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호에는 새 동화가 세 편 실려있다. 그중 '지각하고 싶은 날'을 먼저 읽었다. 학교 가기 싫은 날, 이 생각나는 이 이야기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초등학생 '나'가 화자이다. 나는 화가 났다. 게임을 너무 한다고 어젯밤 엄마가 핸드폰을 뺏어버렸다. 1교시 전에 내야할 숙제도 두 가지 모두 하지 않았고, 학교는 원래 재미없다. 작년에 전학온 학교에는 뭔 행사가 많은지 맨날 뭘 '특별히' 하라고 시킨다. 나는 관심도 없는데. 우리집 맞벌이 부모를 뺀 다른 부모님들과 조부모들은 학교에 자주 와서 선생님들이랑 인사도 하고 학교선 그들에게 보여주기 수업도 준비한다. 재미없다. 선생님들은 강요의 달인들이고 나나 학생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작전을 잘 짜서 내가 사라진 걸 알고 모두들 긴장하게 만들고, 특히 핸드폰을 압수한 것을 엄마가 반성도 하실거고, 그런다음 아슬아슬하게 학교에 갈 계획이었다. 공원 화장실에서 계획을 머릿속으로 다듬는데 엇, 화장실 밖에 어떤 아저씨, 아니 형아가 있다. 이 시간에 공원 화장실 근처에 어슬렁 거린다면 분명 ....  나는 바짝 쫄아서 그 형아가 하는 전화 통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눈사람'에는 친절한 화자(어른)가 어느 눈 온 다음날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식이다. 주인공 여자아이가 일어나서 엄마 몰래 살짝 집을 나선다. 놀이터에서 즐겁게 눈사람을 만들고 엄마에게 들켜 꾸지람 같은 무서운 표정을 보며 집으로 돌아간다. 낮 동안 그 눈사람에겐 어떤 일이 생기는지 차근차근 들려주는데. 역시 '지각 하고 싶은 날'의 '나'처럼 이 '여자아이'도 엄마의 법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꿈틀대고 있다. 왜 굳이 '여자'아이 라고 했을까. 낮동안 '남자'아이들이 눈사람을 상대로 과격한 놀이를 하기 때문일까, '여'고생들이 꺄르륵 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묘사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이른 아침 아이가 일어난 기척도 모르고 식사 준비에 바쁜 엄마와 짝을 이루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도드라지는 성별 구분에 더해서 마무리에 '내가 너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노라' 라는 '남자' 작가의 목소리가 눈사람보다, 이야기 전체보다 더 '창조'주 같이 웅장하다.

 

눈사람 말고 진짜 사람을 '창조'한 신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사람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바로 라후라 신과 아후라 신 부부인데 지구와 해와 달, 별들, 그리고 식물과 동물들, 마지막에 '만들기 솜씨가 좋아진 다음' 사람을 만들었다. 그들은 이 창조의 이야기를 어린이 '또마'에게 들려주고 또마는 나중에 이야기를 잘 하게 된 다음에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지금은 동굴벽에 그림을 그려둔다. 아, 이건 요즘 배경이 아니라 먼 옛날, 공룡은 이미 사라진 다음이지만 아직 사람은 짐승 가죽옷을 입고 동굴에 살던 시대의 이야기다. 보랏빛을 발하다가 눈물로 식고, 호수와 바다를 갖게된 지구, 자유롭게 만들어 놨더니 한곳에서 가만히 있고싶어하는 식물, 신의 방귀를 먹고 태어난 공룡 등, 과학 얘기를 슬쩍 끼워 넣은 신화 같은,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의 동화 버전같다. 사람은 왜 이런 여리여리한 모습일까, 실은 인간의 이빨에도 독이 있었다! 발톱도 있고! 초기 사람의 무쇠팔 무쇠다리 늠름한 주먹을 꿈에 보는 또마. 이 꼬마 아이가 잘 자라나서 동굴촌 사람 모두가 기대하는 멋진 이야기꾼이 되길 바란다.

 

최근의 동화들인데 아주 기발하기보다는 (막 재미가 넘친다기 보다는) 안정적인 느낌이다. 살짝 흔드는 결말이 귀엽긴 한데, '눈사람'은 너무 슨상님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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