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예술과 종교처럼 "사회적 세계를 부정하는 최고의 장소"이다. 그리고 예술이나 종교와 마찬가지로 낭만적 사랑은 세계를 초월하거나 전복하는 주장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토대를 부정한다. 그렇다면 감정, 문화, 경제의 연관관계를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는가? '감정'은 생리적 각성, 지각 메커니즘, 해석 과정의 복잡한 결합물이다. 따라서 감정은 비문화적인 것들이 문화 속에서 부호화되고, 육체화 인지 그리고 문화가 수렴하여 융합되는 경계에 위치한다. 그리하여 나의 문화적 관행으로서의 낭만적 사랑은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이라는 쌍둥이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다른 관행들과는 달리 낭만적 사랑은 직접적인 육체적 경험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20-21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랑은 '허위의식'으로 또는 사람들의 욕망을 보충하는 것으로 상정되는 '이데올로기'의 힘으로 쉽게 환원할 수 없는 유토피아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오히려 낭만적 사랑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은 성스러운 것의 경험과 강한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뒤르케임이 주장했듯이 그러한 경험은 세속 사회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종교 본연으로부터 문화의 다른 영역으로 이주했다. 낭만적 사랑은 이러한 대체 장소 중의 하나이다. 28

 

낭만적 사랑에 대한 문화적 이상은 열정과 성적 매력의 강렬함에 더 많은 정당성을 부여해왔다. 그러한 이상은 애인의 유일성을 강조하고 또 로맨스에 대한 자전적 서술을 단일한 평생의 서사('위대한 사랑')에 포섭시킴으로써 가능한 파트너의 수를 제한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서사는 결코 편안함의 서사가 되지는 못한다. 사랑의 서사는 열정의 우위를 단언하기 때문에 보통 이별 또는 연인의 죽음으로 끝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탈근대적 문화는 한평생을 포괄하는 낭만적 서사의 붕괴를 목도해왔는데, 거기서 낭만적 서사는 더 짧고 반복적인 형태의 정사로 압축되었다. 297


낭만적 정사의 문화적 부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섹슈얼리티가 겪은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이 기간 동안 섹스는 그 자체로 점차 정당화되었으며, 여성해방과 게이 해방의 정치 담론에 의해 더욱 부추겨졌다. 이 과정은 소비 영역의 강력한 문화적 관용구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정사는 그 본질적 덧없음과 쾌락, 새로움, 흥분에 대한 긍정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탈근대적 경험이며, 소비 여역이 조장한 감정 및 문화적 가치와 (막스 베버의 의미에서) 친화성을 갖는 '감정 구조'를 포함한다. 298


베버가 목적 합리성이라고 칭한 실제적 영역에서 "개인은 수단과 목적을 숙려하여 주어진 행위의 예상되는 결과를 평가한다." 인지적 합리화는 과학과 기술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반면, 실제적 합리화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적 시장 관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경제에서 실제적 합리성의 목적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인 반면, 인지적 합리성은 우리가 추상적이고 공식적인 사고를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것을 돕는다. 베버와 그의 계승자들이 볼 때 '합리화' - 즉 자본주의의 문화논리 - 는 단지 조직 구조만이 아니라 퍼스낼리티 구조까지 지도 계산, 통제, 예측 가능성을 지향하게 만든다. 323


자본주의의 가치들이 문화와 사랑에 침투한 것은 개인 간 관계뿐만 아니라 자아도 합리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잭슨 리어스는 19세기 말에 "상호 의존적 시장에서 파편화된 자아는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사적 이익을 위해 조합되고 조작되는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리어스는 계속해서 "우리의 내적 삶의 합리화는 합리화의 다른 교묘한 형태들, 즉 19세기 말에 출현한 법인 체계에 반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응하는 형태를 촉진시켰다."고 제시한다. 따라서 근대적 사랑 담론은 자본주의 생산 영역 위에, 외부에, 또는 그것을 넘어서 존재하기는커녕 그 영역에서 파생된 자립심, 개인주의 그리고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으로 가득 차 있다.

 

 베버의 용어로 표현하면 이들 잡지가 조성한 낭만주의 윤리는 자본주의 기업가의 형성에서 도구적이었던 윤리와 유사하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처럼 낭만주의 윤리는 낭만적 관계를 여러 계획된 통제 절차의 체계적 실행을 통해 달성되는 하나의 목표로 봄으로써 감정적 또는 가치 함축적 합리성보다는 도구적 합리성을 고무했다. '낭만주의 윤리'는 관계들이 사업 세계를 지배하는 것과 동일한 수익과 손실의 논리를 가지고 평가되어야 한다는 자본가의 신조와 완전히 일치한다.  336

 

낭만적 관계에서 드러나는 경제적 이해 관심에 대한 비난은 사회적 지위가 불안전하고 하강 이동을 두려워하고 또 동일한 여성을 놓고 더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가진 남성과 경쟁하는 남성들이 제기하는 평등주의적 교환의 도덕 속에서 표현된다... 이것은 이를테면 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자신들의 선택에서 사리 추구를 더 시인하고 합리적 거래의 논리를 더 상용하는 경향이 있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 즉 여성들이 여전히 남성들보다 더 불확실한 경제적 지위에 있고 또 여전히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결혼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합리적인 문화적 사랑 레퍼토리에 의존함으로써 그러한 관계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더욱 관리하고자 할 가능성이 크다. 3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


몸이 탈색이 되도록 이야기하고 나눈다.  이야기도, 지난 만남를  더듬자 지금이 옛일 같다. Y친구들, 활동가들과 고민도 섞지 못해, 만남도 별반 다르고 진한 것이 없어 미안하다. 금요일은 약속이 겹쳐있고, 미리 나눈 얘기들로 가볍다. 하지만 마음의 잔상이나 몸은 이물감을 느끼는 듯 편치 않다. 마음들이 몇 순배돌고,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 피곤한 몸은 신호를 보낸다. 소주에서 맥주로 바꾸는 순간 느티나무길 골목의 바람이 졸았나보다. 하루의 끝은 바램보다도 사람들의 만남에 밀려가버린 듯하다.

 

이틀


밀려난 몸이 일찍 깨어났다. 머리의 취기는 아직 있는 듯한데 어제 읽던 책의 여운이 찌릿하게 다시 온다. 책을 집어든다. 읽어낸다. 절망도 희망도 버티어내는 지금에서 주춤거린다. 마음이 놀라다. 평론가의 글을 보지 않을까 하다 그만 본다. 평론의 몫을 해낸듯 비평의 시선이 은근히 들어온다. 그렇게 한때가 지난다. 식구들과 새로생긴 큰길식당에 가서 묶은 요기를 하듯 정신없이 몸을 채운다. 식구들이 무슨 아픔과 일의 무게가 버티고 있는지 가늠한다. 청소를 하지 않은 막내 방에서 책을 다시 권한다. 그렇게 책을 껍질을 벗고 저녁이 밀려온다. 밤이 밀려오는 주막에서 어스름을 맞아 막걸리를 나눈다. 만나는 이들을 건네고, 모임의 마음을 잔에 기울여 보낸다. 또 만날 이들을 이야기하고, 건네고 싶은 속내를 펼쳐본다. 미루나무가 있는 한희원의 그림을 기억하다보니 잎이 반짝거린다. 바람이 까르르 웃으며 밤 뒤로 숨는다. 허리 춤에 느낌을 차고, 많이 숨이 죽은 분위기를 차고 집으로 향하는 언덕을 넘는다. 벗의 문자로 꼬리에 채였다. 호기를 가장해 치킨에 맥주를 시켜 웃음과 애정을 섞는다. 아이들은 맛만보고 음식을 물린다. 아까워 한점 더 베어 문다.

 

사흘


끝이 나지 않는 다른 책의 중동을 물었다. 물다보니 아린 즙이 배여나왔다. 끌려간 위안부만이 아니라 150만의 노동자라. 절반도 되지 않는 월급에다 반강제 삶을 살게 한 이들의 배후가 버티고 서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 여운이 채 식기도 전에 전해오는 책의 말씀은 버겁다. 졸음에 피곤도 책장도 찰랑이게 놓고 싶다. 바람에 쓸려가도록 깜박 졸음에 잊고 싶다. 어제 언덕 넘어오다 만난 문자가 걸린다. 다시 연락이 와 어디서 보자고 한다.  버스 안에서 더 책 속에 파묻히다보니 깜박 정거장을 지나친 듯 싶다. 내려보니 한 정류장 먼저 내렸다. 흐린 하늘 속 찬찬히 걷다. 익숙한 골목과 식당들 선화동을 거닐다가보니 약속한 곳. 쉬는 날이다.

 

자전거를 타고 온 이와 자리를 옮긴다. 어제 봤다는 한무리의 중후년 양반들이 친구를 반갑게 맞는다. 민작분들이라는 소개다. 밤을 꼴닥새우고 이야기나누다 헤어지는 길이란다. 김*기 시강좌가 생각나 건넨다. 마음을 섞고 부여잡고 시린 속을 달랜 이들의 지난 밤이 읽히는 듯싶다. 벗이 묻는다. 작정을 한 듯 말이다. 어제도 그제도 다른 친구에게 물어봤던 말이다.  나는 없다고, 나에 기댄 학문도 그러하다고 한다. 어렵다고 한다. 한 시인이 말한 질량과 공간도 어려웠다고 한다. 몸말을 듣고 싶은 듯하여 이것 저것 게워낸다. 어떻게 살고 싶은데. 가깝다고 한다. 좋은 삶은, 서사적인 나도, 너-나도 족쇄에 풀려났다고 말한다. 벗은 자꾸 그말이 꿈에 가깝다고 했다. 너의 꿈이 뭐냐고 반복하여 말한다. 그러다가 어제 물러난 어둠이 흐린날 주점에 다시 찾아온다. 사흘의 이야기를 불러 앉히고 꾸짖는다.  기억이 어둠에 잡아먹혔다. 어둠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주섬주섬 챙겨 도시를 빠져나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넓게 생각하려면 무엇보다 전문가적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부분에 치중하지 말고 늘 전체를 보도록 노력하라. 또 가능한 한 크게 생각하라. 생각의 폭이 클수록 효과도 오래 지속되는 법이다. 87


건축가나 입안자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후자는 전문가로 불리기는 하지만 다른 직업인에 비해 넓은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의 넓은 시각은 그들 위에 버티고 있는 정치가나 경영인, 법률인 등 소위 전문가들의 좁은 시각과 종종 마찰을 빚는다. 입안자들은 최소한 필라델피아 시 전체를 볼 줄 안다. 어는 집의 구멍을 통해 보거나 그 집의 방 문틈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입안자라고 생각하며 가능한 한 넓게 볼 필요가 있다. 86


인류의 부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지속적으로 또 엄청난 크기로 증대해 왔다. 그런데도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여전히 비현실적인 잣대로 물질적 부만 계산하면서, 기술이나 지식은 월급만 축내는 손실로 간주한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우리가 정의하는 부의 개념은 공산주의 사회이든 자본주의 사회이든지 간에 모든 이에게 큰 충격이 될 것이다. 사회 기관과 일반 기업은 상호 작용하여 부를 창출한다. 그런데 경쟁밖에 모르는 우리 사회는 그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회계시스템은 지금까지 공동 효과에 대한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자산은 소모되는 것이어서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로열티 제도 말고는, 발명이나 팀워크를 통해 창출된 시너지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제도도 없다...바다와 공중, 우주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너지 효과의 활약상은 한 번도 지상의 회계방부에 이윤으로 기록된 적이 없다...국가간의 장벽이 철폐된다면 인류 전체가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128-129


내가 보기에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 가운데 급선무는 바로 비현실적인 경제, 회계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것이다. 현재 경제, 회계 시스템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는 인도에서 최고급대우를 받는 일류 장인의 한 달 소독이, 같은 수준의 장인인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시에서 벌어들이는 하루 소득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인도가 어떻게 국제무역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140


성공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통합은 최소환 둘을 필요로 한다."는 물리학 실험 결과는 이를 잘 증명해준다. 서로 다른 물질인 양성자와 중성자가 상호 보완하여 원자핵을 구성하듯, 너와 나도 본질적으로는 다르지만 상호 보완적으로 공동 운명체를 만들어 간다. 두 사람이 함께 '영 0'이라는 기준선에 서서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164


우주선 지구호의 화석연료는 자동차 배터리에 비교할 수 있다. 배터리를 보전해야 시동을 걸고 엔진을 작동시킬 수 있듯, 인류의 생존 과정에서 화석연료도 배터리 같은 역할을 한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바람과 조수, 물, 태양에서 얻은 일상 에너지에 의존하면서, 화석연료 통장은 새로운 기계를 만들 때에나 잠깐씩 사용해야 한다. 일단 기계를 만든 다음에는 그 기계가 태양열, 조력, 풍력, 수력 에너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지성을 이용하여 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 수억 년에 걸쳐 저장된 '에너지 적금'을 단번에 써버린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162


입안자들과 건축가들, 기술자들이여, 그대들이 앞장서도록 하라. 직장에 가서 서로 돕고 협력하며, 남의 희생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말라. 그런 일방적인 성공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그건 인류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한 교훈이다. 그건 또 인간이 만든 법이 아닌, 우주를 지배하는 영원한 지성의 법이기도 하다. 1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10320 무진 霧津 기행 O ...ing

목마른 사람은 물에 세상의 모든 맛이 담겨 있음을 압니다. 배고픈 사람은 흰 쌀밥에 최고의 맛이 담겨 있음을 알 거고요...이유를 따지고 논리를 만들기 전에, 마음이 먼저, 발이 먼저 그들에게 도달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세상을 구경하려는 자들에게는 어떤 느낌도 오지 않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는 무시한 채 먼 곳에서 뭔가를 찾으려는 자들에게도요. 잘 느끼는 사람들은 열심히 구하고, 열심히 움직입니다. 그러다 보면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그럴 때 바로 가까이에서 가장 맛있는 물과 밥을 찾게 되는 거죠. 49


단지 서로의 말에 끄덕거리기만 해서는 소통이 될 리 없습니다. 소통이란, 말 그대로 막힌 데를 뚫고 서로를 통과해 가는 것이거든요. 공감은 다른 두 세계 사이에 전류가 흘러 거대한 에너지 장을 만드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소통과 공감은 언제나 둘 이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느끼는 것은 고독한 행위가 아니라 고독을 넘어가는 행위입니다. 혼자서는 느낄 수도, 통할 수도 없으니까요. 느끼는 것은 다른 것과 만나고, 다른 것을 통과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다른 것이 되는 경험을 하며, 거대한 전체와 한 덩어리가 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52


느낌의 달인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두 세계의 경계에서 생각한다는 것이죠. 선명한 가치 판단으로 세상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뭔가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예술은 이런 느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경계 위에서 이것과 저것이 동시에 느껴질 때,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에서 무언가가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하나의 판단을 방해할 때, 그때 우리는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예컨대, '차가운 뜨거움'이라든지 '슬픈 기쁨' 이라든지 '텅 빈 충만함' 같은 모순된 느낌들을 통해 우리는 세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예술은 결국 다르게 느끼는 것이고, 다르게 느끼는 연습을 통해 예술가는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를 형성합니다. 75


느낀다는 건 언제나 '둘'에서 시작합니다. 이것과 저것이 만나 폭발적 에너지를 만들어 내죠. 느끼는 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다른 무엇을 만나 둘을 이루고, 열을 이루고, 무한을 이루는 문제입니다.92


느끼는 데는 여러 기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기술이란 게 어려운 지식이나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예요. 지금까지 본 것처럼, 비우고, 의심하고, 변신하고, 경계를 넘나들고, 전달하고, 벗을 사귀는 기술, 그런 게 느낌의 달인들이 가진 능력이죠. 99


빨리 먹어 치우는 음식은 양분으로 쓰이지 않고 배나 허리나 엉덩이에 군살로 쌓인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음미하지 못하는 감각들은 군살이 됩니다. 때문에 새로운 걸 보고 들어도 느낄 수 없게 되죠. 예술가의 감각에는 군살이 없습니다. 철학자의 머리에도 군살이 없고요. 덩치가 크든 작든 운동선수가 불필요하게 살이 찌면 운동을 잘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예술가에게는 감각의 군살, 철학자에게는 생각의 군살이야말로 더 이상 예술과 철학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최대의 적이거든요. 하나의 방향으로, 하나의 속도로 내달리는 것보다 위험한 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차이를 하나로 만들면서, 새로운 느낌을 억누르거든요. 그러다 끝내 느낌의 독재자, 생각의 독재자가 되는 겁니다.  119


우리는 생각하고 말하는 건 누구나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느끼는 것도 능력이라고는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느끼는 거야말로 생각하고 의지하고 행위하는 데 기본이 되는 능력입니다. 느낀다는 건 내 안에 낯선 힘을 받아들이는 거거든요. 달리 말하면,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아가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깥으로 나가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상처받지 않으려고 자신만의 세계에 꽁꽁 갇혀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상처받고 아파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걸 통해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눈을 갖게 될테니까요.  145

 

뱀발.  좋아하는 말들이 겹쳐 고르다가 읽다. 도서관에 서성인 보람같은 것 말이다. 채운 책은 몇권 읽었다. 느낌을 이리 잘 풀어서 좋다. 생각도 말이다.  군살보다는 근육이란 말을 즐겨쓰기도 하지만 아무튼 좋다. 너머학교와 길담서원의 청소년 교육 툴이 관심이 간다.  여전히 비가 흩날린다.

 

느낀다는 것의 속

 

 

 

 

 

 

 

 

펼친 부분 접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꽃

 

 

비가 온다

 

반가워
처마끝 만들고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아래
오목한 마음그릇 하나 재워 둔다

 


그릇엔 작은 연못이 들어서

 

톡톡
동심원이 생긴다

 

톡톡톡
작은 파문이 인다.
번지는 가장자리엔 초록이 비친다.

 

 

톡톡 초록 위로 마음이 부푼다.

 

 

뱀발.  비를 기다렸다. 흙먼지가 일기도 해서이지만 만남도 일도 푸석푸석해질 때 습기가 몹시 필요했다. 몇시간이라도 처마 밑에 웅크려 비오는 소리를 듣고 싶은 날이 기다려졌다. 이런 날 비를 안주삼아 빈 속에 술잔을 기울여도 괜찮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친구라도 곁에 있다면 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