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생긴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늘 선배가 걸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늘 주춤 그 지점에서 물러서는데 행복을 이야기하다가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때문이지 심화이야기 맥락 속에 걸려드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운 지인들이 충고삼아 한, 백번도 더 되어 귀딱지가 될만한 것이 점점 불거지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스스로 생각하거나 규정짓는 자기와 옆에서 보는 자기가 너무도 다른 것 같았습니다. 무엇일까? 늘 이야기의 진도가 나가다가 주춤서는 그 자기가 대체 무엇일까? 아마 그 형은 실제 움직이는 모습과 유동적인 자기의 모습들과 달리 자신은 아마 나는 어떠해야 한다거나 나는 어떻다라는 표지판에 스스로 묶어두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렇게 만나면 행복한데도 행복을 물어보면 그 행복을 부정하거나 행복하지 않아야 된다는 소용돌이가 거기에 들어선 것은 아닐까요. - 그 틈을 며칠 가져가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홀로 서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버티려고 하면 할수록, 스스로 규정지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결국 힘든 것은 나도 힘들고 옆에 있는 사람도 힘든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사람 인은 그렇게 비스듬히 기대야 온전한 것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섰습니다. 아마 내가 외로운 것도 팔할은 그 이유때문이란 생각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대서 하나입니다. 같이있는 가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하는 머리의 주제넘음도 살랑거립니다. 100822

심 혈 - 일터에 손님들이 있어 강연자료를 이것저것 수소문하면서 만들어 봅니다. 개별적인 성향이나 관심사, 그동안 고쳐야할 강의스타일 들을 물어봅니다. 그리고 진행되었던 강의들에 대한 생각도 섞어봅니다. 아무래도 상황에 따른 변수들이 많을 것 같아 동영상들을 도움을 받아 모아봅니다. 예상대로 될까? 따분함이 가로지르면 어떡하지? 등등 짧은 만남을 그래도 남는 것 있이 짠함이 섞여야 될텐데 해봅니다. 손님들이 오고, 뒤늦은 세팅에 시작부터 석연치 않습니다. 피피티를 먼저할까? 동영상으로 먼저할까? 샘플과 시연할 것도 준비를 해두었지만 어느 지점이 적절할까?란 생각도 접어둡니다. 어찌 하다보니 동영상으로 시작해, 나오는 질문의 물꼬를 건들려보다나니 어느새 장사 좀 되겠다 싶습니다. 낚시의 묘미란 그런 것일까? 하나둘 물건을 풀고 직접해보게 하고, 이쁘장한 샘플을 선 보입니다.... 

업계 특성상 낮술이 가끔있는데 오늘도 여전히 점심이 길어지는군요. 걱정입니다. 얼콰해서 점심건너편 어찌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무르익을 무렵..전해줄 물음하나만 건져야겠다싶습니다. 졸면 황이고, 자료는 일단 뒷전 이번에도 동영상으로 간을 보고 낚?인다 싶으면 밀고 가기로 합니다. ...중복 동영상에 조금 반응이 옵니다. 질문도 하나라는 것에 솔깃한지 외려 답을 하려 간간히 안달나는 분도 있네요. 그런데 말이 길어지면 이건 아니다 싶지요. 강연자도 있는데 ㅇ. 왠만해지고 궁금해질무렵 자료를 열고 목소리를 키워 몹니다. 구경꾼도 있고, 같이 동참자도 생기니 많이 수월쿤요. 벌써 원하는 답들은 나왔는데도 가려고 하지 않네요. 장사는 얼추 끝나버렸는데 가지 않고 뭘 더... ...  

돌아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시골마을 써커스단이 왔는데....저 뒤에서 얼쩡거리다가 사람이 한둘 모이기 시작하고 저기 노는 곳으로 가서 함께 노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보면 서로 얼굴땀이 송긋하는 것은 아닐까. 왜 그렇게 일방으로 알리려고만 했을까 싶은 반추가 들어서기도 하네요.  마음만주다가 몸을 쓰는 것이 뿌듯으로 남는 것을 보니 그래도 심혈을 기울인 맛. 그래서 어쩌면 실력있는 교사들이 그렇게 열심이고 자꾸 중독된다는 것, 심과 혈을 기울인다라는 표현이 조금은 이해되는 하루입니다. 그것이 때론 남는 장사라는 말에도 솔깃해져 봅니다. 100825

인 정 -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트라우마가 있지요. 그렇게 이놈이 몸에 하나둘 쌓이다보면 그 녀석이 성격까지 조금씩 점령을 시도하는 것을 방치하다보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소통의 통로가 많고 열려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또 다른 착각은 아닐까 합니다. 나란 밀실이나 환경은 도대체 소통과 무관합니다. 민낯보고 대면하는 횟수도 주는데, 사람들 부대끼셔 힘든데 무슨 소통이겠습니다. 사람들이라곤 다들 목적을 가진 이유로 들이대는데 마음이 접할 통로라곤 실오라기만큼 점점 가늘어지기만 합니다. 그러다보면 과정의 고정점에 모든 동선을 덧붙입니다. 모든 이유가 거기로 통하고, 지난 과거는 그 트라우마로 환원짓는 것을 보면 정말 놀라운 힘입니다.  트라우마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인정은 소수의 복받은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점점 루저는 늘고, 루저의 트라우마는 점점 현실을 짓누르고 더 현실의 더께를 보태는 현실은 여전히 그 쳇바퀴를 돌립니다.

뇌과학자나 러셀이란 양반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트라우마란 것이 별것 아니어서 그 트라우마가 낳는 장점 두가지를 생각하고 마음에 주입해보는 연습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물론 러셀도 그런이야기를 벌써 오십년전에 했습니다. 어쩌면 이천년전엔 오백년전에 훨씬 쉬운 일은 아니었을까요? 어쨌든 그렇다고 칩시다. 달라지긴 달라지긴 합니다. 저도 한번 연습삼아 이렇게 해보았어요. 가장 나쁜 기억이 낳는 좋은 점을 한 시간정도 되뇌여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더군요. 이놈이 그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좋은 기운으로 번지더군요. 그런데....이것도 시간에 바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주 몇달지나더니 기억력처럼 스르르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겁니다.

그래요. 혼자하는 놀이의 방법도 있겠지만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스스로 서기 힘든 이들이 양지바르지 않은 그늘이 훨씬 많은 숫자가 있죠. 굳이 어릴 때 정서적 교감, 보호자가 없는 몸에 붙은 의지 할 수 없는 곤란함이 아니더라도 이 시대의 세상을 살아가는 일자체가 곤란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해요. 인정이 메마른 사회죠. 인정이 메마르고 트라우마가 중첩되는 지금을 이제서야 뼈아픈 이야기를 듣고 느낍니다. 일단 바닥으로 내려오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말. 루저나 히키고모리.....회복의 가능성이 아니라 무서운 증후의 단편만을 보여주는 섬찟함이라는 .... ...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안아주는 것이 필요한 사회가 되어버렸죠. 이미 하늘만큼 땅만큼 이전에... ... 예쁘고 귀여운 어른만 안아주면 되지 않아요. 이미 엮일 트라우마도 별로 없잖아요. 그래요 모두 안아주는...치유가 아니라 삶의 와중에서 회복의 확율을 높이려면... ... 100812
 

뱀발.  

이 시대를 살아내는 자체가 위로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겠죠. 위로받는 것에 귀천이 없는 것이라면...위로에 인색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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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발끝까지

 

 

 

 

 

 

화*모임에서 몇차례 세미나와 토론을 하였습니다. 생각보다 관심이 시큰둥?한 것 같아 한번도 소개흔적을 남깁니다. 서영표님의 문제의식과 학문에 대한 관심이 무척 방대하고 진도를 깊숙히 굳굳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론에 대해서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느낌이었는데...여러 인물들이 겹칩니다. 칼 폴라니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 지방자치의 현실에 관심이 많은 모든 분들에게 지적 호기심이상을 줄 내공이 상당히 있어보입니다. 물론 가져가시는 분들의 몫도 있겠지요. 그리고 삶에 대한 접목도 함께 나눌 기회가 뒤풀이 어디쯤에선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봅니다. 

영국 그곳의 결과 그 당시의 고민이 아니라, 이땅 지금 여기에 건네려하는 노력이 곳곳에 보입니다.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리 일독은 하지 못하더라도 줄거리나 흔적들을 담고 오면 더욱 강연이 풍부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고픈 이야기는 먼댓글로 이어봅니다. 참고하세요. 요즈음은 가끔 저보다 생물학적 나이가 어린 학자가 마음에 더 듭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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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구름사이 보름달이 은은하다. 눈길을 건네는 수국도 달빛을 머금은 듯 밝은 향이 비친다. 벚나무가지에서 동선을 그린 낙엽들이 바닥우에 남기었다.  이른 아침 산책길 시선을 주지 못했던 꽃들.  그래도 나팔꽃도 배롱꽃도 장미도 반긴다. 떠오르는 햇살이 담뿍 배였다. 8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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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딴지꽃 - 흐드러졌다. 여기저기 소로를 따라 쭈삣쭈삣 뻣은 것이 볼만하다. 실개천가에 핀 꽃은 냇가를 쳐다보고나니 노랑이 흠뻑 젖어 오른다. 뚱딴지꽃이 물에 번진 그림도 볼만하다. 십여일전 우연히 걸린 이름이 혹시나 하여 찾아보니 그 꽃이다.  

 

조롱박꽃 - 은은하고 수수하다. 불볕햇살에 검은 테가 오르는 듯,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한번 손으로 더듬다가 그 감촉이 잊히지 않는다. 사진을 담지도 못하고 이리 마음으로만 애틋하다. 

 

뱀발.   

1. 일요일 느지막한 시간에 행복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불행도 삶도 낯선 이국의 언어도 가져오다가 속내를 좀더 깊이 들여보다 헤어진다. 마음이 종이에 배듯 아픔이 묻어나기도 했을 것이며, 딱히 보니 이렇게 모이는 것이 행복이다 싶고, 늘 먼 저기에서 갈망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후회도 해보는 것이다. 노신도 다녀가시고, 데카르트도 왕림해주시고 하다가 밤은 익는다. 그리고 몇은 남고 몇은 뒷그림자를 남기며 헤어지다......아침 낯익은 이에게 낯선 문자를 받고 덜컥하는 것이다. 광장과 밀실, 그리고 더 더욱 운신이 폭이 작아지는 밀실의 삶을 탓하다가 그래도 앎이라는 것이 저리도 넓게 세상을 가로지르는 것을 보면, 밀실과 밀실을 넘나들고 경계를 낮추거나 나를 허무는 것이 그래도 잃어버린 광장을 찾는 한 방편이라는 생각이 남았는데... ... 

2. 세심함이 그래도 좀더 남아야겠지 한다. 뚱딴지가 세상을 온통 점거하고 있는 지금, 한여름 박꽃의 감촉과 애틋함이 그래도 가을을 좀더 살찌울 수 있겠다 싶다. 그려두고 싶은데 마음이 싱숭하여 박꽃과 뚱  딴지꽃을 남기지 못하고 이렇게 빌려쓴다. 밀린 일들로 마음도 생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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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을 전하다. 앎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하면 색다른 느낌을 쌓이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느낌은 사유이기도 하지만 공유, 그리고 그 공유감을 바탕으로 그 다음을 볼 수 있게하는 어떤 것.0) 박미앙,석연희 음악이 무엇이라고 여기는가? 그리고 음악이 그렇게 대충뭍어 있는 선입견이 어느 시점이 지난 뒤, 나의 음악 속엔 체감하지 못했던 놀라운 것들이 붙어 있다면, 그래서 음악은? 질문을 되먹임하면 그렇게 붙어있는 것들이 새로운 가지처럼 자라고 있음을 느끼는 것. 교육이 지식의 전달이나 수수가 아니라, 이렇게 느끼는 체험이나 시선의 공유라는 과정이 먼저라면 어떨까? 1) 이현주

도레미파솔....이란 음 사이 숨겨진 질서는 몇백배의 강도가 차이나지만 로그스케일의 크기로 환산하면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 역시 밋밋한 앎의 전달이 아니라 끓어오를 정도의 강도가 있고 난 뒤에야 그 다음의 체험의 눈이 생기는 것이라 한다.2)김민수  일상을 살아내는 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의 정치적 선택이 다양하다. 하지만 그(녀)들의 일상동선은 끊임없이 갇혀있다. 다른 시선과 관점을 만날 수 없다. 어쩌면 80년대 학생운동의 영역이 끊임없이 그 체험을 양산했으리라. 술집이든 가족이든 그 일상의 동선을 파고드는 경험의 축적이 일상인의 시선을 비틀고 그래도 조금은 다른 관점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포보에 올라가도 일상인은 유행같이 지나는 관점을 소비한 뒤라 피로감이 잔뜩이다. 그(녀)들이 생각의 공간은 다르게 느낄 문화의 점이지대, 생각의 점이지대도 없다. 만나거나 뒤틀릴 수 없다.3)김유신 또다시 목을 조이는 열에 아홉인 재테크와 아이들교육얘기에 갇히고, 1%정도 남은 사회에 대한 시선은 또 다른 충격을 소비하고 싶어 한다. 링크될 수 있을까? 그 관점의 소비란 네트워크는 다른 연결망을 만날 수 있을까? 점점 자라날 수 있는 노드는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

고정되어 있는 데이터, 정지해 있는 한점이 아니라 그 점들이 조금조금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렇게 네트워크의 노드가 꿈질꿈틀 무엇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4)김민수,조항현 그 네트워크를 다른 물감으로 번져나가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중앙집중되어 끊임없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하지만, 그 흐름을 자양분으로 꼼틀꼼틀 관점의 새싹을 틔우고, 어느 사이 나뭇가지로 자랄 수 있는 것이라면5)김영화, 그런 분권이나 작은 것에 대해 느낌들이 공감되는 것이라면 아는 것이 책에 머무르지 않고 뭉클거려 다른 이의 마음을 떨리게 하거나 생각들이 모아져 저렇게도 갈 수 있는구나 저리도 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 소문내고 싶고, 다시 한번 가슴떨리고 싶고, 다시 한번 보고 싶겠지.

둘이상이면 문화다. 문화는 어떻게 밋밋한 동선의 감동의 확율을 높이는 수고이자 재미다. 이벤트도 될 수 있지만 흐르는 정서의 증폭과 교감의 통증을 높이기도 하는 것이다. 소용있는 것만 모임이 시선에 가있다면 그 모임은 그 갑갑증으로 인해 소용있는 것도 못할 것이다. 소용없다고 여기는 것에 시선을 둔다. 여백이나 휴식이 소용없는 것이 아니라 긴요한 것이다. 여백과 소용없이 보이는 것의 다양성이 소용있는 것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시인, 예술가들이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어떻게 해도 조직은 할일이 불요막급이므로 경계로 밀어버리고 만다. 재정부터 전체적인 맥락을 꿰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임의 경계와 공유하고자 하는 느낌에 포인트를 줄 수 있다. 주*회의 정감이 느껴진다. 그것이 회복과 정서를 감응시킨다.6)김유신,원용숙

노드의 자기조직화, 생성이란 관점은 또 다른 변화를 줄 수 있다. 삶의 체험과 확장, 자유와 인정에 대한 갈망이 그 섬을 넓힐 수 있다. 섬밖의 사람을 기웃거리게 만들고 궁금하게 만들 수 있다. 거대한 자본주의 흐름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이론들과 가치의 문제를 별개로 놓는 자체가 문제다. 과학이 재현성과 실증을 바탕으로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전제가 이론을 살아있지 못하게 만들고 생명을 단축시킨다. 네트워크에 대한 이론이든 다른 이론이든 삶이나 존재를 별개로 구획짓는데서 출발한다면 문제다. 그 숱한 환원주의의 오류는 그곳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닌가?

인터넷이란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은 고민을 하지만, 울타리를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그 생각과 고민의 자맥질은 다른 체험이나 삶의 확장으로 가는 길이 없다. 끊임없이 그렇게 산다. 더 이상의 삶공간은 없는 듯이 일상을 자위하며 살아간다. 부녀회7) 파란여우 이자 친목동호회일뿐 사회에 대한 발언은 사교의 방편으로 제한된다.
 

 

 

 

 

 뱀발.  

1. 게임이론과 네트워크이론에 대한 3차례강연이다. 저녁과 뒤풀이를 하며 더 많은 이야기가 번진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앎이 서말이라도 느껴야 보배다. 느낌이 서말이라도 共시도가 보배다. 共시도가 서말이라도 공생이 보배다.....우리는 어디쯤 서있는 것일까. 어디쯤! 밤이 깊다. 

2.  실명을 거론해 미안한 마음이다. 불편하면 말씀하시라 우린 그런사이가 아닌가. 한번쯤 불화란 삶의 지문이 필요한 때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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