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은 안으로 굽다

 

오라고 한다. 모여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것 만들어놨으니 와야한다고 한다. 바라보는 빛은 점점 멀어지고 그림자는 더 짙게 드리운다. 마음에 맞는 사람도 이젠 개의털이다. 쥐의 뿔도 없다. '인생에 있어 친구 셋만 남아도 대단한 거다'는 말을 똥뒷간에 버리다보면, 보수 수구주의자의 진신사리이다. 가라고 한다. 가야 한다고 한다. 만들어놓은 것이 저것밖에 되지 않으니 가야한다고 한다. 오는 것에는 친구가 자꾸 줄어드니 아마 '오고'와 '가고' 사이 어딘가에 벗이 있을 거라고 한다. 팔만 안으로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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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인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 박근혜는 광주시민과 만나 신심을 주지 않는다. 문재인은 경북 봉화에 머물러 신심을 펼치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면 정치도 개점휴업이라 휴전선은 그리도 많은지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는 것인지 그냥 그대로 있다. 특강도 없으며 삼박사일 워크샵도 없으며, 저녁 한때도 없다. 저녁이 있는 삶도 선거가 끝났으므로 쓰레기처럼 처박혀있다. 유권자 속으로 때만되면 들어간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어떻게 나왔는지도 버리고, 정치때가 왔으니 정치를 머리에 붙이고 이고 정신없이 다닌다. 정치인은 정치를 할 수 없다. 삶의 한 터럭도 뽑지 못하고, 삶들 한트럭도 바꿀 수 있는 이가 없으니 정치는 없다. 이합집산만이 있다. 정치는 삶을 바꿀 수 없는거라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것이 현명하다. 정치는 유권자를 속이고, 유권자는 정치를 속이니 공평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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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그의 말을 그대로 찍어두고 싶어 신경을 바짝썼다. 만나본 인물들 가운데 그래도 선한디 선한, 순박하기 그지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은 키, 레미콘 판넬공을 하다가 눈썰미로 재료일을 배워 밥벌이를 하고 있다. 평소 정치성향을 삼가한터라 소주가 오르자 그는 "박근혜 공기업 개혁 해내지 않겠어요"라고 한다. 가족과 혈연과 죽은이의 부탁말씀과 모시고 있는 돈님의 사이가 엉성해보이지 않는다. 돈을 떼어내고, 정치를 떼어내고, 혈연을 떼어내고, 개인을 발라내어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얘기할 수 없다. 그런 이야기를 무수히 많이 들었을 것이고 보았을 것이고, 그 사이 사이 돈님과 피의 끈적거림 사이를 뚫고 그의 마음까지 꽂히기에는 감내할 것이 무척이나 많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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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할아버지가 한자리 하라고 했다. 육사가면 마을잔치를 했다하고, 명문대가면 현수막이 붙었다. 한 할아버지 아래 육사 인사담당만한 친구는 계급정년에 걸려 진급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구미에 두칸방 빌라에 사는 그는 조그만 레미콘공장 월급쟁이 기술자다. 월급과 비용을 줄이려 두달째 놀고있는 그는 봄이 되어야 일할 수 있다.  이명박과 근혜대통령이다. 공기업 개혁 해낼 것이라고 한다. 경북 봉화 춘양고의 추억을 갖고 아이를 키우고, 친지를 만나고, 소주를 기울일 것이다. 서영춘이 되고 싶었다던 그는 꿈얘기에 설레였고 광주를 처음 가봤다는 얘기처럼 들썩였다. 그는 살아가고 살아낼 것이다. 그러다가 딸래미들 먹고사는것도 걱정하고, 한자리하지 못한 서운함을 갖고, 부자가 되지 못하는 자식들을 한탄하며 할아버지로 죽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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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제사 題辭)

 

 

 


침묵하고 있을 때 나는 충만감을 맛본다. 하지만 입을 열려고 하니 동시에 공허를 느끼게 된다. 지난날의 생명은 이미 죽어 없어졌다. 나는 죽은 생명에 대해 극도의 만족감을 맛본다. 왜냐하면 나는 죽음을 통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죽어 버린 생명은 어느덧 썩어 문드러졌다. 나는 썩어 문드러진 생명에서도 충만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는 이것으로도 생명이 공허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생명의 진흙이 땅 위에 팽개쳐져 있어도 높은 나무는 자라지 않고 들풀만이 잘랄 뿐이다.

이것은 나의 죄요. 허물이다.

 

들풀은 뿌리가 깊지 않다. 아름다운 꽃이나 잎을 피우는 것도 아니다. 들풀은 이슬을 마시고 물을 빨아 먹으며 오래전에 죽은 사람의 피와 살을 먹고 저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들풀은 제 푸름을 자랑할 때도 인간들에게 짓밟히고 베이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죽어서 영원히 썩어 갈 때까지.

 

그러나 나는 담담하고 기쁘다.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며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리라. 나 스스로 사랑하는 나의 들풀이지만, 나는 이 들풀로 장식을 하려는 지면을 증오한다. 땅속의 불덩어리는 땅 밑으로 흐르다가 솟구쳐 오른다. 일단 용암이 분출되면 땅 위의 들풀과 높은 나무도 그래서 썩어 문드러지는 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리라.

 

그러나 나는 담담하고 기쁘다.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며 소리높여 노래를 부르리라. 하늘과 땅이 이다지도 적막하기에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웃지도 못하고, 소리 높여 노래 부를 수도 없다. 설령 하늘과 땅이 이처럼 적막하지 않더라도 아마도 나는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밝음과 어둠,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나는 이 한 움큼의 들풀을 선사하고자 한다. 친구이든 원수이든, 인간이든 짐승이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든 미워하는 사람이든. 나 자신을 위하여, 친구와 원수를 위하여, 인간과 짐승을 위하여, 사랑하는 자와 사랑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나는 바란다. 이 들풀이 죽어 없어지고 썩어 문드러지기 위해서 불길이 빨리 타오르기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일찌감치 살아 있지 않은 것이니 이는 실로 죽어 없어진다거나 썩어 문드러지는 것보다도 더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떠나거라, 들풀이여! 나의 이 제사 題辭까지도.

 

 

 뱀발.

 

1. 자꾸 엇나가고 흐려지는 것 같아 캔버스 위에 만년필로 또박또박 써본다. -- 김수영의 풀과 엇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폭과 깊이....들풀 이라는 책제목의 글과 23편을 꼼꼼이 다시 읽어보고 소회를 남겨야겠다.

 

2.외우면서 옮겨 적다보니 어감이 많이 다르더군요. 느끼다와 알다의 차이, 본다라고 적었는데 원문에는 맛본다 였어요.... 루쉰은 알아주는 이도 없고, 외치자니 그 또한 아무런 파장도 없을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그는 적막하다고 말하더군요. ..'입을 열면 공허를 느끼게 된다'고 하지만 ..곧이어 '생명이 공허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있어요. 그는 절망을 먼저 느끼죠. 희망이 허망한 것처럼 절망도 허망하다고 하죠. 빛보다는 어둠의 편이 차리를 지금을 낫게 만든다라고 하죠.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어둠에 선다라고 말에요. 아마 제 표현대로 하면 그는 철저한 덧셈주의자가 아닐까해요. '철저'와 '왔다'를 그는 경멸하니...이 표현도 어색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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