를 안타까워하면서 손을 내밀고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무엇보다 아이들 곁에는 오뒷세우스의 아르고스 못잖게 의리있는 개 '비다 (생명)'이 함께였다. 


실제론 더한 고생이겠지. 살아남기 보다 기차나 갱들에게 먹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거야. 하비나 호아킨이 어찌 되었을까. 이제 장벽 이쪽에서 다시 저 너머 단 하나의 길을 되짚어 본다. 아이들은 잊지 않고 그 고생을 (하이메의 솜씨 좋은) 그림으로, 행동으로 사람들과 나눌 차례다. 운이 좋았지, 너희들은. 정말 다행이야. 미구엘이 보살펴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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