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을 전하다. 앎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하면 색다른 느낌을 쌓이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느낌은 사유이기도 하지만 공유, 그리고 그 공유감을 바탕으로 그 다음을 볼 수 있게하는 어떤 것.0) 박미앙,석연희 음악이 무엇이라고 여기는가? 그리고 음악이 그렇게 대충뭍어 있는 선입견이 어느 시점이 지난 뒤, 나의 음악 속엔 체감하지 못했던 놀라운 것들이 붙어 있다면, 그래서 음악은? 질문을 되먹임하면 그렇게 붙어있는 것들이 새로운 가지처럼 자라고 있음을 느끼는 것. 교육이 지식의 전달이나 수수가 아니라, 이렇게 느끼는 체험이나 시선의 공유라는 과정이 먼저라면 어떨까? 1) 이현주

도레미파솔....이란 음 사이 숨겨진 질서는 몇백배의 강도가 차이나지만 로그스케일의 크기로 환산하면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 역시 밋밋한 앎의 전달이 아니라 끓어오를 정도의 강도가 있고 난 뒤에야 그 다음의 체험의 눈이 생기는 것이라 한다.2)김민수  일상을 살아내는 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의 정치적 선택이 다양하다. 하지만 그(녀)들의 일상동선은 끊임없이 갇혀있다. 다른 시선과 관점을 만날 수 없다. 어쩌면 80년대 학생운동의 영역이 끊임없이 그 체험을 양산했으리라. 술집이든 가족이든 그 일상의 동선을 파고드는 경험의 축적이 일상인의 시선을 비틀고 그래도 조금은 다른 관점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포보에 올라가도 일상인은 유행같이 지나는 관점을 소비한 뒤라 피로감이 잔뜩이다. 그(녀)들이 생각의 공간은 다르게 느낄 문화의 점이지대, 생각의 점이지대도 없다. 만나거나 뒤틀릴 수 없다.3)김유신 또다시 목을 조이는 열에 아홉인 재테크와 아이들교육얘기에 갇히고, 1%정도 남은 사회에 대한 시선은 또 다른 충격을 소비하고 싶어 한다. 링크될 수 있을까? 그 관점의 소비란 네트워크는 다른 연결망을 만날 수 있을까? 점점 자라날 수 있는 노드는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

고정되어 있는 데이터, 정지해 있는 한점이 아니라 그 점들이 조금조금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렇게 네트워크의 노드가 꿈질꿈틀 무엇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4)김민수,조항현 그 네트워크를 다른 물감으로 번져나가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중앙집중되어 끊임없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하지만, 그 흐름을 자양분으로 꼼틀꼼틀 관점의 새싹을 틔우고, 어느 사이 나뭇가지로 자랄 수 있는 것이라면5)김영화, 그런 분권이나 작은 것에 대해 느낌들이 공감되는 것이라면 아는 것이 책에 머무르지 않고 뭉클거려 다른 이의 마음을 떨리게 하거나 생각들이 모아져 저렇게도 갈 수 있는구나 저리도 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 소문내고 싶고, 다시 한번 가슴떨리고 싶고, 다시 한번 보고 싶겠지.

둘이상이면 문화다. 문화는 어떻게 밋밋한 동선의 감동의 확율을 높이는 수고이자 재미다. 이벤트도 될 수 있지만 흐르는 정서의 증폭과 교감의 통증을 높이기도 하는 것이다. 소용있는 것만 모임이 시선에 가있다면 그 모임은 그 갑갑증으로 인해 소용있는 것도 못할 것이다. 소용없다고 여기는 것에 시선을 둔다. 여백이나 휴식이 소용없는 것이 아니라 긴요한 것이다. 여백과 소용없이 보이는 것의 다양성이 소용있는 것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시인, 예술가들이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어떻게 해도 조직은 할일이 불요막급이므로 경계로 밀어버리고 만다. 재정부터 전체적인 맥락을 꿰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임의 경계와 공유하고자 하는 느낌에 포인트를 줄 수 있다. 주*회의 정감이 느껴진다. 그것이 회복과 정서를 감응시킨다.6)김유신,원용숙

노드의 자기조직화, 생성이란 관점은 또 다른 변화를 줄 수 있다. 삶의 체험과 확장, 자유와 인정에 대한 갈망이 그 섬을 넓힐 수 있다. 섬밖의 사람을 기웃거리게 만들고 궁금하게 만들 수 있다. 거대한 자본주의 흐름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이론들과 가치의 문제를 별개로 놓는 자체가 문제다. 과학이 재현성과 실증을 바탕으로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전제가 이론을 살아있지 못하게 만들고 생명을 단축시킨다. 네트워크에 대한 이론이든 다른 이론이든 삶이나 존재를 별개로 구획짓는데서 출발한다면 문제다. 그 숱한 환원주의의 오류는 그곳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닌가?

인터넷이란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은 고민을 하지만, 울타리를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그 생각과 고민의 자맥질은 다른 체험이나 삶의 확장으로 가는 길이 없다. 끊임없이 그렇게 산다. 더 이상의 삶공간은 없는 듯이 일상을 자위하며 살아간다. 부녀회7) 파란여우 이자 친목동호회일뿐 사회에 대한 발언은 사교의 방편으로 제한된다.
 

 

 

 

 

 뱀발.  

1. 게임이론과 네트워크이론에 대한 3차례강연이다. 저녁과 뒤풀이를 하며 더 많은 이야기가 번진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앎이 서말이라도 느껴야 보배다. 느낌이 서말이라도 共시도가 보배다. 共시도가 서말이라도 공생이 보배다.....우리는 어디쯤 서있는 것일까. 어디쯤! 밤이 깊다. 

2.  실명을 거론해 미안한 마음이다. 불편하면 말씀하시라 우린 그런사이가 아닌가. 한번쯤 불화란 삶의 지문이 필요한 때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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