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 霧津 기행 o 이상한 나라의 렙츠 lefts

 

 

무진으로 가는 길목

 

그가 하는 일은 시간 지도地圖사이다. 마음 속에 있는 서로의 바램들을 모아 시간이라는 화폭에 조각조각 붙여 그리로 가는 지도(指圖)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움이 봄볕에 바래기 시작한다. 그리움이 한올 한올 벗겨지더니 아질아질 눈앞에서 서성이다 사라지길 되풀이 한다. 문득 그리움을 모아 보았다. 아질거리는 그 녀석은 손을 가까이 대면 촉촉한 습기를 내밀면서 앉는다. 그렇게 바래는 그리움을 모아모아 파릇파릇한 새순들 위에 놓자 그리움은 푸릇푸릇해지더니 곧 끓기 시작한다.

그리움이 끓을 무렵, 서편엔 달이 쫑긋거리면서 달려오는 것이다. 별도 반짝거리며 그리움을 스카프처럼 두르는 것이었다. 

그리운 마을로 떠난 것은 그쯤이다.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오다 끓어넘칠 즈음되어서야 그 마을로 향하는 시간의 길이 조금조금 실루엣처럼 비치는 것이다. 이제 이 마을의 시간 지도가 마무리 되어간다. 그리움이 앞으로 열 번 정도 끓어넘치게 되면 안개처럼 묘연했던 시간의 길과 지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리움이 결빙된 듯 바짝바짝 얼기만 할 뿐 도대체 따듯해지지 않는 것이다. 서글픔이 잦게 내리더니 그리움이 조금 조금 지쳐가는 것이다.

시간으로 난 문을 열고, 예전에도 그랬듯이 느낌을 예금하거나 느낌을 사고 팔 수 없는 그 마을을 다녀올 것이다.

 

시간을 접어만난 사람들

 

시간의 틈이 빡빡하다. 꾸깃꾸깃 틈을 몇 번 접을 무렵 매쾌한 냄새가 스며든다. 그렇게 황급히 빠져나오자 투명한 타워가 저 멀리 비친다. 거리가 스산하다. 버스가 날카롭게 다가서자 사람들이 몰려든다. 차창가 불빛들이 춤춘다. 춤추는 불빛들이 차창에 자꾸 튕겨 나간다.

이 도시는 지층에 고이접어둔 석유, 석탄을 이백년만에 모조리 쓴 연유로 해수면의 상승과 지각판에 가하는 압력이 커져 지진이 끊이질 않았고, 중세의 페스트처럼 해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후로 사람들은 모두 몇시간 빨리 지진에 대처할 수 있도록 림프절에 지진감응패치를 붙였다. 

패치를 붙인 이들은 지적감응도 빨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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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는 모든 것들은 흘러가기만 한다. 하수구로 끊임없이 꾸르륵 소리를 내면 느낌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느끼는 것에 대해 언급을 피했다. 꼬르륵 빨려들어가며 꼴깍 꼴각 생기는 진공의 틈새처럼 모두 그 느낌을 뱉어낸 덜그럭거리는 아는 것만 이야기해댔다. 아는 것을 날칼로운 칼날처럼 부딪치고 불꽃을 뱉어도 무감하다. 생각들을 필터로 걸러내고 쥐어짜고 조금이라도 느낌의 물기가 빠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봄이 와도 봄을 맞는 이 하나없고, 꽃이 피어도 꽃이 핀 것을 느끼는 이는 여름이 다 다가와서였다. 뜨거운 가슴의 노래를 토해내도 그들의 머릿 속에 들어가자마자 그 느낌과 아픔은 분쇄기처럼 갈기갈기 사그라들었다. 머리만이 표준어였다. 방언으로 이야기하려고 하거나 방언으로 정보를 전달하려는 시도는 무참히 밟혔다.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느낌이 먼저 불쑥 빗겨나왔다고 해서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그렇게 머리주의자들에겐 불문율처럼 상황이 서로 끼워지면서 느낌들을 물과 기름처럼 밀어내며 마치 공모한 듯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졌다. ..........

 약기운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홀로 서성거리다가 마음의 외로움이 지쳐 점점 하루의 끝점이 다다라서야 그것이 열쇠가 되어 상자의 자물쇠가 열리는 것이다. 그렇게 느낌은 외진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복용되었다. 다른 상자엔 어떤 느낌들이 스스로 달래는지 도통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실낯같은 느낌의 가닥만이 상자에 따로따로 보관되어 은밀하게 유통되었다. 물처럼 마신다. ....

마음의 말, 떨림, 말이 전하는 음악엔 관심이 없다. 얼마동안 울림을 전하려 애타고 간절했는지도 도통 눈치채지를 못한다. 세상은 마음이 많은 말, 가슴이 전하는 말, 손과 발의 지문이 다 닳도록 만든 삶의 말들로 넘치건만, 세상은 무색무취한 공기처럼 당연하다고만 여긴다. 꿀꺽꿀꺽 마실 수 있는.........................

 

바다로 뻗은 긴 방죽

 

나와 너가 조금씩 회자될 무렵이었다. 우리철학을 하는 모둠에서는 잠깐 잠깐 나오다가 사라지길 빈번했다. 서양철학의 밑둥이 잘리우고, 환원의 사상들이 초라해지길 반복해도 볕이 드리우지 않는 그늘에서 여전히 두터운 빙벽처럼 견고하다. 나를 돋구기만 한 이천년의 역사는 그렇게 독립된 나를 만들고, 독립된 나에게 자유를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평등 또한 저 지평선까지 밀어붙이고, 있지도 않는 미래를 담보를 잡아 신기루처럼 비추는 것이다. 그런데 그 철옹성같은 나 옆에 너가 희미하게 있다는 사실이 이가 흔들거리듯 흔들흔들, 뿌옇게 보이는 것이다. 나 옆에있는 너는 관념속에서 서로주체로 보듬었지만, 또 나-너만 무리지어 나로 보이는 것이다. ....

그 사이를 스며든 복잡계 과학은 서양철학과 학문의 맹점을 여실히 드러내게 되었다. 경제의 합리적인 소비주체로서 개인은 여전히 구석기시대의 야생에서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집단 속에 나로서 파악을 해내지 않으면 무질서는 분석을 해낼 수 없었다.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에서 서서히 과학의 성과는 드러나고 사람들의 관계와 복잡의 이면이 조금씩 안개처럼 걷히게 된다. 김하봉 교수와 김명민 교수, 박송규 교수 등 재야의 인문학적 성과는 우연한 기회에 갈래잇는 과학의 성과를 받아들이게 된다. 나와너, 너-나-너 속의 너에 대한 접근은 좀더 개별자 나와 개별자 너로 잇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이웃이란 집단성에 착목하게 된다...............

추구하는 공동체와 나에 대한 인식의 변환은 사회단체의 소비자 개인으로 환원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모임 속의 나에 대한 전환으로 이어져 좀더 다른 접근들이 시도되게 된다. 일회성의 강연은 지양되고 몇 번의 모임의 구성원들로 이어지는 겹침과 노력은 조금씩 공동체와 삶에 있어서 변화를 가져온다. .......

 

4.

슬픔(이은봉)

살구나무와 통하다(이안)

마음(윤재철)

모르는척, 아프다(길상호)

동그라미(이대흠)

목련(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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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느낀다는 건 언제나 '둘'에서 시작합니다.
    from 木筆 2014-07-04 09:28 
    목마른 사람은 물에 세상의 모든 맛이 담겨 있음을 압니다. 배고픈 사람은 흰 쌀밥에 최고의 맛이 담겨 있음을 알 거고요...이유를 따지고 논리를 만들기 전에, 마음이 먼저, 발이 먼저 그들에게 도달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세상을 구경하려는 자들에게는 어떤 느낌도 오지 않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는 무시한 채 먼 곳에서 뭔가를 찾으려는 자들에게도요. 잘 느끼는 사람들은 열심히 구하고, 열심히 움직입니다. 그러다 보면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그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